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과 강진: 1930년대 시의 지역성과 일반성

조영복(광운대 교수)





1.

김영랑 연구의 특징적인 점은 그가 시론이나 기타 잡문을 별로 남기지 않았다는 것, 시문학파와의 관계를 통한 연구가 중심이 돼 이들 동인지(잡지)에 참여한 시인들과 분리해 그의 개별적 성격을 논하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시 자체의 평가보다는 전기적 사실을 바탕으로 인간 김영랑의 평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는 것 등이다.
본고는 이 같은 기존의 평가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다음의 사항을 확인하고자 한다. 첫째, 박열과의 교유, 둘째 민족시인이라는 평가, 셋째, 지역 문인적 존재로서의 의의 등이 그것이다.
김영랑은 과작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고 여러 잡지에 두루 시를 발표한 것이 아니라 <시문학>, <문학> 등을 중심으로 한 동인지 성격의 잡지에 글을 발표했다. 그가 시론이나 기타 잡문을 별반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영랑 시의 다양한 평가와 해석의 가능성을 제기한 경우도 있지만, 김영랑에 대한 평가는 시문학파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즉 /'/순수시파/'/라는 탈이념적 성격의 문예 동인지를 카프와의 대척점에 놓고 보는 방식이 그것이다. 1931년에서 1935년경에 이르는 카프의 1, 2차 검거와 해산이라는 정황 속에서 창간(1930.3)된 시문학 동인들의 이념적 공고함과 반 카프 기류가 어떤 정신적인 일체감으로 형성되었는가 하는 점은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이러한 까닭에 반카프적인 이념의 공동체로서의 시문학파 위에 김영랑을 위치시킨다는 것은 난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김영랑 시의 이해에는 시문학파 동인이자 막역지우인 박용철의 시론이나 일기초, 서신의 기록 들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낭만주의 유미주의 시론과 예이츠 키츠 등의 시와 김영랑 시의 유사성 연구나 영향 연구가 이들의 서신이나 일기초의 기록으로 밝혀지고 논의되었다. [두견][묘비명] 등을 키츠와의 영향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시의 어감이나 음악성에 대한 관심, 순수 서정의 경향 등은 시문학파 시인들에게 나타나는 것인데 김영랑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박용철, 이하윤 등 이들이 /'/해외문학파/'/로서 활동했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 외국 시인들과의 영향 관계 하에서 김영랑을 비교하는 논법은 다소 문제가 있다. 1930년대 이데올로기적 지형학이나 시문학파와의 관계 속에 놓인 김영랑 연구는 김영랑의 시 자체의 토양과 특질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그것은 김영랑의 독특한 사회적 계층적 성격과 그의 출신지역과의 상관성을 놓치고 있다는 뜻이다.

2.

시문학파와의 관련성을 일단 떠나면 민족주의적 혹은 보수주의적 이념인으로서의 김영랑이 남는다. 이는 김영랑의 전기적 사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종의 /'/역사, 전기적 연구 방법/'/인 이 같은 관점은 시 그 자체보다는 시인 김영랑의 평가에 가치가 부여된다. 그를 민족주의 시인으로 평가하는 경우와 현실도피적인(수용적인) 시인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후자는, 해방 전의 /'/관조와 취미의 삶/'/으로부터 /'/토착 지주층이 지닌 생존의 논리/'/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다고 평가하는 경우이다.
전자는, /'/민족주의자로서의 면모/'/가 김영랑 평가의 주요 척도가 되는 경우이다. 김영랑의 전기적 사실에서 강조된 것은, 3.1독립운동 참가와 투옥, 일본에서의 박열과의 하숙 경험, 창씨개명, 신사참배 거부 등 이른바 /'/민족주의적인 행동과 실천/'/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민족시인/'/으로서의 김영랑을 평가하게 된 중요한 요인이다. 그런데 이 같은 논점은 몇 가지 보완을 필요로 한다. 특히 실증적인 자료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김영랑이 박열과 같은 하숙을 했다는 기록은 이헌구가 증언한 바 있다. 이헌구는 휘문의숙 시절의 김영랑의 선후배 관계와 동급생 관계를 열거한 다음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이러한 학원의 많은 문학 청소년들 틈에 끼어 영랑은 문학의 꿈나라를 몽상하기도 했지만 그가 같은 하숙에서 친하게 지내는 한 혁명청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유명한 박열 씨였다. 미래의 시인 영랑과 미래의 혁명가 박열은 31운동을 앞둔 일제의 무단 정치 하에서 억누를 수 없는 민족적 의분을 느껴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기미년 31운동이 젊은 남녀학도의 피 끓는 애국 정열 속에서 폭발되었을 때 이 두 청년이라기보다는 17세의 소년인 영랑과 박열은 이 도가니 속에 용감히 휩쓸려 들어 잠시 영어의 몸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영랑의 가슴 속에 흐르는 끝없는 강물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그의 감정과 사상 속에 깊이 뿌리 박혀졌든 것이다.

이헌구의 기록은, 일본 동경에서의 하숙 경험이 아닌 경성에서의 하숙 생활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후대의 연구자들은 대체로 박열과 김영랑의 만남을 1920년 이후 김영랑이 동경 아오야마 학원 중학부에 다니던 시절의 일로 기록하고 있다. 즉 동경 정칙영어학교에 다니던 박열과 아오야마(청산)학원 시절의 김영랑의 하숙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명치35년(1902) 음력 2월 3일생인 박열이 함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보통고등학교에 입학한 해는 대정 5년(1916)이었다. 그가 친구 몇과 하숙했던 곳은 /'/안격동/'/이었다고 되어 있다. 재판 기록으로 보아서는 같이 하숙했던 친구들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숙이기보다는 자취 생활이었다고 보는 점이 합당할 듯하다. 생계 문제와 학자금 곤란 등을 겪던 박열이 3·1운동에 가담한 뒤 감시와 고문이 국내보다 덜했던 일본으로 도일한 것은 1919년 10월경이었다. 박열은 동경에서 신문배달원, 식당종업원, 막노동꾼 등을 전전하며 무정부주의 사상에 심취하고 사상운동단체에 적극 가담하게 된다.
한 연보에 의하면, 김영랑이 경성으로 유학해 중앙기독청년회관에서 영어를 공부한 것은 그의 나이 14세 때인 1916년이며 휘문의숙에 들어 간 것은 1917년이다. 1919년 3·1운동시 그는 경성에서 강진으로 내려가 31운동에 참가한 바 있다. 김영랑의 독립운동 기록은 독립운동사와 강진군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강진 3·1운동은 1차(3월 24일 장날)와 2차(4월 하순)으로 나뉘어 계획된 바 있는데, 김영랑은 김안식, 양경천 등과 함께 1진에 소속되어 대중들을 규합하고 접촉하는 대중적 업무를 담당하는 일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작업 장소가 노출되면서 만세 시위가 진행되기도 전인 3월 20일 발각되어 이들 참가자 대부분은 1년 2개월부터 5개월까지 형을 선고받게 된다. 대구 형무소에서 6개월간 복역했다는 기록은 이 때의 일로 보인다. 김영랑의 도일은 이 이후에 이루어지는데, 그가 청산학원 중학부에 입학한 것은 앞에서 밝혔듯 1920년이다.
이헌구의 기록에 근거한다면, 김영랑과 박열의 만남은 그들이 경성에 있던 1916년에서 1919년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실질적으로 호남의 지주 아들이었던 김영랑과 고학생 박열이 같은 하숙집(방)에서 생활했을 개연성은 희박해 보인다. 당시 유학생들의 일본 유학생활은 상당히 편차가 심했다. 호남 대지주였던 김영랑과 밑바닥 노동자 생활을 했던 박열의 생활환경은 그 차이가 매우 심한 편이다.

그들(고학생들)은 보통 노동자와 같이 임금을 취득할 목적으로 오로지 노동에만 종사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여가를 이용해서 통학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므로, 고용주들도 이를 환영하지 않는다.고학생의 반수 이상은 신문배달, 제반 행상을 한다. 신문 배달은 월수 24엔 내지 30엔으로 식비 등을 공제하면 남는 것 별로 없어 통학자는 월수금에도 차질이 있는 상황이다. 또 낫토(納豆), 인삼, 엿 등의 행상은 더욱 심해, 하루의 매상액이 1엔 내지 1엔 50전으로서 이익을 3할에서 5할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기타 인부, 토공, 직공 등은 이와 거의 크게 차이가 없다. 이들 고학생은 주로 郡지역에 방만 빌려, 부근의 공중식당 등에서 1식에 10전 내지 15전의 식사를 하고, 식비가 없어 한두 끼로 넘기는 날이 많은 모양이다. 이렇게 생활이 곤란하니 입학하기가 어렵고 입학하였다 해도 야학이나 통학에 편리한 학교를 선택한 것이 당연하다.

재일한인 학생들은 대체로 부르조아 부유층의 자제, 조선총독부 관비 유학생 및 종교 단체 후원 유학생, 고학생 등으로 구성되었다. 박열은 신문배달원, 식당종업원을 하며 이미 사회주의운동 단체에 가담해 활동을 하고 있었다. 김영랑이 남긴 증언도 하나의 참조가 될 수 있다. 즉 그가 동경에서 방랑생활을 하던 때 감상주의와 문약을 비난하는 강경한 글을 박용철이 보내왔다는 것, 헤겔주의자연 하던 박용철이 주의자들과의 접촉이 심했다든가 하는 언급에서 김영랑이 사회주의 물결에서 일정하게 거리를 견지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시부야 지역의 창산학원과 간다 지역에 있던 정칙영어학교의 거리는 지리상으로도 매우 먼 편이다. 박열과 김영랑의 만남이 언제 이루어졌는가를 논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 아니다. 문제는 박열과의 만남을 강조하는 논법 그 자체이다. 박열과의 만남을 강조하는 논법은 /'/민족주의 시인/'/으로서 김영랑을 부각하려는 의도와 분리되기 어렵다.
김영랑을 사회주의나 민족주의 운동과 어떻게 관련시키고 있는가를 다음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1)영랑은 당시의 상황 속에서도 민족주의 운동에 가담하고 독립선언문을 줄줄 외다시피 통독하였고 일제의 강압에도 삭발을 거부했으며 창씨개명도 반대하여 [내 집 性은 金씨로 創氏했소]하고 고집했다고 한다. 신사참배도 하지 않았고 그 당시 입게 되었던 국민복도 한 번도 입지 않은 치밀한 지조를 보여 주었다. 민족적인 비애에서 답답함을 풀기 위해 술을 자주 마시는 호주가였으나

(2)본래 영랑은 내향적 성격의 소유자였다기보다 외향적인 면이 강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그는 조용한 생활, 관조의 경우에나 만족하면서 서정 소곡이나 쓰고 있을 형의 사람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에게는 다분히 혁명가적인 정열을 지닌 일면이 있었다. 아직 철도 들기 전부터 후에 무정부주의자가 되었던 박열과 의기가 상합하는 사이가 되었다든가, 불과 17세 때 맞이한 31만세 대열에 참가, 투옥까지 당했다는 사실부터가

영랑의 전기적 삶에 대한 조명이 주가 되고 있지만, 일상적인 삶 자체를 /'/민족주의적/'/인 가치 부여에 치중하고 있다. /'/민족주의 시인/'/에 대한 서술자의 가치 부여가 김영랑 평가의 주요 척도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열과의 교유가 어떤 깊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이 /'/실천/'/의 맥락에서 얼마나 깊은 영향 관계로 나타났는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불과 17세 때/'/의 3·1만세운동 참가와 투옥 경험이 김영랑의 /'/외향적 성격/'/을 입증하고, 그것이 사회주의나 현실참여적인 시적 경향을 배제하는 그러한 /'/의외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독립운동 경험이 그의 시작생활에 어떤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는지 확인할 만한 단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김흥규의 지적이 보다 합리적일 듯하다. 관동 대진재 이후 중도 귀국한 이래 /'/서울로 자주 왕래하며 친우들과 즐겨 만나며 민족운동에 뒤이은 신흥 사회주의적 분위기에 젖어 문화운동에 전력을 다했다/'/는 평가가 입증할 만한 근거나 인정할 만한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에 동의하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15세에서부터 23, 4세의 나이에 있었던 워즈워드, 코울릿지, 사우시 등 낭만주의 시인들이 유럽 최대의 정치적 사회적 격동기를 겪으면서 혁명에 참가하고 혁명적 정열로 정치 평론가 정치 연설가로 활동하거나 정치 팜플렛을 돌렸던 경험은 개인적인 동시에 일반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들이 점차 보수주의로 변화해 나가는 모습은 흥미로운 것이지만 그 변화 한 편에 있는 /'/문화적/'/, /'/환경적/'/ 입장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예가 김영랑을 평가하는 데 하나의 참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3.

오히려 김영랑에 대한 평가는 특히 그가 강진 출신 시인으로 그의 생애를 대부분 강진에서 보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휘문의숙 시절과 청산학원 시절을 빼면 그의 삶의 터전은 강진이었고 특히 재혼한 1925년 이래 1948년 서울로 가족들을 솔거해 올라갈 때까지 그는 강진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실은 그의 시가 고향 /'/강진/'/을 전제하지 않으면 성립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점은 두 가지 의미 있는 사항들을 전제한다. 즉 키츠나 예이츠의 영향으로 보는 영랑 시에 대한 시선을 좀더 그의 삶(환경)의 문제와 결부시켜야 할 필요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역문단적 시인으로서의 가치 평가의 필요성이다. 특히 후자의 문제는 경성 중심으로 당시의 문학을 보는 시선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서정주는 /'/그 때나 이 때나 문단은 서울의 신문사, 잡지사 가운데서 주로 운영되고 있어서 이 시골의 선비에게 자세한 눈을 보낼 겨를이 없었다/'/고 말하고, 김영랑의 평가가 부진한 이유를 들어 서울 중심 문단의 비평적 경향을 비판했다. 해방 후 서정주에 의해 김영랑이 평가된 것이 문단 재편 문제와 서정주의 시적 경향 등과 관련해 이해할 수 있는 문제기도 하지만 1930년대 문단 상황을 지적한 것이어서 참조할 만하다. 당시 중앙 문단의 지방문단에 대한 편파적 태도는 종종 지적되었는데 그 이유인지 해방 전 김영랑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김영랑 시의 시어적 특질과 향토 서정의 본질이 /'/지역성/'/에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영랑의 시 대부분은 고향 강진의 자연 속에서 배태된 것들이다. /'/영랑 시를 논의할 때 그의 주위인 남방 다도해변의 자연과 기후에 감사치 않을 수 없/'/다는 정지용의 지적은 김영랑 시의 바탕에 놓인 강진이라는 지역적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김영랑은 강진에 거주하면서 생활을 예술의 경지로 이끌고 간다. 300(500)석지기 대지주의 삶은 /'/건설부 장관/'/으로서 모란을 가꾸고 정구장을 만들고 강진의 갯벌과 언덕을 산책하는 것을 충분히 허락한다. 박용철이 지적한 대로, 김영랑 시의 음악성과 서정성, 신비주의에 예이츠, 키츠 등의 외국 시인들의 영향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이전에 김영랑이 가꾸고 즐긴 강진의 자연 환경과 분리되기 어렵다는 점 또한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김영랑을 민족시인으로 평가하는 것의 난점은 앞에서 제기한 바 있다. 김영랑의 생애에서 그가 민족주의적이고 이념적인 열정을 폭발적인 회감으로 드러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는 매우 고답적이고 귀족적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인간형이었다. 앞의 경우는 그가 서양음악이든 판소리든 음악에 심취했고 정구장을 만들고 정구를 칠 정도로 현학 취미와 귀족 취미의 /'/토착적 부르조아/'/의 생활을 버릴 수 없었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후자의 경우는 신식 문물과 서양 사상을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생활 습관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에서 확인된다. 그는 대부분 한복을 입고 생활했고 서민 문화로 치부되던 판소리나 육자배기 가락에 심취했다. 그것은 시 창작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고 몇몇 회고록 속에서도 명징하게 드러나 있으며 몇 편의 산문들이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본고에서 흥미롭게 생각하는 대목은 지역문단 혹은 좁혀서 말하면 지역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김영랑의 태도 및 그것의 가치이다. 김영랑과 박용철, 김현구와의 관계는 그들이 호남 특히 강진(박용철은 송정리 출신이다)에서 태어나 비슷한 성향의 시들을 썼고 같은 동인지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에서 언급되고 있다. 김현은 이들을 /'/강진시파/'/라고 지칭한 바 있다. 박용철이나 김현구와의 교유가 단순히 <시문학> <문예월간> <문학> 등으로 이어지는 문예동인지 형태의 잡지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된다면 그것은 1920년대 이후 숱한 명멸과 영욕을 거듭했던 문예 동인지나 잡지들과의 차별성을 드러낼 수 없을 것이다. 이들과의 공통분모가 그려지는 것은앞에서 제기한 그들 시의 터전이 호남의 자연 환경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강진은 바다, 비, 숲, 섬, 동백 등의 자연이 시적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고 문화적 열의가 문학청년들의 사색적 감정을 자극하는 곳이었다. 특히 김영랑은 서울과 일정한 거리를 가지면서 /'/지역 문인/'/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끝까지 지켜나갔던 시인이었다. 그의 서울 나들이는 음악회나 임화, 정지용 등 특별한 경우의 문인과의 만남이 그 계기가 되었고, 대부분 그의 삶은 강진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지 않았다.
김영랑 시의 진정한 힘은 /'/지역문인적/'/ 성격에 있었던 것이다. /'/지성적인 표현을 찾지 아니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저렇듯 躍動하는 생명을 지닌 언어를 포착하여서/'/라는 이헌구의 지적은 그의 계층적 성격과 지역적 성격을 동시에 드러낸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김영랑의 글은 고향 강진의 회포를 드러낸 것이 많다. 휘문의숙 및 청산학원 시절 등 몇 년을 제외하면 그의 삶은 고향 강진에 있었던 것이다. 가문을 지킨다는 가계 존속의 의무감이 그 중심에 있었겠지만, 그는 고향 강진을 거의 떠나지 않았다. 근대 문인들이 대부분 중인 계층에서 나왔다는 사실과 그들의 /'/문단적 권력/'/이 경성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상기하면, 김영랑의 지주로서의 계층적 성격은 대비되어 고찰할 만하다. 한편, 강진에서의 그의 삶은 일종의 유배 의식을 만들어 /'/쩔웁고 좁/'/은 한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의 신비주의는 예이츠나 키츠의 낭만적 신비주의에서 온 것이기보다는 강진의 삶 그것이 주는 삶의 수용 태도와 보다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이는 [청명]이나 [두견]에서 보듯, 김영랑의 내면 독백의 언어를 생성시키는 원인이 된다.
 
4.

김영랑의 존재는 1930년대 시의 일반적인 지형도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30년대 시인들의 언어에 관한 일련의 논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임화나 김기림 중심의 보편어, 곧 지성어 문명어 문화어의 언어 일반론과는 다른 언어 의식이 30년대 시인들에게 존재했다는 점이다. 지방어와 토속성의 문제를 본능과 자연의 층위로 이해하면서 이를 30년대 시정신의 일환으로 파악한 것은 박용철이다. 박용철은 백석의 {사슴}을 평가하면서 정주지방 언어가 /'/야생적이고 초생적인/'/ /'/모어의 위대한 힘을 느끼게 한다/'/고 지적했다. /'/깨트려서 뿌다귀와 모소리가 있는 돌/'/로 비유된 방언의 힘은 생생히 유동하는 생명을 가진 것이라 평했다. 그것은 /'/사전에 오르는 標準語(中和語)/'/처럼 /'/맞부듸쳐서 깎기고 달아져 동글아진 돌/'/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박용철에게 분명 토속어는 표준어와 대립된다. 박용철은 방언과 토착어의 비문법성과 비표준어적 성향은 그것이 본능적이고 생명적인 것이어서 서슬이 선 생명의 본원과 근접해 있다고 보았다. 시의 유기체설을 주장한 그의 시관이 투영된 것이기는 하지만 /'/지방어/'/를 생명의 본원과 유동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본 것은 주목할 만하다. 1930년대 말기의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유지된 우리의 정서와 조선적 특수성은 바로 이 방언(지방어) 속에 있었고 따라서 방언의 사용은 토속주의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 인식에 근거한 가치론적 태도가 내재된 것이다. 1930년대의 시의 지방어, 토속어의 문제는 이처럼 단순한 소재 차원을 넘어서 있다. 지방어가 일종의 /'/상상의 공동체/'/로서 내면화되어 있었고, 백철이 말한 /'/실감/'/은 이 상상의 공동체가 주는 현실감이었을 것이다. 언어 현실의 권력적 속성들을 탈주하는 리비도(생명)의 차원에 있다. 1930년대 지방어(방언)은 의식의 저 낮은 욕망의 지층을 미묘하게 파고들면서 현실적인 토대를 갖게 된다. 이 시대가 우리말과 우리 정서를 자유롭게 표출할 수 없었던 시대임을 감안하면 /'/조선적인 것/'/의 표현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힘이 되는 것이다. 이는 언어가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로서, 혹은 단순한 물적 질료로서의 차원보다 깊숙한 곳에 있음을 의미한다.
조선어와 민족의 생존에 대한 존망은 김기림, 이양하 등 당시 문인들에게 피할 수 없는 화두이기도 했다. 동화정책이 황민화 정책으로 바뀌면서 보편어, 세계어로서의 일본어 수용이 신체제론, 사실수리론 등을 수용한 지식인들에게 합리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김영랑은 박용철의 죽음을 회고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오 10년도 전에 우리의 말이 마지막 앗아지려던 날 그대 그 앓는 자리에 누우신 채 [전쟁은 크게 발전하겠지. 민족과 언어가 같이 멸망한 역사를 어디 보았더냐] 하시며

당시 시인들이 /'/지방어/'/나 /'/토속어/'/를 /'/민족어/'/라는 추상적 대상으로 규정하는 대신 /'/생명/'/있는 구체적 실체로 인지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오장환의 표현처럼 /'/난삽한 기계문명에 마비된 문청들이 이상한 사투리와 뻣뻣한 어휘에 쾌감과 흥미를 느끼는/'/ 모던 감각의 또 다른 변형체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30년대 모더니즘의 화려한 성장기를 경험했던 당시 시단은 일제 말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언어(지방어)를 통해 시인의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용악, 오장환, 백석, 김영랑 등은 방언 지역에서 태어나 그 말의 지역적 특색을 개성적인 표현으로 살려내었다. 당시 시단은 신진 시인들의 독자적 시풍 진작이 요구되었고 사이비 외국풍의 시적 경향이 비판되면서 조선문학건설이 새롭게 요청되었다. 외국 시의 모방과 아류적 시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지방적인 것, 조선적인 것은 정체성을 가지고 이미 시단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
점차 일제 암흑기를 맞아 우리말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절대적으로 열악해지면서 역설적으로 우리 시의 언어는 최고의 정상(頂上)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언어의 이 같은 자생적 생명력은 현실의 권력적 억압을 비틀고 쥐어짜내는 역할을 한다. 백철이 말한 /'/사회학적인 민속심리학적인 커다란 동기/'/는 이를 의미한다. /'/문화적 의의와 실감/'/을 /'/문화/'/의 맥락으로서뿐 아니라 /'/정치/'/의 맥락으로 읽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학은 이데올로기나 사회 질서에 의해 일차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문학 스스로가 그 현실의 질서를 전복하고 탈주함으로써 생산의 주체가 된다. /'/언어/'/는 단순히 /'/현실/'/을 해석해 내는 차원에 있지 않고 그 자체로 자율적인 생산 주체가 된다는 언어 자율성 이론은, 언어가 현실을 재구성하는 힘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들뢰즈의 /'/집단환상/'/이란 이 같은 언어의 정치적인 측면을 의미하는 것이다. /'/토속어와 지방성/'/이 개인적 초월의 문제거나 시인의 언어감각이나 기교의 수준으로 이해할 수 없다. 언어가 토대하고 있는 현실적 차원이나 정치성의 맥락과 깊숙하게 관련되어 있다. 1930년대 시는 지방적인 것, 조선적인 것을 자기 내적 정체성으로 확립하려고 한 일련의 시인들의 등장과 함께 그 질적 성장을 이루어 나간다.
따라서 김영랑을 민족시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아마도 그의 독립운동 내력이나 검증되지 않는 사회주의 사상과의 접촉에서보다는 우리말 시어의 의식적인 사용과 그것의 가치에 대한 인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국어의 어학사를 안중에 두고 생각하면 20세기에서 우리 말의 매력을 맨 처음 의식적으로 가장 많이 정교하게 배합해 낸 공적까지를 갖는다. 그것은 우리 말이 고스란히 무시되고 짓밟히던 일정의 식민지 시절에 있어서는 밤길에 흘린 좁쌀을 주워 금강석을 빚어내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서정주의 언급은 이른바 순수 서정주의와 향토주의의 계보에 김영랑과 자신을 동일화 시키는 논법과 해방 후의 결과론적인 시각이 투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1930년대 /'/지방어/'/가 /'/언어의 정신형성 과정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임을 의미한 것이다. 김영랑의 가치는 중앙문단적 권력 밖의 지방적인 것, 변경적인 것의 가치를 토대로 하고 있다. 김영랑, 백석, 이용악 등이 그려준 세계는 /'/고향의식/'/의 당대적 함의였다. 그것은 1930년대의 조선학 운동이나 조선주의 운동과의 상관성이나 독자들의 정서적 환기력에 미치는 수용미학적 측면의 의의를 규명함으로써 명백해질 것이지만, 김영랑은 바로 이 지방문인적 존재로서의 문화적 가치 창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실감/'/으로 중앙문단적 질서를 가로지르고 있다. 개방적, 수용적 사실 수리론에 급격하게 열려 있던 중앙문단적 문인들의 삶에서 저만치 비껴난 그는 강진의 삶에 치중하며 스스로를 폐쇄시킨다. 친일문학 항일문학의 이분법은 단순하다./'/친일 문장 한 줄/'/도 남기지 않은 김영랑의 가치는 /'/대지의 은폐/'/ 속에 스스로의 영혼을 가두고 대지를 몽상한 한 지역문인의 자기 절제에 의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외래어 문장의 멋스러움을 스스로 거부하고 생성중인 언어인 조선어를 사용했던 것, 하늘, 달, 바람, 샘, 물결 같은 한정된 언어는 바로 강진과 조선어의 범주 속에 있는 것들이다.

5.

그의 시의 순수성은 계급문학의 대항이념적 차원에서 전개되기보다는 강진을 고향으로 둔 시인이 스스로 선택한 철저한 자기 고백적 담론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시에 /'/내마음/'/ /'/내/'/ /'/나/'/ 등의 단어가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신석정이 /'/독어/'/라 일컬은 자기 내적 말, /'/내 마음/'/은 자기 경험의 극단을 보여주는 단어들이다. 이는 서정적 순간에 열리는 자기 혼의 언어들이다. 이것이 계층적이고 시대적인 성격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맥락도 있다. 한 번의 고문(독립운동으로 체포당한 경험)의 경험에서 오는 숙명적 자기 이해가 /'/언덕/'/을 /'/어덕/'/으로, /'/냄새/'/를 /'/내음/'/으로 미화하는 행위, 곧 현실도피로 나타난다는 실존적 정신분석의 차원에서 김영랑을 평가한 예가 그것이다.
루카치는 서정시는 영혼의 가장 순수한 고독이 열리는 위대한 순간이 탄생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서정적 순간 속에서 영혼은 가장 순수한 내면성을 얻게 되고 자연은 이러한 내면으로부터의 충동에 의해 커감으로써 나중에는 그 자체가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상징이 된다.김영랑 시의 특징으로 지적되는 /'/순수 서정/'/과 /'/고백적 담론/'/은 시적 언어가 갖는 절대적 경지를 의미한다. 시인의 내부에서 아무리 많은 모순과 갈등을 겪더라도 시적 담론은 단 하나의 절대적 조명을 받는 언어이다. [어덕에 누워] [가늘한 내음] [뻘은 가슴을 훤히 벗고] [청명][두견] 등 강진의 자연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시들은 계층적으로는 대지주로서의 삶이, 미학적으로는 음악과 자연에 갇힌 시인의 몽상이 배어 나온다.


호르 호르르 호르르르 가을 아참
취여진 청명을 마시며 거닐면
수풀이 호르르 버레가 호르르르
청명은 내머리속 가슴속을 저져들어
발끝 손끝으로 새여나가나니

온살결 터럭끗은 모다 눈이요 입이라
나는 수풀의 정을 알수잇고
버레의 예지를 알수잇다
그리하야 나도 이아참 청명의
가장 고웁지못한 노래ㅅ굿이 된다

수풀과버레는 자고깨인 어린애
밤새여 빨고도 이슬은 남엇다
남엇거든 나를 주라
나는 이청명에도 주리나니
방에 문을달고 벽을향해 숨쉬지안엇느뇨

해ㅅ발이 처음 쏘다오아
청명은 갑작히 으리으리한 冠을 쓴다
그때에 토록 하고 동백한알은 빠지나니
오! 그빛남 그고요함
간밤에 하날을 쫏긴 별쌀의 흐름이 저러햇다

왼소리의 앞소리요
왼빛깔의 비롯이라
이청명에 포근 취여진 내마음
감각의 낯닉은 고향을 차젓노라
평생 못떠날 내 집을 드럿노라

 [淸明] 전문

김영랑은 사물 그 자체의 선명한 인상이나 색감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는 사물의 주위에서 풍기는 아우라, /'/스치는/'/ /'/살포시/'/ 드리워진 신비한 분위기에 매혹되었다. 빛깔이나 소리는 /'/마음/'/이라 부르는 내면적 소통 행위를 통해 걸러진 후에야 의미를 부여 받았다. /'/온 살결 터럭 끝(눈과 입의 모든 감각 기관)/'/으로 취해진 자연은 내 머릿속 가슴속을 지나 발끝, 손끝으로 새어나가면서 시인의 예지를 번쩍이게 한다. /'/청명/'/은 정신적으로 고양된 상태로 대기의 기운을 통해 느끼는 청량감이 아니다. 시인의 예지를 통해 사물(자연)에서 취득되는 것이다. /'/청명/'/은 동백 잎의 선명한 색상이나 빛깔을 통해서가 아니라 문을 닫아걸고 벽을 향해 눈을 감은 자의 예지에 의해 감득된다. /'/그 잎과 꽃의 정열보다도 그 알의 고요히 빠지는 정숙/'/이 그의 삶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그에게는 /'/동백 한 알이 빠져 나가는 소리/'/ /'/별쌀의 흐름/'/이 모든 소리와 빛깔의 시원이며 /'/감각의 낯익은 고향/'/이었던 것이다. 김영랑은 강진에서 이 낯익은 감각의 고향을 느꼈고 그것을 /'/평생 못떠날 내집/'/이라고 썼다. 낯익은 자연에서 /'/고향/'/을 느끼는 감각이야말로 /'/5월/'/과 /'/모란/'/의 찬란한 상징을 만들어 낸 자의 가장 순수한 내면성이었다. /'/두견/'/과 /'/종다리/'/와 /'/꾀꼬리/'/를 구분하고 그들의 생태적 특성을 정확하게 지적해 낼 수 있는 힘은 강진에서의 일상적인 삶에서 나온다. 그의 /'/유미주의/'/는 그래서 구체적이고 경험적이다. 이는 키츠의 /'/나이팅게일/'/과 김영랑의 /'/두견/'/의 유사성을 들어 그의 시와 /'/낭만주의/'/와의 영향 관계를 논하는 것보다 본질적인 것일 수 있다.
내면 고백적 언어는 미묘한 분위기의 /'/말/'/에서 신비로운 경지를 획득한다. 김영랑이 /'/봄/'/이나 /'/5월/'/에 대한 애착을 /'/음향이 봄기운을 탄다/'/ /'/휭휭 울려 난다/'/는 표현으로 드러낸 바 있다. 이 같은 미묘한 음향감에 대한 선호가 /'/여자의 말/'/에 대한 편향성을 낳는다. 그는 강진 말의 낯설음과 간지러움, 여자들의 말에서 울리는 고저장단의 경쾌한 음향에서 청명함을 맛보았다.

전라도서도 이곳 말이란 것이 처음 듣는 이는 아직 말이 덜 되었다고 웃고, 자주 듣는 이는 간지러워 못 듣겠다고 얼굴에 손까지 가리운다.여자의 말이 더욱 그러하다. <잉-이응-오> 하는 부정어가 어디 또 있는가. 길거리에서 떠드는 말소리가 공중으로 휙 날아들어 온다. 봄이 아니고야, 봄이 아니고야 그럴 수 없다. 바람이 댓잎 끝을 새어 나오는데 끝이 다 퍼져 버려서 말소리가 타고 오는 것일까.
그는 강진의 말이 말이라기보다 /'/吐情/'/에 가깝다고 썼다. /'/토정/'/은 말이라기보다 본능적인 외침에 가깝다. 김영랑의 표현대로 하면 /'/등을 꼬집으면 아야야/'/ 하는 것과 거리가 멀지 않다. 봄기운을 타고 말소리가 멀리 퍼져 나가는 인상을 김영랑은 바람이 댓잎 끝을 새어 나오는 데서 유추했다. 말이 물질성을 띠고 음향화 하는 이 감각은 분명 대숲을 거느리고 산 김영랑의 일상적 경험에서 온 것이다. 영랑의 시는 /'/회의석상에서 흔히 놀림감이 되는 전라도 사투리가 이렇게 곡선적이요 감각적이요 정서적인 것/'/임을 깨닫게 한다. 김영랑은 말(소리)의 미묘한 음향감을 모호하고 신비한 자신의 심연으로 읽어내었다. 이는 두견의 울음소리가 /'/하늘을 액화 시킨다/'/는 감각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김영랑의 언어에 대한 감각은 앞에서 언급했던 낯익은 고향의 자연을 신비의 심연 아래 두고 그것을 /'/인간적/'/이라 인식한 자가 가질 수 있는 감각이었다. 영랑의 시가 /'/환경과 운명과 자업에서 제2차로 탄생한 것/'/이라는 정지용의 지적은 김영랑의 시인으로서의 운명이 강진에서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 것이다.
내면 고백의 언어가 사회적 소통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내마음/'/에 폐쇄된 형국은 식민지 시대가 주는 긴장감과 폭력성에 비해 지나치게 안일한 태도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강진에서 지역 문인으로 살며 30년대의 폭력성에 스스로를 가두고 내면의 언어를 지키고자 했던 태도는 /'/또 하나의 선택/'/일 수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