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9, 루비레드
강 진
1.
지난 3년 동안 아이는 자동차 색상 코드를 외웠다. 트럭 짐칸에서 놀다가 아버지가 소리치는 색상 코드의 페인트 통을 찾아주던 것이 계기였다. 트럭 짐칸에는 사백여 개의 페인트 통이 실려 있다. 똑같아 보이는 빨간색이지만 어느 회사, 어떤 차종이냐에 따라 자동차 색깔은 조금씩 달랐다. 물론 사용하는 페인트도 달랐다. 아이는 그것이 신기했다. 처음엔 그랬다. 나중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하루 종일 아버지 트럭 옆을 지켰다. 학교에 안 간다고 몇 번 아버지가 화를 냈지만 곧 포기했다.
이제 차만 봐도 아이의 머릿속에는 그 차의 색상 코드가 저절로 떠올랐다. 때론 입으로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아이의 색에 대한 집착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도 맨 먼저 그 사람이 입은 옷의 색을 봤다. 그리고 그 색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색상 코드로 나눴다. 사백여 가지 색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아이에게는 존재하지 않은 세계나 다름없었다. 아이에게 세상은 색상 코드로 읽혔다.
두만강을 건넜고, 국경을 넘었던 아이는 이제 열다섯 살이 되었다.
2.
앞에 세워진 빨간 스포츠카의 색상 코드는 R9, 루비레드다. 물론 아이의 기억이 맞다면. 이번에는 아이도 자신이 없다. 루비레드는 결코 흔한 색은 아니다. 자동차에 뿌려지는 빨간 페인트 중 가장 순도가 높은, 선연한 핏빛을 닮은 색이다. 아이는 R9, 루비레드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엔진 룸 안으로 상체를 깊숙이 들이민다. 라디에이터는 아직 뜨거울 것이다. 열기가 채 식지 않은 라디에이터에 아버지의 배가 닿을 듯하다. 보닛 안쪽 차대번호가 찍힌 곳을 장갑 낀 손으로 문지른다. 기름 더께가 두터워 음각된 색상 코드가 잘 보이지 않는 걸까. 아버지는 한참만에야 엔진 룸 밖으로 몸을 꺼낸다. 안쪽 홈에 고정시켜 놓은 고임쇠를 내린다. 보닛이 떨어지며 큰 소리가 난다. 탁.
아이는 트럭 짐칸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페인트 통을 떠올린다. 짐칸에 실려 있는 페인트 중에서 R9, 루비레드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EEK, 다크레드처럼 자주 쓰는 색이라면 몰라도. 혹 찾는다고 해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페인트는 굳어버렸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느새 페인트를 찾으러 트럭 짐칸을 향해 걷고 있다. 비슷한 색으로 대충 칠할 생각인가. 아버지의 생각을 짐작해보려다가 그만둔다. 그것은 아버지가 판단할 일이다. 아이는 의자에 앉아 아버지 발밑에서 흩어지는 안개만 보고 있다.
오후 들어 안개는 더 짙어졌다.
3.
엄마를 데려간 것은 안개였다. 아이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날, 아이는 엄마와 두만강을 건너야 했다. 오후 5시 50분. 강 건너편 갈대가 흔들릴 거라고 엄마가 말했다. 그 갈대숲에서 아버지가 보낸 중국인 브로커가 기다릴 것이라고. 그러나 안개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어서 건너편은커녕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때 아닌 폭우로 강물은 불어나 있었다. 9월의 폭우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중국인 브로커가 갈대를 흔들어댔는지 알 수 없었다. 시계도 없었기에 엄마와 아이는 그냥 강을 건너기로 했다. 물에 들어가기 전 엄마는 뒤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통일이 되면 꼭 돌아오겠다고……. 중국만 가면 굶어죽지는 않을 거라는 아버지의 말을 엄마는 믿지 않았다. 사흘을 굶고, 엄마가 나무껍질을 삶기 시작하던 날 아버지는 혼자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갔다.
강물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엄마는 아이의 손을 꽉 잡았다.
물은 아주 차가웠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강물에 들어선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변방대의 교대시간인 6시가 지나면 경계가 삼엄해지기 때문이었다. 강물은 금세 아이의 허리까지 차올랐다. 강 중간은 아이의 키를 넘을 게 뻔했다. 아버지가 중국으로 떠나고 감시가 심해졌다. 이모가 몰래 갖다 준 옥수수 가루로 며칠을 버텼다. 아이의 동네에서는 목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앞서 있던 엄마가 뒤를 돌아봤다. 강물은 이미 엄마 어깨에 이르렀다. 그 지점에서 아이와 엄마는 잡았던 손을 풀었다. 잠시 후, 앞으로 나아가던 엄마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뒤이어 강물이 아이를 떠밀었다. 까치발을 하고 걷다가 아이는 그만 중심을 잃고 말았다. 물은 아이의 입으로 코로 밀려들어왔다. 몸 곳곳으로 파고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몸은 자꾸만 가라앉았다. 아이는 그렇게 휩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배가 고파서 물로 배를 채우던 날이 많았다. 물에서 비릿한 냄새가 날 때까지 꾸역꾸역 마셨다. 걸을 때마다 속에서는 꿀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똥에 박혀 있던 옥수수 세 알을 파내 먹던 것이 생각났다. 쥐를 잡았다. 불에 살짝 그을려 털을 벗겼다. 배를 가르고, 손가락으로 내장을 긁어냈다. 아이의 손끝은 아직도 그 미지근하고 물컹한 내장의 감촉이 선명했다. 내장이 있던 곳에 소금을 뿌리고 불에 익혔다. 머리도 꼬리도 뼈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웠다. 쥐를 먹으며 낄낄거리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은 듯했다. 아이는 거기가 죽음 바로 앞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죽는 것이 두려웠는데 막상 그 앞에 이르고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무섭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풀렸다. 그때 아이의 눈앞이 갑자기 환해졌다.
몸이 물 위로 떠올랐다. 강물이 더 이상 아이를 떠밀지도 않았다. 강물은 아이 키보다 얕아져 있었고 발이 강바닥에 닿았다. 옆에 허연 뭔가가 떠 있어서 아이가 얼떨결에 손을 뻗어 붙잡으려 했다. 물컹. 기분이 이상했다. 부풀대로 부푼 시체였다. 썩은 내가 진동했다. 회령 할머니집에서 나던 냄새랑 똑같았다. 굶어 죽었던 옆집 회령 할머니.
두만강을 무사히 건넜다. 아이는 갈대밭까지 뛰었다. 그리고 갈대 속에 몸을 묻고 토했다. 그제야 앞서가던 엄마가 생각났다. 무사히 건넜다면 갈대숲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몸을 낮춰 강을 내려다봤다. 아까 봤던 그 시체도 떠내려가지도 못하고 빙그르 돌고만 있었다. 더 먼 곳은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춥고 두려웠다. 몸이 떨렸다. 갈대가 흔들렸다. 아이는 떨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줬다. 하지만 저절로 계속 떨렸다. 이가 딱딱 부딪쳤다. 사위는 이미 어둑해졌다.
강 상류를 향해 조금씩 움직였다. 브로커를 만나기로한 지점보다 더 하류로 떠밀려온 것은 분명했다. 변방대의 교대시간이 벌써 지났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분이라고 엄마가 말했는데 10분이 아니라 30분쯤은 흘러간 것 같았다. 아이는 갈대가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조금씩 움직였다. 국경을 넘다 변방대에게 들키면 총살당하거나 바로 보위부로 보내진다는 것쯤은 아이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갈대숲 너머에서 들렸다. 아이는 재빨리 엎드렸다. 몸이 계속 떨렸고, 갈대가 부스스 소리를 냈다. 두 팔로 다리를 끌어안고 한껏 힘을 줬다. 바람 때문인지 갈대가 움직이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아이를 깨웠고, 아이는 플래시 빛을 손으로 가리며 몸을 일으켰다. 머리 위에 총부리가 겨눠져 있었다. 변방대였다. 그들은 아이에게 옷을 벗으라고 했다. 물에 젖은 옷은 잘 벗겨지지 않았다. 팬티만 남았을 때 그들 중 누군가 웃기 시작했다. 팬티는 여러 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 시키지 않았지만 아이는 무릎을 꿇고 손을 머리 뒤로 올렸다. 변방대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이들 사이에 떠도는 얘기들이 많았다. 비상금을 찾기 위해 항문이나 질을 후비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라는 것도 들었다. 다행히 그들은 아이에게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번갈아가며 아이의 젖가슴과 성기를 잠깐 더듬었을 뿐이었다. 낄낄거리는 소리가 불어난 두만강 물소리와 섞였다.
아이의 머리 위에 떠 있던 초승달이, 별들이 국경을 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이는 회령 보위부로 보내졌다.
4.
아버지의 걸음에 내몰렸던 안개가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차를 감싼다. 아이의 눈에는 모든 게 드라이아이스가 깔린 무대 위 소품처럼 보인다. 트럭이 소품이라면 아버지는 배우인 것이다. 트럭도 아버지도 안개에 묻힌다. 오후 들어 안개가 더 짙어졌다. 아버지의 동선을 따라 좇던 빨간 스포츠카 남자도 이제야 아이의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남자는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자동차용 왁스를 들어 올리며 아이를 쳐다본다.
독일제예요.
남자가 묻기도 전에 아이가 대답한다. 검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독일제 왁스는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다. 칠이 끝나면 아버지는 차 전체에 독일제 왁스를 뿌린다. 그다음 부드러운 천으로 닦는다. 차는 새 차처럼 산뜻해진다. 왁스는 아버지의 칠 솜씨를 한껏 돋보이게 해준다. 그쯤 되면 사람들은 십중팔구 독일제 왁스를 집어 들게 된다. 가격을 비싸게 부르는 것도 아버지는 잊지 않는다. 야야, 남한 생활은 별거 없어. 돈이 최곤기야. 돈만 있으면 돼. 돈만. 언제부턴가 아버지가 아이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남자가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힌다. 담배를 꺼낸다. 이마에 깊은 주름이 일자로 파여 있다. 마흔쯤 되었을까. 아이는 남자의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남한 사람들은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아이의 눈에 남자가 R9, 루비레드 스포츠카를 몰고 다닐 만한 나이로 보이진 않았다. 진바지 위에 가죽 재킷, 긴 부츠까지 모두 검은색으로 갖춰 입었다. 차 색상 코드로 말하자면 EEC, 블랙베타릭쯤 될 것이다. 남자는 입술을 삐뚤게 해서 끝만 약간 벌린 채 담배 연기를 토해냈다. 아이에게 무슨 말인가 하려다 빈 페인트 통에 재를 턴다. 남자는 아닌 척하면서 힐끔힐끔 아이를 살피고 있다. 남자와 아이 사이에 놓인 파란 플라스틱 탁자에는 담뱃불에 타 들어간 자국이 군데군데 흉터처럼 남아 있다.
아이의 짐작이 맞았다. 아버지는 R9, 루비레드가 아닌 EEL, 블랙체리 페인트 통을 들고 있었다. EEL은 R9보다 더 검은빛이 도는 빨간색이었다. 아버지로서는 최상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경화제를 평소보다 많이 섞고, 노즐을 타고 나오는 페인트 농도만 잘 조절한다면 아버지의 솜씨로 루비레드에 가까운 색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에게 걱정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해가 지면서 내리기 시작한 안개가 마음에 걸렸다. 습도가 높은 날 페인트 농도를 조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을 아이는 잘 알고 있었다. 페인트가 자동차 표면에 착색되지 않고 흘러내려 버리면 심하게 얼룩이 졌다. 돌려보내면 그만인데 이런 날 아버지는 왜 굳이 칠을 하겠다고 한 것일까.
아저씨 딸이에요?
남자가 묻는다. 아버지는 퍼티와 경화제를 섞고 있다. 네, 제 딸년입죠. 아버지는 북한 억양을 들키지 않으려고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가 남한에 와서 가장 크게 변한 것이 있다면 말수가 줄어든 것이었다. 탈북자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하지 않아서였다. 그건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퍼티 위로 시너가 더 뿌려졌다. 경화제와 시너가 섞이면서 하얗고 되직하던 퍼티가 금세 노란빛을 띠며 묽어진다. 적당히 걸쭉해진 퍼티를 아버지는 나무판 위에 살짝 발라본다. 퍼짐이 매끄럽지 않다. 경화제를 더 넣는다. 그러고는 스크래퍼로 퍼티를 섞는다. 조심스럽게 퍼티를 차 표면에 바른다. 너무 두껍거나 얇지 않게 펴 발라야 나중에 칠이 뭉치지 않는다. 스크래퍼를 한쪽 방향으로 끌어내리면서 퍼티의 두께를 조절한다. 아이가 감탄하는 것은 아버지의 그 정교한 손놀림이었다.
R9, 루비레드 남자도 어느 결에 아버지 뒤에 쭈그리고 앉았다.
5.
회령 보위부에서 아이는 열여덟 시간 넘게 양반다리로 앉아 있는 처벌을 받았다.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아이의 몸을 파고들었다. 추운데도 졸음이 쏟아졌다. 몸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매질이 가해졌다. 피멍이 들었고, 여린 살이 터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검은 피딱지가 온몸에 내려앉았다.
다리가 몹시 저렸지만 아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보다 무서운 것이 매질이었다. 차츰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것에 익숙해졌다. 시간을 견디기 위해 아이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들을 떠올려 되짚어보곤 했다. 유치원 때 외웠던 김일성 가계도를 차례대로 읊어보기도 했다. 김일성 장군의 노래도 불렀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 위에 역력히 비쳐 주는 거룩한 자욱,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아 그 이름도 빛나는……. 노래가 끝나면 다시 불렀다.
보위부에서 노동단련대로 이송되던 날, 아이는 자신의 오른쪽 다리가 마비된 것을 알았다. 발목이 꺾이지도 않았고, 꼬집어도 아프지 않았다.
노동단련대에서 어렵게 중국에 있는 아버지와 연락이 다시 닿았다. 아버지가 보낸 돈으로 노동단련대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아이가 두 번째로 국경을 넘을 때 두만강은 이미 얼어 있었다. 얼음 위로 얇게 눈이 덮여 있는 밤이었다. 아이는 나뭇가지를 의지해 강을 건넜다. 오른쪽 다리는 질질 눈을 쓸며 얼음 위로 끌려갔다. 약속대로 강 건너편에 중국인 브로커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잠깐 뒤를 돌아봤다. 아직 바다로 떠밀려가지 못했다면 자신이 밟고 건넜던 얼음 속에 엄마가 갇혀 있을 것이었다. 엄마, 아이는 속으로 엄마를 불렀다. 유치원 때 엄마라고 불러서 놀림을 받은 뒤로 처음으로 엄마라고 불러봤다.
열 살의 아이는 국경을 다시 넘었다.
6.
남자도 어느 결에 아버지 뒤에 쭈그리고 앉아 작업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아이는 고무 대야의 물을 확인한다. 조금 남아 있다. 젖은 수건으로 퍼티를 닦아내려면 퍼티가 마르기 전에 물을 떠 와야만 한다. 아이가 목발을 집어 들고 일어선다. 한 손으로 물통을 들고, 다른 손으로 목발을 짚는다. 남자의 시선이 출렁대고 있는 바짓단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구 뒤틀리고 있을 엉덩이에 신경이 쓰인다. 빨리 둑을 넘어서야만 하는데……. 마음이 바빠진 아이는 서둘러 목발을 앞으로 내딛는다.
정착금을 털어 아버지는 트럭을 인수했다. 차를 펴는 데 쓰는 장비들과 400여 가지의 페인트뿐만 아니라 찌그러진 차를 펴는 요령과 페인트칠 기술까지 배우기로 하고 지불한 돈이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손재주가 있는 편이었다.
처음에 아버지는 마음 내키는 대로 트럭을 몰아갔다. 올림픽대로를 달리다가 차를 세우기도 했고, 좁은 도로 가장자리에 짐을 풀기도 했다. 차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주차시킬 공간만 있으면 어디에고 아버지는 차를 세웠다.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를 따라나서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학교는 아이에게 적응하기 힘든 곳이었다. 아이가 가장 힘든 것은 아이가 느껴보지 못했고 배우지 못했던 단어들이었다. 교과서에 ‘사랑한다, 행복하다, 즐겁다, 불행하다, 억울하다, 저항하다’라는 말들이 나올 때 아이는 어색했다. 그런 말들이 나올 때마다 머뭇거리며 읽었다. 교실 안에서 다른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들도 아이에게 낯설었고 동떨어진 세계였다.
짐칸에서 ‘차 찌그러진 곳’이라고 쓰인 시옷 자 간판을 꺼내 세워두기만 하면 가게 문을 연 것이나 다름없었다. 간판의 다른 경사면에는 ‘부분 도색’이라는 파란색 페인트 글씨가 박혀 있었다. 물론 트럭 짐칸에는 에어컴프레서나 작은 모터, 그리고 색상 코드가 다른 페인트들이 실려 있었다.
간선도로와 접해 있으면서도 바로 위로 고가도로가 지나가는 지금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은 1년 전쯤이다. 차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도로면서 사람들의 통행은 적었다. 아버지가 일하기엔 적당한 곳이었다. 우선 구청에 민원이 들어가지 않았다. 칠 작업은 휘발되는 시너 냄새와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뿌려지는 페인트 자국을 남기기 일쑤여서 사람들의 신고가 자주 들어갔다. 한 번 단속이 나온 곳에서는 다시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온 후 민원이 한 번도 안 들어갔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가끔씩 경찰이 와서 트럭에 주차 위반 딱지를 붙이고 가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그러나 누가 민원을 넣은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경찰이 매일 찾아왔다. 아버지가 돈을 건네려했다. 하지만 그 경찰은 도리어 아버지에게 큰소리를 치며 거절했다. 철수 날짜도 못 박았다. 오늘이었다.
목발 끝이 흙 속에 깊이 묻힌다. 간신히 다음 걸음을 옮기려는데 돌을 짚다가 목발이 미끄러진다. 몸이 휘청하고 한쪽으로 쏠린다. 몇 달째 계속되고 있는 하천 정비 사업으로 땅바닥은 파헤쳐지고 큰 돌들이 드러나 있다. 언덕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조심스럽다. 얼마 전 물을 담으러 언덕을 내려가다가 발과 목발이 꼬이면서 나뒹군 적이 있다. 다행히 물에 빠지진 않았지만 둑방 위에서 아래로 몇 바퀴 굴렀다.
담배를 꺼내 문다. 아버지 담뱃갑에서 슬쩍해 둔 것이다. 깔고 앉은 물통 사이로 눅눅한 기운이 올라온다. 라이터는 몇 번의 불꽃을 번뜩였지만 끝내 불이 붙지는 않는다. 아이는 담배 허리를 꺾어 던진다. 검은 물 위가 흔들리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안개마저 물을 따라 흐르고 있다. 이제 막 불을 밝힌 가로등이 건너편 허공에 점점이 돋아난다. 물 위로 가로등 빛이 반사되지만 그것은 마녀들이 가지고 있던 요술구슬 안에서 반짝이는 빛 같다.
7.
토굴이었다. 먼저 중국으로 간 아버지가 토굴에서 살고 있었을 거라고 아이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 뒤를 따라가며 아이는 계속 두리번거렸다. 두만강을 건넜지만 안심할 처지는 아니었다. 앞서가던 아버지는 가끔 뒤를 돌아봤다. 한 시간쯤 올랐을까. 토굴 하나가 보였다. 땅을 파고 나뭇가지를 쌓아 벽을 만든 토굴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만한 곳이었다.
아버지가 거적을 밀치고 들어갔다. 낮인데도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아버지가 더듬어 촛불을 켜자 헌 옷을 찢어서 만든 이불과 냄비 하나, 요강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세간의 전부였다. 중국인뿐만 아니라 조선족까지 탈북자들을 신고하는 마당에 토굴만큼 안전한 곳은 없다는 것이 아버지의 설명이었다. 이제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고 돈을 더 모으면 남한으로 갈 수도 있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는 땅속에 묻어 둔 돈을 아이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물에 휩쓸려 간 엄마는 아버지 기억에서 사라진 듯 보였다. 아버지 목소리는 희망에 차 있었다. 적어도 아이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마비된 다리를 치료받기 위해 아이는 가끔 산을 내려갔다. 한의원을 찾아 침을 맞았다. 치료를 하는 동안에도 다리는 조금씩 썩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다리가 썩어가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침을 맞으러 가는 날이 기다려졌을 뿐이었다. 침을 맞으러 가면서 보는 거리 구경이 재미있었다. 중국의 작은 도시라고 들었는데 거리는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다.
겨울이 가기 전 아이는 다리를 자르는 수술을 했다. 병실에 입원해 있는 이틀 동안 아이는 창밖 구경에 몰두했다.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미얀마,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데 2년이 걸렸다. 길이 없는 밀림 속을 아이는 목발에 의지해서 걸었다. 험한 산길을 밤마다 걷고 또 걸었다. 아이는 매일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고, 또한 삶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8.
샌딩기 돌아가는 소리다. 퍼티가 완전히 굳기 전에 물걸레로 먼지들을 닦아내야만 한다. 아이의 마음이 바빠진다. 아버지는 칠이 들어갈 부분을 조심스럽게 갉아내고 있다. 본래 있던 붉은 페인트 사이로 허연 칠이 드러난다. 녹 방지용 페인트였다. 샌딩기에 붙어 있는 사포를 더 고운 것으로 바꾼다. 흰 가루가 후덥지근한 공기 속으로 날린다. 가루들이 끈끈한 몸에 들러붙기라도 할까봐 아이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난다.
이번에는 에어컴프레서에 불을 붙일 차례였다. 안개 때문에 불꽃이 일어날지 아이는 미리 걱정한다. 아버지가 에어컴프레서 줄을 잡아당긴다. 역시 불꽃이 튀지 않는다. 툴툴. 모터는 이내 꺼져버린다. 남자가 도와주려고 아버지 앞으로 다가선다. 둘이서 이번에는 아주 힘껏 줄을 잡아당긴다. 크르렁, 모터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에어컴프레서가 켜진다. 감겨 있던 호스를 풀어 에어컴프레서를 차 가까이 끌고 간다. 기계 속에 압축되어 있던 공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호스 끝을 빠져나온다. 모래들이 튀어 오른다.
페인트가 뿌려질 곳을 처음엔 젖은 걸레로, 다음엔 마른걸레로 닦는다. 사방으로 튀는 페인트를 막기 위해 미등과 브레이크 등을 비닐로 감싸고 테이프로 비닐을 고정시킨다. 그리고 타이어 위에 수건을 올려놓는 것까지 잊지 않는다. 호스 끝에 노즐을 끼우고 페인트를 분사하면 된다.
칠을 위해 아버지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성급한 사람은 기다리다가 그냥 차를 가져가기도 했다. 그러나 한 번 칠을 맡겨 본 사람들은 아버지를 다시 찾아왔다. 색의 농도를 맞추는 솜씨는 정교했다. 자동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색이 바래고 처음의 광택을 잃어간다. 대형 정비업체의 컴퓨터에는 차의 종류와 그 차 본래의 색상 코드가 입력되어 있을 뿐이다. 바래고 광택을 잃어버려 이미 달라져버린 색상 코드를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이 작은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아버지는 손목만을 움직여 칠을 한다. 노즐을 타고 나온 붉은 페인트가 차 표면에 붙는다. 퍼티가 먹여진 위로 얇은 페인트 막이 덮인다. 블랙체리로 루비레드를 내려면 평소보다 약간 얇게 칠을 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조금 뒤로 물러서며 페인트를 분사한다. 쭈그리고 앉아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한 손으로 코를 가린다. 휘발되어 나온 냄새가 역겨운 모양이다.
지금처럼 비산(砒酸)을 계속 들이마시면 마비 증세가 올 것이라고 의사는 충고했다. 아버지의 체중이 급격하게 줄고 있는 것도 모두 페인트에 섞여 있는 비산 때문이라고 했었다. 의사는 정밀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팔뚝에 돋아난 수포들만 치료하면 된다고 우겼다. 정착금을 털어서 배운 기술인데 이 일을 그만두라니……. 병원 문을 나서며 아버지는 부아를 냈다. 호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마스크도 쓰레기통에 버렸다.
노즐은 구멍이 큰 것에서 점차 작은 것으로 바꿔줘야 한다. 여러 겹의 칠을 얼마나 얇게 또 고르게 하느냐가 중요했다. 이제 막 아버지는 구멍이 가장 작은 노즐을 끼웠다.
아이는 다리가 아팠다. 잘려지고 없는 다리의 무릎과 발목이 심하게 아팠다. 가끔씩 있는 일이었다. 다리는 잘려졌지만 뇌는 아직도 다리가 있다고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의 삶은 두만강을 건널 때 잘렸다. 지금은 배고파서 물로 배를 채우지도 않는다. 쥐를 찾아 들을 헤매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도 가끔 꿈속에서 배가 터져라 물을 먹기도 하고, 뱃속에서 들려오는 꿀럭거리는 소리 때문에 놀라 잠이 깨기도 한다. 언제나 아이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쁜 기억이었다. 기억은 하나가 사라지기 전 다시 쌓이고 다져지며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휴대용 가스통에 불을 붙인 아버지는 방금 입혀진 페인트 위를 그을린다. 페인트 위에 불이 붙었다가 꺼진다. 안개만 아니었다면 일이 다 끝났을 시간이었다.
어디 가네?
트럭에.
트럭에만 있어라.
트럭을 향해 걷는 아이의 등 뒤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잠시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할지 몰라 허둥댄다. 안개 때문에 트럭이 보이지 않는다. 그 방향마저 분간하기 어렵다. 분명 얼마 전까지 어렴풋이나마 보였는데 그새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도로 위는 차들로 빼곡하다. 정체는 밤늦도록 이어질 것이다.
9.
춥다. 가만히 있어도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옷도, 머리칼도 축축하다. 발길에 페인트 통들이 차인다. R9, 루비레드를 찾으려고 아버지는 안쪽에 있는 페인트 통까지 꺼내 본 모양이다. 아이는 매트리스에 풀썩 주저앉는다. 옷도 갈아입고 페인트도 정리해야 하는데 다리가 아프고 몸이 자꾸만 가라앉는다. 아이는 누운 채 몸을 굴려 티브이를 켠다. 5인치 화면이 밝아진다.
뒤쪽 천막이 한차례 출렁인다. 숨을 죽여보지만 밖은 조용하다. 빼꼼 젖혀진 천막 너머엔 그야말로 온통 안개다. 엄마를 데려간 안개가 생각난다. 죽음의 문 앞에 있을 때 아이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다리에 통증이 느껴지고 살아 있는 것이 실감나면 아이는 두려워졌다. 아이는 사백여 개의 페인트 통 사이에 누워 색상 코드를 차례로 되뇌어 본다. 아이가 외우고 있는 색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아이에게는 없는 세계나 다름없다.
EEA 화이트솔리노, BPE 화이트펄, EEC 블랙메탈릭, NBE 네오블랙, GBE 그레머베이지, ABE 아틀란틱 블루, AKE 알파인카키…….
천막을 젖히고 누군가 들어온다. 루비레드 남자다. 자동차에 뿌려지는 색 중 가장 순도가 높은 붉은색의 스포츠카를 끌고 왔던 그 사람이다. 남자의 발길에 페인트 통이 이리저리 굴러 파열음을 낸다. 아이는 일어나 세워두었던 목발을 잡으려 한다. 그런데 그 순간 잘려지고 없는 오른쪽 다리에 통증이 몰려온다.
몸을 구부린 사이 남자는 아이를 매트리스 위로 떠민다. 가만있어. 돈은 네 아버지에게 냈어. 남자는 벨트를 풀고 바지를 벗는다. 아버지, 하는 소리가 목구멍 앞까지 나왔다가 들어간다. 여기서 고함을 친다고 해도 아버지는 달려오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밖은 온통 안개가 아닌가. 형체를 감춰버리고 소리까지도 묶어버리는 안개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지 않은가. 남자는 아이의 웃옷을 낚아채듯 잡아당긴다. 단추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구르는 소리가 트럭 안에 울린다. 안개 때문인가. 아이에게 이 장면은 언젠가 꼭 꿈속에서 본 것 같다.
남자가 긴 부츠를 신은 채 아이 몸 위로 올라온다. 아버지는 지금쯤 마지막 칠을 마치고 광택제를 뿌리고 있을까. 페인트는 투명하게 덧입혀진 광택제 아래서 본래의 색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며 또 빛을 발할 것이다. 남자의 부츠에 달려 있는 지퍼 고리가 살갗에 스친다.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소리를 아이는 주워 삼킨다. 그러고는 입을 더 꼭 다문다. 티브이의 불빛에 심하게 일그러진 남자의 얼굴이 드러난다. 이마의 주름이 점점 깊어진다. 갑자기 아이가 비명을 지른다. 이제 아이는 자신의 몸 어디에서 그런 통증이 몰려오는지 알 수가 없다. 아이가 몸을 뒤튼다.
이거 뭐야. 피잖아?
남자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다. 허둥지둥 속옷만 꿰입은 채 옷을 들고 남자가 트럭을 빠져나간다. 그의 발에 걸린 페인트 통 몇 개가 땅바닥으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낸다. 살갗에 뜨뜻한 것이 와 닿는 것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피가 흘러 나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타구니를 손으로 만져본다. 끈적끈적하다. 비린내가 난다. 점점 짧은 간격으로 통증이 찾아온다. 가랑이 사이로 뜨뜻한 액체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매트리스 위는 벌써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피범벅이 되어 있다. 아이는 몸을 외로 틀고 몸을 웅크린다. 화면이 바뀔 때마다 티브이 푸른 불빛이 깜박거린다.
지금쯤 아버지는 연장들을 치우기 전에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있을까. 칠이 잘되었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휴대용 가스통에 불을 일으켜 도색된 부분의 페인트만 말리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습도가 높은 날에 칠이 흘러내리지는 않았을까. 더구나 아버지는 R9, 루비레드를 블랙체리로 대신하지 않았는가.
손바닥에 피를 묻힌다. 티브이에서 새어 나오는 푸르스름한 불빛에 핏자국이 번들거린다. 햇빛 아래서 이 피는 루비레드처럼 보일까. 아이는 잠깐 생각한다. R9 루비레드는 자동차에 뿌려지는 빨간 페인트 중 가장 순도가 높고, 건강한 핏빛을 닮았다.
아이는 차 바닥에 손으로 피를 펴 바른다. 얇게 여러 번 칠하는 것이 중요해. 아이가 중얼거린다. 점점 더 넓게 칠한다. 아버지가 찾지 못한 이 색을 보여주고 싶은데 밖은 아주 조용하다. 아이는 누군가를 불러 이 색을 보여주고 싶다. 부를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소리는 목안에서 맴돌다가 잠기고 만다. 아이가 기억하고 싶은 것은 사백여 가지 자동차 색상 코드뿐이다. 거기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아이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다. 사랑한다, 행복하다, 즐겁다, 불행하다, 억울하다, 저항한다. 이런 말을 아이는 잘 모른다. 아이의 세상은 색상 코드 안에 있다.
SSE 스포티실버, GXE 그레이, OVE 올리브, BSE 블루이쉬실버, RSE 레드메탈릭, RBE 레드브라운, BUE 솔리드블루…….
살짝 젖혀진 천막 밖엔 안개뿐이다.
약력: 2007년 <현대문학> 신인상에 /'/건조주의보/'/가 당선 소설집 <너는, 나의 꽃>이 있음.
|
회원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