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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로의 미꾸라지
유진택
농수로 큰 물길에서 놀던 놈들도
좁아터진 대야 속에선 꼼짝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뒹굴었는지
대야 속엔 부글부글 분노가 끓고 있었다
그 매끄러운 허리가 아직은 탄력이 있어
대야를 타타닥 둘러치던 그 용맹도 펄펄 끓었다
한주먹 집어던진 소금에 눈이 매워
분노는 부글부글 거품을 남겨놓고 이내 사그라졌다
조용히 흔들리는 물풀에 귀 기울이며
놈들은 지금 농수로의 진흙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울컥울컥 토해내는 갯내가
농수로 까만 진흙처럼 퍼져 어지럽고
서로 괴로워 부둥켜 얼싸 않은 것이
철없는 시절에 놀던 장난꾸러기 친구들 같다
나는 대야 옆에 앉아
곧 사라질 놈들의 운명을 생각한다
생전엔 가장 요령있게 살았으면서도
죽어선 가장 뻑뻑한 진국이 되어
자신의 한 몸을 소신공양하는 놈들,
어젯밤 걸판지던 추어탕 맛이 삼삼해
나는 오늘 또 농수로로 달려가 본다
푸르게 흘러내리는 물살이 심란하다
물살 간질이던 꽃망울 몇 얼굴 빨개지도록
농수로 벽을 치는 것은
놈들을 잃은 분노 탓일게다
그러나 놈들은 아직도 모른다
왜 통채로 뻑뻑한 진국이 되어
소신공양을 해야 하는지를,
요리조리 남의 손길 잘도 빠져나가며
왜 가장 비열하게 세상을 살았는지를,
유진택 1957년 충북 영동 출생. 1993년 <문학세계와>와 <농민문학>을 통해 시단에 데뷔. 시집으로 『텅 빈 겨울 숲으로 갔다』, 『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다』, 『날다람쥐가 찾는 달빛』 등이 있으며, 현재 ‘시심’과 ‘무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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