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호는 자유로워야 한다
김 희 우
그 때
누군가 수시로 내 생각들을 채집해갔고
시험관에 담아 리트머스 시험을 했다.
이윽고 나는 규정된다
사유는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각자의 프로그램대로 장식과 표정을 걸친
기호들이 부산하게 떠오르고 가라앉는 지하도 입구에
나는 익명의 기호로 삽입된다
공룡의 척추 같은 계단을 한 마디씩 짚어
내려가 자동 개찰기에 전기철도 탑승권을 꽂는다, 헛돈다
헛돌며 옐로카드를 내민다 - 안내원에게
문의바람 - Error! Error! 가끔
편두통이 오는 곳에서 빨간 불이 켜진다
모든 기호는 자유로워야 한다, 익명은 자유롭다
여자들은 매일 익명의 기호를 낳는다, 중얼거리며
신선한 정액권을 받아든 나는
다시 순장(殉葬)의 대열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땅 끝까지
커서처럼 이동해 간다 652021 - 1037…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Power off.
모니터에 직립해 있는 진화된 기호들이
재빨리 퇴장하고 나면
암전(暗電).
* 1995 경인일보 신춘문예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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