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죽
나종영
눈 내리는 깊은 밤
매천야록을 읽는다
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한
마흔 다섯 사내의 피 묻은 옷에서
혈죽이 솟아났다는 역사를 읽는다
순절한 그보다 열 두 해를 더 살아
내 나이 이순의 문턱
무상한 세월에 옷깃을 여미고
대숲에 드는 것도
시 쓰는 일도 부끄러운 나이,
내 무덤 위에 잔디도 푸를까
누구 있어 내 영혼에 위로의 시비라도 새길까
눈 덮인 강가에 스러지는 노을 한 잎,
소록소록 눈 내리는 밤
대숲 바람소리에
뼈 마디마디가 시리다.
|
회원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