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 심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응모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시 부문 당선자 - 박한라 ■ 소설 부문 당선자 - 전민정 ■ 시 부문 당선소감   병으로 인해 개미 다리조차 튼튼해 보이고 부러웠던 시절,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을 때 오직 신과 시만 손을 건넸다. 이상했다. 약보다 시가 내 혈액을 돌아 나를 낫게 했다. 삶이란 이해되지 않으므로 오해할 수 있어 좋다. 그러므로 나는 시를 꾸준히 먹어야 오래 살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나도 그 누구에게 처방을 받았듯이 더 큰 아픔을 주는 시의 처방을 내려주고 싶다. 아픔은 더 큰 아픔이 있을 때 낫는 것. 남의 불행이 나에게 씁쓸달콤한 감각으로 전이해오는 악마의 슬픔을 다 같이 누렸으면 좋겠다. 아니, 나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을 거라는 예지로 두려웠으면 좋겠다. 다른 말 필요 없이 진실로 시를 사랑하므로, 나는 시로서 계속 번식하고 진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게 산소호흡기를 달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게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1년 전 시를 포기하고 싶을 때 나를 붙잡아주시고 ‘너의 시 쓰기는 탁월하다. 그러니 자신을 굳게 믿어라’라고 믿음의 암시를 주신 김명인 선생님께 한없이 감사드린다. 처음으로 너는 시를 잘 쓴다고 인정해주신 이재무 시인님과 대학생 시절 내가 절망했을 때 따듯한 인간애로 상한 마음을 낫게 해주신 손택수 시인님께도 감사드린다. 글의 기반을 닦아주신 김완하 교수님과 정기철 교수님, 항상 믿어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한 부모님과 대학원 지도교수님이신 이혜원 교수님께도 깊은 감사드린다.   ■ 시 부문 심사평   예년에 비해 응모작이 많았다.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감각의 드라마와 미디어와 영상의 시대에 가려 시의 구심력이 사라져간다는 세간의 흉문에 상관없이 여전히 시를 그리워하고 시가 줄 수 있는 위안과 희망을 믿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응모작의 성향이나 시적 수위의 편차는 조금씩 다를 수 있어도 전체적으로 관통되어지는 신뢰가 있었다. 시가 기능할 수 있는 인간의 마음 한 구석에 해당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일을 이들은 자신의 삶속에서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총 500여 편을 검토한 후 최종적으로 압축되어 올라온 작품들은 <고양이 안테나> <붉은 기호의 행방> <누구나 갈비뼈에 몸을 묶고 산다> 였다. 민경란의 <붉은 기호의 행방>은 이미지가 활달하고 언어를 다루는 감각이 돋보이는 시였다. 하지만 자신이 대상을 통해 시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모호한 점이 아쉬었다. 좀 더 말하고 싶은 것을 뒤로 숨기고 정밀한 이미지로 집중한다면 새로운 시로 탄생할 거라고 믿는다. 이인호의 <누구나 갈비뼈에 몸을 묶고 산다>는 시어를 고르는 수준이 섬세하고 따뜻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시였다. 하지만 동봉한 다른 작품들 중에 상투적인 표현과 일상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진술들이 눈에 거슬렸다. 세계를 인식하는 통찰력과 함께 신인으로서 신선한 패기가 보태어진다면 좋은 시로 거듭날 것이라고 믿는다 박한라의 <고양이 안테나>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에 별 망설임이 없었다. 응모된 작품 중 눈에 띌 정도로 압도적인 작품이었다. <고양이 안테나>는 고양이털이 수신하는 주파수의 시적 발상이 신선했고 마지막까지 호흡을 놓치지 않고 시적으로 전개해 가는 완성도도 높은 작품이었다. "고양이는 털을 곧추세워 계절을 탄 바람의 끝자락을 강신호로 받아낸다" 같은 표현이나 "전파를 헤엄쳐 온 밤하늘의 음량이 점점 높아진다" 같은 시행은 숙련된 신뢰를 주었다. 응모한 다른 작품의 고른 수준 또한 이 시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시의 매혹을 아는 시인이라 조금만 더 집중한다면 멋진 결실을 얻을 것이라 여긴다.      <심사위원 공광규, 김경주, 정우영>   ■ 소설 부문 당선소감   퇴고를 본 거라 여유가 있을 줄 알았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수정을 해야겠다 싶어 아침부터 노트북을 켜고 원고를 본다. 슬슬 시간이 다가오니 내용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늘어진 문장을 줄이고, 반복되는 문구를 빼고, 오자를 잡고, 띄어쓰기를 한다. 원고가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낱말만 보일 뿐 그 안의 내용은 뭔지, 내가 애초에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는지는 도통 보이지 않는다. 익숙해져서라고 위로도 해보지만 역시나 엣지 있는 글은 아닌가보다. 이 같은 수고-역시나 신경이 예민해지고 공황장애가 다시 도지려는지 손끝이 저릿하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 글은 부족하고 만들어지고 있다. 세 번째 투고다. 혹시나 오늘 부치면 기간을 넘어서는 건 아닐까, 한두 시간이라도 빨리 우체국에 가서 부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초조감이 밀려온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보통 오늘 부치면 내일 도착한다. 그런데도 번번이 그렇다. 우체국. 대기번호표를 뽑고 손님용 벤치에 앉는다. 내 옆으로 두 명의 여성이 앉는다. 그들도 나와 같은 노란색 서류봉투를 들고 있다. 초췌한 모습, 이들도 어딘가에 투고하기 위해 온 작가들이다. 우체국이 원고 접수처로 바뀐다. 우체국은 편집실이고, 대기자들은 다들 원고를 끌어안고 순서를 기다린다. 이런 과정을 몇 번이나 더 거치게 될까. 두 인물이 말을 건다. “헛수고를 하는구나, 나이가 몇인데!” “늦긴 했지만 팔십까진 산다잖아. 아직 실수할 시간은 있어.” 그리고 제3의 인물이 끼어든다. “다 잡생각이야. 글 쓸 때의 충족감만 떠올려.” 현실의 나는 세 가지 의견 모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만 글이 세상에 나가기 위해 거쳐야 할 무수한 과정 앞에서 나는 너무 초라하고 그리고 외롭지 않은가, 그것만은 알아달라고. 우체국 직원이 앞 손님에게 묻는다. “안에 뭐가 들었어요?” 손님은 뭐라고 대답한다. 나에게도 직원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뭐라 답할 것인가? ‘서류, 문서 아니면 종이?’ 문득 ‘원고’라는 단어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내 자신을 본다. 씁쓸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직원은 나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4호선 지하철 안에서 수상소식을 전화로 전해 들었다. 속으로는 “진짭니까? 저 맞아요? 장난전화하시는 거 아니죠?”하고 반문했지만 겉으론 침착하다. 작품에 대한 확신을 떠나서 이렇게 평범한 오전 시간에, 그렇게 평범한 목소리로 예상치 못한 사건을 터트리시다니. 가히 글 쓰시는 분답다. 나는 까르륵 소리를 지르지 못한 대신 미친 여자처럼 내내 헤죽거렸다. 글을 쓴다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없는데, 왜 그 자연스러운 일을 이제야 발견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문학이 나를 원하지 않더라도 지금 확실한 건 내가 글을 원한다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배우고, 글을 배우고, 세상을 배우고 있다. 머리와 어깨에 힘을 빼고 호흡을 하듯이 지금처럼만 쓰자고 다짐해본다. 인생의 맛을 알려주신 상인 이재권님, 박진효님, 윤현정님 그리고 항상 부족한 제 글에 격려를 아끼지 않은 복숭아님, 길님, 여우님. 함께 문화공간 살림을 꾸려가는 능소화님, 심심님, 상옥님 그리고 이제 갓 사춘기를 벗어난 진호와 동생의 업종변경을 누구보다 기뻐해준 두 언니와 오빠에게 감사의 말씀드린다. ■ 소설 부문 심사평     백 편이 넘는 소설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한 편만을 추려내는 일은 역시 어렵다. 응모된 단 한편이 갖춘 완성도를 볼 것인가, 아니면 당장은 미숙한 부분이 보여도 앞으로 숱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겠다 여겨지는 가능성을 볼 것인가, 심사를 보는 내내 갈등을 해야 했다. 세 편이 남았다. 김민 씨의 「2월의 오전」에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 어떤 응모자들보다 문장에 격이 있었고 인간의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쉽게 모아졌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에 있어서 분명한 문제가 있었다.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지나치게 서술이 관념화되고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이럴 때 등장인물의 서술은 흔히 중얼거림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작품 역시 그것을 넘어서지 못했다. 잦은 말줄임표는 독자의 호흡을 끊었다. 아쉬운 부분이다. 이수경 씨의 「출구」의 도입부는 몹시 매력적이었다. 만취 상태로 운전을 하다 경찰서에 잡혀 온 남자는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아내는 "누구든 당신 건드리기만 해봐." 소리를 지른다. 마치 연애시절의 그녀를 다시 본 것처럼 울컥해진 남자는 집에 돌아와 아내의 무릎을 베고 눕지만 아내는 신경질적으로 다리를 흔들어 남자의 머리를 쿵, 떨어뜨린다. 남자는 집으로 돌아왔고 아내도 더 이상 착한 애인이 아닌 것이었다. 문장은 담백하고 깔끔하며 리듬감이 느껴진다. 도입부는 "그는 운전석도 조수석도 아닌, 위치도 속도도 가늠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라며 마무리된다. 그들에게는 대체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지만 여기서부터 소설은 영 생뚱해진다. 긴 시간 유충생활을 겪는 매미, 가난한 동네에 퍼지기 시작한 머릿니, 뱀의 먹이가 될 운명인 생쥐 등등의 진부한 상징들이 연이어 등장을 하고는 남자가 노조설립을 위해 철탑 위로 올라가는 상황을 마지막 몇 문장으로 내어놓는 방식은 읽는 이들을 다소 황당하게 했다. 이야기의 얼개를 짜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오랜 습작기를 거쳐왔을 것이라는 믿음이 갔지만 이 소설 한 편만을 본다면 당선작으로 밀기에 부족함이 있었다. 훨씬 나은 다음 소설을 기대한다. 오후 씨의 「1인용, 매트리스」는 무심한 듯, 하지만 때로는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에피소드들을 이어나간다. 짝사랑한 상대의 1인용 매트리스를 얻어온 주인공은 그 침대에서 상대의 정사를 상상하는가 하면 새로운 애인의 아쿠아포비아를 치료한다는 핑계로 그 매트리스에서 밤을 보내기도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 애인의 아쿠아포비아를 치료하는 과정은 참신하고 감각적이다. 물론 1인용 매트리스의 의미에 조금 더 천착할 필요가 있었다.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이끌기 위해 양성애나 불륜을 내세운 혐의도 엿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 소설에서 발랄한 소통을 바라는 등장인물들을 볼 수 있었다. 한때 누군가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던 1인용 매트리스에 이제 혼자 남아있어도 다시금 관계를 꿈꾸는 사람들. 그래서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새 소설가가 아름답고 시큰한 새 등장인물들을 데리고 독자들에게 자주 나타나주기를 기대한다.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심사위원 김도연, 김미정, 김서령, 홍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