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서의 여덟 번째 소설집 [시계가 걸렸던 자리]
(창작과비평사, 2005년 10월 24일)

소설가 구효서의 여덟 번째 단편집이다. 2005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소금 가마니'와 2004년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에 선정된 '시계가 걸렸던 자리'를 비롯해 총 아홉 편의 소설을 수록했다. 표제작 '시계가 걸렸던 자리'는 의사에게 시한부 판정을 받은 마흔일곱의 '나'가 출생일시에 맞추어 고향집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탄생과 소멸의 모티프가 두드러진다. 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전쟁과 질병, 억누를 수 없는 내면의 공허가 죽음의 상상과 체험을 거쳐 평온한 위안과 화해로 이어진다. 그 상상은 또다른 '나'를 재발견하는 동시에 '나'의 경계를 허물어뜨려 자신의 삶에 대해 반성하고 긍정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힘을 발휘한다.

구효서 1957년 경기도 강화 출생.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마디' 당선. 1994년 한국일보 문학상, 2005년 이효석 문학상 수상. 지은 책으로 소설집 [노을은 다시 뜨는가],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과 산문집 [인생은 지나간다], 장편소설 [늪을 건너는 법], [낯선 여름], [비밀의 문], [남자의 서쪽], [메별]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앞으로 더이상 내디딜 길과 땅이 이제 자신 앞에 영원히 없음을, 그녀는 마지막 흐느낌 뒤에 깨달았다. 끝. 세월의, 세상의, 꿈 혹은 생존의 끝이라는 느낌이 그녀의 명치 속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절망의 순간에, 느닷없는 안락과 충일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

그 기묘한 기억과 느낌의 자기력에 이끌린 그녀는 마리나와 함께 시베리아의 끝 스꼬보로지노에 닿았다. 자작나무 숲이 그녀를 완강하게 붙들었다. 그후부터 자작나무 숲은 언제나 그녀에겐 안락과 충일의 바리키노였다. 그곳에서는 무한히 큰 공허가 활짝 열렸다. 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일러 세상 끝에 선 쓸쓸한 충만이라고 했다.

-- 본문 102쪽 '자유 시베리아' 중에서


::작가의 말

나는 그동안 쉼없이, 다만 소설을 썼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 소설에 가해지는 영과 욕을 생명체의 존재증명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 구효서


::추천글

구효서의 소설이 불러올리는 신비스런 상상적 탈존(脫存)의 원천은 우리의 삶과 현실의 속절없는 공허함을 속 깊이 자각하는 허무주의적 감각이다. 삶의 공허에 대한 무력한 자각은 무한(속의 '나')에 대한 감각을 불러오고, 그리하여 다시 반성적 초월의 감각을 일깨우며, 삶과 세상의 어두운 그늘에 귀를 열어놓게 한다. 구효서의 소설은 이로써, 우리가 떨쳐버릴 수 없는 운명적인 그늘에 대한 시선의 깊이를 얻어가는 중이다. - 김영찬 (문학평론가)

그새 십년도 넘은 일인가. 진달래 필 무렵 산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묻고 돌아왔으되, 막상 그는 울지 않았다. 다음날 텔레비전에서 '정은아의 아침마당'이란 프로그램을 보다 그는 급기야 통곡했다. 정은아 아나운서가 입고 있는 분홍색 원피스 때문이었다고 한다. 소설가 구효소넌 그런 사람이다. 그러하니 소설도 마땅히 그러하다. 전작 <도라지꽃 누님>이 그러했고, 이번 소설집에 실린 '소금 가마니'와 '시계가 걸렸던 자리' 또한 그러하고 이러하다. 사람이 저 버리고 어디 가겠는가. 소설가로서 그가 누리는 별명은 '팔색조'다. 어떤 소설의 국면에 처해서도 자기 나름의 색깔로 이야기할 줄 아는 작가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야기 솜씨뿐 아니라 그는 노래 솜씨도 어지간히 유별나다. 짐짓 그러할 때, 그 목소리에서 스며나오는 누룽지 같은 고슨내! - 윤대녕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