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여우 씨와 식구들



김기정




생선가게 여주인은 늘 바빴습니다.
“어머나, 비늘이 반짝반짝 빛나네?”
“호호, 생선 맛을 아는 손님들은 우리 가게만 찾는다니까요.”
“장사가 잘 되나 봐요?”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예요. 그이는 가게 일엔 숙맥이고, 아들놈은 철부지랍니다. 호호.”
엄마는 생선가게 여주인입니다. 아빠는 고기잡이였고, 아들 수로는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나이였습니다.
그런 어느 날 엄마가 덜컥 병이 나고 말았어요. 엄마가 자리에 드러눕자, 아빠는 생선가게를 어떡할지 걱정했습니다. 생선을 모두 썩힐 판이었어요. 아빠는 바다에선 이순신 장군이었으나, 가게에선 막 이사 온 아이 같았으니까요.
아빠는 아들 수로를 불렀어요.
“엄마가 나을 동안, 네가 가게를 보아라.”
“제가 어떻게 생선을 팔아요?”
“손님이 돈을 내면, 생선을 주면 돼. 값은 다 써 놨다.”
이러고 아빠는 타박타박 바다로 나갔습니다.
수로는 생선을 파는 일이 영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엄마 일을 좀 도운 적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팔뚝만한 생선들을 구경삼아 한 일이었으니까요.
수로는 턱을 괴고 앉았습니다. 가끔 하품을 하면서 생선에 앉는 파리를 휘휘 쫓는 일이 고작이었지요. 엄마가 없으니 왠지 손님들 발길도 뚝 끊겼어요.
‘정말, 다행이야.’
손님들이 오는 게 귀찮았습니다. 생선을 파는 일 때문이 아닙니다.
첫 손님은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엄마가 아프셔서 어떡하니? 네가 가게를 잘 보겠니? 아빠는 어떠시니? 쯧쯧.”
오는 손님마다 똑같이 물을 게 뻔합니다. 아예 대답을 써 붙일까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많이 아파요.
전 견딜만하고요, 아빤 한밤중에 몰래 웁니다.>

하지만 아직 글씨를 쓸 줄 몰랐습니다. 게다가 엄마의 빈자리가 어떤 건지도요. 그저 놀지 못하고 가게를 지키는 게 싫을 뿐입니다.
수로는 집안으로 들어가 연필과 종이를 갖고 나왔습니다.


그림 읽을 줄 모르는 어른을 위해, 글로 써보면 이렇습니다.
<생선가게 봐 주실 분? 앗, 누구냐!>

그림 한 장이 생선가게 앞에 나붙었습니다.
하지만 점심때가 지나고 한참이 되도록,
‘내가 봐 줄 게요. 주인님은 어서 놀고 오셔요.’
하는 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던 강아지가 생선냄새를 맡고 킁킁거린 게 다였습니다.
수로는 다시 턱을 괴고, 긴 하품을 하면서, 휘휘 손사래를 치며 파리를 쫓았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심심하게 보낸 뒤였어요.
바다 쪽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고 모래먼지가 일었지요. 수로는 기척에 놀라 퍼뜩 고개를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하얀 구두에 갈색 양복을 입고, 길쭉한 모자를 쓴 이가 우뚝 서 있습니다. 생김이 꼭 여우같았습니다.
여우 씨는 검은 지팡이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더니, 모자를 벗으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당신이 주인이신가요?”
목소리는 아주 사근사근했고, 몸짓은 더없이 예의 바랐습니다.
“아니오. 아빠는 고기 잡고, 엄마는 아파요. 제가 대신 가게를 보는 중이에요.”
“그럼, 당신이 이 안내장을 만드신 분이군요. 정말 멋진 그림입니다. 이렇게 내 맘에 쏙 드는 안내장은 처음 봅니다.”
“예.......”
여태껏 수로에게 이토록 다정하게 말을 건넨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여우 씨는 빳빳한 수염을 손으로 만지작거렸습니다.
“제가 이 생선가게를 봐 드리겠습니다. 주인님은 어서 나가 실컷 놀고 오세요.”
“정말이세요! 이 가게를 봐 주실 거예요?”
“그럼요. 친절하게 생선 값까지 매겨 놓으셨잖아요. 전 맛있는 고기는 한눈에 알아본답니다. 여태 토끼나 쥐를 도맡아 맛보았습니다만, 생선도 고기인 건 매한가지니까요.”
수로는 좋아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럼 생선가게를 봐드리는 대가를 어떻게 치르시겠습니까? 이건 아주 중요한 약속이죠.”
“약속이라고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전 많이 바라진 않습니다. 더구나 돈이란 쓸데없는 물건이죠.”
“그럼 무엇으로 보답을 하나요? 제가 가진 건, 대추나무 작살 두 자루에, 대나무 낚싯대, 큰 소라껍데기....”
“걱정 마십시오. 그저 여기 생선들 가운데에 한 마리만 가져가면 좋겠군요. 어떤가요? 전 욕심쟁이가 아니랍니다.”
“진짜예요? 이 생선들은 모두 아빠가 어제 잡은, 싱싱한 거예요.”
“우린 척 보기만 해도 금세 안답니다. 정말 먹음직스런 생선입니다. 주인님은 아무 걱정 마세요. 밖에서 실컷 놀다 저녁때 들어오시면 됩니다. 그때까지 이 생선가게를 잘 봐 드리겠습니다.”
여우 씨는 마치 주인이라도 된 듯이, 이리저리 생선들을 들추어보았습니다.
수로는 벌써 동무들이 있는 바닷가로 달려가는 중이었습니다.
마을을 빠져나왔을 때, 날아가던 갈매기가 끼룩끼룩했습니다.
“생선가게는 어떡하고?”
“상냥한 여우 씨가 봐 주신대.”
바닷가에 다다랐을 때, 파도가 철썩철썩하였습니다.
“생선가게는 어떡했냐?”
“상냥한 여우 씨는 참 고마운 분이죠.”
.......
수로가 돌아왔을 때, 여우 씨는 생선가게 앞에서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손에는 생선 한 마리를 든 채로 말입니다.
“딱 맞추어 오셨군요. 말 잘 듣는 주인님답습니다. 장사가 아주 잘 되었답니다. 주인님 가게에는 싱싱한 생선뿐이니까요. 그럼 전 이만.”
여우 씨는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습니다.
생선이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돈주머니에는 돈이 가득했습니다. 정말 여우 씨가 그 많은 생선을 모두 팔아버린 것입니다. 전에 엄마가 가게를 보던 때도 이런 일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다음 날, 한낮에 그러니까 아빠가 타박타박 바다로 나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상냥한 여우 씨가 생선가게를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어요. 빨간 입술에, 짙은 눈썹을 그린 이와 분홍치마를 입은, 귀여운 이도 함께.
여우 씨는 버들잎 담배를 피워 물며 말했습니다.
“제 식구를 소개하지요. 바로 제 아내와 딸이랍니다. 혼자는 좀 미안도 하고, 손님이 많을 땐 손이 모자라지요. 주인님, 괜찮겠지요?”
여우 씨 아내와 딸은 상냥하게 인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어제 고등어는 제가 요리한 음식 가운데 최고였어요.”
“엄마가 생선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별미래요.”
“정말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저예요. 덕분에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럼 오늘도 부탁드리겠습니다.”
하고 수로는 서둘러 가게를 빠져나갔습니다.
다시 저녁이 되었고 생선가게에 왔을 때, 여우 씨와 식구들은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손에는 생선 한 마리씩 들고서 말입니다. 어김없이 생선은 다 팔리고 한 마리도 남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도 같은 시간에, 여우 씨와 식구들이 생선가게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형제들도 함께 왔습니다.
좀 살이 찐 여우 씨 형님은 겉옷을 벗으며 말했어요.
“아우님 말대로군? 이 가게 생선들은 정말 훌륭해. 이런 훌륭한 생선비린내는 정말 오랜만이야.”
“주인님 걱정 마시고 생선가게를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우린 고기라면 모두 최고 꾼들이니까요.”
날마다 생선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팔렸습니다. 거기에 하루가 지나자, 여우 씨 식구들은 더 늘어났지요. 삼촌, 이모, 그리고 사촌들..........
그렇게 엿새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수로는 생선가게 앞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거기에는 백 마리도 넘는 여우들이 우글거렸습니다. 어느새 생선가게를 찾는 여우가 그렇게나 많이 늘어난 것입니다. 그 동안 수로는 온통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렸으니까요.
여우들은 생선을 한 마리씩 들고 기다렸습니다. 생선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돈주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로는 걱정이 되었어요. 생선가게 앞에 여우들이 우글거리는 모습은 아무래도 달갑지 않았습니다.
“내 생선가게에선 한 분이면 돼요. 내일부턴 오지 마세요.”
그 말에 여우들은 아우성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가게는 우리가 봐 주기로 했는데.”
“고맙다고 할 땐 언제고 우릴 이제 쫓아내려 하는군.”
여우들은 워오오~하고, 발톱을 세웠어요. 몸을 뒤로 젖히며 동그란 눈알을 굴리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무서운 괴물로 둔갑할 기세였습니다.
이때 처음 왔던 여우 씨가 나서며 말했습니다.
“주인님, 우리를 실망시키시면 안 되지요. 약속을 잊은 건 아니시겠지요?”
“약속이오?”
“생선 한 마리씩! 게다가 주인님은 내가 식구들을 데려오는 것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우린 모두 한 식구들이니까요.”
여우 씨는 오히려 당당했고, 수로는 걱정스런 얼굴이었지요.
아빠가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하든 좋은 수를 내야 했어요. 안 그러면 아빠가 잡은 생선이 모두 여우 밥이 될 게 뻔합니다.
수로는 천천히 말을 꺼내었어요.
“약속이라면 아주 잘 알아요. 전 생선 한 마리씩 드리기로 했어요.
“맞습니다. 주인님은 역시 똑똑하시군요. 미리 말씀드리자면, 큰 형님은 한번 화나면 불같고, 이모님은 꼬리가 아홉이랍니다.”
수로는 좀 겁이 났지만, 또박또박 말했어요.
“잘 알겠어요. 여러분들은 싱싱한 생선을 먹고 싶은 거지요? 저와 약속할 때 분명 ‘싱싱한 생선’이라고 했잖아요.”
“암!”
“우린 한 마리면 충분해.”
여우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 집 생선들은 다른 생선가게 것보다 훨씬 싱싱해요. 하지만 갓 잡은 아빠 생선만은 못하죠?”
“갓 잡은 아빠 생선? 그게 뭔데?”
여우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갓 잡아서 팔딱팔딱 뛰는, 살아있는 생선이죠!”
“정말, 그런 생선이 있단 말입니까?”
“그럼요, 아빠는 날마다 그런 생선을 한 마리씩 드시는 걸요. 그 맛에 견주면 이런 죽은 생선은 정말 맛이 형편없지요.”
.......
잠시 뒤에 수로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여우들이 마치 행진을 하듯 꼬리를 물고 따랐습니다.
날아가던 갈매기가 물었어요.
“어딜 가니?”
“여우님께 살아있는 생선을 드릴 거야.”
“앞바다에 고등어 떼가 엄청나지.”
이 말을 들은 여우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수로가 멈춘 곳은 바닷가였습니다. 거기엔 빈 배 한 척이 있습니다. 지금은 쓰지 않는, 낡은 배였습니다.
“여우님, 저 배 위에 올라타세요.”
여우들은 앞 다투어 배 위로 뛰어올랐습니다.
이때 철썩철썩 파도가 물었어요.
“배는 어쩌려고?”
“여우님이 살아있는 생선을 엄청 좋아하신대요.”
“히야, 방금 산만한 고래 한 마리 보았다.”
여우들은 어서 가자고 난리였습니다.
“주인님, 어서 배를 출발시켜 주세요!”
“꾸물댈 시간이 없다!”
“맛난 생선을 실컷 맛보겠군.”
“생선은 최고 별미지.”
“가세, 가세! 잡자, 잡자!. 수 천 수만 고등어 떼”
“가세, 빨리 가세! 산만한 고래도 잡자!”
배 위는 여우들끼리 노래하고 떠드느라 시끌벅적했어요.
이윽고 수로는 배를 매었던 줄을 풀었습니다. 그러자 여우를 태운 배는 썰물을 타고 미끄러지듯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수로가 소리쳤어요.
“배가 바다 한가운데쯤 이르면 그물을 치고 낚시를 드리우세요. 펄떡펄떡 뛰는 생선들이 가득 배 위로 올라올 거예요. 그때 놓치지 말고 재빨리 낚아채셔야 합니다.”
하지만 여우들은 들은 척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곧 맛볼, 살아있는 생선 생각뿐이었으니까요.
수로는 배가 까마득히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습니다. 나중에서야 배에는 돛도 노도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렇지만, 수로는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졌고, 곧 비바람이 몰아칠 날씨였으니까요.
이튿날 여우 씨와 식구들은 생선가게에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요.
.......

‘상냥한 여우 씨와 식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뒤로 수로는 여우 씨를 만나지 못했어요. 다만, 이상한 소문을 듣긴 했답니다.
남쪽 먼 바다에 해적이 나타난다는 얘기였어요.
해적들은 여우처럼 날쌨고, 지나는 배에 다짜고짜 올라탄대요. 그러면 다 해진 양복을 입은 해적두목이 아주 공손히 인사한답니다.
“저희는 살아있는 생선 한 마리면 충분하지요.”
그러고는 꼭 생선 한 마리씩만 챙겨서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고래 뱃속에서 살아 돌아온 어느 뱃사람은 이런 말도 했어요.
“엄청 큰 고래 뱃속이었지. 깜깜한 가운데, 노랫소리가 들리더군.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가만 보니, 낡은 배 한 척에 여우들이 잔뜩 탔어. 고래가 어쩌다 삼키는 물고기를 받아먹고 즐겁게 살더군.”
그러나 이런 얘기는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입니다.
아무도 여우 씨 소식을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수로만이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지요.
이듬해 수로는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생선가게에 새 안내장을 써 붙였어요.

<우리 식구는 넷입니다. 고기잡이 아빠와 생선장수 엄마.
울보, 똥싸개 동생과 말 잘 듣고, 씩씩하고, 똑똑하고 부지런한 나!.......
알림 :
상냥한 여우 씨를 보신 분은 연락 바랍니다.
생선 한 마리 드릴게요.>

아, 드디어 수로가 글씨를 배웠군요.





김기정충북 옥천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동화작가로 활동 중이다. 작품으로 <바나나가 뭐예유?><네버랜드미아><고얀 놈 혼내주기> 들이 있고, 2004년 <해를 삼킨 아이들>로 창비 좋은어린이책 창작부문 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