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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큐어 바르는 밤
최옥자
창틀에 걸려 있는 착차스에서 안데스 고원이 열린다 라마 발톱을 꿰어 만들었다는 착차스를 흔들며 라마지기 소녀가 노래 부른다 궁핍하게 살고 싶지는 않아요. 나도 이제 이 산을 내려갈래요. 제발 그대여 여기 머물러주세요.* 소녀의 노래에 맞춰 라마는 4분의 1박자로 걷는다 안데스의 가파른 등성을 오르내리는 발걸음마다 밟힌 자갈이 골짝으로 굴러 떨어지고, 키 작은 풀꽃들이 발가락 사이에서 피어오른다 저 착차스가 완성되려면 몇 마리의 라마발톱이 필요했을까? 모양이 다른 발톱들이 부딪고 부딪히면서 매끄러워지는 시간들
안데스의 빙하 녹은 개울물소리 계곡을 깊이 돌아 온 바람소리 구르는 자갈소리들이 들렸어 바람이 숲처럼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지 내 의식은 또렷하게 그날의 박자를 기억하고 있는데 왜 늘 엇박자였을까 우리는, 라마발톱에 배어있는, 얼굴이 벌게지도록 내뱉은 네 담배연기에 호흡이 가쁘다 착, 착, 박자를 맞춰 봐 내 사랑의 타이밍을 맞춰 봐 차르르르, 흐르는 소리로 저 라마처럼 걸어가는 거야 소녀의 노래는 이미 끝났다 방 안에는 네가 떠나면서 남겨둔 착차스 홀로 안데스의 여름날을 노래한다 차르르 착착 차르르 착착 박자를 맞추며 서로에게 스며들며
나는 착차스의 기억 위에 검은소용돌이를 그린다
가마우지가 나는 법
최옥자
가마우지가 물 위를 활주로 삼아 달려간다
크고 무거운 날개 펴고 물의 이빨을 견디고 있다
물은 아가리 열어 가마우지의 발을 덥석 삼킨다
물의 아가리를 전속력으로 빠져나온 가마우지의 발이
노오란 발자국을 남기며 수면에 물수제비를 뜨지만
날아오르지 못하고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허공을 가늠 한 후 도움닫기로 또 다시 물에 뛰어들어
물갈퀴 벌려 물의 표면과 수직으로 만난다
지치지도 않는 저 반복의 승패를 좌우하는 건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의 문제
결과는 추락하거나 날아오르거나 둘 중 하나이다
해종일 공사장 사각의 체 앞에서 그리움을 거르는
얼굴이 검은 저 페루남자가 기를 쓰고 날고 싶은 하늘처럼
물이 단단해져야 열리는 곳으로
가마우지는 달리고 또 달려간다
약력: 2009년 <내일을여는작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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