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언어의 언어 매체적 특성과 전망


한 동 완 (서강대 국문과 교수)



1. 들어가기

"나는 접속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말은 개인 컴퓨터의 보급에 뒤이어 모뎀과 네트워크의 대대적인 보급이 이루어짐으로써 이른바 사이버 스페이스, 곧 가상 공간의 세계가 활짝 열린 현실을, 그리하여 전세대 전계층에 걸쳐 이 사이버 세계에 /'/접속/'/하는 현상이 곧 하루 일과의 시작이요 마무리가 된 현실을 과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제 /'/접속/'/은 흥행에 성공한 영화 제목에 그치는 게 아니다. 정보화 시대의 우리는 전자 메일과 채팅을 주고받음으로써 이루어지는 의사 소통 행위, 일상에서의 /'/나/'/나 회사를 알리는 홍보 행위, 문학 작품이나 강의록, 여행 일지 등을 비롯한 각종 일상에서의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 일상 세계의 상품을 팔고 사는 상거래 행위 등과 같이 일상적 세계에서의 행위를 연장하고 보완하기 위해 /'/접속/'/할 뿐만 아니라, 일상 세계 속의 /'/나/'/가 아니라 사이버 아이디나 아바타 등과 같이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갖는 자기 분신이,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자기 분신이 존재하고 생활하고 문화 행위를 하고 있는 사이버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접속/'/한다.
CU@K리그.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과 터키 간의 3·4위 결정전에서 /'/붉은 악마/'/가 선보인 카드섹션 구호이다. 한국민뿐만 아니라 전세계인들의 조명을 받은 이 구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아해한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통신 언어를 사용해오던 이들 한국인이든 아니든 간에 은 이 구호에서 등장한 @가 이메일 주소에 사용되는 것으로서 /'/at/'/의 뜻을 가지며, CU는 /'/see you/'/의 통신 언어적 준말임을 파악하는 데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K리그/'/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겠지만, 한국인들은 그것이 K-league 임을 또한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뜻은 "See You at K-league"이지만, 이를 그대로 카드섹션으로 표현하는 것과 /'/CU@K리그/';/라 표현하는 것의 장단점을 굳이 여기서 밝힐 필요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또한 /'/접속/'/을 함으로써 존재하는 인간을 확인한 셈이며, 이제 인터넷통신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사이버 스페이스에 머물러 있지 않고 카드섹션이라는 언어 행위를 통해, 그리고 방송 매체를 통해 극적으로 현실 공간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이처럼 일상 세계와는 또다른 사이버 세계의 구축, 그리고 이 구축된 사이버 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기존의 일상 언어에까지 침투해 들어오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적지 않게 우려의 눈으로 보고 있다. 통신 언어라 지칭되는 이 언어들이 일상 언어의 음운 현상 및 문법 질서를 파괴하고 있으며, 급기야 세대 간의 의사 소통을 단절시키고, 비속한 사이버 은어의 사용을 통한 언어 폭력으로 사회의 미풍 양속을 해치며, 인터넷 민주주의 시대에서 제대로 된 네티즌 여론의 형성을 방해하는 등과 같은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것이 그 우려의 내용들이다. 특히 학교 교육 현장에서의 우려는 심각한 모양이다. 학생들이 내는 과제물에도 /'/방가/'/(반가워요), /'/멜/'/(메일), /'/함/'/(한 번), /'/글구/'/(그리구), /'/∼하셔여/'/(하세요) 등과 같은 통신 언어가 심심찮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羅孝/'/(나 알지요) 등과 같이 한자나 특수문자 등을 마구 섞어 사용함으로써 /'/난수표/'/ 수준으로 해독을 불가능하게 하는 이른바 외계어가 등장하기도 함에 이르러서는 그 우려의 정도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이 글은 통신 언어의 이러한 일탈, 오염, 변질, 파괴 행위가 과연 언어 매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또는 통신 언어 매체의 어떤 속성에 의해 이런 행위가 가능한가를 살피고, 이런 일탈 행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전망적으로 고찰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를 위해서 우선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통신 언어의 성격과 대상을 분명히 하고 제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통신 언어의 성격을 구명함에 있어서 이 글에서 강조하는 것은 통신 언어라는 것이 "음성 언어 문자 언어 통신 언어"와 같은 언어 매체의 변화에 따른 발전적 단계의 하나라는 점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통신 언어를 음성 언어나 문자 언어의 단순한 부수물이나 대체물로 간주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과는 다른 새로운 매체를 통해 성립된 언어라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보지 않고는 통신 언어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이 음성이라는 매체를 언어 형식으로 채택함에 따라 음성 매체의 특성에 따라 언어의 성격이 규정되고, 또한 문자라는 매체를 언어 형식의 대체적 수단으로 채택함에 따라 음성 언어와는 다른 새로운 문자 언어의 성격이 생겨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통신 언어를 바라보아야만 통신 언어의 속성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 전망 또한 쉽게 예측될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이 형식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형식이 또한 내용의 질을 규정하고 제한한다는 명제를 새삼 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원시 시대 우리 인간이 몸짓의 단계에서 벗어나 음성을 언어 매체로 택함으로써 몸짓 언어와는 달리 어두운 밤과 같은 비가시적인 상황에서도 의사 소통이 가능하도록 그 영역을 넓혀 나가고 또한 인간의 손을 자유롭게 하여 노동을 하면서도 의사 소통이 가능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음성 매체적 속성에 따른 사용 환경의 확대일 것이다.
문자 언어의 등장 또한 그러하다. 음성 언어가 갖는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문자 언어가 등장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은 공간적 격리를 넘어서서, 그리고 시간적 간극을 넘어서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획기적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고, 이런 문자 언어의 등장은 곧 인류를 선사 시대의 기나긴 터널에서 벗어나 역사 시대로 접어들게 하는 인류사적 대전환을 가능하게 하였던 것이다. 물론 문자 언어란 것이 음성 언어의 전사를 위해 나타난 것이므로, 일차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음성 언어이며, 문자 언어는 이차적이며 부수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변함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자를 매체로 하여 새로이 성립된 문자 언어는 그 언어 매체적 성격이 음성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의 메카니즘이나 동력을 가지고 발전해 나간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문체법이나 표현법상의 문어적 특성이 바로 그 예인 것이며, 언어 행위의 하나인 문학에 있어서도 구술 문학과는 달리 문자 행위로만 가능한 기록 문학의 새로운 장르를 구축해 나가게 된 것도 그 예이다.
이렇게 보면 통신 언어라는 것이 문자 언어의 전사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전자 매체를 형식적 매체로 택함으로써 그 전자 매체적 속성에 따른 특징적 면모를 띠게 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다.
전자 매체의 하나인 무선호출기(속칭 /'/삐삐/'/)의 예를 들어보자. 무선호출기는 화면에 자신의 전화 번호를 보이게 하여 그 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어오게 하는 것이 그 주된 첫목적이었다. 그러나 점차 전화 번호 이외의 다른 숫자를 호출함으로써 의사 소통이 가능하도록 발전해 나간다. 무선호출기 내에서 가능한 숫자 매체를 이용하여 처음에는 전화번호 뒤에 "8282"와 같은 숫자를 넣음으로써, 그와 음상적으로 유사한 우리말 "빨리빨리" 전화를 걸어달라는 의사 전달을 한다. 우리말을 알고 그 음상을 알고 숫자의 음상을 연결시킬 때만이 의미 해독이 가능한 일종의 /'/난수표/'/와 같은 암호화이자 곧 언어 전달 행위인 것이다. 점차 이 행위는 발전하여 전화 번호 없이 숫자만으로 의사 소통한다. "12558282"는 "이리오오 빨리빨리"로, "79"는 /'/친구/'/로 해독해 내는 데 한국인이라면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숫자와 음성 언어의 음상을 연결시키는 것만으로는 의사 소통의 한계가 너무 크기에 점차 그 유사성이 멀어진 암호화를 통해 영역을 넓혀 나간다. 가령 "4040"이 "사랑사랑"을 뜻하는 암호로 사용되기도 하며, "5585"는 그 숫자의 음상이 /'/오오팔오/'/인데, 이것이 "보고파요"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85/'/는 /'/-파요/'/와 음상적 거리가 그리 멀지 않지만 /'/55/'/가 /'/보고/'/로 해석되는 것은 /'/보고/'/의 첫 자음들을 모두 제거해 버리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일상 언어의 음성적 탈락, 영어·일본어·한자음·순우리말의 뜻과 음상 가져오기 등등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온갖 /'/난수표/'/ 같은 것들이 무선호출기를 통해 오갔을 것이지만, 속칭 핸드폰의 등장은 이들을 무대 뒤로 밀어 버리게 된다. 핸드폰은 즉시 전화를 받을 수 있기도 하거니와, 핸드폰에서의 문자 메시지는 숫자뿐 아니라 한글, 영문, 특수문자를 비교적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무선호출기의 퇴출과 함께 그러한 옹색하고도 어쩌면 /'/처절한/'/ 숫자만에 의한 의사 소통 방식 역시 퇴출되고 만 것이다.
핸드폰에서의 일상 언어적 규범 일탈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중요한 것은 무선호출기에 비해 각종 문자로의 표현 영역이 확대되고 화면에 있어서도 그 창넓이가 커졌기에 이런 매체적 속성에 따라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의 성격이 규정되고 언어 일탈적 행위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언어 일탈의 단적인 예는 화면의 한 행에 입력 가능한 문자수와 그리고 화면 전체에 보이는 행수에 따라 웃는 모습, 사랑의 표현 등을 특수 문자나 숫자, 영문자를 이용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문자 언어의 단순한 전사를 넘어선 것이고, 통신 언어에서 사용되는 이모티콘 같은 성격을 갖는다 할 것이다.
이제 우리의 관심사인 통신 언어의 문제로 돌아가자. 우리가 관심 대상으로 하는 통신 언어는 피씨를 매체로 하여 이루어지는 언어로서, 피씨 매체에 따른 언어적 특성을 가질 것으로 쉽게 예측이 될 것이다. 그러나 피씨가 인터넷망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특징적 면모는 복잡하게 전개되지 않았을 것이며 오늘날 우리의 우려를 낳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인터넷망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전세대적으로 사이버 스페이스가 성립되고 이 스페이스에서 온갖 의사 소통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통신 언어를 인터넷망을 통해 의사 소통되는 언어로 그 대상을 한정하고 논의를 전개하기로 하겠다. 물론 앞서 든 무선호출기나 핸드폰을 통한 의사 소통에 사용되는 언어, 그리고 무전기에서 사용되는 모르스 부호 같은 것도 광의의 통신 언어이기는 하겠지만, 질과 양의 면에서 인터넷 통신 언어에 비할 바 못되므로, 인터넷 통신 언어를 협의의 통신 언어로 잡고 논의를 전개하겠다.
인터넷 통신에서 사용되는 언어 가운데 운용자가 웹페이지로 올리는 운용자 언어나 전자메일 작성시 사용되는 언어, 게시판·방명록 등에 사용되는 게시판 언어를 한 축으로 하고, 대화방에서 채팅할 때 사용되는 대화방 언어를 다른 한 축으로 나눈다면 두 언어의 성격은 판이한 양상을 띠고 전개된다. 전자가 문자 언어의 전사에 아주 가까운 것이라면, 후자는 그와는 판이한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물론 자판을 통해 쉽게 입력되는 특수 문자의 빈번한 사용, 이모티콘의 사용, 대화방 언어에서 사용되는 준말 등이 운용자 언어나 게시판 언어에 사용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이들은 대화방 언어에서 우선 발생하여 그 사용이 확산된 것이다. 이러한 확산은 심지어는 문자 언어로 쓰여진 편지나 과제물에까지 일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발생적 측면에서 볼 때, 통신 언어의 특징적 양상들은 거의 대부분 대화방 언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제 우리의 논의는 인터넷 통신 언어 가운데서도 대화방 통신 언어에 초점을 맞춰 진행됨이 온당할 것이다.


2. 통신 언어의 언어 매체적 특성

통신 언어의 매체적 특성은 음성 언어의 특성과 문자 언어의 특성을 동시에 갖는다는 데 있다. 이를 /'/양언어 매체적 특성/'/이라 하자. 통신 언어는 기본적으로 자판을 통해 문자 등의 시각적 부호를 입력하여 의사 소통을 한다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문자 언어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문자 언어가 시간적·공간적 간극을 통해, 그리고 송신자에서 수신자에로의 일방향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본령으로 하는 것과는 달리, 채팅 통신 언어는 동시성과 양방향성을 갖는다. 곧 채팅 통신 언어는 문자 등의 시각적 기호를 타이핑을 해서 전달하는 것이지만, 송·수신자가 실시간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송신자가 이내 수신자가 되고 수신자가 이내 송신자가 되는 동시성과 양방향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 동시성과 양방향성은 채팅 통신 언어가 근본적으로는 문자 매체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또한 음성 매체의 속성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보면 채팅 통신 언어는 기형적인 양언어 매체적 특성을 갖는다 할 것이다. 타이핑을 통한 문자 입력은 아무리 빨라도 음성의 산출에 미치지 못한다. 음성을 산출하는 속도로 타이핑을 한다는 것은 범인(凡人)인 경우 거의 힘들다 할 것이다. 이처럼 문자로 의사 소통을 하면서도 수신자가 동시에 존재함으로써 음성 산출과 흡사하게 신속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기형성/'/이 있는 것이다. 문자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음성의 속도로, 그리고 음성으로 대화하는 것처럼 언어 산출을 해야 하는 기형성 말이다.
흔히들 통신 언어에는 맞춤법에 어긋난 표기, 그 대표적인 예로 연철 표기가 빈번하게 나와 언어 규범을 파괴하고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런 규범 파괴는 통신 언어가 겉으로는 문자 언어의 모습을 띠지만 내적으로는 음성 언어적 속성을 가져야 하는, 이른바 양언어 매체적인 기형성에서 자연스럽게 귀결된 것이다. 문자 언어란 것이 음성 언어의 전사라고 하지만 음성 언어에서 발음되는 대로 표기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일거, 잉는다, 일꼬, 익찌]라 발음하더라도 "읽어, 읽는다, 읽고, 읽지"라 표기한다. 그런데 통신 언어는 문자 언어처럼 실제 발음과 동떨어진 표기의 모습을 띠기도 하지만, 때로는 "책 일거써"의 예에서처럼 음성 언어의 실제 발음에 근사하게 문자 표기되기도 한다. 맞춤법 규정에 따라 "책 읽었어"라고 분철 표기하는 것에 비하면 실제로 /'/ㅇ/'/을 두 번 타이핑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표기하더라도 대화방에서는 의미 해독에 있어서 별 문제가 없다. "기분 마니 조아"처럼 맞춤법과는 달리 ㅎ탈락과 연철이 일어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제 발음상 /'/많이/'/는 /'/마니/'/로, 좋아/'/는 /'/조아/'/로 발음되므로 이렇게 표기한 것이며 그 의미 해독에서도 별 문제가 없다. 대화방에서 사용된 언어들을 문서로 저장해서 나중에 볼 때는 다소 해독이 어렵겠지만, 실시간 채팅을 할 경우는 의미 해독에 거의 문제가 없다.
심지어는 음성 언어의 표준 규범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음운 변동까지 표기에 반영하기도 한다. 흔히 통신언어의 대표적인 규범 일탈의 예로 지적되는 "방가"는 표준 발음에서 인정되지 않는 자음 동화가 그대로 문자 표기되어 사용된 예이다. /'/방가/'/의 경우 /'/ㄱ/'/ 앞에서 /'/ㄴ/'/이 /'/ㅇ/'/[ ]으로 자음 동화된 것을 반영한 것이다. 물론 우리말의 표준 발음에서는 인정되는 것이 아니지만, 영어의 /'/concord/'/에서 [k] 음 앞의 [n]이 [ ]로 동화 발음되는 것과 같은 현상인 것이다. /'/했습니다/'/를 /'/했슴다/'/로 표기하는 것도 경상 방언에서의 /'/했심더/'/에서 일어나는 음운 현상과 비슷한 현상을 표기에 반영한 것이다. /'/ㅂ/'/이 /'/니/'/ 앞에서 /'/ㅁ/'/으로 자음 동화된 이후, /'/니/'/가 탈락된 것이다. 이밖에 숱한 연철 표기나 동화 표기 등이 거의 대부분 자연 음성 언어에서 일어난 것을 반영한 것이라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함 해 볼까"에서의 "함", "아님 말고"에서의 /'/아님/'/, "친구 땜에"에서의 /'/땜/'/, "첨 봤어"에서의 /'/첨/'/ 등과 같이 2음절 이상의 한 단어에서 음절이 줄어들어 표기되는 현상 또한 통신 언어에서 흔히 확인되는데, 이 역시 이미 음성 언어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옮겨 놓은 것이다. 통신 언어의 영향으로 음성 언어에서 축약이 일어난, 그 역의 방향은 결코 아니다. 음성 언어에서는 그렇게 발음되더라도 문자 언어상으로는 /'/한 번, 아니면, 때문, 처음/'/ 등과 같이 각기 표기되던 것이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의 특성을 함께 갖는 통신 언어에서 이런 표기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단어 층위에서 합성어나 두 단어가 축약되는 것 또한 통신 언어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즐팅/'/, /'/비번/'/, /'/남친/'/, /'/개빙모/'/ 등은 각각 /'/즐거운 채팅/'/, /'/비밀 번호/'/, /'/남자 친구/'/, /'/개강을 빙자한 모임/'/이 축약되어 형성된 형태들이다. 이 역시 일상의 음성 언어에서 빈번한 현상이다. /'/노찾사/'/니, /'/한대협/'/이니 하는 말들이 이미 사용되고 있고, /'/종도/'/와 같은 말이 있다. /'/종도/'/는 /'/종합도서관/'/의 준말인데, /'/종합도서관/'/이 없는 대학 사회에서는 사용되지도 않고 해독되기 도 어려울 것이다. 이 말을 필자는 이웃한 대학에 강의 나갈 때 수강생으로부터 처음 들었었다. 필자가 소속된 대학은 /'/종도/'/가 없기 때문에 이 말을 이해하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렸고, 끝내 이해를 하지 못하고 메타 언어적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종도가 무엇이냐?"고. 그만큼 이런 준말은 경제성에 의해 산출된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한 집단 사회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은어적인 성격을 갖는다. 은어는 언어의 사회성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통신 언어란 것이 음성 언어가 가지고 있는 경제성과 사회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쉽게 확인한다.
이제 자연스럽게 통신 언어가 갖는 은어에 대한 문제로 넘어가자. 통신 언어에서는 은어나 비속어가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서 문제라고들 한다. 그런데 이 현상은 문자 언어에 비해 음성 언어에서 은어나 비속어가 양적으로 과다하게 나타나는 것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통신 언어의 은어로 기술된 것들을 보면, 상당수가 음성 언어에서 이미 일어난 것들이다. /'/노땅/'/, /'/중딩/'/, /'/고딩/'/, /'/날라리/'/, /'/범생/'/ 등이 그런 예들이다. 비속어인 /'/졸라(매우, 잘)/'/ 또한 그러하다. 이들이 음성 언어에서는 일어나더라도 문자 언어에서는 쉽사리 표기되어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시되지 않던 것이 통신 언어에서는 그 음성 언어적인 것이 그대로 표기됨에 따라 통신 언어의 한 문제점으로 노출된 것이라는 것이다.
다른 이유로는 통신 언어가 기성 세대보다는 미성 세대에서 더 먼저 시작되었고, 그리고 더 많이 향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문자 언어는 지배층의 독점적 향유로 출발한 것인 데 반해 통신 언어는 미성 세대에서 출발한 것이며, 그만큼 그들의 특징적 언어가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성 세대는 기성 세대에 비해 은어나 비속어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중고등학생에게만 통용되는 은어가 존재하고 있다는 데 이르러서는 더 이상의 언급이 불필요할 것이다.
통신 언어에 나타나는 현상으로는 이것 이외에도 여럿 있겠지만, 이 정도 언급해 둔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런 현상들이 결코 통신 언어 고유의 특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신 언어가 문자를 위주로 한 시각적 기호로 의사 소통을 하지만, 음성 언어적 환경과 같은 동시성, 양방향성을 가지므로 일상 음성 언어에서의 현상들이 표기에 반영되어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통신 언어는 자판의 속도라는 한계 때문에 일상의 음성 언어보다는 훨씬 과도한 축약과 탈락이 일어나며, 더욱 심한 음절 축약 현상이 일어남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과도의, 과잉의 현상들은 양적인 문제일 것이다. 결국 음성 언어의 특성이 갖는 경제성과 사회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음성 언어의 논리나 기제로는 설명할 수 없는 통신 언어의 질적인 현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판을 최대한 활용하여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이런 현상들은 음성 언어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며, 또한 음성 언어로 쉽게 환치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통신 언어의 특질적 현상이라 할 만하다. 이런 현상의 한 극단은 /'/ㅎ2/'/(인사말), /'/ㅎㅎ/'/(웃음), /'/ㅋㅋ/'/ 등과 같이 한글이나 숫자로 표기하는 것들이다. 이 역시 경제성의 발로이기는 하지만, 음성 언어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이다. 물론 이런 정도는 음성 언어와의 유연성(有緣性)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ㅎ2/'/는 /'/하이/'/, /'/ㅎㅎ/'/는 /'/하하/'/나 /'/호호/'/, /'/ㅋㅋ/'/는 /'/크크/'/에서 온 것임을 충분히 미루어 짐작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른바 이모티콘은 문자 그 자체의 형상으로 뜻을 전달하는 것들로서 음성 언어와의 유연성이 완전히 단절된 것이다. /'/^-^/'/는 웃는 모습을, /'/T_T/'/는 우는 모습을, /'/:X/'/는 화난 모습을 형상화한 것들이다. 이것들 역시 경제성의 발로이기는 하지만, 얼굴의 표정과 유사한 문자의 형상을 가져와 조합한다는 점에서 음성 언어로의 환치는 아예 불가능하다. 문자란 게 음성을 대신하는 것이라지만, 이 경우는 음성과의 유연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문자 그 자체의 형상만을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체법적 측면에서 통신 언어의 특질적 현상이 지적될 수 있다. /'/뭐하여?/'/, /'/오늘 학교에 갔음/'/ 등에서 보는 /'/하여/'/체나 /'/함/'/체와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한국어는 경어법이 매우 발달된 언어다. 특히 면전에서의 대화에서는 상대방의 신분에 따라 경어법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통신 언어 역시 실시간으로 양방향성을 갖고 진행되는 대화의 성격을 가지므로 경어법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통신 언어는 공간의 측면에서는 격리되어 이루어지므로 적절한 경어법을 찾아서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통신의 익명성 때문에 상대방의 신분 따위를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앞서 든 것과 같은 다소 중립적이고 어정쩡한 경어법의 문체가 통신 언어에 확산되어 사용되는데, 이것 역시 음성 언어에서 출발된 것이 아닌 통신 언어의 한 특질이라 할 만하다.


3. 통신 언어의 향후 전망

앞에서 우리는 통신 언어에서 보이는 언어 규범의 일탈 현상을 /'/양언어매체적 특성을 공유하는 기형성에 따른 것/'/과 /'/전자 매체적 속성에 따른 것/'/으로 나누어 설명을 시도했다. 향후 이러한 일탈 현상은 더욱 확산되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현상들이 언어의 경제성이나 사회성에 바탕을 두는 것이니만큼 그 확산을 언어외적인 물리적 논리로 쉽게 막기는 어려울 듯하다. 적어도 그 의미 해독이 가능한 한 이런 과도 동화나 탈락은 향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통신 언어의 매체적 속성에 따른 특질적 현상으로 간주했던 /'/ㅎ2/'/(Hi)와 같은 문자 조합형이나 이모티콘 같은 것 또한 언어 경제성에 따른 것이므로 향후 더욱 발전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화방에서 이런 표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불편할 따름이다. 대화방을 폐쇄시키지 않는 한, 대화방의 존재 이유가 있는 한, 이런 간결 압축된 대화방 언어는 향후 계속되며 점차 그 도를 더욱 심화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마치 끊임 없이 변화하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음성 언어가 개신(改新)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데 반해 문자 언어는 보수적인 상태로 남아 있게 되어 문자 언어와 음성 언어의 괴리가 심각해지듯이, 통신 언어와 비통신 언어 간의 간극은 더욱 멀어지는 방향으로 진전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 극단적인 예로 외계어와 같은 것이 이미 등장하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 언어는 그 자기 정화력을 발휘하여 극단적인 일탈을 저지할 것이라고 기대된다. 통신 언어 역시 언어의 한 부류이고 그러기에 송신자와 수신자 간의 의사 소통을 전제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 의사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극단으로까지는 확산되지 않을 것이다. 앞서 든 외계어가 대화방 통신 언어에서 사용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극단적인 자기 과시적 표현으로서 게시판 언어에 더욱 빈번히 사용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대화방에서 이런 외계어는 퇴출 당하고 말 것이다. 수신자가 이해 못하는 한 더 이상 언어 기호로 정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채팅시 요구되는 신속성을 놓고 보더라도 외계어는 과도기적 일시적 현상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으리라 전망된다. 외계어가 아닌 다른 과도의, 과잉의 일탈 역시 의사 소통이 가능한 전제 하에서만 대화방에서 사용될 것이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통신 언어에 대한 기왕의 우려는 기우에 가깝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정화를 통해 과잉 일탈적 표기는 배제된다 할지라도 기왕의 우려가 말끔히 해소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통신 언어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대화방에 머물지 않고 게시판 언어나 운용자 언어, 심지어는 일상적인 문자 언어에로 침투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이런 침투 역시 자기 정화의 여과 장치를 통해 걸러질 것은 걸러지고 통과될 것은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잉의, 과도의 표현이 주로 미성 세대에서 제한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고 점차 맞춤법을 알고 있는 기성 세대가 대화방에로의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잉 표현의 진입 가능성은 매우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참신하고 의사 소통이 되는 한에서 극히 일부분만 진입될 것이다. 문자 언어가 음성 언어의 단순한 전사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특성을 가지며 그리고 그런 특성이 음성 언어에로도 부분적이기는 하되 침투되기도 하듯이, 통신 언어의 특질적 현상이 문자 언어로도 일부 침투되는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부정적인 눈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오히려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그만큼 우리 언어 생활이 풍부하게 된 것으로 간주함이 온당하다. 이런 면에서 영어권 최고 권위의 옥스퍼드 사전이 B4(before), HAND(Have a Nice Day) 등과 같은 통신 언어를 표제 항목으로 등재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그럼 정작 우리가 우려해야 할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유소년층이 올바른 맞춤법과 문법 질서를 모르는 상태에서 대화방에 접속하여 통신 언어를 접하고 배우고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비단 유소년층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일부 기성 세대 역시 맞춤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대화방에 참여함으로써 자신들의 언어 표현에 어떤 잘잘못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들이 범하는 문법 질서의 파괴 및 일탈 행위는 맞춤법을 이미 익힌 이들이 꾀하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미 맞춤법을 익힌 이들은 우리말과 글의 정상적 질서를 이해한 상태에서 이에 대한 일탈을 시도하며, 일상의 언어 생활에 돌아와서는 정상적 언어 행위로 대개 돌아간다. 일상 언어의 틀을 빙산의 밑둥이처럼 근저로 하면서 통신 언어 매체의 속성상 불가피하게 일상 언어로부터의 일탈을 꾀하는 것이므로 일상 언어적 규범의 파괴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통신 언어의 문법적 일탈이나 파괴에 대한 우리의 우려는 상당 부분 기우이며, 다만 맞춤법에 능통하지 않은 유소년층의 통신 언어는 향후 우리말과 글의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암적 요소라고 정리될 수 있다. 그러기에 이 기회에 제안하는 것은 각급 학교에서 맞춤법 교육과 글쓰기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글맞춤법이 제정된 지 이제 무려 70년이 다 된 지금, 우리의 경우도 영어만큼은 아니지만 음성과 문자의 괴리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기성 세대들은 음성과 문자의 괴리가 심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맞춤법을 배웠고, 게다가 한자를 배운 세대이다. 그러기에 한 예를 들어, /'/에/'/와 /'/애/'/의 구별 표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 과거의 기성 세대들은 국민학교 때 받아쓰기 몇 번 해 보고 맞춤법의 대부분을 통달할 수 있었다. 몇 예외와 띄어쓰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유소년층은 그렇지 못하다. 듣고 말할 때는 /'/애/'/와 /'/에/'/의 구별을 못하면서 이를 구별하여 써야 한다. /'/대리미/'/라 듣고 말하면서 /'/다리미/'/라고 써야 한다. /'/바램/'/이라고 듣고 말하면서 /'/바람/'/이라고 써야 한다. 그러기에 현재의 유소년층들에게는 기성 세대들이 한글맞춤법을 익히는 데 소요한 시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훨썬 더 많은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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