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참사와 현 시국에 대한 한국작가회의의 입장
'용산참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과 비통함을 느끼게 했다. 한 중견소설가는 화마에 쓰러져간 철거민들의 영정 앞에서, 이것은 단순한 참사가 아니라 공권력에 의한 민중의 학살이라며 커다란 분노를 표출했다. 한 중견시인은 '그들에게 국민은 없었다'는 시적 발언을 통해 국민들을 무자비한 진압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공권력의 살인적인 폭력성을 규탄한 바 있다. 이것은 비단 두 문인들의 개인적인 생각이기보다는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우리 문인들 모두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현실에 대한 항의이기도 하고 공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의혹이기도 할 것이다.
용산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은 도시재개발 과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생존권을 둘러싼 갈등에 대한 해법으로 경찰이 대테러부대를 통한 물리적 진압을 선택한 데 기인한다. 이들 경찰들은 삶의 근거가 뿌리 뽑혀져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민중들을 간단히테러리스트로 간주했으며,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난 이후에도 '도심테러' 운운하면서 망자들을 모욕했고, 경찰에 대한 책임소재를 밝히는 대신 철거민들에 대한 무차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것은 단순히 망자들에 대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이 어떠한 정신구조 속에서 오늘의 민주주의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태라고 우리는 판단한다. 정상적인 공권력이라면 국민들과 경찰을 포함하여 무려 6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당한 사건에 대한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이 우선이며, 특히 대통령의 경우는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심심한 조의를 표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이 정부는 과잉진압의 책임자인 경찰청장 내정자나 행정안전부장관 등에게 전혀 책임을 묻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표적수사를 통해 고통 받는 철거민들의 폭력성과 배후설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사태의 합리적인 진실을 은폐․왜곡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참사의 직접적인 희생자가 되어버린 철거민들은 국민의 기본권을 오직 죽음으로써만 표현한 셈이 되는데, 이는 역으로 오늘의 민주주의가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에게 얼마나 극단적으로 배제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우리는 이번 용산참사가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가 처해 있는 위기를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노골적인 유린현상을 생각해 보면, 앞으로도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은 용산참사와 비슷한 고통에 가감 없이 노출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뿐만 아니라 이 정부 들어 위세를 더해가는 토건 및 투기사회로의 급격한 변화는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지탱하는 '정의'에 대한 감각을 더욱 마비시켜 갈 것이다.
무엇보다도 문학인의 입장에서 고통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은 오늘과 같은 민주주의의 퇴행이 궁극적으로는 인간다움에 대한 신뢰와 믿음에 대한 냉소를 낳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 문학인들이 용산참사를 포함하여 삶의 근거를 뿌리 뽑힌 민중들 편에서 다시금 문학을 사유하고 실천의 장으로 나아갈 것을 결심하게 되는 것은, 인간다운 삶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오늘의 현실 속에서는 민주주의의 복원을 위한 투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용산참사의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는 것과 동시에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투쟁하는 것은 물론이고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는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설 것임을 선언하는 바이다.
2009. 1. 31
(사)한국작가회의
|
성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