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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의 집은 아늑하다>의 시인 이정록 회원이 네번째 시집 <제비꽃 여인숙>을 민음사에서 출간했다. 충남 홍성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시인답게 이번 시집 역시 자연에서 발화된 상상력에 힘입어 우리네 삶의 원리나 본질까지 밀고가는 활달한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시 편편이 논두렁, 밭둑, 산길, 혹은 문지방이나 젯상 앞에서 시인의 예지로 건져올린 풋풋한 상상력에다가 자유자재로 구사한 언어에 힘입어 흡인력이 뛰어나다. 동시를 읽고 있다는 안정감이 불현듯 사물의 뒤편을 어루만지고 도는 구절로 넘어갈 때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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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터를 닦느라 파헤쳐진 푸른 대나무, 마디를 세어보니 서른여덟째 마디부터 가지가 뻗어 있다. 내 나이와 같다. 다른 대나무를 세어보니 서른일곱째 마디부터다. 뿌리 사이 흙을 털어내고 다시 세어보니 서른여덟째가 맞다. 무성한 이파리로 하늘을 쓸어볼까? 생각다가, 단소나 대금은 뿌리 근처로 만들지. 해금도 굵은 밑동으로 울림통을 삼지. 그렇다면 이제, 절창은 끝났구나. 마디가 마디를 부르는 서른여덟째 칸을 쓰다듬는다. 어려서부터 삼팔은 느낌이 안 좋았지. 삼팔선이라는 말도, 삼팔 따라지라는 어른들의 말도, 무거웠지. 불안이 가지를 뻗게 하는 것, 하늘을 덮는 대숲도 불안이 만들었나? 제 몸을 쪼개어 푸른 구름을 드리우는 대나무 숲. 그렇다면, 그래 그렇다면, 하늘 끝부터 거꾸로 세는 거다. 그럼 몇째 마디부터 잔가지 없어지고 단단한 천년의 소리를 품게 되나? 지진도 견뎌내는 뿌리의 연대를 갖게 되나? 하늘에서 내려다보아야할 서른여덟 살이 되었다. 나는 이제 땅으로 내려간다. 취구와 청공을 뿌리 근처에 두리라. 그래도 칠성공은 저 멀리 보름달로 내다 걸어야겠지.
*취구, 청공, 칠성공 : 대금에 있는 구멍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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