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리의 모든 감정, 혹은 사건에 대한 인식의 과정마저도 ‘몸’을 빌어 누나에게서 들고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식물이든, 사람이든, 아니면 자연현상이든, 모두가 타인의 몸인 동시에 누나의 몸이었던 것일테죠. 적어도 시를 쓰는 동안에는, 그러니까 시인 유현숙에게 있어서는 말입니다 ‘몸’이 시로 가는 통로였던 셈이겠습니다.
하기는 몸을 통하지 않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존재하겠습니까, 우리의 오감이 몸을 떠났던 적이 있었겠습니까, 정신과 육체라는 두 명제중에서 당연히 무게의 추는 정신 쪽에 더 기운다 생각하던 제게 있어서 누나의 시들은 잠깐 재고의 시간들을 제게 던집니다. 이런 표현은 어떨까 싶습니다. 몸으로 일궈내는 시, 감히 누나의 시들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만은 이 시집의 표제 시 또한 그런 관점에서 읽어봅니다. ‘오래되’고 ‘낡‘고 ’헐‘은 미라에게서 만년의 그리움을 느끼는 화자는 결국 ’어느 골짝의 만년빙 위에 누워 등이 얼‘수밖에 없는 필연적 운명인 것이겠지요. 그 그리움은 당연히 ’살갗과 살갗이 주고 받은 이야기‘일 것이고요. 온몸으로 일궈내는 시적 촉수들로 인하여 시는 발화하고 어느덧 저는 만년빙의 외치 앞에 서 있습니다. 당연히 ’혀는 젖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말하지 못한 그리움이 시를 읽는 저의 입 안에서도 박하향처럼 가득 번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천서봉 의 시집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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