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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 지 벌써 10여년이다. 처음 소설가가 되었을 때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는데, 그건 바로 내 소설에서는 ‘그녀’라는 낱말을 쓰지 않겠다는 거였다. 그 다짐을 여태까지는 잘 지켰다. 그런 이유로 내 소설에서는 남자건 여자건 3인칭으로 지칭될 때는 모두 ‘그’이다. 물론 이런 다짐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녀’를 포기한 순간부터 이 낱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몇 배나 더 노력해야 했으므로 언젠가는 지칠 날도 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만의 원칙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나는 어느 특정 출판사의 책은 결코 사지 않는다. 그 출판사는 독재자의 자식이 운영한다. 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보면 피냄새가 맡아진다. 꼭 갖고 싶은 책이 그 출판사의 것이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나를 보며 지인들은 혀를 찬다. 나 역시 그들이 혀를 차는 이유를 잘 안다. 가뭇없이 스러진 옛 다짐들도 참 많다. 커피와 콜라를 마시지 않겠다는, 청바지를 입지 않겠다는, 스포츠 신문을 읽지 않겠다는 사소한 다짐들마저 세월이 흐르면서 무뎌졌고 이제 외려 그런 것들을 즐긴다고까지는 못해도 멀리할 수는 없게 되었다.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느냐보다 스스로 다짐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어기면서 산다는 사실이 치욕스럽다. 그러나 아직도 지켜야 할 일들이 많다. 그대가 어떤 원칙을 품고 사는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그대에게만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타인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지키고 살아야 한다.
시련이 없을 때 우아해지기란 퍽 쉽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우아해지기란 쉽지 않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만의 원칙을 허물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뇌하는 그대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희생을 감내한 그대가 누구보다 우아하다.
<2010.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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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