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과 존재의 균열을 예리하게 조망한 이창수 시인의 첫 시집 [물오리 사냥]
(천년의시작, 2005년 4월 5일)

2000년 계간 『시안』으로 등단하고 2004년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한 이창수 시인의 첫 시집. 현대 산업문명의 짙은 그늘 아래 뿔뿔이 흩어져버린 가족공동체의 명암을 극명하게 드러낸 이 시집는 가족들 사이에 잘 보이지 않으나 현실이 돼버린 ‘균열’을 노래하고 있다.

특히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가족 구성원간의 균열은 물론이고 자아와 세계의 균열, 진솔한 삶과 허무한 시간의 균열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섬세한 서정과 사물에 대한 치밀한 관찰력으로 창작활동을 펼치면서 문예지를 통해 독자들과 틈틈이 만나왔던 이창수(36) 시인의 첫 시집 『물오리 사냥』은 대상과 존재의 ‘균열’의 틈을 예리하게 조망한 시적 담론들을 펼쳐보인다.

또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과 허무의식, 고향 등의 물리적 공간을 통해 삶과 죽음 사이의 원형, 이상향과 갈수록 혼탁해져 가는 생명성의 문제들에 천착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부재했던 시간과의 사투를 벌이는 상흔들을 투영해내고 있다.

‘할머니를 중심으로/우리 가족은 카메라를 보고 있다/아니, 카메라가 초점에 잡히지 않는/우리 가족의 균열을/조심스레 엿보고 있다/…(중략)…/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담장처럼/잠시 후엔 누가 붙잡지 않아도/제풀에 지쳐 제각각 흩어져 갈 것이다’(시 「가족사진」 중에서)

이승하(중앙대 교수) 시인은 “사람의 체온이나 채취가 느껴지지 않는 시가 많은 요즘, 시인의 시작품들은 따뜻함을 특징으로 한다”며 “따뜻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가족을 형상화하는 등 촌스러움과 넉살이 담겨 있다”고 평했다.

이창수 1970년 전남 보성 출생. 2000년 『시안』 등단.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수료. 2004년 대산창작지원금 수혜. 광주대·중앙대 강사.

::작가의 말

정확히 십 년 전 내가 맨 처음으로 썼던 시가 「물오리 사냥」이었다. 시를 전혀 알지도 못했고 직업시인으로 살아갈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무슨 영감을 얻은 것처럼 나는 「물오리 사냥」이란 단 하나의 제목으로 수백 번을 썼다가 지웠다. 하지만 이 수백 번의 시작을 통해서도 나는 물오리를 잡을 수 없었다. 아쉬움 끝에 지난 여름에 얻은 동명의 시 한 편으로 제목을 삼았다.

개인의 아픔과 역사의 아픔이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슬픔은 유전되는 것이어서 세월이 흘렀다고 자연스럽게 치유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인으로써 내 의무는 묻혀버린 슬픔을 달래주는 것이리라. 나를 여기까지 흘러오게 만든 인연들에게 감사한다. 내 시는 온전히 이들의 것이니 내 안의 무수한 물오리들로 자란 이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사뭇 궁금하기만 하다. 그곳에서 나는 수정처럼 맑은 영혼의 새를 만나게 되리라. - 이창수


::추천글

이창수의 시를 읽으면 行間마다 숨어 있는 대숲이 눈에 어리고 생애의 흔적이 아프게 묻어있는 우리나라 張三李四의 미운 얼굴들도 막무가내로 떠오른다. 남에게는 짐짓 위태위태하게 보일만큼 無政府的인 삶의 방식을 택한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치밀하기가 이를 데 없는 高度의 시적 상상력을 발산하고 있는 이창수는 정녕 이 시대가 끌어안은 가장 참신한 文學的 邂逅가 아닐 수 없다. 시집 뒷 표지 추천의 글이니까 인사 삼아서 하는 말이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최대로 불행한 사람이다. 좋은 시를 읽고 그 시가 너무 좋아서 가슴이 뛰어보지 않은 사람은 독자도 시인도 아니다. 긴가민가하는 사람은 「운주사 돌부처」에 나오는 ‘수정란 같은 돌멩이 하나’가 지닌 정교한 시적 형상화의 오솔길을 아주 호젓하게 따라가 보기 바란다. 이창수는 밉지만 이창수의 시는 정말 좋구나! - 오탁번(시인, 고려대 교수)

시끄럽고 요란한 것들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시도 마찬가지여서 시끄럽고 요란한 것들이 문단을 온통 채우고 있다. 그럴수록 고요하고, 차분하고, 해맑은 시들이 그리워지지 않을 수 없다 이창수의 시들은 우리의 이러한 그리움을 십분 충족시켜 준다는 데 정작의 의의가 있다. 촉촉하게 젖어오는 조용하고, 슬프고, 쓸쓸한 서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그의 시들이다. 그의 시들에는 이처럼 도시의 황무지를 떠돌면서도 고향의 풍요를 끝내 잊지 못하는 자아가 불러일으키는 애틋하고, 침착하고, 무구한 서정을 읽는 즐거움이 있다. 요즈음의 젊은 시인들에게선 너무도 보기 힘든 이창수의 시 고유의 심미적 아우라에 크게 감동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리라. - 이은봉(시인, 광주대 교수)

사람의 체온이나 체취가 느껴지지 않는 시가 많은 요즈음, 이창수의 시는 따뜻함을 특징으로 한다. 그의 시는 상당수 촌스럽거나 느슨하다. 하지만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기분 좋은 촌스러움과 넉살이 담겨 있다. 시 속에는 따뜻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는 가족이 나온다. 축축이 젖은 손으로 악수하며 체온을 확인하는 이웃이 있다. 자연의 일부로서 제 깜냥 생명력을 구가하는 생명체들이 있다. 세상이 부조리함을 시인인들 왜 모르랴. 하지만 그의 시에 나오는 뭇 생명은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존재이다. 생명은 또한 상대방으로부터 ‘나’란 존재를 인정받을 때까지 끈질기게 버티는 뚝심을 갖고 있다.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