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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여는 말
첫 총평을 싣습니다.
<은수저> 첫 술을 뜬 3월 보다 묵직한 의미가 손에 느껴집니다.
후배 여성 시인과 소설가들을 위해 마음을 내어주신
황현산, 김인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긴 장마였습니다.
이제는 짱짱한 태양이 7월을 끌고 가는 중입니다.
쉬지 않고 마음과 글을 닦는 모든 여성작가들의 힘이 이러하기를 기원합니다.
<행드 맨> / 마린
아버지, 어머니, 나의 고전적 삼각형의 변형 위에서 전개되는 사건구성이 흥미롭다. 아버지를 싫어하고 어머니를 좋아한다는 것이 어린 아이의 정상적인 행동이라는 가설이 이 소설 속에서는 역전된다. 병든 남편과 다친 아들에게 헌신하는 어머니의 이미지가 현저하게 약화되어 나타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좀 이상하다. 약화가 오히려 강화의 효과를 발휘하도록 좀 다듬어 볼 수는 없었을까? 그와 그녀가 아버지와 그 여자의 관계를 복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그녀와 그 여자의 간극에 이 소설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화구상 아버지는 화가인 그 여자를 찾아다니다 병이 들고 화구상 아들은 보육원 교사인 그녀를 찾아다니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지각의 신선함을 전달하는 문체가 작가의 내공을 감지할 수 있게 한다. 거대한 고독이 우연을 필연으로 바꿔놓는다.
<겨울 모서리> / 장정희
특수한 내적 경험의 기록이다. 인간에게 시간은 언제나 무언가 좀 모자라는 장소이다. 시간은 결여의 장소이며 악과 불행의 장소이다. 지선의 찬밥을 따뜻한 제 밥과 바꿔먹고 객지에서 지선에게 몸 녹일 자리를 마련해 주던 미수의 정신적 곤경을 통하여 작가는 우리의 소통이란 것이 얼마나 불충분한 것인가를 절실하게 보여준다. 마음의 불편을 피하려는 이기심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 배려로는 실제로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최소한의 돈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하는 남편은 노동 자체를 포기하였고 세 아이를 위해 건강식품과 화장품을 들고 거리를 떠돌던 미수는 외계인의 공격에 쓰러졌다. 소설은 치유된 미수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나지만 미수의 말에서 지선이 어딘가 공허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치유의 불안함을 말하는 것인 듯하다. 미수는 시간의 드라마를 불안의 끝에 이를 때까지 겪어내었다. 끝까지 가 보았다는 바로 여기에 희망의 싹이 들어 있지 않을까? 소설 전체가 지선의 시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미수의 의식과 신체를 묘사하는 들머리의 전지서술은 효과적으로 사용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외출> / 박병례
남편의 돌연사로 실직자가 된 전업주부와 강의를 배정받지 못한 비정규직 대학강사. 이 두 사람의 대조에 초점이 맞춰졌더라면 좀더 흥미로운 소설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이 소설의 거의 대부분이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집식구와 친정식구의 갈등으로 채워져 있다. 며느리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시어머니의 시선과 그에 대항하여 딸을 옹호하는 친정어머니의 시선, 바람 맞은 남편과 바람난 큰 딸과 집에 찬바람이 이는 작은 딸에 대하여 불평을 늘어놓는 여자의 푸념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리얼리티가 들어 있다. 충만한 행복이라는 것은 부재로서만 존재한다. 인간에게 상상력이란 현재로부터 도피하는 능력일 뿐이다.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만으로는 소설이 되지 않는다. 소설은 불행의 기록이 아니라 불행한 사람이 대상을 지각하는 방식의 기록이다. 이 점에 있어서 이 소설의 사건들은 조금 서둘러 전개되는 감이 있다. 지각이 제풀에 풀려나가도록 자연스러운 상태로 놓아두는 연습이 필요할 듯하다. 지각에는 감정과 관념보다 색채와 음향이 더 많기 때문이다. 소설쓰기를 포기하고 파출부, 과외강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자가 시를 쓰면서 영어학원 강사, 숲 해설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자를 부러워한다. 시 쓰기는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들여다보아야 할 많은 것들을 빠르게 스쳐지나간 후에 소설의 방향은 비정규직 강사의 이야기로 급격하게 전환한다. 불안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만났다. 정규직 아내와 비정규직 남편의 갈등이 비극적 사건으로 증폭된다. 명시되지 않고 암시되었기 때문에 약점이 노출되어 있지는 않으나 나는 작가에게 돌발적 결말보다 정면 승부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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