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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 사랑이 뭐 길래 - 사랑에 대한 짧은 고찰
이름 유중원 이메일



사랑이 뭐 길래 - 사랑에 대한 짧은 고찰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건
오늘, 오직 오늘뿐인 걸
내일, 아, 내일이면
모든 것이 사라지겠지

― 테오도어 슈토름



두 젊은 남녀가 카페도 아니고 길거리에 선 채로 티격태격 말싸움을 하고 있다. 여자는 약간 흥분해 있으나 진지했고 남자는 그저 헤헤 거리고 있다.
“네가 정말 날 사랑한단 말이지. 틀림없겠지. 그렇담, 사랑의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왜 사랑하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지.”
“사랑한다면 사랑에 조건이 있을 것 아냐?”
“무슨 조건? 왜?”
“앞으로 어떻게 사랑할 건데? 사랑의 방법을 말하는 거야.”
“두고 봐야 할 거야.”
“미심쩍은 일이야. 증명을 해보시지, 사랑의 증명을!”
“사랑에 왜 증명 따위가 필요하지!”
“넌 언제까지, 날 사랑할 건데?”
“평생 동안을”
“이제 딱 걸렸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야. 한 여자를 평생 동안 사랑한다는 말은 초 한 자루가 평생 동안 탄다는 말만큼 거짓말인 거야. 이건 톨스토이가 말했지. 톨스토이가…….”
“톨스토이가 항상 옳은 건 아닐 거야.”

한숨을 돌린 뒤, 침착함을 되찾은 여자는 생각했다.
만약에 말인데…… 25살 먹은 여자가 사랑을 받고 있다면 그만큼 많은 매력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연상이면 어때? 내가 미련하게 누나 행세를 했던 건가? 난, 너무 들떠있으며 어린애처럼 변덕스럽고 경솔해서 싫은 건가? 더욱이 서투르고 고집불통이고 형편없는 거지. 네가 바라던 여자가 아닌 거지. 내가 아주 냉정한 여자이면 좋겠어? 내가 전적으로 너에게 매어있기를 바라는 거야? 이조시대 여자처럼 절대적 순종을 바라는 거야? 난, 너밖에 없거든. 난, 지금 가끔 울고 싶다고. 계절은 너무 아름다운데 난 외롭고 버림받은 기분이 들거든.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데. 자신을 달랠 수가 없는 거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는 거야. 네가 우는 것을 질겁하는 거 알고 있지만…… 그래서 속으로 울고 겉으로는 헤헤거리는 거야. 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지. 밤과 짙은 어둠이 점점 무서워지고 있어. 도시 전체가 깊이 잠들어 버린 밤 말이야. 내가 곤히 잠들어 있는 한밤중에도 새벽녘이라도 상관없이 네가 전화를 해주면 얼마나 좋겠어. 핸드폰은? 너에게 아무것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아. 그러나 어쩔 수 없네. 네가 날 구원해줘. 물론 사랑이 온갖 슬픔을 모두 달래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는 거야…….
그런데, 넌 우리가 사랑한다고 해도 결혼은 절대 할 수 없을 거라고, 이미 결론을 내려버린 거야? 우리가 꼭 섹스를 해야만 하는 거야? 그래야만 사랑이 되는 거냐구? 너는 끝없이 타오르는 욕정에 사로잡혀있을 거야. 너는 내 자궁과 젖가슴이 필요하겠지. 오직 배설과 애무의 도구로서 말이야. 풀어헤친 내 가슴에서 뿜어 나오는 젖과 땀의 비릿한 채취, 따스함과 짙은 향수, 육체의 열기를 맡고 싶겠지. 물고기처럼 움직여서 깊이깊이 들어가고 싶겠지.
넌, 요즈음 날 만나는 걸 꺼리고 있는 거야.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렇게 바쁜 거야. 시간이 나지 않는 거야. 오랫동안 우린 매일 만나거나, 하루에도 전화를 열 번쯤은 했었지. 얼마 전까지는 이틀에, 삼일 만에 만났었지. 우리가 지금 일주일 만에 만난 거 알고 있어, 알고 있냐고? 그게 가능한 일이야? 그래도 되는 거냐구? 넌, 지금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도통 모르고 있는 거야. ‘왜 갑자기 화를 내고 그래.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되묻고 싶겠지. 그걸 몰라서 묻는 거야. 넌, ‘그래, 우리 그만 다투자. 전부 내 잘못이야. 미안하지. 그럼 된 거지.’라고 얼렁뚱땅 넘어가고 싶겠지. 그러면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내게 하나씩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어? 그러니까, 그건 ‘나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지만 잘못한 걸로 쳐주지.’라고 날 기만하는 거지.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아. 나를 아예 싹 무시하는 거야. 이 멍청아, 남잔 여자의 진짜 속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거야…….
너는 관계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 거야. 나는 지금 인간관계를 말하는 거야. 관계란 둘 이상의 사람, 너와 내가 서로 연관을 맺게 되거나, 이미 맺었거나, 연관이 있음을 말하는 거야. 그러나 모든 남녀 관계란 100프로 애증의 관계인 거지. 좋기 만한 관계는 없는 거야. 장담하건데 이 세상에는 없지. 그러니깐 서로 좋기도 하지만 서로에 대한 불만이나 불신, 간단히 말해서 서운함, 미운 감정이 있는 거지. 그래서 티격태격하는 거겠지. 좋은 거 하나도 없이 믿기만 한다면 만나서 뭘 할 수 있겠어. 관심도 없는데. 그러면 헤어지는 게 낫겠지. 관계는 끝장이 나는 거야.
너는 도대체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을 알고는 있어? ‘있을 때 잘해’라는 명언을 알고 있냐고? 내가 지금 어리석은 소리, 어처구니없는 대화, 저주의 말, 아니면 새삼스럽게 진부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걸로 보여?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할 거야. 난, 매달리는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지. 그건 내 위대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지. 그렇다고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릴 일도 없겠지. 모든 게 너에게 달려 있는 거야. 난 떠날 수도 있어. 지금, 당장이라도. 그래도 나는 파멸하는 게 아니지. 넌 날 비난할 수 없어. 절대로. 우린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는 거지. 우린 동등한 거야…….
그리고, 복수할 거야. 난 여자야. 여자의 복수야말로 무서운 거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아손의 아내 메데이아처럼……. 배신당한 여자의 앙심이 일으킨 복수극……. 어떻게 하면 네가 더욱 고통스러워할지에 초점을 맞추는 거야. 알겠어……. 그러니까 너의 치명적인 약점에 벼리고 벼린 날카로운 칼을 찔러 넣는 거지. 파멸로 몰아넣는 거지.

봄기운은 벌써 기울었다. 반은 봄이고 반은 초여름이다. 바람이 조금 부는 맑은 날이었다. 늦은 오후의 장밋빛 햇살이 그들의 마음속에 따뜻하고 진귀한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여자가 다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사랑인지…… 자꾸 의심이 드는 거야. 사랑에 빠진 여자가 원하는 것은 사랑 받는 남자가 자기 자신을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거지. 난 지금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거야. 너무 혼란스럽단 말이야. 내가 지금 너무 사변적이고 말이 많다고 생각 하지는 마. 내 물음에 예, 아니요 라고 간단히 대답해. 내가 지난밤에 사랑의 의미에 대해 정리했거든. 거짓말은 사랑을 죽인다고 했어. 지금부터는 진실을 말해보시지. 그렇지 않아?”
“…….”
“일상생활은 사랑의 최대 적인 거야. 그게 사랑을 갉아 먹는 거지?”
“……”
“너에게 사랑의 정열이 지금 활활 불타고 있다는 거지? 사랑은 증오이고 질투에 불과한 거야. 질투가 없는 곳에는 사랑도 없다고 했어. 이건 독일 속담이야. 너에게 질투심이 있기는 해? 질투심은 어쩔 수 없는 거야. 나쁜 게 아니란 말이지. 절대로. 질투는 사랑하는 대상을 독점하려는 원초적인 욕망이자 무의식적인 소망인 거지. 그래서 의심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거지. 그러니까 질투를 가리켜 사랑의 어두운 이면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거야.
너는 너희들이 신주 모시듯 하는 하나님도 ‘질투하는 하나님’인거 알고 있어? 하나님이 직접 ‘나 여호와는 너의 하나님이고,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라. 라고 말한 거 알고 있냐고?”
“…….”
“사랑은 악마라고 했어. ‘사랑은 악마다. 사랑 이외에는 다른 악마는 없다.’ 이건 셰익스피어의 말이지. 악마가 맞는 거야. 넌 악마를 사랑할 수 있어. 자신 있느냐 말이야?”
“…….”
“사랑은 괴로움으로 가득 찬 불치병이야. 그런 거야. 사랑은 치료약이 없는 병이란 말이야. 그래도 괜찮겠어?”
“…….”
“사랑은 끝없는 신비야. 아무것도 사랑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지! 너는 그 신비를 믿을 수 있어?”
“…….”
“증오로 변한 사랑처럼 엄청난 분노는 천국에도 없고, 멸시당한 여자처럼 무서운 복수의 여신은 지옥에도 없다고 하지. 넌, 날 분노케 할 거야 말거야?”
“…….”
“커피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해야 한다고 했지. 그런데 커피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 이야기인데, 사랑은 정말 달콤한 거야?”
“…….”
“오로지 이별의 고뇌 속에서만 우리는 사랑의 심연을 들여다본다고 하지?”
“…….”
“사랑은 모든 기술 가운데 최고의 기술이라고 했어. 너에게 그 기술이 있는 거야. 네가 사랑의 기술자인 게 맞아?”
“…….”
“첫사랑보다 더 좋은 사랑은 없다고 하지, 이게 첫사랑 맞아?”
“…….”
“사랑이 식어버린 사람들 가운데 한때 사랑에 빠졌던 것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말에 동의하는 거야?”
“…….”
“사랑은 싱싱할 때는 달지만 단물이 다 빠지면 쓴 거야. 그때는 뱉어버려야 하는 거 아냐?”
“…….”
“사랑은 홍역과 같아 그것은 뒤늦게 앓을수록 증세가 더욱 심하지, 너는 어때?”
“…….”
“농담에 대한 서로 다른 취향은 사랑의 중대한 장애물인 거 알고 있어?”
“…….”
“많은 남자들이 너무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여자를 보고 사랑에 빠졌지. 좀 더 밝은 곳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 너도 그런 거 아냐?”
“…….”
“사랑은 남자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지만, 여자에게는 삶 그 자체야, 알고 있는 거야?”
“…….”
“나하고 결혼할 수 있어? 결혼은 사랑의 생명을 연장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랑의 시체를 미라로 만드는 과정이란 거 알고 있어. 그래도 결혼할 거야? 빨리 대답해.”
“…….”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결혼은 누구의 사랑이 먼저 식는지 내기를 거는 거야?”
“…….”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게 쉽게 속는다고 하는데, 넌 날 속이고 있는 거 아냐?”
“…….”
“우리를 가장 심하게 해칠 힘이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야. 너도 날 심하게 해칠 때가 있겠지?”
“…….”
“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잘 모를 때는 사랑할 수 있지만…… 심지어 매우 아름다울 수 있지만…… 그들이 서로를 잘 알게 되면 사랑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견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우린 서로 속속들이 알고 있는 거야?”
“…….”
“인생이 아름다운 거야? 장밋빛인거야?”
“…….”
“우린 대학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지. 그날이 생각나는군. 처음 보는 순간 너는 영락없이 강원도 촌놈이고 꾀죄죄했거든. 그러나 우린 우정으로부터 시작된 거였어. 티격태격하면서 우정을 쌓는 데는 2년이나 걸렸는데……. 난 오랫동안 네가 남자로 보이지 않았지…….
그런데 여자의 우정은 언제나 사랑으로 끝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사랑이 들어가면 우정은 떠나간다고 하였어. 우정과 사랑은 서로 배척한다고 하니까.
그러면 우리에게 더 이상 우정은 없는 거야? 우리가 만약 헤어진다고 가정할 경우, 우정은 어떻게 되는 거냐구?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려야 하는 거야?”
“그 시의 시적 주체가 반드시 여자여야만 하는 거야? 남자는? 어떻게 하여 고이 보낼 수가 있겠어? 배신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만 되겠지. 그걸 공격적으로 히스테리컬하게 표출할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우정은, 무슨 우정, 쓸데없이…… 돌이킬 수 없는 악감정만 찌꺼기로 남게 될 거야. 난 감정의 노예가 될 수는 없어. 그래서 끝장인 거지. 애당초 기대하지도마.”
“나는 헤어지더라도 네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랄 거야. 그렇지, 그건 아니야, 내가 왜? 절대로 아니야. 절대로……. 그러나 젊은 여인의 독백을 되새기겠지. ‘정말 아름다웠지요. 당신은 이제 그때를 생각하지 않나요. 그렇지요. 당신은 나를 아프게 하였지요. 너무 아프게 하였지요. 그러나 아픔으로 끝나지 않는 게 무엇이 있을까요.’”

여자가 갑자기 악에 바쳐 소릴 질렀다. “넌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이제 증명된 거야. 나쁜 자식!” 그리고 갑작스럽게 달려들어 남자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나 남자는 여전히 헤헤거리며 이에 상관치 않고 그녀를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의 입에서 젖비린내가 났다. 그 다음에는 남자가 양팔로 그녀의 허리를 조이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두 사람은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딱 붙어서 종이처럼 얇게 납작해졌다. 그들의 육체는, 사랑은, 언어는, 무게를 잃어버렸다. 재처럼 가벼워졌다. 그때 때마침 거리에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날려서 허공으로 사라졌다.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순수했기 때문에 그 이야기들은 영혼의 속삭임에 다름 아니었고 그래서 상쾌한 공기처럼 가벼운 것이었다. 날이 곧 저물 것 같다. 하늘은 저녁놀을 배경으로 핑크빛으로 변했다. 그녀는 사랑의 노래를 흥얼거렸고, 너무 행복했다.
사랑은 은유다.
사랑은 무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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