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연민과 사랑이 가득한 시선, 단정한 시편들”

이병룡 시인의 시는 “발효를 멈추지 않는 포도주” 같다. 연민과 사랑이 가득한 시선으로 인간과 뭇 생명들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며, 단정한 언어로 “소외된 뒤편”의 상처를 따듯하게 어루만진다. “열어야할 문이 아직 남아있”다는 그는 “아직도 밥줄에 목을 매달고 있는” “완전변태”하지 못한 자신의 생을 “붉은 울음을 토하며” 돌아본다. 그리움을 통해, 모성과 생명의 근원을 별자리 찾듯 “기억의 입자들을” 더듬어가는 시인은 “내 안의 마디들은 무디어졌”다고 통탄하지만, “하늘마저 느끼지 못할 정각 12시 간극”을 느끼는 그의 시는 젊고 예리하다. “제 몸에 스스로 칼을 꽂”듯 써내려간 이 “붉은 상처의 사록(史錄)”은 “치유의 힘이 있어” 오래도록 “빛날” 것이다.

―이영혜(시인ㆍ치의학박사)

“얼굴 없는 얼굴에 얼굴을 부여하는 시인”

“조선 궁녀의 발자국”과 “하늘에 걸린 사걀의 달”을 보는 ‘견자(見者)’ 이병룡 시인은, 발끝을 세우고 ‘아직’ 팽팽한 그리움의 화살을 허공에 날려보낸다. 그 행위가 시쓰기라면, 시인은 “내게로 와 처음 울었던 향기”를 ‘상기(Erinnerung)’하기 때문에 쓴다. 원래 있었던 것을 향하는 것, 그것은 상실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리워하는 ‘동경(nostalgia)’이 아니다. 시인은 “눈자위에 팽하니 겉도는 시(詩)”를 “목이 날아가도 정사(正史)를 써야 하듯” 쓴다. 토란잎에 매달린 물방울을 “유서 한 장 없이 덧없이 흩어진 생의 기록들”로 보는 시인에게, “세상은 지루할 틈이 없”다. 새벽인력시장에서 납작 엎드린 가자미, 혁명의 전류가 흐르는 박씨, 별에서 온 자폐아 등 수많은 타자들이 얼굴 없이 시인에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이제’ 시인은 그 얼굴 없는 얼굴에 얼굴을 부여한다. 그것이 시쓰기이자, ‘처음 울던 향기’의 근원을 찾는 시인의 윤리일 것이다.

―김남규(시인)

<저자 소개>

서울 출생으로 시집 󰡔뒤셀도르프에서 만난 첼리스트󰡕가 있고, 한국작가회의 회원, 시시 동인, 숨은 시인의 사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차례>

시인의 말 05

제1부

찔레꽃 당신은 누구세요 13

궁녀 발자국 15

퇴출의 바다 17

패화의 빛깔 19

회전의 변증법 21

그 횡단 23

맹어 이야기 25

서울역 별리 27

불완전변태 29

12시 정각에 서있다 31

새떼들의 천국 33

우체국 가는 길 35

매미가 우는 이유 37

김씨의 미소 39

선구자 41

제2부

별에서 온 아이 45

사록史錄 47

아들의 계곡 49

연막 소독차 51

폐사지의 계단 53

동행 55

요통 57

나무의 수행 59

밥줄의 고백 60

아바타의 심로 62

도강 64

그 곳 66

곰소 염전에서 68

허기 70

거제도 몽돌 72

제3부

백이숙제伯夷叔弟 77

순록의 표류기 79

머뭇거리는 방언 81

알밤 떨어지는 소리 83

자목련 며느리 85

투명 87

페이지 터너, 어머니 88

혀의 불용기 90

오후의 길목에서 92

달팽이관 외줄타기 94

유리 도시 95

강문포구의 나무새 97

어떤 탑돌이 99

남해의 등불 101

치유 103

제4부

기숙이의 반달 107

선문답 109

칼을 맞다 111

시간의 강 113

동승 115

주홍글씨 117

내 마음의 분수 118

피조물로 사는 법 119

질문 121

오래된 발길 122

숲속의 기도 124

뜨거운 윤회 126

울림의 소고 128

잔상 130

앙코르와트 아리랑 132

■해설_질문들―잊혀진 것들 혹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하여/전해수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