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신은 경문에 막히고 사람은 인정에 막힌다는 속담이 있다. 제아무리 거침없는 귀신일지라도 꼼짝 못하게 할 무언가가 있듯이 강직한 사람도 인정 앞에서는 물러지기 십상이라는 뜻이다. 사람이라면, 아니 사람이니까 인정에 끌리는 건 당연하달 수도 있다. 굳이 성함을 밝힐 필요도 없이 글 쓰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문단의 한 어른 이야기가 떠오른다.
몇몇 문학잡지 편집자, 대학교수, 작가 혹은 출판사를 가리켜 문단권력이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 지 꽤 되어 이제는 그 말이 낯설지가 않다. 외려 문단에서는 이러한 비판을 진부한 담론으로 취급하는 걸 넘어 아예 잊고 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니까. 하지만 문단권력이라는 말이 고안되기 훨씬 전부터 그런 비판의 여지는 있었고 지금도 있다. 이를테면 신춘문예 심사위원이라면 어떨까. 평생 책 한 권 안 읽는 이들도 새해 첫 신문에 등장하는 소설이나 시는 곁눈질로라도 읽는다. 그래서인지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이들의 수는 해가 갈수록 줄기는커녕 늘었다. 수많은 사람의 당락을 좌지우지하는 자리라면 그 권력이 꽤나 만만치 않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그 어른은 오래전부터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면 당신의 제자들에게 일러준다고 한다. 응모하라는 게 아니라 응모하지 말라는 거다. 아는 이가 응모하면 아무리 작품이 좋더라도 당선시켜 줄 수 없다는 게 그 어른의 지론이었다. 작품이 좋다면 어디서든 어떻게든 당선되리라면서. 인정 앞에 흔들리는 걸 두고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추측컨대 그 어른은 우리가 흔히 일컫는 인정과는 다른 형태의 인정에 끌렸으리라. 혈연·학연·지연을 바탕으로 삼은 인정이 아니라 그가 알지 못하는 뭇사람들의 고달픔까지 염두에 두는 그런 더 커다란, 아니 어쩌면 본래 그런 의미였을 인정에 말이다.
<2010. 09. 07>
|
문학 in 미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