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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 인간의 초상
이름 유중원 이메일



인간의 초상

 

 

악마도 젊었을 때는 아름다웠다.

 

 

 

내가 감히 인간의 냉혹한 운명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운명다운 운명과 조우하여 그것에 맞서 격렬하게 싸워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 삶의 운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진행되었을까 하고 한번쯤 생각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지금쯤, 내 삶의 한 끄트머리를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순전히 우연 혹은 행운 덕분에 이리저리 우회로를 거쳤지만 크게 옆길로 벗어나지 않은 운명 말이다. 그런데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인생행로란 인위와 우연, 사건과 사물, 운명에 의해 어떤 경우에도 반듯하게 직선 행로일 수는 없다. 삶이란 대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본의 아니게 이리저리 떠밀리다가 여기저기 부딪치고, 짓밟히고, 방황하다가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삶이란 게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런 것이다. 삶이란 우발적 사건의 연속, 반전과 반전의 반전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개인의 역사란 우리가 구태의연하게 운명이라고 명명하는 무작위적 우연의 연대기인 것이다.

그러나 이건 고백이나 짧은 회고록 따위는 아니다. 뭐랄까?

그것은 결코 자기 자신을 진실하게 내보이는 것이 아니다.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쟁이이며 모든 고백에는 위선적인 동기, 과장, 미화, 자화자찬, 변명 또는 교묘한 선전이 숨어있다. 진정한 사람은 자신에 대해 말할 게 별로 없는 법이다.폴 발레리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이걸 말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근 40년 동안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과거의 그 기억들을 저 깊은 망각의 심연 속에 묻어둔 채 살아가기로 작정하지 않았던가. 그건 좋은 기억도 아니고 나쁜 기억도 아닌 그런 모든 걸 초월한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과거를 돌아본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을까? 하필 이 시점에서일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또는 일어날 것인가? 세월의 무게 때문일까? 이미 체념했기 때문인가? 여기에서 체념은 희망을 버리고 단념했기 때문이 아니라 불교의 사성제四聖諦가 의미하는 것처럼 내가 비로소 인간 삶의 도리를 깨달았기 때문일까? 지금쯤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일까? 유대인의 속담처럼 지나간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내가 나의 과거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더욱 많이 행간에 암시한 모든 것을 당신은 온전히 이해할 수가 있을까? 당신의 고단한 삶과 연쇄적인 상호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을까? 당신은 허위의식에 찬 이걸 읽고 냉담하고,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혹은 의혹을 품을 것인가? 차라리, 오랜 버릇대로, 만취해서 그때마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나의 분신, 제2자아에게 웅얼거리는 게 낫지 않을까? 내 얼굴과 육체에, 나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에 내 삶의 궤적이 그대로 각인되어 있는데 새삼스럽지 않은가?

내가 지금 울고 있을 리는 없다. 그러면 웃고 있을까? 자신을 비웃고 있을까? 희미한 미소를, 밝은 아니면 어두운…….

 

하긴 젊은 시절,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전쟁터에 끌려가서 야전병원에서 40여 일간 입원하여 생사의 기로를 헤맨 일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밀림에서 벌어진 치열한 야간 전투에서 어디선가, 어둠 속에서 적의 저격수가 날려 보낸 총알이 몸에 박혀 부상을 입어서가 아니라 뜻밖에 정체불명의 열대병에 걸렸던 것이다. 그것도 수천 명의 백마부대 30연대 부대원 중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만 걸렸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너무나 건강했는데 말이다. 글쎄, 왜 하필 나였을까. 그러니 나는 지금까지도 그 영문을 모르겠다. 모질고 억센 운명 (누가 운명을 관장하는지는 몰라도) 이외에는 그걸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연대 의무대 군의관은 자신이 손쓸 방법이 없음을 알고 신속하게 야전병원으로 후송한 것이었다.

나트랑. 십자성부대. 102 야전병원.

그런데 그 병의 증상은 이렇다. 처음에는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었다가 열이 조금 식으면 다시 열병인 것처럼 발작적으로 오한이 엄습하여 전신경련을 일으키고, 그때 의식이 까무러치며 마구 헛소릴 내뱉는 것이고 무언가를 한참 동안 웅얼거렸다. 악령에 들린 자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고대 언어나 외국어로 지껄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헛소리는, 그 애절한 웅얼거림은 나의 무의식 속에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영혼의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이, 혹은 중얼거림이 아니었을까. 하여간에 내 몸은 계속해서 번갈아 찾아오는 불덩어리와 발작적 오한 때문에 근 보름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오직 수액에 의지하고 있었으므로 몹시 피폐해졌다. 그러나 의식은 가끔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환청, 환각, 착란, 망상에 시달렸다.

그 당시,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했던 20대 초반 그 시절에 남몰래 흘린 눈물, 고통, 혼란, 체념 등에 대한 생생한 기억들이 지금까지도 나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그래서 아주 일찍부터 단념할 줄 알았다. 그리고 바보처럼 단순한 운명론자가 되어 버렸다.

나는 그때 담당 의사와 간호 장교의 암묵적인 대화와 중환자실의 환자에 대한 죽음의 은유를 의미하는 행동에서 짐작하건대, 내가 지금 죽어가고 있음을 놀랄 만큼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나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고, 그것도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죽을 것이고, 죽은 뒤에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자아의 부재에 대해 단념한 것이다.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육체는 거의 죽어 있었는데 의식은 희미하게나마 살아있어서 그들의 대화를 다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의사가 말했다. 호프리스 hopeless야. 뇌가 완전히 망가진 거지. 약이 들어먹어야 말이지. 이미 죽은 거야. 끝장이 난 거지. 간호 장교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모르지만 계속 깊은 잠에 빠져있다, 어쩌면 지금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아니면 일시적으로 착란을 일으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깨어나고 싶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비명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랬으니 (장편소설 사하라주인공인) 김규현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명징한 의식의 흐름을 나는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바로 그랬으니 말이다. 나는 야전병원의 침대에서 의식이 깨어날 때는 하염없이 누워서, 길고, 의식적이고, 자의적인 꿈과 환상 속을 헤매었으니까. 그러면, 죽음의 공포가 사라졌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무신론자여서 톨스토이의 소설 속 인물인 이반 일리치처럼 죽어가는 그 순간 위대한 신과의 대화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순간 내가 죽어도 살아 있다는 생각, 내가 죽어도 영혼만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명징한 의식이 돌아왔을 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안간힘을 다해 유서와 다름없는 편지를 써서 고국의 아버지께 보냈었다. 이번 편지가 늦게 된 건 순전히 군사작전이 길어졌기 때문에 편지 쓸 틈이 없었다고, 그 작전은 부대 주둔지에서 200킬로미터나 떨어진 국경 근처의 밀림으로 출동한 장기 작전이었다고 둘러대고, 나는 지금 너무너무 건강하고 잘 복무하고 있다고, 우리 가족은 잘 살아야 된다고, 아버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등등.

그러나 나는 순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편지 내용은 짧고 말을 삼가고 있었다.

 

열대지방의 늦은 오후.

석양이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야전병원 화장터의 긴 굴뚝 위로 죽은 병사들의 시체들 모아 태우면서 나오는 하얀 연기가, 가냘픈 연기가, 슬픈 연기가, 영혼을 상징하는 연기가 곧게 피어올라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가끔 바람에 실려 시체 타는 냄새가 병동까지 날라 들었다.

영현병이었던 김재수 하사는 화장터에서 혼자 소각로를 담당했다. 그는 누구나 싫어하는 시체 태우는 일을 했다. 항상 술에 얼큰히 취해서 불콰한 얼굴로 시체들을 잘 태우기 위해 기다란 쇠꼬챙이로 타다 남은 살점과 뼈들을 뒤적여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더 깊은 소각로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들 시체는 주로 작전이 끝난 뒤 전선에서 왔다.

그러나 암암리에 김 하사에 대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열대 지방의 우기에 접어들면 몇 달 동안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는 날이 계속되고, 그 우울한 날에는 그는 어김없이 노릿노릿하게 구워진 주로 종아리 살점을 안주 삼아 술을 통음한다는 것이었고, 술에 만취하고 나면 무어라고 계속 웅얼대면서 장대비 속을 몽유병자의 몸짓으로 몇 시간씩이나 흐느적거리며 동생을 찾으러 다닌다는 것이다.

내가 상당히 회복되고 난 후 맑은 공기를 쐬기 위해 병원 주변 숲 속을 어슬렁거릴 때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외로운 사람인 그와 가끔 만나게 되었다. 그때는 나도 너무 외로웠으니까. 말동무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졸병…… 어디 소속이야?

백마 30연대입니다.

병명이 뭐야? 작전에서 당한 것 같지는 않은데……

의사도 모른데요.

의사가 병명도 모른다고? 네가 꾀병 부리는 거 아냐. 조기 귀국하려고……

그건 아니에요. 죽다 겨우 살아났거든요.

네 꼴을 보니까 그런 것 같군.

제 모습이 불쌍해보이나요?

그러면…… 내가 괴물처럼 무섭게 보이나? 그런가? 우리…… 자주 만나자고. 화덕을 보여줄 수 있어. 거기는 나 혼자 밖에 없으니까. 무서워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거야. 귀신은 나오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구. 내가 귀신까지 다 태워버리지…….

나도 언젠가는 불 속으로 들어가게 될 거야. 제때 죽는 것이 중요한 데 말이야. 사람들은 너무 일찍 죽거나…… 너무 늦게 죽게 되거든…….

그는 늘 바닥으로 시선을 깔고 반쯤 쉰 목소리로 자신과 대화하듯 말했다. 그는 의외로 순박한 사람이었다. 식인종처럼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눈은 하나 밖에 없고 치즈나 우유를 주로 먹고 살다가 가끔씩 사람 고기로 포식하는 외눈박이 거인 퀴클롭스는 아니었다.

야전병원을 둘러싼 열대의 숲은 무겁고 음산했다. 그날 오후, 하늘은 낮고 거대한 먹구름이 뒤엉킨 채 몰려왔다. 번갯불이 번쩍이고 천둥이 치며 무섭게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스콜이 그치고 잠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바나나 나무의 넓은 잎들이 하늘거린다. 황혼녘이 되어 어둠이 내린다. 숲에는 적막감이 흘렀다.

그날도 여전히 술에 취한 채 (오후 작업이 시작되면서부터 마신 술이거나, 아니면 비가 내렸기 때문에 마셨을 수도 있다.) 무덤덤하게 그가 말했다.

내가 무슨 이야길 해줄 수 있지. 너무 놀라지는 말라구. 어쩔 수 없었다니까. 어쩔 수가……

비오는 날은 싫어. 지긋지긋하지. 슬프고 우울하단 말이야. 불의 유혹을 견딜 수 없어 꼭 죽고 싶다니까. 불꽃이 동생 얼굴로 변하지. 동생이 환하게 웃고 있는 거야. 그럴 땐 소각로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싶어. 불꽃이 활활 너울거리며 춤을 추고 위로 솟구칠 때는 그 유혹을 참기 힘들지.

그 아인 비밀에 가득 찬 수수께끼였지. 난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지. 유령처럼 신비로운 존재였지. 항상 반쯤 꿈꾸는 듯 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거야. 단지 내가 짝사랑했을 뿐이야. 그리고 불같은 질투와 격렬한 감정, 알 수 없는 욕망 때문에 굉장한 고통을 느꼈던 거야. 그 고통이 납덩어리처럼 가슴을 억눌렀지.

난생 처음으로 그런 감정을 느꼈거든. 그런데 그가 감쪽같이 사라졌던 거야.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중대한 정신병이라고 하면서…….

나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지…….

그런데 그 유혹을 뿌리치려면 술을 진창 퍼마시고 지워버려야만 하지. 술에는 고기 안주가 필요해. 그렇지 않나? 약간 짭짤하긴 한데…… 허벅지 살은 닭고기 가슴살처럼 퍽퍽하고 종아리 살이 질기면서도 쫄깃쫄깃하다고. 종아리 살에는 하얀 지방질은 전혀 없는 거야. 그 살코기는 씹는 질감이 최고지. 맛있어서 눈물이 나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남자의 다리, 종아리에 매력을 느꼈던 거야. 여자의 음부같이 무릎 안쪽 우묵한 부분에서부터 완만하게 튀어나와 젊은 여자의 엉덩이 혹은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매끈매끈하고 정맥의 푸르스름한 핏줄이 보일 듯 말 듯 감춰져 있는 살덩이.

온몸을 쥐어뜯고 태워버릴 듯한 짜릿함……, 죽음처럼 불안한 짜릿함을 느끼게 되지. 으흐흐흐……

나는 울면서……, 울면서 꼭꼭 씹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고. 그리고 목구멍 속으로 꿀꺽 삼키는 거지. 중대한 정신병을 치료해야 하니까.

쫄병…… 이건 비밀이야…… 어디 가서 나불거리면 안 되는 거야…… 너한테 술을 멕이고 싶지만 참는다. 몸이 그 모양이니. 어디 견뎌내겠어…….

워낙 은밀한 소문이었다. 그가 영창에 가지도 않고 또한 조기 귀국을 당하지 않는 것을 보면 병원의 장교들은 틀림없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어떤 병사도 밤마다 귀신이 출몰한다는 화장터의 소각로를 담당하는 직책을 결사적으로 기피하였으므로 그 이외에는 당장 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귀국 만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관계자의 끈덕진 종용에 따라 귀국을 연기하면서까지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퀀셋 병동.

나는 잠깐씩 의식이 회복되기도 하고 몸을 움직일 수도 가끔 밖으로 걸어 나갈 수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 증세가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증세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지며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이 오고, 그때는 헛소리를 마구 지르고 고함을 외치며 내장 속에 들어있는 걸 몽땅 토해내야 했다. 그러나 김 중위는 언제나 냉담했고 단 한 번도 웃음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는 친절한 의사가 아니었다. 맨날 뚱해서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랬으니 병명이 무엇인지, 매일 수십 알씩 삼켜야하는 알약의 효능이나 부작용, 치료 경과에 대해서, 의사로서 빈말이거나 거짓말이거나 할 것 없이 위로의 말 한 마디 말해준 적이 없었다.

그때쯤에는 가망이 없었으므로 나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여겼고 이왕 죽을 거라면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죽음의 일시적 지연이 지금 이 순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건 치욕이고 회한이며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형벌일 뿐이었다. 어차피 죽음은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매일 같이 삶과 죽음의 순환이라는 인류 공통의 운명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고통과 번민으로부터 해방이었기에 가장 순전한 상태의 죽음의 세계는 나를 매혹하였고 나는 그때 자기 파괴적인 충동과 함께 죽음을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다.

그날 늦은 오후에 나는 잠깐 의식이 회복되었을 때 침대에 누워 곧게 하늘로 올라가는 그 흰 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조만간, 며칠 내로 흰 연기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생각하자 눈물이 두 뺨으로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김 하사가 쇠꼬챙이로 불이 활활 타오르는 소각로 깊숙이 나를 밀어 넣을 것이다. 그러면 신체의 어느 부위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게 흩어져 있는 뼛조각 몇 점과 회색 재 한 줌만 소각로 바닥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옭아매고 있던 뿌리 깊은 냉혹한 공포감과 고통스러운 자아로부터 해방감을 맛보았다. 그리고 안도감을 느꼈다. 그 눈물이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흘린 것이었다. 그 후로 눈물 같은 것은 흘린 일이 없었다. (내 기억에는 그렇다.)

나는 그때서야, 눈물을 쏟은 후에서야 우리에게 지옥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황불이 활활 불타고 있는 지옥은 땅 속 수 백 미터, 수천 미터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을 터인데 영혼의 하얀 연기는 하늘나라로, 천국으로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그런 거야. 우리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슨 흉측한 죄악을 지을 틈도 없었는데, 아직도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변성기이거나 막 지났는데, 동정이고 새벽이면 몽정을 하고, 젊은 여자애만 보아도 미칠 듯이 가슴이 울렁거렸는데, 어떻게 무슨 이유로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겠는가.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어떻든 천국으로 올라가는 거였다. 나는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서 회복기에 있을 그때는 가벼운 죽으로 연명하였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두통 증세로 신경이 예민해져 심한 불면증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의식이 상당히 회복된 후에도 한동안 여전히 흐느적거리고, 중얼중얼거리고. 잠을 자지 못해서 눈알이 빠질 것 같았으니 내 시선은 초점을 잃고 나른해 보였다.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를 분간할 수 없었다. 좀비, 아니면 약간 미쳐버렸을까. 나는 그때 간호 장교에게 하소연하였다. 김 소위님, 제발 독한 수면제 좀 줄 수 없어요? 잠을 못 자서 눈알이 빠질 것 같습니다. 절 좀 죽음처럼 깊은 잠 속으로 재워주세요. 하지만 그녀는 애매하게 살짝 웃었다. 그리고 수면제 대신 또다시 엉덩이에 무슨 주사를 놓아 주었다. 내 엉덩이는 너무 많은 주사바늘 자국 때문에 온통 푸른 멍이 들어있었다.

나는 죽음과 같은 혼수상태에서 보름여를 보냈는데 이제는 겨우 깨어나서는 반대로 고도의 불면증 때문에 계속적으로 깨어있어야만 했다. 잠은 생리적으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데 잠을 못 자서 죽게 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죽음일 것인가. 나는 그 때문에 또다시 죽음의 고통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끊임없이 비현실적이고 모호한 성격의 상상과 망상, 꿈과 환영 속을 헤맸다. (물론 그때 죽어가면서 명료한 의식 또는 오락가락하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꿈꿨던 꿈의 내용을 지금은 거의 기억해낼 수 없다. 온통 꿈속이었다. 꿈속에서 또 하나의 꿈을 꾸고, 또 그 꿈이 또 다른 꿈을 꾸었다. 꿈의 연속. 그리고 너무 오랜,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다. 내가 애써 기억해낸 기억의 파편과 부풀려 지어낸 것, 제멋대로 상상한 것들은 한 덩어리로 얽혀있어 분리하기가 불가능했고 함께 망각 속에 묻혀 있었다.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40년의 시간. 과거. 침묵. 망각. 그것은 시커먼 구멍이다. 그 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희미하고 파편적이긴 해도 모든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다고 해도 어찌 사람들을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사람들의 기억. 장면들의 기억. 그것들은 세월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어서 마치 어제 일처럼 너무 생생하다. 그러나 과거의 삶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그러므로 순수한, 단순한 문자 그대로 기억은 있을 수 없다. 기억은 질서정연하지 않다. 기억의 단 . 그런 의미에서 모든 기억은 이미 해석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기억의 변형이고 변주일 뿐이다.

나의 주치의였던 김현수 중위는 그 당시에는 작은 키에 여윈 체구로, 그러나 깨끗하고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서울의대 출신이었다. 나는 지금 그의 소식을 까맣게 모른다. 아마 1970년대 의사들이 미국쪽으로 많이 떠났으니까 그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대학병원이나 대형 종합병원에서 내과 과장을 하고 정년퇴직을 하였거나, 또는 전문의 자격을 딴 후 바로 개업해서 돈을 많이 벌고 빌딩을 올렸을 수도 있다. 하여간에 지금쯤은 몸은 살이 쪄서 배가 툭 튀어 나왔을 것이고, 주말마다 골프를 많이 쳐서 흰 얼굴은 알맞게 그을렸을 것이고, 머리는 틀림없이 대머리 혹은 반쯤 대머리일 것이다. 나도 늙었지만 그는 훨씬 많이 늙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상상한다. 정말 예뻤다. 장담할 수 있는데 내가 지금껏 살면서 본 여자 중에서 제일 예뻤다. 나는 그녀의 얼굴이나 몸매를, 하얀 피부를,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섬광처럼 뿜어내는 그 눈길을 더 이상 어떻게 묘사할 길이 없다. 내가 그때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건 인간의 육체를 지닌 진짜 사람이 아니라 여신, 에로스의 얼굴과 몸을 가진 여신이었다. 내가 감히 여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때 우리들 중환자실 환자들은 그녀가 출현할 때마다 숨을 죽인 채 넋을 놓았다. 그리고 몰래 그녀의 얼굴을 훔쳐봤을 뿐이다. 우리들은 감히 노골적으로 쳐다볼 수 없었다. 우리는 졸병이었고 그녀는 엄연히 장교. 그러나 그녀는 극히 사무적이었으니 아주 상냥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깐 백의의 천사 타입은 아니었다.

김혜진 소위.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곱게 늙어가거나 또는 완전히 쭈그렁 할머니가 되어 살아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머리는 서리를 인 것처럼 하얗게 변했고 뱃살은 축 늘어져서 몸무게는 20킬로 정도 늘었을 것이 아닌가. 비슷한 나이의 다른 여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그녀는 오랜 전부터 외모에 대해서는 완전히 신경을 끊었을 것이다. 아니면 미인박명이라고 일찍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그녀를 치근대던 장기 복무 군의관과 결혼해서 2남 1녀쯤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본다. (하지만 그녀가 김 중위와 결혼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그 당시 그들은 서로 간에 극히 사무적인 관계였지 사랑이나 애증이 얽힌 관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 알겠는가?)

얼룩은 하얗고 몸통은 새까만 너무나 얌전한 개.

개 주인은 그를 ‘덕구’라고 불렀다. 화장터의 김 하사는 가끔 그 개를 데리고 다녔다. 그는 주인 없이 부대 주위를 헤매고 다니던, 그 당시 야윌 대로 야위어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고 더군다나 한쪽 뒷다리를 약간 절룩거렸던 그 똥개를 거둬 정성껏 키우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살이 올랐고 뒷다리는 정상을 되찾았다.

내가 말했다.

보신탕 좋아하는 우리 아버지처럼 집에서 키워가지고 잡아먹으려고…….

그가 정색을 하며 대꾸했다.

덕구는 내 동생이야. 동생이고 자식 이상이지. 건강한 개는 새 주인을 만나면 따라가지 않으려고 앞발로 버티고 낑낑거리며 뻗대는 거야. 그러나 덕구는 그렇지 않았지. 애원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던 거야. 다시는 도망가지 않게 잘 키울 거야.

그렇고말고. 어떤 놈이 손을 대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장교라고 해도 말이지. 우리가 그 이야기를 할 때 덕구는 눈을 감은 채 죽은 듯이 옆에 엎드려 있었다.

 

내가 퇴원하던 날 김 중위가 말했었다.

유 상병은 오랫동안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어, 그래서 깨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죽는 줄만 알았지. 도대체 병의 정체를 알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려고 하였는데. 조직검사 결과 뇌종양이거나 무슨 암 덩어리가 머릿속에 들어 있었던 건 아니었던 거야.

그러니까 의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병이야, 그냥 열대지방의 지랄병이라고 할까, 또는 염병이라고 할까. 완쾌될 확률은 일 퍼센트도 안 되었지.

그래서 말이야, 필사적으로 약을 이것저것 처방하였는데 역시 섬망증에는 새로 나온 강력한 진정제 주사가 효과가 있었던 거지. 그때마다 정신이 아주 몽롱했을 거야.

나는 그 약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소마’라는 알약, 그러니까 진정제 역할을 하면서 행복감을 높여주고, 환각 상태에 빠뜨리는 그런 종류의 신비한 약이길 바랐던 거야.

하여간에 유 상병이 살아난 게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거지. 기적 같은 것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믿을 수 없을 만큼 회복이 되었거든. 어쨌거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도왔을 거야. 군목 장교가 두 번씩이나 병자성사를 했었거든.

네가 살아나서 내가 기쁘다구. 지난달에는 중환자실에서 많이 죽어 나갔거든. 얼마나 우울하던지…….

그때는 의사로서 한계를 절감하고 자포자기했으니까. 네가 한 없이 불쌍했으니까……. 지금이니까 말할 수 있는 거야.

그랬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전 죽어도 상관없는데…… 자신의 존재 자체가 여분이라고…… 잉여라고…… 느끼고 있었거든요. 전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 살아남은 거죠. 전 그 유일무이한 신을 믿지 않으니까요. 지금 생각으로는 제가 죽을 때까지도 인정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순전히 우연 때문이겠지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하여튼 다시 살아나서 원대복귀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네가 잉여적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거야. 사르트르를 읽은 거군. 로캉탱을 흉내 내는 거겠지. 어리석은…… 정말 어리석은. 모든 인간은 언제나 잉여인 거야.

하지만 후유증이, 정신적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겠지. 어두운 불안감 때문에 평생을 시달릴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의사의 처방이나 약물의 작용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스스로…… 의지의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거야.

목사님은 그때 병자성사를 한 게 아니고 예수가 한 소년의 몸에서 마귀를 쫓아낸 것처럼, 제 몸에 깃든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 퇴마 의식을 치렀던 게 아닐까요?

제가 귀신이 들려서 또다시 미쳐버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영험한 아프리카의 퇴마사를 만나야겠지요. 그러려면 사막으로 떠나야 할 겁니다.

 

야전병원의 검문소 입구에서 나트랑 시가지로 쭉 뻗어있는 직선 도로의 오른쪽으로 ‘성병유 요치료’라는 스탬프가 찍힌 빨간 딱지를 소지한 병사들을 수용하는 ‘성병환자 수용소’가 보였고, 왼쪽으로 헌병 중대와 보안대, MIG 막사, 보급창 그리고 멀리 미군 헬리콥터 대대가 주둔하는 비행장이 보였다. 나는 새삼스럽게 나트랑 시내를 내려다 봤다. 바다에서 잔뜩 습기를 품은 해풍이 불어왔다. 햇빛이 눈부시다.

나는 원대복귀하기 며칠 전, 김 중위의 허락을 받고 나트랑 시내로 나갔다. 그는 그때쯤 날 동생으로 여겼고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심하게 잔소리를 하였다.

그가 말했다. 바깥 공기가 쐬고 싶겠지. 그럴 거야. 병동이 감옥처럼 얼마나 답답했겠어. 나트랑 비치에 가서 바닷바람을 실컷 들어마시라고. 그리고 시내에 가면 한국 식당이 있어. 오랜만에 진짜 한국 음식 맛을 보면 기분이 괜찮을 거야.

술 생각이 간절하겠지. 참으라고. 술을 마시면 도로아미타불이야. 네 몸이 술을 견딜 수 없다니까. 그러면 네가 다시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어…….

나트랑에서 처음 나온 외출이었다.

나는 약간 흥분해서 무작정 시내 중심가를 걸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은 유럽식 3층 건물인 작은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백화점 안은 초라했고 진열대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카메라와 가전제품이 진열되어 있기는 했다. 여자 점원은 그저 무심한 얼굴로 말없이 쳐다볼 뿐이다. 그리고 맥주홀에 갔다. 홀 안은 10개 남짓 둥근 테이블이 놓여 있고 대부분 월남 군인들이 둘러 앉아 있었다. 나는 혼자 앉아서 캔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얼큰하게 취했다.

그러고 나서 김재수 하사가 가르켜준 대로 2층 집을 찾아서 한참 헤맸다. 건물은 무척 낡고 지저분했다. 1층 홀에서 늙은 포주에게 말했다. 붕붕, 오케이. 그녀가 말없이 가냘픈 손을 내밀었다. 나는 미리 준비한 5불을 건넸다. 미군은 8불, 한국군은 5불, 월남 군인은 3불로 무슨 규칙처럼 정해져 있었다. 그녀의 안내로 2층 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여자에게 이별 인사로 ‘꽁까이 감온옹(아가씨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잡화점 상점에 들려 그림 엽서들과 부처님을 본뜬 나무 인형을 산 다음 오후 늦게 귀대했다.

나와 몇몇 병사들을 태운 앰뷸런스가 부대를 향해 출발했다.

나는 원대복귀하였다. 그러나 그때 병원에서 퇴원하긴 하였지만 여전히 몸 상태가 완전한 것은 아니어서 내가 희망하면 바로 조기 귀국을 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앰뷸런스가 부대 정문을 통과할 때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먼 여행에서 그리웠던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벌써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밤이면 포병대가 시간에 맞춰 밀림의 어느 지역을 향해 어김없이 위협 사격을 하는 은은한 포격소리가 그립다. 그건 나에게 자장가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원대복귀하자마자 대대본부 행정반으로 전출할 모양이다. 이제 작전에 동원되어 전투에 참가할 일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담당 장교가 평범한 좋은 성격의 사람이길 바란다. 전우들과는 반갑게 해후할 것이다. 새로 온 신입 교대병력과도 만나게 된다. 나도 이제 월남 고참이다.

한가한 저녁이면 병영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캔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마음껏 웃고 떠들 것이다. 다시 병사들의 단순 반복적인 일상으로 복귀한다. 나는 마음만 혼란케 하는 책들을 더 이상 읽지 않겠다. 그들에게 다가가서 내 마음을 열고 가감없이 털어놓을 것이다. 이제부터 나를 짓눌렀던 무기력과 죽음의 공포와 불안 증세를 깨끗이 떨쳐내야 한다.

나는 전적으로 운명에게 나 자신을 맡겨야 한다. 운명이 무엇을 결정할 지는 운명이 결정한다. 나는 운명의 손 안에서 그가 조종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운명이라는 흔해빠진 말은 전혀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쓰는 편리한 단어 아니겠는가.

스스로에게 만족하라!

운명의 은총이 있길!

그러면 내 수척한 몸과 창백한 얼굴은 금방 회복될 것이고 열대의 열기에 다시 갈색으로 변모할 것이다.

새벽이 될 즈음에는 어김없이 생생한 꿈을 많이 꾸게 될 터이다. 더 이상 나쁜 꿈이거나 악몽, 슬픈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꿈이면 얼마나 좋을까.

밤마다 초소에서 지독한 모기떼에 시달리면서 2시간 동안 보초 근무를 서게 된다. 부대 외곽에는 겹겹이 철조망이 쳐 있었고 철조망과 나뭇가지에는 조명지뢰가 열매 달리듯 달려 있다. 그리고 철조망 앞에는 수없는 지뢰와 부비트랩이 촘촘하게 매설되어 있다. 그걸 모두 뚫고 베트콩이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안심했다. 그러므로 맨날 M16 소총을 껴안고 졸았던 것이다.

그때 졸음에 겨워 가수면 상태에서 성욕이 살아나면 매우 감각적이 되어 수음을 하게 될 것이다. 매일 밤마다.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그렇게 사경을 헤매었어도 그 전쟁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그게 무슨 전쟁인지, 누굴 위한 것인지, 누구 잘못인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일개 사병인 주제에 전쟁의 승패 여부, 이해득실을 따질 필요는 없었다. 그건 국방부에서나 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전쟁은 허무맹랑했다. 물거품 같은 거였다. 어쨌거나 국가의 준엄한 명령에 의해 코미디 같은 전쟁에 단지 어릿광대의 단역으로 출연한 거였다. 그 전쟁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어서, 전혀 중요하지도 않았고, 무의미했고, 그래서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원대복귀한 후 얼마 지나서 연장 근무를 신청하여 1년여를 더 복무하였다. 내가 연장 근무를 신청했던 그 시기에 김 병장 사건이 일어났다. 김 병장은 작전 중 실종 전사한 것으로 상부에 보고되었지만 그 후 아무도 그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절박한 심정으로 인간 성체가 되기 위해 호되게 부화의 과정을 거쳤다.

나는 병장으로 진급했다. 2년 차 고참병의 특권. 무시로 외출과 외박. 수진에서의 몽유병자 같은 끝없는 배회. 만취. 마리화나. 프랑스 병사와 베트남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의 단골 꽁까이.

고독. 망상. 환상. 환멸.

그리고 1970년 가을경에 나는 상처와 고통이 치유되기는커녕 여전히 심연 깊은 곳에 앙금처럼 쌓인 채로 귀국하였다.

나는 카렌다에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귀국특명을 손꼽아 기다린 것도 아닌데 귀국 날짜가 잡힌 것이다.

그러나 귀국을 얼마 앞두고 화장터의 김 하사가 키우던 개를 화장하고 나서 M16 소총으로 자신의 심장을 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이 자살하기로 예정한 바로 그날 화장실의 소각로 앞에서. 나는 퇴원하기 하루 전 그와 마지막 만날 때부터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한 이야기이지만 그의 죽음은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는 그날 불면증에 시달리는 우울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날 그냥 좀 내버려두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흔해 빠진 말로도 위로나 격려 따위의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의 육신 역시 훨훨 타는 소각로에 들어가 한 줌 재로 변했을 것이다.

그는 왜 그런 내밀한 것들을 나에게 이야기했을까?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중간에 끼어 있는 자신의 위치를 마침내 자각했던 것인가. 왜 하필 나에게 그걸 털어놓았을까? 그는 장교처럼 머리를 길렀었다. 그것도 히피처럼 어지럽게 헝클어진 장발이었다. 그때 양쪽 뺨 위로 홍조가 슬며시 번지면서 귓불이 빨갛게 달아올랐었던가? 내 힘없는 멍한 시선마저 마주치지 않으려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건 그랬다.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이 하고 싶어서 계속 웅얼거렸다.

글쎄…… 우리는 어쨌거나 전쟁터에 내몰린 군인이었으니까…… 허무주의 때문에…… 이판사판이었으니까…… 우린 피차 너무 외로웠고 말들을 쏟아낼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는 평생 고독했고 만나는 사람 모두가 타자에 불과했으리라. 그래서 나 역시 낯선 사람이었고 여전히 혼자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야기는 자신에게 들려주는 독백이었을 것이다.

나는 항구에 정박해있는 귀국선 난간에서 멀리 열대의 풍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제서야 평화스럽게만 보이는 이국의 낯선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일들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열대의 베트남이나 체념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쁜 기억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안녕! 안녕! 곧 하늘이 어둑해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성난 폭우로 변해서 무섭게 쏟아져 내렸다.

귀국하는 파월장병들을 싣고 나트랑을 출발한 미 해군 수송선 발레(Ballet)호가 열흘 동안의 고된 항해를 마치고 부산항 제3부대에 정박하였다.

1969년 1월은 지독하게 추운 겨울날씨였다. 오음리에는 며칠 동안 내린 눈으로 눈밭천지였다. 우리들을 태운 군용열차는 그날 밤 춘천역을 출발하여 다음날 오전 제3부두에 우리들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출정식이 있었다.

그때 떠날 때 들었던 동원된 학생들의 그 무성의하고 맥 빠진 함성소리가 내 가슴 속에서 되살아났다. 백마부대 용사들아…… 백마부대 용사들아…… 그 함성소리에 분명히 김규현의 우울한 목소리도 들릴 듯 말듯 섞여 있었으리라. (그는 그 무렵이면 부산에서 공업고등학교에 다닐 때였으니까.)

나는 죽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다. 그러나 귀국의 순간은 기쁘지도 않았고, 홀가분하지도 않았다. 낡고 무거운 따블 백을 어깨에 메고 패잔병의 모습으로 송정리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집이란 아무리 초라한 초가집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가족을 품에 안고 있다. 집은 온전한 평화를 상징하고 한 개인의 삶을 둘러싼 총체적 추억이 담겨져 있는 곳이 아니겠는가.

나는 편안히 쉴 수 있는 도피처가 필요했던가. 난 지금부터 어떻게 될 것인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왜, 우리는 베트남에 갔는가? 내가 참전했던 것은 지원에 의한 것이었던가? 국가의 준엄한 명령에 의한 강제 차출이었던가? 우리는 어느 정치인이 비판했던 대로 정말 용병이었을까? (이미 공개된 비밀이지만 미국이 약점이 많은 박정희 독재정권에게 참전을 강요했으니까 말이다.)

그 전쟁은 낭만적인 불꽃놀이 같은 거였을까? 연대 본부가 주둔해 있는 수진에서는 전쟁의 긴장감은 도대체 느껴지지 않았다. 주인 없는 똥개들이 한가롭게 사창가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현실은 지루하고 권태롭고 무기력했다. 태양이 지글지글 타오르는 월남에서 전방도 후방도 없는, 전쟁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특수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그 전쟁에 무슨 동기가 있었던가? 전쟁의 최종 목표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패배한다고 그때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그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었다.)

참전자들은 자유의 십자군이고 평화의 사도였을까? 월남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단 말인가. 오히려 침략군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군인은 오로지 국가의 명령만 따르면 되니까, 그 전쟁이 옳았는지 어땠는지 신경을 쓸 필요가 전혀 없었던가? 그들은 모두 육체적 정신적 상처 없이 멀쩡하게 살아서 귀환했을까?

내가 참전의 혼란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나의 삶 자체를 총체적으로 당혹스러워 했던가?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잖은가. 하지만 전쟁터에서 제대로 치러진 작전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명예롭게 적의 총탄을 맞은 것도 아니고 그저 열대병에 걸려서 죽음 직전에까지 이른 것은 참전용사로서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랬다. 멋쩍은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경우…… 그걸 젊은 날의 통과의례로 가볍게 치부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을까?

내가 귀국할 무렵에는 베트남 전쟁이 갈수록 격렬해지면서 반전 시위도 격렬해져서 제국주의 미국은 둘로 분열되어 갔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그 전쟁에 의해 삶이 철저히 파괴되고 파멸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은폐된 채) 일사불란했고 국론 분열은 없었다. 우리는 언제든지 용감한 파월 용사였다. 그때는, 제3공화국 박정희 대통령의 원대한 꿈이 마침내 영글어서 그 밑그림이 거의 완성될 무렵이었다. 그 얼마 후 우리 시대의 저주이자 악몽, 망령인 유신체제가 엄숙하게 선포되었다.

그러나 무사히 귀국하였다는 안도감은 들지 않았다. 대신 전쟁에 대한 기억들이, 악몽들이 무섭도록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이건 나만의 기억이 아니다. 그 전쟁에 참전했던 우리들의 집단기억이기도 하다.

민족해방전선. 전선 없는 전쟁.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백두산, 백두산. 여기는 지리산.

부산시, 부산시. 여기는 대구시.

수고했다. 중대 진지로 철수한다.

엎드려라! 움직이지 마라!

산개하라.

엄호 사격.

수류탄이다.

위험하다.

시체라도 찾아야 한다.

소대장님! 미안합니다.

한 달밖에 안 남았심더.

살아서 귀국해야지.

진짜로 고맙심더.

우리 자주 편지 쓰자.

호찌민 루트. 혼바산과 죽음의 계곡. 하미 마을.

칠흑 같은 밤. 청음초에서 보초 근무. 마름모꼴 남십자성. 모기떼와 거머리들, 군복 속을 스멀스멀 기어 다니며 지랄같이 엉겨 붙는 불개미들이 득실거리는 늪지. 갈대밭. 가시덤불. 강의 지류. 메콩 강. 비 오듯 쏟아지는 땀. 사타구니의 습진. 상처투성이. 베트콩. 월맹 정규군. 그들의 출현을 기다리는 고통스럽고 지루한 시간. 매복. 참을 수 없는 갈증. 불안. 공포. 팬텀기 편대. 105밀리 곡사포의 포탄. 조명탄. 시누크 헬기의 굉음. 드륵드륵 연속 발사되는 M16 소총. AK-47 소총. LMG의 속사음. 클레이 모어, 부비트랩이 터지며 나는 귀를 찢는 듯한 폭발음. 로켓포 소리. 수류탄 터지는 소리. 화염병사기의 무차별 난사.

탕 ― 탕 탕 ―

따르륵 ― 따르륵 ―

핑 ― 핑 ―

꽈꽝 ― 꽈꽝 ― 꽈꽝 ―

딱쿵 ― 딱쿵 ―

화약 냄새. 시체 타는 냄새. 화장터. 야전 병원. 연기. 공동묘지. 실루엣. 피 묻은 파편. 피로와 배고픔. 수면 결핍. 두려움. 죄책감과 공포. 혐오감. 증오. 눈물. 고함. 욕설. 비명. 신음. 절규. 아우성. 광기. 잔혹한 학살. 피. 시체. 죽음의 냄새. 허무. 망상. 환영. 고통을 잊기 위한 또는 황홀경을 위한 마리화나. 혼동. 역겨움. 파괴. 완전한 무의미. 수진 마을. 꽁까이. 성병 (곤지름, 임질, 매독). 갈등. 자살. 범죄적 불법행위. 귀국, 귀국 박스.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의 ‘베트남 참전용사 만남의 장’.

그리고, 밀림에 가랑비처럼 뿌려지던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 심장을 향해 느리게 날아오는 총알slow bullet과 같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처인 고엽제 후유증.

 

그때 이후, 모호한 시간에

죽음의 고통은 되돌아온다.

그리고 나의 섬뜩한 이야기가 말해질 때까지

내 가슴은 불타리라.

 

다라트 지역의 깊은 정글. 그들 소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정강이까지 빠지는 음침한 늪지대 수렁을 헤치고 전진했다. 그리고 베트콩의 예상 침투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목표 지점에 모래와 진흙으로 급조한 임시 참호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등줄기에서는 식은 땀이 빗줄기처럼 줄줄 흐른다.

잠시 몬순의 지독한 비가 한동안 쏟아지며 숲 속에서 소란이 일어났지만 비가 그치자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새들과 벌들, 나비들은 날갯짓을 멈췄고, 붉은 개미, 곤충들도 몸짓을 멈췄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소리만 들린다. 그러나 황량한 그날 밤은 섬뜩하리만치 적막했다.

신참 박 일병은 갑자기 허벅지가 뜨겁고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오줌을 저렸던 것이다. 제발 오지 마. 왜, 나를 향해 달려드는 거야? 나를 죽이려고?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나를. 나는 무사히 돌아가야만 해.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거든. 그러니 오늘 밤은 그냥 넘어가자고. 나는 무사히 귀국할 거야.

그들은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공기 중에 감돌고 그들의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등골이 서늘해지며 몸속의 모든 신경이 곤두선다. 손과 발은 땅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전조가 있었던 것일까. 곧바로 그들 머리 위로 베트콩의 박격포탄이 터지고 AK47 소총의 근접 사격이 쏟아졌고, 방망이 수류탄이 터졌다. 그들은 함정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기습을 당했다.

뒤늦게 예광탄이 줄지어 날아오고 포탄의 폭음 소리가 귓창을 찢었다. 젊은 소위가 외쳤다. 사격하라! 사격! 집중 사격!

뜨거운 피가 튀었다. 비명. 아우성. 씨발, 씹새끼들. 시체들. 죽음의 냄새가 가득히 퍼졌다.

그때, 무전기가 울렸다. 철수하라, 철수하라. 반복한다, 철수하라. 반복……

베트콩은 재빨리 검은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숲은 다시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들은 망연자실하였다. 정지된 화면 같고 시간이 얼어붙어 버린 것 같기도 하였다. 소대원 중에서 많은 병사들이 부상당하고 죽었다.

박 일병은 오른쪽 으깨진 정강이가 무릎에 덜렁거리며 간신히 붙어 있었고 검붉은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철모 하나가 버려진 조개껍질처럼 바닥에 떨어져 있다. 그 곁에 귀국을 보름 남겨둔 소위가 한 손으로 피와 내장이 쏟아져 내리는 자기 배를 틀어쥐고 있었다. 위생병이 지혈을 시키기 위해 압박붕대를 감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지금 손쓸 틈도 없이 죽어가고 있다. 누구인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수통을 열어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물을 소대장의 입술에 부어준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울었다. 울고, 울었다.

이 세상에는 직접 몸으로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전쟁이 바로 그렇다. 전쟁이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도, 예측도 할 수 없는 처절한 몸부림이고 죽음의 고통인 것이다.

낯선 장면 혹은 낯선 풍경.

이건 전쟁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그걸 어떻게 경험이니 체험이니 하는 상투어로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 전쟁의 참여자였나 아니면 목격자에 불과했을까. 증언자로서 자격이 있을까. 그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사람이란 날이 갈수록 더욱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늙고 죽는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듯 잊어버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를 여전히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으니 나는 그 후 오랫동안 정서적 과잉 긴장감, 불안과 두려움, 우울, 과도한 민감성, 편집 성향 같은 (이 병명을 알게 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고통을 받았다.

 

김정현 병장.

실종자 (혹은 탈영병).

월남어 교육대 출신. 그는 파병 초기 보병 중대에서 몇 개월 간 전투에 참가한 후 뒤늦게 대학에서 불문과를 다녔다는 학력 때문에 선발되었다.

그는 나와는 월남 파병 동기였고 나이는 겨우 한 살 위였다.

우리는 보충 교대병력으로 도착해서 보병 부대에서 필요한 교육훈련을 함께 받았다. 먼저 M16 소총의 분해, 결합과 사격법을 실제 사격을 하면서 교육받았고, M79 유탄발사기, 신형 RKT 사격법, (푸른 스모그라 불렸던) 신호탄, 수류탄, 크레모아 등 각종 화기들의 사용법을, 베트콩의 전술과 특징, 베트콩의 요란 사격에 속지 않는 법, 지뢰와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는 장소의 탐지와 조치, 매복 정찰 요령 등등을 배웠다.

교관인 귀국 말년 하사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절대로 죽지마라. 그건 개죽음이다. 무사히 귀국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어김없이 형님, 그것도 큰형님 행세를 하였고 나는 이를 긍정하였다. 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게 멋있게,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것처럼 휘파람을 불 수 있고, 성숙한 인간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우린 친했고 서로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 놓을 수 있는 사이였던 것이다.

그가 맨날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심문 (또는 고문)하는 고정 메뉴가 있었다. 그는 대단한 고참인 것처럼 한껏 거들먹거리며 과장해서 위악적으로 말했다.

넌 순진하긴 한데 쪼다라고 할 수 있어. 완전한 쪼다. 순진한 게 좋은 게 아니야. 그건 병신 머저리라는 말의 완곡어법에 불과한 거지. 넌 담배도 못 피우지…… 술도 안마시지…… 붕붕도 못하지… … 노름도 못하지.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 말이야? 그것들이야 말로 인간 성체의 징표인데 말이지.

너 혹시 독실한 예수쟁이 아니야?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목사 아니면 전도사 집안인 거지? 황금 십자가와 묵주는 어디에 숨겨놓은 거야? 네놈이 월남까지 왔으면 기념으로 붕붕쯤은 해야 될 거 아냐. 딱지를 떼란 말이야.

너 같은 놈만 있다면 말이야, 수진 마을에서 젊고 예쁜 여자 2,000명이 날이면 날마다 목을 빼고 남잘 기다리고 있는데…… 그러면 걔들은 도대체 뭘 먹고 살겠어. 물만 마시고 사느냐 말이야. 너는 도대체 말이야, 인간의 본성인 연민의식이 없는 거야. 난 전투 수당을 몽땅 수진에 갖다 바쳤어.

내가 공짜로 시켜줄게. 제발 좀 따라만 와주라. 진짜배기 아라비아산 낙타 눈깔도 줄게. 그게 말이야, 신비한 요물이거든. 여자가 환장을 하는 거지. 남자도 덩달아 환장을 하고 말이지.

이 형님의 당면한 소원이 뭐겠어. 네놈 물건이 퉁퉁 부어 가지고 농이 질질 흐르는 꼴을 보는 게 나의 소원이지. 알겠어? 입에서 아직도 젖비린내 나는 놈아, 그걸 고상하게 말하면 구상유취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말이지, 그래야만, 네가 비로소 인간이, 사내가 되는 거야. 너에겐 지금 하나의 과정이 필요한 거야. 인간 성체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 넌 알에서 하루 빨리 부화해야 하는 거야.

나는 늘 똑같이 반응했다.

또…… 쓸데없는 소릴……. 나도 부화할 때가 있겠지. 반드시 부화할 거야. 그게 뭐 어렵다고. 5불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꽁까이, 붕붕, 오케이 하면 될 거 아냐.

그래, 그렇게 하라니까. 넌 보나마나 조루일거야. 그걸 완화시키는 약은 아직 없으니까…….

그날 저녁, 어스름 빛 속에서 나무들을 말끔하게 베어낸 개활지와 늪지대를 지나 조림된 고무나무 밭과 검고 칙칙한 열대의 숲이 멀리 보였다. 그러나 강에서부터 기어오른 짙은 회색 물안개가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입에서 여전히 술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다. 김 병장이 마리화나를 피워 물며 말했다.

이건 정신적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진통제이거든. 온몸이 노곤해지고, 그리고 황홀해지지. 며칠 전 수진에 갔다 왔지. 근 한 달 동안이나 못 만났거든.

뻔할 뻔자지, 보고 싶었던 거지. 그게 아니고 하고 싶었던 거지. 그래, 그렇게 좋아? 그 여자 이제 지겹지도 않아?

그 앤 그런 여자가 아닌 거야. 단순한 배설구는 아니었지. 내 여자이지. 영혼만은 순결하지. 난 랑린의 순수하고 달콤한 냄새를 맡고 들이마시지. 그 앨 보면 오히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작은 물고기가 내 혈관 여기저기를, 심장에서 모세혈관까지 헤엄치고 다니는 기분이 들지.

하지만 그 앤 가끔 눈물을 보일 때가 있는 거야. 메콩 강을 그리워하는 거지. 자신은 그 강의 일부라고……. 그 앤 내가 사준 은팔찌를 항상 차고 다녔던 거야. 그 앤 내 아이를 갖고 싶어 해.

얼씨구, 열녀 춘향이가 따로 없네. 아예 결혼해서 한국으로 모시고 가지 그래.

야, 임마, 난 이래봬도 뼈대 있는 종갓집의 장손이야. 그 낡고 고루한 집안에서 용납하겠어. 야단법석, 난리가 나겠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가 다급하게 랑린을 찾자 마담년이 뚱했어. 여기에 없다는 거야. 내가 신경질 부리고 눈을 부라려도 그년은 비웃었지. 자기는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 거야. 그러면서 그 앤 결코 돌아오지 않을 거라구, 죽은 셈 치라는 거야.

다른 애들이, 새로 온 여자 애들이 있으니 마음대로 고르라는 거였어. 마담 밑에는 모두 열 명의 아가씨가 있다는 거지. 그년은 철저히 장삿속인 거야. 다른 집에 단골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지.

개 같은 년, 내가 1년 동안이나 다른 애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일편단심 그 애만 만난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야. 그래서, 단도를 빼들고 마담의 목을 겨누었지. 그때는 눈이 뒤집혀서 정말 목을 따 버릴 작정이었어.

그제서야 마담이 털어놨어. 랑린이 고향으로 이미 떠났다는 거야. 몬순 계절이 되면 메콩 강 델타는 엄청나게 범람한다는 거지. 그 전에 서둘러서 메콩 강 하류에 있는 빈롱으로 출발하였다는 거야. 고향에는 늙은 홀어머니가 계시지. 아버지도, 두 오빠도 전쟁 중에 죽었거든…….

나는 어떤 아득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어쩔 셈인데?

나에겐 랑린밖에 없는 거야. 나도 떠날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멀리 떠난다는 거지. 그 앨 찾아서. 이게 사랑인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람브레터를 타는 거지. 아니면 지붕에 승객을 태우는 장거리 버스를 교대로 타고서 무작정 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거야. 월남 지도를 구했거든. 빈롱까지 가는 거지.

월남 사람처럼 옷을 입을 거고. 내 월남어가 잘 통하겠지.

메콩 강이 꿈결처럼 흘러 흘러들어서 마침내 태평양 바다와 만나 곳이지. 여기서부터 천릿길이 될 거야. 나는 원래 방랑자적 기질이 있으니까……. 이런 여행쯤이야. 돈이 좀 필요하지. 네가 가지고 있는 걸 몽땅 내놔야 할 거야.

지금, 제정신이냐! 제정신이냐구? 대관절 사랑이 뭔데! 그렇게도 사랑 때문에 단맛, 쓴맛을 봤으면서……. 지금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거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의 여윈 얼굴에 피로한 눈빛과 냉소적인 미소가 어려 있다. 그가 다시 마리화나를 피워 물었다.

그만 해둬. 부대는 잠시 난리가 날 거야.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그건 잠깐뿐일 거야. 작전 중 행방불명이나 사고사로 처리하겠지. 전쟁터에서 병사가 탈영하면 부대장의 경력에 엄청 흠이 되는 거지. 진급에도 악영향을 끼칠 거고.

그러니까 헌병대나 보안대에 신고는 못 할 거야. 쉬쉬할 거라구. 수배령도 내리지 않을 거구. 그렇게 하면 탄로 나니까. 월남에서 허위 보고는 식은 죽 떠먹기지.

형, 알고 있기나 해. 내가 연장 근무를 신청했어. 인사계는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했어. 조용히 기다리라고 하더구만. 공정가격이 있는 모양이야. 난 상관없어.

형도 그렇게…… 연장이나 해보라구. 그러고 나서 다시 생각해봐…….

그렇겠지. 여기는 썩을 대로 썩었으니까…….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겠니. 너나 나나 빨리 귀국하고 싶지 않은 거야.

네 마음은 내가 잘 알지. 그렇게 하라구. 이건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순전히…….

나는 갑자기 당황하였다. 헤아릴 수 없는 짧은 침묵이 그 순간을 짓눌렀다. 갑자기 뱃속이 울렁거린다. 연민과 분노와 당혹감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터질 듯했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절망적으로 말했다.

형은 그럴 수 없어! 형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야!

그의 얼굴 표정에 비장한 것이 서려있다. 어떤 헤아릴 길 없는 깊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를 뚫어져라 쏘아 보았다. 나는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잘 들어라. 어느 날 내가 감쪽같이 사라지면 그렇게 알라구. 넌, 날 말릴 수 없어. 너마저 그러면 M16으로 내 머리통을 갈겨 버릴 거니까. 악랄한 내 주인에게 총을 쏴버리는 거지.

나는 전투만 시작되면 얼어붙어 버려서 총을 한 방도 쏠 수 없었지. 방아쇠를 당기는 팔에 마비 증세가 오는 거야. 그때마다 내 얼굴은 땀과 흙으로 뒤범벅이 되었고, 오줌을 지렸고, 몽땅 토해버렸어. 그러나 날 겨냥하고 쏠 수는 있어. 그건 가능한 일이지.

우린 오늘 밤이 마지막이야. 우리 서로 Cool하자고. 울지 마라. 넌 아직도 눈물이 남아 있니. 넌 알고 있을 거야. 내가 고국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정말 싫지. 쓰라린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곳이지. 너만 그런 게 아니지, 나 역시 옛날, 입대하기 전 일은 지겹고, 역겹지. 그건 악몽이었어.

우린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포유동물인 거지. 전쟁터에서 그 분노를 폭발해버리면 치유가 되는 줄로 알았지만… …. 그때 일들은 기억상실증에 걸렸어야 하는데…….

그러나…… 나는 도망가는 게 아닌 거야. 내 길을 찾아가는 거지. 자기 자리를……. 여기에 처박혀 넉맘 냄새를 실컷 맡으며 살고 싶은 거야. 이 난리 통에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가 천천히 속삭인다. 그 억양이 가볍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그녀를 감싸 안아서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대학 불문과를 3년간 다녔고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들은 거의 전부 완벽하게 암송할 수 있는 남자. 젊은 날의 통과의례에 불과한 첫사랑의 상처 때문에 죽고 싶도록 고통을 느꼈고 그래서 일찍 군에 자원입대했고 또다시 월남전에 자원했던 남자. 가난한 시인이 되고 시골 벽지에서 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던 남자. 문학적 재능이 있는지는 몰라도 너무나 융통성이 없었던 남자. 그러나 인간을 향해 총을 쏠 수는 없었으나 자신의 머리에는 감히 총을 쏠 수 있다고 자신했던 휴머니스트.

메콩 강의 강폭이 한없이 넓어지고 강물이 유장하게 흐르는 메콩 강 삼각주의 빈롱에서 천리 길을 거슬러 올라가, 거대한 미군 군수기지가 있던 캄란 만 입구의 집장촌인 수진 마을까지 흘러들어온 영혼이 맑은 여자.

그는 여자의 갈색 피부를 쓰다듬고 그녀의 불타는 듯한 눈과 얼굴 위로 자신의 얼굴을 덮는다. 그는 그녀의 눈 깊은 곳에서 빛을, 구원의 빛을, 어떤 계시를 발견한다. 그녀를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가능하다고, 그는 그렇게 다짐한다. 그는 이제 지껄이지 않는다. 희망과 욕망, 탐닉이 묘하게 섞여있는 격정적인 몸부림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그는 그 순간 아무것도 생각해서는 안 되리라. 여기 밀림에서는 의식은 가물가물해지며 몽롱할 뿐이다. 꿈도 꿀 수 없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고통도 벌써 희미해져 버렸다. 그때는 죽음을 갈망했었는데. 모든 추억이 사라져버렸다. (민들레가 피어있는 논둑길. 따뜻한 봄날의 햇빛. 흰 구름. 냇가. 소녀. 사랑. 입술. 이별. 불면하는 밤들. 침묵. 망망대해. 무인도. 미완성인 한 묶음의 원고들.)

오직 군화와 철모, M16 소총, 수류탄.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생각한다. 나는 소진되어 버렸는가? 도피자인가? 이미 사라져 버렸는가?

밤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 C포병 중대에서 발사하는 105미리 곡사포의 포탄 터지는 소리가 밤의 유령이 토해내는 괴성처럼 아득히 들려왔다.

그때의 생생한 장면, 대화 내용, 내 가슴 속에 각인된 김 병장의 비장한 얼굴을, 그의 의지를, 욕망을, 내가 느껴야 했던 그 무력감을 어찌 오랫동안 잊을 수 있었겠는가. 날카로운 가시 면류관을 쓴 채 피를 뚝뚝 흘리는 김 병장의 모습이 그 후 한 세대 동안이나 자주 꿈속에 나타났다. 그런 게 아니라 나타났다고 생각하였다. 김 병장을, 그를 끝내 붙잡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나의 강박관념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한때 그 강박관념을 몰아내기 위해, 망각을 위해, 알코올 의존자가 되어 살아야 했다. 매일 알코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만취해서 인사불성이 되고 머릿속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면. 필름이 완전히 끊겨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마음껏 분출할 수 있다면. 분노의 순간에 격정을 폭발할 수 있다면. 나를 산산이 파괴할 수 있다면. 섹스에 탐닉할 수 있다면.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면. 식어버리고 사라져버린 사랑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사랑의 기쁨은 잠시이고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끝내 좌절하고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유아기적 껍데기를 깨고 인간 성체로 성숙할 수 있다면. 자기 자신을 찾을 수가 있다면. 그러나 나는 길에서 왝왝 토하는 일 외에는 항상 말짱했다. 도대체 취해지지가 않았다. 그러므로 술이라면 진저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계속 마셨지만 말이다.

 

빈롱. 수목이 빽빽하게 우거진 밀림의 가장자리 얕은 언덕에 있는 랑린의 집 (마을에서도 조금 떨어져서 그 오두막은 홀로 서있다.)에서 멀리 메콩 강 삼각주와 유장하게 흐르는 누런 강물이 내려다 보였다. 밤이 깊어 가면서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내가 말했다. 김 병장은 어디에 갔지? 밖에? 들판에? 난 김 병장을 만나러 왔지. 아주 멀리서 말이야. 죽고 싶도록 보고 싶었거든. 그녀가 말했다. (그 목소리가 감정이 배어 있지 않은 기계음처럼 들렸다.) 그는 죽었어요. 틀림없이 죽었단 말이에요. 모르겠어요? 여기에 오지 않았어요. 아마, 민병대 또는 베트콩한테……. 아니에요, 아니. 그는 안 죽었어요. 내 가슴 속에서 살아 있지요. 내가 말했다. 그럴 리가. 그녀가 깔깔거리며 말했다. 그만 잊으세요. 잊어……. 나는 지금 외롭고 힘들어요. 죽을 맛이에요.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 주세요. 제발.

그 순간 난 깨달았다. 그녀와 나, 살아있는 사람들은 이제 그에 대해 아무런 미련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엄연히 살아있고 그녀와 나는 각자의 삶이 있다. 그리고 문득 이미 오래전부터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그를 잊기 위해서, 그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심전심으로 암암리에 공모자가 되었다. 그녀는 이제 울지 않는다. 침묵이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그녀의 까만 머리, 까만 눈, 잘록한 허리가 은근히 유혹적이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 얼굴을 만지게 해주세요. 나를 꼭 껴안아 주세요. 그리고 그 짧은 순간 나는 갑자기 그녀를 억세게 끌어안고 나의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나의 혀를, 빨간 혀를 그녀의 입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고 키스를 하였다. 나는 짚으로 된 푹신푹신한 침대에 그녀를 눕혔다.

그녀가 노래를 했다.

메콩 강은 알고 있다네 강물은 깊어라 슬픔도 깊어라 강은 시시로 변하네 아침에 푸르던 그것이 저녁이면 핏빛으로 물드

강 쪽에서 거대한 잿빛 구름이 몰려오고 잠깐 동안 천둥 번개를 동반한 지독한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나는 새벽의 희붐한 여명이 창문으로 밀려들 때쯤 밤늦게까지 뒤척이다 겨우 눈을 붙인 잠에서 깨어났다. 너무 오랫동안 김 병장을 잊고 지냈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고 랑린은 잘 있는지 그녀가 궁금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초여름에 마을 냇가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왼쪽 무릎을 심하게 다쳤는데, 그 당시 두메산골—고향 동네 송정리는 면사무소에서도 10리를 더 들어간 산골짝에 있다.—에서 속수무책으로 방치하였다가 관절염이 심하게 악화된 것이다. 내 무릎은 주위가 빨갛게 되어 통통 부어오르고, 물이 차고 고름이 차고 나중에는 굽혔다 펼 수조차 없게 되면서 그 때문에 견딜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사람을 탈진하게 하는 신열과 오한, 피로감, 구역질 등에 시달려야 했다.

온갖 민간요법과 떠돌이 한의사의 마구잡이식 침놓기, 이 십리쯤 떨어진 동네 도사 할머니의 신통한 주문과 비방도 소용이 없었다. 고흥 읍내의 한지의사는 여기서는 치료할 수 없으니 순천이나 광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문전옥답 논을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도시의 병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의사는 희미하고 검고 회색의 엑스레이 사진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완치하기 위해서는 무릎 위부터 잘라야 하거나 아니면 무릎 수술을 해도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심하게 절 수 밖에 없다고 냉정하게 선언하였다. (그때부터, 유년의 저 깊은 심연 속에 뿌리 내린 냉혹한 공포감이 평생 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두말할 것도 없이 사색이 된 아버지는 몇 군데 병원을 전전하다가 어쨌거나 정형외과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오랜 물리 치료와 끝없이 길고 긴, 지루한 재활 훈련 끝에 기적처럼 완치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절 그 길고 긴 물리 치료와 재활 훈련이라는 게 무엇이었던가?

마을 뒷산은 천등산에서부터 해안 쪽으로 밋밋하게 뻗어 내려오면서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었다. 그 산 허리에서부터 멀리 은빛으로 빛나거나 혹은 회색 바다로 돌변하여 거칠게 포효하는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나는 온 종일 거친 풀과 가시덤불, 바위투성이인 뒷산의 경사면을 힘겹게 오르내리며 염소떼를 몰고 다녔고, 녀석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을 때면 풀벌레와 나비, 벌집, 거미집, 뱀들을 찾아서 풀섶을 헤치며 보냈던 것이다.

유년시절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무릎 바로 위에 둥글게 패인 희미한 수술 자국은 그때의 고통과 상처를 지금도 상기시켜 주지만 말이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면 그 시절만이 남아있다. 내가 일일이 이름을 만들어 주었던 녀석들과의 끊임없는 대화. 그때부터 내 마음 속에 뿌리 깊게 박혀버린 회색 바다. 그 바다는 너무 심오해서 설명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릎을 절단하는 수술, 혹은 무릎 수술로 내가 심하게 다리를 절게 되었다면 내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우선 군대도 안가고 전쟁터에도 안 끌려가고. 그러나 내 인생은 지금과는 송두리째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의 아내와도 만나지 못하였을 것이고, 그러면 내 두 딸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정체성마저 바뀌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누구였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성격상 나이가 들어갈수록 심하게 좌절한 나머지 우울증과 폐쇄공포증에 시달리고, 매일같이 독한 술을 마시며 알코올에 의존해야 되었을 것이고, 그래서는 변변한 직업도 없이 평생을 고통 받고 자포자기한 삶을 살았을 터였다. 그랬으니 결혼도 못했을 것이고 미구에 자살했을 지도 모른다.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젊은 시절 삶의 고뇌에 허우적거리며 헤어나지 못할 때 존재론적 회의에 빠져서 몇 번씩이나 자살의 충동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돌이켜 보면, 그건 행운이었다. 내가 목숨을 건지고 회복되었으니 말이다. 두 번의 경우 모두 내게는 커다란 행운이 뒤따랐다. 그렇지만 그들 행운은 내 자유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된 것이다. 그것은 어떻든 오래 전부터, 아마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니 내가 어떤 은총을 입은 게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내게 또다시 파랑새가 하늘 높이 비상하는 행운이 계속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건 공평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운명이 닥칠지라도 그것에 저항하지 말고 순종해야 하리라. 그렇지만 운명의 여신인 포르투나Fortuna처럼 행운 역시 눈이 멀었다고 하였으니까, 누가 어떤 혜택을 입게 될지는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눈 먼 행운.

내가 물놀이에서 무릎을 다치고 회복된 일이나 열대지방의 정글에서 정체불명의 병에 걸리고 기적적으로 회복된 것은 아주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건 운명이었고 우연이란 막다른 운명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종착지에 이르기까지 구불구불한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을 결정짓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오로지 운명일 뿐이다.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결국에 가서 이기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이 세상인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니체가 말한 철학적 용어인 운명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운명은 팔자이니 운명에 맡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체념이나 단념이야말로 인간의 미덕이 된다. 그러니까 나의 인생행로가 뒤틀렸거나 순조로웠거나 상관없이 운명은 결국 내 삶의 순리인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적 운명론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웅대한 예정론에서는, 칼뱅의 예정설에서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렸으니, 그렇다면 운명이야말로 신적인 것이다. 그들이 말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알고 있으니 모든 걸 그분에게 맡겨라. 그분이 결정할 터이다.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강남역 부근에 있는 유명한 교회의 집사인 친구가 말했다.

“네가 지금 살아남은 것이 우연일 수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운명 따위는 없어. 오직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을 뿐이야. 신은 인간 삶의 모든 국면을 조종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그쪽 신을 믿지 않거든. 신앙심이 없는 내가 신의 은총을 입을 수가 있다고……? 그렇다고 할 수 있나……?”

“네가 무슨 쓸모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의 구원이 일찍부터 예정되어 있었다니까.”

“왜, 하필 내가?”

“신의 의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정글과 열대. 살과 피가 튀는 야만적인 전쟁.

지금은 기억의 초상.

그것은 나의 삶을 분명하게 두 부분으로 쪼개버렸다. 비록 과거의 그 어떤 상처가 치유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전쟁 전과 전쟁 후의 나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랬으니 전쟁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과거는 망각일 뿐이다. 과거가 나를 만든 것이 아니다. 나는 과거의 산물이 아니다. 그러니 나의 과거는 사라지지 않았고, 놀랍게도 나의 과거는 추억이 되었고, 현명한 지혜로 바뀌었다고, 자신을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긴밀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라는 공동체,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단절과 균열, 이질감,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저주인) 소외, 외로움을 느꼈다. 나는 비사교적이었지만 매우 순종적이었다. 그러나 나의 내부에는 항상 해소할 길이 없는 욕구불만과 분노가 들끓고 있었으니 오랫동안 그들과 융화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 집요한 강박관념 때문에, 외로운 인간, 국외자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내 어둠 속 내면으로 다시 돌아가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경멸하고 그 반사작용으로 그들을 경멸하였다. 나는 호모 사피엔스인 인간 종 모두를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로 여기고 불신하였다. 그리고 서로 간에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관계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20대, 젊은 날에 그들 운명적 사건의 경험을 토대로 내가 인간 본성 (특히 그것의 상대성)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랬더라면 인생의 우여곡절과 좌절을 맛보지 않고 좀 더 충실한 삶을 살았을 터이다. 그리고 그 시절의 통과의례인 사랑의 감정과 배신과 고통은 어떠한 (감상적인 말이거나 수사적 표현이 아닌) 상처를 남겼던가? 그때 나는 벌써 일종의 허무주의에 빠져있었으니, 항상 분열되어 있었으니, 자신을 벗어나서 타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었으니, 평생 동안 따라다닌 불안감을 여전히 떨쳐내지 못했으니, 내 인생의 명확한 길과 목표가 세워질 수 없었다.

신비와 공포의 상징물이었던 바다, 사막.

멀리 달아나 버린 꿈.

장밋빛 인생은 없었다. 나는 초라했다. 정말 초라했다. 누가 나를 위로해 준 적이 있었던가? 그러므로 나에게 한 순간인들 삶의 고결한 순간은 없었다. 삶의 좌절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지 않았던가. 그때는 언제나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했다. 나는 벌써 마지막 항해를 끝내고 자신의 항구로 귀향한 늙은 선원이 된다. 얼빠진 사람, 살과 뼈가 없는 무기력한 인간, 여전히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가 야기한 공포에 몸을 떠는 인간, 바다의 폭풍우 속에서 악마의 얼굴을 보았던 인간, 끊임없이 근원적 불안감에 시달리는 인간.

그러나, 나는 30대 후반을 지나면서부터 삶이 얼마나 느릿느릿 지나가는지를, 삶을 보다 가볍게 여겨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뭘 더 바랄 수 있었겠는가. 나는 시간의 흐름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단조로운 일상에 자신을 맡기기로 어설픈 타협을 하였다.

 

나는 오랜만에 (근 10여 년 만에)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아마, 그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이었으니까 할머니 제사 때문에) 송정리 고향집에 내려갔고 한때 꿈과 몽상에 젖어 오매불망 그리워했던 그러나 이미 가슴 속에서 지워져버린 남쪽 바다를 다시 만났다.

멀리서 어떤 목소리가…… 바다 쪽에서…… 울부짖었다. ‘돌아오라고! 돌아……! 고향으로……! 네 고향은 바로 바다인 거야.’

겨울 바다에 돌풍과 같은 강한 바람이 불었고 파도는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렸다. 통통선 어선이 거친 파도를 헤치며 부두로 귀환하고 있다.

나는 해안선을 따라 만의 동쪽 끝 동백나무 숲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하늘은 푸르고 아름다웠다. 한나절 동안 (그날 오후 무렵이었을 것이다.) 진정한 정신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깊고 푸른 바다의 냄새를 흠뻑 맡으며 걸었다.

…… 달에게 그 가슴을 드러내 놓은 바다여!

…… 밀려와라, 그대 깊고 검푸른 바다여!

나는 아주 슬프지도 않았지만 아주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그때 바다가 내게 무슨 말을 했었던가, 바다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무슨 말인가를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건너편 이름도 없는 무인도인 작은 섬을 바라다보았다. 그 외로운 섬. 내가 어렸을 적에는 두 가구가 염소를 키우며 살았었다. 까마득한 옛날 일이다. 그러나 그 섬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혹독한 것이었으리라. 나는 그들의 고립되고 힘든 삶을 상상했다. 그리고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불가해하고 희미한 장면들을 이것저것 떠올렸지만 (내가 유치한 감상에 젖어있었던 건 아니다.) 그때 무슨 심각한 또는 애잔한 생각을 했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부질없이 눈물을, 자기 연민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할 것이다. 내 눈에서 그것은 아주 옛날에 말라버렸지 않았던가.

나는 생각했었다.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어둠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무엇이 그토록 불안하고 두려운 것인가? 도대체 뭐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가? 그 끈질긴 열등감을 마침내 극복할 수 있을까? 지금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잃은 채 내 인생은 종막을 내려야만 하는가? 나는 끊임없이 변해야만 한다. 그럴 수 있을까? 희망의 출구가 보이긴 하는가? 지금 당장 자신감과 함께 당당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쩌면 자기 자신한테도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만큼 뻔뻔함까지. 나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희생자가 아니었고 가해자가 된 적도 없었다. 타자에게 또는 나 자신에게 도덕적 이중성을 해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므로 이중인격자라는 비난을 감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를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위선적이거나 위험한 변신까지도 할 수 있다. 왜 불가능하겠는가.

하지만 그 집사 친구의 끈질긴 권유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 신께 믿음으로 의지하면 신이 믿음에 응답하리라고 말했지만. 그는 가벼운 뇌졸중을 앓은 이후로는 아주 느리게 말했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보통 사람의 일상적인 삶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안주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할 것이다.

단순성. 반복. 익숙함.

그러자 나를 오랫동안 짓누르고 있던 바위덩어리 같은 무엇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에는 고향에 남아서 미역 공장을 하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오랜만에 만나 통음했다. 그는 미역공장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고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겸손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그리운 추억담에 빠졌다. 몹시 가난했던 그 시절은, 그러나 회상하면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우리를 감쌌다. 우리는 지쳐서 서로 엉킨 채 잠이 들었다.

깊고 깊은 잠이었다.

그날 밤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고향에는 아주 오랜만에 내려온 거지.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하나도 안 변했지. 바다가 어떻게 변할 수 있겠어. 너는 많이 변한 것 같지만…….”

그리고 초등학교 동창생 김병주의 소식을 들었었다.

“네가 월남 갔다 왔다는 걸…… 언젠가 누구한테서 들었던 거 같은데?”

“그랬었지. 내가 그곳에 갔다는 게…… 그렇지 뭐. 난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었지.”

“그래? 너도 알고 있겠지?”

“누구?”

“김병주 말이야. 걔는 어렵게 3사관학교 나와서 육군 장교가 됐었거든. 마지막 끝물에 월남에 갔다가 지뢰가 터져서 양쪽 다리 모두 무릎 위쪽까지 잘라냈지. 그렇게 됐다고 그러더라고.

제대하고 고향에 돌아와서는 휠체어 타고 다녔거든.

매일 술로 지새니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어. 나도 가끔 함께 술을 마셨지. 여기로 찾아왔었거든.

그는 늘 입버릇처럼 ‘사람 죽이는 일은 쉬운 게 아냐,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라고 말했었지. 한동안 술도 끊고 괜찮았는데…… 휠체어가 바다로 빠져 죽었어. 그게 사고인지 자살인지 알 수 없었지.”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그때 벌써 불혹지년의 나이었고 흐르는 세월이야말로 가장 좋은 정신적 치료제이어서 도저히 아물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심각한 상처는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어느덧 회복되었다. 그때부터 생활은 점점 안정되었다. 나는 벌써 직업적 타성에 젖었고 일상생활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명료하게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자아형성이 되어있지 않았고 정신적으로 미성숙했다. 나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 견고한 장벽이 존재했고 그것을 스스로 허물 수 없었으므로 그 곳으로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쯤 성숙한 어른이 되어 진짜 철이 들 것인가.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이행과 자아의 정체성 확립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내가 그걸 희미하게나마 깨닫기 시작한 것은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겪고 난 훨씬 후의 일이다.

 

나는 어느새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때쯤에 점차 소멸되어 가는 추억의 희미한 발자국을 반추하면서 나의 굴곡진 삶의 총체적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일이 비로소 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성공과 좌절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혀서 결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존재론적으로 원인과 결과의 영역 밖에 있는 성찰 (이 얼마나 철학적이고 이해하기 어렵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말인가)에 대한 것이리라.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솔직하게 말해야 하리라. 누굴 속일 수 있겠는가. 더욱이 자신을 더 이상 속여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언제 진지하게 자기 성찰을 한 일이 있었던가. 그것은 무용한 짓이 아니었던가. 그렇다. 그렇고말고. 그렇게 되었다. 나 자신을 알려고 더 이상 애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나로 다시 환원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일찍 동네의 낮은 산을 오른다. 그건 산이 아니라 언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언덕 너머에 뭐가 있어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언덕에는 계절이 되면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나무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며 녹음이 우거지고 새들이 지저귀고 줄무늬다람쥐가 참나무 우듬지까지 기어오르니 온통 생명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언덕에는 수많은 신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인간과 세상이 한없이 두렵게 느껴지면서 이 세상에 미만해 있는 무수히 많은 신들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야전병원의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매일 복용하는 엄청난 양의 진통제의 작용 때문인지 몽롱한 채로 마치 하얀 새털 구름 위에 떠있는 환상에 사로잡혔었다. 그리고 하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갈 때 어떤 환영, 신의 환영을 보았던 것이다. 믿을 수 없는게 기억이긴 하지만 그렇게 기억한다. 나는 그때부터 신을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의 부정을 부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확신한 것은, 오랜 시간이 흘러간 뒤였다.

내가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왜소하다는 사실을, 이 세상에는 인간 이외에 타자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신을 몰아내고 신이 사라진 언덕에 인간이 대신 올라설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래서 신의 존재를 믿기까지는 가혹하고도 평생에 걸친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에필로그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식을 키우며 먹고 살려고 분투하는 사이 세월은 미처 깨달을 새도 없이 빨리 지나가 버렸다. 아버지의 처지가 바로 그런 것이다. 처자식이 딸리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치사한 것도, 부당한 것도 꾹 참아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자신의 신념을 고수할 때와 굽히거나 버릴 때를 아는 것인데) 필요하다면 이념도 신념도 헌신짝처럼 버려 버리거나 재빨리 바꿔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란 참으로 좋은 약이다.

나는 2000년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구닥다리 구시대의 인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촐랑거리는 신시대 인간도 아니다. 완전히 구세대에 속하기에는 너무 늦게 태어난 것이고, 신세대에 속하기에는 너무 일찍 태어난 것이다. 나는 원래 진보적 낙관론자였으나 당연히 오랫동안 흔들렸다. 그래서 한때는 더할 나위 없이 철저한 비관론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민주 투사도, 좌파도, 운동권도, 이데올로그도 아니었다. 1970년대나 1980년대를 지나오면서 그 엄혹한 권위주의 체제에 대해 아무런 반감도 저항도 없이 순응했으니 시대의 흐름이나 상황은 나와는 무관했다. 그랬으니 형무소나 심지어 경찰서 보호실에도 가본 적이 없다. 나의 오직 관심사는 내 개인사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퇴행성 관절염이 조만간 생길 가능성이 있는 나이 탓에, 이마에는 자잘한 주름들이, 양쪽 볼에는 쭈글쭈글하다 못해 깊은 골이 패이고, 올챙이배처럼 배가 튀어나오고, 온몸은 군데군데 점점 커져가는 검버섯이 독버섯처럼 나있고, 다리와 팔은 점점 가늘어져 가고, 머리가죽에 들러붙은 머리털이 온통 하얘진 탓에 보수적 낙관론자가 되었다. 나이란 그런 것이다.

그 전쟁이 끝난 지가 언제인데. 나는 진즉 그 옛날 그 시절의 나와는 연결 고리가 끊어져있었다. 기억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한꺼번에 남김없이 잊히는 건 아니지만, 벌써부터 기억에 크고 작은 구멍이 뚫리면서 그저 조금씩, 하나씩 부스러져서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잊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잊게 된다. 절대 잊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도 너무 빨리 잊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언제 죽음을 갈망했던가. 중요한 건 인생이다. 아! 아름다운 인생이여. 삶에의 의지. 그러니 이제는 그 과거의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까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가정생활은 원만하여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으니 매일 명랑하고 유쾌하다. 내 인생의 과정은 행복과 불행이 뒤섞이면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은 것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수도승처럼 살 일이 있는가. 행복이란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시쳇말로 하는 그런 행복이라면 정말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그건 구제불능의 행복이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무장해제된 것처럼 정신적 고뇌는 나날이 희미해지고 지워지기 시작했다. 내 삶이 육상선수처럼 빨리 달려가고, 먹이를 낚아채려고 빠르게 내려오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는데, 지금 가혹한 시험을 하여 자신을 괴롭힐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단테는 나이 35세쯤에 ‘우리 삶의 노정 중간’에 이르렀다고 했는데 나는 지금 산술적으로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삶의 노정에서 중간보다 훨씬 멀리 와 있다.

(그런데 나이 든 사람은 지혜가 있거나 총명한 것이 아니라 단지 노회하고 능구렁이가 다 되었을 뿐이므로) 나는 요즈음 필요할 경우 다소간 권모술수와 감언이설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오히려 부동산 투기와 주식투자를 해서 재산을 많이 모으는데 관심이 많다. 돈이란 이 정도면 충분하지, 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 살기 위해서 건강식과 값비싼 보약을 열심히 먹고 있다. 그렇지, 오래, 오래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손자들이 크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들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술은 더 이상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는다. 술을 마셔도 즐겁지 않고 건강만 해치는데 그걸 왜 마시겠는가.

내 삶과 인생이 점차 해지고 스러져가고 있으니. 나는 소멸의 과정 중에 있다. 하지만 나를 점점 잃어간다고 해도 여전히 나 자신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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