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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댄서의 냉풍욕
이은선
갱도를 타고 바람이 왔다. 폐광의 깊숙한 바닥에서 오래 솟구친 바람이었다. 냉풍욕장 안으로 들어선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두 팔을 활짝 벌려 바람을 맞았고, 욕장 입구에 앉아 있던 상인들은 지나가는 손님들을 불러 세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바람은 시도 때도 없이 불어왔지만 그 세기와 습도는 조금씩 달랐다. 이곳에 오래 앉아 바람의 성정을 읽어가며 화구의 불꽃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만이 좌판 상인이 될 수 있었다. 상인들이 하나씩 지키고 앉은 화로가 찬바람을 조금씩 데워놓기 시작하면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오곤 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를 틈타 기세를 올리기 시작한 화로의 불꽃이 기름 두른 프라이팬을 더욱 뜨겁게 흥분시키고, 손님들은 말 많게 취해갔다. 그 사이를 비집고 갱도를 막아 놓은 쇠창살들이 우달달달 크르릉거리며 몸을 떠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래전에 조여 놓았던 곳이 헐거워졌는지 창살 하나가 유독 부산스럽게 제 몸을 보채고 있었다.
실컷 바람 맞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사람들이 무언가에 홀린 듯 좌판에 앉았다. 그러다 파전에 오징어만 들어가는가, 홍합 살도 있나 확인을 해보기 위해 전을 두어 장 주문했다. 넓게 펼쳐진 파전을 찢다가 아예 한꺼번에 입에 넣어버린 치들이 골뱅이 무침과 도토리묵 한 접시도 추가로 불러 먹었다. 간혹 동동주에 사이다를 섞어 함께 온 여자들에게 단맛을 보여주며 홀리다가 더 달콤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손 꼭 잡고 냉풍욕장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욕장의 별미는 베트남에서 온 흐엉이 내미는 쌀국수 국물이었다.
인근 공장의 인부들도 일 끝난 다음 밤새 술 먹고 간신히 일어나 기다시피 걸어 들어오곤 했다. 드넓은 해수욕장 옆의 후미진 산 입구에 위치해 있었지만 어차피 열쇠 꽂고 시동 걸면 차가 데려다주는 곳이니 음주 운전 혹은 해장 운전이라도 해서 달려왔다. 찬바람 잔뜩 맞으며 떡 진 머리의 비듬을 털어내고, 흐엉의 쌀국수 국물을 연거푸 들이켜던 사람들이 그제야 속이 좀 풀린다는 듯이 저도 모를 탄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속 잘 풀고 그냥 얌전히 돌아가도 좋으련만, 몇몇은 꼭 수작을 걸어왔다. 전에 알려줬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몇 살이냐, 등에 업은 애기는 몇 개월이냐, 애기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이냐를 묻곤 했다. 자신의 손이야 어떻든 아기의 손을 잡겠다는 치들의 장난은 그냥 넘어갈 리 없는 흐엉이었다. 막 끓기 시작한 육수 한 국자를 그 손들을 향해 끼얹었다. 뜨거운 국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손이 욕장의 천장 쪽으로 올라갔다. 내려칠 테면 쳐봐라, 하고 흐엉이 눈에 힘을 주었다. 때 아닌 소란에 아기가 울자 머쓱해진 얼굴이 된 치들이 잠시 멈칫하다 금세 온갖 욕설과 함께 좌탁을 뒤집었다.
흐엉은 기어코 그들에게서 지폐를 받아냈다. 뒤집어진 탁자와 의자를 정리하는 것은 앞 좌탁에서 여차하면 흐엉을 향해 출동할 준비를 갖추고 있던 정이 달려와 거들어주었다. 정은 떨어진 물건을 주워 준답시고 언뜻언뜻 흐엉의 손을 스쳤다. 어느 정도 좌판이 정리가 되자 흐엉은 탁자 아래 놓아두었던 베트남 커피 한 봉지를 컵에 따른 뒤 뜨거운 물을 부었다. 한 손으로는 우는 아기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김이 막 솟아오르는 커피 한 잔을 든 채 욕장 밖으로 나갔다. 어느샌가 그 커피의 향에 중독이 된 주변 상인들의 코가 벌름거렸지만 한 잔 달라고 할 분위기가 못 돼 하던 일들을 말없이 이어갈 뿐이었다.
흐엉이 밖으로 나와 나무 그늘에 앉아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던 사이에도 갱도는 끊임없이 제 속의 바람을 토해내었다. 찬바람이 아기에게 좋을 리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흐엉이었다. 욕장 안에서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잠든 아기를 볼 적마다 가슴이 아파 소리 없이 운 적이 많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몰아닥치는 손님을 받다 보니 젖을 짜내지 못해 허리가 뻐근할 지경이었다. 쌍둥이 중에 남은 한 녀석은 다행히 먹성이 좋고 건강했다. 흐엉은 한숨을 쉬며 젖을 빠는 아기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습관처럼 커피 잔에 손을 가져갔다. 모든 것을 잠시 잊게 해주는 커피 향이었다.
냉풍욕장에 앉아 오랫동안 바람을 맞은 상인들은 바람의 눈빛을 읽을 줄 알았다. 때때로 수십 개의 눈들이 바람을 타고 올라와 그곳에서 전을 부치고 도토리묵 무치는 이들의 가슴에 들러붙었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눈들이 술잔에 담긴 채 애처롭게 흔들렸다. 소리로 다가와 눈이 되어 달라붙은 바람들이 윤씨의 노구를 지탱하는 힘이 된 지 이미 오래였다. 간혹 윤씨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 적에는 갱도 사고로 죽은 남편과 아들의 눈, 남의 남편이라도, 남의 자식이라도 눈이 된 바람들이 슬슬 다가와 맞담배나 한 대 피자고 채근했다.
윤씨는 광산 밑에 있는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장성하여 아비를 따라 광산으로 들어가는 것도 지켜본 몸이었다. 사고 직후 그녀는 갱도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살았다. 방 안의 요강에다 볼일을 보며 바깥출입은 일절 삼갔다. 그렇게 오 년이 지나갔다. 어느 날 집으로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유족에게는 폐광 입구의 권리금을 받지 않는다는 문장이 실린 공문서였다. 윤씨는 그 문서를 껴안고 또다시 가슴앓이를 했다.
하릴 없이 손 놓고 앉아 있던 이들이 너도나도 폐광으로 몰려들었다. 몇 번이나 고사를 하던 윤씨도 왔다. 그 기척에 맑은 눈빛 하나가 바람을 타고 욕장 입구로 밀려왔다. 어둠 속에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시린 눈빛들도 윤씨의 치맛자락에 들러붙었다. 윤씨는 한동안 그곳에 서서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바람의 눈을 맞추고, 바람의 말을 들었다.
그때부터 윤씨는 무조건 많이 먹었다. 아예 욱여넣을 때도 있었다. 어느 해인가 남편이 장에 가서 사다주었던 모직코트를 걸친 채였다. 시신도 건지지 못한 아들이 더 애잔할 법한데, 떠나고 나니 어쩐지 살 비비던 남편이 점점 더 애틋해져가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도 아들이 보고 싶을 때면 모직코트를 벗어 흔들어댔다. ‘엄마 여깄다, 여깄다’하는 소리들이 갱의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
“아, 탑쌔기 날려유! 거 어지간히 좀 해유!”
간혹 속 모르는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이 있으면 윤씨는 단박에 일어나 그들을 바깥으로 내쫓았다. 괴팍하다고 소문이 나기도 했지만 저간의 사정을 아는 이들이라면 아무도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제 먹다 말고 쫓겨난 음식 맛이 그리워 다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먼 친척이라는 윤씨의 조카 지루박이 그녀를 찾아온 것은 이 자리에 앉아 바람을 맞은 지 십 년도 훌쩍 지난 후의 일이었다. 이십 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지루박은 가물가물 꺼져가는 기억을 헤집은 끝에 외당숙모인 윤씨를 찾아냈다. 아들이 살아온 것처럼 윤씨가 지루박을 반겨주었고, 곧 그녀의 좌판 옆에 새로운 좌판 개업식이 열렸다. 정이라는 지루박의 본명을 찾아준 것도 윤씨였다. 정은 컵 세 개와 주사위 하나만을 가지고도 사람들을 홀리는 야바위 상인이 되었다. 크지 않은 판돈을 걸고 재미삼아 하다가 지갑을 모조리 털리는 사람들이 족족 늘어났다.
어쨌거나 외로운 처지끼리 서로 의지해 살아보자며 동동주 몇 잔 진하게 나눠 마신 두 사람이었다. 정이 냉풍욕장에 오고 나서부터 욕장 안에는 구성지고 한스럽다가 애교 잔뜩 섞인 성인 가요들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무나 사랑을 하기도 하고, 네 박자에 맞춰 서울과 대전 그리고 대구와 부산까지 갔다 오는 노래들이었다. 무조건 술 한 잔 사 달라며 아파트까지 찾아가기도 하는 애절함도 배어 있었다. 정은 간혹 몸에 배인 대로 그 선율에 맞춰 스텝을 밟았다. 꼭 한 번 배워보고 싶었던 이국의 살사 춤은 교본을 샅샅이 훑으며 독학으로 익히는 중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누군가에게 이 춤을 전파하리라는 다짐도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무대의 배경은 어둡고 시린 바람이 나오는 갱도의 입구였고, 관객은 윤씨, 흐엉과 주변 상인들을 비롯하여 술에 취한 손님들이었다. 처음엔 시끄럽다고 타박하던 사람들도 정이 웃으며 다가가 은근슬쩍 함께 손을 맞춰 허리를 흔들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함빡 웃어보였다. 간혹 먼저 손을 좀 잡아 달라고 들이대는 여자들도 있었다. 정은 술과 음악에 흠뻑 젖은 가련한 영혼들을 춤과 야바위의 세계로 인도했다.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으므로 뒤탈은 없었지만 윤씨는 내내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정은 드러내놓고 반박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줄 따름이었다. 그러던 정의 눈에 말없이 제 할 일만 착실하게 하고 사는 흐엉이 들어왔다.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여자였다. 더군다나 정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여인이 아닌가.
흘러내린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맨 흐엉은 막 빨간 고무 다라이 안에 잠든 아기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누군가 욕장의 문을 여는 기척이 났다. 상인들의 눈이 한꺼번에 그리로 쏠렸다. 흐엉이 가장 먼저 얼굴을 돌렸다.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이는 안경쟁이였다. 오십대 초반쯤 되었을까. 매일 이곳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는 그는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수도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안경쟁이는 오늘도 윤씨의 좌판으로 다가가 술을 청했다. 그가 욕장 안으로 들어오고 막 닫히려는 입구의 문을 누군가 잡아챘다. 이번에는 흐엉이 가장 늦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무엇엔가 놀란 듯 가만히 쉬고 있던 손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엉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두용이 국수 한 그릇을 주문했다. 그와 동시에 정이 자그맣게 틀어놓았던 노래의 볼륨을 크게 높였다. 자던 아기의 몸이 움찔했다.
두용은 연신 국물만 들이켰다. 그러나 절반도 다 먹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흐엉이 두용에게 말을 건네려고 했지만 정이 틀어놓은 노랫소리 때문에 다시 입을 닫았다. 그러는 사이 사천 원을 좌탁에 올려놓은 두용이 욕장 밖으로 나갔다. 흐엉은 두용이 걱정되었지만 노랫소리에 자다 놀란 아기가 우는 바람에 따라 나가지는 못했다. 윤씨에게서 애 우는 소리 안 들리느냐며 타박을 들은 정이 그제야 시디플레이어의 볼륨을 낮추었다.
두용은 멀리 가지 못했다. 밤새 고민을 하던 뒤끝이라 술 먹은 다음 날처럼 누렇게 뜬 얼굴이었다. 얼른 흐엉에게 말을 해서 일 처리를 해야 하는데, 막상 그녀의 얼굴을 보니 말문이 막혀버렸다. 너무도 난감한 나머지 그 시원한 흐엉의 쌀국수 국물이 마치 김빠진 술같이 느껴졌다. 속이 울렁거려 이를 악물고 다시 밖으로 나온 길이었다. 두용은 주차장에 세워진 용달차 안으로 들어가 운전대에 머리를 박았다. 국물이 넘어올 것처럼 구역질이 났지만 있는 힘을 다해 참아냈다. 간신히 구토는 막았지만 두 눈을 단속하지는 못했다. 두용은 운전대 밑으로 뻗은 두 발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쓰레기를 버린답시고 욕장 밖으로 나온 정의 레이더망에 두용의 용달차가 들어왔다.
“왜 그래?”
두용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귀도 닫고 싶었으나, 정이 묻는 말에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정은 무척 당황했다. 딱히 위로할 마음은 없었지만 울고 있는 두용을 보니 물이라도 한 잔 가져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럴 때는 아는 척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정이 욕장으로 들어서가 아기를 어르던 흐엉이 눈빛으로 물어왔다. 정은 흐엉의 눈길을 피했다. 용달차 안의 두용은 한껏 몸을 움츠리고 다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제 흐엉을 뭔 낯으로 보나…….’
“(꼬르륵) 지금은 전파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밤늦게 태운 손님이 산 중턱의 저수지까지 가자는 말에 두용은 갈까 말까 주저했다. 그러나 몇 차례의 흥정 끝에 돈을 조금 더 받기로 하고는 열심히 택시를 몰았던 것이다. 저수지 옆집에 손님을 내려준 뒤에도 휴대전화는 제대로 작동되었고, 고장 난 지 일주일도 더 지난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GPS를 탐색’하고 있었다. 왔던 길로 되짚어 내려가다 샛길로 들어선 두용이 혹시 잘못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던 그때, 신기하게도 내비게이션이 작동을 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바통 터치하듯, 잘 터지던 휴대폰이 전파를 찾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한참을 헤매도 한 번 들어선 길을 빠져나오지 못하던 두용은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내비’양이 알려주는 대로 친절하게 길을 따라 내려왔다. 그러다 산 속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거 참, 허, 거 참!”
두 눈을 슴벅이던 두용이 끝내 혀를 찼다. 이제 믿을 거라곤 오로지 두용의 동물적인 방향 감각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야생 호랑이의 번뜩이는 밤눈인지, 집토끼의 졸린 밤눈인지는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연말에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은 산골의 구불구불한 길을 굳건히 달려 내려오던 두용은 저녁 먹을 때 물에 담가 놓고 온, 빨간 고무 다라이의 알밤 한 자루를 생각했다. 내일 아침 차례 상에 올라갈 밤이었다.
두용의 택시는 내비의 안내 없이 용감하게 급경사 길을 시속 20km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산 아래, 급경사가 끝나는 지점에서 용달차 한 대가 발라당 뒤집어져 있고, 아직 꺼지지 않은 헤드라이트가 어두운 산 속을 향해 애처롭게 빛을 내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용달차 앞에는 사람으로 보이는 형체가 꾸물대고 있었다. 재빠르게 눈앞의 상황을 파악한 두용의 택시가 멈춰 선 것은 용달차 바로 앞, 사람이 쓰러져 있는 곳이었다. 택시 안에서 총알처럼 두용이 튀어나왔지만 말은 그보다 좀 늦게 나왔다.
“사, 사사산규? 이, 이이이봐유!”
엎어져 뒹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여자였다. 게다가 여자는 핏덩이, 말 그대로 피와 양수를 뒤집어쓰고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다. 두용은 다급히 점퍼를 벗었다. 아침에 지퍼를 올리다 내복이 끼었지만 빼기 귀찮아 그냥 올려버린 바람에 점퍼와 내복이 하루 종일 붙어 있었는데, 그가 서두르는 바람에 내복을 찢어버리고야 말았다. 두용은 점퍼로 둘둘 싼 핏덩이를 택시의 조수석에 올려놓았다. 다급히 신음하고 있는 산모도 부축해 차 뒷좌석에 태웠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두용은 다시 용달차 안을 살피러 뛰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여인과 같이 있었을 거라 짐작되는 사람이 없었다. 다급해진 두용이 차 안을 뒤져 여인의 것으로 보이는 가방을 들고 다시 택시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제 아무 걱정 말유. 지가 병원까지 델다 줄뀨. 아, 아가! 쪼끔만 참아라이!”
그때까지만 해도 두용은 알지 못했다. 신음하며 쓰러져 있던 산모가 또 하나의 생명을 세상 밖으로 내어놓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아, 워쩜 좋대유! 쫌만, 쫌만 더 참아 봐유!”
산모의 비명과 핏덩이의 애처로운 들숨과 날숨이 두용을 한꺼번에 짓눌렀다. 산모를 택시에 태울 때의 비장함과는 다르게 두용은 차라리 울고 싶었다. 그래도 우선은 자신의 차에 실린 생명들을 살리고 봐야 할 것이 아닌가. 두용은 차 안의 히터를 최대한으로 높였다.
“(띠리링) 전파를 수신하였습니다.”
그 순간 두용은 마치 하느님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의 폴더를 밀어 올렸다.
“있잖유, 아, 있잖유! 여기 산모를 태웠는디유, 워디루 가유? 병원은 아는디유, 여가 워디냐먼, 아뉴, 잘 모르겄구요, 차가 뒤집어졌는지 길에서 애기를 낳은 거 가튜. 지가 지나가다 차에 실었슈. 근디 뱃속에 애기가 하나 더 있슈. 지금 막 나올라 그류.”
그 순간 산모와 두용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산모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운전을 하면서도 두용은 119 구조대 아가씨와 끊임없이 전화 통화를 해댄 덕분에 응급실이 있는 시내 중소 병원을 찾아갈 수 있었다.
병원으로 들어서기 직전, 산모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고, 두용의 머리가 운전대 앞으로 튕겨 나왔다. 택시가 크게 휘청거렸다. 두용은 뽑힌 머리가 아파서 우는 것인지, 방금 나온 아기가 울어 자신도 울고 있는 것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점퍼에 싸인 아기를 데려간 간호사가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있는 두용에게 다가왔다. 다행히 모두 무사하다고 했다. 그런데 산모가 외국 여자라고 했다. 두용은 자신이 데려온 산모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자판기 앞으로 다가갔다.
두용은 막 나온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마셔버린 뒤 병원을 나섰다. 아까 그 간호사에게 산모에게 전해주라며 주머니에 있던 돈을 모조리 털어주고 왔다. 산모가 잡아 뜯어 원형 탈모증에 걸린 사람처럼 정수리가 뻥 뚫린 두용의 머리 위로 자정을 알리는 라디오 소리가 내려앉았다.
새해였다.
그렇게 만난 흐엉이었다. 운전대를 부여잡고 울던 두용은 자기도 모르게 잠들었다 아무도 깨우지 않았는데 화들짝 놀라며 깨어났다. 잠시 고민만 했을 뿐인데,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게다가 꿈인 듯 바로 눈앞에 흐엉의 얼굴이 떠 있는 게 아닌가. 두용은 배가 고프고, 반가운 얼굴도 본 김에 힘든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두용이 차에서 내려서자 그제야 흐엉도 두용에게 다가갔다. 잔뜩 걱정을 하고 밖으로 나왔지만 두용이 용달차 안에서 워낙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던 터라 내심 안도하고 있던 흐엉이었다.
두용은 용기를 내어 흐엉의 손을 잡아끌고 나무 밑으로 갔다. 잠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했으나, 그녀의 손을 잡았다는 기쁨에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답답하기로는 흐엉도 마찬가지였지만 어차피 두용이 하는 말의 절반도 알아듣지 못하는 처지였다. 내내 쉼 없이 일하던 흐엉의 손을 두용이 가만히 감싸주었다.
욕장 안에서는 윤씨가 우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 엄마가 나가 돌아오지 않으니 젖을 물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막 물이 끓는 화구의 옆을 떠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찬바람 맞고 배부르게 음식 먹은 다음 정의 야바위 좌탁에서 재미나게 놀고 있던 손님 두엇이 막 돌아갔다. 윤씨의 품에서 엄마 찾아 우는 아기를 정이 받아 안았다. 그러다 갑자기 떠오른 다른 아기 생각에 정은 괜히 안아보았다는 듯이 얼른 다시 아기를 넘겨주었다. 이미 대취한 안경쟁이의 술잔을 채워주던 윤씨가 변덕을 부리는 정을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정은 갑자기 생각이 난 다른 아기의 얼굴을 지우려고 괜히 좌판 정리를 한다, 노래를 바꾼답시고 수선을 떨었다.
정이 지루박이었던 시절, 도와 시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다 사모님, 언니, 이양, 김양들과 지르지르 턴턴, 자자 차차차 하던 그때. 그는 세상에서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손만 올리면 온몸으로 돌진하던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정이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말을 하기도 전에 여러 가지 것들을 채워주었다. 정이 손을 한 번 잡아 끌어주면 그녀들은 입은 속옷이라도 벗어줄 것처럼 황송해했다. 하지만 지루박은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발기가 되기 않았기 때문이었다. 손잡고 당길 때면 으레, 허리 잡고 흔들다 보면 원치 않은 순간에도 저절로 서 있던 그것이 ‘임뽀우텐츠’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고민은 깊어졌지만 그럴수록 여자의 손을 당기는 손과 다리의 유연성은 날로 신묘해져갔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오래 앓았다. 좋다는 약재나 온갖 시술들은 다 받아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루박이 한 번 떴다 하면 온갖 여자들이 다 줄을 섰으나, 춤이 끝난 다음의 환상적인 밤을 고대하던 여자들에게서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물주였던 사모님들이 제일 먼저 떨어져나갔다. 누구나 알게 되었다고 느꼈지만 아무도 함부로 발설하지 못하던 그때, 정은 스스로 물러났다. 밤의 제왕, 밀고 당기기의 황제에서 이름 없는 촌부가 되기로 했던 것이다. 평생의 숙원이었던 살사 춤은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겉으로야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사교계를 은퇴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떠들기 좋아하는 것들이야 자기들 뒤가 구리거나 말거나 잘됐다 싶은 마음에 이미 커다란 확성기를 구입해 말들을 쏘아대던 때였다. 지루박은 미련 없이 댄스화를 벗었다.
지루박이 어릴 적에 살던 집은 이미 다른 이의 집이 된 지 오래였다. 혼자 된 외국인 여자가 아기를 키우며 산다고 했다. 외당숙모의 집에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밥만 축내던 그가 처음으로 마을 산책을 나섰다. 걷다보니 어느새 그가 살던 옛집 앞이었다. 많이 변했구나, 싶어 울적해진 마음으로 돌아서려던 그때 아기 울음소리가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지루박은 잠시 멈춰 서서 제가 살던 방에서 새어나오는 소리에 몸을 기울였다. 언젠가부터 지루박도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된 몸이었다. 체념한 얼굴로 뒤돌아서려던 그 순간, 그는 다시 한 번 아기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단순히 엄마 찾아 우는 소리 같지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든 정이 어렵사리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고, 다시 두어 번쯤 망설이던 끝에 방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방문을 채 열기도 전에 고약한 냄새가 튀어나왔다. 서둘러 문을 닫으려다 깜짝 놀라 다시 문을 활짝 열어젖힌 지루박은 방 안의 상황을 단박에 꿰뚫었다. 정은 숨을 참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울고 있는 아기를 마당으로 데려다 놓고 서둘러 방 안으로 뛰어갔다. 어미로 보이는 여자도 끌어냈다. 부엌 쪽에 얼굴을 돌리고 늘어져 있던 또 다른 아기는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정은 병원까지 따라나서지는 않았다. 경찰서에 불려가 몇 번 조사를 받기는 했다. 외당숙모의 말에 의하면 아기와 엄마는 쉽사리 퇴원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죽은 아기는 이미 화장을 해서 바다에 뿌려주었단다. 정은 병원에 한 번 들러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딱히 얼굴을 보며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외국 여자라고 했다. 정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병문안을 가는 외당숙모 편에 오렌지 주스 한 박스를 사 보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래도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에 오래간만에 어깨를 반듯이 펴고 잠을 잘 수 있었다.
병원에서 돌아온 흐엉은 아들이 누워 있던 자리에 널브러진 채 사 년 전에 처음 이 방에 들어오던 때를 생각했다. 오십도 훌쩍 넘은 남자에게 시집을 온 흐엉이었다. 밤이면 밤마다 어린 흐엉을 이리저리 앉혔다 눕혔다 하며 놀기에만 바쁘던 남편이었다. 그런 그가 흐엉의 등 뒤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린 아들의 죽음 앞에서 그녀는 죄인이 되어 있었다. 낯설고 먼 길을 혼자 가는 아들 생각에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죽은 남편을 꿈속에서라도 만난다면 뺨이라도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죽은 듯이 누워 있던 흐엉이 갑자기 부엌으로 가서 가스 배관을 잡아 뜯었다. 터진 고무 배관 곳곳에 쥐 이빨 자국이 선연했다. 맨손으로 잡아 뜯은 고무관을 마당으로 내던지고, 부엌 옆에 묶여 있던 가스통을 굴려 마당 한가운데로 내몰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녀의 곁에는 아직 딸아이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것은 외당숙모와 함께 병문안을 한답시고 찾아온 정이었다. 살아야 했다. 어떻게든 끼니를 건사하고, 피똥을 싸는 한이 있더라도 굳건히 버텨내야 했다. 이쯤 되면 그냥 베트남으로 돌아가라고 생각 없이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혼자 사는 젊은 여인이 어떻게 하고 지내는지 괜히 궁금해 하는 치들도 많았다. 그래도 생면부지인 마을 여자들이 밥을 챙겨다주었고, 누군가는 병구완을 해주러 오기도 했다. 생명의 은인인 정에게는 고맙다는 말을 하며 몇 번이나 허리를 숙였다.
늙은 남편의 소유였던 용달차는 아이들을 낳던 날 밤에 인연이 닿았던 택시 기사가 맡아주었다. 택시기사, 두용은 열과 성을 다해 용달차를 고쳐다 주었다. 간혹 집 울타리 안의 이곳저곳을 손봐주러 오기도 했다.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버릴까 여러 번 생각해보았지만 당장은 비행기 표 살 돈도 없었다.
흐엉은 마을 이장과 윤씨의 주선으로 냉풍욕장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고향에 사는 어머니를 닮아 손맛이 좋은 흐엉이였다. 때마침 이곳에서는 베트남 쌀국수 가게가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고향에서 먹던 맛보다는 조금 싱겁게, 술 먹은 다음 날 속 풀기 좋으라고 닭 뼈로 맑은 육수를 내었다. 아기를 그대로 집에 둘 수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두용이 아기 목욕시키라고 가져다 준 빨간 다라이가 생각이 났다. 산후 조리 기간에 쓰던 두꺼운 이불도 준비했다.
냉풍욕장에 아기가 나타나자 대여섯 명의 상인들은 욕장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들을 바깥으로 내쫓아주었다. 정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아기의 교육을 위해 간혹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었다. 그러나 클래식을 듣다가 몇 번이나 조는 바람에 윤씨에게 퉁박을 먹곤 했다. 그래도 정은 그들 모녀에게 최선을 다해 마음을 써주었다. 아기가 잘 때는 성인 가요를 조그맣게 틀기. 흐엉이 자신을 바라봐준다고 느낄 때마다 눈웃음 지어주기. 흐엉이 없을 때 우는 아기를 들어다 윤씨에게 맡기기. 언젠가는 흐엉에게 살사를 가르치게 될 날이 올 테니 그때를 위해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기!
정은 나름대로 무척 바빠졌다.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흐엉은 이곳 사람들이 밥보다 더 즐겨 먹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밥을 먹자마자 컵이든, 먹던 밥그릇에든 봉지 커피 한 잔씩 타는 시간은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끝에 흐엉은 얼마간의 돈을 친정에 부친 후 베트남 커피를 공수해왔다. 처음엔 맛이 진하다느니, 느끼하다느니 하던 사람들이 쌀국수 먹은 다음엔 베트남 커피가 제격이라며 한 잔에 천 원이나 하는 커피를 사먹고 돌아갔다. 어느 날엔가는 쌀국수보다 커피를 더 많이 팔기도 했다.
두용도 매일 점심을 먹으러 욕장에 들렀다. 한 그릇이라도 더 팔아주려는 심산이었으나, 이제는 습관이 된 일이었다. 그러던 차에 두용은 정이 흐엉에게 야한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되었다. 흐엉이 잘 알아듣지 못하자 정은 몸소 보여주겠다며 일어서려다 두용의 강한 눈빛을 받았다. 그때부터 두용은 몹시 불안해졌다. 점심 먹고 돌아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새참을 먹겠다는 핑계로 시도 때도 없이 욕장에 들렀다. 맞은편 좌판에서 빤히 얼굴을 보며 장사를 하고 있던 정의 경계도 만만치 않았다.
하필 이렇게 중요한 때에 두용이 몰고 다니던 용달차가 경매에 넘어가게 생긴 것이었다. 흐엉의 죽은 남편 명의로 된 차였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흐엉의 남편은 생전에도 이미 파산 신고를 한 상태였다. 생전 처음 보는 문서들이 흐엉에게 날아들었고, 그곳에 무슨 말이 써 있는지 몰라 때마침 점심을 먹으러 온 두용에게 좀 봐달라고 내밀었던 것이다. 문서를 가지고 가서 꼼꼼히 살펴본 두용은 흐엉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해 혼자 속을 태웠다. 용달차는 물론이고 그녀의 앞으로도 삼백만 원이 넘는 큰돈이 채무로 남아 있다는 말을 대체 어떻게 꺼낸단 말인가.
두용은 우선 혼자서 해결해 보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저 신산한 삶을 사는 여자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산하기로는 두용도 만만치 않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 않았나. 그렇게 따져보니 두용은 흐엉과 자신이 엄청난 인연이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두용은 그 인연의 느낌을 믿고, 이제는 현실로 밀어 부쳐볼 작정이었다. 둘이라면 뭐든 못 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자 마치 복잡한 일들이 모두 해결된 것만 같았다.
잔뜩 술에 취한 안경쟁이가 앉은 채 잠들어 있는 것을 본 윤씨가 혀를 찼다. 안경이 그의 코 밑에까지 흘러 내려와 있었다. 그것을 다시 추켜 올려주다 윤씨는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살아서 늙었으면 자신의 아들도 이런 얼굴에 이렇게 생긴 주름을 만들었겠거니 생각하니 갑자기 술이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안 오면 궁금하던 사람 와서 이렇게 술 취해 자고 싶으니 마음은 놓였다. 하지만 윤씨의 할 일이 태산이었다. 정에게 조금 도와 달라고 해보고 싶은 생각으로 옆 좌판을 바라보았다. 정은 손님 셋을 모아두고 야바위 판 위에서 신나게 컵을 돌리고 있었다. 윤씨는 갑자기 혀를 차는 시간도 아깝게 느껴졌다.
윤씨는 전을 부치고 정성스럽게 과일을 깎았다. 어제 밤새 밥솥에 넣고 삭힌 식혜를 거르고, 오징어와 명태포를 잘랐다. 손님 받는 간간이 나물도 무쳤다. 윤씨의 옷매무새를 보아하니 무척 신경을 쓰고 온 듯한 검은 정장 바지 차림이었다.
시끌벅적하게 손님을 끌던 정이 여자 하나를 홀려 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소란에 잠깐 깨서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던 안경쟁이가 다시 술 반 주전자를 청해 받아들었다. 윤씨는 안경쟁이가 몇 번이나 입을 벌렸다 다시 닫곤 하는 것을 모르는 척했다. 오늘은 그의 주정을 받아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금 올 때가 되었는데 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이야 어떻게든 차려질 테니 시간만 가면 되는 것이고, 와야 할 사람들이 오지 않으니 애가 탔다. 한 해도 거르지 않던 이들이 올해는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녹슨 갱도를 훑고 올라온 바람이 오로지 윤씨에게만 불어오는 듯했다. 안 그래도 굽은 허리가 더욱 오그라들게 차고 습한 바람이었다.
두용은 흐엉의 좌탁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그리로 갈 수가 없었다. 흐엉은 마침 고향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처음 만났지만 생김새가 같고,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피붙이를 만난 것처럼이나 반가웠다. 신이 난 흐엉은 푸짐하게 말아놓은 쌀국수에 고기 지단을 듬뿍 얹었다. 아끼는 커피도 두 봉지씩 넣었다. 욕장에 놀러온 옆 동네 공장의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친정집과 가까운 곳에 살았다는 사람에게는 혹시 제 동생을 아느냐, 같은 학교 나오지 않았느냐며 재차 물어댔다. 물론 욕장 상인들은 흐엉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금쪽같이 아끼는 커피를 돈도 안 받고 타주는 것을 보며 지레짐작해볼 따름이었다.
정은 흐엉이 그렇게 말 잘 하고 크게 웃을 수 있는 여자라는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표정이었다. 두용도 다른 사람 보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 틈바구니에 끼어 국수 한 그릇을 아예 그냥 삼키다시피 했다. 이미 밖으로 나와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정에게서 흐엉이 오후 내내 저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려, 외론겨. …외로웠을껴.”
두 사람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무척 보기 힘든 일이었다. 곧 말이 끊겼다. 한 곳에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우면서도 그들은 각기 다른 생각으로 속이 복잡했다. 흐엉에게 용달차가 넘어가게 생겼다는 말을 전하러 온 두용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할 말을 잃었다. 정도 갑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름 열심히 추파를 던졌으나 저 여자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지 않아 심란해하던 참이었다.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욕장 안에서 그녀에게 들인 공이 얼마던가. 저 여자라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아기 하나가 딸려 있으니 살림을 차리더라도 훨씬 수월하게 가족의 모양새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었다. 이제 좀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댄스 교습소라도 차리면 밥벌이 정도는 거뜬하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욕장을 빠져나오는 바람이 흐엉의 목소리까지 나무 밑으로 옮겨다 주었다. 오늘 그녀는 유쾌하고 명랑한 아가씨 같았다. 정이 좌판으로 돌아가고, 두용은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급히 용달차에 올라 타 시동을 걸었다.
드디어 외국말 하던 인간들이 자리를 뜰 눈치였다. 정이 재빠르게 누가 흐엉에게 눈을 주고 있는가를 다 파악했다. 은밀히 다가와 산 채로 먹이를 포박하는 거미줄 같은 끈끈한 눈빛은 정이 그간 꾸준히 흐엉에게 보냈던 것이었다. 다음에 다시 오면 어떻게든 시비를 걸어 내쫓겠다는 다짐을 해두었다.
오늘따라 찾아오는 손님도 별로 없었다. 정은 그래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정의 생각으로는 ‘그 인간들 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밥 처먹고 간 지 몇 시간도 안 지난’ 오후 다섯 시. 두용이 또 왔다. 안 그래도 심기 불편한데 볼썽사나운 인간까지 욕장에 들어서자 정은 아예 이 냉풍욕장의 출입구를 봉쇄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갱도가 잠깐 숨을 멈추었다. 일순간 욕장 안의 모든 소리들이 잠잠해졌다. 윤씨가 바쁘게 움직이며 상을 차리는 소리만이 그 정적을 깨웠다.
시비의 발단은 두용이 가지고 온 바나나였다. 두용은 백화수복 중간짜리 한 병과 바나나를 가져와 술은 윤씨에게, 바나나는 흐엉에게 건네주었다. 흐엉을 향해 드디어 오래 고민하던 말을 꺼내려던 찰나, 정에게서 기습을 당했다. 정이 몰고 가던 리어카 바퀴가 두용의 바나나를 짓뭉갰고, 두 사나이는 드디어 싸워야 할 이유를 발견한 사람들처럼 곧바로 엉겨 붙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느니, 뭔가 흑심을 품고 다가온 거 다 안다느니, 흑심을 품다니 내가 무슨 연필이냐, 탄광이냐고 맞받아치는 사이에 흐엉이 말려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내들을 말려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베트남 말이 튀어나왔다. 이번엔 주위 상인들이 나섰다. 한동안 여러 사람이 엉켜 있었다. 지친 상인들이 뒤로 멀찌감치 물러섰다.
짚신도 짝이 있다느니, 니 짝을 왜 여기서 찾느냐며 누군가 되받아치는 사이, 찬바람이 그곳 사람들의 뼛속 깊은 곳에까지 스며들었다. 흐엉은 얼른 아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아기와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겉으로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외롭고 힘들 때마다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고 힘을 낸 적도 많았다. 그런데 하필 오늘은 말 잘 통하는 고향 사람들을 만난 까닭에 모처럼 속이 풀리던 날이었다.
“젓가락도 짝이 있고, 개구리도 짝을 만나 알을 낳는 거야! 저 여잔 내꺼야!”
결국 이 말이 정의 입에서 먼저 튀어나왔다.
“넌 젓가락이 아니라 구멍 난 수저여, 부러진 국자여 이 고자새끼야!”
두용이 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는데, 정은 급소를 찔린 사람처럼 우뚝 멈춰 섰다. 갑자기 이성을 잃은 정에게서 ‘저 애기는 내 새끼다’까지 나왔을 때 비로소 흐엉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울부짖었다.
“크만!”
뒤집어진 리어카와 짓뭉개져 죽처럼 변해버린 바나나, 두 사내가 실컷 깔아뭉갠 도토리묵 한 판이 널브러져 있는 냉풍욕장 한가운데였다. 잠시 멈췄던 갱도의 바람이 솔솔 올라와 싸움꾼들의 더운 이마를 식혀주었다. 싸움의 당사자들이야 창피하다 못해 죽처럼 변해버린 도토리묵 속으로라도 파고들어가고픈 마음이었다. 온몸에 들러붙은 뭉개진 바나나와 도토리묵을 떼어내며 두용이 동동주 한 사발을 청해 받아먹었다. 정은 고자라는 소리를 듣고 나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해 앉았다 일어섰다, 두용을 째려봤다를 반복했다. 별스럽지 않게 던진 나무젓가락에 아물어 가던 상처를 깊숙이 찔린 수컷이었다. 그러나 정은 이렇게 계속 화를 내다간 그 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로 느껴지는 계기를 제공하게 될까봐 간신히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서도 둘은 여차하면 다시 한 판 붙을 기세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지는 맨몸밖에 없지만, 열심히는 살 자신이 있는 사람이유. 그동안 고생한 거 지가 살면서 다 보상해 드릴게유. 애기헌티두 좋은 아빠가 될뀨! 암 생각 허지 마시구, 걍 저헌티로 오셔유.”
마지막 말을 하는 두용의 얼굴에서 지금까지 들러붙어 있던 도토리묵 한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멀리서 보니 마치 청혼하는 남자의 결심을 담은 눈물처럼 보였다. 정도 지지는 않았다.
“이봐, 나도 당신보다 못할 게 뭐가 있냐. 내가 춤만 다시 시작해봐. 흐엉씨 친정 사람들도 다 먹여 살릴 수 있어! 흐엉씨, 나도 좀 봐주세요!”
“저 인간 말뽄새 좀 봐?”
정은 다시 두용에게 몸을 날렸다. 그러나 이번엔 두용이 잽싸게 흐엉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는 재빨리 흐엉을 데리고 냉풍욕장 바깥으로 나갔다. 고무 다라이 안에서 혼자 놀고 있던 아기가 엄마가 사라지자 그쪽으로 기어가려고 다라이를 빠져나왔다. 불불불 기어가는 아기를 받아 안은 정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상을 다 차려놓은 윤씨가 욕장의 입구로 갔다. 화로의 불이 꺼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욕장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갱도에서 올라온 바람이 곧바로 욕장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 바람에 등을 떠밀린 윤씨가 내친김에 주차장에까지 걸어갔다 돌아왔다. 끝내 오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체념한 얼굴로 돌아온 윤씨는 상인들의 도움을 받아 교자상을 갱도의 입구까지 옮겨놓았다. 다른 이에게서 정이 옷을 갈아입으러 나갔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술에 취한 안경쟁이는 옆으로 고꾸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자남? 쯧, 쯔. 그렇게 술만 처먹다간 몸 베리기 십상이유. 대체 뭔 놈의 원수를 졌간디 술만 그렇게 드시는 거여. 그래도 오늘이니께 내 봐주는 거여. 몇 주전자 그냥 퍼먹은 거는 내가 그냥 드리는겨.”
몸이 거의 사선으로 기울어진 안경쟁이에게 반말과 존대를 섞어 말하던 윤씨는 동동주 주전자를 기울여 물 컵으로 쓰던 플라스틱 잔에 가득 따랐다.
“아덜만은 차라리 저 넓디넓은 바다에라도 나가 지 맘껏 돌아댕기다가 죽었음 내 원이 없겄소. 아들은 아직 시신도 못 찾았소. 거기도 보아허니 우리 아덜 또래 같은디 여서 맨날 이러고 있지 말고 세상으로 나서유. 술이야 언제든지 내가 내줄 테니 돈 벌어 딴 디 가서 엄한 년 구녕에다 술잔 붓지 말고 살다 지치먼 열루 와유. 그짝먼큼 나도 마시지는 모더지만 나는 술 빚고 전 지지는 건 자신이 있슈. 그러니 지발 여기 매일 와서 술타령 허지 말유. 어차피 한 번 사는 거니, 사람답게 대접받다 불러줄 때 가야잖겄슈. 안 그류?”
‘음, ……마.’
윤씨의 말을 듣고 간신히 자세를 고쳐 앉은 안경쟁이가 대답을 하는 대신 술잔으로 입을 가렸다. 내내 마음에 담고 있던 말을 한꺼번에 쏟아내느라 입이 마른 윤씨가 물 컵을 집었다. 오늘은 그녀도 맨정신으로 버티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과 남편의 제상 앞이 아닌가.
덜렁대던 갱도 입구의 쇠창살 하나가 유난히 몸 떠는 소리를 냈다. 안경쟁이가 물끄러미 갱도 쪽을 응시했다. 윤씨는 그의 눈빛을 모르는 척해주었다. 다른 상인들의 도움을 받아 제상을 갱도 입구로 옮기는 일이 더 바빴기 때문이었다. 정이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윤씨는 그제야 제상에 올릴 사진들을 싸고 있던 흰 보자기를 벗겼다. 정이 술을 따르고 향을 피웠다. 정이 절을 마치자 윤씨가 갱도에다 대고 말했다.
“잡수소. 내년에 또 차릴랑가는 모르겄소. 그라니께 많이 잡수소. 그러고 인자 내 꿈에는 나타나지 마소. 내 뭔 죄로 여태 이러고 사는가는 모르겄소만, 응환아잉. 너도 인쟈 엄마헌티 오지 마러. 좋은디루 가야지. 엄마 인쟈 더는 니 제상 못 봐줄랑가벼. ……다덜 안 오네. 어째 연락두 읎어. 그려, 잊었겄지. 허긴, 인저는 잊으야지.”
작정한 듯 말을 하다 혼잣말로 입을 씻은 윤씨가 모질게 발길을 돌려 좌판으로 돌아갔다. 갱도 입구에 놓인 제상에서 욕장의 입구까지는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으나, 윤씨에게는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잠시 잠잠하던 냉풍욕장의 바람이 매섭게 불어와 제상 위의 촛불을 꺼버렸다. 향도 금세 타들어갔다.
갱도를 타고 올라온 것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받아드느라 바쁜 시간이었다. 맑은 눈빛 하나가 올해도 제 엄마 솜씨는 변함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던 참이라 바람이 상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정과 윤씨가 음복으로 주고받은 술이 열 잔을 훌쩍 넘어섰다. 세찬 바람에 쇠창살 흔들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갱도로 내려가야 할 시간이 지났으나 맑은 눈빛은 냉풍에 풍화된 엄마의 얼굴 주름 사이사이를 짚고 있었다.
그때 두용과 흐엉이 돌아왔다. 주뼛거리는 흐엉과는 달리 두용은 조금 당당하게 걸어왔다. 잘 자고 있는 아기를 굳이 안아 올린 두용이 윤씨와 사람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저기, 있잖유. 즈이가 인저 살림을 합치기루 했슈. 지가 애기 아빠가 되기루 했단 말이유. 축복, 축복해 주셔유. 함 잘 살아볼튜.”
들어올 때만 해도 조금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던 흐엉은 옆에서 힘주어 말을 하고 있는 두용의 손을 꼭 잡았다. 천장에 매달아 놓은 전구의 빛을 받은 흐엉의 손에서 자그마한 것이 반짝, 빛났다. 두용이 데리고 나가서 흐엉의 손에 반지를 하나 사서 끼워주고 돌아온 것이었다. 용달차 이야기도, 그녀 앞으로 남은 빚 이야기도 모두 해버린 듯한 얼굴이었다. 두용이 용달차 안에 꽁꽁 숨겨두었던 비상금은 흐엉의 반지가 되었다. 연달아 충격을 받은 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제가 늘 끼고 있는 시디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한 번 들으면 아무나 사랑을 할 것 같은 애잔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오늘 처음 만난 당신이지만, 아니 이미 여러 번 만났지만 당신은 내 사랑이니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태도로 두용이 흐엉을 향해 몸을 날렸다. 흐엉은 놀라서 뒤로 물러서려다 두용을 바투 안은 꼴을 만들어버리고야 말았다. 여느 때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다가드는 두용의 모습에 드디어 흐엉도 굳게 쳐놓았던 마음의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 정은 삼연패를 당한 권투선수처럼 넋 나간 얼굴을 했다. 그러다 역시 자신의 아픔을 승화하는 길은 춤밖에 없다는 듯이 지금껏 몸에 익힌 춤들을 모두 추어대기 시작했다. 잠시 딴 여인에게 품었던 연정을 거두어들이니 예전의 그 신묘했던 손짓과 발짓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정은 결연한 얼굴로 춤사위를 계속 이어갔다.
흐엉을 안고 몸을 뒤흔들던 두용도 ‘얼쑤, 조오타!’고 소리치며 정에게로 달려왔다. 그 와중에도 흐엉의 손에 끼워준 반지를 한 번 쳐다보는 일은 잊지 않았다. 그녀는 반지 낀 손이 부끄러운지 등 뒤로 손을 감추고 있었다. 그러다 두용과 눈을 마주쳤다. 이제부터는 자신이 지금껏 억눌렀던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도 되지 않을까. 쓸모없이 망가져 버렸다고 여기던 자신의 삶에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어 마음껏 울고 싶어졌다. 고향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늙다리, 먼저 간 아기가 바람을 타고 머릿속에 다녀갔다. 그녀가 두 아이의 엄마였다고 해봤자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를 꽉 안고 서서 춤을 추는 두용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두용이 그 마음을 받아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살풀이인지, 살사인지 모를 춤을 추어대던 정이 윤씨가 있는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함께 장단을 맞춰주면서 입으로는 웃고 눈으로는 울고 있던 윤씨가 취기를 이기지 못해 주저앉으려던 찰나, 정이 윤씨의 두 손을 잡아 일으켰다. 다른 때 같았으면 손사래를 쳤을 텐데 윤씨는 거부하지 않았다. 관절염 걸린 양쪽 무릎이 삐걱거려 몇 번이나 주저앉으려 할 때마다 정이 잡아주었다. 역시, 여럿 잡아 이끈 손이라 그런지 우악스럽지 않은 부드러운 손끝이었다. 두용이 윤씨와 정의 가락에 맞춰 같이 몸을 흔들었다. 함께 구경하며 즐거워하던 사람들도 코가 빨개지도록 먹고 마시고 춤을 추었다. 노래는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어느새 당신의 꽃이 되겠다는 노랫소리를 흐엉의 목소리로 들어버린 두용이 때 아닌 만세를 불렀다.
잠시 숨을 돌리던 윤씨가 두용과 흐엉을 불러 세웠다. 음복하던 잔을 깨끗이 씻어 술을 한 잔씩 따랐다.
“잘들 살으야는겨.”
두용이 새신랑이 되어 잔을 받았고, 흐엉이 뒤이어 술을 받았다. 결혼식 피로연 음식은 낮에 윤씨가 마련해둔 교자상 위의 것들로도 충분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몰려와 그들을 에워쌌다. 정은 여전히 실연의 아픔을 살사의 스텝을 밞는 것으로 잊어보려는 듯이 욕장 한가운데서 스텝을 밟고 있었다. 거기에 끼어 가장 신나게 춤을 추는 것은 물론 두용이었다. 난생 처음 무대에 올라온 팔순의 촌로처럼 몸과 다리, 두 팔이 제각각 따로 놀았지만 요란한 추임새만큼은 단연 으뜸이었다. 흐엉도 막 잠에서 깬 아기에게 아버지가 누구인지 손가락으로 가르쳐주었다. 아기는 엄마 손에 매달려 있는 반짝이는 것에 더 관심을 두었다.
욕장 안의 바람 소리와 술 취한 사람들이 웃는 소리, 그리고 기쁜 영혼도, 상한 영혼도 모두 다 달래주는 가요의 애절한 노랫소리가 절절하게 울려 퍼지는 사이에 안경쟁이가 사라졌다. 윤씨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늘상 덜렁거리며 상인들의 귀를 따갑게 만들던 쇠창살 소리가 사라진 것도, 그 틈이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로 벌어졌으리란 것도 모두 짐작했다. 그러자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만 같아 윤씨가 휘청거렸다. 그런 윤씨를 잡아챈 것이 두용이었고, 윤씨마저 빼앗길 수 없다는 듯 정이 다가와 칠순 노인의 허리를 한손으로 감쌌다. 살사를 추자며 이끄는 손을 미처 따라가지 못해 윤씨가 다시 한 번 휘청거렸다. 재빠르고 유연한 동작으로 정이 윤씨의 허리를 추켜올렸다. 십 수 년을 꼬부라져 있던 윤씨의 허리가 곧게 펴진 채 앞으로 쏠리며 두 손으로 정의 어깨를 짚었다. 남사스러워 할 틈도 없이, 정이 살산지 살풀인지 하는 춤을 가르쳐 주겠다고 설레발을 쳤다. 두용도 흐엉을 잡아끌며 같이 살풀이를 추자며 까불었다. 이국의 살사가 두용을 만나 순수 토종의 몸짓이 되는 순간이었다. 노래와 춤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갱도가 어김없이 바람을 내어 그들을 차갑게 휘감았다. *
약력: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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