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동 시인의 징역 2년 실형은 부당하다
지난 12월 1일 부산지법 형사 6부는 ‘희망버스’에 참여한 송경동 시인에게 집회와 시위에 대한 법률 위반, 특수공무집행 방해 치상죄 등을 사유로 징역 2년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내렸다. 이와 함께 박래군 인권재단「사람」대표, 정진우「노동당」부대표에게도 주도적 책임을 물어 각각 300만원과 500만원의 벌금형을 판결했다.
그런데 이 판결의 황당함이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엽기적인 사건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희망버스’의 종착지였던 한진중공업과 같은 그룹사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 씨가 자초한 ‘땅콩 리턴’ 사건이 그것이다. 민간인이 타고 있던 항공기까지 자신의 자동차인 양 강제로 회향시킨 이 사건은 노동과 상식에 군림하는 자본의 표상으로 손색이 없었다. 정윤회 게이트든 이 사건이든 공통적인 것은 공공재인 권력을 사유화고 전횡을 일삼는다는 점이다. 여론은 아직도 공분으로 들끓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 ‘을’ 들의 설움이 항공사에만, 비행기 안에만 존재하는 것인지.
2003년, 600여 명의 정리해고를 단행한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에서 김주익 지회장이, 뒤이어 곽재규 조합원이 목숨까지 끊으며 정리해고와 손해배상 청구에 항거한다. 그 희생이 유예시킨 것은 바로 남아 있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이었다. 하지만 2011년 회사는, 다시는 정리해고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다. 그래서 다시 크레인에 오른 사람이 김진숙 씨였다. 목숨을 건 단식으로 ‘을’ 들의 생존을 지키겠다는 한 사람을 살리겠다고 나선 게 ‘희망버스’였다. 어찌 한 사람의 목숨뿐일까. 5차례에 걸친 ‘희망버스’에는 우리 작가들은 물론 매회마다 수 천명의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함께 했다.
그러므로 송경동 시인과 두 명의 참여자들을 주동자로 몰아 일체의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은 그 나머지 사람들의 자율적 행동에 대한 모독이다. 사회적 타살이 명확한 정리해고를 능사로 삼고 저항하면 손해배상과 가압류라는 2차적 위해를 하는 짓이야말로 더 악질적인 사회악 아닌가. 그것은 ‘땅콩리턴’ 사건보다 수백 배는 악의적인 자본의 갑질 아닌가.
현 정권은 불안정노동의 해결 방안이 정규직들의 해고완화라는, 어처구니없는 무대책을 밝힌 바 있다. 이미 이 사회는 정규직노동자들의 해고마저도 충분히 자유롭다. OECD 국가 중 상위에 포진되어 있는 현실이다. 자신들은 천상에 닿을 만큼의 부와 권력을 쌓으려 하면서, 세습자본주의의 꼭지점에 영원히 앉고자 하면서 말이다. 노동자들만 하향평준화하라는 이 평등한 정책은 어떤 퇴행 사조란 말인가! 보라, 지금 우리 사회를. 어느 측면을 보더라도 이 땅의 노동현실과 미래사회는 말할 수 없이 참담하고 암담하다. 이 가혹한 현실에 질문하고 유대하고 행동하는 일조차 범법행위라면 이 부조리한 세상에 이의 없이 굴복하고 살라는 영구노예제에 다름 아니다.
지난 8월에는 가난한 시인에게 1600여 만원이라는 국가배상금 판결이 선고되었다. 최루액, 진압복, 경찰들의 병원비까지 다 청구된 금액이었다. 이 돈은 몇 편의 시를 써야 마련할 수 있는 원고료일까. 명색이 국가인데 어찌 일개 기업이 하는 짓과 똑 같이 고소와 손배 청구로 양심을 겁박하고 사지를 가두려는 것일까. 보수 신문의 사설 제목이었던 “‘희망버스' 폭력 주동자가 물어낼 돈이 1500만원뿐인가?”라는 주장에 부응이라도 하듯, 법원에서는 징역 2년의 판결을 내린 것인가? 이 사설의 마지막은 이렇다. “무슨 일만 터지면 멋대로 끼어들어 폭력 시위를 일삼고 사태를 악화시키는 전문 시위꾼들에게 울리는 경종(警鐘)이다.” 전문 시위꾼이라는 말이 참으로 모욕적이며 선동적으로 들린다. 타자의 불행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일은 파렴치한 일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다.
돌아보자. 국가의 일방적 자본 옹호와 법치의 불공정, 언론의 악의적 보도는 모든 노사관계에 편파적으로 끼어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 재무제표가 조작되고, 부당해고가 자행되어도, 공장을 해외로 빼돌리고, 손배에 시달리며 일터를 잃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도 정부와 언론은 어떤 책임을 졌던가?
당연히 그런 세상이라고 하기엔 울화가 들끓는다. 보통 사람들이 빠져나가기엔 빈틈이 없는 촘촘한 그물 같은 법치, 자본과 사익 세력들이 빠져나가기엔 그물코조차 없는 법망이 대한민국 아닌가. 벌거벗은 임금님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차라리 진돗개가 권력의 실세라면 훨씬 낫지 않을까 싶은 것이 당대의 민심이자 시심(詩心)임을 전하고자 한다. “정부가 제 역할을 했더라면 희망버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했던 시인의 진술은 희망버스의 본질적인 정당성이다.
자, 이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다시 ‘절망버스’를 띄워야 하는가.
2014년 12월 12일
한국작가회의
성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