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 문단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1994년 겨울, 신경숙 작가는 3개 문예지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데뷔했던 <문예중앙>에서는 중편 <깊은 숨을 쉴 때마다>를 연재 중이었다. <문학동네> 창간호부터 <외딴방> 연재를 시작했다. 서울 구로공단 노동자 시절의 경험을 담은 이 자전적 소설은 그녀의 문학 인생 내내 원체험처럼 따라다닌다. <문학과 사회>에 실린 <전설>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작품이다. 이후 창비에서 출간한 소설집 <오래전 집을 떠날 때>에 묶였다. 세 군데 유력 문학지에 동시에 이름을 올린 그해 겨울은 앞으로 ‘전설’이 될 작가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었다. 공선옥·공지영·은희경 등 여성 문인들이 전면에 등장하던 시기였다. 그녀에게는 ‘90년대 문학의 가능성’ ‘세밀한 감수성과 감각적 문체’ 등 긍정의 수식어가 달렸다. 20여 년 뒤 그녀는 다른 의미에서 ‘전설’이 되었다.

기회는 있었다. 2000년 정문순 문학평론가는 <문예중앙> 가을호에 ‘통념의 내면화, 자기 위안의 글쓰기’에서 <전설>이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구 10여 개를 비롯해 전개 방식 등의 유사성을 지적했다. 신경숙 작가는 이미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문제의 글은 정 평론가의 데뷔작이다. 비평 수위에 비해 반응이 없었다. ‘웬 신출내기 평론가가 속칭 신경숙을 깠다더라’ 정도의 말만 나왔다고 정 평론가는 회상했다. “당시 신경숙에 관한 부정적인 평론의 글이 없어서 신기할 정도였다. 리얼리즘의 관점이든 표현주의적으로 보든 옹호 일색이었다.”
 

ⓒ연합뉴스 신경숙 작가(왼쪽)는 <엄마를 부탁해> 등으로 성가가 높았다. 2009년 3월의 팬 사인회 장면.

2015년. 이번에는 동료 문인의 폭로에 직면했다. 신경숙 작가보다 5년 늦은 1990년에 데뷔한 중견 작가 이응준의 문제 제기였다. 6월16일 그는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로 시작하는 <우국>과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로 시작되는 <전설>의 한 문단을 나란히 보여주었다. 첨언이 없더라도 답이 자명한 글이었다. 이응준 작가는 “‘다른 소설가’의 저작권이 엄연한 ‘소설의 육체’를 그대로 ‘제 소설’에 ‘오려붙인 다음 슬쩍 어설픈 무늬를 그려넣어 위장하는, (중략) 명백한 ‘작품 절도 행위-표절’”이라고 선언하듯 말했다.

작가와 출판사의 대응이 문제를 더 키워

15년 전과 달리 파문이 컸다. 처음 “<우국>을 알지 못한다”라던 작가는 “표절이라는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태도를 바꿨다. 출판사 창비도 마찬가지다.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주장하던 데서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라며 사과했다. 독자들은 “표절이 맞다. 사과한다”같이 명쾌한 문장이 아닌 데 의아해했다. 작가와 출판사의 위기관리 능력은 조롱거리가 됐다. 과거와 다른 점은 매체의 차이다. 이응준 작가는 문예지 대신 온라인 뉴스 미디어 <허핑턴 포스트>에 글을 올렸다. 한 출판인은 “과연 언론사들이 받아쓸까 반신반의했다. 종전에 평론가가 문예지에 문제 제기하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번졌다. 독자들이 움직이니까 침묵하기 어렵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비판은 신경숙 작가 개인과 창비를 넘어 신경숙 작품 거개가 출판된 문학동네를 비롯한 대형 출판사와 문학잡지, 한국문학계 전반으로 옮아갔다. ‘문학 권력’이라는 용어가 되살아났다. 요약하면 몇 번의 표절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경숙 작가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한 데에는 출판사와 출판사를 영토로 하는 문예지, 그 문예지의 편집위원인 문학평론가의 비호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번 사건 이후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 권력의 현재’를 주제로 연 토론회 역시 그런 시선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오창은 교수(중앙대 교양학부)는 문학장의 폐쇄성을 지적하며 “문학 권력 내부에서 작가 양성과 매체 발간, 문학상 수여와 단행본 발간까지 이뤄지다 보니, 독자와의 관계보다 내부 질서가 우위에 놓이게 된다. 이 질서의 신화적 상징이 바로 신경숙 문학이다”라고 말했다.

신경숙 작가의 작품은 문학계의 이른바 3대 출판사인 창비·문학동네·문학과지성사(문지)에서 고르게 출판됐다. 1993년 <풍금이 있던 자리>가 성공을 거두었고, <깊은 슬픔>과 <외딴방>이 각각 60만 부, 30만 부 이상 팔리면서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엄마를 부탁해>는 210만 부 넘게 팔렸다. 유럽·미국 등지에서 번역되기도 했다. 백낙청(창비), 황종연(문학동네), 김병익(문지) 등 출판사를 대표하는 문학평론가가 작가의 해설을 썼다. 특히 창비를 상징하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외딴방>이 묻는 것과 이룬 것’이라는 글에서 신 작가를 ‘한국문학의 보람’이라고 표현했다. 1996년 작가는 창비가 주는 만해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은경 교수(원광대 문예창작학과)는 “(수상을 계기로 신경숙 문학은) 창비가 상징하는 진보적 가치와 문학적 상징 자본을 일거에 획득하여 한국문학의 정상에 우뚝 서게 될 뿐 아니라 문학동네가 지니는 대중성 내지는 상업성과 연계해주는 중요한 가교가 된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6월23일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 권력의 현재’를 주제로 연 토론회에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신 작가의 표절 논란이 두어 차례 있기는 했다. <딸기밭>에서 유학생 안승준씨의 유고집 여섯 문단을 옮겼다는 지적이 나왔고, 작가가 인정했다. 박철화 문학평론가는 <기차는 7시에 떠나네>와 <작별인사>가 파트리크 모디아노와 마루야마 겐지의 작품과 구조나 세계관이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작가는 “전혀 다른 줄거리와 구조를 가지고 있다”라며 부정했다.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독자 수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등단과 출판의 기능을 가진 출판사와 문학잡지는 늘 문단의 중심이었다. 수많은 작가 지망생과 작가들 사이에 권위를 지닌 집단이다. 이응준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표절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문예지에 실어보려고 했지만 그 가능성이 제로라는 사실 앞에서 새삼 절망했다”라고 밝혔다. 한 평론가는 “칭찬도 비판도 비평인데, 후자의 기능이 쇠퇴했다. 편집위원이어도 출판사에서 나온 작품을 대놓고 비판하지 못하는 분위기는 맞다. 작가를 알고 나면 더 어려워진다”라고 말했다. 그 역시 문예지의 청탁에 비판적인 글을 보냈다가 몇 차례 글 수정을 요구받은 적이 있다. 그 뒤로는 비평하는 데 사리게 되었다.

문단 내부에서는 문학 권력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2000년대 초반 문학상 제도, 주례사 비평, 문예지 중심의 등단 제도 등 문학계에 관한 젊은 비평가들의 문제 제기로 문학 권력 논의가 활발했던 때와는 상황이 또 다르다. 이명원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도 지적하듯 “2000년대 문학 출판시장은 사망 직전의 마지막 생기와도 유사하게 여러 형태의 스타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일시적인 호황을 누린 듯 보였다”. 문학이 사그라진 시대, ‘문학 권력’의 실체는 무엇일까. 한 소설가는 “출판사들이 문화운동의 일익을 담당하던 시대와는 다르다. 문학에서 권력이라고 하면 해석 공동체를 기반으로 해야 하는데 그런 양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젊은 문학평론가는 “문단 권력이 실제 그렇게 강하지 않다. 모이는 문화가 많던 시절에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최근엔 해체된 걸로 느껴질 정도다. 문단이 이번 일을 다 알면서 숨겨준 것처럼 말하는데 평론가로서 부끄럽지만 몰랐다. 표절 의혹을 다 찾아 비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젊은 평론가 중에서는 저간의 사정을 몰랐다고 답하는 이들이 여럿이었다. 한 원로 작가 역시 “표절이라고 생각했던 이들도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세부적으로 명기된 부분까지 접하기는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과거 젊은 평론가의 문제 제기가 문단 내부에서조차 공유되지 못한 배경이다. 그는 “엄연히 문학 권력으로 지칭되는 자장의 바깥에서 이번 일을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생각해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학이 왜소화한 지금,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이 오래전부터 맞닥뜨린 또 다른 위기는 무관심이다. 독자들은 더 이상 소설을 찾지 않는다. 지난해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15위권 안에 한국문학은 <정글만리>(6위), <싸드>(10위), <두근두근 내 인생>(12위) 세 권뿐이었다. 올 상반기에는 20위권 내에 한국 소설이 없다. 이명원 교수는 “오늘의 얼마 안 되는 ‘본격문학’ 독자들은 전업 독자이기보다는 전업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 문학계간지나 월간지의 발행부수는 문학의 왜소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이응준 작가 역시 한 인터뷰를 통해 “정치는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다 보니 문제가 있으면 결국 드러난다. 하지만 한국 문단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대중은 무관심하다. 성채 같은 그곳에서 황당한 사건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벌어진다”라고 말했다. 한 서평가는 좀 더 자조적이다. “문학 권력에 대한 이야기는 상투적이고 음모론에 가깝다. 권력과 별개로 문학은 망해가고 있다. 출판시장 자체가 좋지 않고 문학 역시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안 좋은 상황에서 평론가들은 방해가 될 만한 말을 하지 않게 됐다”라고 말했다.

  

ⓒ민음사 제공 이응준 작가(위)는 신경숙 작가의 글과 미시마 유키오의 글을 비교하며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 이후 수많은 작가들에 관한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표절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자는 움직임도 있다. 이참에 좀 더 생산성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는 이들도 나온다. 도덕적 단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란 무엇인지 성찰할 계기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한 원로 작가는 “차라리 파렴치한 한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정리되면 간단한 문제지만 한국 현대문학의 백년 역사가 ‘해에게서 소년에게’ 이래 심하게 말하면 ‘서양 따라 하기’의 역사다. 문학의 기본 개념 자체가 ‘literature’의 번역 내지 번안이다. 1960~70년대 이래 문단을 이끌어온 리더 역시 영문학자·독문학자·불문학자들이다. 한국문학 자체가 원천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표절이라는 말이 어떤 차원에서 쓰여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나 사유가 없는 게 안타깝다. 다만 파렴치함의 뉘앙스만 남았다”라고 말했다.

1985년 등단한 신경숙 작가는 장편소설 7권, 단편소설집 7권, 산문집 3권을 냈다. 쉬지 않고 작품을 써온 셈이다. 이번 논란에서 임기응변식 절필 선언을 할 수 없다고 말한 작가는 본인에게 문학은 목숨과 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2011년 한국인 최초로 맨아시아 문학상을 받은 <엄마를 부탁해>에서 신 작가는 말했다. “누구에게나 아직 늦은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 내 식의 방법이 이 소설이다. 내 그런 마음이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첫 문장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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