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나정욱 - 비의 아버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비의 아버지
아버지의 나이를 지나 예전의 할아버지의 나이를 갖게 되니
할아버지가 목침을 베고 자다가
산의 신음으로 당신의 어머니를 부르시고
끄응 소리를 삼키는 그런 장면도 생각이 난다
살면서 밖으로 뱉는 신음보다 삼켜야 하는 신음이 더 많고 커서
쌓이고 쌓인 신음을 참다가 뱉으면 그것이
앞산과 뒷산을 울리는 그 무거운 소리임을 알겠다
어느 날 오줌을 누면서 아버지를 생각했다
오줌을 누면서 보게 된 아버지의 심벌을 달고 살면서
겪은 아버지의 신음을 닮고 닮아서 그 심벌을 타고 나오는
오줌줄기도 선후 관계가 있어 오줌방울도 부자지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떨어지는 빗방울도 아버지의 빗방울이 있고 자식의
빗방울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떨어지는 빗방울의 크기야 거기서 거기겠지만
아무래도 먼저 떨어지는 것이 아버지의 빗방울인지
뒤에 떨어지는 것이 자식의 빗방울인지, 같은 빗방울로 떨어지면서
서로의 안녕을 어떻게 빌면서 떨어지는지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먼저 떨어진 비의 아버지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어떻게 불러 드려야 하는지
하염없는 비의 노래를 생전에 듣던 아버지의 노래로 불러보는 것이다
※ 나정욱 시인 약력
1990년 <한민족문학> 창간호에 「실습시간」외 2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며칠 전에 써 두었던 내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 『눈물 너머에 시(詩)의 바다가 있다』, 『라푼젤 젤리점에서의 아내와의 대화』를 출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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