시끄러운 사회의 이상한 정열


김원우



한 사회 나아가서 어떤 국민의 성숙도를 알아보는 잣대로는 국민총생산·PC보급률·인터넷 검색횟수 따위를 숱하게 열거할수 있을 것이다. 이를 테면 일인당 연간도서구입비나 가구당 자동차 보유대수도 그런 지표들 중의 하나일 수 있다. 요컨대 그런 지수들은 물리적이며 가변적인 것이라 그 효용성에 어차피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고 인용 문건을 볼 때마다 그 상대적인 내실도를 잠시라도 떠올려보면 어떤 호도미봉책의 손쉬운 수단으로서 아무렇게나 활용하고 버리는 일회용 소비재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모든 지수가 대체로 다 그런 듯싶지만, 그 용도가 임시방편적인데다가 수상쩍은 것으로는 각종 여론조사의 수치나 비율 따위도 지목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숫자에 신뢰도 가지 않을 뿐더러 피조사자들의 소양이나 여론조사 임시의 심경 일체도 의심스럽고, 여론조사의 주체들이 과연 무슨 목적으로 그런 수선을 떨었는지 짐작해보면 착잡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믿을 수밖에 없는 그런 지수들의 이면이야말로 숨가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난장판식 단면들과 그 속성을 일목요연하게 대변하고 있는 듯해서 도대체 여론이 무엇이며, 비록 일시적일망정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어느 특정 여론의 옳고 그름을 반드시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들고 일어난다.

굳이 나치스의 집권 경위와 그 흥망사를 되돌아보지 않더라도 여론 일반의 무지몽매성과 그 유아독존적 반동성은 누구에게나 웬만큼 낯익은 정황이다. 그렇긴 해도 당대의 여러 건별 여론들의 흐름을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음은 현대인의 만부득이한 숙명이다. 또한 그 상당한 또는 몰지각한 여론들의 귀추, 횡포가 장차 나/남에게, 심지어는 우리나라/이웃나라에 어떻게 비화될지를 미리 그려보지 않는 식자층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기야 이래저래 복대기게 마련인 근대국가의 모든 지식인은 그런저런 역사의 폭력 앞에 늘 절망하는 졸장부거나 어떤 야바위판으로서의 당대 현실 속에서 체념을 일굴 수밖에 없는 무력한 샌님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 짧은 글의 본의는 다수결원칙에 내맡겨야만 하는 이른바 민주주의적 의사결정권의 행사에 드는 과비용, 그 불요불급한 소모적 낭비 전반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겠다는 것도 아니고, 찬부가 분명한 여론의 향배라는 소용돌이에 부대껴야 하는 여러 개인/국민의 행불행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기우를 들먹이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여론의 태동에서부터 중의를 모아감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어떤 번듯한 실천에 이르는 과정까지에 도사리고 있는 우리의 심성 일반을, 그것도 작금에 유독 성행하는 듯싶은 우리 고유의 어떤 경향을 한번쯤 짚어보자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쳤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반기득권적 여론의 호응에 힘입어 집권한 노무현 정부의 좀 별난 정치력은 기왕의 모든 제도와 관행을 뜯어고치겠다는 의욕의 점철로 요익할 수 있을 듯하다. 이른바 성역 없는 개혁의 입지이며, 최근세사의 부분적 왜곡을 일정한 정도로 교정함으로써 불평등사회의 세습 및 심화를 저지하겠다는 시위이다. 예컨대 국가보안법의 폐기, 친일파의 범위 확정, 수도 이전, 신문관계법 제정 등등이 그런 개혁 안건들인데, 세력들간의 이해(利害)가 워낙 엇갈리는 첨예한 사안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취지의 온당성은 우선 퇴영적·안분지족적 고정관념의 불식이라는 측면에서 돋보이는 게 사실이다.

사실상 역대 여러 정권들은 하나같이 특정 이데올로기에 꼼짝없이 주녹이 들어 있어서 알게 모르게 형성, 고착된 여러 갈래의 기득권층을 과보호하느라고 영일이 없었고, 그 공과는 다들 익히 아는 바이지만, 오늘날 우리의 세계 10위권 국부(國富))가 그런 뻣뻣한 정치경제학적 통치술 전반의 힘차고 줄기찬 행진에 전적으로 빚지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북한도 일사불란한 체제의 공고화에 들인 공력, 그 정치술 일체는 우리의 그것과 근사한 것이었으나, 이미 오래 전부터 국제미아적 거지국가로 전락해버림으로써 그 시대착오적 제반 국가경영 시스템 자체는 비판의 대상으로 거론하기에도 민망한 형편이다. 이런 대비와 훤히 드러난 이런 격차는 사해동포주의·쇼비니즘·통일지상제일주의 등의 섣부른 공세로 흔히 간과하고 있지만, 우리가 누리는 지금의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윤택을 점검해보면 뼈에 사무치도록 오감한 어떤 우월감의 톡톡한 믿천이 되어 있다.

그런데 그 태생적 한계와 특장 때문에 그럴 테지만, 노무현 정권은 국가의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여러 중대사안을 바로 여론에 묻고, 잃어봐야 본전이라는 투의 겁도 없는 도박꾼처럼 당장 그 가부를 결정짓자고 짓조름으로써 꼭 반 이상의 여론 주체들을 황당하게 만들고 있다. 당연한 추이대로 시방 전국민과 온나라는 연방 터져나오는그런 너울의 행렬 때문에 호된 몸살기를 떨쳐낼 기력마저 소진하고 있는 형국이다(실제로도 참여정부의 '여론 소란지수'는 상대적으로 높은 듯하다). 따져보면 국가대사의 우선순위에 대한 결정권은 집권자 및 여당의 대세관이자 그들의 독점적 권력이긴 하다.

또한 그런 권력행사에 대한 무제한의 비판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요체이며, 그것의 제한적 수용은 당해 정부의 고유한 의무이기도 하다. 따라서 종다수의 여론을 좇든가 등지든가는 집권당의 한시적·배타적 권력 행위인데, 크게 보면 그 역사적 결정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를 곧장 단정하기는 어렵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듯이 민심은 조석으로 다를 뿐더러 역사의 물굽이가 어느 쪽에다 승패를 얹어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이런 점성술적 결단을 강요하는 대목에 맞닥뜨릴 때일수록 신중한 처신, 곧 앞뒤와 좌우를 늠름하게 장단기적 시각으로 가늠하는 형안이 요청됨은 재론의 여지조차 없다.

감히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지 장담할 수는 없으나, 오늘날 우리 식자층 일반의 담론 수준은 거칠다. '진보'와 '보수'라는 말을 함부로 쓰고 또 제멋대로 그 엉성한 이분법으로 편가르기를 즐기고 있는 데서도 드러나듯이 그들은 대개 다 신문사설 정도의 자기 의견 피로에는 거침이 없다(이것이야말로 국력의 일부이며, 그런 의미에서도 '국론분열'을 타기시하고 '국론통일'을 염원하는 발상은 구시대적 폐습일 뿐만 아니라 북한정권의 그것을 답습하려는, 욕하면서 닮아간다는 작태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서 주말이면 교외의 끌밋한 도로들마다 행락객들의 자가용 행렬로 몇 시간씩 정체현상을 일으키는, 그 생고생을 사서 해야 그나마 사는 것처럼 산다고 자위하는 중산층의 가장/내조자들은 대체로 어떤 정권도, 나아가서 그 통치술 전반도 올곧게 바라보지 않는다. 심정적으로도 그렇고, 실제적으로는 조목조목 따지며 원성을 퍼붓는다(그들의 이악스러운 행태와 여론 부추기기는 총선이나 대선의 투표성향으로 드러나는데, 그것의 즉흥성·무책임성·편향성은 매변 겪어오는 바와 같다).

이런 불신풍조는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국력 전반에 대한 자신감의 토로인 동시에 역대정권의 파행적 정치력, 구두선에 불과했던 그들의 온갖 개혁의지가 결국에는 사기행각에 지나지 않았다는 체념의 적체현상임을 시사한다. 물론 우리 정치행태만의 유별난 현상도 아니고, 어느 나라의 경우에나 '선진적 정치력'의 발휘는 전적으로 형용모순이다. 뒷북치기로서의 헤겔의 비유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지적하는 대로 어떤 정치력이라도 당면 현실의 제반 문제와 그 변화 일체를 늘 한걸음 이상씩 뒤쳐져서 붙쫓기에 바쁘고, 옳은 대안을 내놓기도 전에 또다른 현안들이 그것의 무능을 재우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정치의 주무자(만년 낙제생인 정치가 전반)와 피주무자(역사의 피해자인 신민 일반)는 언제라도 다같이 쫓기고 쫓는 도로(徒勞)의 희생지들이다. 어느 쪽이 다른 한 쪽을 먼저 선동하는지 분간할 수도 없다.

그래서 선정주의의 배태는, 그것의 허망한 결과는 필지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왜곡하며, 종내에는 사기행각에 놀아나는 이 거대한 회로가 정치적 허무의식의 골간이다. 게다가 TV, 신문, 이제는 네티즌들까지 시끄럽고 화려하게, 그러나 무잡하고 식견 짧은 말글로 이런 선정주의에 적극적으로 부화뇌동한다. 이런 일련의 시스템은 자연스럽게도 거대한 아류주의의 물결을 불러일으킨다. 아류주의의 본색은 아첨과 견강부회이므로 그것은 좋은 게 좋다는 원만주의와, 무리지어 쓰잘 데 없는 성원과 성토를 덧대는 추수주의와,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는 비관주의를 낳는다.

결론을 서두르면 한 국가의 성숙도를 알아보는 척도로는 '정치적 소란지수'를 상정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그것이 유독 높다고 느껴지는 것은 집권자 및 집권층이 여론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변석개하기 마련인 그 여론에 치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사의 '집행'보다 그것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은 물론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본론'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데도 '서론'만 읽고 나부대는 짓거리는 그 앎이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속담대로 노무현 정부와 우리의 구성원 전부는 선정주의에 갑시어서 유치한 '세계관'을 앞다투어 토로하느라고 한통속으로 제 정신들이 아닌 듯하다.

우리 일상 전반의 '소음지수'를 낮추는 길은 서권기깨나 묻어 있는 위정자나 식자층 모두의 소양을 일정하게 부양시키는, 배만 잔뜩 부른 우리의 천박한 정치의식을 강단 좋게 다잡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여론은 믿어도 그만이고, 안 믿어도 손해볼 것은 없는 신기루로서 그것의 행방에 운신을 맡기는 사람은 목적 없는 방랑객이거나 제 할일을 제때 할 줄 모르고 마냥 미루는 얼렁뚱땅행 정열가임에 틀림없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구성원 모두는 『논어』의 현상학적 아포리즘을 언제라도 염두에 두면서 여론 따위도 무시할 권리를 행사할 줄 알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뭇사람이 좋아하거나 뭇사람이 싫어하는 것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衆好之, 衆惡之, 必察焉.



[대산문화 2005년 겨울호]



김원우 1947년 경남 진영 출생. 1977년 「한국문학」에 중편 '임지'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한국창작문학상,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수상, 2005년 현재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 지은 책으로 [인생공부], [장애물 경주], [안팎에서 길들이기], [짐승의 시간], [모노가미의 새 얼굴], [일인극 가족], [젊은 천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