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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 그 후
이름 유중원 이메일



그 후

 

 

시간은 모든 것을 드러낸다.

― 에라스무스

소설가들의 창작력의 빈약함이여!

그녀는 아름다웠고, 그는 사랑에 빠졌다는 게 고작인가?

― R.W. 에머슨

사랑은 악마이며, 불이며, 천국이며, 지옥이다.

쾌락과 고통, 슬픔과 후회가 거기에 함께 살고 있다.

― 반필드

노인이 되어 참을 수 없는 것은 육체나 정신의 쇠약함이 아니고,

기억의 무게를 견뎌내는 일이다.

― W.S. 몸

참으로 위대한 철학의 문제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을 괴로워하며 살 값어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을 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기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 A. 카뮈

 

 

1980년 초엽 무렵이었으니까 벌써 30여년이 훌쩍 지나갔다. 이른 봄에 내려갔으니까 80년 5월보다 두 달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순천시 도사동 남쪽에서 얼마간 세월을 보냈다.

나는 그때처럼 순천역에서 대대동 (大垈洞)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몇몇 남자애들은 셔츠를 검은 진바지 밖으로 빼 입었고 여자애들은 민망할 만큼 짧은 치마를 입었다. 그 시절에는 칙칙한 검정 교복에 교모를 썼었다. 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스마트 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 혼자서만 멍한 시선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목포—광양 간 고속국도 밑 다리를 지나면서 대대동의 국가정원 입구 쪽으로 들어섰다.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한 세대가 훌쩍 지났으니. 나는 어리둥절했다. 나는 몰라보게 변해버린 천지개벽을 한 광경에 아연실색했다.

그때, 대대 마을은 순천만의 시작이며 순천만의 갈대밭과 뻘밭을 만날 수 있는 관문이었다. 이사천 (伊沙川)과 동천 (東川)은 이곳에서 서로 뒤엉키면서 검고 넓은 갯벌을 형성 하였고, 흑두루미와 수많은 철새들, 갯벌 물고기,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되었다.

순천으로 내려올 때부터 특별한 순서 없이 옛날 기억들이 감질나게 떠올랐다.

포구에 새벽이 오면 어슬어슬 어둠이 걷혀가도 아직 이슬을 털어내지 않은 채 흔들거리며 서 있는 갈대숲에는 멀리 남쪽 바다에서부터 밀려 온 새벽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아있다. 사방이 아직 분간이 안 되는데 여기저기 묘하게 안 어울리는 시나위 가락처럼 물새 소리가 들려온다.

대대 마을은 그때만 하더라도 정월 보름에 줄다리기를 하였다. 마을을 서편과 동편으로 나누어 볏짚을 배배 꼬아 27가락으로 만들어 엮은 굵은 줄을 당겼는데 그 때문에 마을을 동편과 서편으로 구별해 부른다. 서편은 암줄을, 동편은 수줄을 당겼고 줄을 메고 선소리꾼이 선소리를 하면 줄을 멘 사람들은 따라서 후렴을 하였다.

 

어얼싸 더리덜렁

어얼싸 더리덜렁

 

그 시절에는 갈대숲과 뻘밭을 이어주는 곧 무너질 것 같은 낡은 징검다리가 여기저기 있었다. 지금은 말쑥한 인도교로 연결되어 갈대숲과 뻘밭 일대를 돌아다닐 수 있는 둘레길이 잘 닦여 있다.

당숲도 생각난다.

그 시절 마을 주민들은 매년 정월 보름날 이 숲에서 당할머니 신에게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었다. 지금은 당제의 맥이 끊긴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 가을이 생각난다.

가을엔 바다의 물고기도 살이 통통 쪄서 훨씬 맛있다. 그때는 인공양식 시설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백 퍼센트 자연산이었다. 어종은 계절마다 조금씩 달랐다. 우럭과 놀래미는 연중 언제든지 잡혔지만 말이다. 하지만 특히 가을에 더 맛있었다. 그건 겨울나기에 대비해서 먹이 활동을 활발히 하여 지방을 많이 축적하였기 때문이다. 풍미가 쫀득쫀득하여 그만이었다.

낙지는 더위가 가시고 바람이 서늘해지는 초가을부터 제대로 맛이 들기 시작해서 늦가을에 절정을 맞는다. 그것들은 늦봄이 산란기로 그때쯤 알에서 깨어나 가을쯤에는 먹을 만한 크기로 몸집이 불어나는 것이다.

낙지 고유의 담백한 감칠맛을 만끽하려면 양념이 거의 없거나 적을수록 좋다. 국내 낙지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남 해안 지역 사람들은 살아있는 낙지를 깨끗이 씻기만 한 다음 그대로 초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는다. 젓가락 따위는 쓰지도 않는다. 한 손으로 낙지 몸통을 잡고 입안으로 빨아들이듯 삼킨다.

어부들은 긴 장대를 들고 바닷물 표면을 후려친다. 얕은 바다, 뻘밭에 들어온 물고기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한 군데로 몰아간 뒤 그물로 포획하는 전통적인 어법이다. 숭어는 그렇게 갯치기로 잡는다. 썰물 때 물이 빠진 갯고랑 양쪽에 그물을 쳐 놓고 배를 타고 다니며 바닷물 표면을 긴 장대로 내려친다.

요새 숭어는 흔한 물고기라 별 대접을 못 받는 편이다. 철에 따라 맛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괄시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참숭어든 가숭어든 제철에는 다른 어느 생선 못지않게 맛이 뛰어나다.

이 고장에서는 눈자위가 노란 참숭어가 겨울이 제철인 것은 다른 지역과 같지만 눈자위가 까만 가숭어는 보리누름때가 아니라 가을에 제철 맛이 난다.

그때는 갯치기로 잡아온 보리 숭어를 구워 먹었다. 기름이 오를 대로 오른 보리 숭어의 등을 따서 물기를 빼 살짝 말린 뒤 숯불에 올리고 소금을 뿌려가며 굽는다. 그 맛이 일품이었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

순천시에서는 박람회가 열렸던 정원 지역과 대대 갈대밭을 통틀어 순천만 국가정원이라 명명하고, 갈대밭을 순천만 자연생태 공원이라고 하였다. 국가정원 안에 있는 순천 문학관에는 김승옥 문학관이 있다. 생태공원 안 순천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동천 지류에는 무지개다리인 무진교가 걸쳐있다.

현재 대대동 일원은 순천만이 생태 관광지로 급속히 부각되면서 2층이나 3층의 콘크리트 건물에는 음식점과 숙박업소가 빼곡이 들어차고 마을 앞 넓은 도로는 주말이면 자동차로 넘쳐난다. 유명한 관광지가 되면서 옛날 생활 정서는 파괴되고 소음과 교통문제 등으로 마찰을 빚고 있었다.

지금은 21세기이다.

세월은 물 같이 흐른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으니 어디인들 안 변할 수 있겠는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난폭한 세월이 해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명문 법대를 진즉 졸업하였지만 나이는 어느새 30을 넘어섰고 사법시험은 계속 떨어지고 취직도 할 수 없어서 너무나 한심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녀는 냉정하게 절교를 선언했다. 일곱 번째인가 여덟 번째 떨어진 후였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난 지금 혼자예요. 혼자라구요. 어머니와 싸우는 것도 지쳤다구요.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요? 어머니에게 뭐라고 대꾸하죠? 말 좀 해보세요. 도대체 합격할 수 있는 거예요? 뒤늦게 합격해서 뭘 할 건데요? 그래서 당신과 나의 인생이 무지개처럼 보장되는 거예요?

내가 겨우 한마디 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고.

나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 남쪽으로 무작정 출발하였다. 도망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랑이 깨지고 나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으니 도망치듯 도시를 떠난 것이다.

나는 그때 지리멸렬했다.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 너무 혼란스러워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이후로 어떻게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은 살과 뼈가 있는 실체가 아닌 흐릿한 환영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어수선하고 그래서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고 마음을 비워버릴 공간이 필요했던가. 누구로부터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고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어딘가에서? 낯선 곳에 가서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기도 했다.

청춘의 꿈은 사라졌고 삶은 권태와 염증으로 가득했으니.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나는 원대한 꿈이 아니라 절망과 좌절의 심연을 찾아서 남쪽 바다로 향한 것이다.

나는 순천역에서 기차를 내려서 시골 버스를 타고 방죽길을 따라 삼십리를 더 들어왔다. 바람에 휘청거리는 누런 갈대밭이 끝없이 펼쳐진 염습지와 검은 갯벌, 회색빛 얕은 바다를 한참 지나자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 남쪽에는 차가운 봄비가 내리면서 소금기를 머금은 강한 해풍에 풍경이 흔들렸던 것을, 간조 시간이어서 갯벌은 깊은 속살을 드러냈고 갯벌에서 꼼지락거리며 놀던 수천 마리의 짱뚱어 떼가 놀라서 일제히 갯벌 속으로 몸을 숨겼던 것을 기억한다.

마을이 거기에 있었다.

내가 정을 붙이고 1여년을 살았던 그곳은 세상이 축약된 작은 세계였다. 초등학교와 동사무소, 우체국, 파출소, 농협 지소 등 관공서와 술집과 (추운 겨울날에는 톱밥난로가 활활 타오르고 어부들이 톱밥난로 주위에 둘러서서 불을 쬐던) 다방, 미장원, 당구장, 약방, 사진관, 교회, 횟집이 모여 있었고, 마을 바깥 부둣가에는 고기잡이 어선이 입항할 때마다 부산스러운 간이 어판장, 아주머니들의 생선 좌판들이 줄지어 있었다.

 

그는 1960년대 무렵 순천시를 제멋대로 무진읍으로 격하시키면서 묘사했다.

누군가 지적한 대로, 무진 (霧津)은 지도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공간에 불과할까? 무진은 사람들의 일상성의 배후, 안개에 휩싸인 채 도사리고 있는 음험한 상상의 공간일까? 일상에 빠져듦으로써 상처를 잊으려는 사람들에게 또 다시 상처를 강요하는 이 지난한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는 괴로운 도시일까?

그러나 작가는 그곳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순천과 순천만에 연해 있는 대대포 앞바다와 그 갯벌이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

 

“별 게 없지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건 좀 이상스럽거든요.” “바다가 가까이 있으니 항구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럴 조건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수심이 얕은데다가 그런 얕은 바다를 몇 백리나 밖으로 나가야만 비로소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다운 바다가 나오는 곳이니까요.” “그럼 역시 농촌이군요.” “그렇지만 이렇다 할 평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그 오륙만이 되는 인구가 어떻게들 살아가나요?” “그러니까 그럭저럭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닙니까!”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기와지붕들도 양철지붕들도 초가지붕들도 6월 하순의 강렬한 햇빛을 받고 모두 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철공소에서 들리는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잠깐 버스로 달려들었다가 물러났다. 어디선지 분뇨 냄새가 새어들어왔고 병원 앞을 지날 때는 크레졸 냄새가 났고 어느 상점의 스피커에서는 느려빠진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사람들은 처마 밑의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빨가벗고 기우뚱거리며 그늘 속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읍의 포장된 광장도 거의 텅 비어 있었다. 햇빛만이 눈부시게 그 광장 위에서 꿇고 있었고 그 눈부신 햇살 속에서, 정적 속에서 개 두 마리가 혀를 빼물고 교미를 하고 있었다.

바다가 있는 부근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몇 시간 전에 버스에서 내릴 때보다 거리는 많이 번잡해졌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책가방이 주체스러운 모양인지 그것을 뱅뱅 돌리기도 하며 어깨 너머로 넘겨 들기도 하며 두 손으로 껴안기도 하며 혀 끝에 침으로써 방울을 만들어서 그것을 입바람으로 훅 불어 날리곤 했다. 학교 선생들과 사무소의 직원들도 달그닥 거리는 빈 도시락을 들고 축 늘어져서 지나가고 있었다.

 

순천은 현재 인구 오륙 만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소읍이 아니다. 배후지에 광양만권 경제자유 구역과 거대한 광양제철 단지와 여천화학 단지를 거느린 인구 28만의 대도시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도시의 모습과 생활 환경은 완연하게 분리되어 있다. 도심 한 가운데 조곡동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과거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구시가이고 오른쪽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새로운 상가와 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있는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두 곳은 같은 도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전혀 다른 광경을 보여주고 있다.

구시가지에서는 밤이 되면 교회의 첨탑에 매달린 빨간 네온으로 장식된 수많은 십자가들이 빛을 발한다. 그러나 신시가지에서는 그것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화려한 빨간색으로 번쩍거리는 모텔과 유흥업소의 네온 불빛이 밤늦게까지 빛을 내뿜는다.

그래도 그때처럼 60년대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곳은 시장이다. 아랫시장, 윗시장, 중앙시장, 역전시장이 그곳인데 아랫시장과 윗시장은 5일장이고 중앙시장과 역전시장은 상설시장이어서 매일 장이 열린다. 옛 모습이 좀 더 드러나는 장은 아무래도 아랫시장과 윗시장이다. 장터에선 그 소설에서 묘사했듯이 지금도 철공소에서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장터 후미진 뒷골목에 가면 김이 설설 피어오르는 솥단지 옆에 돼지머리 국밥집이 있고 그 옆으론 팥죽과 국수를 파는 노점들도 있다.

무진의 모습은 물론 구시가지 쪽이다.

 

무슨 미련이 남아있었던가. 그러나 나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눈물을 뿌리면서 그 길을 되돌아서 올라가야했다. 달리 뾰족한 탈출구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제자리에서 맴도는 지겨운 생활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 대한 복수심 또는 실낱같은 희망이 내 등을 떠밀었기 때문이었을까. 끔찍할 만큼 지루하고 단조롭고 길고도 고독한 시시포스의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밤이면 악몽을 꾸고, 그녀가 칼을 들고 덤벼들었다.

나는 혼잣말을 했다. 너무 늦었어, 너무. 정말 너무 늦은 것일까? 그러나 막다른 골목이야. 다시 시작하는 거야. 지금 멈추면 안 돼지. 조금만 더, 조금만. 바뀌겠지, 바뀔 거야.

부둣가 해변에는 생선 썩은 냄새와 낡은 어선의 타르 냄새가 뒤섞여 있다. 바닷가에는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엔 잔잔했던 바다가 거칠게 출렁이며 파도가 방파제를 거세게 때렸으므로 방파제와는 계류용 밧줄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던 낡은 목선들이 격렬하게 서로 부딪치며 몸부림을 쳤다.

바닷가는 아름답고 쓸쓸하였다.

겨울이 끝날 무렵이면, 남쪽 바다는 생명의 몸짓으로 꿈틀거렸다.

저 멀리 검은 뻘 밭이 끝나는 해안선에서부터 다시 바다가 열리고, 수평선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경계가 희미해지는 아득한 곳까지 물러 앉아있다. 그때쯤이면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한결 누그러졌다. 겨울 철새들은 벌써 귀향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 역시 신림동 고시원으로 귀향을 서둘렀다.

나는 그날 새벽 2시쯤 깨어서 다시 잠들지 못했다. 막상 올라가자니 마음이 뒤숭숭했던 것이다. 날이 밝아 왔다. 벌써 마을 뒤쪽 해장죽 숲에서 그곳 텃새인 동박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밤새 내려앉았던 밤안개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떠나오던 날 맑은 하늘에 샛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바다는 흰 거품을 일으키며 으르렁 거렸다.

내가 천신만고 끝에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을 때는 그 기수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고령 합격자였다. 그리고 사법연수원 시절 뒤늦게 결혼하였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도 속으로 곪아서 실패한 결혼이었다.

나는 악성 임질의 후유증 때문인지 자식을 가질 수 없었는데 그게 결혼 생활이 삐걱대는 중대한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닮은 못난 자식을 낳지 않은 게 차라리 그게 나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내와 싸우고 나면 늘 그곳을 기억했다.

집집마다 얕은 담벼락에 철 이른 붉은 줄장미가 피어있는 골목길, 아카시아의 짙은 향기, 마을 뒤 쪽 해장죽 숲에서 동박새들의 지저귐, 내가 살았던 넝쿨과 이끼가 낀 돌담 속 폐허 같은 슬레이트 집, 방죽길을 따라 길섶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야생화들, 금창초, 현호색, 개별꽃, 쑥부쟁이, 자운영꽃, 복사꽃, 할미꽃, 개구리 발톱, 잎이 달려있을 때는 꽃이 피지 않고 꽃이 필 때는 잎이 피지 않아서 꽃말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 상사화, 그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어스름한 여름 밤 유령처럼 날아다니던 반딧불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소금기가 밴 찝찔한 바다 바람, 정오가 되면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교회의 종소리, 검은 석탄 연기를 내뿜으며 길게 기적소리를 울리고 내달리는 경전선 완행열차, 학교가 파할 무렵이면 재잘거리며 교문으로 우르르 몰려나오는 어린 아이들, 크고 검은 눈동자에 우수가 깃들여있어 수줍음을 잘 탈 거 같았던 여선생님, 지나가는 사람들 귀에 다 들리는 동네 여자들이 아웅다웅 싸우면서 내는 말다툼 소리,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비쩍 마른 고양이, 언제나 밤안개가 짙은 곳, 염습지의 갈대숲, 시베리아의 툰드라에서 날아온 겨울 철새들, 사리 물때가 되면 갯벌에서 웅덩이를 만들어 개불을 잡는 일, 또는 말뚝망둥어와 흰발농게를 잡는 일, 갯바위에서 굴을 따는 일, 흰발농게를 잡아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봄의 철새인 도요새, 밤의 어두움이 찾아오기 직전 짧은 순간 황혼녘의 바다가 푸른빛으로 빛날 때 어둠을 뚫고 먼 바다에서 돌아오는 지친 어선들. 생선 횟집에서의 술판, 도수 높은 알코올 기운을 풍기는 술 취한 어부들. 갯바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젊은 여자의 부풀어 오른 시체. 그녀는 얇은 코트 주머니에 돌멩이를 넣은 채바다로 뛰어내렸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몰랐다. 하지만 며칠 동안 갯바위를 찾아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보려고 애썼다. 나는 그녀가 뛰어내린 장면을 수없이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나는 그녀의 혼을 만나기 위해 그 바닷가를 배회하였는지 모르겠다.

그곳이 나의 유배지였던가. 그곳에서 나의 삶은 남루했지만 그러나 행복했다. 그때 내 얼굴은 햇볕에 그을렸고 내 육체는 바닷바람에 억세졌다. 나는 그 바다 바람을, 바닷가 마을을, 늙은 어부를 잊을 수가 없다. 그때 굳게 결심하고 올라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다시 생각한다.

 

* * *

 

2015년, 늦가을이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지만 벌써 추운 날들이 찾아왔다. 그가 죽은 지 1년이 지났는데 그즈음 하여 그가 꿈속에 가끔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꿈속은 안개처럼 몽롱해서 그의 얼굴과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어떤 날 밤에는 밤새 끔찍한 악몽 때문에 잠을 설쳤다.

처음 바닷가에서 그를 마주친 순간 어떤 섬뜩한, 정체모를 미지의 분위기를 느꼈지만 그걸 내색하지 않고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외면을 하고 지나쳤다.

엄숙함, 고독감, 공포, 경이로움.

(그와 나 사이에서 우리라는 단어는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우리가 두 번째 스쳐지나갈 때에도 우리 사이에 침묵이 무겁게 짓누르며 목을 조였다. 하지만 한 겨울에서 짧은 봄을 거쳐 긴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면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둘 다 몹시 외로웠고 말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가 말했었다.

자네와는 갈수록 말이 통하고 호감을 느끼지. 우리가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걸.

전 퀴어는 질색이에요.

오해하지 말게나.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글쎄요? 브라더와 로맨스를 합친 브로맨스가 가능했을까요. 전 신경질적이고 까칠하니까 그것도 아니에요.

그렇단 말이지……

나는 그와 대화를 하면서 낙서를 하는 것처럼 끄적였던 메모와 내 일기장을 뒤적이고 지난 1년간의 사건과 풍경들을 여전히 생생한 기억의 창고로부터 불러낸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곳은 무인도처럼 외부와 절연된 고독한 공간이었다. 현실 세계의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서 격리된 장소였던 것이다.

집 근처 공터에는 생강나무가 자랐는데 꽃은 물론이고 잎과 줄기에서도 좋은 향기가 묻어났다. 칡넝쿨은 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가면서 향기로운 꽃을 피웠다. 초가을이면 코스모스들이 한들한들거리며 푸른 하늘과 어울렸고 구절초는 옅은 구름이 하늘 높이 떠 있는 맑은 하늘에 안겨 미소를 짓는다.

그는 채마밭에서 계절마다 남새를 심었다.

그 집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는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 아래쪽에 바다를 향해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동네로부터 한참이나 외따로 떨어져있는 허물어져가는 농가 집을 헐값에 매입해서 세심하게 공들여 스스로 집을 수리했다. 마을로부터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숲으로부터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 집에는 주방을 겸한 식당, 거실과 침실이 있다. 헛간을 개조해서 작업실을 만들었다. 그 작업실 뒤쪽 처마 밑에는 벌들이 벌집을 짓고 더듬이질을 하며 안팎을 들락날락 날아다녔다.

전기가 들어왔고 난방 기기나 배관 시설 등은 제대로 작동했지만 상수도는 들어오지 않아 집 앞마당에 있는 우물 물을 사용했다.

거실에는 스탠드가 놓여 있는 철제 책상과 의자 외에 가구가 없다. 거실 벽에는 그림이 든 가족 사진이 든 액자는 걸려있지 않다.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을 하기 위한 컴퓨터도 없었고 스마트폰도 없다. 그러나 매우 낡았지만 5대의 스피커와 명품 고급 음향 장비가 설치되어 있고 벽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많은 책들이 가득 쌓여있다. 그는 언젠가 고통을 잊기 위해서 가끔 음악을 진정제로 사용한다고 털어놓은 적 있었다.

그곳은 저장강박증을 가진 사람의 극도로 지저분한 거실이 아니라 깨끗하게 정돈된 창고 같은 곳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을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편안하게 느끼고 있었다.

작업실에 붙어있는 작은 창고에는 역시 책들, 그림들, 목공예 작품들, 상자들, 무슨 물건들인지조차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질서정연하게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리고 바다를 그리다가 중단한 풍경화 캔버스가 세워져 있다.

그는 허리는 꼿꼿했지만 얼굴은 온통 주름투성이이고 강한 바닷바람에 그을려 까맣게 탔다. 회색 턱수염을 기르고 다녔다. 눈 아래로 축 늘어져있는 두꺼운 눈두덩이 때문에 눈은 반쯤 잠긴 것처럼 보인다. 렌즈가 두툼한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다. 울퉁불퉁한 손마디와 길고 더러운 손톱에 잔뜩 낀 때가 눈에 들어온다. 그즈음 먼지가 많이 나는 목공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름대로 집안을 정리하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만의 생활 리듬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 그 동안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어떤 방문객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원래 대대 마을 출신인 것을 알기 때문에 외지인 취급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외지인에 대한 적대감이 없었고 전혀 이런 일 저런 일 간섭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네 늙은이들은 그를 만나면 경계심 때문인지 길을 비키고 피하면서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 힘없이 늙어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가 말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변호사를 했단 말이지? 어떻게? 그렇게 귀하신 몸이 여기까지…… 변호사 생활이 지겨웠던 걸까?

흰 것을 검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화가와 변호사뿐이라고 했고…… 변호사는 전부 지옥에 가 있다고 했으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지만 전 별 볼일 없는 무능한 변호사였어요.

스스로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벌써 여름이에요.

이곳 여름은 의외로 후덥지근하다네. 뜨거운 태양이 바닷물까지 데워놓은 것 같다니까.

이게 여기서 내가 밀가루와 소금과 물로 만든 과자라네. 전매 특허품이지. 내놓을 수 있는 거라곤 이것뿐이네. 그리고 커피도 있고…… 독한 술도…… 만약 피우고 싶다면 그게 있지.

전 담배도 안 피워요. 마리화나 말고 더 독한 것은 안 해봤어요?

부산 시절에 몇 번인가 해봤지. 그러나 스스로 끊었다네. 부작용이 너무 심했거든. 이건 별거 아니니까 계속 하는 거지.

과자 하나를 집어 맛을 보았더니 약간 짜면서도 너무 부드러워서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침묵이 흘렀다. 나는 창밖으로 바다와 섬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검은 커피 가루에 끓는 물을 붓자 블랙 커피의 진한 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방 안에 가득 퍼졌다. 우리는 맥주 컵처럼 큰 잔에 든 뜨거운 커피를 식혀가며 조금씩 핥듯이 마셨다.

자네에게 내가 살아온 험한 이야기를 내 입을 통해 그대로 전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만큼 들었으니까…… 80이 넘었다네. 내 얼굴에 새겨진 작은 주름들이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네만. 그러나 늙은이의 기억은 믿을 게 못 되지.

게다가 오랫동안 혼자 살면서 고립된 생활을 한 것이 내 기억력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을 거야. 그래서 더 이상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네.

자네는 늙는 것이 끔찍하거나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나? 인생이 길다고 믿지 말게나. 지금 이 나이가 되면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로 여기고 살아야 한다네.

그러니까 너무 혼란스러워서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게 되는 거지. 그러나 중증 치매에 걸린 것은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때로는 옛날 기억들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하지. 어느 순간 수십 년 된 일이 고스란히 살아나서 몸서리를 칠 수도 있는 거야.

인간의 기억은 누구나 점점 희미해지지. 그래서 절대로 못 잊을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내기도 한다네. 시간이 갈수록 더 잊어버린다네. 하나둘씩 기억을 잊어버리게 되는데 그건 알츠하이머 때문이 아니라 노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인 거지. 그러니까 우리가 잊어버리는 것은 늙고 죽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야.

그러나 잊혀지지 않는 것도 있다네. 내가 무얼 잊어버렸다면 그건 기억할 만한 가치가 전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어.

내가 여기에 내려온 지가 벌써 15년이 지났지. 귀소본능이라고 할까. 고향이라고 찾아와서 그대로 주저앉은 거지. 그러니 여기를 떠나고자 하는 욕망도 완전히 사그러져 버렸다네. 나에겐 도대체 욕망이란 것이 없다네. 여길 떠나고자 하는 욕망이건 새로운 삶에 대한 욕망이건 아무것도 없어. 나는 종마를 거세해 성욕을 없애버리듯이 나의 가슴 속에서 욕망을 제거해버렸네.

아무런 욕망이 없는데 무슨 이야기가 가능할까.

죽는 날까지 여기 남아있을 거야. 나는 이 세상이건 저 세상이건 간에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 닥치기 전에는 떠나지 않을 걸세.

나는 여기서 무슨 비망록이나 일기 같은 걸 끄적이지는 않는다네. 모든 걸 망각하기를 바라거든. 나는 지금 자신을 잊는 연습을 하고 있지.

나는 문학 이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개인의 삶이란 게 얼마나 하찮고 비루한데 그런 걸 굳이 글로 쓸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흔해빠진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가 일단 책으로 인쇄되어 나오면 그건 굉장한 것으로 둔갑을 하더군.

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거네. 오직 불에 타고 남은 재만 남길 거라네.

불은……? 하지만 기억에 대해서는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망각은 무의식의 세계이면서 기억의 저장 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문을 열고 뛰쳐나올 겁니다.

그는 대마초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는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더니 인생 경험이 많은 연장자로서 조금 경멸에 찬 표정으로 연하인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때 그렇게 느꼈다.

우린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 거야. 첫째는 이쪽이 고향이고 남쪽 포구와 많은 연고가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둘 다 서울에서 인생에 실패하여 이혼하였고 귀소본능에 따라 여기로 내려온 것이야,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우리가 인생에서 실패했다고 단정을 할 수 없겠지, 누군들 별다른 인생을 살았겠는가, 셋째는 여기로 내려올 때 내 나이와 자네 나이가 60대 후반으로 비슷했어, 그리고 자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뒤늦게 무명작가로 소설을 썼던 것, 나 역시 뒤늦게 소설이니 시를 쓰려고 아등바등했다가 결국 포기한 점 등이 말일세.

나는 일찍부터 작가가 되려고 생각했었지만 먹고 살아야하니까 그게 여의치 않았다네.

또 하나가 있군. 이제 보니 자네도 술 꽤나 마시더군. 그러니 젊은 시절에는 두주불사하였겠지. 그래서인지 자넬 만나면 낯설지 않고 편안함을 느낀다네.

누구든지 내 집에 찾아오면 방해 받았다는 느낌 또는 침입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네. 그 누구도 반갑지 않았어.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자네만큼은 예외가 되었네. 자네와는 벌써 여러 번 만난 사이니까 어쩔 수가 없었지.

그런데 말일세…… 독한 술도 좋은 점이 있다네. 내가 말하는 독주란 40도를 넘는 빼갈이나 보드카를 말하는 걸세. 독주는 혀에서는 날카롭지만 목에서는 부드럽고 뱃속에 들어가서는 따뜻하게 덥혀주지.

그런데 독주 속에 들어있는 특이한 화학 성분이 있는데 그게 머리털이 빠지지 않도록 작용을 한다고 하더구먼. 그래서 자네나 나나 머리는 하얘도 대머리는 아닐세. 그러니까 알코올 중독자들 중에는 대머리가 없는 거야. 이왕지사 말이 나왔으니…… 나는 독주가 장점이 많다고 생각하지. 그걸 마시면 기분이 하늘 높이 올라가면서 생각을 더욱 맑게 해주거든. 슬픔이나 고통을 줄여 주기도 하고. 또 하나 장점은 그걸 마시면 빨리 취하게 되지. 더 많이 마시면 만취할 수 있다는 거지. 만취 말일세…… 만취…… 그러면 마침내 울게 되지.

그렇군요. 불쌍한 침입자인 저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술에 대한 찬사는 저도 동감입니다. 이의가 있을 수 없지요. 우린 아슬아슬하게 알코올중독 신세는 면했지만 알코올 의존증인 게 틀림없지요. 그래도 우린 어떤 경우에도 고래고래 악을 쓰면서 술주정은 안 하지요.

그런데 우린 똑같이 인생에서 실패했던 거 아닌가요? 얼마나 더 많은 좌절과 방황을 겪어야만 될까요? 실패가 아닐 수도 있다고요? 그건 치사한 자기기만이 아닐까요?

또 있어요. 우린 독실한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 아닌가요? 저의 경우에는 틀림없어요.

좋습니다. 넘어갑시다. 논쟁을 할 만큼 자신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인생 선배이고 고향 선배이고 형님인 거죠. 한 가지는 아니겠네요. 저는 바닷가 절벽으로 갔을 때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는 거죠.

자살 충동이라…… 난들. 카뮈는 자살이야말로 단 하나의 진실한 문제라고 단언했어. 인간 조건에서 아주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자살을 철학적인 문제로 본 거지.

이곳 생활이 항상 지루하고 기다리기만한 것은 아니었어. 자유가 지천으로 널려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는 자유롭게 살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있겠지요. 하지만 진정한 자유란 것이 무엇인지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법정에서 벗어나고…… 소송에서 벗어나고…… 아내한테서 벗어나고…… 서울에서 벗어나면…… 그러면 제가 진정한 자유란 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왜? 자유는 스스로 찾는 거야. 자유야말로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지. 누가 공짜로 던져주는 게 아니란 말일세. 거기에 나오는 모든 것들을 반신반의하며 생각했다네. 그런 하찮은 일들이 이야기의 소재가 될 만큼 기이한 것들일까.

나에게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깜박 잠드는 일이라네.

내가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하다가도 수면제를 한 움큼 먹고 한 번 잠이 들면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져든다네.

잠이 든 상태로 계속 시간이 흘러 끝내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결국 죽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든다네. 아프리카에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풍토병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내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하든가 그건 자네 마음이라네.

모든 이야기에는 보이지 않는 장면과 입 밖에 내지 않는 침묵이 있다고 하더군요. 말이건 글이건 표현을 하는 만큼 억압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표현을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의도적으로 숨기고 침묵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죠. 언어의 억압적 측면은 도대체 극복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철없는 어린애가 아닌데 말씀을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하면서 알아듣겠습니다.

그러니까…… 1964년 여름이었을 거야. 내가 그때 순천에 내려갔다 와서 만났으니까. 을지로 쪽에서 그들을 만났던 것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겠구만.

공구상이며 조명가게가 들어서있는 허름한 단층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서있는 거리였지. 거기에 값싸고 푸짐한 식당들이 엄청 많이 있었지. 그때도 을지로3가 큰 길에는 해방 이후 서울에서 처음 문을 연 중국집이 있었어. 2층 건물의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다방 커피와 달걀을 띄운 쌍화차를 파는 옛날 다방들이 있었고……

우리는 토요일 오후 그런 다방에서 처음 만나 서로 인사를 교환했었지. 잠깐 동안 옛날 고향 이야기를 했고 그러고 나서 자리를 옮겼지.

을지로3가 안쪽으로 가면 노가리 골목이 나오는데 그 곳엔 80년대부터 많은 호프집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나도 회사 사람들하고 가끔 갔었지. 그 시절에도 노가리 골목의 단골들은 대낮부터 연신 생맥주를 들이켰어. 그래서 노가리 골목 가게들은 대부분 낮 12시면 문을 열었지. 그러나 60년대에는 아직 생맥주를 마시는 시절이 아니었으니까 그때 그 골목은 아직 생기지 않았었지.

그런데 말이야…… 을지로3가 뒷골목에는 양대창을 전문으로 하는 술집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길이 나오는데 대부분 60년대 이전에 문을 열었지. 그 시절 고기 맛이 그만이었지. 굶주린 시절이었으니까. 그때는 그 골목에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네.

그러니까 길가 탁자에 앉아서 암소 등심 등 고기를 구웠지. 그 골목에는 생태탕 맛집, 돼지갈비집, 곱창전문점, 소갈비집도 모여 있었지. 아마 거기 돼지갈비집에서…… 그때는 25도짜리 진로 소주가 있었으니까 그걸 엄청 마신 것 같네.

그 골목 끝에는 골뱅이 골목이 있었다네. 골뱅이무침은 새콤달콤한 맛이 흔한 맛이 아니지. 내가 참 좋아했다네. 통조림 골뱅이 하나를 통째로 따서 마늘과 고춧가루, 대구포, 파채를 함께 넣어서 버무리니까.

그날 골뱅이 집에서 입가심한다고 하면서 OB맥주를 또 엄청 마셨지. 그때 맥주는 아무나 못 마시는 고급 술이었네.

그날 그 작가는 고등학교 동창생 두 명과 함께 왔었지. 그렇게 기억한다네. 그는 나와는 나이 터울이 나지만 한때 도사동 이웃집에서 함께 자랐으니까 너무나 잘 아는 사이였다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그때는 법정동으로는 도사동만 있었는데 대대, 교량, 안풍, 인월 등 바닷가 쪽 시골 동네들이 도사동에 포함되어 있었던 거야. 아마 순천만 일대가 공원으로 개발되면서부터일 거야…… 언제부터인가 이런 동네들이 행정동으로 승격을 했더군.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전에는 도사동 전체가 변두리 촌구석이었지.

버스를 타면서 대대 마을이 대대동으로 변한 것을 처음 알았지요. 이렇게 많이 변한 줄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어요.

이야기를 계속하겠네. 두 사람은 초면이었지.

기억나는 게 얼굴이 희멀건하고 단정하게 생긴 친구는 그때 법대 4학년 학생이었는데 벌써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입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군. 역시나 호감이 가더라고. 나중에는 부장판사까지 하고나서 대형 로펌의 대표 변호사까지 지냈으니까 인품이 아주 훌륭하다고 순천에서는 그 명성이 자자했지.

다른 친구 역시 대학생이었던 것 같았는데…… 그들의 관심사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군 입대 문제였어.

학교를 졸업했고…… 그 무렵에는 자신의 인생 목표와 목적이 혼란스럽고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해도 어쨌거나 사회로 막 진출해서 꿈을 펼쳐야 할 시기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군대가 무슨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었지.

내가 한 수 가르쳐주었지. 그 당시는 어수룩했으니까 돈과 빽만 있으면 얼마든지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특히 말단이긴 했지만 병사계의 빽은 막강했어. 그 자가 빠져 나오는 모든 수단을 다 알고 있었거든. 돈만 주면 안 되는 게 없었어. 부정이 만연했지. 그 알량한 자리를 이용해서 허겁지겁 사리사욕을 잔뜩 취한 거야. 뇌물에 한 번 맛을 들이면 그럴수록 돈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거라네.

나도 꽤 큰 목돈을 쥐어주고 빠져나왔거든.

그들이 내가 알려준 대로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네만. 자네의 경우는 어땠나? 이곳 출신이니까 역시 병사계에 손을 썼겠지? 얼마쯤 주었겠지.

글쎄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그날…… 우리는 이런저런 말들이 길어지면서 꽤나 마셨다네. 많이들 마셨지. 물론 나는 그때 회사에 다녔으니까 술값은 내가 부담했다네. 그렇지 않은가? 젊은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당연히 여자 이야기로 넘어가지 않겠는가? 그때 그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 거야. 내가 이야기를 꺼낸 취지는…… 얌전한 여자가 어떻게 해서 주도권을 쥘 수 있느냐는 것하고…… 여자의 성불감증에 관한 거였어.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도 그건 아니더란 이야기였지.

우리들은 그때 술이 엄청 취할 때까지 즐겁고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떨었다네. 그리고 헤어질 때…… 그러니까 2차인가 3차인가 끝나고 헤어지면서 서로 말했네. 조만간 또 뵙죠, 조만간에요. 하지만 그 이후 다시는 보지 못했다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걸 처음 발표한 후 영화를 만들면서 몇 번씩이나 고쳐 썼더구만. 그것도 제멋대로 말이야. 진실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지. 나를 유부남이면서 아내 몰래 밀회나 즐기는 탕아로 만들어버린 거지.

 

* * *

 

여름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에 염습지의 풀들이 누렇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냇물은 바싹 말랐고 모기떼와 하루살이들만 들끓었다. 한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몹시 가물었던 것이다. 그때는 미풍마저 불지 않았고 바다로부터 진하게 풍겨오는 짠 염분 성분이 후덥지근한 날씨만큼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였다.

우리는 얼마쯤 지나 다시 만났고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대대동의 다방으로 갔다.

내가 말했다.

제가 약간 유치한 이야기를 해도…… 또는 약간 아는 채 거들먹거려도 현명하신 선생님께서는 그러려니 해야 합니다.

대화가 빗나가면 바로 잡아주시고……

저도 문학청년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 소설이라면 그 시절 분명히 읽었었죠. 하지만 영화를 본 기억은 없네요. 그걸 읽고 나서 감명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약간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왜 아니겠어요? 그때는 그랬어요. 반세기 전 일이니까요.

현실세계에서도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할 때는 이거다 저거다, 어느 하나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요. 흔히들 어떤 하나의 정체성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건 제대로 관찰하지 못한 거예요. 다들 조금씩 복잡하고 복합적이에요.

그러므로 그가 지닌 전체…… 다시 말하면 모든 면모가 하나의 정체성이라고 봐야겠지요.

누가 작가의 모델이 되었든 간에 그 작중 인물에는 약간씩 여러 사람의 모습이 들어있게 되지요. 누군가……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요…… 작가는 그의 모델을 그대로 복사하진 않는다. 그는 그들에게서 그가 원하는 것만을 취하며 그의 주의를 끄는 몇몇 특징과 그의 상상력을 점화시킨 성격을 취하여 인물을 구상한다고 했습니다.

작가는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왜곡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오히려 현실을 만들어가게 되지요. 소설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나는 같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곱씹은 탓인지 헷갈려서 이제 뚜렷하게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네. 50년이 흘렀으니. 그 작가는 그때부터 유명인사가 되었고 그 이야기는 너무 잘 썼기 때문에 문단에서 전설이 되었네. 자네도 그 작자가 써놓은 이야기를 읽었다는 거 아닌가. 글재주가 약간 있었다고 해야겠지.

자네는 물론이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소설을 읽은 것처럼 나도 그가 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놓는지 보고 싶어서 몇 번이고 읽어봤지. 그때마다 내가 그 유명한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네. 하지만 그런다고 누가 내 말을 믿어주겠어. 자네는 믿겠는가?

몇 년 전부터 난 자네 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나는 지금까지 살아남았네. 마침내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되었지.

내가 직접 책을 쓰지는 못 한다고 해도 적어도 이야기를 들려줄 수는 있지 않겠나.

아무리 인생에서 교훈이 되는 좋은 이야기이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그것은 기억에서 곧 사라져버리죠. 이야기는 글로 쓰여져야만 살아남아요. 어쨌거나 하나의 텍스트를 거쳐야 하는 거죠.

형님의 이야기는 충분히 근거가 있으니까 글로 남겨야 될 거예요. 회고록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자기 변명만 늘어 놓으니까 최악이에요. 문제는 예술성 혹은 예술 그 자체입니다. 형님의 굴곡진 인생은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의미가 담겨있다니까요.

그 소설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독자들은 형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몹시 당황스러워 하겠지만 말입니다.

먼저……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를 해 보세요. 상당히 궁금했거든요. 거기에서는 너무 간단히 처리되었지요.

내가 아버지를 본 건 딱 한 번뿐이었다네. 그것도 엄마와 함께 방죽길을 걷다가 우연히 보았지. 거동이 몹시 둔한 영감탱이가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지 질질 끌고 다가왔어. 계속 기침을 하면서도 연신 담배를 피워대더군. 눈길에는 뭔가 악의에 차 있었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작자가 내 아버지였어. 우린 얼굴에 닮은 구석이 많이 있었다네.

아버지는 나를 외면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긴가민가했어. 아버지란 작자는 엄마와는 한참을 속닥이다가 거친 말싸움으로 끝이 났어. 아마 돈 문제였을 거야.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생전 들어보지 못한 상스러운 전라도 욕설을 마구 내뱉었다네. 그래서 내가 당황해서 울어버렸지.

어머니는 평소 내가 뭘 물어보면 그럴수록 더욱 애매모호한 태도로 우물쭈물 했거든.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 그 집에 하인으로 들어가게 되었는지, 아버지란 작자와 어떻게 해서 처음 성교를 했는지 아니면 겁탈을 당했는지, 몇 번 만에 임신하게 되었는지, 왜 임신중절을 하지 않고 끝내 나를 낳게 되었는지, 아버지의 그 못된 성격이나 특징에 관해 얘기해준 게 하나도 없다네. 아주 작은 추억이라도 단 한 번도 이야기 해준 적이 없었어.

쓸데없이 동네에서 흘러 다니는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만 주절주절 말했었지. 그런데 이야기라는 게 시간이 흐르면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쯤은 자네도 알고 있겠지. 어머닌 고향이 경상도 하동이라는 거 외에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 형제, 어린 시절 등 외갓집 쪽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다네. 혹시 고아원 출신이 아니었을까 의심도 많이 했지.

어쨌거나 나는 아버지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어. 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거라곤 ‘윤’이라는 성밖에 없거든. 그래도 어머닌 뼈대 있는 가문이라는 것을 자주 강조했어.

아버지가 죽었을 때 재산이 남아 있었다면 내가 소송을 제기했을 거야. 그거 있지 않은가? 사생아들이 흔히 하는 친부확인 소송 말이야. 그 집은 원래 양조장을 한 소문난 부잣집이었는데 이미 거덜이 나서 실속이 없었다네. 자네가 변호사이니까 잘 알겠지만 소송 자체는 어려울 게 없었지. DNA 검사만 하면 되니까. 그 소송이야말로 진정한 마지막 심판의 날이 되었을 텐데……

그가 시니컬하게 웃으며 새로운 대마초를 꺼냈다. 말린 대마초를 종이에 접어서 만 다음 불을 붙였다.

자네 한 번 피워보겠나? 어떤 것하고도 비교할 수 없다네. 대마초 꽃을 말린 거니까 효과가 강력하거든. 천국에 갔다 오는 기분을 잠깐 동안이나마 느끼게 되지. 이걸 피우면 뭐든 하고 싶어지고 뭐든 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든다네.

그러니까 대마초를 피우는 것은 죄가 아니라네. 그게 범죄라면 범죄의 피해자가 누구란 말인가. 나쁜 악법 중의 악법 아니겠는가. 그리고 또 있지. 간통죄도 하루빨리 없어져야지. 국가가 오죽 할 일이 없으면 그 따위 법들을 만들었을까.

그는 대마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깊숙이 빨았다가 길게 내뿜었다. 나는 허공에 떠오르는 푸르스름한 연기를 지켜보았다.

이것도 혹시 내가 꾸며낸 거짓말이 아닌가 모르겠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완벽하게 이야기가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나?

자네는 법조인이니까 냉철하게 판단하게. 그러니까 날 비난하거나 원망하지는 말게나.

나도 작가가 되고 싶었다니까. 워낙 오랫동안 이야기의 뼈대를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궁리하면서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왔기 때문이지.

나는 모든 상황을 이야기에 맞춰서 몇 번씩이나 재구성해보았다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작가의 관점은 도대체 공정하지 않더군. 너무 심하게 왜곡을 하고 과장을 하고 미화를 하지.

소설가는 창조주라고 할 수 있어요. 그가 성실하고 치열한 작가라면 소설 공간에서 사유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물을 만들거나 작품의 형식이나 소재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자유재량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이야기를 꾸미는데 실제 증거는 필요 없다는 거죠.

그래서 서사적 충동을 느끼면 자신이 선택하고 창조한 범위 안에서는 인간의 감정이나 인생의 단면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 글 속에서 뭔가가…… 절실한 감정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거예요.

소설의 캐릭터에 뼈와 살을 붙이고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하지요.

작가란 항상 사물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야 하니까 틀림없이 호기심이 많을 거예요.

자넨…… 무명작가이면서 역시나 그럴듯한 이론을…… 설파하고 있구만. 그런데 작가에게 무한정한 자유재량권이 있다고? 그래도 한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엄연한 사실을 마음대로 왜곡할 수 있어? 작가에게도 창작의 윤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직업윤리라고 해야 하나…… 그게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냥 넘어가죠. 어머니 이야기를 더 해주세요.

나는 요즈음 밤이면 위산 역류 때문에 자주 토한다네.

병원에 가서 처방 받으시지 그래요.

약은 무슨…… 어머니는 그 집에서 무슨 일이건 닥치는 대로 하는 하녀였어. 난 어머니 나이를 몰라. 그때 어머니 역시 자신의 나이를 까먹었을 거라고.

어머니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틈만 나면 멀리 걸어서 공중 목욕탕에 가는 일이었네. 그때는 도사동 부근에 딱 한 곳밖에 없었지. 항상 완전히 녹초가 되어 돌아와서는 끙끙 앓기도 했지.

그리고 교회를 열심히 다녔어. 어머니는 낡은 성경책을 끼고 다녔지만 글을 읽지는 못했다네. 어머니는 일자무식이면서도 밤마다 밤늦도록 성경을 목청껏 낭송하였으니 그걸 하느님의 기적이라고 해야겠나? 아니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네도 잘 알겠지만…… 순천은 기독교가 한반도에 전파되던 시기에 선교 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예전부터 교회가 많았다네. 어머니는 나를 동네 교회에 보내기로 마음 먹었어. 내가 교회에 안 간다고 하면 사정없이 막 때렸어. 믿을 사람은 하느님밖에 없다고 하면서 말이야.

나는 맨날 하느님 운운하면서 거들먹거리는 그 목사가 뱀보다 더 싫었기 때문에 교회에 안 가려고 일부러 눈물을 쏟아내며 막 울었지. 실제 그 목사만 보면 울고 싶었다네. 그러니까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그럴 듯한 연기를 한 거지. 그 순간 이후로 나는 더 음흉해졌고 어른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네.

어머니는 방죽길을 걸으면서 내내 중얼중얼 욕설을 내뱉었지. 그게 쉴 새 없이 저주를 퍼부은 거였어. 그 대상은 틀림없이 하늘에 있는 하느님이었을 거야. 내가 어머니를 사랑했을까? 확신할 수가 없어. 그럴지도 모르지. 아닐지도 모르고. 나는 지금까지도 나를 낳아준 어머니를 결코 용서한 적이 없었다네.

어머니와 내가 살았던 그 집은 지금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아. 자연생태 공원인가 만든다고 하면서 다 파헤쳐버렸으니까. 그 놈의 공원 때문에 어머니 산소마저 찾을 길이 없다네. 내가 여기에 내려오자마자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보았지만 끝내 발견할 수 없었어.

얘기를 하자면 너무 길어. 옆길로 그만 새야겠네.

그리고 우리가 겪은 가난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하소연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네. 그 시절은 60년대였으니까 지금하고는 다르지. 달라도 너무 다르지. 그 시절에는 모두 가난했으니까 누구인들 잘 살았겠는가. 거기서 거기였지.

그 집에는 방이 두 칸 있었고 벽에는 곰팡이가 피었지만 누런 벽지도 발라져 있었어. 마당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지.

그 시절에는 오랫동안 아무 것도 바뀐 게 없었어. 마을은 여전했고 더욱더 지저분해졌다네. 길을 따라 늘어선 단층 건물들과 가게들. 사람들이 걸어가는 소리, 나이 먹은 사람들의 기침 소리, 자전거 소리,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소리, 가끔 자동차 경적 소리, 통금 해제 사이렌 소리, 온갖 소리들, 길거리에 서 있는 아주 사소한 가로수까지. 나는 그 주변을 샅샅이 알고 있었다네. 그러나 어딜 가나 갑갑한 무기력증만 느껴졌다네.

가끔 중년의 여자들이 무슨 일 때문인지 표독스럽게 욕을 하고 소리 지르고 팔을 휘두르며 싸웠지. 사람들이 모여들어 싸움을 말리다가 도로 물러났어. 좁은 거리에 사람들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면서 싸움이 계속 되었지.

적어도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 따르면 그렇다네.

고향에 다시 내려와서 세월이 많이 흘러갔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하였네. 공원 만든다고 온통 파헤치며 공사가 진행 중이더군. 지금 낡은 집들, 좁은 골목길, 가로수 길, 콘크리트 전봇대들은 모두 사라져버렸고 시멘트로 매끄럽게 포장한 긴 방죽길만 해안선 끝까지 뻗어있지.

그렇군요. 저쪽 산에 올라가면 대대로 내려오는 집안 산소가 있어요. 거기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가 있지요. 그러나 전 그 묘에 가본 적이 별로 없네요. 까마득해요.

내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거짓말을 한 걸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가 하인숙과의 그날 밤 관계를 그토록 세세하게 묘사한 걸 보면 단순히 기록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지어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야겠지. 그는 심혈을 기울여 재구성을 한 거야. 그러니까 내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이란 이야기지.

지금 생각나는데…… 그가 그 무렵 내게 편지를 보냈다네. 필적은 그만의 뚜렷한 특징이 있었지만 글씨를 알아보기는 힘들었지. 깨끗하게 정서해서 보낸 것이 아니었거든. 편지의 내용은 그날 밤의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달라는 거였지. 그는 어떤 형식이든 이야기를 만들어 글을 쓰고 싶어 했네.

나는 그때 약간 당황했었네. 술자리에서 한 이야기를 갖고…… 괜히 술기운 때문에 나 혼자서만 간직해야 할 이야기를 어설프게 한 거지.

그날 밤 상황은 그렇게 글을 쓸 만큼 흥미진진한 건 아니었으니까 알려줄 만한 게 없다고, 냉정하게 답장을 보냈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가 작가로서 마음대로 지어낸 거지.

형님이 술자리에서 한 두서없는 이야기가 젊은 작가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죠. 사실이 허구와 상상력을 유발한 것입니다. 실재가 재료가 되고 상상력이 발휘되어 가공하지 않으면 소설이 탄생할 수 없다는 거 아닙니까. 그것들이 공모하고 작당을 해서 한 편의 소설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자네를 보고 있자니 내가 정말 자네를 믿어도 될지 모르겠어. 작가라고 주장하니까 말이야. 내가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자네는 믿어 줄 텐가?

이건 말일세…… 자신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는 털어놓지 않으면서 그저 지나치면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에게 털어놓는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네.

내가 지금 횡설수설을 하고 있는 거야. 자네도 무명작가이긴 하지만 무슨 소설인가를 썼다고 했으니 궁금하긴 할 거야. 변호사가 돼가지고 오죽 돈을 못 벌었으면 소설을 쓴다고 했겠나. 너무 아픈 데를 찔렀나?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 돈 때문은 아니지요.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무섭다고 했습니다만…… 저도 무언가 쓰고 싶었답니다. 무슨 일인지 한이 맺혀 있었거든요. 인생에 곡절이 많거나 심한 심리적 외상을 입게 되면 그걸 치유하기 위해서 글을 쓰기도 하지요.

그런 건…… 나에게 해당되는 일이지. 그러니까 당신은 변호사를 하며 돈을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살고 남은 시간에는 소설을 썼다는 거 아닌가? 아주 이상적이었을 것 같네만……

그런데 말일세…… 당신은 20년을 훨씬 넘게 많은 소설을 썼다면서…… 왜 여지껏 무명작가이고 그 흔해빠진 문학상 하나 못 받았지……? 그게 의문이라네.

그렇게 남의 약점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면……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습니다……. 인간에게 완벽한 것은 없어요. 그러니까 완벽한 삶도, 완벽한 예술도 없는 거예요. 더욱이 둘 다…… 예술과 삶은 간극이 있고 서로 충돌하니까 둘 다 동시에 가질 수가 없어요.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예술과 삶 중에서 선택했어야 하는데 차일피일 한 거예요. 속물근성 때문이기도 하고…… 제가 어리석어서 우유부단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중을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글을 써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해요.

저는 예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신봉하지요. 하지만 도덕주의자는 아니에요. 교훈적이거나 설교를 늘어놓는 것은 질색이죠.

그러니까 오직 자아를 위해서, 자신을 입증하고,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맞는 만족할 만한 작품을 쓰는 거예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면 죄다 퇴짜를 맞아요. 팔릴 수 없는 책이라는 거죠.

그렇게 되면 저는 소외되고 결국 소멸되거나 파멸을 맞을 것입니다. 그게 제 운명이라면 일찌감치 체념해야겠지요.

 

* * *

 

바다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였다. 푸른 하늘 아래 멀리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바다는 유혹이고 함정이고 마약이었다. 짭짤한 소금기. 짙은 회색 안개. 바다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짙은 회색 안개가 자욱한 방파제에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려는 인간에게 그 바다는 과거에 대한 상실과 그 상실의 자각을 일깨워주었을 뿐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바다의 고요……

밀려와라 그대 깊고 검푸른 바다여

바다는 그 거대한 배를 달을 향해 기울였고

우리 사랑의 굴절에 미소를 보냈다.

 

물수제비뜨기를 한다. 수면을 차며 날아오르면서 날개를 치는 갈매기. 돌이 하늘 높이 날 수만 있다면. 한 마리 호랑나비로 변할 수 있다면. 돌을 허공으로 날게 하는 꿈은 나를 너무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가 말했다.

가끔씩 나는 더 깊은 망상에 빠져들어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 다네. 어쩌면 나야말로 그 작가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다시 말하면 나야말로 그 작가란 말이지.

그리고 말이야. 가령 내가 그걸 썼다면 내 자신의 이야기니까 얼마나 구구절절 잘 썼겠어. 왜 내가 그 소설 때문에 쓸데없는 죄책감을 느껴야 하냐고. 내가 그걸 쓰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그는 그걸 쓰고 나서 후일담으로라도 어떤 실존 인물에게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에 관해 여지껏 함구하고 있다네. 그는 윤희중이라는 작중 인물을 만들기 위해 그 모델인 나라는 인물을 아주 어설프게 축소시키기도 하고 확장하기도 했네.

그를 어렸을 적부터 너무 잘 아는데 똑똑하고 공부도 잘했지. 그런데 그가 작가라면 나라고 못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오기 문제는 아니었네.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고.

글을 쓴다는 게 필기구와 종이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나도 내 굴곡진 인생에 대해서 스스로 구구절절 쓰고 싶었다네. 나는 나 자신의 천일야화를 쓰고 싶었지. 그러니까…… 그 소설이 끝나는 시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지.

나는 분명히 잘 쓸 수 있었네. 그럴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있었고 쓰고 싶은 의욕과 갈망이 있었으니까. 내가 글을 쓴다면 그의 스타일을 벗어나 완전히 내 나름의 시각에서 창조적인 것을 쓸 작정이었지. 다시 말하자면 새로운 것을, 완전하게 변용한 것을 쓰고 싶었다네.

그게 소설이 될지, 자서전이 될지, 에세이집이 될지는 알 수가 없었네만…… 사람들이 1964년 이후 내 모습을 몹시 궁금해 할 것 같았거든. 내 이야기는 독자들의 중추신경을 건드리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진실을 밝히게 될 터이니까.

그런데 말이지……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까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어. 그래서 이런 저런 책들을 무작정 닥치는 대로 읽었던 거야. 그때는 밤새도록 많이 읽었다네. 눈이 짓무르도록 하루에도 100쪽이나 200쪽을 읽었다니까.

그래도 결국 글이 써지지 않더구먼. 원고지를 단 한 장도 채울 수가 없었지. 울고 싶도록 막막하더군. 세련된 솜씨로 깊은 내용과 재치과 기지가 넘치는 것을 쓰고 싶었는데…… 아무나 쓰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지. 도저히 쓸 수 없더군. 절망적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네. 나는 그때 자신에게 몹시 실망했어. 자네 지금 날 비웃고 있나!

ㅎㅎㅎㅎㅎ…… 웃음이 나오죠. 그것도 헛웃음이…… 내가 만나 본 몇몇 사람들 역시 자신도 글을 써서 책을 낼 수 있다고 큰 소리쳤지요. 그러나 한 줄도 못 써요. 얼치기들이니까요. 형님도 그랬겠네요.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습작 유화를. 예비 스케치와 밑그림은 거의 희미한 백지나 다름없었고 처음에는 색을 너무 엷게 칠했다. 그러나 마지막 그림은 완성된 이미지를 향해 매우 두꺼운 붓으로 진하고 빨리 마르는 유화 물감을 썼다. 그것은 거듭해서 재빠르게 덧칠을 하기 위해서였다.

왜 그렇게 많이 덧칠을 하였을까? 그것은 그림의 표면에 드러나 있는 빛깔에 현혹된 나머지 그 깊은 속에 감춰져있는 속살을 볼 수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랬다.

그는 무엇을 그렸는가? 바다와 하늘을 그렸다. 흰색, 검은색, 파란색, 회색, 때로는 붉은색이었다. 악마와 같은 바다의 에너지가 물결친다. 그림 속에서 폭풍이 울부짖고 파도가 넘실거렸다. 바다가 유혹을 하였다. 그림은 힘이 넘쳐났다.

그러나 그의 그림들에는 대부분 아직까지 제목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제’라고 제목이 붙은 것도 아니었다. 그림이란 항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데 그 이야기는 제목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태워버릴 그림이니까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여러 차례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것은 매번 자신의 눈이었다. 그림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재현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자아의 본질을 스스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얼굴 전체보다는 마음의 창인 눈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눈의 묘사가 정확하고 정밀했다. 종이 위에 그려져 있는 것은 단지 눈 하나뿐이었지만 그의 나머지 얼굴은 그림 밖에 그려져 있었다. 눈 하나만 가지고도 그의 얼굴 전체가 보였다. 그는 거울을 보고 스케치한 그림에 스프레이를 해서 건조시켜 놓았다. 그래야만 그림이 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때? 어제 마셨던 그 시큼한 막걸리 말이야. 떫으면서도 상큼한 맛이 괜찮지 않던가. 모처럼 그런 걸 마셨지. 진한 것하고 연한 것을 비교 할 줄 알아야 한다네. 한 가지 맛이 다른 맛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해주거든.

그래서 가끔 대대동의 해묵은 다방으로 간다네. 몇 달씩 걸려서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들리기도 하고. 나는 옛날에 자주 여행을 떠났지. 목적지도 없이 부유하는 노마드를 꿈꾸지도 않았고 발길이 닿는 대로 정처 없이 흘러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어딘가에 멈춰 정착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네. 그 여행은 다시 이곳 바닷가로 회귀하는 것을 전제로 한 그런 여행이었어. 이곳으로 돌아와야 할 필연적인 이유도 없고 이곳을 사랑하지도 않고 애착도 없지만 말일세.

거기에 설탕을 듬뿍 친 연한 다방커피를 마시려고 갔단 말일세. 그러면 독한 커피 향이 더욱 생각나거든. 거기 오래 앉아서 오고가는 사람들과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잡념에 빠져들지……

특히 젊고 예쁜 여자를 보면 그녀를 눈으로 쫓고 마음속으로 그녀의 옷을 전부 벗겨버렸지.

그건 심각한 관음증이죠.

단지 상상한 걸 가지고…… 그런데 그 작가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어. 왜? 세무서장 조와 국어 선생 박 선생이라고만 하였을까? 자네가 설명해보게.

그들은 단역에 불과해요.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단역으로서의 임무를 마치고 곧장 사라지지요. 그러니까 초점은 윤희중하인숙에 맞춰 있어요. 그래서 모두 두 사람 이야기만 하지요.

만약 이름을 붙여졌다가는 소설 속에서 인물의 정체성이 확립돼버려요. 작가인들 이름을 가진 자는 쉽게 처리할 수 없는 거거든요.

그런데 박 선생이 중학교 후배인 것은 사실인가요?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네. 우리 모두는 같은 중학교를 졸업했지. 그런데 조와 내가 그 작가보다는 훨씬 선배이고 박 선생은 2년인가 후배가 된다네. 나는 그때 가정형편 상 상고로 갔네만 그들 모두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어.

그나마 우리 중에서 번듯하게 대학을 나온 것은 그 작가뿐이지. 내가 야간 대학 영문과를 나온 것은 훨씬 후 일이야.

우리들은 그 학교의 선후배로 연결되어 있지. 하지만 그 시절 학창 생활에 대해선 기억하고 싶지 않다네. 그러니까 그립다거나 하는 일은 없지. 결손가정 출신이고 버스를 탈 차비가 없어서 매일 20리길을 걸어서 통학했으니까.

지금…… 뭐 그들의 이름을 밝힐 수 있다네. 지금 다들 늙었는데 뭐가 문제되겠나. 조는 조성식이고. 박은 박치순이었네.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나요?

궁금할 만도 하구만. 조성식은 광주로 올라가서 국장까지 승진했다지. 그런데 업체를 세무조사 하면서 돈을 받고 약간의 편의를 봐준 게 정기 감사에서 발각되었다네. 그걸 무마하려고 지역 국회의원을 통해서 여기저기 손을 썼지만 결국 파면을 당했다고 하더군. 지금 무얼 하고 지내는지는 알 수 없지. 뭐? 세무사나 세무법인의 대표쯤 하고 있지 않겠나?

그리고 박치순은 후배이긴 하지만 그때부터 늘 존경하였다네. 인간이 되먹었거든. 그래서 훌륭한 선생님이 된 거야. 그는 정식으로 사범대학을 나온 여 선생님과 결혼했는데 그 여선생님은 교장선생님으로 정년 퇴직했고 박치순은 평교사로 끝났다고 하더군. 자식들도 너무 잘 키웠다고 하더라고. 그들 부부야말로 모범부부라고 할 수 있겠지.

그것이 전부인가요?

내가 오랫동안 이곳을 떠나있었으니까 더 자세한 걸 알 턱이 없지 않겠나.

소설에 창녀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그건 내가 전혀 모르는 일일세. 창녀가 있었나? 난 그녀에 관해선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어. 그녀 얘기는 그가 꾸며낸 거야. 하지만 이게 진짜 진실인 걸 어떡하겠나. 나머지는 다 작가가 제멋대로 덧붙인 장식이라니까.

그게 그렇지요. 소설에 나오는 그 해변은 지금 남아있지도 않지요. 간척지가 되었으니까요. 어떤 흔적도 없다니까요. 삼전벽해가 우스울 지경입니다. 예전에는 해변이 끝나는 지점에 섬과 연결하는 길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은폐된 장면이 있을 거야. 내가 작가인 것처럼 머릿속에 이런저런 장면들이 떠올라서 몹시 혼란스럽군. 우리가 보드카를 너무 급하게 마셨는가보네. 늙으면 술도 점점 약해지지.

그의 얼굴에서 땀방울이 떨어졌고 눈에선 불이 났다. 그가 담배를 길게 빨아들인 후 입안에 연기를 가두었다가 아주 천천히 뱉어내자 가늘게 피어오르는 담배연기가 소용돌이로 꼬이며 허공으로 올라갔다.

옛날 제가 여기 있었을 때 말입니다. 그때 절벽 바위에 뛰어내린 여자가 있었어요. 제가 여기에 내려오자마자 그날 밤 늦게 거길 갔었거든요. 왠지 가고 싶었어요.

나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몸을 아래로 굽혀서 절벽 아래 허공을 바라보았다. 가랑비가 내렸고 우산을 뒤집어 놓을 만큼 약간 강한 바람이 불었다. 높은 절벽은 음산한 매력을 발산하면서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이곳에서라면 아주 쉽게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바다를 뚫어져라 내려다보니까 내가 수영을 못 한다는 것과 바닷물이 너무 차갑겠구나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뛰어내릴 생각이 사라졌다.

그날 방파제에는 갈매기들이 줄지어 앉아 구구거리고 똥을 갈기고 부리로 깃털을 다듬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이야기가 중단된 곳에서 다시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그걸 다시 생각하면 창녀를 등장시켜서 의도적으로 모호한 역할들을 담당하게 한 작가의 뒤틀린 정신을 엿보게 되지. 하필 하고 많은 여자를 놔두고 창녀를 생각하며 성욕을 느껴야 했을까? 그리고 말이야…… 도대체 왜 그는 그날 그 해변에 갔던 걸까.

해변의 어느 집 방에서 대낮에 그 짓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 집 주인 부부가 밖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우리의 정서상 아주 부자연스러워요.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섹스 이야기는 언제나 진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게…… 밤이 아니고 대낮이었다고? 밤이어야 되는데. 그러면 말이야…… 초여름이었고…… 그쪽 방죽은 밤이면 사람이 안 다니는 으슥한 곳인데…… 차라리 방죽의 자운영 풀밭에서…… 그 무렵 시골에서 젊은 청춘 남녀들은 그렇게들 했거든. 그게 자연스러운데……

형님도 그런 경험이……?

옛날 옛날, 아주 옛날 일이라네. 그건 그렇고 말일세.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건 내 죄를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음으로써 용서를 받는다거나 양심의 가책 같은 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니야. 그렇고말고. 난 지금도 나를 낳은 어머니를 원망해.

나는 언제나 여자들에 대해 강렬한 의심을 키워왔다네. 근본적으로 여자들을 의심했는데 그게 어머니 탓이 아닐까?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그래서는 안 되는데…… 아버지가 없었으니까 원망의 대상이 어머니가 될 수밖에 없는 거지.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육체적인 면에서 매우 건강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별로 내세울 만한 게 없지 않은가. 내 몸 자체를 말하는 게 아닐세. 여자가 이성으로서 남자에게 기대하거나 욕망하는 걸 말하는 거야. 현명한 여자들은 육감에 의해서 직관적으로 미완성품인 풋내기를 알아본다네. 그래서 그런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을 기피하는 법이거든.

하인숙도 그랬지 않겠나. 그때 그쪽에서 먼저 만나자고 했거든. 내가 잠시 내려왔지만 곧 올라갈 거고 기혼남이었으니까. 아무런 미련 없이 금방 떨쳐낼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녀는 그때 여러 가지로 계산을 하였을 거야.

그러나 그날 밤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빛나고 순수하고 섬세한 것을 발견하였다네. 그때부터 가슴 속에서 나의 뮤즈가 되어버린 거지.

그녀와 나는 그 해 가을 무렵까지 몇 번 만났어.

안 만나는 동안엔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몇 달 동안 그러고 난 뒤엔 편지가 끊기면서 모든 게 사라졌지.

나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분노를 느꼈다네. 온다 간다 말없이 도망친 여인. 나는 그녀의 뒤를 쫓았지만 계속해서 빠져나갔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다시 찾고 싶어 했다네. 불행하게도 그녀가 동성애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은 했지만 말일세.

내가 하인숙을 갈망했던 것은 사람 자체 때문이 아니었네.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이롭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존재로 상상하였기 때문이었을 거야. 그러니까 나로 하여금 그녀를 탐나게 만든 것은 나의 상상력이었을 거야.

그러면 나는 실제로 그녀에게서 무엇을 상상했겠는가?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누구와 함께 있을까?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이렇듯 질투하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을 상상한다네. 그러므로 모든 사랑의 시작에는 일종의 환상과 착각 혹은 상상과 오해가 존재하지 않겠나.

그리고 늘 울고 싶기도 했고. 늙은이가 되면 기억의 무게를 견뎌내야 하니까. 인간의 감정도 역시 서서히 늙어간다네. 끝까지 살다 죽는다 해도 죽는 순간에 느껴지는 건 아마도 분노일 거야.

하지만 나는 지금 솔직해지고 싶네. 그 시절에……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분명히 남성 우월주의자였다네. 남성이 자식과 여성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거지. 내가 하인숙을 온전히 소유하겠다는 욕망이 있었고, 지극한 이성애적 사랑으로 그녀의 동성애적 성향을 상쇄시킬 수 있다고 허황된 계산을 한 거지.

그러나 그녀는 훨씬 강했지요.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자기 보존 본능이 강했기 때문에 소유의 욕망을 무력화시켜버렸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생각해도…… 내가 한심하더라고……

다시 소설로…… 넘어가죠.

훨씬 후의 일이지만…… 어느 날 저녁, 나는 그 망할 놈의 소설을 또 다시 펴 들었네. 천천히 읽어갔지만 다시 읽으니 역시 짧고 얄팍하더군. 너무 자주 읽으니까 마침내 친숙한 글이 되었지만. 그러니까 작가의 생각의 흐름이나 문장의 구성에 있어서 독특한 습성이 눈에 들어오니까 글의 흐름을 알게 되더군.

어쨌거나 내 이야기가 나오니까. 그러나 모욕당하는 느낌과 동시에 그 안에 내 모습이 왜곡돼서 드러나 있다는 느낌도 받았지.

내 이름은 딱 한 번 나오는 거야.

무언가 불편한 심정이었고 억울하기도 했지.

그 작가는 내게서 너무 많은 걸 훔쳐갔어.

나는 밤을 거의 꼬박 새며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씩 몇 번이나 꼼꼼하게 읽어나갔지. 그건 완벽한 헛소리였어. 특히 하인숙과의 관계는…… 내가 그 소설에서 찾으려 한 건 내 청춘 시절 내 삶의 흔적이었는데 정작 발견한 건 그 작가의 자기 반영적인 헛소리였어. 그때 그는 고작 23살밖에 안 되었는데……

나는 그 작가가 쓴 또 다른 소설들을 모두 읽었는데 나는 그것들을 통해 점점 그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네. 그 작가의 의도와 그 많은 독특한 부끄러움의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었지.

물론 그 이야기에서 흡입력은 많이 부족했어. 턱없이 부족했다고 해야겠지. 섬세한 감수성이 절제되어 있지도 않고…… 아주 속물적이었어.

그러나 그가 그 소설로 성공하려고 어떤 책략이나 전략을 세우려고 한 것으로는 볼 수 없네. 20대 초반에 썼으니까 말이야. 그때만큼은 순수했겠지.

그것은 옳으신 지적입니다. 흠이 없는 텍스트가 어디 있겠습니까만. 작가 자신도 처음부터 그걸 알고 있었지요. 지금 다시 읽어보면…… 이제서야 알게 되었는데요…… 쓸데없이 우울한 감정이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요. 간결하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불가해성을 지닌 것도 아닌…… 아주 지겨운 멜로드라마이지요.

그러니까 50년이 지났지 않습니까? 그 작가도 이제 말년이 되어 죽음을 향해 천천히 걷고 있지요. 그러니 그 작품은 작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 속에서도 그 생명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군.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인숙을 사랑하긴 했던가요?

나는 그녀를 깊이 사랑했거든. 사랑이란 얼마나 이상한 감정인가. 그녀가 영영 떠나갔다는 걸 마침내 깨닫게 되었네. 그녀가 내 삶 속에 머물러있으란 희망은 도저히 가질 수 없었어. 혼란스러웠지. 그때 분노의 기억 속에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네. 산다는 게 얼마나 역겨운 일인가.

알고 보니까 말입니다…… 하인숙은 페미니즘의 선구자였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녀의 성적 정체성이……?

당신이 잘 지적했네. 하인숙은 확실히 여자이긴 하지만 양성애자이고 동성애자였다네. 내가 나중에서야 그녀의 비밀을 간파하게 되었지.

그러면 그녀가 왜 날 몇 번씩이나 만나주었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성 정체성에 관한 탐색의 과정이었네. 남자를 사랑할 수 있는지? 남자와 섹스를 해도 괜찮은지? 어머니의 성화처럼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지? 자기는 호모로서 여자만 사랑할 수 있는지? 남성을 너무 싫어하는지? 그런 걸 확인하고 싶었던 거지.

그때 그녀는 길 잃은 영혼이었어.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지 남몰래 자기만의 삶을 유지하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였네.

그러나 마지막까지 그녀는 알 수 없는 인물이었네. 그녀에 대한 진실을 결코 알 수 없어서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었지.

나는 우리가 전적으로 남성적이거나 전적으로 여성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그녀는 외면적으로는 극도의 여성성을 지닌 여성이지만 내면적으로는 확실하게 남성이었군요. 원래 인간 본질의 탐구에 사로잡혀 있는 소설가에게 이러한 이중성을 묘사하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지요.

그러나 그는 그걸 몰랐던 거죠. 진지한 작가가 아니었으니까요.

그 후…… 그러니까 이혼하고 나서겠지요. 다시 여자를 만난 일이 있었던가요?

…… 내가 그 회사를 그만둔 후 10여 년 동안 몇 군데 회사에서 재무 담당이나 감사 같은 직책을 맡았었지만. 완전히 직장 일에서 손을 뗐고 그런 후 여기로 내려 온 거지.

그 동안 여자를 사귀어볼까 생각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피곤하기만 했어. 그렇다고 내가 숙맥은 아니었으니까 몇몇 여자들을 만나긴 했었지. 그러나 절대로 진지한 관계는 아니었네. 부담스러울 정도로 진지해지면 안 되니까. 철저하게 자기 방어적인 거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나는 여기에서 프랑스 누보로망 작가 로브그리예의 견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친한 자매처럼 늘 같이 붙어 다니는 레즈비언들로부터 안절부절 못 하는 범죄자들을 거쳐 탐정들, 강도들에 이르기까지, 창녀들로부터 순결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양심에 얽매인 정의의 사람들로부터 불의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사랑에 가학적인 사람들, 논리적으로 미친 사람들, 소설의 그 훌륭한 작중 인물은 무엇보다 먼저 이중적이어야 한다. 줄거리가 인간적이면 인간적일수록 그 줄거리는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될 것이다. 결국 책 전체가 보다 많은 진실을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 많은 모순을 내포할 것이다.

 

* * *

 

우리는 그 해 여름 내내 그 이야기에 골몰했다. 우리들은 어느 덧 친밀한 사이가 되었고 결코 피상적인 대화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가 없었더라면 바닷가에 대한 오랜 향수가 차갑게 식으면서 무료한 시골 생활 때문에 금방 싫증이 나버렸을 것이다.

그가 말했다.

이야기가 뒤죽박죽이 되었네. 순서대로 나가지 못하고. 나는 상고를 겨우 나와서 그 당시 내 처지에 대학은 언감생심…… 아버지라는 작자가 죽고 나니까 그나마 우리를 먹여 살려주던 쥐꼬리만한 생활비가 뚝 끊겨버렸어. 사내아이에게 아버지가 없다면 그건 고아나 다름없는 거야. 아버지가 없으면 더욱 분명하게 아버지를 의식하게 되지. 나는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순천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네. 어떻게 해서든 취직해서 입에 풀칠이나 하려고 말이야.

어쨌거나 내가 그 회사에 입사해서 7년 쯤 지나니까 경리부장이 되었다네. 그때 마누라의 남편이 죽었는데……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내막은 모른다네. 그들이 입을 닫아걸고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으니까.

나는 그때 완전히 회사 인간이었어. 귀를 찢는 자명종 소리가 나를 새벽 잠에서 깨웠지. 나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베개에서 머리를 들고 눈곱이 달라붙은 눈을 억지로 떠서 곁눈질로 시간을 확인하였네. 그때는 10분만이라도 더 자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지.

내가 아침에 출근할 때는 마누라는 깨어나지도 않았다네. 단 한 번도 아침이면 ‘잘 다녀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네.

그리하여 오전 8시에 회사에 출근해서는 매일 야근을 하였지. 내가 매일같이 하는 일이란 전표, 분개장, 원장, 영수증 등 회계장부, 월말 결산서류, 분기 보고서, 연말 결산서류, 재무제표를 처리하는 것이었고, 더 중요한 일은 가끔 비밀장부, 비자금, 분식회계를 처리하는 일이었고 그리고 매일처럼 거래 은행에 들락거렸다네.

내가 그렇게 해서 시골 상고 출신인데도 그나마 장인의 빽 때문이었는지 경리부장에서 상무로 승진하였고, 10년 동안이나 만년 상무를 했고 그 후에는 또 10년 동안이나 만년 전무를 하였다네.

이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처가 쪽에서는 내가 반드시 필요했던 거야. 나는 상고 출신에 시골 촌놈인데 재혼이든 아니든 어떻든 부잣집 오너가의 딸과 결혼하는 게 싫지 않았네. 세속적인 속물근성에 따른 생존 본능이거나 자기보존 본능이 작용된 것이지. 내 앞길이 훤히 뚫리는 기분이었거든.

그 결혼으로 횡재를 한 셈이네요. 그런데 정략 결혼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그 회사의 진짜 대주주는 형님이었다네. 그러나 지병이 있어서 회사의 경영을 잠시 동생에게 맡겨놨는데…… 그 동생이 바로 내 장인이었지.

내 장인은 대표이사가 되었지만 회사 지분은 형님의 반의 반에 불과했어. 그런데 형님의 병이 깊어지면서 욕심이 생긴 거야. 황금에 대한 욕망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거고 그걸 탓할 수는 없다네. 그러니까 돈 앞에서는 형님도 없고 동생도 없는 거야.

그래서 장인은 회계 장부를 조작해서 비자금을 조성하기 시작한 거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주로 매입 단가를 높이고 매출 단가를 낮추어서 그 차액을 챙기는 거지. 그리고 회사가 커 가니까 자본금을 늘려야 한다면서 증자를 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지분을 늘리는 거지. 내가 만년 전무로 퇴직할 때쯤에는 자본금도 많이 늘었고 회사 매출도 500억대를 넘어서게 되었지.

그런 은밀한 과정에서 경리를 담당하고 있는 나의 재무회계에 대한 지식과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어. 그랬으니까 그쪽에서 먼저 나에게 은근슬쩍 접근해서 결혼을 부추긴 거지. 나는 멍청하게도 넘어갔고. 그랬으니 결혼생활이 평탄할 리 없었지. 하지만 나와 마누라는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다네.

전 남편과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심한 자폐아였던 거야. 혼자서 독립해서는 살아갈 수 없는 병이었던 거지. 내가 결혼했을 때는 어떤 특수 보호시설에 맡겨놓고 있었던 거야. 물론 훨씬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아내는 그 아들 때문에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마음 고생이 너무 심했다네. 그 때문에 우리 결혼생활이 많은 지장을 받았던 거고…… 마누라는 그 충격 때문에 다시는 자식을 낳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네.

그런데, 50년 전에 말일세, 그 제약회사가 무슨 대 제약회사였겠나. 내가 고향에 내려가서 폼 좀 잡으려고 ‘대’자를 붙인 거야. 내가 국내 굴지의 대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뻥을 친 거지. 그리고 곧 전무로 승진할 거라고 또 다시 심한 뻥을 친 거지.

그게 시골 촌놈들의 흔해빠진 자기 과시인 거지.

그 회사 오너는 말이야, 50년대 초에 종로 5가의 5평 남짓한 약국을 열었다네. 이익을 많이 남기려고 위장약과 성병약을 조제해서 팔았는데 그걸로 유명하게 되면서 큰 돈을 벌었지. 그 돈으로 제약회사를 창업해서 일본 제약회사의 국내 독점 총판을 따내서 수입 약품으로 돈을 벌고 상처에서 고름을 빼주는 고약으로 대히트를 쳤고 그리고 생약제제로 만든 위장약을 만들었지.

그러나 그때 1960년대 초 말일세. 그래봐야 본사와 성수동에 있던 공장 직원 전부 해서 고작 100명 남짓이었어. 그러니 대 회사하고는 거리가 한참 멀었지.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네. 세상 일이 뜻대로 순조로울 수만은 없는 거지. 미국에 유학을 갔던 형님의 큰 아들이 마침내 5년 만에 귀국을 했다네. 회계학을 전공하고 미국 회계사 자격도 따서 귀국해서는 회사의 경리장부를 샅샅이 뒤진 거야.

그걸 대표이사인들 막을 도리가 없었네. 대주주의 권한으로 상법상 인정되는 회계장부 열람권에 관해 법원에 소를 제기해서 승소한 거지. 그전에는 장부와 서류의 보전을 위해 가처분 신청을 했었고. 자넨 고참 변호사이니까 이런 걸 잘 알고 있겠구만.

형제 간 치사한 싸움이 볼 만 했겠군요?

결국 임시 주주총회에서 동생은 패배하고 물러났지. 사필귀정이라고 해야겠지.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네. 노발대발한 형님이 동생을 횡령 배임죄로 검찰청에 고소해버린 거야.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형님 입장에서는 동생이…… 배신을 했으니까 그럴만 하겠네요.

형님은 용서가 없었네. 동생이 잘못했다고 그렇게 빌어도 고소 취하도 해주지 않고 합의서도 써주지 않았지. 경제 사범에는 합의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더군.

그렇지요. 대게 합의하면 집행유예로 풀려나오죠.

그런데 그 사건에서 내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네. 그 동안 그렇게 냉랭하던 처가 쪽에서 나에게 매달리고…… 읍소하고…… 회유를 하였다네.

그럴만 하네요. 그 사건의 가장 중요한 하수인이었으니까요. 공범으로 함께 처벌 받지 않았나요?

말도 말게. 검찰 쪽과 타협을 본 거지. 검찰이란 게 두 번 다시 갈 곳은 아니더구먼. 그놈의 검사가 당장 구속시켜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거야. 그래서 엄청나게 압박을 받았지. 그때 내가 너무 연약하고 쉽게 상처받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네.

처음에는 죽을 만큼 두려웠지만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 침착하게 생각을 가다듬었지.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한 거야. 그랬더니 마음이 평온해지더라고.

내가 이실직고하면 뭐……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비밀 장부를 제출한다면 나는 관대하게 처벌하기로……. 그러니까 상부의 지시에 따라 시키니까 그렇게 뒤처리를 한 것으로…… 그렇게 정리가 된 거지.

무엇보다도 나는 그 일과 관련해서 단 한 푼도 받은 사실이 없었다네. 그것은 돈 때문에 지저분한 짓은 하지 않겠다는 내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담당 검사도 깜짝 놀라더구만. 검사는 내가 당연히 떡고물이라도 챙긴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나는 구속되지도 않고 기소에서 빠지게 되었네. 그 대신 법정에서 또 다시 증언을 서게 되었지.

그러니까 선서하고 증언하였다는 거죠?

그렇다네. 난 처음부터 내가 구속되는 한이 있더라도 밝힐 건 다 밝히겠다고 결심했어. 그래서 불태워버리라고 종용했던 비밀 장부도 검찰에 제출했던 것이고. 어쩐지 그래야만 된다고……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거든. 난 검사 앞에서건 판사 앞에서건 떳떳하게 진실을 다 밝혔어.

장인은…… 몇 년 형을?

판사도 괘씸하게 생각했던 모양이야. 끝까지 부인하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그랬으니 중형을 선고 받았지.

그 후 일이 궁금하네요?

이번에는 내가 배신자가 되었다네. 뭐라고 하더라…… 그렇지…… 기껏 키워주었더니 배신했다고 그러더라고. 그리고 마누라가 아니라 처가 쪽에서 먼저 이혼을 요구했어. 나는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고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도장을 찍어주었지.

그 무렵 새로 선임된 대표이사가 간곡히 만류했었네만…… 그 지경이 됐는데…… 회사에 사표를 냈다네. 본래 집은 마누라 앞으로 되어있었으니까 내가 짐을 싸서 나오면 되었지.

나는 이삿짐센터에 부탁해서 은밀하게 야반도주를 하였다네. 이웃들의 눈도 있고 회사 사람들이 알게 되면 이러저러한 말들이 나오게 될 테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이사를 한 거지.

그러고 나니까…… 갑자기 외로워져서 눈물을 흘렸다네.

나를 되돌아보게 되더라고. 나는 인생을 헛산 것이 아닌지 회의감이 들면서 막막해지더라니까. 삶이란 게 무엇인지, 악과 선은 왜 항상 함께 있는지, 어머니가 의지했던 하느님은 지금도 하늘에 살아 계시는지, 영혼은 불멸인지, 죽음으로 끝나는지, 윤회설을 믿어도 되는 건지 등등 근본적인 물음이 마음 속에서 제기되더라고.

평생을 책상에서 일했으니까 이제부터 남들처럼 트럭 운전을 하거나 공사 현장에서 육체 노동을 해야겠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지.

그러나 그 나이에 불가능한 일이었어.

그리고 그들 큰 물음에 대해 대답 자체가 가능한 지…… 설령 대답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대답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더란 말일세. 역사적으로 많은 인물들이 똑같은 질문을 제기하였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된 답을 제시한 사람은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네.

그 후, 그럭저럭 보낸 10년을 빼고 나면 여기로 내려오면서부터 내 인생은 밑바닥까지 내려갔지. 그래서 주민등록이 소멸되면서 사회보장 혜택도 모두 말소되었다네. 여기 살면서 그런 건 필요 없었으니까.

혹시…… 세상이 종말에 다다랐다는 종말론적 환상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아주 단순하고 마음 편하게 살고 싶었겠지요. 여기까지…… 더 내려가면 고흥 쪽 바닷가가 있는데요.

글쎄 말일세. 고흥에도 몇 번 가봤지. 그래도 고향은 익숙한 곳이니까. 도사동은 개발한답시고 그 모양이 되었지만 이쪽은 그런대로 남아있지 않은가. 옛날처럼 말이야.

그렇지만 여기에 처음 자리를 잡았을 때는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몹시 두려웠다네. 고립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었어.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외딴 세상에 홀로 갇혀 있다고 느꼈거든.

그런데 제가 있는 여기는 어디인가요?

그래서 내가 여기까지 내려온 게 자신이 선택하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신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네. 마음이 평온할 때는 선택한 것으로…… 마음이 몹시 심란할 때는 저주 받았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버림 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나를 구속했던 저쪽 세상과의 모든 질긴 밧줄을 끊어버리고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지금까지 홀로 살아왔으니까.

 

* * *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며 창문을 때리더니 그것을 신호로 해서 뒤늦게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다로부터 세찬 비바람이 불어왔다. 마지막 장마는 열흘쯤 지나서야 끝났다. 그리고 티끌 한 점 없는 청명한 초가을 하늘이 수평선까지 아득히 펼쳐졌다.

경전선 기차 소리가 밤의 적막을 뚫고 지나갔다.

그날, 우리는 날씨가 선선해졌으므로 모처럼 신시가지로 나가 광양 불고기 집에서 몇 병의 소주를 반주로 해서 점심식사를 했고 근처 카페로 옮겼다. 평일 오후 카페는 한산했다. 우리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셨다.

순전히 가벼운 술기운 때문에 의기투합해서 택시를 잡아타고 구시가지 쪽으로 갔고 가곡동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래쪽으로 옛날 거리 여기저기를 느긋하게 산책하는 것처럼 몇 시간을 걸었다. 순천대학교를 지났고, 순천남초교, 순천여고를 지나쳐 마침내 순천고 정문에 이르렀다. 그가 순천중을 다닌 것은 65년 전 일이었다. 우리는 학교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옛날 추억에 잠기지도 않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대대동의 옛날 다방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가 말했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세.

왜 광주역에서 기차를 내렸을까? 그 당시 순천역이라면 기차역을 중심지로 서울에서 내려오는 기차가 광주보다 오히려 많았을 텐데. 다시 말하면, 서울에서 순천으로 바로 내려오면 되는데 구태여 빙 돌아서 광주를 거쳐 내려오느냐 그 말일세.

그게 우스워요. 실제와 다르고 부자연스럽거든요. 그렇지만 소설의 도입부인 ‘무진으로 가는 버스’부분을 쓰기 위해서는 광주역으로 설정하는 것이 불가피했을 것입니다. 그런 정도는 눈 감고 넘어가야겠지요.

안개도 말일세…… 밤새 멀리 남쪽 바다에서부터 밀려오는 순천만 일대의 아침 안개는 너무나 유명해서 나도 잘 알고 있지.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안개 말일세. 그런데 그는 그 아름답고 신비한 안개를 밤 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라고 비유했단 말일세. 또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 놓은 입김 과도 같다고 했는데 그 장엄한 안개를 여귀의 입김에 비유하다니……

그게 어린 작가의 어설픈 치기가 아니었겠어요?

안개는 안개 속이에요. 그 소설처럼 말입니다. 안개는 혼돈이거나 혼동일 거예요. 현실과 허구를, 진실과 거짓을, 꿈과 현실을 혼동시키는 거지요.

그리고 말이야…… 순천이야말로 전남 동남부 지역의 중심도시로서 아주 옛날부터 역사와 전통이 있었는데…… 제멋대로 인구 오륙만의 읍으로 격하시키는 게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있겠나? 아무리 작가가 제멋대로 쓴다고 하더라도……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소설인 경우에도 정확할 것은 정확해야겠지요. 그게 작가의 직업윤리 아니겠어요.

헤밍웨이든가 누군가 인물이건 장소이건 모델을 묘사할 때는 그 모델을 아주 정확히 묘사해야만 된다고 했습니다. 그게 독자를 기만하지 않는 거지요.

작가 스스로 무진읍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순천시를 모델로 하였다고 밝혔다는데요. 읍이라고 한 것은…… 결국 독자를 기만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무명작가이긴 합니다만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읍이라고 하면 인구 1만이나 2만 정도를 기준으로 하거든요. 그 당시, 그러니까 50년 전 일이네요. 인구 5,6만의 읍이 전국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칩시다. 작가가 자신 만의 상상의 도시를 창조했다면 말입니다, 그 후 그 도시를 배경으로 한 후속 작품이 여러 편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만 그 가상의 공간이 문학적 배경으로 정착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후 뭐가 나왔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데도 무진, 무진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그들 비평가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뭐…… 그렇지요. 우리나라에는 지금까지 비평다운 비평이 없었어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요. 우선 문단의 패거리들이 얼마 되지 않고 바닥이 좁아요. 작가들, 소위 평론가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교수들, 출판사의 편집 책임자들 등등 해봤자 뻔하지요. 그러니 모두가 지연이나 학연, 기타 등등으로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어요.

학연은 고등학교와 대학이 중심이지요. 선배가 후배를 이끌어주어야 하는데 어떻게 날카롭게 후배를 비평할 수 있고 후배는 하늘 같은 선배를 어떻게 비평해요. 그랬다가는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바가지로 욕을 얻어먹고 매장되겠지요.

지연도 그래요.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예요. 그러니 좋은 게 좋다고 비평다운 비평을 못하고 주례사 비평만 하는 거예요. 그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죠.

참으로…… 인정이 철철 넘쳐흘러서 좋구먼.

그런데 아닌 구석이 있어요. 그러니까 지연이나 학연으로 얽혀 있지 않고…… 게다가 자폐아가 중얼거리는 듯한 그 흔해빠진 1인칭 사소설만 보다가 새로운 소재와 지식, 배경으로 무장한 깊이 있는 소설이 어쩌다 등장하면 그 낯선 세계에 대해 놀라움과 지적 호기심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공포심을 느껴요.

평론가는 지식이 엷으니까 그런 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요. 그러면 자신의 무식이 탄로 날까 봐 전전긍긍하지요. 그래서 비평한답시고 그럴듯한 언사로 마구 깔아뭉개는 거죠. 비평이란 제멋대로 하는 게 가능하니까요. 그때는 무척 잔인해지지요.

평론가는 검열관도 아니고 심판자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들의 역할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가이드일 뿐이에요.

그거 알고 계신가요? 신경숙 작가의 표절 사건 말이에요. 그게 가령 표절이라고 가정하는 경우에도 20년 전 일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20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표절 운운한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요즘 신경숙 작가가 한창 뜨면서 잘 나가니까 배가 아픈 거예요.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지요. 어떤 원로 작가는 그 작가더러 공개적으로 표절했으니 절필하라고 요구했어요. 자기가 무슨 자격으로 절필을 운운하는 거죠? 자기가 작가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는 입법가인가요 판사인가요?

전업 작가에게는 글을 쓰는 게 밥줄이고 생명줄인데…… 그건 밟을 굶고 죽으라는 이야기와 똑같죠. 작가에게 글쓰기는 어떤 것에서도 얻을 수 없는 생의 강렬함을 선사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작가는 글을 쓸 때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낍니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순간조차도요 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나 역시 그가 작가로서 완전히 실패했다는 걸 알고 있다네.

그는 1964년 무진기행 이후 이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 세 편을 직접 썼으니 무진기행을 총 네 번 우려먹은 셈이라네.

영화에서 제목은 ‘안개’…… ‘황홀’…… ‘무진 흐린 뒤 안개’…… 등으로 매번 바뀌었네. 특히 마지막 영화는 무진의 하인숙이 서울로 올라와서 윤희중과 밀회를 즐기지만 결국 그 사랑의 한계를 깨닫고 허무하게 헤어지게 된다는 마무리로 끝났지.

그는 시나리오 작가로 그렇게 활동을 하여 대종상 각본상까지 받기도 하였네. 그러니 무슨 소설을 더 이상 쓸 수 있었겠나.

무엇이 그의 글쓰기를 억압했고 상상력을 갉아먹었는지 도대체 짐작도 할 수 없다네. 위대한 작가라면 꾸준히 계속 많이 써야 하거든. 작가로서 게을러터졌고 불성실했어.

도저히 실체가 있는 작가…… 심각하거나 진지한 작가로 성장할 수 없었네. 너무 일찍 겉멋이 든 거지.

그랬으니 후배 작가들에게 모범은커녕……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구동성으로 칭찬 일색이니……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거지.

그 얄팍한 짧은 소설이 처음부터 요란스럽게 성공하니까 그게 독이 된 거야.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더라고. 그의 몇몇 작품을 나도 어쩔 수 없이 자세히 읽어보았다네. 왜 아니겠는가.」

옳으신 말씀입니다. 과대포장이 된 거죠.

짧은 단편 소설 하나로 대표작을 삼을 수는 없다구요. 우리 문학 풍토가 저변이 빈약하고 아무리 단편소설 위주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안톤 체홉처럼 단편소설을 600여 편 넘게 썼다면 모를까…….

그를 대표할 만한 장편소설은 없어요. 뭐니뭐니 해도 소설은 장편소설이지요. 그것은 복합적인 주제를 가지고 반복, 변주하면서 깊이 있게 다뤄야 하니까 마라톤처럼 긴 호흡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작가의 문학성과 진면목이 그대로 반영되는 거예요.

그 국어 선생님은 그 무렵 독서를 많이 하고 피츠제럴드를 좋아 한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피츠제럴드의 팬답지 않게 아주 얌전하고 매사에 엄숙했고 그리고 가난했다 했습니다.

박치순 말이군.

스콧의 ‘위대한 개츠비’ 말입니다. 1920년대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한 뉴욕 이야기이죠. 180쪽밖에 안 되는 작은 장편이지만 무궁무진하게 해석이 가능해요. 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 유복한 상류 사회와 하류층의 계급 문제, 사회적 신분의 상승과 몰락, 세속적 욕망, 사회적 자아와 심리적 자아의 분열이라는 이중의식, 사라진 꿈을 되찾으려는 시도, 백인 남성 우월주의, 그 소설은 결국 잃어버린 환상에 관한 작품이다. 소설의 힘이 플롯이나 캐릭터가 아니라 언어에 의존한다. 플롯과 타당성이 가장 큰 약점이다. 신파적인 별난 책, 싸구려 소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부자가 된다는 너무나 미국적인 이야기, 작가는 사상가는 아니고 그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 하드보일드이고 누와르적이다.

물론 미국 쪽 비평가의 견해입니다.

이에 대해 작가는 불평을 합니다. 이 책이 무엇에 관한 내용인지 알아차린 비평가는 없다고 말이죠.

그러면 그 소설은 지고지순한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게 가장 기본적인 해석이지요. 그렇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건 블랙 유머에 불과해요. 엄청나게 허세를 부리는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죠.

어쨌거나 장편소설이어야 해요. 그 단편은 유치한 하룻밤 풋사랑 이야기일 뿐이지요. 그 작가는 일찍부터 장편에 코를 박고 정진했어야 했는데…… 장편을 제대로 쓸 능력이 없었던 거죠.

자네의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네.

우리는 지금 이심전심으로 공모를 하고 있으니까.

내가 그 소설의 주인공이었는데.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의 소설들을 읽어보면 아주 감각적이더라고. 그러니까 깊이가 없지. 깊이가 없고 지극히 피상적인 거지. 그런 속물로 옛날 어수룩한 시절에 반짝한 거야.

형님의 말씀에는 정당한 비평이 아니라 멸시와 조롱의 느낌이 들어있네요.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편집병적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진정하십시오. 그저 얄팍한 짧은 소설일 뿐이에요.

아시다시피…… 그 작가가 명문 대학을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 패거리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껏 치켜세웠어요. 누가 감히 반기를 들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앞서 나온 글들을 교묘하게 짜깁기하고 말을 빙빙 돌려서 논지를 펼치지요. 아무도 비평하지 않아요. 이제껏 오직 환호와 찬양만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설이 되어버렸지요.

그래서 한심한 화가도 작가도 대대 마을에 잠깐 갔다 와서는 제2, 제3의 무진기행을 썼지요.

그들이 정말로 그 작가를 연구한다면 그가 누구이고, 무엇에 몰두했으며, 무슨 책을 읽었고, 취미가 무엇이며, 그에게 중요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형제들이 있었는지, 어린 시절이나 학창 시절은 어떠하였는지,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갔다 오는 군대를 갔다 왔는지,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였는지, 수입과 지출 내역서, 헌신적인 사랑을 한 적이 있고 실패했었는지, 그의 내면의 의식과 감정, 사유를 반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의 숭고한(?) 삶을 추적하는데 필요한 단서라면 연인과 교환한 짤막한 편지 하나, 메모, 낙서, 일기장 등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수집해서 분석하고 평가를 했어야죠. 그런데 아무도 그런 중요한 일은 하지 않고 있죠.

물론 그렇게 수집한 것들이 그 작가의 삶의 궤적을 복원할 수 있는 것인지, 그의 삶의 진실을 보여주고 그것이 작품에 미친 지대한 영향을 분석하게 해줄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더욱이 그 작품들이 그렇게 치밀하고 정교한 지적 탐구의 대상이 될 만큼 가치가 있는지도 여전히 의심이 가지요.

다시 말씀드리면…… 이런 건 보통 유명 작가의 사후에 하는 일이지만 만약 작가가 어떤 사정으로 더 이상 쓸 수 없어서 살아생전에 완전히 절필하여 작가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면…… 그의 영혼의 비밀을 찾아내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죠.

내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네……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도대체 윤희중은 누구인가요?

나는 그를 잘 모른다네. 그가 제멋대로 썼으니까. 내가 나라고 자신할 수 없게 되었네. 물론 그게 내 본명은 아니라네. 그러나 나는 내 이름 석자를 잊어버린지가 오래되었지.

나중에 보니까 영화에서는 윤희중이 윤기준으로 바뀌어버렸더라고. 왜 멀쩡한 이름을 바꿔 버렸는지 도대체 그 속사정을 알 길이 없었다네. 그 이름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영화를 만들면서 그 이름에 무슨 징크스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

왜? 이름을 바꿨을까요? 이름은 자존감과 인격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되는 겁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없이 함부로 바꾸는 게 아니지요. 그러니까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그의 운명이 확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 자네 말대로라면. 이름은 바뀌었지만 영화 속에서 운명이 크게 바뀐 건 없었다네. 아! 그렇지! 우리를 완전히 섹스에 미친 사람으로 만들었더군.

어쨌거나 소설에서 공간적 배경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지요.

윌리엄 포크너는 미국 남부 태생으로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특징을 지닌 남부를 배경으로 한 많은 소설들을 썼지요. 그의 작품들은 포크너 소설의 주요 무대인 가상의 공간 요크나파토바 Yokna patawpha에서 펼쳐지지요.

그리고 현대 미국 여류작가인 애니 프루의 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네요. 유명한 영화로 나온 ‘브로크백 마운틴’을 썼단 말입니다. 그녀는 와이오밍을 배경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많은 소설들을 썼었죠. 그러니까 Wyoming Stories 라는 부제를 단 단편집을 세 권이나 발표했지요.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네만…… 그 후 무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나오지 않는 것만은 틀림없다네.

소설에 보면 제약회사의 직급에 간사가 나오고 그 간사가 전무로 승진한다고 나오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그게 말이 되나요? 회사 직급에 간사가……?

내가 1964년 여름에 을지로 술집에서 만났을 때 분명히 경리부장이라고 찍힌 명함을 그들 일행에 나누어주었지. 나는 그때 틀림없이 경리부장이었지. 도대체가 우리나라 회사에서 간사란 직급은 없지 않은가? 자네도 변호사니까 잘 알고 있겠지.

거의 예외 없이 사원, 계장,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상무, 전무 등의 순서로 올라가게 되어있지. 거기서 왜 간사가 나오는지 아연실색했다네.

그리고 말일세…… 간사가 있다고 치더라도 거기서 어떻게 하여 곧바로 전무로 치고 올라갈 수 있단 말인가? 제멋대로 중간 단계를 생략할 수 있는 것인가?

가령, 간사가 전무로 올라갈 수 있다고 치더라도 말일세…… 왜, 쓸데없이 주주총회까지 열어야 하지? 그건 도대체 주주총회의 안건이 될 수 없어.

영화를 만들면서 그제서야 깨달은 거지. 주위에서 그걸 심각하게 지적했겠지. 그래서 영화에서는 내가 상무로 나오더라고. 주주총회 이야기는 쏙 빼고 말이야.

소설 속에서 보면 6.25.사변이 났을 때 말입니다. 그때 형님은 서울에서 대학에 다닌 걸로 되어 있는데요.

서울을 떠나는 마지막 기차를 놓친 나는 서울에서 무진까지의 천여 리 길을 발가락이 몇 번이고 불어터지도록 걸어서 내려왔고 어머니에 의해서 골방에 처박혀졌다. 라고 되어 있거든요.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는데 대학은 무슨…… 그건 작가가 마음대로 쓴 것이라네.

그때, 1964년 6월인가, 왜 순천에 내려오셨지요? 어머니 산소에 가기 위해서……? 어머닌 언제 돌아가셨어요?

그게 완전히 사실을 왜곡한 거라네. 그때 어머니는 멀쩡하게 살아 계셨거든. 어머니는 죽을 나이가 아니었어. 나는 모처럼 짬을 내서 산소가 아니라 어머닐 뵈려고 내려온 거라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그 후 10년쯤 지나서였어.

서울에서 동거했던 희라는 여자가 있었던 가요? 소설에서 그 여자 이야기가 잠깐 나오죠.

그날 술자리가 문제였던 거야. 내가 술이 몹시 취하니까 혀가 풀리면서 별 걸 다 까발리고 나불거렸다네. 채신머리도 없이 선배가 후배들 앞에서 말이야. 내가 회사 초년병 시절에 잠깐 만났던 여자야. 그때 여상을 나와서 거래 은행 창구에서 입출금 업무를 보고 있었으니까 서로 업무상 알게 된 거지. 그날 내가 그 여자와 몇 번 관계한 이야기를 하였을 거야. 그게 전부일 거야. 그런데 그걸 가지고 동거 운운한 거지.

그러면 중학교 출신 중에서 형님이 출세했다는 것은 무슨 말씀인가요? 조가 고등고시에 합격해서 세무서장이 된 것은 그렇다고 치고 말이지요.

부끄러운 일이네. 그 당시가…… 전쟁에 후유증이 남아 있었고. 지금부터 50년 전 일이니까 어수룩할 때가 아닌가. 내가 고향에 내려가서 말하자면 뻥을 친 거라네. 물론 전혀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었다네. 곧 대 제약회사의 전무로 승진할 거라고 떠벌리고 다녔지. 그렇게 된 거라네. 사실은 몇 년쯤 지나야 겨우 상무가 될까 말까 했는데 말일세.

지금부터 하인숙이라는 여자 주인공에 대해 말해보죠.

미리 밝혀두자면…… 당연히 하인숙은 그 여자 이름이 아니야. 작가인들 무슨 배짱으로 본명을 밝힐 수 있었겠나. 그런데 나 역시 그 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네. 내가 무덤 속까지 안고 가야 할 이름이야. 혹은 말일세, 내가 그 이름을 진즉 까먹었는지 모르겠네.

그럼 할 수 없죠. 그런데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오지요.

“참, 엊그제 하선생이란 여자는 네 색싯감이냐?” 내가 물었다. “색싯감?” 그는 높은 소리로 웃었다. “내 색싯감이 그 정도로밖에 안 보이냐?” 그가 말했다. “그 정도가 뭐 어때서?” “야, 이 약아빠진 놈아. 넌 빽 좋고 돈 많은 과부를 물어놓고 기껏 내가 어디서 굴러온 줄도 모르는 말라빠진 음악선생이나 차지하고 있으면 맘이 시원하겠다는 거냐?” 말하고 나서 그는 유쾌해 죽겠다는 듯이 웃어대었다.

그러니까 하인숙의 정체가 무엇인가요? 집안 배경을 말한 것입니다.

그 여자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졸업하자마자 서울의 여고에서 음악 선생으로 있었지. 어떻게 그게 가능했겠나. 그 여자 집안은 명문가였고 아주 부자였다네. 그러니까 영등포에서 사립 중, 고교를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 재단의 이사장이었어. 아버지의 동생들은 어떻고. 그러니까 작은 아버지 중에 한 사람은 법원장을 지낸 법원 고위직 출신이었고 그 당시 잘 나가는 현직 부장검사도 있었어. 어머니 쪽은 그저 평범한 가문이었다고 하더구만.

아주 대단했군요. 그런데 조는 왜 ‘퍽 똑똑한 여자일 것 같던데.’ ‘똑똑하기야 하지. 그렇지만 뒷조사를 해보았더니 집안이 너무 허술해. 그 여자가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고향에서 그 여자를 데리러 올 사람 하나 변변하게 없거든.’ 라고 말했을까요?

그게…… 그런 말을 한 건 사실이네. 소설에 보면 조가 ‘그래도 그게 아닙니다. 내 편에 나를 끌어줄 사람이 없으면 처가 편에서라도 누가 있어야 하는 거야.’ 라고 말했는데. 그러니까 조의 입장에서는 집안 배경이 탄탄한 하인숙이 절실했겠지.

그렇지만 조에게도 고시를 합격했다는 자존심은 있으니까…… 나에게는 그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척 위장하기 위해서 해본 쓸데없는 소리였다네.

그렇긴 합니다만…… 도대체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데요? 그런 하인숙이 왜 그 좋은 서울에서 시골 구석으로 내려오게 되었냐는 거죠?

나도 그 점이 궁금하였다네. 자네는 ‘보스턴 식 결혼’이라는 걸 알고 있나?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런 결혼은 인류 역사상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네. 헨리 제임스라는 소설가가 쓴 소설 ‘보스턴 사람들’ 속에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라고 알고 있네만.

그러니까 독신인 두 여성이 결혼한 남녀와 다름없이 한 집에서 정신적인 의지를 하며 사는 것을 말하지.

깊고 널찍한 안락의자에 두 팔을 걸친 채 남성처럼 편안히 앉아있는 그 여자와 그냥 맨 바닥에 두 손을 다소곳이 무릎 위에 모아서 앉아있는 그 여자의 여자를 보았다네…… 그때 어쩔 수 없이 목격하고 말았지.

형님 지금 울고 있는가요? 제가 남자의 눈물을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글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때를 생각하니 잠깐 울컥한 거라네.

그녀는 윤희중를 끌어당겼고 마치 빨아들일 듯 했다. 하인숙이 입술을 너무 격렬하게 물어뜯어 그는 소리를 지르며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침대로 끌어당겼고 바지를 벗겼다. 그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술과 커다란 검은 눈동자는 무언가를 묻고 싶어 했다. 그녀가 몹시 당황한 윤희중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속삭였다.

이건 제가 생각한건데요…… 미안하지만…… 당신과 저와의 첫날밤의 특권이 여자에게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 특권을 누리고 싶어요.

왜?!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행동할 수 없는 거죠?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어요. 시대가 변하겠지요. 그들은 세상으로 고개를 쳐들고 나올 겁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지요.

그녀는 윤희중이 그녀 아래쪽에 눕도록 했다. 그리고 속옷을 벗어던지고 그를 올라탔다. 침대가 부스럭대다가 삐걱거렸다. 그는 그날 저녁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녀가 가볍게 코를 골았던가…… 그때 그는 창문을 통해 별빛이 내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모든 걸 그녀가 주도했고 그는 완전히 수동적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양성애자이면서 동성애자라는 말씀이군요. 그래도 그만하면 다행이네요. 하인숙이 사디스트이거나 사도 마조히즘적 취향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렇다네. 날 유린한 건 아니었어. 그러니까 완전히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이지는 않았지. 다시 말하면…… 그런 변태는 아니었다네. 날 침대에 묶어놓고 채찍을 휘두르거나 칼로 몸 여기저기를 긁어서 피를 흘리게 하지는 않았어. 자신을 그렇게 해달라고 애원하지도 않았고.

그러나 순천으로 내려온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네.

순전히 내 추측이네만…… 자기의 여자를 찾아서 스스로 가족의 간섭이 없는 곳으로 도피를 한 거겠지. 아니면 가족들로부터 집안 망신이라고 파문을 당하고 쫓겨났을 수도 있어.

그리고 다시 순천에서 진주나 마산, 부산 쪽으로 계속 이동을 했을 것이네. 그 여자는 낭만적인 면이 있고 바다를 좋아했으니까. 살아있건 죽어있건 간에 부산이 마지막 피난처이었을 거야.

역시 지금도 못 잊고 계시군요.

그렇지. 그러나 연락이 끊긴 지는 오래 되었어. 그때 만나고 나서 몇 년 후부터는.

소설에서는, 그 여자는 개성 있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윤곽은 갸름했고 눈이 컸고 얼굴색은 노리끼리했다. 전체로 보아서 병약한 느낌을 주고 있었지만 그러나 좀 높은 콧날과 두터운 입술이 병약하다는 인상을 버리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라고 했거든요.

그건 작가가 제대로 묘사했다고 할 수 없네. 그때 술을 마시면서 그 여자의 인상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이야기 했었거든. 그러니까 묘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알고 있던 다른 여자 혹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어떤 배우의 이미지가 끼어들어서 뒤섞여 버린 거지. 아무튼 그건 아닐세.

눈이 크고 높은 콧날은 맞는데 병약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네. 예쁘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여자였지. 오히려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있었네. 우리 촌놈들을 약간 멸시하고 조롱하는 눈치였지.

그때 방바닥 비단 방석에 화투짝이 흩어져 있었나요?

그날 밤에 하인숙이 거길 무슨 이유로 오게 되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네. 그러나 화투를 치거나 술을 마실 만큼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네. 그건 분명하지. 왜냐하면 그 여자가 그 자릴 어색해하는 눈치가 역력했고 계속 무슨 할 일이 있어서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거든.

그러면 손가락으로 술상을 두드리고 하인숙이 ‘목포의 눈물’을 부른 것은 아니군요.

그렇지. 그가 재주껏 지어낸 거지. 그게 신파조 멜로드라마를 쓰는 작가의 작업 방식 아닌가. 내가 나중에 비평가들의 글들을 모아서 다 읽어보았지. 그런데 그렇게 그런 말을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태도를 돌변하여 온갖 찬양의 소리를 늘어놓았다네. 근거가 없는데 찬양 일색이야. 역겨워서 토할 것만 같았네.

그가 뭘 대단한 걸 썼다고……

다 나와 있더라고. 어떤 잡지사로부터 청탁을 받았는데 마감에 맞추지 못해서 쩔쩔 매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급하게 쓴 게 그 소설이었는데 겨우 완성하고 나서도 자신이 없어서…… 그 무렵 글깨나 쓴다는 동인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이게 무슨 소설이냐, 차라리 찢어버려라’ 라고 하면서 한결같이 지나치게 신파 같다고 혹평하였다네.

그래서 자신을 잃은 작가는 쓰레기통에 던져 넣을까까지 생각했는데 작품이 좋지 않으면 싣지 말라며 다음에 더 좋은 작품을 보내겠다는 추신을 덧붙여 편집장에게 보냈다는 거지.

그런데 무슨 조화인지 그 잡지에 게재 후 작가는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하더군. 너무 심하게 많이 받았어.

 

* * *

 

여러분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끼리끼리 주고받은 민망할 정도로 구태의연한 찬양 일색을. 그러니 단 한 마디 날카로운 비평의 말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멜로드라마 같으니 찢어 던져버리라고 했었는데 말이다.

일찍이 헤밍웨이가 지적했다. 칭찬이 가득한 서평은 작가의 정신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그렇게 찬사를 받으면 앞으로 글쓰기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진다고.

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한국문학사에 자리매김한 김승옥은 기존의 작가들과는 뚜렷하게 다른 변별점을 가지고 있었다. 4.19 혁명세대의 새로운 의식구조, 식민통치 시대의 교육과는 구별되는 완전한 한글세대의 출현, 문학에 있어서의 감각과 감수성 있는 문체의 구사 등의 특징을 내세우며 그는 한국소설사에 뚜렷한 위치를 차지했다.

김승옥은 새로운 문학의 지평이 뚜렷하게 예견되지 않는 시점에서,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았고 또 성공의 보장도 없는 미지의 영역 속으로 헤쳐들어간 당돌한 모험가였다.

그는 우리의 모국어에 새로운 활기와 가능성에의 신화를 불어넣었다. 그는 우리의 모국어에 대한 혹종의 미신 - 근거가 있기는 하나 너무 과장된 - 을 구호로써가 아니라 실천으로써 타파하였다.

김승옥은 감수성의 혁명을 우리의 황량한 문학 풍토 속에서 일으켰으며 우리는 그의 눈을 통해 모든 사물을 기성 세대와 다른 감각과 의미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의 창작은 내적 자아의 형성 또는 개인주의 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며 우리 정신사에서 처음으로 의식의 주체화에 전망을 비춰 준 것이다

비평가들이 한 술 더 떠서…… 무진이라는 공간은 서울과 대비된다는 등, 그곳은 질서보다는 무질서, 인공성보다는 자연성으로 상징되는 곳이라는 등, 무진은 질서와 체계가 잡히기 전의 혼란과 퇴폐를 보여주지만 그 자체가 삶의 원형과도 같이 어떤 구체성을 띠기 전의 모습이라고 하는 등 별의 별 소리를 다했다.

순천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전남 동남부 지방의 중심을 이루는 도시인데 그게 말이 되냐구요. 퇴폐는 무슨…… 서울이야말로 온갖 퇴폐의 중심지이지.

하인숙이라는 인물의 성격, 그리고 그녀와 나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 하인숙이라는 인물을 내가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는 그저그런 평범한 여인 중 한 사람인가, 아니면 모든 남성들의 환상을 구성하는 이상적 타자로서의 바로 ‘그 여인’인가? 하인숙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주인공인 윤희중 역시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문학청년으로서의 면모와 닳고 닳은 방식으로 자신의 출세를 위해 노력하는 중년의 노회한 속물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과연 ‘나의 분신’으로 간주되는 그녀는 순수하고 솔직하게 고뇌했던 ‘과거의 나’의 분신인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배경을 손에 넣거나 유지하기 위해 비열한 타협안을 작성하는 ‘현재의 나’의 분신인 것인가?

영화의 각색자는 원작을 쓴 소설가 자신이었다. 원작자인 만큼 그 작가는 소설을 고스란히 영상화하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인가.

원작의 각색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떤 점을 충실히 옮겼느냐가 아니라 어떤 부분이 필연적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어떤 부분이 어떤 방식으로 변이되었느냐에 대한 추적이다.

 

결국 작품이란 유동적인 텍스트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예술 작품은 결코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폴 세잔은 ‘그림은 절대로 완성되지 않으며 어느 순간 그리기를 멈출 뿐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작품일수록 스테레오 타입의 고정된 또는 한정된 의미에 갇히는 것보다는 유동적이고 역동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게 내 생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학 작품이 해석과 재해석, 재생의 과정에서 가변적이라는 관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널리 인정된 해석 이론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경우 자주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기도 하고 각색을 거쳐서 연극, 영화나 TV 드라마로, 만화로,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 새로운 버전으로 전환한다. (트랜스 미디어 스토리텔링 시대에 컴퓨터 게임, 소셜웹, 가상현실 게임, 테마파크 같은 엔터테인먼트 분야로의 전환은 제외하고서도 말이다.)

그 과정에서 각색자는 원천 작품을 재해석하여 시간과 공간을 변화시키고 캐릭터를 다른 관점에서 정체성을 변형하고 플롯을 변경해서 디테일을 생략하고 주제를 변주하면서 개작하고 재조합한다. 그래서 그들 각각의 버전은 상호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에는 옹기 그릇에 도공의 손자국이 남아있듯이 이야기꾼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제 각색자는 창작자가 되어 그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고정된 텍스트는 없다. 항상 유동적이다. 이야기는 숙명처럼 끊임없이 조금씩 일탈하면서 또는 증보되면서 반복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소설이 영화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변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걸 탓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작가와 독자는 독립된 개인이지만 작품 때문에 연결은 불가피하다. 작가와 작품을 매개로 한 독자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 소설에서 말이다. 작가가 죽으면 또는 죽어야만 독자가 탄생한다고 해야 할 것인가.

독자가 왜 이 소설의 의미와 관련해서 작가의 원래 의도 혹은 작품의 (숨은) 배경, 인물의 모델 등등에 관하여 신경을 써야만 하는가. 작가와 독자는 더 이상 비대칭적인 관계가 아니다.

작가의 내면 세계와 그의 어두운 영혼이 작품에 미친 영향과 상호 관련성을 파악하고 싶다면 왜 그의 삶과 생애에 관한 모든 사항들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그렇게 소홀할 수 있는가. 작품이 작가를 아는 하나의 계기이고 반대로 작가의 삶이 작품을 깊이 이해하는 계기라면 말이다. 그런데 고작 피상적인 관찰만 있을 뿐이다.

문학의 지고한 가치란 독자들이 작가의 영혼에 내밀하게 접근하게 해 주는데 있다고 하는 주장을 부정해야만 할 것인가? 작품은 작가의 손을 이미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논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오직 텍스트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들은 작가의 의도를 당해 예술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평가하는데 유일한 척도로 간주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독자는 더 이상 텍스트의 내용과 의미의 수동적인 수신인이 아니라 작품을 자기 나름대로 해체해서 해독하고 의미를 재창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는 이제부터 능동적으로 텍스트의 새로운 의미 형성에 참여하게 된다. 독자는 텍스트의 일부인 서사의 틈새를 메우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말이다. 결국 독자는 작가와 더불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그런데 독자들은 제각기 독자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재창조할 뿐만 아니라 같은 독자의 경우에도 나이 들어감에 따라, 시대적, 공간적, 문화적, 개인적 등등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해석과 재해석이 유동적이 되면서 작품에 대한 태도가 변화할 수 있다.

내가 60년대 그 무렵에 그걸 읽었었다. 반세기가 지나서, 나도 60대 후반으로 세상을 알 만큼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때처럼 읽을 수 있겠는가. 세상이 변했고 나도 변했다.

그때도 그 소설은 지나친 감상주의 때문에 신파조 멜로드라마 같았는데 5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성경을 제외한다면) 정전 취급을 받는 어떤 고전인들 지금 그때만큼 읽을 수 있겠는가. 생각보다 훨씬 재미없고 정말 지루할 뿐이다. 두서없이 긴 문장에는 쓸데없는 상투적 사설과 훈계가 그렇게도 많다.

그는 진지한 작가는 아니다. 여기서 진지하다는 것은 진지한 주제로 소설을 쓴다는 걸 말한다. 나는 그걸 산산조각을 내서 해체하고 다시 이어 붙였다.

 

* * *

 

김규현의 고향 마을은 벌교읍에서 여자만 바다 쪽으로 30리쯤 내려가 천마산 아래 바다가 초승달처럼 휘어져 육지와 맞닿은 만에 자리 잡은 작은 어촌이었다. 그 산이 넌지시 마을을 굽어보고 있었고, 마을은 바다를 향하여 가슴을 열고 있었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긴 해안이 바다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 마을에는 옛날 임경업 장군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 있었으나 그 사당은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마을에서 지금 사당 내력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옛날에는 마을의 50여 호 남짓한 가구들은 대부분 바다에 삶을 의지하고 살았다. (지금은 반 이상이 비어있지만 말이다.)

언제나 밤안개가 짙은 곳이다. 아침이면 해안가를 뒤덮고 있던 옅어진 안개가 여전히 뭉그적거리다 햇빛에 쫓겨 사라졌다. 이따금 바다 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왔고 파도는 으르렁거리며 밀려와 해변의 모래톱에서 부서지며 사라졌다.

그때 경전선 완행열차는 바다에 대한 향수를 안고 검은 석탄 연기를 내뿜으며 길게 기적 소릴 울리고 산기슭을 돌아 남쪽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뻘배를 타고 참꼬막을 잡았다. (‘나백이’나 ‘썹써구’ 같은 조개들은 이미 오래 전에 종적을 감췄다.) 채취 작업 중에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면 연신 신세타령과 장탄식을 늘어놓았다.

평생을 갯벌에 기대어 살아온 갯사람들은 자신들의 삶 전부를 빠짐없이 깊은 뻘 속에 켜켜이 쌓아놓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순천시 별량면 마산리 順天市 別良面 馬山里

장편소설 사하라에 나오는 유명한 건축가 김규현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벌교중학교를 졸업했고, 그 해 아버지와 쌍둥이 동생이 바다에서 죽자 어머니와 함께 외삼촌이 있는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그 후 부산공업고등학교, 서울공대 건축과를 나와서 주식회사 공간에 들어갔고 대표이사의 주선으로 프랑스에 유학까지 다녀왔다. 그러나 그는 사하라 사막 남쪽에서 이른 나이에 죽었다.

 

나는 지난 해 (2013년) 가을쯤에 내려왔다. 도사동 일대가 많이 변했을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많이 변할 줄은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30년 전 서울로 올라간 후 처음으로 다시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사동 남쪽으로 한참이나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별량면 마산리 거차 방조제가 보이는 근처의 비어있는 농가를 임시 거처로 삼았고 그 할아버지는 건너편 황룡사가 있는 구룡리에 15년 넘게 자리를 잡고 혼자 외롭게 살고 있었다. 그의 집 근처 해안가에는 호동 방조제가 있고 지금은 폐교가 되어 흉물스럽게 텅 비어있는 별교초등학교가 있다.

내가 내려와서 (제가 순천 출신이고 우리 산소가 여기 별량면에 있어요 라고 말하면서) 동네 사람들과 의식적으로 어울리며 자리를 잡고 난 후, 한겨울 바닷가에서 자주 긴 산책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때 몇 번 마주쳤는데 그러고 나서 처음에는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점점 자주 만나게 되니까 인사말이 길어지면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건 인간들의 관계에서 흔히 있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미스터리를 간직한 사람으로 보였고 처음부터 먼저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았다. 그가 훨씬 연장자였으므로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순서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는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자신이 그 소설에 나오는 실제 윤희중이라고 소개했다.

그때는 4월이었다.

달콤한 4월! 숱한 상념이 그대와 결합했구나, 마음이 합친 것처럼.

엹은 자주색 라일락꽃이 벌써 피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은 자라나고 기억과 욕망은 뒤섞인다.

그러나 우리가 본격적으로 그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여름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엉뚱한 소리가 아닐세…… 믿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네.내가 현실 속에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인 인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가? 다시 말하면 허구적으로만 느낄 뿐이고 실제적으로 느끼지 않는다는 건가?

사실이 허구일 수 있고 허구가 사실일 수 있지 않겠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진정한 불가지론자는 아닐세. 나는 그 작가가 진실한지 아닌지, 그 작가가 그걸 주장할 자격이 있는지 아닌지, 그 소설의 내용의 진실성을 보장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네. 다만 뼈와 살과 피로 만들어진 살아있는 피조물로서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할 뿐이라네.

 

오늘 거차 방조제에서 바라본 하늘은 잿빛이었고 파도가 거센 물결을 일으켜 조수의 방향을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내 흰 머리카락이 바다에서 불어 닥친 바람에 휘날리며 얼굴을 가렸다.

그녀가 첫사랑이었을까? 왜 사랑의 감정에 첫 번째가 있고 마지막이 있어야 되는가? 그렇다면 중간도 있어야 하고 아니면 아라비아 숫자로 번호를 매겨야 할 것이 아닌가?

오스카 와일드는 남자는 항상 여자의 첫사랑이 되려고 한다. 여자는 남자의 마지막 사랑이 되려고 한다. 라고 말했지만, 파스칼은 사랑에는 연령이 없다. 그것은 어느 때든지 생길 수 있다. 고 하였다. 폼페이 유적지의 낙서, 많은 여성과 사랑을 나누었다 multas puellas futuisse. 희대의 바람둥이 돈 후안은 한 여자를 두 번 다시 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첫사랑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을 것인가.

지금…… 30년이 지났는데…… 그 잊혀져가는 상처를 새삼스럽게 들춰내야만 할까? 옛 기억들이 순서대로 부드럽게 풀려나올 수 있을까? 나는 인생에서 실패했다고, 겸허하게 인정해야만 할까? 나는 행복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후회하고 있을까?

어쨌거나 내 생애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있다. 첫사랑 여자하고 결혼을 해서 살았던 아내하고.

그녀의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그럴 수밖에 없을까. 아무리 30년 전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자기보존의 본능에 따라 그녀를 잊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그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녀에 관한 일이라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막고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서 그녀를 깔끔하게 몰아냈는가?

그녀와 미련 없이 완전히 헤어진 것은 80년 막바지 겨울이었고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그보다 훨씬 빠른 70년대 중반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유신정권이 한창 맹위를 떨치던 시절에 만나 그 정권이 붕괴되고 나서 다시 신군부가 득세하고 80년 5월이 일어나기 직전에 끝난 것이다.

그 모든 게 불확실했던 엄혹한 시절에 우리는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고 시대 상황과는 무관하게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그 시절에 사랑놀이는 특별한 사치품이 아니었겠는가.

나를 먼저 사로잡은 것은 그녀의 내적 영혼이 아니라 아름다운 외모였다. 뚜렷한 이목구비의 얼굴, 우유 빛의 깨끗한 피부, 여자로서 아담한 체격, 말을 할 때마다 드러나는 고른 치아, 그녀의 아름답고 미묘한 미소.

그녀는, 그 시절에는 인조 속눈썹은 대유행이었지만 색조 화장품이나 부분 화장품이 유행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아주 얇게 발랐고 단정하게 깎은 손톱에는 복숭아 색 매니큐어를 칠했다. 그녀에게서는 늘 옅은 라벤더 향수 냄새가 났다.

그때는 호경기 시절이었고 시대가 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옷이나 헤어스타일도 금기가 풀리면서 점점 야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공화국에서 퇴폐적이기까지 가지는 않았다. 정권은 거기까지 허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자극하기 위해서였는지 자주 아주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났고 구두는 당시 유행했던 앞바닥에 두꺼운 창이 달린 굽이 아주 높은 하이힐을 신었었다.

우리가 처음 어떻게 만났더라? 내가 고시 공부한다고 미팅을 해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미팅에서 만난 건 아니었고 친구들 중에서 누군가 소개를 했을 것이다.

내가 몇 달 후 그녀의 어머니를 만났을 때 고시 합격을 눈앞에 둔 명문 법대 출신을 아주 노골적으로 얼마나 흡족하게 반겨주었던가.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곧 판검사 사위를 보게 되었다네. 집안의 경사이지. 그렇고말고.

김민정은 그러고 보니 어머니를 쏙 빼다 닮았다. 어머니가 그렇게 아름다우니 딸 역시 아름다웠던 것이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너무 쉽게 재빨리 연인이 되었다. 나는 횡재를 하였으나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이 저물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고 바닷가 시골에서 혼자 살고 있으니 자주 자기연민과 망상에 시달린다. 그녀 역시 지금 살아있다면 정신적으로 불안정하여 자기 방어적 입장에서 자신을 속이고 여전히 날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지금 이렇게 세월이 흘렀으니 가슴 속에 채 꺼지지 않은 불꽃이 남아있을 리 없다. 늦가을이었던가, 초겨울쯤이었던가. 그날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였다. 그날 동승동 다방은 날씨 탓인지 한산했고 분위기는 죽은 듯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는 나와 헤어지기 위해서, 결별을 선언하기 위해서 그렇게 입을 꼭 다물고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가. 왜 얼굴 표정이 의젓하고 의기양양했었는가. 희미한 미소가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스쳐지나가지 않았던가. 그녀는 아무런 고통도 내비치지 않고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선언할 수 있었던가. 나는 왜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심장이 망치질을 하고 격렬하게 고동을 쳤던 것인가. 왜 나는 굵은 눈물방울을 하염없이 흘렸던 것인가.

나는 지금도 그 싸늘한 눈초리를 떠올리면 등에서 소름이 끼친다. 그 순간을 어찌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한때는 친구들이 우리를 두고 그림처럼 매우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분명히 우리는 결코 떨어질 수 없는 한 쌍이었다.

나는 그때 한창 사랑에 미쳐있었으니까 그녀의 환심을 사려는 본능적인 욕구에 따라 행동했다. 변덕이 심한 여자의 비위를 맞추려고 말과 행동을 조심스럽게 조절했으니 나는 그때 꼭두각시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녀에 대해 뭐든지 다 알고 있었던가.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모르고 있었던 것인가. 무언가 오해하고 착각했던 것인가. 기억은 질서정연하지 않다.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다고 해도 어찌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세월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어서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때는 아직 풋내기 젊은 시절이었으니 민감했고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때 나는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받았음에도 노발대발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언제나 그 모양이었다. 철딱서니 없고 비현실적이었다. 자기연민은 없었고 오직 자기혐오의 감정만 있었다. 삶의 본질을 직시하고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없었으니. 그리고 그 후에는 삶이 닥쳐오는 대로 받아들이며 더욱 삶의 현실에 안주하였고 운명의 불가항력에 항복하였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도맡아 놓고 전체 수석이었으니 수재니 천재 소리를 들었고,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대로 법대로 진학했고, 법대에 갔으니까 당연히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다음 순서는 금방 고시에 합격하고 나서 권위주의 체제를 앞장서서 수호해야 하는 판검사를 할 차례였다. 그것이 내 젊은 시절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인생 항로였다. 그러므로 거창하게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고시 공부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는 녀석들을 가끔 보게 되지만 그건 치사한 자기기만이었고 그들은 위선자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지금 돌이켜보면 공부하는 동안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던 게 틀림없다. 나는 왜 시험을 칠 때마다 그렇게 허둥대고 노심초사 했던가. 나는 시험을 볼 때면 어김없이 논점을 벗어나는 해묵은 실수를 저질렀고 너무 서두르는 나머지 새로운 실수를 했다.

그 여자의 입술, 가슴, 허벅지, 다리는 어떻게 생겨 먹었던가. 지금 도저히 기억할 수가 없다. 나는 지금 그녀의 몸 위에서 헐떡거리며 환희에 찼던 밤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인가. 그때는 아직 진한 페팅을 할 줄 몰랐었지만 섹스가 끝나면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며 가벼운 잠에 빠져들었다. 그 전에 우리는 그때 한창 유행했던 냉 막걸리를 꽤 많이 마셨다. 그녀는 술을 잘 마셨지만 가끔 담배를 피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으니 서둘러 여관을 빠져 나와야 했다. 그때는 늘 임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 젊은 독자들은 야간 통행금지를 잘 모를 것이다. 밤 12시만 되면 인적이 완전히 끊긴 거리 모습은 마치 유령의 도시 같았다.)

그녀가 나를 위해서 아니면 우리를 위해서 언제 눈물을 흘렸던 일이 있었던가. 목이 메일 정도로 눈물을 쏟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쬐끔 흘러내리는 정도라도 말이다. 그녀는 말싸움을 할 때 처음에는 입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끝날 때쯤에는 강한 자기만의 목소리로 할 말을 모두 내뱉었다.

나는 그때부터 그녀의 강한 일면을, 다시 말하면 고집 센 독한 일면을 눈치 챘어야 했다. 그녀는 끝판이 다가오자 내 쪽에서 연락을 하지 않으면 먼저 연락을 하지도 않았고 겨우 만나면 합격이나 결혼 같은 어떤 기대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어떤 열의도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지금 30년 전에 헤어진 첫사랑 애인과 정식 이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서울에 내팽겨쳐 둔 아내에게 동시에 어설픈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받은 모욕과 상처는 놔두고 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기로 하여 다른 방을 쓰고, 밥을 각자 알아서 먹었다. 아내는 무엇 때문에 나를 의심한 것일까? 내가 그녀를 속인 적이 있었던가? 그럴 거야. 무수히 속였을 거야. 지금도 속이고 있고. 여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아내는, 30년 가까이 매일 밥을 차려줬는데 이젠 그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실상 이혼 상태 혹은 별거 상태였다. 그렇지만 사회적 이목과 체면 때문에 가정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하거나 이혼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를 하고 지냈다.

나는 서울에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가출을 꿈꿔왔다. 아내에게 어떻게든 양해를 구하고 아니면 쪽지라도 남겨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주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버렸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하는 것처럼 하면서 집을 나섰다. 아내와는 그게 마지막이었다.

은행에 있는 잔고를 전부 인출한 다음 은행계좌를 폐쇄했다. 그러고 나서 정처 없이 여기저기를 여행했다. 어차피 아내는 내가 집을 나가도 찾을 생각이 없었겠지만…… 그래도 아니다 싶어서 나는 집을 완전히 나왔으니까 찾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므로 서울에서 가져온 게 거의 없었다. 서울에서 보낸 내 삶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것도 가져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짐은 여행가방 한 개에 다 꾸려 넣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날 망년회에는 왜 쓸데없이 참석했던가. 도중에 적당한 핑계를 대고 빠져나올 순 없었던가. 그 자식은 술이 많이 취했고 그녀의 자살 소식을 전했다. 나는 그때부터 정신없이 연거푸 폭탄주를 목구멍 속으로 털어 넣었다. 내가 그때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던가. 그녀에 대한 슬픈, 애틋한 감정이었던가. 사필귀정의 감정이었던가.

우리는 그때 인내심이 바닥이 났던 것인가. 긴 연애 기간이 우리를 지치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려 5년이나 넘게 기다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2년인가 3년 후에는 천신만고 끝에 결국 합격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결혼하여 분명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불행한 현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민정! 너는 인생에서 불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첫사랑은 깨지기 십상이라고 했다.

나는 오늘 밤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때 일어났던 사건들이 온갖 억울한 감정, 분노, 불안을 야기하였던 것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용서할 수 없었다.

 

* * *

 

그는 손에 나무토막 한 조각과 칼날이 예리한 접이칼을 들고 있었다.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에는 찢어진 흉터와 작은 흉터들이 나 있다. 작업실에는 나무 냄새가 났고 톱밥 먼지가 널려있다. 요즘 손에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목공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 낚시를 하며 계절에 따라 고기를 잡았다.

거실에 달린 달력에는 밀물과 썰물 시간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낚시를 하러 나갈 수 있는 날을 알기 위해서였다.

그가 말했다.

목이 좋은 곳에 가면 고기들이 많이 달려든다네. 내가 잘 잡지는 못하지만 녀석들이 딱 물고 늘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지. 그런데 그것들이 영리해서 낚시의 갈고리가 느껴지면 바로 뱉어버리지. 아주 영리하다니까.

낙지 잡는 기술을 저에게 전수해줄 수 없나요? 낚시보다는 그게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아직 초가을이니까 낙지가 제대로 클 때가 아니라네. 얼둥이라고 하는 중낙지 정도가 많을 거야. 곧 11월이니 알이 굵어지겠지만.

큰 놈은 4~5자 정도 될 거야. 그것들은 진흙탕 구멍 속에 들어가 겨울에는 틀어박혀 있으면서 구멍 속에 새끼를 낳지. 그런데 새끼가 어미를 잡아먹는다네.

낙지는 고작 1년생이야. 부화한 새끼들은 어미를 먹으면서 대를 잇는 거지. 어차피 죽을 목숨, 새끼에게 주는 셈이라네.

그런데 암낙지는 교미 후에 수컷 낙지를 먹기도 한다네. 혹은 교미에 실패해도 힘이 센 놈 쪽에서 약한 놈을 잡아먹지. 특이한 종족 보존 본능을 가진 녀석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 그러니 낙지 맛의 엄숙함을 다시 생각해보게나.

70~80년대에는 낙지가 지천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지금도 낙지가 많이…… 낙지 잡는 기술을 말씀해주세요.

낙지잡이 선수들은 우선 부럿이라고 부르는 숨구멍을 찾지. 부럿을 찾으면 발로 슬슬 주변의 뻘을 밟아 주는 거야. 낙지가 숨을 죽이고 있는 자리는 공간이 생겨서 물이 차게 되거든. 그러면 낙지의 은신처를 파악한 후 삽질을 하기 시작하지. 낙지잡이 전용 삽도 있고. 보통 삽과 비슷한데 날이 훨씬 작아. 빠르게 찐득찐득한 뻘을 파기에 적합하다네.

그렇군요?

낙지가 욕심이 많고 힘이 세지. 그렇게 힘이 좋으니까 게와 새우, 조개를 잡아먹는다고. 그리고 낙지는 물고기치고는 머리가 좋고 꾀가 아주 많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빠른 시일 내에 직접 시범을 보여주겠네. 장도리에 한 번 가자고. 그곳 뻘밭은 여전하니까.

괜찮으시겠어요? 무릎과 허리 말입니다. 깊은 뻘밭에 들어가시기에는……

책상물림 샌님보다는 내가……

낙지는 봄가을 두 번 부화한다. 봄에 낳은 녀석들이 더위를 피해 바다에 나갔다가 가을에 갯벌로 돌아온다. 엄청나게 먹어서 몸을 불린다. 그리고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는다. 보통 세발낙지란 것도 이른 봄과 이른 가을에 있다.

그런데 잔 낙지가 세발낙지이고, 그게 중낙지가 되었다가 가을이 더욱 깊어지면 대낙지가 된다.

나에게 갈망이라든가 절박감은 없다 해도 시간을 허비한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든다네. 그러니 소일거리라고 생각하지 말게.

내가 원하는 물건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면서 희열을 느꼈다네. 그러나 꼭 생활필수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네. 오브제로서 소품을 직접 만드는 것이지. 그렇게 만든 게 수천 점이나 되지. 그걸 내다 팔 생각은 없어. 그 조잡한 걸 누가 사겠나? 그냥 손에 상처를 입어가면서까지 정성껏 만드는 거야.

그래서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대신 목공일을 하고 있는데.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힘들고 거친 목공일을 하는 게 훨씬 좋다네. 정신적으로 편안하거든.

요즘 매일 작업실에서 나무를 만지고 있지.

작업도구란 게 고물이 된 무딘 대패 몇 개와 강철 톱, 망치와 끌, 몇 가지 공구가 전부이지. 원하는 크기로 나무를 잘라 두텁고 거친 나무판에 대패로 몇 차례 밀어붙이면 예상치 못한 나무의 고운 속살이 드러나지. 유일한 작업 원칙은 나무의 질감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라네. 그 순간부터 나무의 세상에 빠져버리지.

요즘에는 목공일에 빠져 있으니까 소설 같은 건 전혀 읽지 않겠네요?

지금 형편에 글을 읽기에는 눈이 너무 침침하지. 그 소설은…… 처음 들어본다네. 당연히 읽지 못했다네. 앞으로도 내가 읽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말게.

그렇습니다. 다들 재미없다고 하더군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맥이 풀리긴 합니다만……

미안하네만…… 나는 자네의 첫사랑과 이별에 대해 관심이 많다네.

형님께서…… 첫사랑 이야기를 다했으니까 이제는 제 차례라는 말씀이군요.

그렇다고 해두지. 나는 여자와 남자의 이별의 순간에 대해 특히 관심이 많다네. 여자들의 속성이 그 순간 잘 나타나지 않겠나. 그리고 그때 남자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말이야.

그래서인지 누군가 말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너무 희미한 불빛 아래서 여자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좀 더 밝은 곳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네.

그 순간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죠.

…… 여자는 헤어질 때 냉정하더라구요. 남자보다는 훨씬 독하지요. 제가 그때 느꼈던 분노…… 상실감…… 나를 압도했던 배신감만은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부질없는 이야기입니다. 부끄럽네요. 그 여자는 이미 죽었는데……

그가 말했다.

벌써…… 죽었다고?

그렇답니다. 하인숙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사람이 갑자기 그리워지는 군. 너무 자주 들먹여서 그런지 어느 순간 불쑥 나타날 것만 같다니까. 때로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도 일어나는 법이라네.

여태 미련을 버리지 못 하셨군요. 잊어버릴 때도 됐지 않습니까? 지금 살아있다면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되어 있겠죠. 젖가슴은 늘어지고 허연 머리숱은 얼마 남지 않았겠지요.

늙은 할머니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늙는다는 것은 특히 여자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지요.

그러게 말이야…… 남자는 그런대로 늙어갈 수 있지만…… 여자는 늙으면 너무 추해지지. 그러나 하인숙은 아닐 거야.

형님이 잘못한 게 있을까요? 혹시 그때 남자로서 잘했다면 그녀의 성향을 바꿀 수 있었을 거라고…… 자책하고 계신 건 아니겠죠.

그럴 수도……

마지막으로…… 하인숙에 대해서는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네요. 만약 말입니다만…… 하인숙이 지금 그때 나이라면 어땠을까요? 아마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다 양쪽 귓불과 배꼽에는 피어싱을 했고 헐렁한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강남 거리를 활보하며 걸어 다니겠죠. 그러나 실용적이어서 10센티미터가 넘는 킬힐을 신었을 리는 만무하고 당연히 싸구려 운동화를 신었겠군요.

혹시 몸에 동물 문신을 했을 수도 있어요. 네일 케어를 받으면서 매일 손톱에 영양제를 바르고 외출할 때마다 손톱에 각기 다른 형형색색의 매니큐어를 칠하겠지요. 가끔 트랜스젠더 바에 가서 위스키를 마시고 성적으로는 펠라티오를 즐겼을 거예요.

참 불쌍하지요. 그때 혼자서 사회적 위선을 뚫고 나올 순 없었다구요. 시대가 한참 변한 지금쯤 20대 후반이거나 30대 초반이어야 하는데요. 그러면 레인보우의 기수가 되어 성 소수자 단체나 페미니스트 단체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겠지요. 그렇게밖에 상상할 수 없어요.

그래, 그렇다고. 여자는 정말 알 수 없는 거야.

그렇지만 말일세…… 지금이라고 해도 레인보우의 기수가 될 만큼은 아닐 거야. 여성다운 면도 있었거든. 노골적으로 커밍아웃은 못 하고 꼭꼭 숨어서 했을 거라고. 집안 체면 때문에 말이야.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선천적으로 타고 났다고 할 수 있겠지요. 동성애자 말입니다. 그런데 성 소수자들은 심한 차별을 받으니까 분노했고…… 사회적 편견에 맞서기 위해서 페미니스트가 됐을 거라고요. 시대가 한참 변했어요. 지금은 21세기에요.

그렇다면……시대가 그렇게 변했다면……

이제 얼추 1년이 다 된 것 같은데…… 자네가 여길 온 게 말이야. 벌써 가을이라네…… 또 그때처럼 서울로 올라갈 텐가?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때…… 할아버지처럼 말씀하시는 군요.

오랫동안 바다에서 노련한 낚시꾼으로 살아온 늙은 어부가 말했지요. 서울로 하루빨리 올라가야만 된다고 했어요.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 보내고 마소 새끼는 촌구석으로 보내라는 속담을 맨날 들먹였어요. 바다 사람이 될 팔자는 아니니까 여기서 괜히 시간을 죽이지 말라고 했지요.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야?

서울로 다시 올라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불가능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할 일은 있어야겠지요. 구시가지 쪽에 집을 얻어 살면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써야겠지요. 그 속에 피가 흘러야 할 겁니다.

왜? 바닷가를 떠날려고?

바다가 늘 유혹을 하지요. 그래서 바다가 안 보이는 구시가지 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소설을 쓰겠다고?

소설은 쓰기도 어렵고 출판하기도 어렵죠. 어떤 면에서는 출판이 더 어려워요. 자비 출판을 할 돈도 없지만…… 그건 자존심이 상해서 하고 싶지 않네요. 그러나 끝까지 쓸 거예요.

누가 알아봐주지도 않고…… 팔리지도 않을 글을 계속 쓰겠단 말이지? 그게 어쩔 수 없는 무명작가의 운명이겠지. 그러나 자포자기해서 그걸 태워 없애지는 말게. 카프카를 보더라도 유언대로 그의 작품을 모두 소각해버렸다면 그는 진즉 땅속으로 묻혀버렸겠지.

누가 믿거나 말거나 스스로 글재주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까…… 혹시 자네가 죽은 후에라도 빛을 보지 않겠나?

그런데 소설의 마지막 부분 말일세……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 부분 말씀인가요?

그렇다네. 거기에 ‘27일 회의 참석 필요. 급상경 바람 영.’ 이라는 아내가 친 전보가 나오지 않는가. 그러니까 윤희중이는 휴가를 얻어서 어머니 산소에 간다는 핑계로 대대동으로 내려왔지 않은가. 그 일주일 사이에 주주총회가 개최될 거고. 그렇다면 말일세…… 왜 구태여 전보를 칠 필요가 있었냐는 거지. 일이 진행될 순서가 뻔하게 정해져 있었는데. 왜 급상경이 필요했을까?

그리고 자네도 회사법 전문 변호사였다니까…… 주주총회에 왜 윤희중이 참석할 필요가 있었을까? 주주도 아니고 회의 진행을 맡은 대표이사도 아닌데…….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거야.

형님도…… 지나치게 꼼꼼히 따지는 거 아닌가요? 소설이란 게 대충…… 그럴 필요가 없지요. 아마…… 그게…… 제 생각에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서 쓰려면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야 되지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 글은 어떻게 해서든지 마무리를 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멋지게 마무리 하고자 하는데 어떤 계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런 어려운 말은 모른다네. 라틴어 같기도 하네만……

저도 딱히 설명할 자신은 없어요.

 

* * *

 

그날, 아침 안개가 중의 까까머리를 깬다는 속담이 들어맞을 듯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농무가 해안가를 휘감고 있었다. 나는 오후 2시경 경찰서에 출두했다. 어제 파출소 순경이 뜻밖에 집으로 찾아왔고 본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날 찾아내서 강력계로 출두시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이유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몹시 당황했다. 강력계라고? 무슨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강력계에 출두할 만큼 무슨 짓을 저지른 것 같지는 않은데. 혹시 그일 때문에? 아내가 마음이 변해서 가출 신고라도 한 것일까?

내가 경찰서에 가면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한 마디도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나는 수사기관에 출두하는 피의자들에게 매번 강조했던 대로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 즉각 대답하지 않고 머릿속으로 다섯까지 세고 나서 대답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불리하게 작용하는 성급한 답변을 제지할 수 있다.

정년을 코앞에 둔 것처럼 보이는 늙은 형사가 느릿느릿 말했다.

이렇게 나오시게 해서…… 윤희중씨 잘 아시지요…… 그쪽 동네에서는 그렇게 부르더라구요.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주민등록은 진즉 말소됐습니다. 도사동 출신이고 1934년 생이더라구요. 그러면 금년에 나이가 만 80세가 되지요. 실제는 한두 살 위일 겁니다. 본명은 윤기준이구요.

함께 술도 마시고 늘 어울렸다고 합디다만…… 동네 사람들한테 그렇게 들었어요.

한두 달 간 만나지 못했습니다만…… 무슨 일이……?

자살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틀림없다고요……?

그렇지요. 유서도 있고, 통화내역도 있고, 단서도 있습니다. 부검을 하였는데 수면제 과용인 것 같습디다.

나는 그의 자살 소식을 처음 들었지만 그 순간 어떤 격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죽어서 안 됐다는 느낌, 어차피 잘 됐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우리가 가까운 사이 혹은 특별한 관계였을까?

그는 수면제를 한 움큼 먹고 깊이 잠이 들어서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줄조차 모르고 죽었을 것이다.

무슨 통화내역인가요?

윤희중씨가 죽기 전에 이분하고 통화를 했습니다. 자살은 범죄는 아니니까 무슨 조사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 교인들을 제외하면…… 그렇겠지요.

…… 이렇게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그렇게 함께 지내면서 어떤 낌새를 느끼지 않으셨나요?

그때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몇 년 전인가, 아주 옛날 어머니가 다녔던 교회의 목사가 나를 찾아와서 하느님에 관한 얘기를 좀 해보자고 하더라고. 나 정도로 늙었으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에 귀의해서 기도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어. 목사님도 아시다시피 내겐 남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진 않다고 말해주었어. 그런데 그 젊은 목사는 뻔뻔하게도 계속 물고 늘어지면서 끈질겼다네.

아닙니다. 할아버지. 저는 당신 편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귀신에 씌여서 앞을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알 수가 없는 거지요. 제가 할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이 지옥이 아니라 천당으로 인도하시게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자원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도와줄 수도 있어요. 불편한 점이 계시면 언제든지 연락을 해주세요. 돌아가시면 끝까지 다 정리해드릴 것입니다. 재산이나 법적인 문제까지도 모두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순간 왜 그런지 몰라도 내 안에서 마침내 분노가 마구 폭발하더군. 하느님은 어머니의 지극 정성스러운 기도도 들은 채 만 채 했었는데…… 그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 그리고 무슨 법적…… 재산…… 운운하는 바람에 분통이 터졌다네. 그때 무심결에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네. 목사에게 어머니처럼 상소리로 욕을 퍼붓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라고 몇 번씩이나 말했지.

나는 지금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숨을 쉬고 살고 있다는 것조차도 확신할 수 없네.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다네. 그러니까 곧 닥쳐 올 죽음에 대한 확신이지.

내가 말했다.

글쎄요. 혹시 자살이라면 제가 먼저였겠지요. 그런데…… 저는 자살할 생각을 접었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자살하면…… 경찰만 뒤치다꺼리하면서 고생한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일반적으로 유물정리업이라고 하는 특수청소업체의 대표가 설명했다. 그는 이미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저는 불행하게 죽은 사람들의 삶의 마지막 흔적을 정리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고독사나 자살한 현장에서 유물과 유품을 정리하는 거지요. 쉽게 말해서 옛날에는 폐품 수집상 또는 고물상이 했던 일입니다.

열흘 전쯤이었어요. 어떤 할아버지가 전화를 했습니다. 희미한 목소리를 들으니 분명히 할아버지였어요. 사망 현장을 깨끗이 정리하는데 드는 비용이 얼마인지 묻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주소와 위치를 자세히 가르쳐주더군요. 바로 약속 날짜를 잡았습니다.

현장에 내려와서…… 알고 보니까…… 그 할아버지가 혼자 살면서 전화를 했고 제가 도착했을 때는 침대에서 자는 것처럼 죽어있었어요. 이미 시체가 굳어있더라고요. 그래서 경찰에 먼저 신고부터 했습니다.

그런데 집안을 살펴보니 그림이라든가 목공예품 같은 것이 수천 점이나 있었던 거 같은데 전부 불에 태워버려서 재만 남아있었지요. 그리고 나머지 살림살이는 너무나 깨끗이 정리되어 있어서 치우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경찰조사가 끝났으니까 곧 처리해야겠죠. 비용은 두 배로 계산해서 탁자 위에 놓아두었습니다.

형사가 말했다.

그쪽은 가셔도 좋습니다. 조사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그 형사가 자판기 커피를 꺼내서 들고 왔다. 나는 종이컵에 담긴 뜨거운 커피를 조심조심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가 금방 미적지근하게 식었고 종이컵 밑바닥에 설탕 찌꺼기만 남았을 때 종이컵을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내가 말했다.

저는요?

전해줄 게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뭘 말씀인가요?

뭐…… 별 것은 아니지요. 그저 이야기나 더 나누고 싶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조사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마을 이장한테서 원래 순천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이장은 그 이상 자세한 것은 모릅디다. 혹시 순천중고를 졸업했습니까?

저는 순천이 고향이긴 합니다. 몇 대 선조 때부터 대대로 살았지요. 지금은 산소만 남아있어요. 이곳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녔습니다.

요즘은 귀농과 귀촌이 유행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직장을 은퇴하고 나서…… 고향으로 내려오신 거겠군요. 자녀분들은 다 결혼을 하고나서 말이지요. 혼자 오신 거 보니까 혹시 부인이 돌아가신 거 아닌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살한…… 그 할아버지 말입니다. 그렇게 자주 어울렸다면…… 뭘 잘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주 어울린 건 아닙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결벽증이 있으니까 사적인 부분은 원체 말씀이 없으셔서……

제가 처음 시체를 봤을 때 아주 깔끔하고 품위 있게 죽었단 말입니다. 시체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이곳 농부나 어부 같지도 않고. 많이 배운 지식인처럼 보였어요. 지금 농촌에선 가끔 자살 사건이 일어납니다만 대부분 농약을 먹고 비참한 모습으로 죽으니까 수면제 자살은 아주 드문 일이거든요.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특이했습니다.

제가 순천 출신이고 순천중고를 나왔습니다. 그분이 까마득한 선배가 되지요.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좀 알아봤지요. 이건 수사와는 관계없이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쓸데없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어쨌거나 사람이 죽었지 않았습니까.

순중 동창생 몇 분을 만나서 자세히 들었지요. 그 할아버지는 본명이 분명히 윤기준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키가 크고 잘생겼고 공부도 잘했다고 하더군요. 항상 전체 수석이었고 책은 닥치는 대로 얼마나 많이 읽었던지 글도 아주 잘 썼답니다. 자기는 장차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고 장담했답니다. 그래서 친구들의 연애 편지는 도맡아서 대신 써주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홀어머니 밑에서 가정 형편이 안 좋았습니다. 그 시절에도 순중에서 공부를 잘하고 집안 형편이 웬만하면 서울이나 광주로 가는데. 그래도 대부분 순고로 진학했거든요. 그분은 도저히 형편이 어려워서 3년 장학금을 받기로 하고 벌교상고로 갔다고 하더군요. 벌교상고를 졸업하고 나서 한국은행에 들어갔답니다. 한국은행은 수재가 아니면 못 들어가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하늘의 별따기지요. 그러고 나서 스카웃되어 제약회사로 옮겨갔다고 했습니다.

동창생들의 말을 들어보면…… 윤기준 할아버지는 40대 초반 무렵까지 가끔 만났다고 하더라구요.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순천에 자주 내려오셨답니다. 아주 효자였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발길이 뜸하다가 아주 끊겼다고 했습니다. 어머니 장례식 때는 동창생들이 아주 많이 모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조사해놓은 게 있으신가요? 가령 전과 기록 같은 거 말입니다.

말씀드려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간통으로 한 번 고소되었다가 합의가 되어 취소된 사건이 있었고 마약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전부 부산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혹시 부산에서 살았을까요?

저는 잘 모르지요. 그런데 시체는 어떻게 처리할 겁니까?

그게 약간 골치 아파요. 무연고자 처리를 해야겠지요. 보통 시청 복지과로 넘깁니다.

제게 넘겨주시면 화장을 해서 바다에 재를 뿌리겠습니다. 그분의 희망사항이 아닐까요?

그렇게 해도 되는지 검토를 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탁자 위에 노란 봉투가 있었는데 그 속에 두툼한 노트 몇 권과 메모지와 두 통의 유서가 있었어요.

하나는 친절하게도 경찰에게 남긴 거고…… 또 하나는 선생님에게 남긴 거였습니다.

윤희중은 경찰에 대해서는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면서 자신은 틀림없이 수면제를 먹고 자살한 것이라고 했고, 가족이나 연고자가 아무도 없다고 했으며, 집과 기타 재산은 옛날 어머니가 다녔던 교회에 기증하겠다고 하였다. 은행에는 상당히 큰 금액의 예금 잔고가 남아있었다.

 

나는 더 늦기 전에 결정을 내렸다네. 자유로운 한 개인의 권리에 근거해서 내 생명을 처분한 거라고는 생각하지 말게. 자살에 이를 만큼 절망적이지도 않았고 죽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그런 상황도 아니었네. 다만 자살을 감행할 만큼 정신적으로 강한 의지와 용기는 가지고 있었다네. 죽을 마음의 준비가 된 거지.

내가 깊은 밤 어느 순간 발작을 하고 충동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을 정당화할 충분한 논거를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세.

나는 충분히 오래 살아남았네. 어쨌거나 일찍 죽는 것보다는 오래 사는 것이 더 좋은 거지. 그 이후 일어난 내 이야기를 두서없이 자네에게 모두 털어 놓았고 더욱 자세한 것은 내가 일기장이나 메모, 비망록을 남겨놓았으니 그걸 참고하게나. 그 일기장에는 金惠淑의 사진이 여러 장 들어있다네. 그러나 몇 가지 비밀은 비밀로 그냥 남겨두었지.

내가 당신에게 두서없이 이야기했던 그 후…… 내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써서 발표하는 것에 동의한다네. 당신이 그럴 생각이 있다면 말일세. 쓸데없는 간섭을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만 가급적 또는 꼭 정확히 사실 그대로 쓰는 게 어떨까. 더 이상 내 이야기가 가감하고 윤색되어 과장되거나 미화되는 것을 피하고 싶다네.

어쨌거나 책을 출판하게. ‘모든 책은 제각기 자신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했어. 안개처럼 깔려있는 어둠을 헤쳐 나가게. 자네도 잘 알다시피 안개는 결국 햇빛에 사라지게 돼있어. ‘어둠이 깔려야 비로소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비상을 시작한다’고 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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