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우화의 꽃밭(外 1편)/ 나정욱:시인뉴스 포엠 (poetnews.kr)]
우화의 꽃밭
모든 꽃들은 할 말이 있다
그래서 꽃밭이 시끄럽다
그렇게 시끄러워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꽃들의 색과 향기 때문이리라
눈을 감고 코를 막고 들어보라
꽃밭이 왜 광장이 되었는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백화난만한 광장에 피어 있는 꽃들이 모두 입을 열고 있다
입이 없어 피지 못한 꽃은 없더라
꽃밭의 꽃들이 그럴진대 사람들이 못할 말이 있겠는가
벌거숭이 임금님의 우화가 우화가 아닌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
하이데거
하이데거를 생각하면 들판의 늑대가 떠오른다
책상에 앉아있던 시간이 많은 하이데거였을 텐데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하이에나를 생각했다
하이데거를 생각하면서 나는 하이에나를 생각했던 것이고
늑대 형상의 하이에나에서 하이데거를 늑대와 연상시켰던 것이다
하이데거는 한 마리 늑대의 형상을 떠오르게 한다
들판에서 집요하게 시간을 물고 있는 하이에나
하이에나는 지금 하얀 공간을 물고 시간과 씨름 중이다
시간과 씨름 중인 하이데거
공간에서 시간을 물고 있는 하이에나
하이데거가 하이에나와 함께 있다
상상 속의 존재들은 허상인가
시간 속의 존재들은 허상인가
하이데거가 하이에나처럼 짖는다
점점점 하이에나의 점박이 얼룩이 하이데거의 몸에 얼룩이 지면서
하이데거는 사라지고 하이에나만 남아서 늑대처럼 짖는다
멀리서 들으면 늑대 울음과 하이에나 울음을 구별하지 못한다
하이데거가 일어서자 하이데거 앞의 책상이 사라지고
하이데거는 들판에 서 있다
동료를 만난 듯 하이에나 몇 마리가 무리 지어 하이데거를 둘러싸고 빙빙 주위를
돈다
나정욱 시인
● 『한민족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1990년)
● 시집
『며칠 전에 써 두었던 내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2019년)
『눈물 너머에 시詩의 바다가 있다』(2019년)
『라푼젤 젤리점에서의 아내와의 대화』(2021년)
『얼룩진 유전자』(2024년)
● 울산문화관광재단 예술창작지원 사업 선정(2024년)
●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회원
회원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