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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
문인수
비무장지대는 중무장지대다. 그런데, 군기가 영 개판이다. 나뒹구는 무기, 장비들이 전부 녹슬거나 삭았다.
구멍 난 철모에선 꽃이 올라오질 않나, 탄피 포탄 지뢰 기관총 같은 것들이 참, 세월없이 푹 쉰다. 왕창 찌그러진 대공포나 탱크 몇 대도 지가 무슨 옛집, 폐가쯤 되는 줄 아는지… 칡넝쿨 뒤집어쓰며 적막에 투항했다.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아니, 긴 긴 휴전 중인 줄도 모르고 멧돼지 고라니 산토끼 너구리 오소리 뭐 이런 것들하고 어울리거나 마구 붙어먹는, 아직 앳되거나 젊은 사내들로 꽉 찼다. 참말로, 군기가 개판이다. 피아, 상하, 남북, 좌우 구분도 없이 각 지역 사투리들이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초록은 동색으로 충분히 뒤섞여 완전히 통일됐다. 뭉텅이 뭉텅이 한패거리로 무지 시퍼렇게 술렁인다. 씨팔,
언 놈이냐!
애국이 다 뭐지?
또 금세, 군대 전원이 단체로 바람 타고 와 와 와 와 와 와 와 와 와 와 와 와 잘 논다. 개판, 개판이다.
문인수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홰치는 산』 『뿔』 『쉬!』 등의 시집이 있으며, 14회 대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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