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특별호(통권 58호)

[국가와 예술 : 작가의 양심과 자유]

정치제도의 민주화를 넘어, 민주주의적 감수성을 향해

오창은

1. 일상을 식민화하는 성장주의

한국사회는 ‘정치제도의 민주화’를 성취한 이후, ‘시민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민주주의적 정치제도 형성을 위해 시민사회가 역량을 결집했던 시기는 지났지만, 더 나은 정치 질서의 확립을 위한 새로운 의제는 설정되지 않았다. 현재, 한국사회는 정치제도의 민주화 이후의 마모현상을 경험하고 있고, 새로운 정치적 의제로서 일상의 민주화의 실천적 과제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치의 영역과 생활의 영역이 분리되면서 ‘정치적 환멸’이 광범위하게 유포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87년 이전의 시기까지는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해방’이 과제였다면, 시민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지금의 과제는 ‘정치적 자유를 향한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정치적 자유는 개인의 자율성을 위협하는 것을 향해 투쟁할 수 있는 자유이고, 차이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체제를 향해 저항할 수 있는 자유이며, 공공성을 해치는 정책적 결정을 반대할 자유이다. 문제는 정치적 자유가 어떤 특정 주체에 의해 쉽사리 쟁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문화적 측면까지 포함한 일상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이 제도적으로 획득한 정치적 자유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상황까지 발생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정치적 자유’보다 ‘경제적 성장’을 갈구했던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결과가 이를 반증한다.

이명박 현 정부의 탄생은 ‘정치제도의 민주화 이후의 후속과제’를 시민사회에 안겨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상을 식민화하는 경제 성장주의’로 인해 자유의 가치가 심각하게 침해 당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으로 갑자기 출현한 문제로 국한시킬 수는 없다. 이미 정치제도의 민주화 단계 이후 한국사회에 충격을 던져 준 IMF 구제금융 이후 ‘일상의 경제적 식민화’에 침윤된 바 있다. 문민정부 말미에 극심한 충격으로 경험한 ‘경제적 패닉 상태’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까지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른바, IMF 시대는 개별 국가의 내적 모순으로 인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세계체제와의 조응 과정 속에서 발생한 것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가 개별 국가의 시스템에 개입함으로써, 강제적으로 세계체제와 국가 시스템을 통합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반강제적으로 ‘IMF의 감수성’을 내면화한 것이다. 바로 이 ‘IMF의 감수성’은 ‘일상을 식민화한 경제성장 우선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 그 강제된 감수성은 공포에 기반한 방어적 속성을 지니고 있어 지속적으로 한국사회를 왜곡시키고 있다.

정치제도의 민주화 단계에서는 활력이 넘치고, 자유로운 흐름을 향한 유동성이 강하다. 하지만, 정치제도의 민주화가 이뤄진 시기에 이르면 경색 국면에 접어들기 마련이다. 대의민주주의 질서의 고착화 상태에서 ‘권력의 경색화’는 임기 기간 중 내내 지속될 수밖에 없다. 대의제 아래에서는 누가 선거제도를 통해 권력을 쥐는가만 쟁점이 되기 때문이다. 권력자의 전횡을 제어할 수 있는 주권자의 실천은 항상 불충분할 수밖에 없다. ‘위임된 권력’이 ‘획득된 권력행사’로 이어지는 것은 이렇듯 명료하면서도 반복적이다.

2. ‘풍족한 밥’과 정치적으로 ‘좋은 밥’

정치 제도의 민주화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작가·예술가들도 성찰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에 시민사회 영역과 작가·예술가들의 ‘정치적 참여’는 과연 적절했는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지식인들이 거버넌스라는 이름으로 국가기구와 밀착하는 행태”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이는 지난 정권시기에 일부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정책 개발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국가와 예술’의 영역이 뒤섞인 것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6월 8일 발표된 ‘새 예술 정책’이나, 시민사회문화단체와 정부가 함께 만들어 공표한 ‘문화헌장’을 들 수 있다. 이는 국가기구의 입장에서는 시민사회문화단체의 참여를 이끌어낸 네트워크적 국정운영의 사례가 되겠지만, 시민사회의 영역에서는 정책결정에 연루됨으로써 비판적 거리를 상실한 사례로 볼 수도 있다. 사회적 계약에 대한 공통감각이 전제되지 않은 이러한 국가기구와 문화예술 영역의 혼재는 오히려 자율적 영역으로서 예술의 위치를 위협한다. 이렇다 보니,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오히려 ‘문화예술영역과 국가기구의 갈등’이 심각한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 신체제’가 가해지면서 ‘정치적 자유를 향한 해방’은 점점 암운이 드리워지는 듯하다. 경제인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은 ‘속도’와 ‘생산성’을 중시하는 근대산업화시기의 성장 모델을 의제화(agenda)하고 있다. 현 정부의 ‘발전주의 모델’은 경제적 생산력주의의 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고, ‘세계화/지식정보화’를 중시하는 태도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경제위주의 국정 운명을 천명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자기 파괴적 경제 우선주의가 ‘녹색성장’이라는 용어로 포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존 불가능한 ‘녹색’과 ‘성장’을 융합해 프로파겐다화 함으로써, 경제주의의 파괴성을 윤리적 외피로 둘러싸려는 발상 자체가 놀랍기만 하다. 더불어 전지구적 생태위기를 국가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보고, ‘저탄소 녹색성장’을 통해 ‘미래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발상이 의식있는 한국인들을 부끄럽게 한다. 이는 생태위기로 인해 초래된 인류 공통의 운명을 저울질 하며, 경제적 이익 가능성에 눈금을 맞추려는 것고 같다. ‘녹색성장’은 서로 공멸하는 전쟁의 와중에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더 강력한 무기를 팔겠다는 전쟁무기상의 딜레마가 담겨 있는 위험스런 정책일 뿐이다.

가장 무서운 권력은 정당성 없이 공권력을 휘두르는 정권이 아니라, 자신에게 정치적 정당성이 있다고 굳게 믿고 공권력을 행사하는 정권이다. 현정부는 실용을 앞세운 발전주의 정책을 관철시키고자 했다. 이에 대한 사회적 저항에 곳곳에서 일자, 현정부는 오히려 정치적 정당성을 앞세워 강압적 권력을 곳곳에서 행사하고 있다. 신념에 사로잡혀 공권력을 행사하는 정권은 성찰성이 결여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폭력의 강도도 저항의 강도에 비례해 강화시키기 마련이다. 오로지 좋은 세상을 자신만이 만들 수 있다는 믿는 권력은 얼마나 두려운가. 현 정부가 만드는 ‘좋은 세상’은 ‘풍족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긍지로 충만해 ‘정치적으로 좋은 밥’을 먹는 세상은 될 수 없을 것이다.

‘녹색성장’처럼 상생 불가능한 조합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현정부의 문화정책 중 하나인 ‘문화로 생동하는 경제’라는 구호이다. 문화의 영역을 통해 콘텐츠 산업 발전과 경제 회생에 기여하겠다는 발생 자체가 ‘경제주의적 실용주의’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국가정책 기조는 문화를 ‘특정한 삶의 방식이 투영된 상징적 영역’을 바라보지 않고, 경제적 보조물이나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스스로 천명하는 것과 같다. 경제성장이라는 ‘속도’를 중시하는 이러한 태도는 ‘경제 살리기’라는 유령에 사로잡힌 현 정부의 ‘과잉의지’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다. 아찔한 속도는 행위를 성찰할 수 있는 정신적 힘을 결여한다. 생각하지 않고 질주하는 것, 그것이 현 정부가 ‘경제적 실용주의’ 내세우면서 정책을 집행하는 패턴이다. 하지만 행복한 삶은 질주하는 속도로 가닿으려는 종착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윤리적이고 가치있는 삶은 홀로 질주하여 도달한 종착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관계를 나누며 사는 삶의 과정’ 속에 있다. 그 관계는 인간의 가치를 깊이 성찰하면서 맺는 연대와 우정의 관계일 것이다.

그렇기에 성장과 발전을 중시하며, 모든 관계를 경제적 관계로 환원시키려는 태도는 ‘텅빈 가치’를 아찔한 속도감으로 지속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용정부라는 이름을 가진 현 정부는 자신의 정책적 과제에 정당성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데, 그 기저에는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국민적 지지는 미래에 대한 공포 속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기도 하다. ‘국민적 지지’에 대한 신념이 확인되지 않으면, 현 정부는 ‘죽어있으면서도 살아있을 수밖에 없는 좀비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국민적 지지’가 실재하지 않다면, 언론의 태도를 바꾸고 문화적 환경을 강압적으로 변화시켜서라도 ‘국민적 지지’가 실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리한 정치적 의도에서 일련의 언론정책과 문화예술 정책이 집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신체로부터 감수성과 사고체계까지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체계를 형성하려는 국가기구의 의도가 작동하고 있다.

3. 국가가 작가의 양심을 판별할 수 있을까

2010년 1월 20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2010년 문예진흥기금 사업 특별지원조건 안내’라는 공문을 한국작가회의에 보내온 것도 현정부의 문화예술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그 공문에는 “본 단체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소속되었으나 실제 불법 시위에는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향후 불법 폭력 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보조금 반환은 물론 관련된 일체의 책임을 지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확인서 제출을 요구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확인서 제출 요구는 한국작가회의가 지원받기로 되어 있는 2010년 문예진흥기금 3천4백만원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강제적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정한 정책적 결정은 문학예술인의 표현의 자유에 정치적으로 개입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한국작가회의에 대한 확인서 제출요구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들어 나타난 일련의 문화예술영역에서의 개입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임기가 보장되어 있는 문화예술 관련 공공단체 기관장을 해임·교체하거나 독립영화전용관·영상미디어센터·예술영화전용관의 기존 사업자를 교체하려 하면서 발생했던 사건들, 그리고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의 예술인 회관 사업에 대한 지원 재개, 국립극단 법인화 문제 등이 그 예이다. 이들 사안들은 개별적인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연관되어 있는 국가기구의 문화예술 정책의 구체적 집행이다.

국가기구가 문학예술 영역에서 행하는 정책적 결정은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닌다. 개별적 사안들마저도 정치적 의도가 기입되어 있고, 그 집행에는 정책결정자의 방침이 투영되어 있다. 각 사안을 접하는 문화예술인의 태도는 예민할 정도로 민감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작가회의가 정기총회를 통해 국고 보조금 3,400만원에 대한 수령을 거부하고,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전개하기로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문제를 공론화시킴으로써, 오히려 개별적으로 보이는 문화예술 정책의 집행이 어떤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보이는가를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가 자본을 통해 문화예술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가하려 하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 ‘2010년 문예진흥기금 사업 특별지원조건 안내’라는 공문에 명확히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저항의 글쓰기 운동’이 어떤 지향점을 갖고 전개되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고민은 ‘국가와 예술가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핵심에 ‘표현의 자유’가 위치해 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척도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1항에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와 제21조 2항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가 명시되어 있다. 특히, 2항은 사전검열 금지 원칙이라고 명명되는데, ‘사상․의견․정보 등이 발표되기 전에 국가기관이 그 내용을 사전에 심사 선별하여 사전에 그 표현을 저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다.

검열금지는 존 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Areopagitica)’(1644)라는 불법 팜플렛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영국의회가 1964년 명령을 통해 모든 출판물의 의회 사전검열과 출판문구조합 등록을 명시하자, 존 밀턴이 이에 저항해 이 팜플렛을 작성했다. 당시 밀턴은 ‘이혼론’을 출판하려다, 의회의 사전검열로 무산된 바 있다. ‘아레오파기티카(Areopagitica)’에는 1) 햇빛도 보기 전에 출판물이 재판 받는다는 점 2) 무과실의 검열관이 있을 수 없다는 점 3) 국민이 알아도 무방한 것과 알아서는 안 될 것을 당국이 선별하는 것은 필자 뿐 아니라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는 점을 들어 의회의 명령을 비판했다. 밀턴은 “나에게 자유를 달라.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추론할 수 있는 자유를, 다른 모든 자유 이상으로 달라”고 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표현의 자유와 양심(혹은 윤리)의 문제는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국가기구가 법적 원칙을 내세워 자유를 억압할 때도, 이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은 보수적 규범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이다. 제도적 규범은 다양한 가능성을 수용할 만큼 포용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찰적이고 양심적인 개인은 보편적 규범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역능(puissance)을 지닌다. 이 개인, 혹은 개인들의 표현이 억압될 때, 규범은 지켜야 할 것들이 아니라 파괴되어야 할 억압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규범과 불화하는 자유로운 개인을 지향하는 존재이다. 이 양심은 자유로운 영혼의 양심이어야 한다. 권력관계에 체계, 그리고 기존의 관습에 침윤된 정치적 판단을 양심이라 일컬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실존 자체를 내걸 수 있는 예술가만이 진정으로 양심적인 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검열 자체보다, ‘검열의 내면화’가 훨씬 문제적이다. 작가·예술가 스스로 내적 검열을 행함으로써, 이미 발표 이전의 단계에서 자발적 검열이 이뤄지고 있다. 국가기구는 정치적 검열 이전 단계에서 이미 자발적인 내적 검열이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다듬고 있다. 검열의 경계를 국가기구가 설정하고, 이를 상식적 표준으로 대중에게 강제한다. 때로는 국익을 내세워 사회시스템에서 특정한 글쓰기를 배제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다.

4. 검열은 내면을 위태롭게 한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은 이렇듯 ‘검열의 내면화’로 개별 작가들의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제어하고 있다. 바로 이 ‘검열의 내면화 양상’을 분석할 때, 우리 시대 예술가들이 국가와 어떤 관계 설정을 해야 하는 지,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어떤 예술가적 행동이 요구되는 지도 살필 수 있다.

첫째, 자본을 통한 문화예술 영역에 대한 간접적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일부 시민사회 단체에 대해 국고보조금을 중단하고, 특정 시민사회 단체에 혜택을 늘림으로써 기존의 ‘거버넌스’의 형식에 새로운 내용을 기입하려 했다. 대운하 반대가 실질적인 이유가 되어 환경운동연합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중단했고, 촛불집회에 참여한 단체들도 국고보조금 지급에서 제외시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방식 개선’에서도 ‘지원심의 공정성을 제고’한다는 명분 아래 행정력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는 결국 행정관료의 권한을 확대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에서 정치권력은 지배는 하되, 행정적 실무나 관리는 ‘위원회 조직’이라는 시민참여 조직에 위임하는 세련된 통치 방식을 구사한다. 특정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행정적 착오’나 ‘내부 갈등’으로 떠넘기는 것이 가능한 것도 이러한 ‘위원회 조직’ 형식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지배적 성격을 공고하게 유지한다는 것이 현대 정치권력의 특징이다. 이러한 통치의 테크닉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투영되어 있다. 2005년 9월 29일 첫발을 내딛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제의식은 ‘민간 자율 합의기구로서의 독립성’을 보장받으면서도 문화예술의 지원을 강화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의미있는 조직의 출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 자율이라는 형식이 정권 교체에 따라 급격하게 영향을 받고 있음을 목도하게 되었다. 국가 기구의 직접적 강제가 아닌,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통한 ‘유연화된 통제’가 이뤄지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한국작가회의에 문예진흥기금 집행과 관련해 ‘확인서 제출’을 요구한 것도 지원금이라는 자본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정치적 판단에 따라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정책결정을 내리는 것은 통치의 기술일 수 있다. 이 통치의 기술은 ‘독과 약’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써 효과를 배가시킨다. 한 예로, 사업 능력 부족과 비리 문제로 중단되었던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의 ‘예술인 회관 건립’은 ‘대한민국 예술인 센터’라는 이름으로 부활해 새롭게 100억원을 지원하는 정책 결정이 이뤄졌다. 심지어는 예총으로부터 환수 받지 못한 국고보조금 165억원도 되돌려 받지 않기로 하는 특혜조치를 내리기까지 했다. 이는 국민의 세금으로 재원이 마련된 ‘국고보조금’을 정치적 판단에 따라 집행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강압적 공권력’을 동원하는 통제 방식이 이뤄졌고, 문민·참여정부 시절에는 배분을 통해 관리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서는 자본을 통한 기술적 통제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국가기구는 이데올로기 수단으로써 문화예술의 도구적 활용을 공공연하게 표방하면서, 문화예술의 수단적 기능의 강화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각 예술기관의 특성에 맞는 국가브랜드 창작 작품 개발’이다. 2009년에 발표한 예술정책에 따르면 ‘국립예술단체·기관 등의 창작 역량 및 예술성 강화’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2012년까지 9개 창작 작품을 개발하겠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시한 구체적 사례는 중앙극장의 ‘성웅이순신’ ‘주몽’, 국립국악원의 ‘King 세종’, 국립발레단의 ‘왕자호동’ 등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생태환경을 뒤흔들어 자연재앙을 불러 올 가능성이 있는 ‘4대강 사업’에 대해 ‘문화가 흐르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는 테제를 내걸고 공세적인 동원사업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4대강 유역 향토 문화지도’를 제작하고, ‘테마형 관광상품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문화부문에서 투여된 2009년 예산만 해도 총 552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상대적 자율성을 보장해야 할 문화예술영역을 국가기구가 동원한 것이며, 국립예술단체 및 기관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또한 예술 창작 주체의 자율적 창작 행위를 억압하는 것이기에 ‘예술의 존재 근거 자체’를 훼손하는 심각한 침해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홍수피해 방지와 물부족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4대강 사업은 ‘개발주의 폭력’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작가·예술가의 감수성과 직접적으로 충돌한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적 관계를 사고하는 윤리적 태도를 놓치면, 결국 인간 삶의 궁극적 기반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그 파괴의 현장에 예술가들을 동원한다는 것은 예술에 대한 살해행위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이 국가기구의 정책적 도구로 전락하는 상황에 대해 예술가는 끊임없는 자의식으로 비판적 거리두기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예술적 표현 행위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공공연하게 함으로써, 예술의 공공성에 위해를 가하고 있다. 이는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공공성은 민주주의의 이념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공공영역은 국가기구로 수렴되는 것도 아니며, 국가기구에 의해 관리되고 통제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토론과 합의 속에서 도출되는 것이다. 또한, 수많은 차이를 포함하는 ‘이질적인 것들의 공통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국가기구는 ‘국가 정책’ 혹은 ‘국가의 이익’을 바로 공공의 이익으로 간주하는 폭력적 판단을 지속적으로 내리고 있다. 이러한 판단이 문화예술 영역에서 심각한 자유의 침해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그 한 사례가 2008년 7월 22일에 국방부가 23권의 서적을 불온도서를 분류한 것이다. 이는 명백히 작가의 창조적 작업에 대한 정신적 테러이며, 공공성에 대한 침해이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강도 높게 추진되고 있는 국립극단 법인화와 같은 예술기관의 공공성 파괴행위도 주목해야 한다. 국립극단과 같은 공공성 높은 예술기관을 경영원칙과 수익성을 이유로 법인화하려는 것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문화시민권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공공예술기관을 이윤과 수익성이라는 사적 자본의 태도로 바라보는 것은, 결국 ‘문화예술의 시장화’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5. “안전에서 위험으로”

예술적 표현 행위에 대한 억압이나 예술가에 대한 정치적 탄압, 그리고 예술기관의 공공성 파괴는 궁극적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예술가의 표현에 대한 자유 억압은 자유일반에 대한 권한의 축소하려는 반민주주적 행태이기도 하다. 또한, 현 정부는 작가·예술가들의 작품에 직접적인 검열을 가하는 것은 피하면서도, 시스템을 정비함으로써 예술문화 영역의 주류적 흐름은 관리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정치권력의 이러한 관리방식이 체계화되면 작가·예술가들은 무의식적으로 시스템을 내면화하게 된다. 공모 사업 선정과 국고 보조금 지급을 위해서는 ‘비판적인 집회’에 참여하지 않아야 하고, 국가브랜드화 사업에 부합되는 작업이 정책적으로 선호되리라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또한, 창작자들이 예술작품의 시장화에 더욱 민감하게 됨으로써, 예술의 공공적 기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예술 표현 양식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적 결정은 궁극적으로 ‘내적 검열’을 목표로 한 것이다. 그래서 알튀세르가 이야기한 것처럼, 현대 국가 기구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기능의 선호하면서도, 통치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억압적 국가장치를 적절히 활용하지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신체로부터 감수성과 사고체계까지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원’하는 것의 실상이기도 하다.

작가·예술가들은 과연 무엇이 창작의 자유를 왜곡하는가에 대한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랬을 때만이 시스템이 강요한 행위로서의 예술이 아닌, 체제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상상 속에서 창작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 또, 예술가로서 어떤 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해 작품으로써 응대할 수 있는 가능성도 넓어진다. 공적 역할은 사적 신분으로서 작가·예술가의 지위를 끌어 내리려는 시스템 하에서는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몸을 직접 움직이는 실천이 더욱 각별하다. 용산 참사에 대응하는 ‘6·9 작가선언’의 실천과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한국작가회의 저항의 글쓰기 실천위원회’의 직접행동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실천행위를 통해 작가 스스로는 자신의 감수성을 변화시킬 수 있고, 더불어 독자와 교감하며 시대의 공통감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글쓰기의 실천은 이렇듯 항상 시대와 더불어 몸을 섞는 직접행동과 연대의 끈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이 문화행정의 전횡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문화예술의 시장주의가 강요되는 상황에서 작가·예술가의 공적 지위는 왜소해지는 듯하다. 더구나 국가기구가 문화예술의 기능을 재단하고, 수단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작가·예술가의 자존감마저 심각한 상처를 받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권력과 지성인』에서 작가·예술가·지성인이 처한 현대의 위기는 ‘학문기관이나 저널리즘과 출판사들의 전율스런 상업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전문직업주의(professionalism)’라고 했다. 전문직업주의는 생업을 위해 자신의 상품가치를 관리하고, 비논쟁적이고 비정치적이고, ‘객관적’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결국 자유롭지 못한 작가·예술가가 되어 체제에 갇힌 창작품만을 생산하는 것이 비극인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예술가가 비정치적이고자 하고, 생업을 위한 일상에 갇히면 ‘전문직업주의’에 예속된 존재가 되고 만다.

건강한 정치적 감성을 마비시키는 ‘전문직업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선 예술가가 훨씬 더 예민하게 자신의 미적 감수성을 벼려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좋은 언어를 향한 갈구일 수도 있고, 예술 속에 내재되어 있는 긍정적 힘인 역능(puissance)을 창조적으로 복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금기를 넘어서는 예술창조의 자유를 위한 노력을 빼놓을 수 없으리라.

그 노력이 실질적인 결실을 맺기 위해 위대한 예술가는 ‘위험한 여행을 감내하는 자’(이성복)가 되거나, 스스로를 ‘추방당한 존재’(에드워드 사이드)로 만들어야 한다. 이성복은 산문집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에서 “일상적 삶은 ‘느낌’에서 ‘사실’로, ‘위험’에서 ‘안전’으로의 끊임없는 이행이다. 예술이 진정한 삶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라면, 예술은 일상적인 삶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다. 즉 사실에서 느낌으로, 안전에서 위험으로.”고 말했다. 이는 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위험을 감수하는 존재로서의 예술가의 실존을 담아낸 언술이다. 더불어 특정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온함, 낯익은 것으로부터의 일탈, 국가의 일원에서 세계시민의 일원으로 자신의 위치를 변동시키는 모험 등이 ‘위험한 여행을 감내하는 자’, ‘추방당한 존재’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험의 감각 없이 ‘소속감을 강요하는 국가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위대한 예술가는 탄생할 수 없다.

6. 건강한 정치성을 위한 성찰

체제 바깥을 상상하는 힘을 가진 작가는 독자에게 낯선 충격을 안겨준다. 이러한 부류의 작가는 시대를 앞서간 작가들이 아니라, 오히려 시대에 철저한 작가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너무도 정확히 알아버렸기에, 시대와 불화하며 체제 바깥을 꿈꾼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 신동엽, 김수영, 이문구, 조세희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중 조세희는 생존해 있는 작가이고, 아직도 한국사회의 모순이 불거지는 현장에서 민중과 함께 호흡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체제 바깥을 여행하는 작가의 표상인 조세희는 한때 역작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발표한 후, 극심한 글쓰기의 곤란함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과작(寡作)이며, 소작(少作)인 작가이다.

조세희는 1980년대 초반에 쓴 「어린왕자」(『시간여행』, 문학과지성사, 1983.)를 통해 자신의 글쓰기가 어떤 연유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는가를 토로한 적이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차용한 이 작품에서 조세희는 “오랫동안, 찾아오는 말들을 너는 안 될 사정이 있어 안 돼 하며 돌려보내기만 했더니 이제는 모든 말들이 내게 필요하지 않다 지레 채고 발길을 끊어버렸다”고 했다. 말길이 끊긴 상태에서 작가를 찾아온 이가 어린 왕자다. 어린 왕자는 여기서 일종의 연상이며 상징인데, 그 실제 형상은 이사 도중에 비에 젖은 생텍쥐페리의 책인 「어린 왕자」를 지칭한다.

쓰고자 하는 내용은 있는데, 그것을 담아낼 적절한 형식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작가의 고뇌가 「어린 왕자」에 표현되어 있다. 조세희는 체제로부터 배제당한 소수자의 운명을 의미 있게 증언하고자 했다. 하지만, 전두환 시대의 억압적 현실은 최소한의 표현의 자유마저 억압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감옥에 갇힌 친구’를 통해 시대의 곤란함을 간접적으로 토로하며, 정치권력의 폭력에 대한 사유를 시도했다. 체제로부터 배제된 존재, 체제 바깥의 존재, 감옥에 갇힌 존재를 생각하면서 작가는 국민을 억압하는 비윤리적인 국가가 미래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그 질문에 대한 작가로서의 고민은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무지하고 잔인하고 용렬하고 탐욕적인 사람들 덕택에 어떤 나라가 발전했다면 그것은 물론 좋은 발전일 리가 없다. 어떤 나라에서는 퇴보인 것이 어떤 나라에서는 진보가 된다. 나도 이따금 스위스라는 나라에 가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스위스가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을 나는 미국 영화를 통해 알았다. 성공한 나라의 시민들처럼 나도 아름다운 스위스를 여행하며 영화에서만 본 풍경을 직접 사진 찍어 보고 싶다. 그러나 우리 다수의 시민들처럼 나는 스위스를 낙원, 즉 파라다이스로 떠올리지는 않는다. 이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스위스는 낙원이 아니라 스위스인의 긍지를 갖고 《나는 스위스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나라이다.(조세희, 「어린왕자」『시간여행』, 문학과지성사, 1983, 65쪽.)

이 시기 조세희의 고민은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나라’에 가 닿은 것 같다. 물질적 풍요로 넘쳐나고, 사람들의 욕망은 충족되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공허하기만 하다. 그래서 조세희는 건강한 시민의 윤리를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은 억압으로 점철되어 있고, 증언하고자 하는 작가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조세희의 「어린왕자」가 발표된 때로부터 30여년이 지났지만, 조세희가 원했던 ‘나는 긍지를 가진 한국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는 아직도 요원한 듯하다. 오히려 양심 있는 이들은 스스로를 부끄러운 한국인으로 간주한다.

경제적 풍요는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행복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오로지 경제적 풍요만을 지향하는 사회에 ‘인간으로서의 긍지’는 더욱 옅어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이나, 성장을 중시하며 자연을 수단시 하는 ‘녹색성장’ 담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게다가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전쟁에 대한 공포’를 공공연하게 조장하는 정치권력은 얼마나 위험천만한가. 올바른 정치성을 지닌 시민이라면 험한 상황일수록 ‘전쟁반대’와 ‘평화공존’을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수많은 생명을 담보로 정치적 보복이나, ‘전쟁불사’를 외치는 위험천만한 구호에 대해 적극적으로 ‘전쟁반대’를 외칠 수 있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들’의 실천행위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왜곡된 정치성이 한껏 부풀어 오른 상태이다.

오로지 한 목소리만 존재하는 사회는 얼마나 불행한가? 고통 받는 이웃에게 공감했다는 이유로, 그 고통을 증언했다는 이유로 약소자들을 배척하는 사회는 얼마나 야만적인가? 발전과 성장만을 지상의 가치로 삼고, 물질적 행복만을 향해 질주하는 사회는 얼마나 비참하게 긍지를 상실한 나라인가? ‘문화의 물길’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자연의 속살을 헤집으며, 물길을 피 흘리게 하는 ‘4대강 사업’은 얼마나 잔인하고 용렬한가? ‘녹색성장’을 외치면서 ‘전지구적 생태위기’를 수단화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얼마나 탐욕스러운가? 더구나 민중의 생명을 담보로, ‘전쟁의 공포’를 조장하는 정치권력은 얼마나 위험천만한가?

성장과 경쟁은 한국사회에서 보편적 가치인 것처럼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보편성은 일반성이 아니다. 오히려 보편성은 타자와 구분되는 우리를 가능하게 하는 국가, 언어, 민족, 문화에 안주하는 태도를 초월할 때 가능해진다. 개별적 이익을 넘어서려는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 속에서 보편적 가치가 더욱 빛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인간적 가치가 아닌, 우리를 벗어나서도 가능한 인간적 가치를 탐구하는 것이 보편성을 추구하는 태도이다. 이는 비유컨대, 합창단의 일원으로 가담하여 하나의 목소리만 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소리들이 하나의 화음이 될 수 있는 보편적 울림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권력을 향해 ‘표현의 자유’ ‘다른 가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그 자유는 ‘물리적 억압’으로부터의 자유에 국한되지 않고, 시스템을 장악한 권력자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적 억압’에서의 자유로까지 나아간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자본주의 바깥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내면화되어 있다. 경쟁은 숙명인양 간주되고 있으며, 정서적 교감 능력은 무감각인양 딱딱해져 있다. 이러한 ‘정신적 무감각’(로버트 제이 리프튼)의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감수성의 혁명적 변화가 기획되어야 한다. 혁명은 세상을 구조적으로 바꾸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주체의 태도를 바꾸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시대에 체제 바깥을 상상할 수 있었던 신동엽, 김수영, 이문구, 조세희의 가치가 오히려 더 돋보인다. 더 과감하게 시대와 부딪치려 했던 그들과 같은 존재가 간절하다.

건강하게 정치적이려면,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적 탐구를 멈추지 않는 태도를 지속되어야 한다. 그 민주주의적 가치에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가 자리하고 있으며,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원리’가 깃들어 있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개인의 ‘윤리적 실천의지’가 포함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기에 건강한 정치는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어야 한다. 바로 그곳에 체제 바깥을 상상할 수 있는 커다란 힘이 꿈틀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