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실종시대…그래도 시인과 독자는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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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는 대산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에서 ‘말과 믿음의 사이학’이라는 제목의 시 낭독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고영, 박소란, 정영효 시인(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
'광화문 수요낭동공감'
시인 고영·박소란·정영효 나서
자작시 낭송하며 독자와 소통
"지적 허영심 가득한 외계어 詩
독자 외면 더욱 부추길 것"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누가 시를 읽고 시집을 사볼까. 쉽게 찾기 힘들다. 2015년 대한민국은 시가 사라진 시대다.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가 300만부,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 100만부 이상 팔렸다는 건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초판을 500∼2000부가량을 찍는 요즘에는 1만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 대접을 받는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온갖 시들이 쏟아지는 시대. 척박한 한국문학의 토양에서 시의 생존은 버겁다. 시인들은 “아직도 시를 쓰냐”는 타박 속에 ‘원시인’ 소리를 듣는다. 그래도 시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시를 읽고 쓰는 사람의 끈끈한 소통이 그 한 증거다.
◇‘미래파·난해시’와 거리둔 시인 고영·박소란·정영효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에서는 한국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광화문 수요낭독공감’ 행사가 열렸다. ‘말과 믿음의 사이학’이란 제목으로 열린 이날 낭독회는 시인 고영(‘딸국질의 사이학’ 실천문학·2015), 박소란(‘심장에 가까운 말’ 창비·2015), 정영효(‘계속 열리는 믿음’ 문학동네·2015)가 독자를 만나 시와 인생이야기를 풀어냈다.
세 시인의 공통점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미래파의 기치 아래 주류를 이룬,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난해시에서 한 걸음 비켜나서 그들만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세대 젊은 시인들처럼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긴 했지만 이들의 시는 현실에 발을 굳게 디뎠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만큼 이들 시집에선 역시 공통적으로 가난 속에 허덕이는 시인 자신이 보인다. 고영의 ‘딸국질의 사이학’에선 월세계약서를 앞에 두고 딸국질을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박소란의 ‘아현동 블루스’는 부랑의 어둠이 비틀대고 있는 아현동을 노래하며, 정영호의 ‘검은 거리’에는 남들과 비슷해지면서 자기자신은 잃어가는, 도시주변인이 등장한다.
고 시인은 “어느 시대에나 실험적인 시는 있었고 그들이 문화를 이끌어간다. 그런 점에서 미래파를 위해 박수를 쳐주고 싶다”면서도 “같은 시인도 이해하기 힘든 지적 허영심이 가득한 외계어로 쓴 시는 독자들의 외면을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인의 자작시 낭송에 독자는 조용히 눈을 감고
두 시간가량 이어진 이날 낭독회의 백미는 세 시인들이 각자의 시를 낭송한 것. 독자들은 시인의 목소리로 애송시를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 저 눈이 녹아/ 누군가의 눈물이 되기 전에/ 다시 하늘로 돌려보내자/ 후회라는 그 길고 슬픈 말을 배우기 전에.” ‘후회라는 그 길고 슬픈 말’이란 시를 낭송한 고 시인은 “술자리에서 선배들이 시집을 3권은 내야 시인이란 말을 했는데 덧없는 일처럼 느껴졌다”며 “등단하고 10년 동안 전업시인으로 살았다. 광풍의 시기에서도 살아남으려고 노력했다”고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이어 “바쁘다는 말은 핑계다. 아무리 바빠도 시는 쓸 수 있다. 문제는 사랑”이라면서 “시는 뜨겁게 사랑할 때가 아니라 헤어지고 나야 나온다. 이별 없이 시를 쓰는 영민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 순서는 박 시인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중략)/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시 ‘다음에’를 낭송한 박 시인은 “도시에 사는 우리는 떠밀려 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또 갉아먹고 산다. 그런 게 과연 우리가 원하는 삶인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를 제대로 써봐야겠다고 한 건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라면서 “시만큼 네 것이 없다는 선배의 말에 살면서 내 것 하나 가지는 게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정 시인은 시 ‘사라졌다’를 낭송했다. “많은 게 사라졌고/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만 년 된 해변이 점차 사라졌고/ 여태까지 산책하던 거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정 시인은 “첫 시집을 내고 들뜨기도 했지만 ‘별거 아니구나’는 생각에 지금은 현실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시를 쓰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잊고 있던 상처나 앞으로 겪을 상처가 떠오른다”며 “시집을 내고 나니 내가 시를 쓰면서 스스로의 상처를 보듬어 안았다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편 2014년 4월부터 시작된 ‘광화문 수요낭독공감’은 시나 소설 등의 낭독문화를 발전시켜 독서문화가 우리 생활에 뿌리내리도록 하자는 취지로 이어가고 있다. 한국작가회의·한국문인협회·한국시인협회 등 각 문학단체에 소속된 작가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독자와 만나는 소중한 기회로 삼고 있다. 오는 15일에는 한국시인협회가 ‘한여름 밤의 시샘’이라는 주제로 낭독회를 연다. 시인 김경성·김태형·이병일·이재민·이재훈·전형철·허은희·황종권 등이 참여한다.
 | | 한국작가회의는 대산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에서 ‘말과 믿음의 사이학’이라는 제목의 시 낭독회를 열었다. 앞줄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이현우 시인과 고영·박소란·정영효 시인(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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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링크 :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I31&newsid=01328406609432880&DCD=A403&OutLnkCh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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