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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 모창 가수
이름 유중원 이메일



모창 가수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은 둘도 없이 소중한 것이다.─ F. 라블레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격언은 적절한 말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알라’고 하는 말이 더 실용적이다.─ 메난드로스

 



한국모창가수협회

모창 가수 박○○ 또는 나운하가 누구인가?

평생을 나훈아이면서 나훈아가 아닌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박○○의 삶을 살았던 것도 아니다.

그는 최근 세상을 뜬 너훈아, 아직 활동 중인 조용필의 모창 가수인 주용필, 패티 김의 패튀 김, 태진아의 태지나와 마찬가지로 오리지널 가수의 목소리와 몸짓을 흉내 내 노래를 한다.

우리들은 그들을 모창 가수라고 부른다. 모창 가수란 말 속엔 박수보다는 야유가 더 많이 섞여 있다. 아무리 노래를 잘 흉내 낸들 이들은 진짜를 뛰어넘을 수 없고, 뛰어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가수들의 협회로 한국가수협회가 있고,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도 있지만 모창 가수들로 구성된 한국모창가수협회도 있다.

나훈아, 너훈아, 나운하는 1991년 SBS 개국 기념 ‘나훈아 모창 대회’ 때 처음 한자리에 모였다.

“그때 두목을 처음 봤지요. 내가 앞에 가서 허리를 90도로 굽혀서 꾸벅 인사를 했었거든. 그러니까 웬일인지 씁쓸한 미소를 짓더라고. 그 뒤로는 두목 공연할 때마다 따라 다니며 많이 도왔지요. 로드매니저처럼 허드렛일을 한 것이지요. 가끔 ‘일 좀 많이 하나?’ 이렇게 묻기도 하고 나한테 ‘머리를 더 길게 길러야지 비슷하지 않겠어?’ 이런 조언도 해주었지요.”

한국모창가수협회인 ‘이미테이션클럽’에 가입한 회원은 20여명이다. 클럽 회장인 주용필은 “협회 회원 수는 많지 않지만 이런저런 행사장을 오가며 만난 사람들로 미뤄 짐작할 때 최소 100명 정도 전문 모창 가수가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모창 가수들은 주로 지방에서 활동한다. 칠순, 회갑 잔치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지방의 작은 축제 무대에 선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집계한 군 단위 이상 음악 행사는 모두 900여개이다. 이보다 작은 행사를 모두 합치면 한 해 3000개 정도 축제가 열린다고 공연업계는 보고 있다.

공연업계의 한 인사는 1년에 섭외하는 행사가 300건 정도인데 10% 정도인 30건 정도는 모창 가수들 공연으로 꾸미지요.”라고 말했다. 주용필은 “팬들이 원하는 유명 스타가 가기 어려운 지방의 작은 행사들의 여흥을 우리가 책임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런 행사에서 모창 가수들은 통상 원조 가수의 히트곡 네다섯 곡을 부르고 나서 60~150만원을 받는다.

일부지만 해외에서 큰돈을 버는 모창 가수도 있다. 종종 해외 교포들의 초대를 받아 공연하는 한 모창 가수는 “지난해 일본과 미국 공연을 다 합쳐 다섯 번 뛰었다. 나라 밖에서만 1억 원 정도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 게 있다. 모창 가수를 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주용필은 실력은 기본이고 원조 가수의 인기에도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원조 가수의 인기가 오르락내리락하면 모창 가수의 인기도 이에 비례해서 출렁인다.”고 말했다. 가장 좋은 것은 ‘인기는 여전히 많은데 대중 앞에 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원조 가수’다. 나훈아 모창 가수인 나운하는 “나훈아 또는 조용필처럼 일반 행사를 전혀 뛰지 않는 가수의 모창 가수를 사람들이 더 찾는다.고 말했다.

주용필, 방쉬리, 현숙이 등 모창 가수들은 가장 많은 모창 가수를 거느린 원조 가수가 나훈아라고 입을 모았다. 나운하는 지방마다 나훈아 모창 가수는 한 명 이상 꼭 있더라. 심지어 일본 오사카에서도 한 명 봤다”고 말했다. 현숙이는 “나훈아 모창 가수가 많은 이유는 꺾고 뒤집는 이른바 나훈아 스타일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모방하기 쉽기 때문이다. 어두운 피부색, 부리부리한 눈, 거친 턱수염 정도만 갖춰도 얼추 비슷한 이미지가 나오는 것도 나훈아 따라하기가 쉬운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귀남진은 트로트의 제왕 김남진을 두목님이라고 불렀다. 그에게는 노래하는 신이었으니 아예 예수님처럼 생각했다.

그의 집은 김남진에 대한 오마주 또는 패러디 그 자체로 보였다. 집안에는 항상 두목님의 히트곡 선율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고, 거실에는 L.A 공연의 거대한 포스터가 소파 뒤쪽 벽에 붙어있다. 안방과 부엌 벽에는 김남진이 화려한 무대복을 입고 요란한 제스처와 함께 활짝 웃는 사진이 초대형 액자 속에 걸려 있었다. 사진 속에서 김남진은 뜨거운 안광을 뿜어대며 화려하게 웃고 있다.

단독주택의 지하에 있는 노래 연습실 책장엔 김남진의 노래를 담은 구식 카세트테이프와 LP판, CD가 수백 개씩 꽂혀 있고, 무엇보다도 천장이나 사방 벽할 것 없이 그의 크고 작은, 옛날 또는 최근 브로마이드 수천 장이 도배되어 있다.

귀남진은 매일, 도처에서 그를 쳐다보는 사진 속 두목님을 의식하며 노래를 연습했다. 두목님이 사진 속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그랬으니까 마치 두목님이 곁에 있는 것처럼 더욱 긴장해서 연습을 했던 것이다.

그의 집은 온통 김남진의 세계였다. 그러니까 귀남진의 집에 귀남진은 없었다.

그랬으니 그가 집에서 키우는 붉은꼬리검은 앵무새는 하루 종일 횃대에 도사리고 앉아있다 사람만 보면 째지는 듯한 괴상한 목소리로 ‘내가 김남진’하고 외쳤다. 그럴 때마다 그가 ‘김남진’이라고 이름 지은 반은 진돗개이고 반은 뭔지 알 수 없는 잡종개가 앵무새를 향해 짖어대기 시작했다.

귀남진은 시골 산골짝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때 막 뜨기 시작한 김남진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마치 자기 자신이 부르는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전라도 사투리 억양이 섞인 말투도 비슷하고 노래하는 목소리도 비슷해서 어쩌다가 노래를 따라해봤더니 거의 똑같이 들렸다.

그는 신이 나서 김남진을 열심히 따라했다. 금세 그 지방 명물로 소문이 났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 벌써 광주와 목포의 밤무대에서 찾아와 노래를 해달라고 했다. 한 시간 노래를 부르면 500원도 주고 1000원도 줬다. 그런데 돈맛을 알고 보니까 학교가 보이지 않았다. 대학에 진학할 생각을 아예 접은 것이다.

광주 밤무대에서 인정받은 귀남진은 고등학교 졸업 후 가수의 벅찬 꿈을 안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그러나 상고를 나와 은행에 다니는 친구와 자취를 하면서 찾아간 어느 음악 학원을 통해 신곡 몇 곡을 발표했지만 가요계의 반응은 너무 싸늘했다. 그에게는 가수로서 타고난 끼와 재능이 조금 부족했던 것일까? 든든한 스폰서가 없었던 탓일까?

그는 먹고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김남진의 노래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 밤무대에 나섰다. 진짜 김남진과 똑같은 놈이라는 소문을 등에 타고 본격적인 모창 가수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그의 본명은 김정석이다. 1980년대 중반 모창 가수로 인기를 끌면서 무대용 이름으로 지은 것이 귀남진이었다. 그는 모창 가수라는 꼬리표가 어느새 몸에 익었다. 그러나 차별도 심했다. 그 역시 모창 가수이기는 하지만 엄연한 가수인데, 사회자들은 무대에서 그를 소개할 때마다 엄청 놀려댄 것이다. 특히 개그맨들은 공개적으로 모창 가수 놀리기를 레퍼토리로 삼았다.

귀남진은 모창 가수로 살면서 몇 번씩이나, 진짜 김남진이 된 적이 있었다. 김남진은 198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교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1998년의 일이다. 김남진과 미국 LA 교민회 사이에서 공연 일정을 둘러싸고 마찰이 생겨 공연이 취소될 위기에 놓인 적이 있었다. LA 교민회가 그 해 추석을 맞이해서 김남진에게 공연을 의뢰했는데 실무자의 실수로 다른 중요한 공연과 겹치기가 돼버린 것이다.

교민회는 홍보며 무대 준비며 다 됐는데 막상 김남진이 없었던 것이다. 이 일을 수습하려고 김남진 측에서는 부랴부랴 대타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특설 무대는 진짜 김남진을 위한 최고의 조명, 최고의 밴드, 최고의 음향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그는 눈물이 절로 났다. 흥분한 나머지 두 시간 동안 무아지경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관객의 흥분과 환호에 홀려 자신도 모르게 폭탄 발언을 하고 말았다.

여러분…… 사실 저는 가짜입니다! 진짜가 아니란 말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어쩌다 튀어나온 소리에 그는 흠칫 놀랐다.

왜 갑작스럽게 그 말을 내뱉었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느닷없이 튀어나왔지? 그러나 곧바로 안심했다. 관객들을 둘러보니까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웃고 떠들며 더 크게 박수를 치는 게 아닌가. 김남진이 무대에서 하도 웃기는 소리를 잘하니까 농담이라고 생각한 거였다.

그날만큼은 그가 진짜 김남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끔찍한 느낌이다. 머리가 빙빙 돌고 심장이 마구 떨린다. 고함을 내지르고 싶다. 그러면서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서글픈 마음에 울고 싶었다.

귀남진이 진짜 김남진이 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지방 노인정 공연에선 말이다. 어르신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나면 할머니들이 귀남진을 덥석 끌어안는다. 귀남진은, “아이고, 이런 세상에, 내가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산 보람이 있는 가베. 내가 살아서 그 양반을 끌어안고 얼씨구! 절씨구! 덩덕쿵! 막춤을 추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 라고 말하며, 행복해하는 할머니들 앞에서 차마 가짜라는 말을 꺼낼 순 없었다.

귀남진의 가수로서 인생의 목표는 뚜렷하였다. 김남진처럼 똑같이 생기고 똑같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귀남진은 이제까지 두목님을 향해 30년을 뛰었다. 그의 하루는 오전 10시 연습실에서 시작된다. 꼬박 10시간 동안 김남진의 노래를 연습한다. 30년 동안 매일 해온 일이다. 테이프가 다 늘어나 끊어질 때까지 두목님의 음악을 듣고 또 듣고, 비디오를 보면서 제스처와 표정도 따라하고.

무대에서는 똑같은 옷을 입고 분장을 하고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똑같은 화려한 무대 동작으로 노래를 했다. 어느새 일상생활에서도 얼굴 모양이나 헤어스타일, 턱수염, 목소리, 팔뚝의 문신, 걸음걸이, 제스처, 다른 신체 동작, 생활 습관까지 점점 닮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일란성 쌍둥이야. 도무지 구분할 수가 없어, 똑같다니까, 똑같아.

마누라가 웃으면서 농담을 했다.

지금 보니까…… 정말이지…… 그 사람과 당신은 완전히 쏙 빼닮은 거야. 정말 똑같아요. 복제인간인 거지. 그 사람 아버지와 당신 어머니가 아주 옛날에 정분이 난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어느 날 트로트의 황제 김남진의 모창 가수인 귀남진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 지리산 고리봉 쪽에서 천운사로 내려왔는데 겨울이라 길에는 살얼음이 얼어있었다는 것이다. 급커브에서 낭떠러지로 미끄러지며 몇 바퀴를 굴러 떨어지자 차에 불이 붙었고 시체 역시 불에 타서 형편없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귀남진의 처가 경찰에 가서 자신의 남편임을 확인하고 시체를 인수한 것이다.

경찰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거의 재가 되다 시피한 시체를 넘겨주었다.

그 모창 가수는 원래 엄청난 자동차 속도광이었는데 그게 제 운명이어서 결국 그렇게 죽은 것이다.

진짜 김남진이 밤늦게 빈소를 찾았을 때 한국모창가수협회가 보낸 조화 하나가 덜렁 놓여있고 몇몇 문상객들만 남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생각해보자.

트로트의 제왕 진짜 김남진의 장례식장이라면 어땠을까? 연예기획사, 음반 제작사, 공중파와 케이블 TV의 카메라, 언론사 연예부 기자들, 한국가수협회 회원들,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 회원들, 한국모창가수협회 회원들, 김남진 팬클럽 회원들, 수많은 연예계 선후배, 그냥 열혈 팬들, 어중이떠중이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리고 TV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특집 방송이 나올 것이고 신문마다 그를 애도하는 추도사가 실렸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문상객들이 중구난방으로 말했다.

“좀, 섭섭하시겠습니다. 두목님을 예수님처럼 존경하는 수제자가…… 갑자기 죽어서 말입니다.”

김남진이 말했다.

“저도 정말 안타깝습니다. 제가 그동안 칩거하고 있으면서 많은 신곡들을 준비했었거든요. 세상을 놀래게 해주려고 말입니다. 그 노래가 뜨면 그가 또다시 모창을 해서 다시 함께 뜰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새로 나올 앨범이 기대됩니다. 그러면 뜬소문이 사라지겠지요. 하도 험악한 소문들이라서…….”

“그 사람 세상을 잘못 태어난 게지요. 본인보다 노래를 더 잘했으면 잘했지……. 못하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인정하시…….”

김남진은 문상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불편한 심기를 전혀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그렇지요. 그렇고말고요. 인정합니다. 인정하고 말구요. 세상이 불공평하지요. 세상이……. 그런데, 장지는 어디로 정했답니까? 혹시 고향의 선산으로?”

“아니지요. 내일 아침 발인을 하면 곧바로 화장을 한답니다. 마누라가 화장을 고집해서 말입니다. 그러면 한줌의 재만 남아서 납골당으로 가겠지요.”

“……그렇군요. 그가 죽었다는 말이지요. 죽었…….”

 

김남진은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다. 언제나 초만원 사례였던 대형 공연도 끊어진지가 얼마만인가. 신곡 앨범을 발표한지도 까마득한 옛날 일이 되었다. 연예계 전문 기자들이 아무리 추적을 해도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래서 갖가지 뜬금없는 별의별 소문이 나돌았다.

일본의 한국계 야쿠자가 거액의 개런티를 제시하며 오사카 공연을 추진하였는데 이를 특별한 이유 없이 거절해서 야쿠자 두목의 분노를 산 나머지 엄청나게 폭행을 당했고 급기야 거시기까지 절단당했다는 것이다. 또는 그가 너무 답답한 나머지 바람도 쏘일 겸 아프리카 쪽으로 몇 달간 트래킹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에이즈에 걸려서 지금 사경을 해매고 있다는 소문, 그 때문에 20세 연하의 세 번째 부인과 결별을 했다는 소문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세한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그 부인과 이혼한 것은 사실이었다.), 평소 하루에 담배를 두 갑씩이나 피워댔는데 폐암에 걸려서 몇 년째 투병 중이라는 설이거나 폐암으로 진즉 죽었고 소리 소문 없이 화장을 하였다는 설,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성대 근육이 위축되는 증세로 갑자기 목소리가 잠겨 노래가 안 나오자 자포자기하여 마약과 독한 술에 빠졌고 결국 폐인이 되어 시골 어딘가 숨어산다는 설, 곧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신곡들을 준비하면서 칩거하고 있다는 설 등이 난무하였다.

 

그 모창 가수의 마누라가 말했다.

“나는 매일 새벽마다 정화수 떠놓고 기도하고 있지요. 뭐라고 말하는 줄 아세요. 진짜 김남진 후딱 뒈져라, 빨리 뒈져라. 그래야만 우리 귀남진이 뜨게 된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화가 나서 소리쳤다.

“자기는 불행한 거야, 불행하다고. 그 지독한 구두쇠…… 당신이 그 고생하며 뒷바라지 했는데 돌아온 게 뭐지? 왜 우리가 열등감을 느껴야지? 뭐가 부족해서 모창이야. 지겹지…… 지겨워. 그 작자 때문이야. 그 작자가……”

그 무렵 귀남진은 성형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의 턱은 원래 약간 뾰족한 턱의 가운데 부분이 갈라졌는데 수술 후에는 네모진 턱에 보형물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눈꺼풀 처짐 수술도 하였다. 원래 처짐이 심해 눈을 크게 뜨려고 할 때마다 발생하는 눈썹 처짐이 위로 이동한 것이다. 그래서 눈 꼬리의 위치가 김남진과 거의 일치하게 되었다. 또 양악수술을 받아 턱의 길이가 김남진의 턱과 완전히 일치하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사지 연장 수술을 받았는데, 원래 그의 키는 김남진보다 5센티미터 정도 작았는데 무려 5천만 원을 들여 그만큼 키를 늘린 것이다. 그래서 1년여 동안 몸에 고정 기구를 차고 휠체어 신세를 졌다.

귀남진은 30년 동안이나 그렇게 살았으니 언뜻 보기엔 외모가 똑같이 생긴 것 같지만 얼굴 길이, 치아 구조, 귀 모양, 가마의 위치, 이목구비의 간격이 미세하게 차이가 났던 것인데 몇 번의 성형수술을 통해 그 차이를 없애 버린 것이다. 또한 말하는 음성과 노래하는 창법에서도 귀남진이 똑같게 하려고 피나게 노력을 하였고 김남진의 목소리와 창법 역시 세월에 따라 바뀌면서 이제 양자 간 차이는 거의 없어졌다. 특히 비브라토는 완전히 일치해서 누구도 도저히 구분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어두운 피부색 얼굴에 턱에 짙은 수염을 기르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끼면 누구도, 아마 본인들도 구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때 김남진은 지리산 상선암의 작은 암자에서도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있는 그의 암자에서 몇 년째 혼자 칩거하면서 신곡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필생의 역작을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나타나서 세상을 깜짝 놀래키고 그 동안의 흉흉한 소문을 잠재울 것이다.

그는 뽕짝 스타일의 트로트에 우리 국악의 3박자를 가미하였고 노랫말 역시 단순하지 않은 아득하면서도 시적 감각을 입혀 발라드풍으로 변형시켰다. 관조와 향수의 정서. 그래서 김남진스러운 창법을 죽이고 음악에 맞춰서 감정 전달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는 과거에 멈춰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네가 웬일이야?”

“두목님…… 예수님…… 형님…… 참으로 오래간만입니다. 여기 숨어계실 줄은……. 좀 섭섭하지요. 저에게만은 귀띔을 해주었어야 …… 제가 누굽니까?”

“갑자기 웬 형님? 계속 두목님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게 그거지요 뭐. 형님과 불과 7살 차인데요, 뭘. 럭키 세븐 아닙니까.”

“럭키 세븐 좋아하시네. 그런데, 여길 어떻게 알고?”

“제가 누구입니까. 그나저나 저는 형님의 확실한 분신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이지요.”

“뭐! 텔레파시라고! 그러긴 한데 점점 구분이 안 되는군. 성형수술로는 설명이 되지 않겠지. 무슨 가증스러운 요술을 부린 거야? 똑같이 닮은 인간이 함께 있으니까 어색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그렇군, 안 그런가?”

“네, 그렇지요. 그렇거든요.”

“무슨 용건이?”

“별 것 아니지요. 하도 소문이 흉흉해서 얼굴이나 한 번 뵈려고요. 진짜 살아계셨군요.”

“그래, 나는 지금 이렇게 잘 있지 않은가. 곧 세상이 깜짝 놀랄 거라고. 전혀 다른 스타일의 신곡들을 많이 준비했거든. 그 동안 사랑과 이별 타령을 너무 많이 했으니까 창피한 생각이 들지 않겠어. 그 테마들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변주곡만 만들었으니까.

정말 괜찮은 노래들이야. 리듬도 알맞고, 가사의 울림이란…… 나이도 나이인 만큼 삶의 고통, 절망, 희망, 그리움 같은 것을 절절히 느껴야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말이야…… 통나무 쪼개듯 토해내던 남성적 가창은 줄여야하지. 다시 말하면 힘을 빼고 멜로디를 사뿐히 올라타는 거야.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붓 자국이 너무 뚜렷한 유채물감을 버리고 수채화를 택하는 거야.

반복적인 멜로디의 후렴구를 살려야 하는 거야. 요즘 유행처럼 약간 경쾌하고 호흡이 짧아야 하니까. 그래서 아예 후렴구를 가성으로 부를까 싶지. 음원 매출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거야.

내년 봄이 적당할 거야. 봄과 여름에는 경쾌하고 신나는 리듬이 맞고…… 가을에는 약간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어울리거든. 그러니까 세상일이라는 게 타이밍이 맞아야 하는 거야…… 알겠어…….

그러나 많은 생각들이 오락가락했지. 내 안에 있는 음악을 어떻게 표현할까, 무척 고민했었거든. 다시 말하면 대중들에게 내 마음과 노력이 얼마만큼이나 전달될지, 그게 숙제인 거지. 그래서 약간은 초조한 심정이야.

이제 와서 퇴물인 주제에 새로운 음악의 방향을 제시한다고 거창하게 나갈 순 없겠지. 나이가 들어 갈수록 초라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거야.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와서 곡의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하지 못할까봐 이 계곡에서 매일 목소리를 가다듬고 있지. 하지만 노장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겠어.”

진짜는 길게 기른 머리털과 덥수룩한 짙은 턱수염이 완전히 회색으로 변한 것 이외에는 건강해 보였고 활력과 자신감이 넘쳐났다.

“그거야말로 제가 불러야겠지요.”

“당장은 아니고…… 그렇지. 신곡이 발표되고 나서 몇 년이 지나고 나면 모창 가수가 부를 수 있겠지.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아래위로 훑어본다.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으며 노골적으로 비웃는다. 비웃음과 슬픔이 섞인 미소가 그의 입가에 어렸다가 사라졌다. 그는 귀남진의 시선을 피해 창밖을 내다본다. 하늘에는 잿빛밖에 없다.

“형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봄이 오면 제가 불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새 앨범을 내고 나서 전국 콘서트 투어를 하는 거죠. 형님은 너무 늙었어요. 이제는 욕심 그만 부리고…… 은퇴하셔야죠. 영원히 말입니다.”

“뭐야? 무슨 소릴? 모창 가수 주제에. 네가 나를 흉내 낼 때마다 속이 메스꺼웠지. 알기나 해?”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그렇지요. 결단이…… 당장 결단이 필요하지요.”

“무슨 결단? 점점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고만……?”

“오랫동안 자아의 정체성 혼란을 겪어왔지요. 내가 진짜 김남진이고 형님이 가짜라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요.

수치심, 불안, 우울증 때문에, 자기소외인지 자기분열인지, 그래서 가끔 악몽을 꾸게 되고 말입니다.

몇 십 년을 그렇게 행세를 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남을 흉내 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지요.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그 자신이 되어야 하는데…… 내 방식대로 해야 되는데 말입니다. 이미 때가 늦었지요. 하여간에 진짜 김남진이 두 사람이나 존재할 수는 없는 거지요.”

“뭐? 자아의 정체성? 뜬금 없이……. 그런 건 나하고는 상관이 없지. 그렇지 않은가?”

“그게, 네 놈이 당장 죽어달라는 뜻인 거야. 한 번쯤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지. 불과 일곱 살 차이로 늦게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는 모창 가수가 되고 누구는 트로트의 황제가 되고…….

불공평하지 않아? 나도 더 늦기 전에 진짜 김남진이 되어야 할 것 아니야. 모창 가수, 그건 역겨운 모욕인 거야. 무대에 설 때마다 모창 가수라고 엄청나게 놀림을 받았거든. 내가 뭐가 부족해서 그 수모를 평생 당해야만 하지? 다 네놈 때문이야. 이 지겨운 인간아…… 당장 죽으라고…… 영원히 떠나라고.”

“그래서 어떻게 할 셈인데?”

“이게 권총이지.”

“날 쏠 셈이야? 날 살려줘야만 너도 다시 모창으로 뜰 수 있는 거 몰라?”

“아직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군. 스스로 자기를 우상화해서 나르시시즘에 빠지고 오만해진 거지. 그래서 주변 누구에게나 멸시의 시선을 보내는 거야. 네놈은 잔인한 사디스트야.”

“…….”

초겨울이다. 짧은 해가 산 너머로 사라졌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깊은 산속이라 사방이 칠흑처럼 깜깜해질 것이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멀리 아래쪽 계곡에서부터 밤안개가 밀려올라왔다.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가 중얼거렸다. 오늘 밤이야. 오늘…… 지금은 완벽한 순간이다.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인가.

귀남진이 말했다.

“네놈이나 나나 둘 다 공통점이 하나 있지. 자동차를 무지 좋아하고 스피드광이라는 거야. 광란의 질주는 짜릿하지. 옛날 우리가 함께 달렸던 걸 생각해보라고. 정말 아름답지.

그러니까 운전을 하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으면 참으로 어울리는 죽음이 될 거야. 우리를 아는 세상 사람들도 수긍을 할 거고. 누가 의심을 하겠어.

어서 일어나라고. 운전대를 잡으라고, 운전대를…… 저 차를 박살내기에는 아깝지만. 나의 애마인데 말이야.”

“…….”

“이 새끼야! 빨리……. 빨리……. 서두르라고.”

애마는 천천히 가장자리로 나아갔다. 그는 차가 절벽의 날카로운 끝부분으로 나아가도록 오른손으로 운전대를 조종하고 나서 안전하게 뛰어내렸다. 차는 짐승처럼 포효하면서 앞으로 돌진했고 잠깐 동안 날아올랐다. 그러고 나서 체조의 도마 선수처럼 돌고 돌아서 계곡으로 떨어졌다.

그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지나간 세월이 너무 아쉬웠던 것이다. 나는 반평생을…… 너무나 오랫동안 가짜 인생으로 살았던 거야. 정말 긴 세월이었다고. 너는 진짜 인생을 살았고. 온갖 명예와 부와 여자를 차지했었지.

이제부터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거야. 그게 공평한 거라고. 하늘에 하느님이 계신다면 틀림없이 동의하실 거야. 그래서 나는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둠. 밤. 밤안개. 불안. 공포. 추락. 비명. 쾅 쾅. 불. 모든 걸 삼켜버리는 화려한 불꽃. 침묵. 죽음. 망각. 노래. 만가. 꿈. 환상. 악몽. 영혼의 부유. 비루한 삶. 운명. 비극. 신의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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