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특별호(통권 58호)

[시]

의붓딸

양애경

여자중학교 2학년 교실

두 번째 줄에 앉은 아이

하얀 피부에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

운동회 날에는

반바지 밑으로 동그란 무릎이 눈부시고

합창할 땐 천사처럼 노래해서

왠지 이 세상사람 같지 않던

갑자기 가슴을 쥐고 쓰러졌다

숨을 못 쉬는 아이를 응급실로 데려가

산소호흡기 달고 애타게 지켜보는데

좀처럼 아이엄마가 오지 않았다

마침내 도착한 여자는 아이를

집어삼킬 듯 노려봤다

염색이 지워져가는 갈색머리와

긴 손톱에 다 벗겨져가는 빨간 매니큐어

저 여자가 저 아이 엄마 맞나 싶었다

이런 저런 검사 끝에 의사는,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고 했고

여자는 숨이 돌아온 아이를

병아리 나꿔채듯 우악스럽게 데리고 갔다

아이는 이렇게 썼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엄마가 새로 시집을 가셨는데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다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와 새아버지가 사는 집을 찾아갔습니다

많이 떨렸는데,

안녕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고 엄마와 살고 싶다고 하니

오, 네가 진이냐? 예쁘게 생겼구나

새아버지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저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되어 행복합니다

아이는 착한 아이가 되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것일까?

아이는 깨끗해지려고

그렇게 천사처럼 노래했던 것일까?

얘야, 네 잘못이 아니야

얘야, 너는 가만히 있어도 착한 아이야

우등생이었지만

졸업 후 기숙사가 딸린 산업체 고등학교에 간 아이

하얗게 달구어진 햇볕이 운동장에 닿아

훅 하고 흙냄새를 끼치는

5월 하순이면 문득 떠오른다

그 아이의 맑디맑은 눈동자

나의 부끄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