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날이 밝았군요.

그러나 새해 새날은 밝았지만, 여전히 ‘한낮의 어둠’입니다.

재작년에 이어 지난해도 참으로 참기 힘든 고통의 시간의 연속이었죠. 자본 횡포의 악몽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자유와 정의에 대한 우리의 꿈이 무참히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작가인 우리는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것을 직접 경험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심정적으로 혹은 실천적으로 강정 해군기지 반대 투쟁, 세월호 참사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에 참여하면서, 유신의 파시즘이 되살아나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일련의 그 투쟁에 뜨거운 공감을 가졌던 작가들 중에서 좋은 글이 나오기도 했지만, 사실 그 참사, 그 사태들은 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큰 것이었죠. 예컨대 조그만 쪽배는 시가 될 수 있지만, 거대한 유조선은 시가 되기 어렵겠죠. 시란 작은 것들을 극대화하고, 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을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데올로기도 거대한 것이기 때문에 시가 되기 어렵겠죠. 그래서 작가들은 문학적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권력에 분노했고, 문필의 무력함을 한탄했습니다.

역사도, 민주주의도 우여곡절의 과정을 겪기는 하지만, 조금씩 진보하는 것이라고 믿는 우리에게 지난 2년 동안의 퇴행작업은 너무도 뜻밖이었습니다. 황당한 가치전도의 현상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것이죠. 이미 민주주의의 수평선을 향해 멀리 순항하고 있는 배에게 회항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박근혜라는 무거운 짐이 우리의 등줄기를 깔고 앉아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녀는 대중을 조작 가능한 어리석은 무리로 만들려고 합니다. 우민화 정책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종북’이란 말 하나로 간단히 비판자들을 침묵시키는가 하면, 두려움을 무기로 활용하여 여론을 자기 쪽에 유리하게 호도하는데, 예컨대 IS의 테러가 당장 이 땅에 벌어질 것처럼 호들갑 떠는가 하면, 나라 경제가 지금 당장 완전히 거덜날 것처럼, ‘경제 위기’ ‘경제 비상’을 마구 들먹거리면서, 그 때문에 우울하고, 그 때문에 불안해서 잠 못 이룬다고, 대중에게 두려움을 안기면서 호소합니다. 그렇게 해서 호도된 부패한 여론은 ‘노여워하는 공주’, ‘우울한 공주’, ‘잠 못 이루는 공주’의 이미지를 만들면서 그녀에게 성원의 갈채를 보냅니다. 허허,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떠올리니 입안에 쓴물이 도는군요.

이와 같은 파행적 현상은 올해도 계속되겠지요. 참 암울합니다. 어둡습니다. 올해의 유일한 희망은 총선인데, 지금처럼 여론이 부패한 상태라면 그것도 가망이 없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계속된 실패와 패배가 우리를 깊은 좌절감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고, 아예 절망해 버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절망해서 절망 자체를 즐기는 정치적 냉소주의자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책없는 정치적 냉소주의자가 되어 버렸을 때, 우리보다 못나고 부패한 자들이 엄청난 물량과 권력을 독점하고 우리의 등줄기를 깔아 앉고 짓누를 텐데, 우리가 과연 그 고통과 그 수모를 용납할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 재탈환은 손쉬운 일이 아니죠. 시간이 걸리는 일이죠. 즉각적으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주저앉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목표를 향한 집요한 행진이어야겠죠.

미래는 어둡지만, 꽃들은 어둠 속에서도 자랍니다. 오랜 어둠의 시간을 견뎌낸 매미 유충은 마침내 지각을 뚫고 광명을 찾아냅니다.

그래요, 새해의 밝은 태양은 우리로 하여금 폐허에서 다시 미래를 꿈꾸게 합니다.
                                  

현기영 : 소설가. 1941년 제주 출생.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제5회 신동엽창작기금, 제5회 만해문학상, 제2회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 『지상에 숟가락 하나』로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주요 저서로는 소설집 『순이 삼촌』,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타는 섬』, 『누란』. 산문집 『젊은 대지를 위하여』, 『바다와 술잔』 등이 있다. 한국작가회의 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