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대중들의 촛불항쟁의 열기 속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자못 초연해 보인다. 온라인 탄핵서명이 136만 명에 이르고 촛불항쟁에 참여한 시민만도 연인원 수백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 시점에서 과연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 현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시국인식이라도 있는 것인지 개탄스럽다. 대통령의 지지율만 봐도 오늘의 시민들은 대통령의 정상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이대통령에 대한 현재 지지율은 16퍼센트,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한 지지율 조사에서는 8퍼센트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더욱 가혹했는데 지지율이 고작 4퍼센트인 정부란 이미 국민에게 버림받은 정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국민들의 건강권과 국가의 검역주권을 훼손하면서 날치기로 통과시킨 쇠고기 협상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한 국민적 저항은 이미 광장에서 “이명박은 물러나라”는 구호로 통일되었다. 이 구호 속에는 쇠고기 날치기 수입문제를 포함하여 지난 3개월 간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무능과 오만, 시대착오적 ‘역주행’이 초래한 민주주의의 근원적 위기에 대한 국민들의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진심어린 우려가 담겨 있다. 제도 정치권과 무관하게 광장에 선 국민들의 목소리에서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탄핵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정부는 정권인수위 시절부터 이미 ‘독백정부’의 양상을 분명히 했다. 일방적으로 정부조직 개편을 밀어붙였으며, 영어몰입교육과 대운하건설을 포함한 다수 여론이 분명히 반대를 표시한 사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사회의 공복이어야 할 집권세력이 국민을 머슴 취급했으며, ‘고소영’ ‘강부자’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관료로서의 능력과 도덕성, 준법의지에서도 한참 미달된 측근세력을 대거 등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윤리를 위로부터 붕괴시켰다. 동시에 이명박 정권은 자신이 법률상에 근거하지 않은 인사압력을 통해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들의 퇴출을 강요했으며, 이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될 방송과 언론에 대한 사찰과 압력을 노골화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정부가 나서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역주행’도 심각했다. 오랜 노력을 통해 한반도에 조성된 화해무드에 찬물을 끼얹고 냉전적인 사고로 남북간에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했다. 일방적인 한미동맹 강화의 대가는 혹독했다. 독도 문제를 포함한 일본 우익들의 과거사 왜곡은 더욱 극심해졌고, 다극화된 국제질서의 한 축인 중국으로부터는 외교적 결례에 가까운 홀대를 받았다. 6자회담을 포함한 핵문제 해결에서도, 북미간의 외교통로는 확대된 반면 당사국인 한국의 정치적 빈공간은 줄어들었다. 이명박 정부는 오직 과거에 대한 ‘반대’로만 정권의 존재이유를 찾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이 정부와 집권여당의 캐치프레이즈 속에는 지난 시대에 대한 ‘원한’은 있어도 미래에 대한 ‘전망’은 찾아볼 수 없다.

정책능력도 무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시대에 걸맞지 않는 대토목공사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한반도대운하 계획’은 전문가 집단과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말을 바꿔 가면서 밀실에서 밀어붙이고 있다. 경제정책 역시 무책임하긴 마찬가지다. 예상되는 오일피크와 곡물가상승을 포함하여 국제경제의 전반적인 하강가능성이 능히 예측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고성장 정책에 대한 초초한 과시욕 때문에 고환율정책을 용인해, 물가폭등에 따른 제2의 IMF를 국민들은 진심으로 우려하게 되었다. 동시에 이명박 정부는 명백한 ‘공공성’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까지도 시장영역에 내 주는 정책을 획책하고 있다. 수돗물민영화와 건강보험 민영화 계획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한반도 대운하 사업 역시 그 핵심에는 이 사업을 통한 지가상승과 토건자본의 이익에 편승하는 정책임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귀’가 없다는 것이다. 이 정부는 국민과의 소통이 무엇인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민의’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어떠한 가치도 철학도 없는 ‘독재정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금번의 쇠고기 문제에 있어서도 국민들은 광장에서 ‘협상무효’와 ‘고시철회’, 그리고 ‘전면재협상’을 요구하고 있건만, 이 정부는 시간을 질질 끌면서, 민의를 완전히 배신하는 정권의 이익을 밀어붙이고 있다.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서서 ‘석고대죄’할 상황이건만, 촛불로 포위된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말이란 “나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아직 그 자리에 있다”는 식의 안이한 시국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작가들은 ‘말’을 사랑하고 ‘소통’과 ‘대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출범 100일 동안 ‘말’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고, ‘소통’과 ‘대화’의 정신은 휘발되었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독선과 오만, 무능과 무책임 앞에서 촛불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광장의 시민들은 이제 ‘횃불’이라도 들어야 이 정권이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을 깨우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다.

국민의 대다수가 등을 돌린 이명박 정권은 지금이라도 광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정권은 한시적인 것이지만 국민들은 영원하다. 국민의 소리를 묵살하고, 국민에게 대항했던 정권의 말로는 비참했다. 민심은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받드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즉시 광장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쇠고기 재협상을 포함한 이 정부의 오만한 정책을 즉각 철회하고 국민에게 항복하라. 우리 작가들도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국민들과 함께 할 것이다.

2008. 6. 7
(사) 한국작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