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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디어오늘] 김남주 22주기에 다시 보는 ‘조국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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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22주기에 다시 보는 ‘조국은 하나다’

김남주 시인이 박근혜 정권 봤다면 어떤 시를 썼을까.

김종철(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jinpress@mediatoday.co.kr  2016년 02월 14일 일요일
    

2월 13일은 시인 김남주가 세상을 떠난 지 22주기가 되는 날이다. 학인이자 민족·민중운동의 최전선에서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치열하게 싸우던 ‘전사(戰士)’. 그는 박정희 유신독재 끝 무렵인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어 무려 9년 3개월 동안 철창 안에 갇혀 있다가 6월 항쟁 뒤인 1988년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1946년 10월 전남 해남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김남주는 온화하고 인정이 넘치는 얼굴과는 달리 전남대 학생 시절부터 반유신독재 운동에 앞장서 수배와 구속을 거듭 당하면서도 시작(詩作)을 멈추지 않은 ‘불굴의 투사’이자 탁월한 문필가였다.

전두환의 군사독재를 물려받은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어 ‘공안통치’를 자행하고 있던 1992년까지 김남주는 활발하게 시를 쓰면서 민주화운동에 동참했다. 그러나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해인 1993년에 그는 불치병으로 알려진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병상에서 투병하다가 1994년 2월 13일 검게 변한 얼굴에 조용히 미소를 띤 채 가족과 동지들의 곁을 영원히 떠나갔다.

1975년 3월 동아일보사에서 강제해직 당한 뒤 번역으로 생계를 꾸리던 나는 1976년 말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가 주관한 송년회에서 김남주를 처음으로 만났다. 재야인사 2백여명이 모인 그 자리가 파한 뒤 젊은이 몇 사람이 ‘2차’를 간 자리에서 술기운이 거나해진 그는 ‘엘레나가 된 순희’라는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다. “그날 밤 극장 앞에서 / 그 역전 캬바레에서 보았다는 그 소문이 들리는 순이 / 석유불 등잔 밑에 밤을 새면서 실패 감던 순이가 / 다홍치마 순이가 / 이름조차 엘레나로 달라진 순이 순이 / 오늘밤도 파티에서 춤을 추더라.” 한국전쟁이 터진 뒤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끝내 ‘미군의 위안부’가 되어버린 처녀들의 애달픈 삶을 그린 ‘유행가’였다.

김남주는 평소에 자신이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가졌다고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문과 투옥, 심지어는 ‘사법살인’까지 저지르면서 독재를 계속하던 박정희에 맞서는 싸움과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한 투쟁에서는 그야말로 강철 같은 투지를 보였다. 만약 그가 48세라는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지 않고 지금 바로 이곳에 살아 있다면 신유신체제를 만들어 장기집권을 기도하려 드는 박근혜 정권을 향해 어떤 시를 쓰고 어떻게 투쟁을 할까? 전시작전통제권조차 미국에 거의 항구적으로 맡긴 채 정치·외교·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자주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정권, 갈라진 민족의 화합과 평화적 공존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기는커녕 개성공단 실질적 폐쇄 같은 극단적 조치로 남측의 중소기업인들과 북측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기는 권력, 천문학적 액수가 들어가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배치를 둘러싸고 국회와 협의도 하지 않은 채 미국의 눈치만 보며 ‘균형외교’와는 거리가 먼 사대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정부와 여당.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수구기득권세력의 진면목이다.

김남주 22주기를 맞아 그의 대표적 시들 가운데 한 편인 ‘조국은 하나다’를 다시 읽는다.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과 본질을 예측이라도 한 듯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인다. 아울러 유장한 흐름을 탄 내재율과 시적 비유는 한국 민중문학사의 걸출한 창작으로 기록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젊은 세대를 위해, 1988년 9월에 출판된 김남주 시집 <조국은 하나다>(도서출판 남풍)에서 전문을 옮긴다.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모르게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권력의 눈앞에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나는 이제 쓰리라

사람들이 오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오르막길 위에도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사나운 파도의 뱃길 위에도 쓰고

바위도 험한 산길 위에도 쓰리라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나는 이제 쓰리라

인간의 눈이 닿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눈을 뜨면 아침에 맨 처음 보게 되는 천장 위에 쓰리라

만인의 입으로 들어오는 밥 위에 쓰리라

쌀밥 위에도 보리밥 위에도 쓰리라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이 쓰는 모든 말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탄생의 말 응아 위에 쓰리라 갓난아이가

어머니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말 위에 쓰리라

저주의 말 위선의 말 공갈협박의 말…

신과 부자들의 말 위에도 쓰리라

악마가 남긴 최후의 유언장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이 세워 놓은 모든 벽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남인지 북인지 분간 못하는 바보의 벽 위에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좌충우돌하다가 내빼는 망명의 벽 위에

자기기만이고 자기환상일 뿐

있지도 않은 제3의 벽 위에

체념의 벽 의문의 벽 거부의 벽 위에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순사들이 순라를 돌고

도둑이 넘다 떨어져 죽은 부자들의 담 위에도 쓰리라

실바람만 불어도 넘어지는 가난의 벽 위에도 쓰리라

가난의 벽과 부의 벽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갈보질도 좀 하고 뚜장이질도 좀 하고 

그래 돈도 좀 벌고 그래 이름 좀 팔리는 중도좌파의 벽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노동과 투쟁의 손이 미치는 모든 연장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목을 베기에 안성맞춤인 ㄱ자형의 낫 위에 쓰리라

등을 찍어 내리기에 안성맞춤인 곡팽이 위에 쓰리라

배를 쑤시기에 안성맞춤인 죽창 위에 쓰리라

마빡을 까기에 안성맞춤인 도끼 위에 쓰리라

아메리카 카우보이와 자본가의 국경인 삼팔선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대문짝만하게 손바닥만한 종이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오색종이 위에도 쓰리라 축복처럼

만인의 머리 위에 내리는 눈송이 위에도 쓰리라조국은 하나다라고

바다에 가서도 쓰리라 모래 위에

파도가 와서 지워버리면 나는

산에 가서 쓰리라 바위 위에

세월이 와서 긁어 버리면 나는

수를 놓으리라 가슴에 내 가슴에

아무리 사나운 자연의 폭력도

아무리 사나운 인간의 폭력도

지워 버릴 수 없게 긁어 버릴 수 없게

가슴에 내 가슴에 수를 놓으리라

누이의 붉은 마음의 실로

조국은 하나다라고


그리고 나는 내걸리라 마침내

지상에 깃대를 세워 하늘에 내걸리라

나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키가 장대 같다는 양키들의 손가락 끝도

언제고 끝내는 부자들의 편이었다는 신의 입김도감히 범접을 못하는 하늘 높이에

최후의 깃발처럼 내걸리라

자유를 사랑하고 민족의 해방을 꿈꾸는

식민지 모든 인민이 우러러 볼 수 있도록

겨레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2월 13일 오전 11시 김남주가 잠들어 있는 광주 망월동 ‘구묘역’에서 ‘22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김남주는 지금, 박근혜 정권의 독선과 반역사적 행태를 보며 좌절과 낭패감에 젖어 있을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의 마지막 세 연을 읊고 있을까?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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