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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대체복무 반대론 유감
송경아(소설가)
이미 해결된 역사적 의제들을 보면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그 의제들이 해결되는 과정에서는 항상 무수한 담론들이 충돌하며 격렬한 논란을 일으켰다. 종교개혁 파문은 유럽을 충격과 논란의 도가니에 몰아넣었고, 드레퓌스 논쟁은 당시 프랑스 지성계를 반으로 갈라놓았다고들 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여성참정권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사회가 시끄러웠겠는가 이런 의제들은 침묵하고 있던 사람들도 입을 열어 말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면서 숱한 입장의 차이, 이해와 오해와, 그 사이에서 새로 탄생하는 다른 함의들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또한 풍요롭게 한다.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도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이런 의제들 중 하나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용어는 양심에 의거해 병역 그 자체를 거부한다는 의미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정확히 들어맞는 용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정치적·종교적 확신에 의거한 집총(혹은 입대) 거부’나 `집총하지 않는 대체 복무 주장’ 쪽이 정확할 것이다. 병역특례 제도나 군의관, 법무관 제도 등 병역을 수행하는 대체 제도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그런 제도들에 아예 총을 잡지 않을 수 있는 형태의 대체 복무 제도도 포함시켜 병역을 수행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오해는 하지 말기를. 나는 어떤 형태로든 무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국군이 나의 생존을 포함해 국가의 안위를 지킨다고 믿고, 그에 대해 감사한다. 이런 저런 것 다 떠나서, 지금의 나보다 대여섯살, 많으면 열살 남짓 어린 남자애들이 3년 가까운 세월을 바쳐 `국군의 위용’을 이루어준다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안쓰럽고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정작 내가 대체 복무 반대자들에게 분노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대체 복무를 반대하는 남성들 중에서는 여성이 대체 복무제에 찬성하거나 군을 축소하자는 발언을 할 때 `철없는 것’ 취급을 하면서 “우리가 누구를 지켜주느라 군대에 갔다 왔는데” 하고 반응하는 이들이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대체 복무는 병역의 한 형태일 수 있으며, 병역은 반드시 한가지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 복무 반대의 거센 목소리 앞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대체 복무는 무화되어 버리며, 모든 병역은 오로지 한가지 형태이니 그 형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병역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성립해 버린다.
그리고 거기에 `여성’이라는 존재조건이 볼모로 잡힌다. 모든 여성은 단 한가지의 병역 형태에 찬성해야 마땅하고, 여성들이 여기에 침묵하면 여성의 존재 자체는 대체 복무제를 주장하는 소수자를 억압하기 위해 사용된다. 신체적으로 약한 여성(혹은 아동, 혹은 장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너희도 마땅히 너희 몫을 다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여성들이 반대 입장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면 “이런 은혜도 모르는 것들”이 된다. 여성은 어떻게 말하건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만으로 기존의 군 형태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되어버린다니, 이런 불공평한 게임이 어디 있는가
대체 복무를 반대하는 남성들이여, 당신들의 논리로 대체 복무를 반대해라. 단, 거기에 “우리는 여자들을 지켜주기 위해 군대에 갔다 왔다”는 볼멘소리는 넣지 말라. 나는 `여성’이라는 나의 존재조건이 사회적 소수자를 억압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거부한다. 물론 생존과 안위는 중요하다. 그러나 나의 생존을 지켜주는 조직이 있고 그 조직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내가 감사한다는 것과, 그 조직을 구성하는/했던/할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여성의 생존 의미를 전유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송경아/ 소설가 (한겨레신문 2002년 10월 3일 수록)
처음 올린 날 2002년 10월 12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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