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사람의 문학_2024년 여름호(통권112호)]
자연의 텃세
텃세를 부리며 살아온 네게 자연이 좀 텃세를 부리기로서니 그게 뭔 대수냐
네가 대도시의 주인인 양 거들먹거린 그 기억들이 없더란 말이냐
나는 네가 대도시 첨단 아파트에서 살아온 행태를 다 기억하고 있으니 시골에서
대자연에서 좀 불편한 너의 생활이 너무도 지극하게 자연스럽다 보는 것이다
네가 컴퓨터 앞에서 좀 자랑스웠더냐
네가 좀 있다고 카드 단말기 앞에서 좀 거들먹스웠더냐
네가 고급 자동차를 타고 속도를 내면서 있는 척하는 모습이 세상 무인 카메라에
다 포착되었다
대도시에 있는 고화질 CCTV가 모두 너의 다정한 친구들이 아니었더냐
그러니 대자연 앞에서 불편한 너의 자세는 지극히 자연스런 것이다
대도시에서의 너의 텃세에 비하면 시골의 텃세는 아양에 지나지 않는다
다 누구를 보고 배운 텃세 자랑일소냐
그러니 대자연의 텃세 앞의 너의 권위와
너의 권력을 알몸 내놓듯이 내놓았다고 하여 서러울 것도
애달플 것도 없는 것이다
다 인간이 되기 위해 지불하는 수업료 정도로
그것도 네 목숨값보다는 헐값으로 치르는 수업료 정도로
생각거라
그렇다고 치자
시간을 만든 이유나 권력을 만든 이유나 같다
숫자와 시간이 야합한 이유나 권력이 자유와 야합한 이유나 같다
다 남녀 간에 정분나는 이유와 같다
그렇지 않을 이유보다 그렇다고 할 이유가 더 많으니 다 그렇다고 치자
넷플릭스 영화를 보면서 화면 속에서 시간 가는 숫자를 보고 있노라니 영화 만든 사람들의
노고를 새삼 알게 되었지만 그보다 더 지독스레 사는 게 힘든 사람들에게
그딴 영화가 과연 위로가 되겠느냐는 것인데, 의외로 힘이 될 것도 같다
모두 시간을 견디기 위한 장치라고, 그렇다고 치면 못 볼 것도 없고 독재를 용납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독재자는 총 맞아 죽어야 영화의 스토리가 사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다 알고 사는 것이니 모두, 그렇다고 치고 하루의 숫자를 마감하자 그렇게 보면
파이의 값이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것이 사는 것과 참으로 닮아 있지 않은가 불쌍한 인간들
홈쇼핑에서 매일 죽지도 못하고 먹어대는 사람들
매일 얼굴에 분칠로 칠갑하는 사람들
사는 게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한결 위안이 되는 것이니, 그렇게 지구 멸망의 날까지
독재의 역사는
계속되리라
※ 나정욱 시인
『한민족문학』(1990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며칠 전에 써 두었던 내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2019년),
『눈물 너머에 시(詩)의 바다가 있다』(2019년),
『라푼젤 젤리점에서의 아내와의 대화』(2021년)의 시집이 있음.
2024년 울산문화관광재단 예술창작지원 사업 선정.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회원.
회원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