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제20회

금강산 육로관광을 다녀와서

안도현(시인)

△ 금강산 육로 시범관광단의 일원으로 15일 눈덮인 삼일포를 찾은 시인 안도현씨가 해금강 절경을 바라보고 있다 금강산/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길 양편으로 나무들이 밑동을 보이고 있는 지점이 지뢰 제거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없이 얽힌 중장비 바퀴자국들은 그 작업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증명해주었다. 군사분계선 바로 밑 바닷가 쪽에 주인 잃은 묘지석 하나가 우뚝 서서 그 자리가 옛 무덤이라는 것을 간신히 말하고 있었다. 불경하게도 내 눈에는 그게 잠깐 남근석처럼 보였다. 분단의 음지를 통일의 양지로 만들려고 그 석물은 지금도 쓰러지지 않고 불끈 솟아 있으려니 싶었다.

한반도의 남북을 두 동강 내고 있는 군사분계선은 지도에서처럼 굵고 붉은 점선도 아니며 베를린 장벽 같은 절대 단절의 벽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노란 표지판 하나에 불과하다. 군사분계선을 지나면 북쪽에서 개설한 도로가 300m 이어지고 막바로 북쪽 통문이다. 북쪽 인민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칼을 꽂은 소총을 들고 있는 병사, 권총을 차고 붉은 깃발을 들고 있는 병사 두루 하나같이 얼굴은 검붉고 입술은 앙다물었다. 인원 점검을 위해 버스는 잠시 멈추었다. 북쪽 취주악단의 환영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경무관이라는 견장을 붙인 북한 군인이 버스 위로 올라왔다. 버스 안은 잠시 긴장한 듯 아무도 말이 없다. 인원 점검이 끝나자 “누군가 수고하십시오!”라고 한 마디 던졌다. 그는 가볍게 손바닥으로 답례하고 버스를 내려갔다. 우리가 가장 근접 거리에서 북한군을 만난 것처럼 그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조선’ 억양의 말을 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금강산 골짜기에서 모인 물이 동해로 흘러가는 적벽강. 분단 이전에 세워졌던 낡은 다릿발을 무너뜨린 자리에 새로운 다릿발이 서 있었다. 이 다릿발은 한반도의 동쪽 동맥을 잇는 철길을 떠받칠 준비를 벌써 마친 상태였다. 북쪽의 동해선 연결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적벽강을 건너면 북쪽 민가들이 나타난다. 하얀 나무울타리로 둘러싸인 마을에는 집집마다 두어 그루의 감나무를 심어 놓았다. 눈이 녹으면서 질척질척해진 길 위로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가는 모습, 체제 강화를 주창하는 붉은 색의 각종 구호들이 눈에 띄었다. ‘북한’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새로 뚫린 육로로 가서 하룻밤 자고 올 수 있다. 그 사이에 우리의 발길은 길을 꼭꼭 다질 것이다. 그 걸음 하나하나가 통일을 앞당기는 발길이 될 것이다. (한겨레신문 2003년 2월 17일 수록)

처음 올린 날 2003년 2월 19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