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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 티베트 기행 (수정)
이름 유중원 이메일



티베트 기행

 

 

위대한 정신은 독수리와 같다.

높다란 고독 속에 둥지를 튼다.

― 쇼펜하우어

 

   

나는 5년 전쯤에 히말라야 산맥 쪽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신선한 바람을 쐬기 위하여 티베트의 고원지대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에서 토번국을 가리켜 ‘얼어붙은 산, 눈 덮인 산과 계곡 사이에 엎드려 있다’고 하였다. 그 고원은 삭막한 풍경이 거의 사막에 가깝다. 높고 험한 암갈색 산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광활하고 메마른 곳이었다. 오래 전부터 너무나 가보고 싶어서 끝없는 몽상에 젖게 했던 곳이었다.

나는 그해 가을에 회사 일 때문에 헝클어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티베트의 강렬한 햇빛과 맑고 찬 공기가 필요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운명처럼 해 온 그 일을 목숨처럼 사랑하는데 그걸 포기할 수 있을까? 또는 그 때문에 회사를 떠날 수 있을까? 그 여자의 집요한 요구 사항은 타당한 것일까? 쓸데없는 개인적 허영심이라고? 공허한 자만심이라고? 난 무엇 때문에 그걸 완강하게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이해 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불가해한 인생의 수수께끼일 것인가.

세상의 비밀과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티베트 고원의 순례길을 걸으며 폐부 깊숙이 그 공기를 들어 마시면 함께 푸른 하늘과 아득한 고원의 무채색 정경들이 환영처럼 가슴 속으로 파고들 것이다.

 

나는 그때 말로만 들었던 티베트인의 장례의식 중에서 천장天葬 또는 풍장風葬의 일종인 조장鳥葬의식을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그건 순전히 우연한 일이었다. 라싸에 도착해서 뿔고둥 소리에 이끌려 달라이 라마가 속해 있는 티베트 불교 종파인 황모파黃帽派의 사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조캉 사원이었다. 그 사원의 접대소 좁은 방에서 한 달 동안이나 오체투지를 하며 순례를 온, 옷은 남루하고 머리는 엉망으로 헝클어졌지만 구릿빛 얼굴은 행복해 보였던 티베트 서쪽 지역 사람들과 며칠간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때 알게 된 젊은 라마승이 안내를 맡아주었다.

그는 왼쪽 손에 들고 있는 옴마니 반메훔이 새겨진 (티베트인들이 마니차라고 부르는) 법륜을 천천히 돌리면서 끊임없이 만트라 眞言, 呪文을 중얼거렸다. 그가 중얼거리는 진언이 바로 범어인 옴마니 반메훔 Om mani padme hum이고, 그 뜻은 ‘연꽃 속의 보석이여’이다.그런데 연꽃은 더러운 진흙 뻘 속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그렇다면 진흙 속에서 아름답게 승화한 연꽃 안의 보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부처님의 자비, 불법, 또는 진리라고 할 수 있다.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야만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1,000년 동안이나 이어져온 티베트의 고유한 장례의식일 뿐입니다. 새들도 인간처럼 고유한 생명력이 있고, 이 세상의 일부분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영혼이 환생하도록 하는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 라마승이 미리 주의를 주었다.

장례식을 주관하는 승려가 주문을 외우며 장례 행렬을 인도하였다. 승려는 긴 목도리의 한쪽 끝을 잡았는데 목도리의 반대편 끝은 시신에게 매여 있다. 그리고 승려는 작은 손북과 사람의 넓적다리뼈로 만든 나팔 소리에 맞춰 기도문을 외웠다.

“나는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나를 인도하는 영적 스승과, 관대함과 분노의 모든 신들에게 귀의하며 절하노니, 위대한 자비의 신께서는 전생의 부정과 쌓인 죄업을 소멸하시고 다른 좋은 세상에 태어나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티베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한 사람도, 사실은 살아 있는 어떤 존재도, 죽음의 세계로부터 돌아오지 않은 자는 없다. 사실 우리들 모두는 이번 생에 태어나기 전에 무수히 많은 죽음들을 겪었다. 그리고 우리가 태어남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죽음의 반대편에 불과하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 가운데 한 면과 같고, 방안에서는 출구라 부르고 바깥에선 입구라 부르는 방문과 같다.

그러나 손북에는 느슨하게 매달린 매듭 끈이 붙어있어 승려가 그것을 손으로 빙빙 돌리면서 치면 소리가 나도록 되어 있었다. 승려는 이따금 시신을 돌아보면서 그 영혼에게 육신과 동행할 것을 청하고, 또한 행렬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가를 확인하였다.

정식으로 시체의 해체 작업이 시작되기 전 대략 30분 정도 시체 주위를 유족들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라마승의 주술이 낭독되는 의식이 있었다. 그 주술은 이승에 대한 일종의 고별사라고 할 수 있었다.

“…… 죽음의 사신이 언제 찾아올지 아무 생각도 없고 귀 기울이지 않는 자는 누구나 남루한 육체에 머물며 오래도록 고통 속에서 살아가리라. 그러나 모든 성자와 현자들은 죽음의 사신이 언제 찾아올지 알고 있기에 결코 무분별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고귀한 가르침에 귀 기울인다. 그들은 집착이 곧 생과 사의 모든 근원임을 알고 스스로 집착에서 벗어나 생과 사를 초월한다. 이 모든 덧없는 구경거리로부터 벗어나 그들은 다만 평화롭고 행복하리라. 죄와 두려움은 사라지고 그들은 마침내 모든 불행을 초월하리라.”

그러고 나서 해체 작업을 주관하는 조장사鳥葬士는 망인의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숙련된 동작으로 조장 터 중앙의 커다란 돌 위에 놓여 있는 시체의 해체 작업을 시작하였다.

조장사는 예리한 칼로 먼저 머리통을 잘라내고 그 다음에는 시체의 등뼈를 위쪽에서부터 아래쪽까지 일자로 그어서 양쪽으로 절개하여 순차적으로 살을 도려내기 시작하였다. 그러고 나서 사지를 절단하여 토막 내서 살과 뼈를 분리하고 큰 망치와 도끼로 잘게 부순다. 이 순서가 끝나면 상체의 앞가슴을 절개해서 내장을 꺼내 잘게 썰고 가슴 근육을 발라낸다. 이어서 얼굴 안면의 살과 뼈를 발라내고 머리통을 망치로 내려쳐서 잘게 부순다. 그리고 새들이 먹기 좋도록 잘게 썰고 부순 인육 덩어리를 티베트인들의 주식인 짬바와 잘 버무려서 산기슭에 있는 조장 터 주변에 골고루 펼쳐 놓는다.

이 풍장은 페르시아 계통의 조로아스터교 일파인 파르시이 교도들의 풍습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인간의 몸은 물, 불, 공기, 흙의 네 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가급적 빨리 이러한 원소들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화장은 시신을 불의 원소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진다. 매장은 시신을 흙의 원소로 되돌리는 것이고, 수장은 물의 원소로 되돌리는 것이며, 풍장은 공기의 원소로 되돌리는 것이다. 풍장의 경우 시신을 쪼아 먹는 큰 새들은 공기의 거주자로 인정된다.

시체의 해체 작업은 거의 5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때쯤이면 인육의 피비린내 나는 냄새가 하늘까지 퍼져 올라가서 새들의 후각을 잔뜩 자극하기 때문에 수백 마리의 대머리 독수리 떼가 조장 터로 몰려들어 경쟁적으로 인육을 집어 삼키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고원의 푸른 하늘 도처에서 계속 날아들고 있었다. “지금 피의 잔치가 있을 거야. 어서들 오라고……. 늦지 말라고……. 날개를 있는 힘껏 저으란 말이야, 날개를 힘껏.” 독수리들은 신이 나서 서로에게 외쳤다. 그러고 나서 새들은 걸신들린 것처럼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해치워 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찌꺼기는 다시 까마귀 떼가 몰려들어 아주 깨끗하게 먹어 치운다.

새들은 포식한 후 식곤증을 떨쳐 버리기 위하여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티베트 고원의 푸른 창공을 추운 줄도 모르고 악취가 풍기는 고약한 트림을 해대면서 유유히 날고 있었다.

라마승이 말했다. “저들은 사람고기라고 하면 환장을 하지요. 도대체 물릴 줄을 모르는 겁니다. 식사 후 잠깐 동안 소화 운동을 하기 위해 저렇게 허공을 빙글 빙글 돌고 있지요. 그러고 나서 다른 조장터로 날아가지요.”

그러나 망인의 가족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 광경을 덤덤한 눈길로 그저 바라볼 뿐이다. 티베트인들에게 천국의 사자使者인 독수리는 인육과 함께 망인의 영혼까지 집어삼켜서 운반하기 때문에 죽음과 환생, 윤회의 신성한 매개체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가족들은 새들이 찌꺼기를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을수록 안심을 한다.

나는 산기슭에서 라마승과 헤어진 후 가파르고 굴곡진 좁은 길을 따라 평지로 겨우 내려왔다. 조장사의 날카로운 칼질에 머리, 가슴, 몸통, 정강이, 허벅지, 발목, 팔 등이 나가 떨어져 바닥에 뒹굴고, 머리를 자를 때에는 골수가 터지는 광경이 눈앞에서 어른거려 계속 헛구역질을 하였다.

그때 바이올린의 선율이,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에서 들은 적이 있었던 ‘끽끽끽 끽끽끽 끽끽끽’하는 짧고 날카로운 고음이 귓속에서 계속 울렸다.

나는 내려오면서 몇 번이나 휘청거리며 발을 헛디딜 뻔하였다. 무릎과 어깻죽지의 관절이 심하게 쑤셨고 통증이 왔다. 그러나 낮은 곳으로 내려올수록 공기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느긋하게 호흡할 수 있었으며, 심장의 박동이 완만해져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체를 안치한 정사각형 관을 따라가면서 울리던 큰 소라로 만든 나팔 소리와 저음의 징 소리가 긴 여음이 되어 여전히 귓가를 맴돌았다. 내려오면서 힐끗 뒤돌아보았더니 그 조장사는 술에 완전히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조장터 부근에서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렇다. 조장은 낯선 사람에게는 몹시 잔인해 보이지만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티베트의 장례의식이었다.

 

브라마푸트라 강이 흐르는 티베트 남부 도시 라쯔에서 덜커덩 거리며 출발한 고물 버스는 매연을 내뿜으며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먼지를 매달고 서쪽으로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다. 중년의 운전기사는 거무스레한 얼굴에 곰보 자국이 나있고 턱수염이 무성하다. 그는 우루무치에서 온 위구르족 출신이었는데 매우 강인하고 온화한 인상이다.

나는 출발하기 하루 전 황금 지붕을 인 조캉 사원에서 황금색 옷을 걸친 채 연꽃 좌대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부처님에게 향을 피우고 기도를 했었다. “저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다만 내 자신의 소리를 들리게 해주소서.”

길가 가로수 밑에 떼 지어 몰려있던 양떼와 염소들은 희뿌연 먼지 속에서 놀라지도 않고 유유히 풀을 뜯어 먹고 있다. 버스가 히말라야 산맥의 아래쪽 계곡으로 들어가면서 길은 점점 험해졌고 빈약한 덤불들이 조금씩 돋아나 있는 풍경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그곳은 길이 끝나는 곳이다. 그러나 공기는 상쾌했고 멀리 히말라야 산맥의 산봉우리에 쌓인 만년설을 바라볼 수 있었다.

흙벽돌로 지은 오두막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에 닿은 것이다. 황혼녘이었다. 마을 앞에는 백양나무 묘목을 줄지어 심어 놓은 개활지가 펼쳐져 있다. 여자와 아이들, 개들이 목청껏 짖어대며 마중을 나왔다. 그러나 이 마을이 안내자도 없이 혼자서 떠나는 순례 길의 출발지이다. 나는 새벽에 출발해서 12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오면서 벌써 지쳤고 배가 몹시 고팠다. 어차피 혼자였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의 인생은 항상 어디론가 떠났다.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눈의 나라인 티베트에서 성스러운 산과 수도자들을 위한 수도원이나 곰파 (사원)를 순례하고 그 과정에서 사미승들이 따라주는 차를 얻어 마시며 큰 스님들을 얼굴만이라도 잠시 뵙고 몇 마디 진언을 들으러 순례하러 온 순례 여행자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목적지는 명확치 않았다. 나는 그 순례길의 의미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려고 애썼지만 말이다. (티베트인들이 삼발라라고 부르는 샹그릴라 ShangriLa ― 기쁨과 평화가 있는 곳, 아무도 늙지 않고, 모든 사람이 조화롭게 살고 있는, 히말라야 산맥과 티베트 고원 중간에 있다는 숨겨진 왕국을 찾아가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혹은 티베트인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하였고,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에서 모두 성스러운 산으로 섬기며,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래서 일 년 내내 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바로 그 성산 카일라스 산에 오르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무도 안 올라가는 신성한 산으로 올라가고 싶었던 것이다.)

다만 자신의 체력과 의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서 남 티베트의 인더스 강의 발원지에 있는 눈 덮인 고봉을 올라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해탈의 경지가 아니라 단지 작은 깨달음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그 순례 길에서 신들이 어떤 계시를, 또는 암시를 내려주길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집, 집착과 증오심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벗어나서 자아를 깨닫고 자기 안의 신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데다 티베트 사람처럼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땟국이 줄줄 흐르는 티베트 전통 복장을 하고 다녔다. 그러나 색이 바라고 실컷 떼가 묻고 몇 군데 구멍까지 난 배낭 속에는 작은 텐트와 침낭, 티베트 지도, 약간의 비상용 식량이 들어있을 뿐이다. 식량이 떨어지면 농가에서 탁발을 할 생각이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즐길 생각은 없었다. 오직 간소한 식사만 할 생각이었다.

첫 날은 참으로 상쾌한 가을 날씨였다. 발걸음은 마냥 가볍다. 아무리 걸어도 피곤할 줄을 몰랐다. 광활한 고원 지대를 걸으면 폐쇄 공포증에 걸린 것 같은 가슴을 조여드는 답답한 느낌이 사라졌다. 나는 계속 나아갔다. 멀리 농부들이 추수를 하는 노랗게 물든 들녘이 보였다.

까마귀들이 그 이상한 목이 졸린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들판으로 날아왔다. 그 까마귀들은 높은 공중에서 호를 그리며 선회하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훌쩍 나타났다가 느닷없이 멀리 날아가 버렸다. 나는 까마귀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허공을 멀리 응시했다.

그러나 일 년 중에서 낮이 가장 짧은 계절이어서 해는 금방 서산 너머로 사라졌다. 그날 밤에는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야행지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끓여 마셨다. 청명한 밤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상현달이 떠올라 은은한 빛을 발하자 계곡은 푸른색으로 물들어 갔고 그때 적막감이 밀려왔다. 나는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나뭇가지들을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벌겋게 타오른 잉걸불에서 가끔 불꽃이 일어났다.

다음날 아침에는 안개가 짙게 끼어 자욱하였다. 나는 서둘렀다. 계속 걸어서 고개에 다다르자 성스러운 종교적 유물이나 경전, 또는 위대한 고승의 유품과 뼈를 안치한 불탑인 쵸르텐이 나타났고 티베트 불교의 경전이 인쇄되어 있는 만국기처럼 생긴 타르쵸가 바람에 나부꼈다. 그리고 깊은 협곡을 빠르게 흘러내리는 강에 도착하였고 위태롭게 걸쳐있는 낡은 나무다리를 건넜다. 햇빛이 안개를 걷어내고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골짜기가 갑자기 가팔라졌다. 기묘한 모양의 큰 바위들의 전면에는 빈틈없이 부처와 신, 보살, 고승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한결같이 눈을 반쯤 감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 며칠째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었다. 끝없이 걸었다. 발은 퉁퉁 부었고 등에는 통증이 왔다. 다리는 천근만근 무겁고 배낭은 어깨를 무섭게 짓누른다. 하루 종일 걸으면서 녹초가 되어버렸다. 얼굴은 햇볕에 탔고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혔다가 두터운 굳은살로 변했다. 그러나 그 성산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자신을 혹사시켜서 기진맥진하게 만들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음식을 먹은 지가 만 하루가 지났다. 그러나 허기가 지고 극도의 피로감이 전신을 엄습해 와서 더 이상은 도저히 걸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순간 그가 걸었던 사막들 ― 메마른 모래밭, 그보다 더 말라버린 자갈밭, 작렬하는 소금 평원을 지나 바위투성이 사막과 협곡, 질식시킬 듯한 먼지바람이 불거나, 바람 한 점 없이 숨 막히는 날씨가 계속되는 다나킬 사막이 생각났다.

이제는 푹 쉬고 음식을 먹고, 얼음장 같은 차디찬 물로 목을 축이고 잠을 충분히 자야할 것이다.

하지만 외따로 멀리 떨어져 있는 그곳 짙은 숲 속에는 보이지 않는 육식 동물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회색 늑대이거나 히말라야 눈표범이 먹이를 찾아 내려온 것일 수도 있다. 밤이 깊어지자 숲속을 어슬렁거리는 짐승의 조심스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공포의 어둠 속에서는 시시각각 청각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그 짐승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의외로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느 순간 덮칠지도 몰랐다. 지금 잔뜩 배가 고파서 본능적으로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밤이 더욱 깊어가고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다. 그러나 두려워했던 순간이 닥친 것이다. 눈부시게 하얀색 바탕에 검은 얼룩이 온몸에 빽빽한 늙은 눈표범이었다. 그것이 통통한 긴 꼬리를 흔들고 낮고 묵직하게 으르렁 거리며 나를 향해서 다가왔다. 그 절제된 으릉거림이란.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엉거주춤 일어서서 얼굴과 목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 자세를 취했다. 다리에 쥐가 난 듯 저리고 온몸이 극심한 고통과 긴장으로 경직되어 갔다. 놈은 어느새 공격하기 위해 자세를 취했고 그 순간 나는 날카로운 돌을 집어 들었다. 놈에게 돌칼을 휘두르면서 맹렬하게 위협을 가했다. 그러나 목구멍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놈은 계속 사력을 다해 나의 몸 여기저기를 찢고 할퀴고 흔들고 물어뜯었다. 다음 순간 나를 향해 껑충 뛰어오른 놈은 나를 땅바닥에 넘어뜨리고 앞발로 가슴을 짓누르며 눈을 번득이다가 목을 물려는 찰나였다. 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돌칼로 놈의 오른쪽 눈을 내리쳤다. 그건 치명타였던 모양이다. 놈은 움찔 놀라서 날카로운 흰 발톱으로 가슴과 배의 피부와 근육을 찢고 나서 물러났다. 그리고 덤불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놈과의 목숨을 건 싸움에서 이겼던 것일까. 그러나 거의 탈진해서 전신에 힘이 빠졌고 할퀸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흐르며 온몸이 화끈 거렸다.

참으로 상쾌한 아침이었다. 나는 간밤에 긴 꿈을 꾼 것을 기억했다.

나는 계속 높은 언덕 지대를 걸어가면서 왼쪽으로 히말라야 산맥의 정수리에 만년설을 이고 있는 웅장한 산봉우리들을, 오른쪽으로는 황량한 티베트 고원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역사와 전설로 가득 차있는 순례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꺼려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끔 티베트 밀교의 비의를 터득하여 높은 경지에 다다른 고승들과 라마승, 성지순례를 하는 탁발 순례자들, 가족 단위 순례 객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바위투성이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그곳은 협곡으로 길이 좁아지면서 나무가 울창했다. 가을 날씨는 청명했고 아직은 춥지 않았다.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그러나 계곡 속 깊은 강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였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옷을 홀라당 벗은 후 작은 연못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 몸을 목덜미까지 완전히 담근 채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상쾌한 물의 느낌과 튀겨 오르는 물방울 때문에 기분은 한껏 달아올랐다. 물가로 나오자 따사로운 가을 햇볕이 몸을 데워 줬다.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밤이면 아주 얼큰하게 술을 마셨다. 내가 가끔 겪게 되는 가슴을 쥐어 짜는 듯한 통증과 식도염에 대해 내과의사는 그게 과음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절대로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고 엄명을 내렸지만, 나의 인생에서 오랫동안 삶의 동반자였던 술을 어느 순간인들 포기할 수 있겠는가. 술은 삶에서 고통의 순간마다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일으켜 세워 앞으로 나가게 하는 목발 역할을 해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파리 유학시절, 녹색의 악마인 압생트 또는 가짜 압생트인 페르노를 미쳐버리기 위해서 그렇게도 많이 마시면서도, 또다시 몽롱한 기분에 취하기 위해서,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한동안 피웠던 마리화나는 약간의 금단 증세에도 불구하고 그 후 끊었다. 정말? 또다시 피울 기회가 온다면 저항할 수 있을까?)

나는 술을 한 모금 입에 가득 넣고서 입 안이 얼얼해질 때까지 입 안에서 술을 굴렸다. 그렇게 몇 잔을 연거푸 마셨다. 한 병을 다 비웠다. 그 생명수 같은 독한 고량주가 목구멍을 타고 위장 속으로 계속 흘러 내려갔다.

검은 밤을 배경으로 은빛 별들이, 그렇게 수많은 별들이 지평선 끝에서 끝까지 빛나고 있다. 그토록 많은 별을 본 것은 처음인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새 모닥불도 다 타서 수그러들고 있다. 나는 재채기를 하고, 하품을 하고, 자주 방귀를 뀌고, 딸꾹질을 하였다. 텐트 안에서 울퉁불퉁한 땅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면 어느새 한없는 해방감과 편안함이 몰려왔다. 그것은 나를 괴롭히던 불안감을 거둬갔다. 나는 행복했으며 편안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도 어김없이 태양이 솟아올랐다. 막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눈을 떠보니 팔과 다리가 뻣뻣했으나 다시 걸어야만 한다. 그러나 고지대로 힘겹게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풍경은 그 모습이 변해갔다. 작은 새들은 저지대 들판으로 날아가 버렸고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도 점점 사라져버렸다. 고도가 점점 올라갈수록 나무들은 발육이 정지되어 관목으로 변해서는 척박한 산기슭에 달라붙어 난쟁이가 되었다. 그나마 조금 더 올라가면 살아남지 못했다. 산비탈의 바위에는 엷은 색 이끼가 껴있다. 나는 가파른 경사면 때문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짧은 가시가 돋아나 있는 나뭇가지와 울퉁불퉁한 돌들을 붙잡아야만 했다.

나는 여전히 걷고 있다. 언제든지 걷고 있다.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심장의 박동이 두근두근 뛴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려서 멍해지고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얼어붙은 몸이 조금씩 풀리며 문득 나의 안에서 무언가가 열린다. 그때 누군가 너무나도 생생하고 강렬한 목소리로 나를 간절히 부른다. 하지만 내가 뒤돌아보아도 아무도 없다.

그녀가 그립다. 눈물이 날만큼 애타게 그립다.

(그녀만 보면 안절부절 못하고 전전긍긍했던) 신비한 여자. 탄탄한 엉덩이를 가졌고 그 때문에 내가 육체적으로 갈망했던 여자. ……그녀는 타락한 자이며 거룩한 자이다. 그녀는 아내이고 처녀이다. 그녀는 어머니이며 딸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예쁜 얼굴이나 균형 잡힌 페르소나가 가물가물하여 온전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가 실제 존재하는 실존 인물이기는 한 것인가, 다만 나의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맴도는 가상 인물에, 여기 세상에 결코 있지 않은 존재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나는 계속 걸었다. 나는 호모 에렉투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험한 바위투성이 길가에서 최근에 세운 듯한, ‘1994년 겨울 이 순례길에서 시신으로 발견 된 불교도인 두 사람의 프랑스 순례자 루이 앙헬과 테레즈 오브르니를 추모하며’라고 새겨진 비목碑木을 발견했다. 그들은 부부 사이 또는 연인 사이였을까. 아니면 길에서 우연히 만난 단순한 순례자들이었으나 운명적으로 함께 천국으로 올라간 사람들. 나는 합장을 했고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남쪽 바다에서 죽은 아버지와 남동생을 생각했다. 폭풍우. 악몽의 바다. 벌써 한 세대만큼이나 오래 전의 일이고 동생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갔지만 내가 늘상 느끼는 원죄의식 같은 죄 의식은 내 의식 속에서 너무나 뚜렷했다. 내 쌍둥이 동생은 진즉 죽었는데 나는 어떻게 살아남아 잘 살고 있지? 나 혼자서 살아남아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대머리 독수리들이 포효하는 바람을 등에 업고 허공을 날고 있었다. 그것들은 바람의 흐름을 타고 거대한 날개를 편 채 활공을 하였다. 나는 독수리들의 비상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지금 한껏 포만감을 느끼며 유유자적하고 있다. 그러나 또 다시 배가 터지도록 인육을 먹기 위해서 다른 조장터로 이동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인육이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니까.

대머리 독수리는 원래 인육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것들은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매일 그렇게도 파먹었다. (귀스타브 모로의 그림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는 제우스가 보낸 큰 독수리’를 보면 제우스가 보낸 그 독수리는 분명히 대머리 독수리이다.)

티베트 고원의 계곡에 심원한 침묵이 깔렸다. 그 침묵이 나의 영혼을 흔들었다. 나의 모든 감정이 고갈되고 가슴이 텅 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두려웠다. 자신은 지금 어떤 전환점에 이른 것이 아닐까. 나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혼자임을, 철저히 고립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박상길》상무는 나이가 40대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교묘하게 상대방의 기분을 잡치게 하는 기술이 있다. 그의 눈은 언제나 쓴웃음을 짓고 있으므로 웃는 얼굴조차 불쾌한 느낌을 준다. 나는 약간 쉰 듯한 목소리로 웅얼대며 말한다. 특히 그만 만나면 냉소적인 말투로 모욕을 주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그의 말에는 항상 날이 서있다.

박 상무가 몇 년 동안 그의 직속 상사일 때가 있었다. 회사 초년병 시절이었다. 박 상무는 그 당시 지독한 상사였으니까. 그만 만나면 약간의 피해의식과 함께 불쾌감과 혐오감, 두려움을 느꼈다.

박 상무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고집을 부려도 한계가 있어야 할 거야. 왜 그러는 거야? 회사 망칠 일 있어? 그 건물은 건축주의 소유이지, 당신 게 아니란 말이지. 당연히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그대로…… 충실하게 따라야 하지 않겠어. 그게 건축주의 의뢰를 받아서 설계도를 작성하는 건축설계사의 의무란 말이지. 그런데 당신은 무슨 똥 뱃장으로 고집을 부리는 거야. 내가 그걸 따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해? 당신이 고집을 부리면 건축주는 다른 사무소로 가버릴 거야. 대한민국에 건축사무소가 몇 천 개나 있는 거 잘 알고 있겠지. 넘치고 넘쳐나지. 요즈음 문 닫는 사무소가 수두룩하지. 이 업계의 우울한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을 텐데…… 이러다간 우리 회사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변화에 약삭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생존경쟁에서 탈락하는 거지.

창조적 상상력 좋아하시네. 당신의 내면은 허세와 허영심 덩어리로 가득 차 있겠지. 그렇지 않은가? 위선적인 감상주의자.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아. 쓸데없이 명성에 집착하는 거 말이야. 그러니까 우물 안 개구리인 거야.

당신이 건축미에 집착하는 척하고 있지만 말이야, 마음속 깊은 곳에는 말할 수 없이 끔찍한 고통, 절망감이 자리 잡고 있겠지. 그 어두운 진실을 회피하고 외면하기 위해서 퇴폐주의 작가들처럼 탐미주의자로 행동하는 거지. 내가 충고를 하나 해줄까.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으려면 탐미주의자가 아니라 어서 바삐 자식을 낳아야만 하지. 그러면 되는 거야. 딸이건 사내아이건 가릴 것 없이 자식 이상은 없는 거야. 그런데, 마누라와 사이는 괜찮은 거야? 잘 하고 있느냐고? 어때?”

“선배님…… 옳으신 말씀입니다. 마누라 얘기는 빼고 말입니다. 저는 바깥일을 도대체 아는 게 없습니다. 이래서야……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겠죠. 그만두라고 하면 어쩔 수 없죠.”

“오해하지는 말게나. 그만두고 그런 문제가 아니니까. 김 상무가 설계 분야에서 독보적 존재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지. 일찍부터…… 그러니까 입사할 때부터 알아봤지. 그래서 심한 질투심을 느끼게 된 거지. 나는 그 좁은 제도실이 일찍부터 싫증이 났어. 그래서 영업 파트로 옮겼거든. 이쪽은 전쟁이라고. 별 짓을 다해야…… 그렇다고. 그걸 알라고. 영업능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독립은 어림도 없어. 딱 굶어죽기 십상이야.”

“잘 알겠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며칠 후 대표이사가 나를 불렀다.

“요즈음 힘들지……. 내가 그걸 모르겠어. 그런데 우리 회사도 재정 상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 큰 건이건 작은 건이건 가리지 않고 한 건 따려고 경쟁이 심해도 너무 심하지. 이건 건축 철학이거나 미학의 문제이고 동시에 비즈니스 문제이기도 하지. 김 상무가 알아야 할 게 있어. 이건 사막의 오아시스에 지을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건설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건축은 일종의 예술이라는 김 상무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 거야. 그것도 유럽적 전통에 따라 예술의 중요도에 따라 분류하자면 대예술인 거지. 두말할 것도 없이 인도의 타지마할처럼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면 누구나 온몸이 저릴 만큼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거든. 그리고 김 상무의 건축학적 심미안은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겠지. 그걸 이 업계에서 누가 모르겠어. 김 상무가 설계한 한남동의 미술관을 보면 누구나 감탄을 할 수밖에 없어.

그러나 건축주는 거액을 투자해서 이 복합 건축물을 짓고자 10년을 넘게 준비를 하였고, 그걸 최고의 건축가인 김 상무한테 의뢰한 거란 말이지. 그에게는 건축물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사업적 측면이 무시할 수 없는 거지. 그러니까 건물의 쓰임새와 관련해서 요구할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란…… 뭐니 뭐니 해도 첫 번째가 바로 건축주 아니겠어. 우린 그의 모든 타당한 요구 조건을 제대로 수용해야만 하는 거지. 기둥과 들보의 설치와 위치, 공간 배치에 관해서 건축주가 요구한 사항은…… 그건 부당한 요구가 아니기 때문이지. 요약하자면 공간을 더 넓혀주라는 거 아닌가.

그리고 또 한 건의 스튜디오 설계 건이 딸려 있는 거야. 그건 그 여자의 취향에 맞춰주면 되는 거지.

잘 알다시피…… 그래…… 그 회사는 부동산 개발이 전문이니까 우리의 오랜 거래처야.

그런데 그쪽 회사는 복잡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야. 등기한 대표이사가 전처와 이혼하면서 그 조건으로 비밀리에 스튜디오를 지어주기로 약속했어. 경복궁 옆 사간동에 말이야. 그 필요한 자금을 이 건물의 공사대금에서 일부 빼내서 전용한다는 거지. 절대 비밀이지. …… 이 건에 관한 한 박 상무도 모르는 사실이야. 그러나 그건 김 상무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오직 설계도에만 집중하라고.

그런데 그 실패한 화가는 김 상무가 그 스튜디오 건물 역시 설계하는 것을 요구했어. 그래서 김 상무는 그쪽 대지에 맞추어서 7층 건물을 설계한 거지. 사진 스튜디오와 사진 박물관, 사진 작품 전시실 등 복합문화공간을 설계한 거야. 어떻게 일이 진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의 마음이 변한 모양이야. 여자의 변덕 때문에 갑자기 변한 건지…… 도장을 찍고 나니까 기본 설계가 마음에 안 든 것인지 알 수 없네만. 그래도 말일세.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몇 년 간 그림 공부를 했다고 했으니 김 상무와는 서로 통하는 게 있지 않겠나.

하여간에 지금 김 상무의 머리가 복잡할 거야. 아무 걱정 말고 다녀와. 충분히 휴가를 줄 테니까. 티베트에서 머리를 식히고 오란 말이야. 그리고 그때쯤 머리를 비우고 오면…….”

그런 거야. 그렇고말고. 박 상무도 대표이사도 당연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설계도의 수정은 불가능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 건축물의 기본적인 설계 방향은 오직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 건물들의 설계자는 김규현으로 명시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기본 설계도를 작성하면서 세세한 부분까지 그들의 승인을 이미 받았고 공사 과정에서 더 이상의 설계 변경은 없는 것으로 계약을 체결했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이번 여행 중에는 그 설계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국을 떠날 때부터 다짐했었다. 이미 끝난 것이다. 끝난 일을 더 이상 생각하면 뭐 하겠는가? 회사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무책임한 짓이라고 비난을 쏟아낼 것인가? 나는 회사에서 수석 설계사로서 독립적인 지위를 부여 받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설계도에 회사 이름과 함께 내 이름을 붙일 수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공모전에 참가할 때에도 회사 이름과 함께 내 이름이 들어가지 않았는가. 나는 추락할 것인가? 아마,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떠나면 그만 아니겠는가?

나는 어릴 적 바닷가에 살던 때부터 오랫동안 배의 선장이 되고 싶었다. 바다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수채화 물감으로 바다를 실컷 그리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게 화가로서 재능이 있었는지도, 화가가 되려는 강력한 의지가 있었는지도, 가난한 화가가 되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건축가가 되었다. 이것도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어차피 둘 다 종이 위에 그리는 예술이니까. 하지만 우리 다 같이 생각해보자. 누구인들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 것인가. 자신이 너무 꿈꾸고 소망했던 것을 성취하는. 드물게 몇 사람쯤 있을 것이다. 왜 없겠는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것이 인간의 삶이다.

 

끝없이 펼쳐진 티베트 구석에 꼭꼭 숨어있는 (중국 관청에서 출간하는 ‘티베트 불교사원 안내서’에도 나오지 않는) 백모파의 사원을 거치고, 인간의 시선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는 만년설로 뒤덮여 있는 원시의 성산까지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 나는 마지막 고개를 지나서 산등성이에 이르렀다. 그곳을 지나갔던 도보 순례자들이 쌓아 놓은 재단들이 눈에 띄고 티베트 고개마다 무수히 걸려있는 타르쵸가 강력한 바람에 찢어질 듯이 나부끼고 있다.

이제 가을이 깊어지면서 날씨는 추워지고 가혹한 조건으로 변모하였다. 높이 올라갈수록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할퀴었다. 그리고 심한 눈보라가 몰아쳤다. 나는 그때 굶주림과 추위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건 목숨을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었다. 말할 수 없는 공포감과 두려움을 이겨내야만 했다. 여기서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결심하였다. 미끄러운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그대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었다. 또는 그 고도에서는 고산병의 일종인 폐에 물이 차는 폐수종을 앓게 될 것이고, 그때는 그 즉시 환자를 저지대로 옮기지 않으면 목숨을 앗길 수도 있었다.

나는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가 아이젠과 피켈로 무장을 하고 출발했다. 아침 안개가 갰다.

밤에 잠깐 내린 눈이 부실만큼 새하얀 눈을 정수리에 얹은 성산의 정상이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는 깎아지는 듯한 수직 암벽이 가로막고 서있다. 그 암벽을 우회해야할 것이다. 올라가는 길은 험난했고 너무 좁았다. 눈과 살얼음으로 덮여 있다. 높이 올라갈수록 기온은 뚝뚝 떨어지고 산소가 희박해졌다. 고도는 5,800미터에 이른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그의 얼굴을 때리고 지나갔다. 몸이 얼기 시작했다. 하늘의 구름이 낮게 떠있어서 손으로 잡힐 듯 하였다.

죽음을 부르는 산인가, 궁극의 시험 무대인가.

나는 웅장한 산의 정상에 서서 산 아래를 굽어 내려다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벌레처럼 하찮은 존재인지를 깨달았다. 나는 모래 알갱이처럼 작고 미미하고 연약하다. 이 세상에 더불어 사는 숱한 존재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인간 존재의 본질은 하찮고 무의미한 것이다. 그걸 왜 잊고 사는가. 그걸 인정하는데 왜 용기까지 필요한 것일까.

나는 신들께 겸손하게 경의를 표했다. 신들과 침묵의 대화를 하였다. 다만 신들이 말하고 나는 들었을 뿐이다.

 

나는 이제 급경사면을 따라 하산을 해야 한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모든 육체적 에너지와 정신적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 되었으므로 몸의 피로는 이미 한계를 초월한 상태였다. 눈 위에 쓰러져서 그냥 잠들고 싶다. 나는 꽁꽁 얼어붙은 손가락을 겨우 꼼지락거려서 목에 걸고 있던 부적인 구리로 만든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집중하려고 마지막 안간힘을 다하였다. 몹시 미끄럽고 구불구불 꺾어진 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내가 베이스캠프로 삼았던 산 중턱이 아직도 아득히 저 멀리에 있었다. 그런데 삐끗하면서 발을 그만 헛디뎠고 발밑이 무너져 내리며 돌무더기와 함께 속수무책으로 미끄러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살얼음이 덮여 있던 무른 땅은 계속 무너져 내렸다.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비명을 지르며 마침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미끄러져 내리다 계곡으로 곤두박질을 하였다.

나는 그때 순간적으로 자신이 죽을 거라고, 그리고 하늘을 유유히 나는 독수리들을 생각했다.

내가 겨우 눈을 떴을 때는 문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해 보이는 오두막 흙집 안이었다. 야크 기름으로 타는 호롱불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그을음으로 낮은 천장과 벽들이 온통 새까맣다. 찌든 냄비와 식기들이 아무렇게나 나뒹구르는 흙바닥에 나는 누워있었다. 그러나 항아리에서 잉걸불이 이글이글 타고 있어서 따뜻했다. 여전히 온몸의 근육과 관절이 지독하게 쑤셨지만 뼛속 깊이 얼어붙어 있던 몸은 조금씩 녹기 시작했고 팔다리에 피가 돌았다. 이제 상처에서 출혈이 멈추었고 서서히 아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격렬하게 기침을 하였고 더러운 가래 덩어리를 뱉어내었다. 가끔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헛소리를 하였다. 나는 다시 죽은듯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다.

할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생명의 은인인 그 인자한 할머니는 여러 가지 약초들로 즙을 만들어 멍든 상처에 발라 주었고 몇 년 동안이나 거의 십년동안이 행주 겸 걸레로 사용했을 때 묻은 소매로 탕약을 들고 그걸 마시도록 강요했다.

머리카락은 다 희어졌고 얼굴이 주름투성이어서 웃을 때는 주름에 덮여서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이름은 ‘차호웨’이다.

할머니는 귀한 약초를 캐러 산에 올랐다가 쓰러져 죽어가는 나를 발견했고 마을사람들이 떠메고 내려왔던 것이다. 열흘 전의 일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죽은 것으로 알고 한동안 포기했고 라마승을 불러 주문을 외우게 했고 조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한동안 죽었었다. 숨이 거의 끊어졌거나 의식이 빠져 나간 것이다. 그것은 비참하고 어두컴컴한 죽음과 환생 사이, 바르도의 세계 또는 중음中陰의 세계였다.

라마승이 주문을 외웠다.

“아, 고귀하게 태어난 그대여, 그대가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순간이 다가왔다. 그대의 호흡이 멎으려 하고 있다. 그대는 한때 그대의 영적 스승으로부터 존재의 근원에서 비치는 투명한 빛에 대해 배웠을 것이다. 이제 그대는 사후 세계의 첫 번째 단계에서 그 근원의 빛을 체험하려 하고 있다.

아,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 이제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다가왔다. 그대는 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하지만 그대만이 유일하게 떠나는 자는 아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이 세상의 삶에 애착을 갖거나 집착하지 말라. 그대가 마음이 약해져서 이 세상에 남겨 둔 것에 아무리 집착할지라도 그대는 이제 여기에 머물 힘을 잃었다. 그대가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대는 이 윤회계의 수레바퀴 아래를 헤매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 그러니 마음이 약해지지 말라. 다만 진리와, 진리를 깨달은 자와, 그를 따르는 구도자들을 기억하라.”

나는 그때 환생할 수 있었을까. 그곳은 티베트였으니까. 그런데 카르마 (업)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과응보의 법칙이다. 나는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쥐나 개구리 또는 벌레 같은 하등 동물로 환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땅에 다시 남자로 태어나서 다시 건축가가 되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동물로 환생하였다면 나는 아프리카를 사랑했으니까 사자나 코끼리 같은 존엄한 동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조금씩 회복 되었다. 무엇보다도 돌무더기와 함께 아래쪽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허리 쪽을 심하게 다쳤기 때문에 하반신 마비가 올 줄 알고 무척 걱정했는데 지금 보니 그쪽은 멀쩡했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지만 건강이 조금씩 회복 되면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불이 밝혀진 집에서 간절히 기도하려 했지만 마음이 흔쾌히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나를 위해서 끊임없이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를 하였다. 그 덕분에 내가 살아났는지도 모르겠다.

라마승이 매일 그 흙집으로 찾아왔다. 이제는 만트라를 외며 빠른 회복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라마승이 말했다. “이제 보니까 부처님이 돌봐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그대 몸은 회복된 것이 아니라 일시 죽었다가 부활한 것입니다. 그때 딴 세상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승사자가 왔다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돼서 돌아간 것이지요. 그대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겠죠. 그러니까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그리고 자식을 낳으세요. 많이. 열두 명쯤 낳으세요.”

 

차호웨 할머니가 마른 나무토막을 얹고 바람을 불어넣자 잠든 불꽃이 다시 일어났다. 불꽃이 활활 타오르면서 나의 얼굴이 붉게 타오르고 의식이 차츰 명료해지기 시작했다.

불은 생명이고 구원이다. 불은 파괴하면서 정화하고 다시 태어나게 한다. …… 모든 것이 불타고 있느니라. 모든 형태와 색채들, 모든 감각, 좋거나 나쁘거나 혹은 그 어느 쪽도 아닌 그 무엇이든 불타고 있느니라. 그래서 고통과 탐욕, 모든 것, 좋거나 나쁘거나 혹은 그 어느 쪽도 아닌 감각에서 벗어난다.

나는 남겨두고 온 현실, 도망쳐온 현실과 진지하게 대면해야 할 것이다. 내가 무얼, 누굴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때문에 불타오르는 증오심을 품고 있는 것일까. 어떤 사적인 대상이나 감정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갑자기 나는 강렬한 마음의 동요에 사로잡혀 있고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나는, 아, 죽음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꾸물거리는 자이다. 그때 독수리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지 않았는가. 나는 이번 생을 쓸모없는 일에 모두 바치고 귀중한 기회를 놓쳐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만일 내가 이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삶의 목적은 잘못된 것이리라.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진리를 깨닫는 것이니 지금이라도 신성한 진리에 나 자신을 바쳐야 하리라.

이제 몸은 거의 완쾌되었다. 곧 귀국할 것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났다. 겨울 태양이 빛나고 있다.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고 흙담집의 문을 열자 차갑지만 부드러운 바람이 들어왔는데 주위에서 온통 신선한 냄새가 진동했다.

돌아가면 서랍에 넣어둔 사직서를 찢어서 휴지통에 버려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건축물의 변경해야 할 설계도를 기한 내에 완성해야 하리라.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멋진 설계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설계실이 그립다, 그리워. 거긴 이반데니소비치의 강제수용소인거지. 일이 완벽하게 끝날 때마다 큰 기쁨을 느끼니까.

지금쯤 건물의 외벽을 온통 뒤덮고 있는 담쟁이 넝쿨은 낙엽이 되어 다 떨어졌을 것이다.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열면 햇빛과 바람과 도시의 소음이 안으로 몰려들어 오겠지. 난 그때 씁쓸한 미소를 지을 것인가? 눈가에는 서글픔 때문에 이슬이 맺힐 것인가?

나는 고객의 요구 사항을 경청한다. 건축주의 그것은 건물의 주제의식과 결부되어 있으니까. 나는 까다로운 고객에게는 설계도 하나하나 미세한 사항까지 직접 확인하도록 하고 서명을 요구했다. 그녀는 실패한 화가이고 조각가라고 했지만 그런대로 예술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아직도 낭만적인 환상을 품고 사는 여자였다.

나는 여자들과 특히 절묘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들과 대화를 하게 되면 늘 심리적인 거리감과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끝까지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자신을 위장하고 그 때문에 몹시 긴장해야 했다. 어서 빨리 이야기가 끝나기를 바랐다. 어떻게 해서든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무장 해제시켰다. 쾌활하고 솔직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침착하고 자신감에 찬 태도를 가장했지만 그녀의 우울을 숨길 수는 없었다. 나는 그때 그녀를 다시 만나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말했다.

“저를 무척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스튜디오 건물은 처음이어서 그 목적에 맞게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부었거든요.”

그녀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알고 있어요. 지나치게 과격하지도 않고…… 과장도 없었지요. 엄격한 단순성이 완벽하게 구현되었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린 기본 설계도에 합의하고 도장을 찍었지요. 그러나 마음이 바뀌었어요. 변덕스러운 여자라고 흉을 봐도 할 수 없죠.

전 불행한 과거를 잊기 위해서 사진에 몰두했는데…… 사진은 아니었어요. 사진은 찰나적이에요. 오직 빛의 예술이죠. 깊이가 없고 평면적이죠. 질감을 느낄 수 없으니 생명력이 없어요. 가지고 있던 수만 장의 사진을 전부 깡그리 태워버렸죠.

그래서 그림과 조각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작정했지요. 전 그림을 그릴 거예요. 형태와 구도는 상관없어요. 오직 깊이예요. 깊이를 살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붓질을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반복과 중복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가 그리고 싶은 걸…… 내가 원하는 걸…… 그릴 거예요.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거죠. 그러니까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 잔재주를 부리는 과시주의자가 되고 싶지는 않네요. 다른 사람의 평가는 필요 없어요. 왜? 타인을 의식해야죠? 나만의 그림을 그릴 거예요. 다시 말하면 비평가들이란 입만 살아있다는 거죠.”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정말입니다. 이 건물은 지하와 1층은 화랑이고 2층은 화실이 되어야 하고 3층은 큰 서재가 딸린 도서실이 되어야 하고 4층은 빈 공간으로 남겨 두세요. 제가 제멋대로 꾸미고 살 거예요.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서는 안 되죠. 그렇게 설계를 변경해주세요.”

“5층에서 7층까지는?”

“그 이상은 필요 없어요. 4층이면 충분해요. 예술가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게…… 자존심이 아니라 예술가의 고결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전 언제나 확신이 안 서지요. 어디쯤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항상 불안합니다. 하지만 일이란 끝이 있어야 합니다. 끝장을 봐야 해요. 저에게는 기본 설계가 그것이죠.”

“당신의 건물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서 빨리 만나보고 싶었답니다. 당신이라는 건축가는 자신의 인생과 일에 대해서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일 자체를 미친 듯이 추구하더군요. 돈이나 명성에는 초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게 자기 기만이고 위선인지도 모르죠.

어쨌거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지요. 심한 자괴감이 들더군요.”

“벌써 눈치 채셨군요. 전 위선자일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돈이라면 환장하거든요.”

“그렇다고 해야겠죠. 누가 돈을 싫어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변경된 설계도에 대해선 추가비용을 당연히 지불할 것입니다.”

“뭔가…… 약간의 오해가…… 예술에 있어서는 비용 문제가 아니지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까요?”

“다시 말씀드리지요…… 그렇다니까요. 이 미술관은 실제는 저의 집이에요. 집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동굴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이혼 조건으로 이것뿐이었어요. 건축가는 집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거예요. 모든 공간과 구석구석이 나를 위해서 설계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죠. 나의 마음과 몸에 딱 알맞게. 건물에는 건축주의 생각과 감정을 형상화하는 것이 필요하죠.

물론 전시실은 화이트큐브가 되어야 하겠죠. 오랜 전통이 그러하니까요. 외벽은 옅은 회색에서 검은색 벽돌로 바꿔주세요. 동굴은 컴컴하니까요. 특히 내벽의 색상과 질감은 나의 피부 감각에 맞추어야 되겠지요. 피부는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일종의 포장지는 아니지요. 나의 육체와 세상을 분리하는 단순한 경계선이라고 할 수도 없죠. 그건 육체와 영혼을 감싸서 보호하는 방어막이에요. 그러므로 피부와 벽면이 서로 맞닿고 부딪힐 때 좋은 감정을 느껴야 하지요. 낯설고 불쾌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러니까 내 몸을 여기저기 구석구석 훤히 알고 있어야만 하는 거예요. 나를 마음대로 하세요. 마구 주무르라고요. 난 상관없어요. 오히려 그걸 기대하고 있어요.”

나는 그때 미묘한 또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천천히 말했었다.

“너무 위험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전 여자의 육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름다우신데 유감입니다. 말씀드리긴 곤란하지만 정신적으로 저만의 어떤 증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심한 불면증이고 불감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무식한 남편을 지독히 싫어했으니까요. 그 남자는 일찍부터 다른 젊은 여자한테 갔지요.”

“그건 건축과는 관계없는 일이네요. 그러니까 계약대로 할 겁니다. 기본 설계는 변경되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만약의 경우…… 제가 손을 떼야 하겠지요.”

“당신의 설계가 필요하죠. 건축사는 널려 있어요. 돈밖에 모르는 속 빈 강정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반드시 당신이어야 합니다. 당신은 건축에 미친 사람이 아닌가요? 소문이 그렇게 났던데…… 그게 필요하지요.”

“전 그저 평범한 건축가예요.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소문 때문만은 아니에요.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진짜 자신의 집을 짓고 싶거든요. 더 이상은 잘 모르겠어요. 묻지 말아 주세요.”

그러나 나는 어리석었다. 표면으로 나타나지 않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닌, 뛰어난 건축적 예술 감각을 지닌 그녀의 요구대로 설계를 변경한들 어떻단 말인가.

그녀는 버림받고 깊은 상처를 입었지 않은가.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지 않았는가.

그림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화가에게도 과학자 못지않은 실험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뭘 형상화해서 표현한다는 게 너무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옛날처럼 풍경이나 인물을 그리는 시대가 아니라고 했다. 동양화 영역인 산과 강, 달, 나무, 매화, 난초, 새, 항아리 등 한국적 모티프의 구상화 또는 반추상화 역시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그런 그림은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그럴 바에야 사진을 찍는 게 낫다고 했다. 그녀는 한때 그림을 보면 사진인지 그림인지 모를 정도로 극명하게 사실적이었던 하이퍼리얼리즘에 경도된 적도 있었지만 거기서 빠져 나왔단다. 시대의 부조리와 불편한 사회상을 풍자하는 전위적 그림도 자신과는 맞지 않다고 했다.

그녀는 어둠속에서 악령이 배회하고 있는 무의식의 세계와 매일 밤마다 꾸는 악몽과 전율, 몽상을 표현하기 위해 일명 색면파라고 불렸던 뉴욕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처럼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초현실주의 미술, 추상 회화는 아직 낯설게 여겨졌으니 어차피 대중이나 평론가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용암석이란 화산 폭발로 분출한 용암이 수십억 년 동안 흙에 덮여서 변성암이 되고 다시 그만큼의 세월이 흘러 수성암이 되면서 탄생한다. 그녀는 구멍이 숭숭 뚫린 밤하늘처럼 새까만 돌인 제주도의 용암석을 예리한 끌로 깎고 다듬어서 조각을 하겠다고도 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했었다.

“아마도…… 지치게 될 거예요. 세상과 단절되어 지칠 대로 지친 삶을 살게 되겠지요. 그래서 헤어날 길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힐 겁니다. 그러면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거예요.

하지만…… 전…… 지금…… 살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몸부림을 치고 있지요.”

나는 그때 그녀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고 공감했었다.

그녀의 예술적 재능이 꽃을 피워야만 하지 않겠는가. 내가 그걸 무슨 이유로 막아야만 하는가. 나 역시 원래 화가 지망생이 아니었던가. 화가로서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실패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때 뭔가 뒤틀려 있었다고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그게 뭔지 알아낼 수 없지만……

이건 타협이 아닌 거야. 타협은 있을 수 없어. 난 설득당한 게 아니라니까. 오직 그녀를 위해서야. 그 미술관을 짓기 위해서는 복합 건물에서 예산을 절약하는 거야. 실내의 기둥을 반 이상 줄이면 되는 거지. 그러면서 공간의 경제성을 살리는 거지.

나는 또다시 팽팽하게 긴장해서도, 너무 초조해도 안 되고, 당혹감이나 자괴감을 느껴서도 안 되고, 구제불능이라고 자책해서도 안 되고, 즉흥적이어도 안 된다. 완벽에 대한 강박관념도 안 된다. 나는 완벽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야한다. 나는 자유와 고독 속에서 그것을 완성해야만 한다.

그 건축물에서 균형 감각과 리듬감을 살려야 할 것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더 넓혀서 공간을 많이 확보하여 벽은 솔리드 (채움)의 역할을, 기둥 사이의 빈 공간은 보이드 (비움)의 기능을 수행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 건축물은 구조물 사이의 적절한 간격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템포와 리듬감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은 검은 벽돌의 정사각형으로 엄격한 단순성을 살리면서도 그녀의 요구 조건을 완벽하게 반영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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