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숙 소설집 <별들의 감옥> 소개

40대에 문단에 발을 얹은 후 문학지에 발표했던 작품들 중 10편과 미발표작 1편을 첫 소설집으로 묶었다.

작년 여름 남편의 44년만의 무죄판결을 내 귀로 듣고 법정을 나오면서 비로소 나도 이제 내 몫을 살아도 되겠구나 생각했다. 당자만이 아니라 집안 전체가, 그야말로 사돈의 팔촌까지 반세기 가까운 오랜 세월을 유죄의 그늘에서 살아 왔던 것 같다.

그 질긴 수난은 내 반생의 영혼 속에 굵은 대못처럼 박혀서 아픈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 대못들은 단순히 내 표피를 짓물러뜨리기 만 한 것이 아니고, 30대 이후의 내 뼈와 근육 일부로 육화되어 나를 지탱했던 원심력이면서 내 문학에 드리운 암영이기도 했기에 함부로 들추기가 늘 주저되곤 했다. 피붙이들도 지인들도 차라리 몰라주기를 바랐던 나의 치기였을지도 모르고, 우리를 핍박한 이들을 아직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참혹하고 부당한 굴레를 단 한 번뿐인 인생 막바지에서 겨우 벗을 수 있었던 게 생각할수록 원통하다.

(<별들의 감옥> 서두 ‘작가의 말’에서)

32년만의 첫 창작집

위에 인용한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소설집 <별들의 감옥>은 40대에 등단한 고경숙이 등단 32년 만에 출간한 첫 창작집이다. 유신시대부터 전두환 독재시기까지의 역사적인 격랑 속에서 운동권 학생이나 민주 투사들의 회고담은 이미 너무나 널리 다뤄져 왔지만, 역사의 그늘에서 생존투쟁에 당면해야 했던 한 여성작가의 육성을 담아낸 작품은 드물다.

세칭 ‘문인간첩단 사건’에 연루됐던 저자의 남편은 1967년 이후 50여 년을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최근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를 펴낸 임헌영이다. 삼엄한 군정치하에서 1974년과 1979년 두 차례 투옥된 후 1998년에야 사면 복권되었지만,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오로지 문필에 의지하여 평생을 핍박받는 존재로 살아야 했던 수난의 지식인 남편을 대신해서 작가는 평생을 직업인으로 남아야 했다.

서른 살 되던 해 시작된 참담한 수난으로 작가는 거의 반세기 동안 불온한 정권과 남성지배 사회에서 그나마 직장인으로 연명하기 위해 온갖 탄압 행태와 마주해야 했었다. 비상계엄하에서 ‘간첩’ 누명을 쓴 작가와 가족들이 어떻게 학대당하는지를 낱낱이 채색화처럼 기록한 소설들의 현장은 용광로처럼 젊음이 들끓던 대학과 고교였다. 그러므로 그 증언자로서 작가에게 각인된 악몽들은 우리의 어두운 역사와 맥을 댄 생생한 실록이면서 부당한 권력의 민낯일 수밖에 없다.

몸으로 겪은 사건 가족의 증언

11편의 작품 중 <어머니의 천국>, <푸른 배낭을 맨 남자>와 <5박 6일>, <새가 된 아이>는 작가 자신이나 가족들의 수난이 모티브가 된 자전적 작품들이다. <푸른 배낭을 맨 남자>가 세칭 ‘남민전 사건’으로 남편이 검거되던 시점의 운명적 폭풍을 다룬 것이라면, <5박6일>은 우리 소설사에서 피상적으로만 등장했던 이 시절 대학 사회의 이면사와 어용 교수의 실상, 해직교수들의 수난, 대학생들의 애환 등 1980년 세칭 ‘서울역 회군’ 뒷이야기를 다룬 실록에 가깝다. ‘서울의 봄’이라는 이름을 역행했던 계엄령 하에서 당시 전국의 해직대상 교수들 수 백 명과 함께 실제로 5박6일간의 구금생활을 경험한 작가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여기 등장하는 교수들의 면면은 다 실제 상황이다.

<새가 된 아이>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나 <두사부 일체>의 모델 학교 소리를 듣는 바로 그 고교를 다닌 작가의 아들이 고3 때 직접 겪은 사건을 그렸다. 시국사범을 부모로 가진 무고한 학생을 10일간이나 구금하고 고교생 좌경운동 주범으로 날조하여 자백을 받으려는 비뚤어진 사학재단의 범죄적 행위와 거기 놀아난 교사, 학부모들의 작태를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자세히 그리고 있다.

청소년 비극을 그린 세밀화

청소년 문제를 다룬 소설로는 <별들의 감옥>, <두 번째 실수>, <악연>등이 있는데, 사회와 교육환경이 문제아를 만들어낸다는 작가의 확연한 입장을 읽을 수 있다. <악연>이 중고교 단짝 친구였던 두 여인의 운명의 갈림길을 그리면서 사기꾼으로 복역하다 풀려나 끝내 자살해 버린 친구의 아이에 초점을 맞춰 한국 사회의 범죄적 이면에서 버려져 갈 곳 없는 청소년의 비극을 그렸다면, <두 번째 실수>는 문제 청소년 상담 봉사활동에 나선 여성이 교사 폭행으로 수감되는 중퇴생을 담당하면서 높은 사회의 벽에 부딪쳐 좌절에 이르는 아픈 경험담을 담고 있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별들의 감옥>은 소위 강남 8학군 토박이인 상류가정 자제가 일류를 만들라는 부모성화에 파묻혀 교육의 순기능보다는 일류 만들기에 골몰한 학교사회의 역기능에 휘말려 조용히 희생되는 비정한 현실을 그렸다. 그 잘못된 교육 구조에서 부당하게 추락하는 학생들의 비극적 환경을 ‘별들의 감옥’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어글리 프로페서’의 전형

계엄령 하에서 캠퍼스에 유인물을 뿌리는 어린 제자의 팔뚝을 거머쥐고 현행범이라며 기관원을 부른 교수가 있었다면 젊은 독자들이 과연 믿을지 모르겠다. 그 시절 서울의 모 여대에 몸담았던 작가가 직접 목격했던 일이다. <그 여름의 귀환>은 1980년대, 계엄철폐 유인물을 살포하다 교수에게 직접 덜미를 잡혀 연행, 대학에 상주하던 기관원에게 넘겨져 고문, 투옥됐던 사건 관련자 중 하나인 강희가 주인공이다. 출옥 후 앓던 남편이 죽은 후 도망치듯 미국 행, LA에서 그녀가 16년 만에 귀국했는데, 서울은 마침 쇠고기 파동으로 촛불 시위가 맹렬하던 때다.

문민정부 출범 직전에 정년을 앞두고 홀연 사직, 자취를 감춰버린 그 교수가 양평 어느 상류층 요양원에 있다는 소문에 옛 벗들이 모여 그녀를 찾는다. 관공서 출입보다 더 까다로운 검열을 속이고 그 교수의 방으로 들어가 “저 P대 다니던 사람들인데요.”라고 하자 그녀는 “P대? 나, 거기하고 아무 상관없어요. 사람 잘못 보셨수.”라더니 바로 이를 갈며 “저 빨갱이 간나들 다신 여기 못 들어오게 해!”라며 발작한다. 한 쪽에서는 동료교수들이 무더기로 해직을 당하던 시절에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자작 ‘어글리 프로페서’가 된 기형적 인간상이 등장하는 작품.

소외, 절연... 비정한 사회의 관계들

<슬픈 청첩장>은 사건가족으로서 44년이나 유죄의 그늘을 강요당한 작가의 정신적 유배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절친과의 절연도 비정한 사회로부터의 온갖 소외도 통과의례처럼 담담히 감수하며 살았던 주인공이 임종을 앞둔 절친의 아들 결혼식에 초대되면서 죽음 앞에 모든 것을 던지며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그렸다. 돈독했던 여인의 우정조차도 남편의 정치의식 차이로 적대적 소원에 파묻히는 비정한 사회의 관계들을 돌아보게 하는 서정적 삽화가 장치된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작가 고경숙 (高慶淑) 소개

작가 고경숙은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나 8.15 후 서울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한국전쟁 후 대전에서 성장했다. 대전여고를 거쳐 1967년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작가는 당시 경향신문사 기자였던 문학평론가 임헌영과 결혼, 3년 만에 남편이 ‘문인 간첩단 사건’(1974)으로 검거되면서 작가 자신도 보안사에 연행되어 구타를 당하는 등 인생 일대의 파란에 휩싸인다. 모교의 학보사 편집국장이었던 작가는 남편이 또다시 ‘남민전 사건’(1979)으로 구속되면서 1980년 전두환 치하의 삼엄한 시기에 계엄사령부가 대거 교수해직을 자행하는 현장에 대학 행정직으로서는 유일하게 5박6일간 연행당해 사직을 강요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모교의 도서관 등에 30여 년간 근무하면서 치열했던 작가로서의 꿈을 접어야했던 작가는 1988년 작가 조정래가 주간이던 <한국문학>을 통해 <어머니의 천국>(작가 유재용 추천)으로 등단한 후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여성과 청소년 문제에 천착한 작품들을 발표해 왔다.

출판사 및 작가 연락처

개미 출판사 / 작가 연락처 E Mail : ggs8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