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줄의 죽음’에 대한 각주, 혹은 애도문
언제부턴가 간간히 들려오는 유명인의 죽음은 ‘한 시대가 가고 있다’는 느낌에 실물감을 더해주곤 했다. 조용하거나 소란한 애도는 서둘러 치러지고 견고한 일상은 매끈하게 이어진다. 아직 ‘가고 있는’ 한 시대는 그렇게 ‘이미’ 지나간 것으로 잊혀지고 있다. 대상에 투여되었던 리비도가 회수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지만 그러한 애도에 필요한 시간조차 현대인들의 손익계산서엔 끼어들 여지가 없는 모양이다. 단지 시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회수된 리비도는 자아와 자아가 속한 세속의 비천함을 훤히 비추게 될 것이므로.
고종석은 널리 알려진 이들의 죽음에 대해,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한 시대’의 지나감에 대해 정당한 절차의 애도가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는 저물고 있는 ‘한 시대’를 쉽게 보낼 수 없어 『제망매』(1997년)나 『엘리야의 제야』(2003년)를 내 놓았고 얼마 전 『독고준』을 출간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고종석은 나날의 사회 현상에 일일이 리비도를 투사하며 분석, 정리하는 작업에 익숙해있으며 소설가로서의 고종석은 저널리스트 글쓰기로도 해소되지 못한 잉여의 감정에 기대 사후적 글쓰기를 행한다. 기실 「제망매」는 청춘을 함께 보낸 누이를 애도하는, 그럼으로써 그 시대의 어떤 상징 가치를 그리워하는 후일담 소설이었다. 최근의 『독고준』 또한 전임 대통령이 죽던 날 자살했던 소설가 ‘독고준’에 대한 그의 딸 ‘원’의 애도의 글쓰기이다. 그러나 『제망매』가 잉여의 감정에 한껏 젖어있다면, 『독고준』은 ‘독고준’이 지향했던 ‘균형’ 감각에 의해 감정의 물기가 말끔하게 지워져 있다. 가고 있는 시대는 눈물로도 애도되어야 하지만 펜으로도 애도되어야 하고 그 펜의 색깔은 회색이어야 한다고 『독고준』의 고종석은 말한다. 회색 지성의 애도문은 균형과 절제의 미학으로 단장되어 있다.
소설 『독고준』이 균형을 취하는 형식은 최인훈의 인물 ‘독고준’을 빌어와 그의 눈으로 지난 현대사를 바라보고 그것을 또 독고준의 딸 ‘원’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다원적 시선의 도입이다. 아버지 독고준이 남긴 일기를 읽으며 독고원이 거기에 부연하는 형식을 통해 ‘회색 지성’ 독고준을 가장 잘 이해하는 자의 시각에서 그의 모나고 난해한 부분들을 채워나간다. 독고원은 아버지 준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회색인’이라는 점에서 아버지의 견해에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살아온 시공간의 차이, 즉 세대차에 의해 생길 수 있는 간극을 드러냄으로써 독고준의 시각이 일정 세대에 갇힌 것이 되지 않도록 보완해준다. 이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언급하는 거대 서사와 자잘한 일상사를 소묘하는 미시 서사의 만남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마틴 루터킹의 죽음을 논평하다가 그의 연설문 녹음테이프를, ‘나’의 음반 취향을, ‘나’의 애인의 텔레재핑 체질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신동엽의 민족주의를 얘기하다가 자신이 민족주의자인 줄 몰랐던 민족주의자 독고준을, “미국의 대학에서 프랑스 시를 강의하는 중국인”을 병렬해 놓는 방식은 의미의 인접성을 따라가는 환유의 고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과반의 병렬은 인접성의 고리조차 찾을 수 없는 맥락없는 나열이기도 하다. 환유적 병렬, 맥락없는 나열은 근대적 의미체계가 만들어낸 종적 서열관계와 횡적 연관관계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고종석의 유목민적 스타일이기도 하다.
『독고준』은 ‘독고준’의 가족이야기이면서 ‘한 줄의 죽음’으로 대변되는 현대사에 대한 각주이며, 지나친 욕망과 치우친 이념이 만들어낸 세상사에 대한 염오(厭惡)이면서 힘든 이웃에 대한 연민이자 소수자의 옹호이다. 펜으로 쓰는 애도는 반성을 낳고, 과거에 대한 각주는 현재에 개입한다. 이것이 『독고준』의 애도가 윤리적인 이유이다.
2. 회색인의 ‘윤리적’ 자기변호
『독고준』은 ‘독고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독고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독고준을 그리워하는 독고원의 이야기. 이는 독고준의 삶과 죽음의 방식을 이해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독고원에게 아버지의 자살은 “정말이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버지와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겹쳐 읽으면서 “자유죽음이 어디 있으랴? 신이 우리에게 부여했다는 자유의지라는 것을 나는 점점 더 못 믿겠다”던 독고원은 마침내 그것이 ‘자유’를 존재증명하기 위한,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한 타살인 것처럼, 독고준의 자살을, 나아가 모든 이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 여겼던 그녀는 그러한 중층결정적 원인들을 인정하면서도 자유의지에 의한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아버지 독고준의 죽음이 그러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회색 지성의 애도문은 이렇듯 ‘회색인의 자기변호’이기도 하다. ‘독고준’의 죽음, 그 죽음의 방식에 대한 변호를 알아차리기 힘든 방식으로 에둘러 말한 집적물이 바로 소설 『독고준』이다. 이는 곧 ‘자유주의자’의 ‘자유’ 변호이다. 『독고준』은 독고준의 삶과 죽음을 통해 ‘자유의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사실 인간이 자유의지로 선택했다고 여기는 것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원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이루어낸 결과일 뿐이다. 칸트는 이러한 스피노자의 결정론 위에서 자유는 오직 ‘자유로워지라’는 명령, 즉 자연필연적 인과성을 배제하라는 명령에 의해서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독고준이 자살을 선택한 것 또한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에 충실한 결과였다. 그리하여 ‘원’은 말한다. “독고준은 세상의 비밀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이미 결정된 자신의 생을, 마치 자신의 자유의지로 사는 듯 살았다. 그의 마지막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투신 역시 이미 정해진 것이라는 점을 알았으리라. 그의 죽음의 방식은 시간의 시작부터 결정된 것이었다. 내가 지금 그에 대해 글을 쓰는 것 역시 시간의 시작부터 결정된 일이었듯.”
‘회색 지성’의 다른 이름은 ‘자유주의자’, 혹은 ‘단독자’일 것이다. 회색 지성이 두 극단 사이에 선 단독자로서 균형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 덕분이지만,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조차 자연필연적 인과성에 의한 것임을 인식하고 있는 회색인/자유주의자. 이것이 시간의 시작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그것을 괄호 안에 넣고 마치 자신의 자유의지로 ‘회색’을 선택하는 듯 살았던 회색인 ‘독고준’의 삶이다. 자신의 죽음 또한 “노령과 무력감”에 의해 이미 예정된 것임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인 듯 자살로 만듦으로써 『독고준』은 ‘자유주의자’의 ‘자유’ 변호가 된다.
독고원 또한 ‘회색인’을 변호한다. ‘회색인’이란 선과 악 사이의 중간이 아니라 악과 악의 중간일 뿐이며, 드물게 있는 선과 악 사이의 싸움에서 ‘독고준’은 ‘선’의 편을 들었던 편파적인 회색인이었다고 ‘원’은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과 미국이라는 선택지 가운데 미국을 고르는 행위를, “더 나쁜 것을 버리고 덜 나쁜 것을 선택한 소극적 행위”로 설명한다. 이를 어느 철학자의 표현을 빌어 원이 말한 대로 ‘기우뚱한 균형’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독고준의 균형이 기우뚱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이론적인 입장과 실천적인 입장 사이에서 잦은 태도 변경을 행하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이 제시한 것처럼, 현실의 책임을 물을 때 는 자연필연적 인과성을 괄호 안에 넣고 거꾸로 현실적 책임이 분명해 보이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 인과성 찾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이러한 태도 변경이 독고준의 선택을 기우뚱하게 혹은 윤리적이게 한다. 독고준이 민중을 신뢰하지 않은 것은 이론적인 입장에서 무제한적인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에 대해 깊은 연민을 가진 것은 실천적인 입장에서 지식인의 책임을 간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순되는 듯 기우뚱하게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멈추지 않고 일정한 방향을 향해 나아갈 여지를 남겨 두는 것.
아버지가 윤리나 논리의 척도로 삼은 것은 균형이었다. 더 정확히는, 어느 철학자의 표현대로 ‘기우뚱한 균형’이었다. 그 기우뚱한 균형 속에서만, 아버지는 편안할 수 있었다. 평등과 자유의 기우뚱한 균형. 정의감과 세속적 이해관계의 기우뚱한 균형. 그 균형이 기우뚱해야 하는 것은 ‘가치’라는 것이 스칼라가 아니라 벡터이기 때문이다.(134쪽)
「독고준 소묘」에서는 “독고준 문학세계의 열쇠말”이 “자유, 균형, 소수자(차별)”라 했지만 사실 이 모두를 포괄하고 있는 상위 범주는 ‘윤리’이다. 이는 물론 가라타니 고진이 자신의 저서 『윤리21』에서 사용한 것처럼 공동체의 규범과 관련된 ‘도덕’이 아니라 자유로서의 윤리성을 의미한다. 자유는 인과성을 인식하는 이론적인 입장을 괄호 안에 넣었을 때 존재할 수 있으며, 또 때로는 괄호를 벗기고 볼 필요가 있다는 균형 감각에 의해 단순한 ‘현실 긍정’의 차원을 넘어 실천적인 입장에서의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고종석, 혹은 ‘독고준’에게 실천적 입장의 판단은 자주 ‘소수자의 옹호’로 표현된다. 소수자야말로 자유의 한계를 보여주는, 자유가 아니면 자신의 윤리성을 방어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옹호’는 <아내의 봄비>라는 시를 읽으며 “자기보다 힘든 이웃에 대한 연민”을 찾아내고 “만약에 인간사회가 진보해왔다면, 그 진보의 과정이란 그런 연민의 확산 과정이었을 것”이라 논평하는 태도 표명에서도 드러나지만 독고준의 삶을 통해 더 확연히 드러난다. 이유정이 아닌 김순임과 결혼한 것, 동성애자인 딸의 성정체성을 인정하는 것. 사랑을 열정과 등가의 것으로 본다면 독고준의 사랑은 오히려 이유정 쪽에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기독교 소수 종파의 독실한 신자인 김순임과 결혼하는 것으로 최인훈의 인물 독고준의 뒷이야기를 설정함으로써 『독고준』의 서사는 관념에서 현실 쪽으로 벡터의 방향을 끌어당긴다. 독고준에게 가족을 주어 현실의 삶에 “정박”시키고 가족 안에서조차 이방인이었던 김순임에게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독고준과 김순임의 결합은 동성애자인 딸에게도 하나의 울타리가 됨으로써 가족의 구성 자체가 소수자의 연대가 된다.
『독고준』은 여성 동성애자에게 화자의 지위를 줌으로써 소수자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했다. 재미있는 것은 독고원이 아버지의 일기를 공개하고 짧은 ‘독고준론’을 쓰는 일이 곧 자신의 커밍 아웃 과정이 된다는 점이다. 아버지 독고준은 딸의 성정체성을 인정했을 뿐이지만 그의 글은 딸의 삶에 사후적으로 개입하여 소수자로서 살아가기를 독려했다. 회색인으로서의 고독한 정신세계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긴 했지만 대학교수로서 무리 없이 살아갈 수 있었던 독고원은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며 ‘소수자-되기’의 삶을 선택한다.
고종석의 이전 소설들이 ‘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써 소수자에 대한 연민을 표현했다면, 『독고준』은 소수자 스스로 목소리를 냄으로써 소수자가 주인공이 되는 이후의 소설세계를 예고하고 있다. 혹시 독고준의 등단작으로 소개되는, 재일조선인이 주인공인 소설 <길 잃은 세대>는 작가가 구상하고 있는 다음 소설이 아닐까? 독고원은 이 소설을 통해 소수자-경계인-세계시민이 어떻게 동궤에 놓이게 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독고준 문학의 열쇠말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작가의식의 고갱이를 담고 있는 듯 보이는 이 소설은 그러나 ‘디아스포라’라 호명되는 초국적 경계인이 이미 하나의 소설적 전형이 되어버린 지금, 고종석의 다음 소설로 발표되긴 힘들어 보인다. 50여년 전에 이런 소설을 발표한 독고준은 너무 일찍 태어났고, 이를 하나의 전형으로 포착해낸 고종석은 너무 늦게 태어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종석은 ‘독고준’을 애도하는 『독고준』을 쓸 수밖에 없다.
3. 세계인물백과사전
『독고준』은 수많은 ‘독고준들’의 나열이다. 박정희에게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독고준’, 공산주의와 소련에 어떤 윤리적 가치를 부여했던 ‘독고준’, 빅토르 하라와 로맹 가리와 최종천과 박영근을 옹호하는 ‘독고준’. 독고준이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독고준들’이다. 1930년대 중국 전문 기자 신언준, 2000년대의 북한 전문 기자 신준영, 현우림, 복거일, 이동하……. 하지만 그것이 목소리들의 단순한 조합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그 수많은 독고준들을 일관하는 원칙”, 즉 “약자를 향한 연민”과 치우침 없는 균형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독고준』은 이분법적 기준으로는 어느 쪽인지 분간하기 힘든 ‘독고준들’을 나열함으로써 어떤 ‘보편’의 목소리를 찾아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당연하게도 그 목소리의 주인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속하기를 거부하는 ‘경계인이자 단독자’, ‘회색인’이 될 터이다.
왼쪽으로든 오른쪽으로든, 위로든 아래로든, 아버지는 치우침을 경계했다. 아버지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였다. 그 현실주의에는 꽤 단단한 윤리적 바탕이 있었다. 비록 그것이 소극적 윤리라 할지라도, 아버지는 경계인이자 단독자였다. 이 경계인에게는 동지가 없었고, 이 단독자에게는 신이 없었다. 신을 지니지 못한 단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뿐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공동체에 이로움을 주기 위해 글을 쓰진 않았다. 아버지는 글을 통해 공동체를, 세계를 투명하게 보고자 했다. 그런데 그 투명한 시선이 공동체에 이로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200쪽)
따라서 독고준이 옹호하는 ‘단독자’들이 대체로 글 쓰는 자들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계백과사전》 편집자라는 독고준의 이력과 소설가가 되지 않았으면 한국어사전 편찬자가 되었으리라는 고백 또한 마찬가지다. 『독고준』은 ‘세계인물백과사전’을 연상시킬 만큼 많은 인물을 등장시켜 비판하거나 옹호함으로써 그들의 어떤 부분들이 조합된 이상적 인격체를 구상하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대개 그렇듯이 인물 독고준은 작가 고종석의 나르시시즘적 응시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이는 작가 개인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은 아니다. 독고준을 통해 이상적 인격체를 구현함으로써 작가가 추구하는 ‘회색인’의 형상을 빚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기우뚱한 균형이 공동체에 이로움을 줄지도 모를 ‘회색인’.
어쩌면 고종석이 지향하고,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은 사전일지도 모르겠다. 지식인 고종석은 세계백과사전을, 저널리스트 고종석은 한국어사전을, 소설가 고종석은 세계인물백과사전을. 세계인물백과사전이 소설가의 글쓰기가 되고, 이를 통해 회색인의 형상을 빚어내는 일은 소설가 고종석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글쓰기가 될 터이다.
내일을 여는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