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들어가는 말
작가의 왼손은 자신의 오른손에게조차 저항한다. 작가의 세계와의 불화는 근원적인 것이며 이는 곧 파열의 틈새에서 생성되는 새로움으로 이어진다. 결국 어느 시대나 작가란 새로움을 먹고 산다. 그가 표현하는 세계가 오래되고 낡은 것일 때조차 작가는 지금 이곳의 모럴 즉 즉시성의 새로운 요소들을 통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그 무엇>을 찾아내는 존재다.
우리는 매일 매일의 일상을 경험을 하고 있으나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다 알지 못한다. 언론이 제공하는 폭발적인 정보(사실)들이 정치적인 것이든 탈정치적인 현실이든 그것들이 지닌 진정한 의미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중첩된 사실과 사실들 그리고 그 사이에 버려진 사소하고 무의미한 순간들 까지 그것이 어떤 진실과 관계 맺는지, 어떤 새로운 가치를 지니는지 묻는 것이 어떤 상처의 연원은 무엇인지 작가는 질문하고 또 질문하는 존재다.
작가의 고투는 바로 이 의미 이전의 세계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탈정치적이며 동시에 정치적이다. 직관이 느낌으로, 느낌이 의미로, 전환되는 지점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이 작가의 본능이다. 경험을 했으나 그 의미를 다 알 수 없는 세계, 그 의미에 접근하여 우리가 겪은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질문하는 일, 질문이자 대답인 그 경험을 회복하는 일이 작가의 상상력과 직관과 인식이 작동하는 곳이다.
이렇게 획득되는 현실의 의미야 말로 그저 단순히 재현되거나 복제되는 세계가 아니라 전혀 다른 형태의 의미이자 또 다른 경험이 된다. 이렇게 획득되는 세계는 ‘단지 한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 많은 세대의 경험’이며 논리화된 이데올로기나 제도가 결코 다 포괄할 수 없는 진실에 가 닿는다.
그러므로 작가의 선험적 행위는 근원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포함한 세계 그 자체를 향한 동참과 저항의 형식을 지닌다. 존재의 갱신을 위한 저항은 낡아가는 세계에 대한 저항이자 사적 개인으로는 죽음을 향한 적극적인 역동이다. 쓰기를 업으로 하는 작가에게 이는 침해받을 수 없는 권리이자 자유의지다.
그래서 때로 작가는 정치적 정당이나 사회 계급의 대표자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인식하고 사유하는 세계만을 위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의 무질서와 사소한 혼돈 속에 숨 쉬고 있는 재현 불가능한 진실에 스스로를 강력하게 연관시키곤 하는 것이다. 상황과 사물에 대한 순수한 욕망과 상상력은 작가적 삶의 양식이며 그의 <쓰기>와 분리되지 않는다.
작가의 역능을 먼저 거론하게 된 것은 국가정책과 예술표현의 정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작가와 현실이 어떻게 관계 맺는가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어서다.
2, 촛불과 작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한국작가회의에 요구한 불법집회 관련 확인서는 명백히 촛불항쟁과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 초기에 벌어진 촛불항쟁과 한국작가회의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대변되는 국가 기구가 어떤 맥락에서 문제적으로 엉켜있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집권 초기에 대규모 공론의 장이 정치권 밖에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촛불항쟁>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선거를 통해 위임받은 정상적인 정권이 미쳐 검증도 받기 전에 위임 당사자들인 시민들의 직접통제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예측하기 쉽지 않은 대결국면이 조성되었을까?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둘러싼 이슈에서 출발한 촛불은 이명박 정권의 탄생과 무관하지 않다. 87년 이후 분단의 위기와 권위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민주화의 단계는 퇴행하기 어려운 지평에 도달했으므로 이제 고용 없는 성장, 실업, 노숙자, 88만원 세대로 지칭되는 양극화 등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진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확산은 실용과 경제를 앞세운 보수진영의 압도적인 정치적 승리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보수진영의 이러한 승리는 오직 “경제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진전”만을 이루기 위해 주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승리에 전제된 것은 87년 이후 성장해온 민주주의의 성과를 토대로 그 위에 양극화 해소 등 삶의 질을 담보할 경제적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요구였다.
지난 시대의 성과를 후퇴시키면서 경제만을 해결하라는 요구는 아니었던 것이다. 정권을 보수진영에 위임한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더라도 6월 항쟁이후 20여 년 동안 진행되어온 “절차적 민주화의 성과와 권력기구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위기에 직면하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런 인식의 지평 위에 보수진영에 권력이 위임되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이명박 정권은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가 성취한 민주주의적 절차와 가치를 승계하는 범주에서 통치를 시작했어야 함에도 철저히 그에 반하는 노선을 택함으로써 분열과 배제 무엇보다 역사적 퇴행의 길로 들어서 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만으로 정권 초반의 대규모 저항을 설명하기엔 여전히 결과론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것에 불과해진다. 양극화와 실업의 해소를 통한 삶의 질 개선이라는 이명박 정권의 태생적 당위가 정권의 초기에 부정당한 것은 바로 보수진영의 구호인 “삶의 질에 관한 실질적 진전”과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가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디데이였다.
휴일의 광장은 촛불로 가득하다. 기말고사를 마친 학생들, 외출 나온 가족들, 동창회, 계모임. 저것이 시위대인가. 구인회는 대학시절에 보던 살벌한 정치집회와 너무도 다른 축제 인파를 보고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한국에 오기를 잘했구나. 눈에 띄는 것마다 온통 놀라운 일뿐이니! 월드컵 때 TV에서 보여준 인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초중고도 나왔다. 회사원, 교사, 학부모, 사모님들도 나왔다. 유모차도, 예비군도, 인터넷 동호회도, 좋은 화장품을 사용하는 마니아들도 나왔다. 대학 동아리와 인터넷 동호회와 도봉구 주민 깃발도 있다. 그리고 줄을 서지 않는다. 엄숙해지지 않는다. 연단을 통일시키지 않는다. 연설자를 따로 두지 않는다. 누구나 자유발언이고, 개인행동이며, 즉흥난장이다. 구호도 제각각, 수백 수천 개의 생각과 표현을 통일시키려는 사람은 퇴출될 것이다. 스무 살짜리 대학생이 블로그에 썼다.
…계몽은 독이다.
독이 퍼지면 촛불은 서서히 숨질 것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로 경찰의 저지선이 보이지만, 긴장이 흐르지 않는다. 30년 전의 시골 장터를 연상시키는 쥐약장수. 광신도를 패러디한 엠비지옥 탄핵천국. 진압과 저항이 난무할 자리에 함평 나비 축제에서나 만날 법한, 얼룩소 외피, 생쥐 외피를 하고 걷는 아버지와 아들, 뒷모습에 다들 킥킥 웃는다. 큼직한 글씨로 “미치겠<소>”와 “약오르<쥐>”를 쓴 퍼포먼스. 구인회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는지, 곁에 있는 친구가 흔들어댄다.
-김형수의 <혼몽의 집>
김형수가 빠르고 디테일 하게 그려내고 있는 장편 소설 <혼몽의 집> 중 촛불집회 현장장면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이 시위 현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했다. 소고기 수입 문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소위 국민건강권이라는 것이 권력을 위임한 주체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집권하자마자 시작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는 보수정권이 자신의 존립근거였던 ‘삶의 질 개선’이란 명분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매일 식탁에 올라오는 쇠고기는 이데올로기도 담론도 아닌 몸이 체화하는 위기에 대한 실감이었다. 이러한 일상적 실감은 새로 출범하는 정권의 정책적 비전과 당위성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정권을 위임한 근거에 대한 불신은 광범위한 네티즌과 시민들의 직접통제라는 저항으로 나타났고 촛불은 그 상징이 되어버렸다. 촛불을 불러온 것은 바로 자신들이 주장한 보수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한데서 비롯되었던 셈이다. “잃어버린 십년”을 되찾아 경제의 실질적 진전을 이룸으로써 획기적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출발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라니 광우병의 위험을 떠 않는 것이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첫 행보라니 이는 곧 ‘공적인 것에 대한 불신’ 즉 참과 거짓을 가리는 모럴의 문제로 발전해 버렸다. 더더욱 촛불항쟁에 대한 대응 방법은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규정하는 돌이킬 수 없는 증거들이 되어버렸다.
이 과정을 통해 시민들은 진정한 소통과 참여, 정직한 대화와 토론이라는 민주적 가치들이 국가의 통치기구들에 의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목격하게 되었으며 보수언론들이 어떻게 이를 왜곡하는지 소름끼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집권 일 년도 못 넘긴 시점에서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에 의해 대결국면이 만들어졌고 정권의 당위가 부정되는 위기에 봉착했음에도 정권은 문제의 원인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분열과 불신 대립과 저항의 도그마에 빠져들었다. 이런 기저는 정권의 중반에 이른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왔다. 더구나 촛불항쟁을 주도하고 있는 정치권 밖의 주체들의 성격을 짐작조차 하지 못함으로써 이후 이명박 정권은 시민사회에 대한 치졸하기 그지없는 보복적 행보로 일관하게 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함께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한 보수는 사람들이 기대했던 보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들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 행정부, 입법부, 국정원, 그리고 언론과 사법부까지 정권의 도구로 만들고자 시도했고, 지난 20년 동안 진행된 민주화의 성과를 빠르게 무너뜨려갔다.......절차적 민주주의가 가능하기 위한 전제라 할 수 있는 정치 공간에서의 공정한 경쟁도 어려워졌다.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학술문화 영역에서도 비판 기능을 거세하기 위한 시도가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시민 사회에도 공안 수단을 동원한 이른바 외과수술식 타격을 가하고 있다.
- 이남주 <정치연합, 진보개혁세력 상생의 길>-1. 민주주의, 위기에서 부활로?
3. 탈중심화 된 자율적 개인들
촛불시위의 주력은 특정한 시민 누구이거나 조직화되고 정치화된 세력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의 시위 형태는 정치적이기 보다 문화적인 행태를 보여 주었으며 앞서 언급한 작가들의 정당과 계급적 대표성 밖의 실천 행위와 유사한 속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출현은 이미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시위 때도 그 모습을 보여주었던 바 있었으며 일 년 전의 서거 국면에서도 두드러진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들은 87년 이후 성장한 소통과 참여, 대화와 토론의 가치를 습득한 <시민>들이었다. 그들은 어떤 압도적인 이데올로기나 권위주의적인 담론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드러내는 무계층적이며 문화적인 다수들이었다.
그들의 중심은 비어있었지만 그 빈 중심을 재빠른 소통으로 감싸 안는 수평적 네트웍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집합적 협동에 내포된 무임승차의 딜레마를 빠르게 해결한 탈중심화 된 도덕적 개인들” 그들은 정치적인 프로파간다 대신 촌철살인의 해학적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었으며 놀이의 즐거움과 비폭력의 자유로움을 향유할 줄 아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므로 통치 권력과의 대결 국면에서 적대적인 당파 사이에 발생하는 폭력적 유사성에 빠져들지 않는 놀라운 균형감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계몽에 대한 집착과 이데올로기의 무거움으로부터 자유롭고 가벼운 이들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성장시킨 자율적 개인들의 가치를 정치권은 따라잡을 수 없다.
촛불의 주체들을 이해하지 못한 권력의 대응 방법은 통치 기구나 제도화된 테크닉을 통해 그들을 컨트롤하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작가들은 사실 촛불의 주역이 아니었으며 수많은 시민사회의 활동가들 그리고 정치인들 또한 그 주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무임승차한 지각생들이었거나 새로운 주체들의 문화적 양식에 경악하는 소위 “새로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작가들 또한 스스로 자기 프로그램을 갖지 못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촛불항쟁에 참여한 작가들은 오히려 시대의 도덕적 압력에 의해 떠오른 존재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확인서를 요구받게 된 순간 작가들은 자신의 고유한 기능인 <쓰기>를 통해 자신들만의 촛불을 갖게 되었고 이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촛불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어떤 논의와 토론을 거쳐 치졸하고 굴욕적이기 짝이 없는 요구를 작가들의 집단인 한국작가회의에게 하게 되었는지 지금까지 알려진바 없다. 작가들에게 사실상 정치적 당파성을 밝히라는 요구는 유신은 물론 5공과 6공을 거치면서도 일어나지 않았던 어처구니없는 요구였다. 불법이 있었다면 어떤 불법이 있었는지 법정에서 가려져야 한다. 위원회가 왜 그러한 판단을 내리고 그 확인을 요구하는 것인지 누구도 납득할 수 없다. 자기 현장과 작업의 내용을 가진 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국가 기구는 아무리 예산과 그 집행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위의 감독기관 일 수 없다. 그럼으로 국가의 문화예술 지원 기구가 예술가들 개인의 정치적 당파성과 도덕적 판단을 검열하여 지원의 대상과 범주를 결정하겠다는 태도는 그들의 요구가 문화예술 진작을 위한 위원회의 결정이 아니라 정파적 결정을 내리는 상층 권력의 의지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공공연하게 문화예술 지원기구를 정치적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다니. 이 사건은 우리가 87년 6월 항쟁 이후 획득되었다고 믿었던 민주주의의 움직일 수 없는 도덕적 지평이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작가들은 정치권력의 감시와 사찰, 구속과 필화로 점철된 긴 어둠의 시간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작가와 국가 권력과의 근원적인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위기감으로 이어졌다. 작가적 생애와 그가 생산하는 작품의 관계는 따로 떼어 놓고 말해질 수 없다. 그런 만큼 이런 위기감은 작가들의 정신에 억압과 굴욕이라는 상처를 새겨놓았다.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하는 작가는 없다. 그것은 작가적 존립 근거로써 결코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작가적 존립근거와 자존은 도전을 받게 되었고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불법시위란 <촛불>집회를 말한다.
4. 합의를 위한 모럴의 부재와 정책적 실패
국가 혹은 국가권력이란 단순히 당대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의 효율적인 통치 시스템만을 말하지 않는다. 선거를 통해 위임된 권력은 그 자체로 당파적인 속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나 전적으로 당파적 권한행사를 위해 존재할 수는 없다.
위임의 절차가 지닌 정당성이 곧 모든 통치행위의 정당성으로 이해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위임의 과정에서 드러난 민주적 가치와 의무는 지지자들이나 반대자들 모두의 권리이지 어느 일방의 것일 수 없다. 국가의 권력은 전적으로 위임된 당대 통치의 주체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위임당사자 모두의 것인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적인 통치의 근본은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 참여에 있다. 이러한 민주적 가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때 정당한 절차에 의해 위임된 권력이라 하더라도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권력의 정당성이야말로 시대적 보편적 도덕률 그 자체인 바, 모럴은 이 가치의 지평이 주권자 모두에게 살아있을 때 정당할 뿐 이를 잃는 순간 권력은 부도덕의 도그마에 빠지고 만다.
강화된 당파성은 오직 당파성 그 자체만 남게 됨으로 대화도 독백도 불가능한, 불행하고 부도덕한 권력 즉 독재의 길을 가는 권력이 되고 만다. 절대 권력의 절대 부패라는 명제는 대통령제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역대 어느 정권도 이 속성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나 통치가 발휘되는 가장 뜨거운 시공간은 <지금 이곳의 현실> 그 자체이므로 언제나 문제적인 것은 당대 권력의 거짓과 부당성이다.
지난 정권의 실패가 당대 권력의 오만과 폭력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통치의 효율성을 위해 언론, 재벌, 검찰 등 다양한 수단들이 이용되고 활용될 수 있지만 민주적 가치를 잃은 권력을 교묘한 통치 기술만으로 정당화 할 길은 없다. 당파적 주체만을 강화하는 권력은 곧 감시와 배제, 제도적 폭력과 통제라는 유혹에 빠져들어 타락의 길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된다. 가장 무서운 것은 특징적인 예증으로 드러나는 개별 사안의 정책적 성공과 실패 그리고 그 결과가 아니라 가치의 상실 즉 도덕적 타락에 있다.
현대의 신자유주의적 일상의 복잡성과 속도감이 부도덕한 통치의 잇슈와 현상을 빠르게 지우고 조작 하지만 과정과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작가의 상상력은 보다 근원적인 거리에서 <지금 이곳>을 겨냥한다. 때론 작가적 상상력의 범주를 벗어나 미학적 지성과 양심의 지시에 따라 통치 권력을 직접 견제하기 위한 사회, 정치적 행위에 동참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자기 성찰적 자아의 확장이자 합의로써 결코 <쓰기>와 무관할 수 없다.
근대 이후 모든 사회적 영역은 주체들 상호간 갈등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동의와 합의를 거쳐 공동체의 틀을 만들어 왔다. 칼 폴라니는 경제에서 시장, 국가, 소비자 조합, NGO를 비롯한 근대 제반 영역 역시 해결하기 어려운 입장의 차이를 가지고 있어 문제들을 합의를 통해 조정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틀 지워져야 하며 국가나 문화 또한 이 범주를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모든 것을 시장이나 상품 체제로 환원하는 자본의 무차별한 전체주의적 속성과는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담론이 폴라니의 태도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는 신자유주의의 전언은 갈등과 동행하되 이를 제거해 버리지 않는 합의의 정신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 자본에 의한 승자 독식과 이를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힘의 논리가 두 입장 사이에 긴장과 대결국면을 만든다.
민주주의를 통해 성장한 자율적 개인들은 전체주의적인 시장주의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자본이 자기 정당화를 위해 동원하는 경제제일주의 이데올로기에는 개인들의 밥그릇을 둘러싼 “참과 거짓이 뒤얽혀” 있지만 그것은 결국 “발전된 도시 시장의 산물”일뿐 근본적으로 시민적 일 수 없다는 아도르노의 지적은 그래서 타당하다. 권력의 필요에 의해 동원 가능한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자기 합리화를 위한 담론을 확장하고자 할 때 문화는 철저하게 지배를 위한 도구가 되며 이데올로기적 대결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자유방임주의에 가까운 문화산업 논리는 신지식인류의 가짜 영웅들을 양산하게 되었으며 문화의 산업적 가치만을 강조함으로써 감성과 창조성에 바탕을 둔 예술적 가치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 창조성의 발화를 통해 여러 가지 콘텐츠로 외화 될 수밖에 없는 문화산업이 마치 새로운 세기의 문화적 가치 전부인 것처럼 오도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서로 층위가 다른 산업적 가치와 창의성의 가치를 혼동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한 셈이 되었다. 문화예술이 교육과 산업, 복지와 환경, 통일 문제 등 살아움직이는 사회적 의제와 광범위하게 소통하게 하는 창조적 가치를 오직 경제적 효율성의 문제로 폄하 시키는 정책은 많은 문화예술인들을 현실로부터 소외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참여 정부는 한국문예진흥원을 문화예술위원회로 바꾸는 정책을 제안했으며 법을 개정 이를 현실화 했다. 독임제를 합의제로, 지원을 위한 시혜 기구에서 정책 기구로 일방향에서 쌍방향으로 기구의 운영을 전환함으로써 문화예술인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상위 기구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 그 의도였다. 합의제인 위원회는 그 밑에 장르별 소위원회를 두어 운영되게 하는 법률을 국회에 상정하게 되었고 1년여의 논란 끝에 통과 되었다. 문예진흥원의 위원회로의 전환 과정과 그 운영에서 코드 논란을 불러온 편협성이 문제가 되기도 했으나 이는 정책의 목표와 방향이라는 전체체계에서의 문제가 아닌 당파적 이해에 따른 문제였을 뿐이다. 한 사회의 문화적 규범과 가치가 구성원들이 합의한 최소한의 공통분모라면 참여 정부가 문화를 예술인들의 특정한 이해 범주에 두지 않고 문화 일반 전체의 규범 아래 두고자 한 것은 일관된 정책 목표였다. 이미 저명한 명성을 누리고 있는 주류 장르의 예술가들과 집단들보다 광범위한 문화 향유자들의 입장에서 기구를 운영해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기능과 선택적인 지원 목표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따라서 정권 교체 이후 이러한 목표들은 정당하게 평가되고 비판되었어야 한다.
본질을 비껴간 기관장 교체를 둘러싼 파문이나 지원 대상들에 대한 편파성 등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한 문화 기구 전반에 다시 패거리 의식과 당파적 이해만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뿐 문화 민주주의를 위한 아무런 실질적 진전을 기대할 수 없게 한다. 문화가 지배의 도구로 전락하는데 따른 위험은 공동체가 합의한 규범과 가치를 왜곡함으로써 타락한 규범을 양산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 자리에서 이명박 정권의 문화정책 진단 토론회에서 정리한 목록들을 열거해 본다.
1. 공공기관장 강제해임과 경영 논리를 앞세운 비상식적인 인사정책
2. 실종된 미디어 공공성과 맹목적인‘미디어 관련법’ 개악 추진
3. ‘문화가 흐르는 4대강 살리기’ 등 토건 개발의 확산
4.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예술지원정책의 자율성 침해
5. ‘저작권법’ 개정, ‘사이버모욕죄’ 신설 등을 통한 검열 확대 및 표현의 자유 침해
6. 구체적인 전망과 계획이 부재한 ‘예술뉴딜’ 정책
문화연대가 주관한 2009년 이명박 정부 출범 1년, 문화정책 진단 토론회에서 앞서 열거한 구체적 사례와 함께 이원재가 지적한 문제는 “문화의 맥락, 문화의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문화를 개발하고, 상업화하려는 정책은 심지어 자본주의 시장우선의 정책 속에서도 언제나 실패해 왔다”는 점이다.
특히 위에 열거된 문제들 중 2번째 4번째와 5번째의 사안은 자율성을 잃은 문화의 정치도구화는 물론 표현의 자유 침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 또 다른 국면의 긴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진정한 의미의 보수적 가치를 지향하는 세력이 아니라 사적인 기득권과 특권화 된 이해를 바탕으로 결속된 특정 정파와 특정 언론 특정 재벌, 그리고 통치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국가 기구의 동맹은 사회 전 영역에 걸쳐 경험을 통해 자각된 자율적 시민들과 갈등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광범위한 저항적 연대틀을 형성하도록 강요하게 될 것이다. 촛불을 통해 드러난 자유롭고 자율적이며 가벼운 개인들이 형성하는 도덕적 연대가 적극적으로 정치화 될 때 작가들 즉 예술가들 역시 자신의 고유한 역능인 <쓰기>는 물론 시대적 모럴의 회복을 위해 <헌신성>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매일 매일의 일상이 풍경으로 내면화 되는 모든 장르의 작가들에게 자기 검열과 그에 따른 억압은 곧바로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이 상처는 세계를 향한 질문의 강한 에너지원이 되어 부당한 현실과 맞서는 전선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내일을 여는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