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특별호(통권 58호)

[동화]

도깨비 이야기

이가을

도깨비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니?
들어 봤다고? 그럼 도깨비를 본 적은?
에이, 어떻게 도깨비를 보냐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옛날에는 도깨비를 본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지 뭐냐?
지금 할머니가 된 내가 어렸을 적에 그 때 이미 호호 할머니였던 우리 할머니는
도깨비를 몇 번인가 보았고 그 할머니의 할머니들은 아주 자주 도깨비를 봤다지 뭐니?
할머니가 된 나의 할머니가 그 할머니의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나는 알고 있어.
그것도 아주 많이.
이야기는 살아가는 속에서 생겨나는 거니까 틀림없이
옛 날 옛 날  아주 옛날에는 도깨비가 살았다는 얘기지.
사람들이 사는 아주 가까이에.........
그런데 도깨비들은 사람들과 많이 아주 많이 친해지고 싶어 했단다.
왜냐고?
그건 도깨비가 볼 때 사람은 하느님 같았거든.

  첫째, 사람들은 아이를 낳을 수가 있지. 누군가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되고 누군가에게서 태어나면 또 자식이 되는 거야.
(도깨비는 부모 자식이 없냐고? 없지. 암. 없고말고! 왜냐면 도깨비는 태어나는 게 아니고 생기기 때문이야. 그럼 누가 만들었냐고? 만들었지. 그런데 누가 무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나도 몰라. 혹시 이 책을 읽는 동안에 티 없이 맑은 눈을 가진 애가 있다면 어쩌면 알게 될지도 모르지. 혹 알게 되거든 내게도 좀 알려줘. 나도 좀 만들어 보게.)
둘째, 사람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다녀도 되거든.
(너희들 도깨비의 첫째 소원이 뭔지 아니? 그건 모습을 드러내고 다니는 거야. 도깨비에게는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 하나 있는데 절대 사람에게 모습을 들켜서는 안 된다는 거야. 들키면 어떻게 되느냐고? 그냥 사라진대. 흔적도 없이. 겨울 추운 날 만든 눈사람이 어느 봄날 눈 깜짝할 새 사라져 버린 걸 본 적이 있지? 바로 그렇게 사라진다면 그 건 슬프겠지?)
셋째, 사람들은 무얼 가질 수가 있단다.
(도깨비는 무얼 할 수는 있어도 무얼 절대로, 절대로 가질 수가 없거든. 왜 못 갖냐고? 너희들 그림자가 무얼 가진 걸 본 적이 있니? 도깨비는 그림자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다는군)
넷째, 다섯째, 여섯째,............

아이고! 그걸 다 말하다가는 밤 새겠네.
그런데 도깨비들에게는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어떻게 어떻게 하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야. 그게 뭐냐고? 사람이 되고 싶은 도깨비들이 밤이나 낮이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사람들 주변을 맴도는 게 바로 그 어떻게 어떻게 해 보려는 맘 때문이었지.
그 어떻게 어떻게가 뭐냐면
 
사람을 도와주되 골려주면서 도와줘야 되고
골려주되 다치게 해서는 안 되고
골려주면서 도와줘서 어떤 사람이 깜짝 놀라
“이게 뭔 도깨비 조화속이랴?”
라고 하는 말을 천 번을 들어야 한다는 거지.

그런데 도깨비에게는 한 가지 약점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눈에 보인다는 거야. 말하자면 마음의 그림자 같은 거지. 좀 어려운 얘긴가?
원래 도깨비 얘기는 뭐가 뭔지 모르게 알쏭달쏭한 거야. 그러니까 재미있기도 하고.
그럼 슬슬 도깨비 얘길 시작해 볼까?

옛날 옛날 어느 옛날에 도깨비 하나가 있었어.
그런데 그 도깨비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도깨비야.
바보냐고?
글쎄? 도깨비들도 바보라는 말을 쓰고 있는지 그건 모르겠고, 하여간 그 도깨비는 하나만 아는 도깨비였어.
그 하나만 아는 도깨비도 다른 도깨비들 처럼 사람이 되고 싶었지.
그래서 어디 사람이 없나 열심히 찾아다녔어.
그런데 사람인가 하고 보면 아닌 것 같고 또 사람인가 하고 보면 아닌 것 같고.......
좀처럼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지. 왜냐하면 사람 중에서 하나만 아는 사람이 어디 그렇게 많아야 말이지.
웬만한 사람들은 하나라도 더 알려고 기를 쓰고 더러 하나 밖에 모르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만 알게 놔 두질 않거든.
억지로 억지로 가르쳐서 둘을 알게 하고 둘을 알면 또 셋을 알게 하고 또.또 또 .........
그러니 하나만 아는 도깨비가 하나만 아는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녔지 뭐야.
그런데 어떤 마을에 하나밖에 모르는 아이가 있었어.
그 아이는 하나는 잘 아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둘은 알지 못했어.
“네 이름이 뭐냐?”
하고 물으면
“돌쇠야.”
하고 대답하지만
“성도 말해 봐라.”
라고 하면 제 성이 무언지 말하지 못했어.
돌쇠의 성은 흔하디 흔한 김가였는데도 말이야.
돌쇠의 엄마는 한숨을 쉬었지만 하나밖에 모르는 아들 돌쇠를 사랑했어.
“그래. 하나라도 아는 게 어디냐. 하나만 잘 알아도 세상을 살 수 있을게다.”
돌쇠 엄마는 일하러 갈 때면 언제나 돌쇠를 데리고 다녔어.
“오늘은 감자를 심자.”
“응. 오늘은 감자를 심자.”
돌쇠는 엄마를 따라 부지런히 감자를 심었어.
감자를 심고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가 돌쇠에게
“돌쇠야. 연장을 헛간에 갖다 두어라.”
하고 말했지.
“응, 연장을 헛간에 갖다 둬야지.”
돌쇠는 연장을 헛간에 갖다 뒀어.
그 하나 밖에 모르는 돌쇠네 헛간에 하나 밖에 모르는 도깨비가 살고 있었지.
도깨비는 가끔 헛간에 들어오는 돌쇠를 눈을 크게 뜨고 보았어.
어느 날 돌쇠 엄마가 밭일을 가다가 쓸만한 끈 하나가 길가에 떨어져 있는 걸 보고
“아직 쓸만하네.”
하고 그 끈을 주웠어.
돌쇠는 이걸 보고
‘쓸만한 건 주워다 두는구나’
하고 생각했어.
어느 날 돌쇠 엄마가 돌쇠에게 심부름을 시켰어.
“돌쇠야, 이 떡을 고개 넘어 할머니께 갖다드려라. 그리고 오는 길에 박씨 아저씨에게 우리집 부엌 문 좀 고쳐달라고 해라.”
돌쇠는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고개 넘어로 냅다 달려갔어.
“돌쇠야, 어딜 그렇게 급하게 뛰어가냐? 천천히 가거라 넘어질라.”
박씨 아저씨가 꼴을 베다가 허리를 펴며 말했어.
“아저씨. 이거요. 엄마가 드리래요.”
돌쇠는 얼른 들고 온 떡 보퉁이를 박씨 아저씨에게 드렸어.
“웬 떡이냐? 잘 먹겠다고 어머니께 말씀 드려라.”
돌쇠는 그 자리에 서서 한 참을 생각했어.
‘뭐가 하나 더 있었는데?’
돌쇠는 머리를 갸우뚱 하다가 저 멀리 할머니 집이 보이자 한 걸음에 달려가서
“할머니, 엄마가 오시래요.”
하고는 영문을 모르는 할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왔지.
“아이고 제가 그만 깜박했네요. 두 가지를 시키면 못 하는 앤데.......”
어느 날 돌쇠는 냇가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매끌매끌 하고 동글동글한 돌멩이를 보았어.
“야, 참 이쁘다. 쓸모가 있을 거야.”
돌쇠는 그 돌멩이를 주워다가 헛간 한 옆에다 두었어.
이걸 그 하나만 아는 도깨비가 보았지.
도깨비는 그날 밤새도록 냇가를 뒤져 동글동글 하고 예쁜 돌멩이를 주워다 헛간에 쌓았어.
다음 날 헛간을 본 엄마가 깜짝 놀랐지.
“아니 웬 돌멩이가 헛간에 가득하지? 어쨌거나 무너져 가는 담을 새로 쌓으면 아주 좋겠네.”
또 어느 날 돌쇠는 산에 갔다가 산 더덕 한 뿌리를 캤어.
그 더덕을 헛간에 두니 산 더덕 향이 헛간에 가득 찼지.
그날 밤에 도깨비가 무얼 했냐고?
“아이구나 세상에! 이게 무슨 도깨비 조화 속이랴. 이 귀한 산 더덕이 헛간 가득 차 있네.”
돌쇠 엄마는 그 더덕을 이웃에도 나눠 주고 장에 내다 팔기도 했지.
또 어느 날 돌쇠는 솔방울을 주워다 헛간에 두기도 하고
싸리버섯 한 송이를 찾아서 헛간에다 두고
산밤이나 산머루를 갖다 놓기도 하고
마나 칡 한 덩이를 갖다 놓기도 하고
..............................................
그 때마다 헛간은 가득 찼지 뭐.
그런데 어느 여름, 돌쇠 엄마가 
“돌쇠야 저녁에 먹게 헛간에 갖다 두어라.”
하며 수박 한 덩이를 주었어.
그날 밤 도깨비는 온 동네에 있는 수박이란 수박을 잘 익은 것에서부터 애기 주먹만한 생기다 만 것 까지 모조리 따서 헛간 천정까지 쌓았지 뭐야.
온 동네 일 년 수박 농사를 망치게 됐지.
“아니, 이게 다 무슨 도깨비 조화 속이래유?”
“그러게나 말여. 참 오래 살다 보니 별 일을 다 보는구먼.”
마을 사람들 모두 혀를 끌끌 찼어.
어느 날 돌쇠 엄마는 거름이 모자라 시들시들 시원찮은 채소밭을 매다가
“돌쇠야, 골목길에 있는 쇠똥 말똥 개똥을 좀 주워 오너라. 밭에 거름을 좀 하게.”
하고 시켰어.
돌쇠는 골목을 다니며 쇠똥 말똥 개똥을 한 삼태기 주워 담아 헛간에 갖다 쏟았지.
그날 밤 도깨비는 온 마을 골목골목에 있는 똥이란 똥을 죄다 모아다 돌쇠네 헛간을 채웠지.
돌쇠 엄마는 그 거름을 돌쇠네 밭 뿐만 아니라 온 동네 밭에 나눠 주었어.
돌쇠네 헛간에 또 무엇이 차나 마을 사람들은 궁금해 했고
돌쇠는 차츰 쓸만한 것을 헛간에 둘 줄 알게 되었고
도깨비는 열심히 헛간을 채웠는데
글쎄 안타깝게도 숫자도 하나밖에 셀 줄 몰라서 사람들이 하는
“이게 도대체 웬 도깨비 조화 속이랴”
하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세지 못했다네 그려.
돌쇠네 살림이 폈냐고? 아마 그랬을 것 같아.
그리고 돌쇠는 어떻게 됐냐고?
글쎄?

옛날 옛날에 도깨비가 사람들 가까이 살았던 시절 얘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