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2010년 특별호(통권 58호)

[소설]

으라차차 할머니

한지혜

할머니는 기생이고, 나는 쌍둥이다. 그것도 샴.
“싸암? 뭔 쌈. 상추쌈, 배추쌈? 아나, 풀을 뜯어먹어라.”
엄마가 말한다. 한 손으로는 솥단지를 휘휘 젓고 있다. 솥 안에는 용암처럼 시뻘겋게 육개장이 끓고 있다.
“맞아. 한 뿌리에서 갈라진 채소 마냥 몸 붙어 나온 쌍둥이. 그게 나야.”
“듣기도 흉하다. 난 쌍둥이 낳은 적 없다.”
엄마가 젓던 육개장 국물이 밖으로 조금 튄다.
“거짓말.”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대꾸 없는 엄마 대신 언니들이 지절거린다.
“그런 적 없다. 우리가 장담한다. 너 태어날 때, 우리 둘이 방에서 지키고 있었다.”
“그래, 혼자서 쏙 나오더라”
정말 쌍둥이처럼 생긴 다섯 살, 여섯 살 터울의 언니들이다.
“무슨. 엄마가 나 낳을 때, 달랑거리며 몸 붙어 나오는 거 보고 언니 둘이 놀라서 홀랑 기절했잖아.”
“기절이 아니라 기함을 했다. 예정일은 한참 남았는데, 엄마가 아랫배 더부룩해서 방귀나 한번 뀌려고 힘주니까 네가 튀어나오더라. 얼마나 놀랐던지 우리 둘이 손 붙잡고 대성통곡하며 울었다. 언제 애 낳는 걸 봤어야지. 나오고 있는 핏덩이랑 진즉 나와서 머리에 피가 꾸덕꾸덕 마른 지 오래 된 애들이랑 동시에 어찌나 크게 우는지 담 너머 집에서는 여러 쌍둥이 낳은 줄 알았다더라.”
“거봐. 쌍둥이를 낳았다니까.”
“우리가 같이 울어 그런 거래도. 그리고 네 말대로 둘이라 치자. 나머지 한 명은 어디로 갔니?”
“여기 있잖아. 이 안에.”
나는 자신만만하게 몸을 돌려 낙타처럼 불룩하게 솟은 등을 보인다.
“네가 무슨 유행가 가사니? 네 안에 네가 있게.”
“봐봐, 여기 꺼멓게 머리도 있잖아.”
나는 가까스로 손을 어깨 너머로 뻗어 불룩 솟은 등 위 검은 얼룩을 가리킨다.
“그게 어째 머리니. 불에 덴 흉터지.”
“화상 아냐, 머리야.”
“하기야 화상은 네가 화상이다.”
“아니, 나는 쌍둥이야. 그것도 샴. 할머니는 기생이고.”
텅텅,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엄마가 국자로 곰솥을 두드린다.
“시끄럽다. 노인네, 귀 사나워 일어나겠다. 기생은 무슨 얼어 죽을 기생이냐. 생긴 꼴이 사나워 남자 구경이라곤 해 본 적도 없는 양반이다.”
쿵, 오그려 쥔 엄마의 주먹이 내 머리에 떨어진다. 별똥별이 순간 반짝, 떴다 사라진다. 아파서 눈물을 찔끔 흘리는 나를, 언니들이 모른 척 외면한다. 내 편이라고는 할머니뿐인데, 할머니도 나를 편들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다. 꼼짝도 않고 누워만 있는 중이다. 당연하다. 할머니는 조금 전에 죽었으니까. 눈물을 찔끔 흘리며 나는 할머니를 힐끔 쳐다본다. 죽어 있는 할머니는 이상하지 않은데, 누워 있는 할머니는 이상하다.
나는 한번도 할머니가 똑바로 누운 것을 본 적이 없다. 할머니는 꼽추다. 꼽추는 대부분 다 그렇다. 굽은 등 때문에 똑바로 누울 수 없고, 구부러진 뼈로 인해 가슴 주위의 뼈가 원통형으로 도드라지기 때문에 옆으로 눕는 것도 쉽지 않다. 때문에 쉬거나 자려면 어딘가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야 한다.
그런데 할머니는 지금 대나무보다 꼿꼿하게 누워 있다. 평생을 굽어 살아도 결국에는 저렇게 반듯해지는 게 죽음인가. 죽은 꼽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어 원래 다 그런 건지, 할머니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할머니 말대로 사실은 꼽추가 아니었던 걸까. 할머니가 꼽추가 아니라면 내가 쌍둥이가 아닐 까닭이 없다. 할머니를 보며 나는 다짐하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렇더라도 이제 정말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외롭지 않다. 나는 쌍둥이니까. 나 자체로 이미 둘이니까 중얼거리지만, 나 말고 내 안에 또 있다는 다른 마음이 하는 말은 들어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다. 죽어서 반듯해진 할머니처럼 나도 그 후에라야 비로소 또 하나의 나와 마주할 수 있을런가.

할머니가 죽었다. 오늘 새벽에 죽었다. 아니 오래 전 새벽인가. 벌써 기억이 가물하다. 아무튼 할머니는 새벽에 떠났다. 가기 전에 나를 깨웠다. 자고 있을 때면 세상이 무너진대도 모르는 나를 일부러 깨워놓고 할머니가 말했다.
“아가, 나 간다.”
자다 말고 무슨 벼락인가 싶어 나는 멀뚱멀뚱 할머니 얼굴을 쳐다봤다. 뜬금없이 간다더니 어디 소풍이라도 간다는 말인지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었다. 석 달 넘게 시름시름 누워 있던 사람 같지 않았다. 눈도 초롱초롱했다.
“어딜?”
“내 갈 데가 저 세상 말고 또 있나”
그제야 무슨 말인지 감이 왔다. 좀체 앓는 법 없던 양반이 약한 감기로 눕더니 영 못 일어나기에 혹시나 어쩌면 하고 마음속으로는 조금씩 준비를 했었다. 그렇더라도 좀 뜻밖이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언제?”
“지금 가면 네가 무서울 테니까, 이따 새벽에 갈란다. 그리 알고 있어라.”
“….”
“서운하냐?”
“시원하네.”
말은 그렇게 해 놓고, 나도 모르게 고개가 푹 떨어졌다. 마음 밑바닥에 거친 모래 같은 것이 차르르 내려앉았다. 할머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흐물흐물 웃더니 물었다.
“뭐 하나 주고 갈까?”
“뭐를?”
대답 대신 할머니는 깔고 앉은 요 밑에 손을 넣어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제법 귀한 물건을 숨긴 표정으로 한참 동안 이불 속을 더듬기에 모아둔 쌈짓돈이라도 유산 삼아 주고 가려나 했더니 마침내 할머니가 꺼낸 것은 낡고 두툼한 공책이었다. 돈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물건이었다. 그 안에 돈을 숨겼을 것 같지도 않고, 팔아서 돈이 될 물건 같지도 않았다. 그저 두껍기만 두꺼웠다. 저리 두꺼운 것이 어떻게 이불 속에 흔적도 없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을까 놀라울 만큼 두꺼웠다. 할머니는 자랑스레 그걸 내게 내밀었다. 제법 묵직했다. 눈으로 보기에는 금세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데, 손에 닿는 감촉이 제법 단단했다. 그렇지만 역시 낡기는 무척 낡았다. 누렇게 뜨고 바랜 것도 모자라 냄새까지 쿰쿰했다.
“이게 뭐야?”
“이야기다.”
“뭔 이야기.”
“내 이야기.”
그래 놓고 할머니는 멋쩍은 듯 씩 웃더니 변명처럼 덧붙였다.
“말 하지 않던, 나 살아온 거 적으면 소설이 여러 권이라고.”
“그래서 소설?”
“소설이라면 소설이고. 역사라면 역사고. 위인전이라면 또 위인전이지.”
위인은 무슨. 입을 삐죽이며 공책을 펼쳐보니 워낙 명필이라 면서기가 울고 갔다던 할머니의 글씨가 시원시원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첫 문장이 내 이름은 김순녀, 로 시작했다.
“이거는 왜 주는데?”
“아깝잖아.”
“뭐가?”
“김순녀 여사 80년 살았는데, 아무도 모르면 허망해서.”
“모르면 어때서.”
“산천초목도 그만큼 나이를 먹으면 피고 진 흔적이 남는데, 사람으로 태어나 살고 지면서 들고 난 흔적도 없으면 도리가 아니다.”
“이런 거 적어둔다고 누가 읽나?”
“안 읽어볼 거나.”
“나야 안 읽어도 김순녀 여사 80년 생애 다 알잖아.”
“그러긴 해도, 너는 머리가 나쁘잖아.”
“적당히 잊는 게 흔적만 남기기에는 딱 좋지.”
“머리는 나쁘고, 입은 여물고.”
“정말 갈 거야? 오늘?”
당연하다는 듯 할머니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는 거 봐 줄까?”
“동 틀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눈이나 좀 더 붙여.”
“오밤중에 사람 깨워서 갈 거라고 말해놓고 잠은 무슨 잠.”
그 말에 할머니가 웃었다. 그러더니 다소 미안하고 멋쩍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더 재우다 갈 즈음에나 깨울 걸 그랬나.”
그리고는 피곤한 듯 벽에 쌓아놓은 베개에 가만히 몸을 기댔다. 나도 따라 그 옆에 몸을 기댔다. 솜을 잔뜩 넣은 베개를 세 개나 포개어 놓고, 할머니는 그것을 등받이이자 베개로 삼았다. 그것은 또한 내 등받이이자 베개이기도 했다. 할머니도 나처럼 등이 굽었고, 나도 할머니처럼 등이 솟았다. 우리는 언제나 푹신한 베개더미에 나란히 기대어 쉬거나 잠을 잤다. 마치 넓은 사막에서 만난 외봉낙타 두 마리처럼 다정해 보였지만, 사실 다정하지는 않았다. 할머니와 나는 오랫동안 서로를 미워하거나 구박하거나 증오했다. 그런데도 결국 이렇게 둘만 남았다. 우리는 서로 미워했지만, 다른 사람은 우리에게 아예 무관심했다.
잠은 오지 않고, 할머니가 갈 때까지 딱히 할 일도 없어 시간이나 때울 요량으로 할머니가 준 공책을 펼쳤다. 글씨는 시원시원하고 힘찬 것이 명필이었지만, 명문은 아니었다. 그래도 어렵고 까다로운 말이 없어 읽히기는 술술 읽혔다. 별 내용이 없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태어나고 자라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뭐 그런 뻔한 이야기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에 불과했다. 하여 두껍기도 두껍고 길기도 길더니 읽기는 순간이었다. 내가 알던 이야기도 있고, 모르던 이야기도 있었다. 빠진 이야기도 있었고, 지어낸 이야기도 있었다. 어쨌거나 분명한 건 공책 속에 적힌 할머니의 삶은 실제 할머니의 삶과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거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 내 이름은 김순녀, 1930년 충남 서산 김 부잣집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났다. 일찍이 머리가 총명하고 외모가 수려하여 근방에서 서산 김 부잣집 외동딸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자고로 딸은 교육시키지 않는 시대였으나 소학교 졸업 후 저 혼자 준비한 공부로 서울에 있는 명문여중 입시에 덜컥 합격하여 유학의 길을 텄다. 중학교 내내 수석은 도맡았고, 명문여고 또한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고 졸업하였다. 몸이 병약하였고, 유학 처음에는 시골뜨기 촌뜨기라고 동무들에게 놀림도 받았으나 시험 때마다 일등을 도맡자 나중에는 말이라도 한번 섞어보려고 줄을 서는 동무들이 숱했다.

여기까지는 대충 내가 아는 할머니와 비슷했다. 하지만 역시 몇 가지가 달랐다. 일단 할머니는 부잣집 딸이 아니었다. 크게 밥을 굶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학교도 언감생심인 형편이었다. 그럼에도 소학교에는 다닐 수 있었는데, 성치 않은 몸에 대한 부모의 측은지심 덕분이었다. 몸은 불구여도 머리가 총명한 줄은 알았지만 막상 학교에 보내놓고 보니 생각 이상으로 뛰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뛰어난 줄 누구보다 할머니 자신이 먼저 잘 알았다. 하여 할머니는 어느 해 추수가 끝난 후 소작을 갚기 위해 준비한 돈을 보따리로 훔쳐내어 그대로 서울로 줄행랑을 쳤다. 그리고 그 돈으로 누가 잡으러 올세라 얼른 학교에 입학을 했다. 교우 관계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기본 줄거리는 맞되 구체적인 정황은 윤색의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다음 대목에 펼쳐진 허풍과 견주면 그 정도의 윤색은 애교에 불과했다. 스스로를 일컬으며 ‘여사’라는 호칭을 갖다 붙인 것부터가 그러하다.

- 명문 여고를 졸업한 후 교사가 되고자 하였으나 몸이 병약하여 하루 종일 교단에 서 있기 어려울 듯하다는 이유로 번번히 거절을 당하였다. 뜻을 굽히지 않고, 소학교부터 교회나 절에서 운영하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글자나 가르쳐줄 요량으로 세운 곳까지 두루 알아보았으나 구지부득(求之不得)이었다. 상심이 컸던 김순녀 여사는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처럼 머리로 애국하고 이름을 높이는 길을 찾았으니 바로 공직에 몸을 담는 것이었다. 김순녀 여사의 재주를 아까워한 동네 유지들의 탄원에 힘입어 관청에서 일을 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인생사 새옹지마였다. 원래 영웅은 고향에서는 알아보지 못하는 법이나 이토록 자신을 살뜰히 여긴 어르신들에 대한 보은의 마음으로 김순녀 여사는 세상 모든 위인은 고향을 등지고 성공했지만 나는 기어이 고향을 부흥시키는 데 이 한 몸 아끼지 않고 다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몸은 약했지만 머리가 좋고 수완이 남다른데다 이런 투지까지 갖추었으니 김순녀 여사를 향한 어른들의 신망은 나날이 높아져만 갔다.
허나 운명은 또 한번의 위기를 준비하였으니 바로 전쟁이었다. 팔도를 삼킨 전쟁은 사람들의 고운 심성마저 짓밟아 보릿고개마다 사방 백 리 김순녀 여사 집의 곳간에서 푼 곡식을 받지 아니한 사람이 없었음에도 끝내 그 아비를 악덕 지주로 몰아 멍석말이를 하였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겨우 빠져 나온 김순녀 여사는 혹여 누군가 지주의 외동딸임을 알아볼세라 어린 시절부터 키우던 마당의 개 한 마리가 혼자 가지 말아라 안타까이 꼬리 흔드는 것마저 호랑이 새끼 보듯 경계하며 사납게 떼어놓고는 남으로 남으로 하염없이 내려갔다.
집안은 망하고, 전쟁은 계속되었지만, 봄이 오면 꽃이 피듯 김순녀 여사도 만개하기 시작하였으니 출중한 외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남다른 교양과 학식, 공무원 생활을 통해 익힌 넓은 식견이 어우러져 어디에 가나 낭중지추(囊中之錐)라 벌통에 벌 나비 모여들 듯 사람들이 꼬였다. 그들의 도움으로 김순녀 여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지체 높고 고상한 서로 사교를 나누며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다과는 기본이요, 편안하고 부드러운 대화를 위하여 술과 음식도 즐길 수 있으며 간단한 여흥도 즐길 수 있었으니 일종의 비즈니스 레스토랑과 같은 것이라고 보면 무방한 곳이었다.

나는 읽다 말고 몇 번 피식 웃었다. 소설이라면 소설이고, 위인전이라면 위인전이라더니 지어도 너무 지어냈고, 꾸며도 너무 꾸몄으며, 허풍과 젠 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진실을 밝히자면 이렇다. 할머니가 교사가 되지 못했던 건 불구 때문이었다. 성적을 보고 찾았던 학교마다 병신이 무슨 선생이냐며 노골적인 냉대를 서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글자를 읽고 쓰기에 능하다는 소문 하나로 관공서의 서류를 옮겨 적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나마도 남들 안 보이는 구석자리에 숨어서 하는 일이었다.
전쟁 중에 부모를 잃은 것은 사실이었다. 부잣집 딸이라는 말 자체가 거짓이니 악덕 지주로 몰릴 일은 당연히 없었다. 사람과 전혀 무관하게 폭격 때문에 그리 되었다. 홀로 살아남아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간 할머니는 한동안 거지로 살았다. 전쟁으로 살림살이는 물론이오, 몸이고 마음이고 죄 피폐하고 신산해진 사람들은 할머니의 불구를 대놓고 조롱으로 삼거나 재수 없다 내치기 일쑤였다.
빌어먹는 생활도 쉽지 않았다. 거지 패에서도 받아주지 않고, 여자 홀로 다니는데 몹쓸 맘으로라도 집적거리는 저잣거리 사내도 하나 없었다. 그래도 죽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살만 할 때는 죽고 싶다가도 정말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처하면 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었다. 거의 굶어 죽을 뻔한 몸으로 밥 냄새에 홀려 어딘지도 모르고 들어간 곳이 기생집이었다.
마침 몇몇 기생들이 동백기름 곱게 바른 머리 맞대고 편지 하나를 읽는 중이었는데, 한자 일색이라 제대로 읽는 이가 없었다. 기생집 손님들 중 더러 양반 놀이하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머리 좋고 똑똑한 거 자랑하는 일이라면 누던 똥도 끊고 나오는 성정인지라 할머니는 다 죽게 생긴 와중에도 글 모르는 기생들이 붙잡고 있는 편지를 가로 채 술술 읽어주었다. 그것이 그날부터 밥이 되고 돈이 되었다. 글 모르는 기생들 대신 편지도 읽어주고, 글씨도 써주는 대가로 찬밥덩이나 얻어먹게 되면서 피란살이에 겨우 목숨을 부칠 수 있었다, 는 이야기를 내게 직접 들려준 사람이 바로 할머니였다.
할머니와 살고부터 나는 날마다 “김순녀 여사 80년 생애 어떻게 살았는고 하니” 하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하도 들어 어떤 날은 내가 80년이나 산 김순녀 여사 같았다. 그래 놓고 정작 공책에 그려놓은 김순녀 여사는 비슷한 설정이 일부 있으되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공책 속 주인공 김순녀는 정말 멋졌다. 적절한 신파와 자화자찬 그리고 허세로 그려진 문장 어디에도 오고 갈 데 없이 처녀로 늙은 꼽추 노인네는 없었다. 비극도 고난도 그녀를 해칠 수는 없었다. 모진 인생의 장난과 극적으로 맞서 싸워온 당차고 의연한 신여성이 한 명 존재할 뿐이었다.
대체 서로 다른 두 김순녀의 간극은 무슨 연유에서 비롯된 것일까. 노망이 났나. 공책 속에 파묻은 고개를 들어 눈치를 살폈더니 할머니는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간의 이야기가 거짓이든, 공책에 쓴 이야기가 소설이든 어느 한쪽은 거짓이었다. 그리고 진실이 어느 쪽에 있든 가장 분명한 진실은 지금 이 순간 내 옆에 앉아 있는 김순녀 여사는 갈 데 없이 홀로 늙은 꼽추 노인네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허무하네.”
“허무하지.”
나는 그쯤에서 공책을 덮었다. 절반도 못 읽은 인생이 그러하니 나머지 인생은 더 읽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다 거짓말이다.”
“다 참말이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참회도 하고, 반성도 하고, 아쉬워도 한다는데, 회고록이라고 이렇게 쓴 거보니 할머니 가는 날 오늘 아니다.”
“살아온 것도 인생이고, 살고 싶은 것도 인생이다.”
“그건 꿈이다. 개꿈.”
“원래 인생이 일장춘몽이다.”
딴에는 맞는 말. 하지만 이렇게 길고 고된 꿈도 있나. 할머니가 살았던 시간을 생각하면 아득하다. 그 시간이 결국에는 내가 살게 될 시간 같아 몸서리 처지는 날도 많다.
“우리 집에 오지 말지.”
“너 보러 안 왔다. 내 딸 보러 왔지.”
“딸은 무슨 딸. 낳지도 않아놓고.”
“기른 정이 더 무섭다.”
“기르지도 않아놓고.”
“제 발로 뛰쳐나갔다. 그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끝까지 거두는 게 아니라더라.”
“머리 허옇게 와서 거뒀지, 검은 머리로 왔으면 말도 안 섞었을 거라고 하더라.”
“누가 그리 말해?”
“엄마가.”
“싸가지.”
엄마와 할머니가 어떻게 만났는지는 모른다. 할머니와 엄마 모두 그 부분에 있어서는 서로 질세라 수시로 말을 바꾸었다. 할머니가 전쟁 때 고아 된 계집을 거둔 게 엄마라고 하면, 엄마는 다 큰 다음에 오다가다 만난 늙은이가 당신 혼자 수양딸 운운해가며 치대는 거라고 했다. 할머니가 엄마를 은인의 딸이라고 했다가 바람 난 유부남의 전처 딸이라고 했다가 피난 중에 몹쓸 일을 당하고 낳은 아이라고 차례로 말을 바꾸면 엄마는 핏덩이일 때 버리고 간 어미라고 했다가 그 어미가 진 빚을 받아내려는 빚쟁이라고 했다가 생판 처음 보는 미친 늙은이라고 했다.
호적으로 따져보면 두 사람은 생판 남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할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 낳지도 기르지도 않은 사람이라면서 엄마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는 한 두 사람은 평생을 얽혀 있었다. 그늘 속에 숨었다 해가 뜨면 악착같이 따라붙는 그림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평생을 드리워져 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엄마와 할머니의 악연인지 선연인지 알 수 없는 관계 속에 내가 있었다. 두 사람이 처음 어떻게 인연을 맺었든 나와 무관하지만, 그것이 끝까지 계속된 것은 어쩌면 나 때문이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적당한 시기에 각자의 인생으로 흘러 들어가 모른 척 나머지 생을 살았을 수도 있다. 내가 태어나던 날 하필 할머니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리고 나도 지금과 전혀 다른 멀쩡한 몸으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
내가 할머니를 처음 본 건 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다섯 살 혹은 일곱 살 정도였던 것 같다.
그 때 우리는 버스 종점 근처 작은 기사 식당에 살았다. 차고지들이 자리 잡은 동네가 대부분 그렇듯 외진 동네라서 정말 버스 기사들만 손님으로 왔다. 그것도 버스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식당밥에 물린 기사들만 가끔 왔다. 가끔 오는 기사들을 상대로 파는 밥만으로는 벌이가 시원치 않아 출입문 귀퉁이에 반창을 달고 아이들을 상대로 떡볶이나 튀김도 팔았다. 튀김이라야 고구마와 식빵과 반찬에 쓰고 남은 버무리채소가 전부였다. 나중에는 밤에 술도 팔았다. 몇 종류의 찌개와 볶음을 안주로 팔았다. 그래도 큰 벌이는 되지 않았다. 식당 안쪽에는 작은방이 하나 있어서 잠은 모두 그곳에서 잤다. 언니들은 학교에 다니고, 막일을 하는 아빠는 일거리를 찾아다니느라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식당을 지키는 건 언제나 엄마와 나였다.
그 해 여름, 엄마는 점심 장사할 시간이 되면 식당 앞 고무 함지에 물을 채우고 나를 넣어두었다. 앉으면 목까지 올라오는 깊은 함지였다. 혼자서 첨벙 물을 튀기며 노는 재미도 하루 이틀, 물속에 앉아서 오도카니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했다. 차도 앞이라 구경할 게 그것뿐이었다. 물은 금세 식었고, 사이사이 마려운 오줌은 귀찮아서 그 안에서 그냥 눴다.
이제 그만 나갈까 싶은데 버스가 멈춰 섰다. 그리고 노인이 내렸다. 커다란 등짐을 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노인은 제일 먼저 나를 봤다. 생선 노리는 고양이처럼 나를 샅샅이 훑어봤다. 기세에 눌려 나는 함지 안쪽으로 몸을 반쯤 숙였다. 함지가 턱에 닿았다. 그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시선을 거두고 벌떡 일어나 지나쳤다. 지나갈 때 보니 등에 진 것이 짐이 아니라 등이었다. 몸에서 이상한 약초 냄새 같은 게 났다. 거지구나, 싶었다. 거지가 많던 시절이었다. 식당 앞이라 날마다 거지가 왔다. 종류도 다양했다. 여자 거지, 남자 거지, 늙은 거지, 어린 거지, 잘 입은 거지, 못 입은 거지, 깨끗한 거지, 더러운 거지. 그 많고 많은 거지들을 분별하여 안쪽에 일러주는 일이 바깥에 앉아 있는 내 일이기도 했다.
엄마는 남아서 버리는 음식도 절대 거지에게 주지 않았다. 주면 또 오고, 다음에는 더 많이 달라고 하고, 다른 거지 데리고 와서 또 달라고 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거지 하나가 손님 열을 빼앗아간다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빌미를 주면 안 돼. 준 적도 없고, 뺏긴 적도 없으면서 그 말을 할 때마다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마치 장사가 안 되는 게 다 거지 탓인 것처럼 말했다.
거지가 찾아오면 큰 소리로 나를 불러야 한다. 고무 함지에 나를 넣기 전 잊지 않는 당부였다. 식당 입구에는 언제라도 뿌릴 수 있게 소금바가지도 있었다.
나는 식당을 향해 걸어가는 노인의 등을 향해, 엄마가 일러준 대로 힘껏 소리를 질렀다.
“거지다!”
소리에 놀란 듯 뒤를 휙 돌아본 노인이 비죽 웃더니 도로 내 옆으로 다가와서는 등을 찰싹 때렸다.
“세상 나올 때 내 손으로 받아줬더니 기껏 거지 취급이냐.”
그 순간 나는 할머니가 기억났다. 소독한답시고 불에 데운 가위를 식히지도 않고 들이대다 갓 태어난 핏덩이의 등을 달군, 그것도 모자라 놀라 우는 핏덩이를 풀썩 땅에 떨어뜨린, 당신이 가진 등짐을 고스란히 얹혀 준 초보 산파.
엄마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부르르 치를 떨었다. 여기가 어디인데 감히 찾아오느냐 따지기도 했다. 그악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욕을 퍼부었지만, 할머니를 쫓아내지는 않았다. 할머니도 엄마의 그런 태도쯤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원래 같이 살던 사람처럼 좁은 방구석에 똬리를 틀더니 내처 살기 시작했다.
식당에 눌러앉은 할머니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떡을 찐 일이었다. 손에 든 작은 보따리를 끄르니 쑥이 가득했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항아리에서 쌀을 꺼내 철벅철벅 씻었다. 쌀을 불리고 수돗물을 틀어 마른 쑥도 씻어 헹궜다. 깨끗이 씻은 쌀과 쑥을 가루 내고, 거기에 물을 부어 치덕치덕 손으로 쳐서 반죽을 한 것을 애기 손바닥만 하게 뚝뚝 떼어 찌니 집 안 가득 풀 냄새가 풍겼다. 다 익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떡은 맨손으로 쭉 찢어 줬다.
그런데 한 여름에 어떻게 쑥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여름이 아니었나. 물도 없는 빈 함지에 들어 있던 걸까, 나는. 기억이 엉킨다. 어쨌거나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할머니는 떡을 쪘다. 이번에는 쑥이 아니라 다른 약초였다. 할머니가 가져온 보따리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약초가 나왔다. 그걸 동글동글 빚기도 하고 납작하게 빚기도 하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들어 떡을 쪘다. 떡이 익으면 무슨 떡이든 맨손으로 쭉 찢었고, 무슨 떡이든 나만 줬다. 마치 나에게 떡을 주기 위해 온 사람 같았다. 먹어라 몸에 좋은 거다,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은 건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런다고 애가 멀쩡해지오,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무안 탄 얼굴로 그 떡을 혼자 꿀떡꿀떡 삼켰다.
밤에는 술도 먹었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남긴 술을 먹었고, 남긴 술이 없으면 냉장고에 있는 술을 엄마 몰래 새로 따서 먹었다. 저녁 장사를 거드는 척하며 손님상에서 한두 잔씩 받아먹기도 했다. 가끔은 엄마하고 둘이 앉아서 먹기도 했다. 두 사람이 다정한 날에는 나도 슬그머니 같이 앉아 똥 뺀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꾸벅꾸벅 졸았다.
언니들은 할머니를 싫어했다. 처음 할머니가 집에 왔던 며칠 후, 집에 들렀던 아빠는 부엌에서 떡을 찌는 할머니를 보고 입이 떡 벌어지더니 그대로 돌아서서 집을 나갔다. 그리고 밤이 되어도 다음 날이 되어도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병신은 하나로 족하다, 고 했다는 말을 전한 건 언니였다. 할머니가 집에 오면 꼭 흉한 일이 일어난다고, 그 어느 날 내가 태어나자마자 다친 것처럼 또 누가 다치면 어떡하느냐고도 했다는 말은 누가 전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엄마는 할머니와 협상을 맺었다. 아빠가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날에는 와 있어도 상관하지 않으나, 아빠가 돌아와 있는 동안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비교적 잘 지켜진 협상이었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한번 두 번 실수인 척 아빠가 있는 날에도 할머니가 찾아 와 가지를 앉았다. 단칸방에서 장모가 함께 누워 자도 불편할 텐데, 장모도 아닌 장모와 함께 누워 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어설픈 산파 노릇으로 자식을 불구로 만든 사람이었다. 자식과 똑 같은 불구를 가진 사람이었다. 눕지 못하는 불구였다.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나와 할머니 때문에 자꾸만 누군가 감시하는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다고 했다. 불편한 아빠가 집을 나서려 하면 할머니가 먼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답답하니 여기에서 자야겠다 하며 할머니가 찾은 곳은 식당 바닥에 깐 돗자리였다. 문 앞에 버티고 누워 어여 들어가 주무시게 아빠를 안으로 떠밀었다. 그게 더 환장할 노릇이었다. 안에서는 작은 낙타가 비스듬히 앉아 아빠를 내려다보고, 밖에서는 늙은 낙타가 비스듬히 앉아 방 안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대로 더 있다가는 아빠가 아예 도망쳐버릴 지도 몰랐다. 식구들이 진저리를 치면 할머니는 나만 봤다. 내가 마음에 걸려, 혹은 눈에 밟혀 멀리 갈 수 없다고 했다. 내가 결국 그렇게 된 줄 알았으면 더 일찍 올라왔을 거라며 불쌍한 눈으로 아빠를 보고 울었다. 그 눈물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가 몸서리치게 싫었다.
아빠와 할머니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앞치마를 풀어놓고 나가더니 반나절 만에 식당 근처에 할머니 방을 하나 얻었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한 칸씩 방이 동그랗게 앉아 있는 집이었다. 가운데에 놓인 마당조차 지붕에 덮인 토굴 같은 방이었다. 그 방으로 할머니가 옮겨 앉고 할머니 손에 이끌려 나도 그 방에 옮겨 앉았다. 언니들이 커서 방이 좁아졌으니 할머니하고 같이 지내렴, 엄마는 다정하게 말했지만, 할머니가 나를 두고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다고도 했지만, 나를 보내면서 언니도 엄마도 아빠도 한결 가벼운 표정이었다. 평화가 있다면 바로 그런 얼굴이 평화였을 것이다. 여기는 더 이상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아주 분명한 의사 표시였다. 할머니와 살고 싶지 않았지만 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할머니의 토굴 방으로 살러 간 날, 할머니는 대접 가득 푼 보리밥을 저녁 삼아 차려주면서 처음으로 김순녀 여사 80년 살아온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지루하고 지루한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반복해가며 들려주었다. 그러다 문득 목소리를 낮추더니 말했다.
“비밀 하나 말해줄까?”
“무슨 비밀?”
“너는 사실 꼽추 아니다.”
“아니면?”
“쌍둥이다.”
“쌍둥이?”
“그래, 한 몸처럼 딱 붙어서 태어난 쌍둥이.”
“샴쌍둥이? 내가 어떻게 두 쪽이야?”
“느이 엄마가 너를 어떻게 낳았느냐면 말야. 똥이 마렵다고 했거든, 첨에는. 요강을 찾았지. 배는 무거우니 벌떡 일어날 수는 없고, 앉은뱅이처럼 엉덩이로 눙실눙실 미끄럼 치면서 요강을 찾았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서 장롱 밑도 들여다보고, 이부자리도 걷어보다가 마침내 밥상 밑에서 그걸 발견했지. 근데 요강이 왜 하필 밥상 밑에 있었을까. 그것도 누군가 먹던 밥의 온기가 아직도 미지근하게 남아 있는 밥상이었는데 말야. 알게 뭐야. 워낙에 좁은 방구석이라 제 자리에 놓여 있던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변소에서 숟가락이 튀어나온들 놀랄 일일까. 아무튼 밥상 밑에서 요강을 발견하고 몸을 기울여서 검지손가락을 요강 안쪽에 걸어서 끄으응 끌어냈지. 그리고는 순식간에 팬티를 벗으면서 홀랑 요강 위에 타 앉았는데, 허연 엉덩이가 요강에 털썩 주저앉기도 전에 뭐가 밑에서 쑤우우욱 하고 빠지지 뭐야. 첨엔 똥인 줄 알았다니까. 근데 이게 또르르르 굴러가질 않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갑자기 동그란 게 하나가 또 쑤우우욱 하고 나와. 머리가 둘인 거야. 얼마나 기겁을 했던지. 근데 희한해. 다리부터 나오면 원래 애가 안 빠지거덩. 가랑이가 쫘악 양쪽 자궁벽을 버티고 서서 말야. 근데 발보다 큰 머리 두 개가 어째 걸리지도 않고 나란히 나왔을까. 자세히 보니까 그 두 개가 따로따로 나온 게 아니라 조랭이떡마냥 꼭 붙어서 나온 거야. 서로 안고 있을 팔을 나눠가진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꼭 붙어 있더라니까. 느이 언니는 고만 고걸 보고 있다고 홀랑 기절했잖아.
“끔찍해라. 그래서?”
“그래서 내가 얼른 머리 하나를 잡았지. 다행히 하나는 얼굴 없는 머리야. 그냥 혹처럼 보이는. 그래서 내가 그걸 꾹꾹 눌러서 얼른 등에 감췄지. 애기들은 머리가 말랑해서 얼른 만져주면 모양이 잡히거든. 안 그러면 사람들이 너를 병원으로 보내버릴 테고, 거기 가면 너를 기어이 둘로 갈라 놓을 텐데, 그건 아니지. 서로 좋아 붙어 나왔는데 어찌 나눠 살아. 그래서 내가 얼른 감췄지. 그러느라 불에 달군 가위를 식히는 걸 잊었는데, 느이 엄마는 지가 쌍둥이를 낳은 줄도 모르고, 핏덩이 등을 불로 지졌다고 난리를 치더라. 그 바람에 내가 너를 잠깐 놓치긴 했지. 미련퉁이 느이 어매 그래서 니 등이 굽은 줄로 여태도 안다만.”
“거짓말.”
“참말.”
그러면서 내 손을 잡더니 내 심장에 가만히 손을 대게 했다.
“잘 들어봐라 심장이 하나 뛰나, 두 개 뛰나.”
“하나.”
“아니다, 두 개다.”
“하나다.”
“네가 네 속에 마음 하나 묻어두고 그걸 여태 몰라서 못 느끼는 거다. 가만가만 불러봐라. 언젠가 대답할 테니.”
그리고 또 이런 이야기도 했다.
“나도 실은 꼽추가 아니다.”
“할머니도 쌍둥이야?”
“아니, 나는 기생.”
“기생?”
“그래 기생. 내가 전생에 아주 예뻤거든. 뭇 남성들이 애간장을 녹였단다. 다 쳐다보지 않아 나만 보다 총각귀신이 되었는데, 나를 잊지 못해 이생까지 따라온 거라. 그래서 그 넋을 달래느라 내가 등에 지고 살기로 했지. 한둘이 아니라서 이렇게 등이 굽은 거란다.”
“거짓말.”
“참말.
할머니는 웃지도 않았다. 아주 진지하고 비장했다. 그렇더라도 그 말이 참말일 리는 없지만, 그러나 참말 같기도 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던 날 나는 마음부터 몸까지 모두 덜덜덜 떨었다. 지어 낸 이야기여도 무서웠고, 사실이라면 더더욱 무서웠다. 혹시라도 내 심장에서 두 개의 심장이 쿵쿵거리는 걸 듣게 될까 봐 잘 때라도 가슴에 손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그 이야기가 사실 같았다. 깊은 밤 할머니와 등 돌리고 누워 곰곰 생각하다 보면 사실이었으면 싶기도 했다. 여전히 무서웠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상상하면 한편으로는 놀랍고, 신비하고, 경이롭고, 황홀했다. 그러면 그게 진실이 아닌가 싶었다.

*
“좀 자라, 가고 나면 사흘은 내 치다꺼리 할 텐데.”
“누가 치다꺼리를 해”
“네가 해 주지.”
“내 몸도 건사 못 하는데 무슨 수로.”
“수의도 필요 없고, 염도 필요 없고, 젯밥도 필요 없다.”
“그럼 할 거 하나 없네.”
“오는 사람 맞아서 김순녀 여사 80년 생애 얼마나 고왔는지도 들려드리고, 따순 국에 밥도 말아서 내야지.”
“올 사람은 있고?”
“사람이 안 오면 바람이라도 찾아오겠지.”
“바람이 오면 국에 밥은 어찌 말아주나.”
“그럴 땐 곡을 해야지.”
“눈물도 안 나오는데, 곡을 어찌 해.”
“눈물 없이 소리로만 우는 게 곡이다.”
“….”
“….”
“진짜 가는 거야?”
“동 틀라 하네. 슬슬 가야지.”
“좋아서 웃는 거 보니 미련도 없나 봐.”
“왜 없어. 있지.”
“뭐가 제일 미련 남아.”
“연애 못 한 거.”
“등에 얹고 산 연분들은 어쩌고.”
“품에 안고 살 연분은 없었지.”
“징그럽네.”
“가는 길에 가마나 한 번 탔으면 좋겠다.”
“저승 가지 시집 가나.”
“저승 가듯 시집 가는 사람도 있는데, 시집 가듯 저승은 못 갈까.”
“가기 전에 얘기나 하나 더 해줘.”
“뭔 얘기.”
“나 태어날 때 얘기.”
“그 얘기는 무서워 싫다면서.”
“오늘은 괜찮아.”
할머니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하더니 이윽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가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면 말이다. 둘로 태어났는데 말이다. 너는 절대, 저얼대 혼자가 아닌데 말이다.…...”
노래처럼 나직나직 말을 이어나가며 할머니는 쿠션에 몸을 기댔다. 나도 그 옆에 몸을 기댔다. 우리는 다시 사막에서 만난 두 마리 외봉낙타가 되었다. 너 태어난 날에 말이다. 느이 엄마가 똥이 마렵다고 했거든. 노랫가락처럼 흐들흐들 흐드러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슬슬 졸음이 왔다. 꿈인지 생시인지 그 날의 일이 눈에 환히 보이는 듯 했다. 엄마는 요강을 움켜쥐고, 언니들은 울고, 나는 또그르르 굴고, 굴러간 나를 할머니가 잽싸게 줍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그 모습이 곧게 뻗은 장신이었다.
그 모습에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꿈이었다. 그새 노랫소리는 멈춰 있었다. 옆을 보니 입만 살짝 벌린 할머니가 눈을 감고 있었다. 뭔가 조금 이상하다 싶어 찬찬히 들여다보니 구부정하게 기대앉은 몸이 어느 틈에 반듯하게 쭉 뻗어 있었다. 좀 전에 꿈에서 본 바로 그 모습이었다. 꼽추는 누구나 죽을 때 등이 펴지는 걸까. 등이 아니라 삶을 지고 다닌 거라더니 제 목숨 다 살았다고 비로소 펴진 건가. 인생 일장춘몽이라더니 이제야 꿈에서 깨어 할머니는 으라차차 기지개를 켜고 당신 갈 길로 가려나보았다. 어쩌면 할머니는 정말로 꼽추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쌍둥이가 아닐 까닭도 없지 않은가. 나는 가슴에 손을 댔다. 쿵쾅쿵쾅, 하나의 심장 속에 또 하나의 심장이 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텅텅, 밖에서 곰솥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어느 틈에 왔는지 엄마가 육개장을 끓이며 할머니의 공책을 읽고 있었다. 읽다가 중간에 덮어서 몰랐는데, 마지막 장에는 장례 준비에 대한 부탁이 적혀 있었다. 수의도 필요 없고, 염도 필요 없다더니, 수의는 장롱 세 번째 칸 바닥에 있고, 향은 문간 서랍에 있고, 영정 사진은 수의 바로 아래에 있다는 뭐 그런 세세한 내역이었다. 누구누구에게는 연락을 하고, 누구누구는 연락하지 말라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필요 없다던 수의며 염에 대해서는 다 일러놓고, 정작 가마 이야기는 적지 않았다.
엄마는 할머니가 공책에 적어놓은 번호대로 차례차례 다이얼을 돌렸다. 받는 전화보다 받지 않는 전화가 더 많았다. 받는 전화 중에도 온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엄마는 실망하거나 화내는 법 없이 표정하나 말투 하나 바꾸지 않고 천천히 예의 바르게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전화를 거는 동안 그 옆에서 나는 김순녀 여사의 80년 생애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게 정말 김순녀 여사의 인생인지도 몰랐다.
나는 김순녀 여사의 낡고 오래된 공책을 천천히 한 장씩 찢었다. 인생이라는 황량한 사막에서 우리가 그래도 한 때는 각기 다른 한 마리의 외봉낙타로 만나 등을 기대고 살았는데, 이제 작별하고 돌아서는 길에 마지막 소원은 들어주고 싶었다. 나는 찢은 종이로 한 장 한 장 꽃을 접었다. 가마는 몰라도 김순녀 여사 80년 생애에 꽃은 달아줘야 할 것 같다. 어차피 가마 중에 으뜸 가마는 꽃가마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