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시인을 추방하지 말라
오늘날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숙고하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을 대하면서 허탈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중학교 검인정 교과서 16종에 대한 합격 통보를 하면서 수정․보완 권고서를 해당 출판사에 보냈다. 그 가운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문제 삼은 8개 출판사 11곳에 공통으로 해당하는 사안은 바로 시인 도종환이다. 수정․보완 권고서는 단순한 권고가 아니다. 이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를 빌미로 합격을 취소할 수도 있는 강제성을 지닌 권고이다. 다시 말해 도종환 시인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빼지 않는다면 검정 승인을 취소하겠다는 엄포다.
시인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추방하겠다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권고내용은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특정 인물에 대한 편파적 인식을 가져올 수”있거나 “시인이 정치인(국회의원 당선자)이므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지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도종환 시인은 이미 국민시인이다. 합격 통보를 받은 16종의 중학교 교과서 가운데 11곳에 도종환 시인의 시가 실렸다는 사실 자체가 그 증거이다. 만약 그의 시가 교과서에 실려 시인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우려했다면 기우임을 말하고 싶다. 어떤 ‘편파적 인식’도 가능하지 않다. 도종환 시인의 작품은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한국시의 중요한 성과로 회자될 것이다. 또한 시인이 ‘정치인’이기에 부적절하다는 주장 역시 우려스러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도종환 시인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만약 시인이 국회의원이 된 뒤에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쓴 시라면 충분히 이유가 되지만 교과서에 실리게 될 시들은 정치인 도종환 이전에 시인 도종환의 작품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추방하려는 시도는 시인을 추방하려는 시도와 결코 다르지 않다. 도종환 시인이 야당 국회의원이 아니었다 해도 만약 여당의 국회의원이었다 해도 이런 치졸한 이유를 들어 추방하려 했을 것인가.
시인은 현실 정치인이기 이전에 이미 삶의 정치인이다. 현실의 환부에 칼을 대기 이전에 자신의 몸에 칼을 대는 사람이다. 시인을 추방하는 사회는 가망이 없는 사회다. 만약 문제를 삼고 싶다면 도종환의 시 모두를 추방하라. 그의 책과 그의 글이 실린 것이라면 무엇이든 추방하라. 그런 무모한 시도를 감행한다면 우리 모두 그를 따라 시의 공화국으로 망명할 것이다. 그 공화국은 다른 어느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 군사독재시대를 웃음거리로 만들 정도의 파렴치한 검열의 공화국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는 바로 그곳에서 존재할 것이다.
2012년 7월 9일
한국작가회의
성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