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2002년 10월 8일 작가회의 주최로 열린 <인터넷문학 활성화 심포지엄> 방민호 교수의 발제문입니다.

인터넷 문학과 문학성이라는 문제

방 민 호 (평론가, 국민대 국문과 교수)

1. 인터넷과 한국문학의 변화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발행한 {2002년도 인터넷 문학 사이트 실태조사 보고서}는 [다음Daum], [프리챌freechal], [세이클럽sayclub] 등 417개 문학 사이트를 대상으로 문학 활동 양상을 관찰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 가운데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는 사이트의 성격과 형태 및 사이트의 장르 구분에 관한 것이었다.
먼저, 사이트의 성격과 형태에 관하여. 이들 사이트 가운데 비영리 사이트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은 인터넷 문학이 자본주의적 생산-유통-소비 메카니즘에 아직 확실히 포섭되어 있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이들 인터넷 문학이 전반적으로 아마추어리즘 상태에 머물고 있음을 시사함이기도 하다. 보고서는 사이트의 수준을 전문가 수준과 비전문가 수준으로 나누면서 그 비율을 1:2 정도로 보았는데 이는 인터넷 문학의 현 수준을 너무 높게 올려잡은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사이트 형태상에서 보면 커뮤니티와 친목 형태 사이트 및 개인 홈페이지가 대종을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웹진, 문학교육, 문학웹진, 출판사 운영 사이트는 각기 10%미만이었다. 후자의 사이트 형태는 오프라인 상의 문학제도가 온라인 상으로 확장, 이전해 간 것이므로 여기서도 역시 현재 인터넷 문학의 아마추어적 성격은 분명해진다.
커뮤니티, 친목형태 사이트, 개인 홈페이지 등은 기성의 제도화된 문학 장르와는 다른 형태의 여러 장르를 선보이고 있는데 이들은 아직 명확한 형태로 정착하지 못한 상태에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형태를 보여준다. 이들 가운데 어느 장르가 유행을 떠나 제도권내에 포섭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 유동하는 장르를 이른바 서브장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시와 소설이 이미 굳건하게 제도화된 장르라면 서브장르는 장르화하고 있거나 문학 외 목적이 다분히 개입된 장르일텐데, 보고서는 이를 무협, 팬터지, 로맨스, 유머, 추리, 야설, SF, 팬픽/야오이, 기타로 나누고 있다. 이 가운데 무협, 팬터지, 로맨스, 추리, SF 등은 온라인 문학 발생 오래 전에 이미 형성 발전해 온 것으로 인터넷과 이들 장르의 친화성 탓에 활성화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머지 장르와 "릴레이 글쓰기", 익명의 공동창작 등으로 외화된 하이퍼텍스트와 기타 무엇이라 아직 분명한 형태로 이름지을 수 없는 산문 형태는 인터넷의 부산물이다. 인터넷으로 인해 다수의 신종, 변종 서브장르가 출현함은 확실히 한국문학의 새로운 현상이다. 그러나 이것이 일부에서 예단하고 있듯 혁명적인 변화가 되겠는가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한국 근대문학사상 인터넷에 비견될만한 매체 혁명이 일어난 때는 근대문학 태동기였다. 당시 일본을 통해 서양식 문학개념에 자극 받은 지식인 가운데 각종 학보, 동인지, 신문, 잡지 등에 작품을 발표하는 이들이 생겨났고 이 과정은 이광수에 이르러 본격화되었다. 동인지로서는 {창조}, {폐허}, {백조} 등, 신문으로서는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잡지로서는 {개벽}, {조선문단}, {조선지광} 등으로 대변되는 이 흐름은 이광수를 비롯한 초창기 문학인을 배출한 산실이었다. 염상섭과 김동인 외에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여섯 작가와 시인(김상용, 김소월, 나도향, 정지용, 주요섭, 채만식 등)들이 대체로 이들 매체에 관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당시 이들 신매체와 경쟁을 벌인 것은 이른바 딱지본이라 이름 붙은 이야기책으로 문학성 가운데 특히 오락적 측면에 역점을 기울인 상업적 출판물이었다. 필자가 수집한 것들 가운데서도 {만고효녀 심청전}, {임진명기 논개 실기}, {홍보석}, {세종대왕 실기}, {相思淚}, {絶處逢生} 등에서 그 면모를 가늠할 수 있다. 대부분 고전소설의 재판이든가 멜로 연애물이었던 만큼 개인성과 개성의 원리 위에 구축되어야 할 근대적 국면을 리드해 갈 새로운 문학은 못 되었고 그 수준 또한 이어 내려온 이야기를 轉寫하거나 엇비슷한 전형적 모티프를 재탕, 삼탕하는 수준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매체 혁명과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과 그 뒤를 잇는 작가군의 출현은 가히 충격적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한갓 대중문학에 불과했던 소설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이 변화는 새로운 문학 향유층을 창출해냈다. 딱지본 독자들이 여전히 광범위하게 잔존해 있는 한편으로 전통적인 小說 개념에서 벗어나 思想(서구) 또는 경험(일본)으로서의 소설 개념이 형성되었다. 이른바 문단이라는 제도를 형성한 새로운 작가층은 세련된 글을 읽을 줄 아는 교육받은 대중을 독자층으로 이끌어 들였다. 이광수 {무정}의 의미는 신교육사상의 설파 같은 시대착오적인 사상을 유포한 데 있다기보다는 차라리 언문일치 문장을 수립하면서 교육받은 대중을 독자화했다는 점에서 찾아져야 하리라. 즉 그에 의해서 새로운 문학이 양식화되고 제도화되었다. 그로써 근대문학은 여전히 오락적인 기능을 담당한 딱지본류와 본격소설류로 분화되었고 1930년대에 들어서서 서구적 의미의 통속, 세태소설이 이 대열에 합류하면서 본격소설의 지위는 부동의 것이 되었다. 소설은 잡스럽고 하찮은 이야기라는 동양 전통의 관념에서 벗어나 작가가 자신의 사상과 경험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독특한 양식으로 재정립되었다. 때문에 독자 또한 분화되었고 그중 본격소설의 독자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사유하는 존재였다.
근년 들어 급증하고 있는 인터넷 문학은 그와 같은 독자 관념에 변화를 주었다. 독자는 이제 인터넷의 양방향성 덕분에 소비자일뿐더러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받았다. 스스로 작가가 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구비한 독자층이 형성됨에 따라 인터넷상의 아마추어 작가가 급증했는데, 그 대부분은 기존 제도화된 장르에 숙달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뿐더러 그들은 인터넷상에서 기존 장르와는 별다른 여러 글쓰기 형태를 창안, 고안해냈다. 이들은 인터넷 이전에 이미 장르화한 것들 외에는 장르 정착의 가능성이 미지수이고, 따라서 아마추어 상태의 글쓰기에 머물러 있다. 형식은 곧 내용이다. 장르가 유동적이고 문학성을 구비한 확고한 전범이 창조되지 못한 상태에서 인터넷 문학은 오프라인 상의 본격문학 장르를 인터넷상으로 옮겨오거나 오락성 짙은 변종, 잡종 형태의 글쓰기로 양적인 확장을 꾀하는 데 머물기 쉽다. 물론 그들 가운데는 천재도 섞여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와 같은 글쓰기 및 읽기가 범람한 결과 그 소설은 수년 동안 계속된 기대에도 불구하고 사상, 경험의 표백이라는 근대적 가치 평가에서 벗어나 잡스럽고 하찮은 글이라는 동양 전래의 관념을 정당화하는 양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오락적 쾌락적 요소가 일면적으로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일종의 퇴행이지만 그럼에도 사이버리즘으로 정당화될 소지도 있다. 그 요지는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어 인터넷 시대의 주류문학은 사이버 문학이 될 것이고 그 이념적 지표는 사이버리즘으로 요약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2. 가상공간과 사이버 문학의 가능성

사이버 문학에 관해 논의할 때 그 가장 큰 덕목으로 지적되곤 하는 것은 가상공간의 무제한적 상상 및 표현 가능성이다. 논자들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메타 리얼리티" 또는 "리얼리티의 확장"으로 언급되는 사이버 공간의 충만한 가능성은 그 문학을 이 디지털 시대를 감당해 갈 조류로 만들어 주는 주요한 요인이다. 사이버리즘이 "정보화 사회 문학 텍스트의 내적 외적 변화들을 주도해나가고 있는 전위적인 문학 실천운동을 지지해 주는 미학적인 가치 판단"이고, "정보화 사회를 예술적으로 사유하고자 하는 문학의 자기 갱신력, 즉 주체의 분열, 리얼리티의 확장, 소통구조의 변화 등 실천적 양상들을 계열화하고 인문학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와 정보화 사회 사이의 과도기적 상황을 이해하는 준거틀로 기능한다"면, 그 논리의 근저에 놓인 것은 기존의 리얼리티, 리얼리즘 개념과 다른 새로운 리얼리티, 리얼리즘의 개념이고 그 절대적 권능화이다.
그와 같은 사이버리즘의 맥락에서 보면 과거의 리얼리즘에서 추구한 리얼리티는 "현실세계를 묘사하거나 참조하여 텍스트 안에 재현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실천의 층위"로서 "리얼리티의 지시영역을 물리적인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 안에 두고 있는 미적인 층위" 개념으로서의 메타 리얼리티에 대립된다. 즉 과거의 리얼리즘은 반영론, 재현론에 토대를 둔 것으로 상상력을 억압, 제약한 나머지 왜소화시키는 약점을 내포한 것이 된다. 반면에 가상 공간 속에서 이제 인간은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어떤 존재로든 살아갈 수가 있다. 어떤 곳, 어떤 시대에서든 마음먹은 방식으로 기거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사이버 공간만이 제공해 줄 수 있는 새로운 현실의 속성이다.
이와 같은 판단은 사이버 문학의 리얼리티 확장성을 강조하는 대목에 연결된다. 가상공간에서 펼쳐지는 가상 현실은 시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현실을 가장 현실답게 묘사해줄 뿐더러 기존의 어떤 표현 매체도 제공하지 못했던 현실 체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즉 "디지털은 가장 생생하게(즉, 리얼하게) 세상을 재현하면서 동시에 현실 외부의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로써 사이버 문학은 그 매체의 사이버적 속성 탓에 /'/자동적/'/으로 문자 문학에 대해 우월한 리얼리즘을 구현한다. 이쯤 되면 인쇄 매체 소설이 미래 사회에서 점할 위치는 사라진다. 과거의 리얼리즘은 인쇄 매체 소설과 함께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차원의 리얼리즘, 가장 현실다운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러나 가장 비현실적인 것까지 현실처럼 느끼게 해줄 일거양득의 리얼리즘이 주류를 이루게 될 것이다. 따라서 "바로 이처럼 막강한 능력을 갖춘 사이버 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세계의 총체적 재현과 불가능한 것의 재현이라는 양 측면 모두에서 저급한 면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소설이 처한 위기의 진상"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기존의 소설이 리얼리즘을 정당화하는 양식이라면, 이때 리얼리즘은 곧 현실의 모사, 반영, 재현이라는 측면에서만 정의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만약 리얼리즘이 그처럼 형이상학적인 실재를 그것에 가깝게 그려내고자 하는 측면에서 정의된다면 그것은 곧 루카치류의 반영론적 리얼리즘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학사는 반영론적 리얼리즘과는 유형을 달리하는 이질적인 리얼리즘의 실험이 있어 왔음을 보여준다. 이때 리얼리즘은 형이상학적 실재로서의 현실에 대한 모사, 반영, 재현의 측면이 아니라, "인간과 그를 둘러싼 우주 사이의 관계를 그 살아 있는 순간에" "드러내고 또는 성취하는"것으로서의 리얼리즘, 사물의 드러남과 그것의 깨침이라는 시적 체험과 그 기억을 목표로 삼는 리얼리즘이다. 그것은 문자를 매체로 삼되 문자의 한계를 넘어 우주와 인간 주체의 시적인 일치를 추구하는 리얼리즘이며, 대상에 접근하는 과정이 곧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는 과정이 되고 대상을 깨치는 순간 자기 자신에 대한 깨침마저 함께 획득하게 되는 리얼리즘이다.이러한 리얼리즘은 대상과 주체를 관념적으로 확연히 분리한 가운데 대상에 대한 주체의 수동적 표현을 강조하는 리얼리즘과는 다른 것으로, 매체의 변화와 표현 가능성의 변화에 관계없이 의연히 문학예술이 추구해야 할 가치 개념으로 작용할 만하다. 이러한 리얼리즘이 있다면 그것은 상상과 환상을 배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얼마든지 그 힘을 빌어 자기를 실현하고자 할 것이다. 상상과 환상을 그것이 가능한 한도까지 밀어붙여 얻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 어디까지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가를 아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로써 인간은 우주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해갈 것이다.
이러한 리얼리즘은 사이버 문학의 가능성을 매체의 우월성으로 보증하고자 하는 관점을 반성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즉 사이버 문학이 아무리 현실을 그것에 가깝게 재현하게 된다 할지라도, 또 그것이 인간의 상상력을 기존 문자문학의 세계 너머 그 아무리 멀리 확장시킨다 해도, 문학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 앞에 남겨져 있게 되며, 그것은 결코 "자동적"이 아니라 값비싼 인간의 수고를 대가로 해서만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사이버 매체가 그 우월한 감각 매체적 특성을 동원해 현실을 아무리 그것에 가깝게 모사할 수 있게 해준다 해도 그것이 곧 인간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사이버 공간의 /'/무제한적/'/ 가능성은 그 메카니즘에 대한 낙천적 믿음보다는 그것을 문학의 새로운 조건으로 냉철하게 수용하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도 여전히 시도되어야 할 문학의 문제를 진지하게 사유함으로써 오히려 잘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런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문화의 리얼리티 가능성을 마찬가지로 높게 책정하는 관점에서 출발하되 그러한 리얼리티의 직접적 구현 가능성을 "구조화된 직접성"으로 포착하면서, "구조화된 직접성은 주체의 위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디지털 문화의 주체는 환상적 주체이다. 각 영역의 직접 민주주의, 쌍방향 교류, 무한 확장이 근본적으로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직접성은, 접시 위에 놓인 육회처럼, 환상 위에 놓인 리얼리티이다"라고 극히 비관적인 진단을 내리는 것 또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문학의 초월적 시공간을 이루는 가상공간이 근본적으로 사이버 메카니즘에 의해 작동되는 것이라 해도 그것이 그 문학언어의 가능성마저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것은 되지 못할 것이다. 문자 문학이 문자의 한계와 문학 생산-유통-소비 메카니즘에 포섭되어 있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것을 초월하여 날것으로서의 인간 그 자체에 육박하고자 했듯 사이버 문학 또한 그 부자유한 조건을 인간의 자유를 위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사이버 문학은 종이 문학이 지닌 많은 편리성을 모방하고 따라가서 마침내 초월하지 않으면 안되리라.
사이버 공간에 대한 사이버리즘적인 낙관이나, 디지털 문학의 수행자들은 진정한 배후 주체의 존재 위에서 백일몽을 꾸고 있을 뿐이라는 비관이나 모두 적절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두 태도가 모두 사이버 메카니즘이 창출하는 가상 공간 및 현실의 힘을 권능화하는 물신 숭배적 요소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중요한 것은 상황을 직시하고 급격히 변모해 가는 문학 환경에 냉철하게 대응하려는 자세일 것이다. 또 그렇다면 문자문학과 사이버 문학이 공존함은 진정한 문학적 사유 및 행위를 위한 조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비록 오늘의 한국문학에서는 문자 문학만이 /'/진정한/'/ 문학성의 담지자인 것처럼 보이고 사이버 문학은 아직 제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철부지처럼 보인다고 해서 내일도 그러리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먼 미래의 일이 되겠지만 문자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초월하여 사이버 매체의 가능성을 십분 발휘하면서도 그것을 상업적이거나 쾌락적인 목적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상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할 줄 아는 작가가 다수 출현한다면 문자문학은 오늘날의 무형문화재 취급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두 유형의 문학 매체가 공존하고 있는 지금 어떤 문학을 어디서 어떻게 펼칠 것인가는 전적으로 당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자유에는 언제나 응분의 책임이 따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기억해야 하리라. 모랄 감각의 빈핍성은 이광수 이래 한국근대문학의 전통적 약점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오늘의 사이버문학은 한국근대문학에 부과되어 온 사유와 성찰의 과제를 떠안을 정신적 준비를 마치지는 못한 듯하다. 사이버 매체와 그 문학에 탈근대적인 수식을 빌어 찬사를 보낼 수는 있겠으나 근대적인 과제를 자기 문제로 부담하는 일 없이 어떻게 근대를 벗어난 시공간을 열어나가는 담지자가 될 수 있겠는지?

3. 인터넷 사이트와 소설의 양상

인터넷 사이트 속의 소설 양상을 전체적으로 검토하기란 매우 어려운 작업인데 그럼에도 민족문학작가회의가 간행한 {보고서}가 특별히 언급한 사이트들을 중심으로 그동안 일별해 본 결과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적 양상이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첫째, 소설작품에 비해 시에서는 인터넷 문학상의 수준 저하 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시 창작의 경우에는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 공간을 향해 직접 키보드를 두드리는 방식의 글쓰기보다는 충분하리 만큼 詩想을 전개한 후 컴퓨터 앞에 앉아 내용을 정리하는 관습이 강한 탓이라고 하겠다. 물론 시의 경우에도 시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감상문이 범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일례로 Daum의 {좋은 글} 커뮤니티에 게시된, "광기어린"을 필명으로 쓰는 송형필의 작품들, [겨울], [원죄], [가을 그 천년의 기다림], [생명의 서], [이별, 헤어짐의 짧은 보고서], [悲, 애절함에 대하여],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등은 과도한 추상화, 보편화에 경도되어 있고 감상적 어조가 상투화되어 있다는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詩作 태도를 견지하는 점, 기본적인 시문장을 숙지하고 있는 점 등은 인상적이다.이는 임의로 선택한 일례일 뿐으로 인터넷 공간상에서의 시 장르의 자기 실현 가능성은 구술문학적 측면으로 말미암아 소설 장르에 비해 훨씬 커보이는 점이 있다. 반면에 소설의 경우에는 본격문학에 해당하는 "일반소설" 작품이라 해도 컴퓨터 문체라고 지칭할 수도 있는 스토리텔링 위주의 문장이 대종을 이루고 있고 주제 역시 단순, 저급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또한 경향적인 현상일 뿐이다. 소설 장르의 경우에도 전문화를 꾀한 수준 높은 사이트는 다수 산견된다.
둘째, 친목성 강한 커뮤니티 사이트일수록 장르 인식이 약화되면서 소설형태에 변형이 가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전차책 쇼핑몰 가운데 하나인 barobook.com에서 주관하고 있는 한국인터넷문학상 제2회를 보면 시, 일반소설, 무협소설, 추리소설, SF/판타지, 로맨스소설, 기타라는 장르 구별을 통해 응모작을 받고 있으며 그 때문에 응모작 역시 상당한 장르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영리적 목적이 희박하고 친목 커뮤니티의 자발적인 성격이 강할수록 변종적 형태의 서사물이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다량 발표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이들은 영화나 만화 등의 영향 내지 그들과의 교섭 결과 소설의 범주를 넘어 신종 장르에 접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Daum 커뮤니티의 하나인 {소설나라}에 실린 필명 "사랑합니다♡", 아이디 toyou833@hanmail.net의 소설 작품 [#!내 모든 것을 다 받쳐서...!#1]나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는거죠..?#]는 그 일례를 제공한다. 이중 [단편]이라는 장르명이 붙은 [#!내 모든 것을 다 받쳐서...!#1]는 17세의 카운슬러 지망생 지연과 그녀가 첫 의뢰인으로 만난 15세 여한의 우정을 그린 것으로, 여한은 집안의 우상이었던 형의 교통사고에 연루되어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소년으로 나타난다. 상담자로서 지연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던 여한이 마음을 열게 되고 그의 어머니 또한 여한에 대한 냉대를 반성하게 되고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이 깊어갈 즈음 지연이 죽음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는 상투적이라 할 만한데, 흥미로운 것은 그 서술법이다.

[단편] #! 내 모든 것을 다 받쳐서...!#1

딸칵
안녕? 난 한지연이야..^-^17살이야! 앞으로 널 가르치게 됐어..잘 부탁해!!!-지연
...........-여한
이건 그와 나의 첫만남이였다
혼자 떠들고, 혼자 이야기하고,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던...
^-^에이~ 인사도 안해주고 계속 째려보기만 하네~? 내가 맘에 안드니?-지연
........-여한
내 물음에 그 꼬마녀석은 묵묵 무답이였고, 차가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기만 했다
흐음...맘에 안들어도 할 수 없어~ 이미 선금을 받았으니까...한 달은 채워야 하거든~ 에헤^-^그러니까 인상 좀 쓰지마~-지연
.........-여한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흘러만 갔다
나에게 있어서 그 꼬마녀석은 너무나도 불쌍한 아이였고,
그 녀석에게 있어 난....뭐였을까...?
음...오늘은 뭐했니? 또 집안에만 있었어?-지연
.......-여한
밥은 먹었니? 내가 내 준 숙제는 다 했지?-지연
........-여한
그렇게 계속 난 혼자 말하고, 혼자 가르치고, 혼자 배워만 갔다
2주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사정을 알고 있는 난 그 아이에게 동정심만 강해져 갔다
(후략)

인용 부분은 [#!내 모든 것을 다 받쳐서...!#1]의 발단 부분이다. 이 장면을 통해서 쉽게 간취되는 것은 영화 및 만화와의 교섭 양상이다. 영화의 Scene에 해당하는 번호가 달려 있을 뿐더러 이야기의 전개는 완연히 만화 대본에 가깝고 따라서 대화 외에 여타 묘사 및 서술 부분은 시나리오나 희곡의 지문에 가깝게 제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주제 또한 지연과 여한의 우정과 지연의 죽음이라는 사춘기 순정만화 요소가 다분하다. 또 앞에 붙어 있는 [단편]이라는 말은 이 글의 저자가 자기 작품을 단편소설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그가 전통적인 종이문학을 통해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설 관념에는 별다른 영향을 받음 없이 사이버 공간 내에서 유통되는 새로운 소설 개념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환타지라 부를 수도 없고 로맨스 소설의 한 변종으로나 이해될 법한 이같은 작품들의 존재는 사이버 공간내에서 통용되고 있는 문학이 아직 충분한 제나름의 문학적 자질을 발휘하고 있지 못함을 반증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freechal 커뮤니티의 하나인 {문학인의 사랑방}에 게시된 작품 가운데 신태진 (princia)의 [단편] [신기루(蜃氣樓)]는 15세 소녀 미유와 40대 남성 윤재의 사랑 이야기로서 [#!내 모든 것을 다 받쳐서...!#1]의 경우와는 다른 국면을 보여준다. 윤재는 이른바 /'/사회의 낙오자/'/ 그룹에 속하는 사람으로 직업도 변변찮고 위자료를 받고 양육권을 박탈당한 채 이혼해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미유가 어느날 윤재의 집 앞에 쓰러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되어 이따금씩 미유가 윤재의 집에서 자고 가는 것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흔한 원조 교제 이야기로 전개되지 않는다. 미유와 윤재는 쉽게 육체적 관계로 나아가지 않고 대신에 윤재의 심리세계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뼈대가 된다. 그는 "이렇다할 비전도, 그렇다고 후퇴하여 도산할 걱정도 없는 평범한 중소기업" 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아내는 다른 남자를 만나 아이들을 데리고 가출하듯 나가버렸다. 뿐만 아니라 두 아이들까지도 만나지 말아달라고 요구한다. 윤재의 아내는 흔치 않은 이기적 인간형으로 나타난다. 아내로부터 선고를 받다시피한 그는 미유에게 위안을 받고 싶다는 기대감을 갖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날 미유는 윤재를 찾아오지 않는다. 그는 그녀가 영영 다시 오지 않으리라 직감하면서 미유가 자기를 찾아주는 신기루 같은 꿈을 꾼다. 이 작품의 결말은 그러던 어느날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온 윤재의 집 앞에 미유가 다시 쓰러진 채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어쩌면미유를 잃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이 가로등의 자상한 불빛처럼 소복이 피어올랐다"는 것이다. [신기루]는 문체가 단조롭고 스토리텔링의 한계를 한껏 뛰어넘지 못했으며 윤재와 미유 같은 존재에 관한 사회학적 시선의 개입이 불충분하다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윤재 아내의 성격, 윤재와 미유의 관계 양상 등을 통해 보건대 이 작품의 저자가 만만찮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개인정보상으로 보건대 1983년생인데 그렇다면 지금 19세의 예비작가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인터넷 문학이 "일반소설"을 위한 훌륭한 배양지와 서식지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해 준다.
셋째, 특정한 응모 및 심사제도가 있거나 좋은 작품을 선별해서 따로 저장, 게시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 사이트일수록 문학성 높은 작품이 많이 투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barobook.com에서 주관하는 제2회 인터넷문학상의 일반소설 당선작 {오발}(정호영)을 보면 스토리텔링 위주의 건조한 언문일치체에 머문 듯한 문장상의 약점이 없지 않으나 구성이 탄탄하고 사건의 진행을 묘사해 가는 솜씨 또한 뛰어나다. "사회의식이나 인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심사위원들의 평가에 이렇다하게 이의를 달 수 없을 만큼 문제의식도 진지한 면모가 있다. 소재도 사이버 문학에 대한 흔한 선입견과는 달리 군대 내의 오발 사건을 소재로 한 것으로 /'/비현실적/'/이라고 말하기 힘들만큼 /'/현실적/'/이다. www.poemq.or.kr에서 주관한 2002년 사이버 신춘문예 당선작인 [주벽(周壁) 안에서](김운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군대 안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 소품이기는 하되 제도적 삶과 예술적 가치 지향의 문제로 보편화해 볼 수 있는 문제의식을 함유한 작품인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 작품의 저자들이 대체로 연령층이 높다는 점이다. /'/사이버펜/'/ 같은 전문적인 사이트, /'/디지털문화예술 아카데미/'/, /'/서울사이버문예대학/'/ 같은 전문적인 문학교육 사이트는 수준 높은 작가를 양성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넷째, 사이버 공간은 자유롭고 풍요로운 실험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소재 중심적 문학, 즉 르뽀나 다큐멘타리 형식의 문학에 특히 호의적이다. 언문일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사이버 문체/'/나 사건 중심의 빠른 전개를 보이기 마련인 /'/사이버 플롯/'/은, 현재로서는, 내면성의 탐구로 특징화되는 전통적 소설보다는 소재적 가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설에 상대적으로 많은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위에서 언급했던 {오발}, [주벽 안에서] 같은 작품도 소재성 강한 작품이었고 {사이버펜cy-pen}에 게시된 긴 분량의 {한 탈북 여대생의 일기}는 실화에 토대를 두고 일기형식으로 씌어진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본래 {미래 연변, 그리고 우리문학 www.ckcla.com, 중국조선족사이버문학대광장}에 연재되었던 것을 {사이버펜}으로 옮긴 것으로, 사이버 공간이 얼마나 강력한 메시지 기능을 함유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 작품은 "탈북 여대생 서금희"와 그녀의 "어머니 오순자 여사의 인생 유전"을 소재로 삼았던 바, "연재된 후 사회적으로부터 오는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양상은 인터넷 문학의 해방적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 것으로 디지털문학에 대한 암울한 구조주의적 진단을 약화시키는 근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다섯째, 사이버 문학 공간의 가능성은 아직 그 실현의 초기 단계에 들어서 있을 뿐이다. 사이버 공간이 제공하는 가상현실은 감각의 물질화라는 측면에서 폭넓은 발전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 문자문학에서 감각은 언어가 제공하는 모노Mono적 환기력에 의해 간접적으로 획득되었으나 앞으로는 점점 더 다채로운 시청각적, 촉각적 통로를 통해 직접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단계로 진입해 갈 것이다. 그리고 이는 판타지, SF, 무협, 추리, 로맨스 소설의 상품으로서의 이윤 가치를 확연하게 높여줄 것이고 이들 문학에 확고한 제도성을 부여해 줄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이들 또한 전자책과 인터넷 문학의 형태로서보다는 종이책의 형태가 독자들의 접근도 용이할 뿐더러 이윤 가치 또한 높다. 아직까지는 사이버공간은 사이버 매체가 제공하는 풍요로운 문학적 가능성을 실현하는 장이라기보다는 문자문학의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예비 및 매개 역할과 창작을 향한 아마추어적 자발성을 실현해 가는 장으로 더 많은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인터넷 공간의 중요한 문학적 기능이다. 앞으로 아주 오랜 기간을 종이책과 전자책, 문자문학과 사이버문학은 공존 및 의존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는 지구상에 나무가 멸종되지 않는 한 영속적인 문학 조건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 중요한 것은 문자 문학과 사이버 문학 사이에 매체적 특성과 그 효과를 중심으로 한 /'/자동적/'/ 우위성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이 제공하는 새로운 문학적 자질에 관한 관심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도 문학성이라는 보편적 범주에 대한 관심 또한 긴절하게 유지하는 지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