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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9회
서강을 흐르는 섶다리에 앉아
이정숙(시인)
아직도 남아있는 서강의 섶다리를 흐르는 바람을 보았습니다.
돌다리와 낙엽송이 서로 어울려 휘청거리며 강을 가로지르는 섶다리는 그 물
살로 하여 죽어버린 낙엽송의 싹을 틔우게 하고 다리에 걸터앉아 마치 배를 타
고 가는 듯한 일렁임을 느낍니다.
강둑엔 노란 민들레꽃밭과 흰제비꽃들이 군락을 이루어 피어있고 그곳의 산들
은 이제 봄입니다. 희디흰 돌배꽃과 피어나는 철쭉, 복숭아꽃과 산벚꽃들이 어
울려 잔잔한 수채화를 그려놓고... 그 다리 건너가다가 여울에 까맣게 점처럼
박힌 올뱅이를 주워봅니다. 돌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빨판을 거둬들이는 그 생물
의 생존본능에 지레 무안해져서 얼른 물로 돌려줍니다.
먹거리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한 생물의 생존본능에 저도 모르게 잔잔한 소
름이 돋는 것은 아마도 자연이 주는 친화감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지나가는 뒤를 따라가다가 문득 장난기가 발동해 발을 구르니 다리가 휘
청하며 그가 몸의 균형을 잃습니다.
"위험해... 빠지면 어쩌려고!!"
"햇살 좋은데 빠지면 되지 뭐. 그리고 젖은 옷은 말리면 되고"
섶다리를 지나는 행인을 기다리던 그는 지나가는 사람이 없자 나를 모델로 세
워 사진을 찍고... 그러다 근처에 사는 동생부부를 불러들입니다.
그가 돌을 들추며 동생을 기다리는 동안 민들레군락으로 올라갑니다.
너무도 여리고 고운 노란꽃들이 마치 융단을 펼쳐좋은 듯 산등성에 오밀조밀
펼쳐져 있어 꽃의 요정이 된 듯 그 가운데 앉아 그 꽃잎들 하나씩 어루만집니
다. 너무 이뻐 그를 불렀지만 사진을 찍는 그는 오늘 흑백필름을 들고 온 탓에
노란 민들레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강가 자갈밭 사이에는 흰색의 제비꽃들이 쏘옥 그 여린 고개를 내밀고 혹시라
도 그 꽃들 밟을세라 까치 걸음 걷습니다. 그도 다가와 그 꽃들을 보고는 희귀
한 꽃이라며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물살에 돌을 던지며 강바람에 홀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시누부부가 도
착합니다.두 사람은 집에 온 손님 부부와 함께 족대며 물옷이며 매운탕거리까지
챙겨왔습니다. 남자들 셋이 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는 동안 시누는 매운탕을 준
비합니다. 장화가 달린 물옷을 입고 족대를 들고 강에 들어간 그는 흡사 개구장
이 같습니다.
"아가씨... 오빠 저렇게 하니까 정말 개구장이 같지요. 이런데 오면 왜 저렇
게 아이가 되는지..."
"저 사람은 안그런가요 뭐. 여기 오면 코스가 정해져 있어요. 저렇게 이쪽 강
가에서 고기를 잡아 회해서 소주한잔 하고 가면 내가 매운탕 끓일 동안 저쪽 강
가를 뒤집고 와요. 그리고 매운탕해서 또 소주 한잔 하고 잡은 그 고기는 다시
집에 가서 매운탕 거리가 되고..."
"이젠 아예 셋이서 이 강가의 고기를 다 말릴 작정인가보네요. 하하하..."
가끔 시누부부와 그는 이렇게 강에 와서 자주 매운탕도 끓여먹고 고기도 잡는
지라 세사람의 손은 척척 제 할일들을 합니다. 민물고기를 만지지도 못하는 나
와는 달리 시누는 고기도 잘 만지고 회도 잘 떠서 남자들의 고기잡이에 종종 동
참합니다. 난 그저 곁에 앉아 그들이 하는 걸 지켜보다가 어설픈 어부들이 회를
안주해서 소주 한잔 하는 동안 시누가 날 위해 준비해 온 상추와 취나물로 쌈밥
을 먹습니다.
달게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먹는 쌈밥은 꿀맛입니다. 양이 적어 먹는 것
도 달갑지 않았던 내가 쌈을 우겨넣으며 먹자 시누는 신기한 듯 한마디 합니다.
"어쩔려고 그렇게 맛있게 먹을 때도 있네요."
"지금 시간이 몇신데요. 벌써 세시가 넘었는데... 그리고 여긴 또 야외쟎아
요. 나도 잘 먹어요..."
"그 몸에 먹어봤자지요 뭐. 맨날 새모이만큼 먹으면서... 좀 많이 먹고 살좀
쪄요. 어디 그게 몸인가 한줌도 안되면서..."
시댁의 형제들이 워낙 튼실한 탓에 마른 편인 난 언제나 시답쟎게 보이나봅니
다. 덕분에 난 우아하게 앉아 해주는 걸 먹고 지켜보기만 합니다.
매운탕을 올려놓고 강가의 둔덕으로 올라가 시누가 가르쳐주는 다래순이랑 홑
잎나물이랑 으름덩굴을 보는 사이 무언가 넘치는 소리가 납니다. 갑자기 시누가
황급히 뛰어가기에 덩달아 뛰어갔더니 매운탕이 넘치는 소리인줄 알았던 그 소
리는 뜯어놓은 라면을 훔쳐먹는 까마귀소리였습니다. 십분도 채 못되는 그 시간
동안 까마귀 한마리가 생라면을 반이나 넘게 먹었습니다.
"쟤도 생라면 엔간히 좋아하나보네...그새 이만큼 먹어댔으니..."
시누의 그 말이 너무도 재미납니다. 마치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 까마귀는
먹다남은 라면이 아쉬운 듯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내내 우리 언저리를 맴돕니
다.
먹음직스럽게 끓여진 라면 매운탕은 절로 군침이 돌아 먼저 밥을 먹은 나도
한숟갈 거듭니다. 젓가락을 가져오지 않아 뭘로 먹을까 하는 중에 두 오누이는
약속이라도 한듯 강가의 버들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기고 금새 뚝딱 젓가락을 만
들어냅니다.
"바깥에 나오면 이렇게 자급자족하는 거야."
차를 운전하는 시누남편과 난 제쳐놓고 두 오누이는 주거니 받거니 한잔씩 마
십니다. 같이 온 손님부부는 어제밤 술이 과했다며 사절하고...
"에이, 뭐야. 지난번 소주 두병이 모자라기에 오늘은 됫병을 들고 왔더니 반
도 못먹었쟎아. 그런데 됫병이라 그런가 술을 쏟아도 아깝지가 않네. 병소주는
한모금만 흘려도 너무 아까운데..."
"얌마, 질려서 어디 먹겠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됫병소주가 가당키나 하
냐?"
"오빠는... 여기 모자라면 어디 술 살 데나 있고??"
주고받는 술과 말들이 제법 푸짐하고 우린 그런 두 남매를 보며 매콤한 매운
탕을 말없이 먹습니다.
"오늘 덕분에 바람 잘 쐬었다. 잘 먹었고..."
"집에 가서 삼겹살 구워 한잔 더하고 저녁 먹고 가지 왜? 밤에 출근한다
며..."
"이제 가서 좀 자야지. 이사람도 할 일이 있고. 다음에 또 오지 뭐."
언제나 사람을 좋아하는 시누부부와 그렇게 헤어져 돌아오는 길...
술에 취해 옆자리에 앉아가던 그가 신발을 벗고 다리를 올려놓더니
"한잔 하고 옆에 앉아가니까 좋네... 어이 기사양반, 차 잘 몰아..."
"네에~~~ 편하게 한잠 주무세요. 집에까지 무사히 모시고 갈 테니까요."
차창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까지 서강의 바람을 닮아 달고 맑습니다.
(2001년 4월 26일)
*위 강원도 섶다리 사진 출처 http://my.netian.com/~atectman/dor3sub.htm
처음 올린 날: 2001년 9월 19일(수)
이정숙(시인) --------------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제천 출생, 1996년『민족예술』지로 등단.
홈페이지: http://my.netian.com/~leejspoem/main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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