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특별호(통권 58호)

[선택과 비판]

신경숙 코드

조영일

누군가를 공격한다고 해서 재미있지는 않다. 공격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신(神)이기 때문이다. 적의 신이야말로 쳐야 할 대상이다. 그렇지만 치려면 먼저 적의 신을 발견해야 한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의 진짜 신을 숨긴다.

내가 무엇보다도 싫아하는 것은 구태의연한 것을 구태의연한 채 긍정하는 자들이다.

나는 어느 노대가의 소설을 읽어보았다. 별것도 없이 정색을 하고 주위 후원자들의 취향에 맞는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경박함이 극에 달했지만, 바보들은 그것을 훌륭하다고 하고, 결벽하다고 하고, 심한 사람은 귀족적이라고 하며 숭상하는 모양이다.

- 다자이 오사무 -

1. 비평가의 지각

아이쿠, 늦어져 죄송합니다. 차가 밀렸다면 거짓말이고, 실은 미리 강연준비를 하지 못해 날을 새고 말았는데, 그 후유증 때문인지 지하철에서 조는 바람에 역을 서너 정거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사실 저는 강연/강의이든 비평이든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글을 쓰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촉박하게 무언가를 하는 일 역시 드뭅니다. 따라서 오늘의 지각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은 바로 오늘 말씀드릴 작품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다 읽고 오셨지요? 읽고 오신 분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는 분도 있을 계실 것입니다. 어, 대부분 읽고 오셨네요.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인 것은 확실한 것 같네요(웃음). 제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최근 한국소설을 읽고 있지 않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읽을 만한 한국소설이 거의 없다는 판단에서이고, 둘째는 한국소설에 대해 무언가를 쓰더라도 서로 간에(심지어는 비평가들 끼리조차) 피드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첫 번째 이유로 인해 최근 ‘세계문학’과 관련된 글을 쓰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으며, 두 번째 이유로 인해 더 이상 시시껄렁한 작품들에 레퍼런스를 보태주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주 윤선생님이 갑자기 연락을 주셔서 특강을 부탁했을 때, 자못 당황스러웠습니다(아시죠? 윤선생님은 제대한 아들과 창작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 이번 주에 미국으로 출국하셨습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우선 저는 윤선생님과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닙니다. 설마 고자질하시지는 않을 거죠?(웃음). 원래 시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웃음).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런 시인이 강의를 하는 문창과 역시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과제가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신경숙의 최신작이라뇨…. 하지만 변변한 강의 자리도 없는 터라(부디 여러분 평소 덕을 많이 쌓으시기 바랍니다!), 집에서 애만 보고 있고 있느니 세상구경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승낙을 한 후, 지난 주 내내 후회를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말입니다.

우선 책을 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절판이 되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요, 이는 순전히 사지 않고 읽으려고 하니까 생기는 문제입니다. 저희 학교도서관에는 2권이 등록되어 있는데 예약초과로 나왔고, 상호대차로 연대, 이대, 숙대 등도 검색했는데, (숙대의 경우 무려 13권이나 구비되었음에도) 모두 대출이 된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수의 예약자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야, 이게 신경숙의 힘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결국 구입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는가” 하는 낙담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지 않고 굳이 빌리려고 했던 이유는 왠지 한 번만 읽고 말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수납문제도 있고 해서 저는 작년부터 도서구입 원칙 중 하나로 “한 번 읽고 말 책은 안 산다”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물론 작가가 들으면, 기분나빠할지도 모르지만, 이는 특정 작가에 대한 입장이라기보다는 오늘날의 한국문학 전체에 대한 불신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혹시라도 노여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살까 말까를 고민하다 우연히 네이버 메인에 오른 기사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프레시안>에 게재된 오길영 충남대 영문과 교수의 신경숙론인데, 매우 비판적으로 작성된 글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일에는 동기유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제가 신경숙의 신작을 읽는 한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샀습니다(웃음).

누구나 그렇듯이 우리는 자신의 소비행위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스마튼폰을 둘러싸고 갤럭시빠, 애플빠들 등장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따라서 저도 당연 이미 구입한 이상 󰡔전화벨󰡕이 흡족한 독서경험이 되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약 이틀에 걸쳐 읽었을까요, 저는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신경숙적으로 시작된 이 소설은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점점 피곤함이 몰려왔습니다. 작가는 이 소설이 흥미로움이라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장르인 ‘청춘소설’, ‘연애소설’이라고 주장했지만, 저는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 느낌만 가질 수 있었을 뿐입니다. 가끔 등장하는 위트(작가는 ‘유머’라고 주장하지만)가 담긴 대화가 눈길을 끌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왠지 상투적이라는 느낌밖에 주지 못했습니다. 이야기가 2/3 정도 진행되자 저 머리에 명확히 떠오른 문장이 “이거 완전히 󰡔노르웨이의 숲󰡕이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판단은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2. 󰡔전화벨󰡕의 미덕, 혹은 󰡔노르웨이의 숲󰡕의 재발견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모르지만, 저는 󰡔전화벨󰡕을 󰡔노르웨이의 숲󰡕의 표절작, 아니 아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기서 표절작이라는 표현을 애써 피하는 것은 한국은 표절에 매우 관대한 나라인지라 표절에 대한 문제제기는 항상 표절‘판정’보다는 표절‘원론’으로 그치는 경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예술의 모호성을 내세워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또 끝까지 책임을 추궁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모난 돌이 정을 맞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표절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화제성만 부각되는 데 그칠 뿐, 정작 그것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요인에는 접근도 하지 못하고 끝납니다.

물론 신경숙은 하루키의 소설을 이전의 다른 예처럼 일차원적으로 따오고 있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표절을 이야기할 때 보통 이 수준을 의미하지만요. 그러나 유기적인 구성을 가진 한 작품에서 표절이란 몇몇 문장이 일치하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작품 전체를 뒷받침하는 분위기나 상징, 인물의 형상화, 그리고 서사구조에 있다고 봐야 옳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임규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가 󰡔전화벨󰡕과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을 예리하게 지적한 것은 평가할 만합니다. 예컨대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상실의 시대󰡕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만큼 닮은 점들이 없지 않다. 사회적 배경이 유사한 과거시대를 상정한 점이나, 고독한 공허에 빠진 청춘들의 삶과 정체성을 다루는 대체적인 내용에서나, 주요 등장인물들의 자폐적 성향이나, 무엇보다 죽음이 하나의 중심 모티브인 점에 그렇다.

좀 더 쉽게 정리하면, 두 작품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학생운동이라는 배경 2) 허무에 빠진 청춘들에 대한 묘사 3) 주인공의 자폐적 성향 4) 핵심모티브로서의 죽음.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이는 신경숙 소설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키가 소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은 1), 4)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문제삼을 수 있는 것은 역으로 하루키 소설이 3), 4)처럼 오해되고 있다는 말일 텐데, 흥미롭게도 이는 그동안 있어왔던 하루키 소설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루키 소설이 2), 3)를 갖고 있는지 없는지와는 상관없이, 그동안 하루키 소설을 비판해온 사람들이라면, 그것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신경숙 소설 역시 비판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임규찬은 신경숙을 비판하기 위해 이런 공통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바로 둘 사이의 차이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입니다.

󰡔상실의 시대󰡕가 청춘소설하면 연상되는 청춘군상만의 좌충우돌 모험기라면, 󰡔전화벨󰡕은 네 명의 청춘이 중심인물이지만 그들 못지않게 윤교수나 고양이 에밀리 등이 중요한 존재이다. 윤교수의 존재는 어느 면으로나 각별하다. 그는 직선적인 진화의 시간관을 거부하고 순환론에 가까운 혹은 전통을 중시하며 시간의 누적과 지혜를 생각하는 작가의식을 반영한다. 또한 젊은이들만의 반항과 일탈, 모험이 아니라 지혜로운 어른과 함께 세상을 공유하고자 하는, 또 청춘 속에서 그 이전의 소년(소녀)도 바라보는, 그런 시간의 공간성, 역사성을 중시한다. 등장인물들과 닮기도 하고 공간성을 본질로 가지고 있는 고양이 에밀리의 묘사도 그래서 더 매혹적이다.

󰡔상실의 시대󰡕가 ‘죽음과 쎅스’라면 󰡔전화벨󰡕은 ‘죽음과 애정’이다. 󰡔전화벨󰡕이 동적이요 충동적이고 폭발적인 ‘애(愛)’보다는 정적이며 없는 것처럼 있는 ‘정(情)’의 관계를 지향하고 있음은 확연하다. 이런 맥락에서 󰡔상실의 시대󰡕가 대단히 현대적인 것으로 시대적 보편성을 얻었다면 󰡔전화벨󰡕은 확실히 고전적인 것, 윤리적인 것으로 시대적 보편성을 얻고자 한다.(452-453쪽, 강조는 인용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알 수는 없는데, 여러분은 절대 이런 식으로 글을 써서는 안 됩니다. 물론 이런 글쓰기를 문학적이다, 심오하다, 참신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이런 글은 쓰는 사람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를 때 씌어지는 글입니다. 하지만 어떤 글이든 글쓴이의 완벽한 통제가 이루어질 경우만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이해력을 시험해보도록 하지요.

임규찬은 먼저 󰡔상실의 시대󰡕가 ‘청춘소설하면 연상되는 청춘군상만의 좌충우돌 모험기’라고 정리합니다. 그리고 󰡔전화벨󰡕은 그와 달리 윤교수와 고양이 에밀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상실의 시대󰡕와 다르다고 말합니다. 특히 윤교수라는 존재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직선적인 진화의 시간관을 거부하고 순환론에 가까운 혹은 전통을 중시하며 시간의 누적과 지혜를 생각하는 작가의식을 반영한다. 또한 젊은이들만의 반항과 일탈, 모험이 아니라 지혜로운 어른과 함께 세상을 공유하고자 하는, 또 청춘 속에서 그 이전의 소년(소녀)도 바라보는, 그런 시간의 공간성, 역사성을 중시한다”며 꽤나 거창한 설을 풉니다.

하지만 일단 저는 󰡔노르웨이의 숲󰡕이 좌충우돌하는 청춘군상의 이야기라는 그의 주장에 의아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GO󰡕, 󰡔69󰡕와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으면 읽은 지 오래되어 막연히 남은 선입관으로 󰡔전화벨󰡕과 비교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전체적으로 감정이 최대한 억제되어 있으며, 이야기 자체는 그 흔한 소란 한번 없이 전개됩니다. 심지어는 죽음 앞에서조차 담담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취합니다. 이에 비하면, 󰡔전화벨󰡕에서 죽음은 항상 과장된 자기연민을 정당화하는 기제로서 배치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윤교수와 고양이만 해도 그렇습니다. 전혀 살아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 그저 배치되어 있을 뿐인 기호 같은 인물과 동물에게 그렇게 큰 의미부여를 해도 좋은지 의문인데, 만약 그런 의미부여가 가능하다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른 것들(무생물 포함)에게도 그런 해석을 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화벨󰡕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은 합의라도 하듯 어설프게 제시된 해석적 올무에 자발적으로 걸려든 후, 마치 대단한 지적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의 혜안에 스스로 감탄합니다. 󰡔노르웨이의 숲󰡕에는 미도리라는 여주인공의 아버지가 잠깐 등장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작품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음에도 불구하고 󰡔전화벨󰡕의 (작가에 의해 작위적으로 중요하게 배치된) 윤교수보다 작품에서 공명이 크다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비평을 쓰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비평가는 어떤 작품을 다루느냐에 따라 스타일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충분히 공감하는 작품을 만나면, 비평가의 글은 작품이 가진 섬세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통해 문학일반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나아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이는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는 작품을 만날 때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확실히 공감이 가지 않는 작품은 비평가로 하여금 문학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묻는 긍정적인 시간을 갖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문제는 질이 떨어지는 작품을 어떤 외부적 이유(어떤 이들은 이를 내부적 이유로 착각하기도 합니다)로 관대하게 포용하려고 할 때 발생합니다.

이 경우 비평가는 우선 바깥에 머물며 접근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즉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에 사용되는 도구나 개념들에 집착하여 그것을 ‘문학원론’으로 환원시키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런 식으로 작성된 비평들이 생각보다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뭐랄까, 내용적으로는 열심히 공부한 것처럼 보이고, 형식적으로는 문학적으로 보이는 것이죠. 물론 그런 식으로 씌어진 모든 글들이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임규찬의 글처럼 스스로 붕괴하고 있는 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용한 마지막 문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대전제 : 󰡔상실의 시대󰡕가 ‘죽음과 쎅스’라면 󰡔전화벨󰡕은 ‘죽음과 애정’이다.

소전제 : 󰡔전화벨󰡕이 동적이요 충동적이고 폭발적인 ‘애(愛)’보다는 정적이며 없는 것처럼 있는 ‘정(情)’의 관계를 지향하고 있음은 확연하다.

결론 : 이런 맥락에서 󰡔상실의 시대󰡕가 대단히 현대적인 것으로 시대적 보편성을 얻었다면 󰡔전화벨󰡕은 확실히 고전적인 것, 윤리적인 것으로 시대적 보편성을 얻고자 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노르웨이의 숲󰡕은 섹스를 다루었기 때문에 ‘현대적인 것’으로 시대적 보편성을 얻은 게 되고 󰡔전화벨󰡕은 정(情)의 관계를 지향했기 때문에 ‘고전적이고 윤리적인 것’으로 시대적 보편성을 얻었다는 게 됩니다. 섹스=현대적, 정=고전적(윤리적)이라는 등식도 우습거니와 어떻게 이런 설정이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기껏해야 되다만 경구성 단정 몇 개만 발견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을 깨닫지 못하는 것인지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어쨌든 낯익은 청춘소설을 거부하며 이렇게 대중적인, 어떤 의미에서 통속적이기조차 한 요소에 품격을 부여해, 적극적으로 우리말의 무늬를 새기고자 하는 교양소설의 면모에서, 그리고 그의 연이은 문학적 성취를 생각하면 바야흐로 신경숙의 진경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453쪽)라고 말하며 일관성 있게 뻐꾸기를 날립니다. 우리는 여기서 손을 떼도 상관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날려진 뻐꾸기 중 딱 한 마리만 잡아보도록 하지요.

임규찬은 여기서 󰡔전화벨󰡕에는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요소가 있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요소란 무엇일까요? 형식이라고 했으면 청춘소설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요소라고 하니 장르 그 자체보다는 청춘소설에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어떤 무엇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청춘소설에 따라오는 대중적(통속적) 요소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외딴방󰡕과 비교하여 󰡔전화벨󰡕이 너무 감상적이라는 흠을 잡고 있다는 부분에 주목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감상적인 요소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설을 대중소설로 추락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입니다(임규찬은 그것을 ‘품격’이라고 명명합니다). 그렇다면, 󰡔전화벨󰡕을 본격문학의 자장 안에 머물게 하는 ‘품격’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와 관련하여 그는 그것을 ‘우리말의 무늬를 새고자하는 교양소설의 면모’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런 요상한(문학적) 문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몹시 당혹스럽지만(훌륭한 우리말의 구사와 교양소설은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갑니다. “뛰어난 한국어 문장, 그리고 교양소설이라는 형식이 소설을 대중문학으로부터 구원한다.”

󰡔전화벨󰡕을 교양소설로 간주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외하고, 훌륭한 문장만을 문제삼는다면, 이런 의문이 생겨납니다. 과연 좋은 문장에는 통속성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있긴 있는 것일까? 혹시 그것은 도리어 감상성을 확대하여 통속성에 빠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신경숙 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그녀의 문장이 가진 훌륭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신경숙의 문장은 ‘문학적인’ 문장이지 좋은 문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감성을 자극할 뿐,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하고 있지 못하는데, 소설의 정신은 메시지를 손상시키는 감성과는 무관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실 󰡔노르웨이의 숲󰡕에 대해 명확한 평가를 내리기를 주저해 왔습니다. 유종호 선생님의 하루키 비판에는 수긍할 수 없다고는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전면적으로 긍정하기에는 왠지 꺼려지는 면이 적잖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전화벨󰡕을 읽으면서 새삼 󰡔노르웨이의 숲󰡕이 얼마나 잘 씌어진 소설인지 깨달았다고 하면 과장일까요? 저는 󰡔전화벨󰡕을 통해 얻은 최고의 수확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두 작품을 나란히 읽고 나면, 아마 하루키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충동에 시달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유종호 선생님에게 두 작품을 나란히 읽으시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3. 비평가는 어떻게 좀비가 되었는가?

얼마 전 저는 정은경 원광대 문창과 교수가 쓴 신경숙 소설에 대한 칼럼을 읽었습니다. 이 글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단 한가지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녀는 󰡔전화벨󰡕이 세련된 문장으로 구축되었으나 작품의 깊이라는 점에서는 이전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고, 또 작품 자체가 가진 설득력 또한 크게 떨어져 깊은 감흥이 없는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그녀는 뜻밖의 물음을 자신에게 던집니다. “그런데도 왜 󰡔전화벨󰡕은 많이 팔리는 것일까?”

주제와 사상 면에서 빈약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신경숙의 소설이 대중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소설은 흔히 말하는 대중소설의 코드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긴박감과 드라마틱한 서사적 재미도 없고 선정적이지도 않으며, 전혀 웃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감상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신파와 통속성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순히 센티멘탈리즘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그러자 그녀에게 신경숙의 인기는 일종의 미스터리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는 곧 그것을 풀 열쇠를 의외의 곳에서 발견했음을 고백합니다. 즉 TV의 한 예능프로그램이 신경숙의 미스터리를 풀어준 것입니다.

얼마 전 ‘남자의 자격’의 합창단 편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여기저기 떠들썩한 화제가 되고 있는 걸 보니 비단 나만은 아닌 듯싶다. 박칼린이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 넬라 판타지아의 아름다운 선율에 대한 얘기들이 많지만 그것이 감동의 핵심은 아닌 듯하다. 각자의 프로페셔널한 직업과 무관하게 가장 진지하고 순결한 자세로 임한 합창단원들의 태도, 그 태도에 깃든 ‘떨림’과 ‘수줍음’ ‘진정성’이 아니었을까. (…)

등단 25년차인 베테랑 작가 신경숙의 문체, 수줍은 듯 머뭇거리고 더듬거리며, 가녀린 듯 흔들거리며, 조심스럽게 이어지는 그녀의 문장의 힘은 ‘남격의 하모니’에서 보여준 그 떨림의 진정성에서 온다. 신경숙은 냉소와 유머를 모른다. 그것은 현재 직면한 것, 삶을 상대화할 줄 모른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상대화할 줄 모르는 것은 그 자신을 끊임없이 고통에 빠지게 할지라도 타인과 자신의 삶을 멸시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은 통속성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실은 여러 가지 난점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녀가 신경숙 소설과 유사한 것으로서 발견한 합창단의 ‘떨림’, ‘수줍음’, ‘진정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그들보다 훨씬 잘 노래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원래 직업(프로)가수였다면, 아마 그렇게 큰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는 문제가 하모니의 수준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비직업적인 행위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아마추어적 열정’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문제가 되는 행위 이외의 것(사회적, 경제적 이득)과 연결시키지 않고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함으로써 획득되는 어떤 순수함의 유무에 있다고 하겠는데, 그 경우 아마추어들에게 있어 평가란 온전하게 절대평가의 형태를 띱니다.

따라서 그들이 부여하는 감동을 등단 25년차인 프로작가 신경숙의 소설과 연결시키는 것은 논의의 층위를 혼동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정교수는 아마추어 합창단이 주는 감동은 아름다운 선율에서 오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신경숙의 문체에 존재하는 ‘수줍음’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만약 그런 ‘수줍은’ 문체가 25년이나 된 프로의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아마추어합창단에서 발견되는 ‘수줍음’과는 무관한 일종의 ‘계산된 콘셉트’로 봐야 옳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혼동은 어느 직업배우의 실제 삶을 그가 한 역할과 동일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상을 상대화할 줄 모르는 신경숙의 문체를 “그 자신을 끊임없이 고통에 빠지게 할지라도 타인과 자신의 삶을 멸시하지는 않는” 것으로 파악한 후, 이를 동시대 다른 소설들(냉소와 유머를 들어있는, 삶을 상대화하는 소설)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단순한 착오라고 하기에는 너무 멀리 간 느낌입니다. 별로 마음에도 들지 않는 소설을 느낀 그대로 평가하지 않고 단지 많이 팔린다는 사실에 압박을 당한 나머지 작품의 문체와 작가의 태도와 혼동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런 헷갈림 가운데서 찾아낸 자기설득적 경구(상대화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타인과 자신의 삶을 멸시하지 않고 통속성으로 떨어지지 않는 방법이다)를 소설일반론(유머와 냉소는 타인에 대한 멸시이다)으로까지 확립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소설이라는 양식은 완전히 공중분해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녀는 마지막 문단에서는 “주제의식, 인식, 수사, 형식 바깥에서 처음인 듯 문장의 육체를 만질 수는 없을까?”하고 묻는데, 이런 감상적인 물음에서 우리는 신경숙의 영향력에게 감염된 한 좀비비평가의 모습 이상을 발견하기 힘듭니다. 이에 대해 제가 분명히 답할 수 있는 것은 이렇습니다. 적어도 소설에서 그런 육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하나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문장의 육체를 만지기 원한다면,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두 살짜리 어린애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라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그 또래의 아기들은 대상을 상대화할 줄 모르기 때문에 타인은 물론 자신의 삶 또한 멸시하지 않는 초짜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상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고통에 빠지게 되는지는 궁금하군요. 경구를 제작할 때는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부족하다는 것을 여기서도 알 수 있습니다.

4. 두 신화(申話)의 만남과 비평의 곡예

이제 이번 신경숙 소설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글을 다룰 차례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신형철 󰡔문학동네󰡕 편집위원의 글이 바로 그것입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저 역시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신형철 위원을 높이 평가하는데, 그것은 그가 제2의 김현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김현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김현이 활동하던 시기 한국문학판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생각보다 매우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즉 그는 󰡔문학과지성󰡕이라는 테두리를 크게 넘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문단은 서로 다른 문학관에 의해 엄격히 분할되어 있었고, 또 김현과 비슷한 급(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더 뛰어난) 비평가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확보한 문학적 헤게모니는 매우 제한된 것이었습니다. 일찍 죽음으로써 실제보다 약간 더 커 보이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당파성이 완전히 사라진 지금의 문학판에 등장한 신형철은 그런 장애물이 전혀 없이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김현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꿔 말해, 전후 한국을 대표하는 비평가 하면, 우리는 김현 외에 여러 명의 이름을 더 들어야 공정하다 하다 평가를 받겠지만, 2000년대를 대표하는 비평가하면, 신형철이라는 이름 하나로 충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386세대 비평가들은 인정하긴 싫겠지만, 그들은 세례요한(사라지는 매개자)의 역할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 국보급 비평가의 탄생과 성장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실제 그는 문단 내외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문학인 중 한 명으로서, 많은 문인들이 그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형국입니다. 즉 그는 사실상 지금의 한국문학을 가늠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의 의견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던 일단 들어보는 것은 결코 시간낭비가 아닐 것입니다. 서설이 길어졌으니, 바로 그의 󰡔전화벨󰡕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지요.

제가 이번 󰡔문학동네󰡕 가을호에 실린 신형철의 글을 읽고 든 느낌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욕봤수다!” 저는 그가 문학동네의 편집위원으로서 선배 편집위원의 사모님이자 문학동네 간판작가인 신경숙을 과연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는 특별히 문제삼지 않겠습니다. 어느 집단이나 제 식구 감싸기는 존재하기 마련이기에(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검찰을 너무 비판만 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그에 대한 비판은 많은 본질적 문제제기가 그러한 것처럼 제기한 쪽만 힘 빠지는 결과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관심이 있는 것은 ‘평가의 공정성’(사실 문학에서는 이것은 얼마든지 합리화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침묵하면 문제조차 되지 않습니다)이라기보다는 ‘평가의 소멸’이 이루어지는 방식입니다. 제가 신형철 비평에서 발견하는 특정 작품들에 대한 칭찬과 마찬가지로 종종 다른 글들에서 발견하는 비판적 의견에도 ‘공정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의 준사회비평에서 이루어지는 날카로움이 왜 문학 쪽으로만 오면 그토록 무뎌지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신형철의 평론을 혹 읽고 오신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확실히 다른 글과 비교해 도올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애도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이 글은 저에게는 “애썼다”는 생각밖에 주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비평가로 활동하다 보면, 저 같이 낭인비평가가 아닌 경우에는 쓰고 싶은 말을 그대로 쓸 수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적 칭찬을 하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적잖게 존재합니다. 그때 이런 딜레마를 피하는 방법으로 대략 두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방향을 약간 선회하여 작가론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보다 이론적 개념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는 이번 글에서 이 두 가지 길을 모두 선택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글을 읽으신 학생 중 누구 한 명 느낌을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네, 안경 쓴 학생. “잘 쓴 것 같지만, 어려웠다고요.” 다른 학생? “다른 글들과 달리 깊이감이 있는 글이었다고요?” 지적하신 대로입니다. 이 글은 꽤 어려운 글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단 프로이트, 데리다, 지젝 등이 언급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첫머리에 꽤 많은 지면을 통해 행한 ‘애도작업’에 대한 개념적 세분화를 하다가, 그것을 ‘글쓰기(문학행위)’ 안에 흡수시킨 후, 그 ‘글쓰기 자리’에 신경숙 소설을 놓고 일반적 분석을 행한 후, 다시 개념적 수준에서 글을 마무리하는 다소 복잡한 현란한 논지 전개 때문에 생기는 문제로 보입니다.

필자의 논의를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분석과 판단 사이의 미세한 분열을 발견하게 되는데, 글 내내 조금씩 진행되던 분열은 그러나 갑자기 맨 앞부분에서 정리된 아포리아로 메워짐으로 싱겁게 마무리가 되고 있는 형국입니다. 하지만 싱거운 마무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인의 주장만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까지도 ‘서로 주고받는’ 전개방식을 쉴 새 없이 선보이면서, 그 과정에서 획득한 긴장감을 가지고 어떤 깊이감을 만들어내는 데에 일정 정도 성공하고 있다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글에 존재하는 ‘깊이감’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을까요?

이 글의 경우 ‘너무 많이’라는 ‘적절함을 넘어섬’을 표현하는 부사의 겹쳐 씀으로써입니다(그는 이 표현 제목만이 아니라 본문에서도 여러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유사표현의 겹침(중복)은 문장 자체를 무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어떤 이들에게는 의미를 깊게 만든다고 보기도 하지만요). 예컨대 ‘너무 많이’가 들어가면, 원래 문장이 긍정문이었는지 부정문이었는지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의도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데리다의 말을 빌려 이야기되고 있는 것처럼 애도라는 것 자체가 본래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애도 제체보다는 애도의 ‘정도’가 전면에 등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정도(방식)’에 따라 애도의 형태를 세밀하게 구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의 애도론‘작업’을 따라가는 것은 신형철의 덫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애도가 아니라 신경숙 소설이고, 신경숙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애도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조금만 더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먼저 그가 언급하고 있는 애도론의 핵심문헌인 프로이트의 ｢애도와 우울증｣에서 중요한 것은 애도가 아니라 우울증입니다. 이 논문을 꼼꼼히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글에서 애도는 우울증을 설명하기 위해서만 등장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형철이 ‘너무 많이’ 애도만을 문제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우울증이라는 진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애도행위를 특정대상에 고착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하나 다루어 보기로 하지요. 최근 아무리 ‘애도’를 가지고 작품분석을 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더라도(눈치 빠른 작가들은 이에 발맞추어 해석에 걸맞은 작품을 쓰기도 합니다), 그런 분석은 과잉된 해석의지가 낳은 ‘공식에 짜 맞추기’ 이상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애도는 그 자체로 분석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저 분류될 수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것의 실패(우울증)로서만 비로소 문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울증을 논외로 삼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애도의 ‘정도(형식)’에 대한 논의는 애도를 ‘실체화’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허수아비에게 모자를 씌우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신형철은 우울증을 회피한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신경숙 소설을 정면에서 다룰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지만, 분명한 것은 만약 그가 애도가 아닌 우울증을 문제 삼았다면, 전혀 다른 글이 씌어졌을 것이고, 그로 인해 나름대로 곤란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음으로, 앞서 저는 그가 애도행위를 특정 대상에 고착시킨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특정 대상이란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글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정신분석에서 ‘애도’의 대상은 인간으로 제한된 게 아닙니다(물론, 이에 대해서는 그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슬쩍 제한을 시키고 이야기를 전개해 갑니다). 그 대상은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이념이나 이상, 심지어는 특정 사물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애도행위가 항상 ‘죄의식’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먼저 애도의 불가능성을 제시한 신형철은 신경숙 소설이야말로 그런 애도의 아포리아(이중구속)와 고투해온 증거라고 정식화하고, 그 증거를 찾는 데만 전력을 기울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그것들을 찾아내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서 저는 󰡔외딴방󰡕에 대한 그의 평가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대신에 작년에 출간되어 많은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엄마를 부탁해󰡕를 그가 어떤 방식으로 옹호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엄마를 부탁해󰡕에 대한 옹호는 곧바로 󰡔전화벨󰡕에 대한 옹호로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신형철은 먼저 󰡔엄마를 부탁해󰡕에 대해 이루어진 기존의 비판을 ‘모성을 신비화하면서 모성으로부터 위안을 얻으려는 퇴행성을 보여준다’고 요약하고, 다음과 같은 좀 더 세련된 형태의 논리(지젝)를 덧붙입니다.

역설적인 것은 결여를 상실로 옮기는 우울증의 이 기만적인 번역이 우리로 하여금 대상의 소유를 주장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을 상실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으로 무언가를 상상했다면 이전에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바로 이런 논리하에 우울증자는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상실한 대상에 고착시키고, 바로 그 상실의 포즈 속에서 그럭저럭 대상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이런 비판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엄마를 부탁해󰡕를 옹호하고 있는 걸까요? 놀랍게도 여기서 그는 이 작품이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을 반박의 증거로 내세웁니다.

그러나 일단 이런 논법은 당장에 무수한 대중들의 소박한 항변에 힘을 잃을 것이다. ‘이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이다.’ 󰡔엄마󰡕의 어머니가 실재하는 엄마가 아니라 상상된 엄마라는 지적이 어떤 이들에게는 아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소설이 어머니를 그리는 방식은 차라리 극사실주의에 가깝다.

이 점에서 신형철은 앞서 살펴본 정은경과 비슷한 입장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엄마를 부탁해󰡕, 󰡔전화벨󰡕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독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저는 여기에 ‘평가의 아포리아’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평자들은 그것을 아포리아로서조차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한국의 문학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문학이라는 예술은 다수결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의 한국문학이 처한 곤경(팔리지 않는다는 것)이 문학의 위기를 뜻한다고 볼 수 없다. 본격문학은 원래 잘 안 팔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 이들이 다른 곳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경숙의 소설이 엄밀한 비평적 판단 앞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게 정리하고 만다면, 수많은 독자들의 반응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실제로 신형철은 󰡔엄마를 부탁해󰡕를 다음과 같은 물음을 먼저 던지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애도의 서사는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86쪽, 강조는 인용자) 비평가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책이 많이 팔리는 이유를 무엇일까?”라는 관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접근하면, 백이면 백 비평은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객관적인 판단보다 ‘이미 팔린’ 현실을 사후적으로 보충해주는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우리가 다수결에 의해 문학적 가치가 결정된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접근법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신형철은 󰡔엄마를 부탁해󰡕를 구해내기 위해 기존의 비판을 설득력의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논법에 있어서의 참신성(예컨대, ‘교과서적이어서 따분한 논법’)이라는 관점에서 폄하하고 있는데, 일부 평론들에서 확실히 그런 면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평이 교과서적이고 따분하게 된 1차적인 책임을 온전히 비평가들에게만 묻는 것은 나중의 글을 쓰는 자의 우연적 특권을 지나치게 남용하는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독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비평가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작품 자체가 그런 다양성을 견딜 수 있는 맷집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무턱대고 엇비슷한 교과적인 해석만을 탓하는 것은 오로지 평가에 앞서 과도한 애정을 투입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평가 상의 획일성을 문제삼을 때, 우리가 더불어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독자들이 갖는 감상(감동)의 획일성입니다. 그러나 신형철은 이 부분은 그냥 지나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작품의 가치를 뒷받침하고 증거로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그것을 비평가들의 획일성과 대립시키는 기묘한 논리적 곡예를 부립니다. 사실 이로 인해 파생하는 논리적 파탄(논리정지)은 그의 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인용한 것처럼 그는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가 ‘상상된 엄마’라는 지적에 대해 독자들은 그것을 그렇게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응수합니다. 이 얼마나 이상한 응수입니까?

그렇다면, 독자들이 󰡔엄마를 부탁해󰡕을 읽고 감동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실재의 엄마’를 환기시키기 때문이라는 말인가요? 애국가가 울릴 때 흘리는 눈물은 민족이나 국가의 실재를 증명해주는 것일까요? 순전히 독자의 입장에 서서 비평가들의 현학취미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비평적 판단을 독자들의 다수결에 맡기는,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만든 함정이 스스로가 빠진 형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상된 존재란 극사실적인 방식으로만 가장 잘 표현된다는 것을 그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요?

사정이 이러하니,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에 대해 ‘다시는 육체적, 정서적 착취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력한 윤리적 각성을 촉구하는 애도’서사라는 결론은 당혹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왜냐하면 따지고 보면 이런 주장도 교과서적이고 따분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의 비평에서 항상 히든카드로 사용되는 ‘윤리’라는 단어까지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평적 세련미를 획득하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물론 노련한 그는 여기서 한 발을 빼놓긴 합니다. 그가 죽은 엄마가 화자로 등장하는 제4장을 따로 강조하면서 󰡔엄마를 부탁해󰡕에 대한 분석을 끝맺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죽음을 어머니 자신이 애도하는 대목이다. 애도는 성공하면 실패하고 타자는 되살리면 죽는다, 라는 것이 데리다의 덫이었다. 이 소설의 4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만 한 태도로 이 덫 속으로 뛰어든 선사례다.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애도하게 하라.(88쪽)

절묘하게 마지막을 성서의 한 구절로 장식하고 있는데(이런 방식은 신형철 비평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정작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호합니다. 산자들의 애도가 죽은 자의 입장에서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망자를 등장시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작품분석 앞서 그는 신경숙의 소설은 데리다가 제시한 ‘애도의 이중구속’을 정면으로 감당해왔다고(또는 넘어섰다고) 말한 바 있기 때문에, 철학적으로도 무언가 대단한 것을 신경숙 소설로부터 추출해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이에 대한 답을 그 자체로 엄청난 주석을 필요로 하는 예수의 말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경구에 의해 끝맺음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는데, 그 이유는 아마 아름다운 문처럼 그것이 실은 벽(막다른 골목)으로 판명이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위 성구를 무척 좋아합니다(참고로 저는 매일 교회에 나가는 기독교인입니다. 가끔 예배 중에 자주 졸며 헌금을 많이 내지도 못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죄 많은 인간인지라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는 못합니다. 예컨대 저는 나름대로 한국문학에 사망선고를 내리고 앞으로 이미 죽은 한국문학은 그것을 좋아하는 검은 비평가들에게 맡기겠다고 선포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자(死者)들의 세계에서 불필요하게 간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불완전한 인간은 항상 예수님의 말씀을 어길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애도하게 하는 사람들’을 존경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자 이제 하이라이트인 󰡔전화벨󰡕입니다. 신형철은 다음과 같은 말로 󰡔전화벨󰡕 분석을 시작합니다.

󰡔전화벨󰡕을 언급하기 전에 그의 두 장편을 새삼 언급한 것은 이 소설을 전작들과 같은 계열의 소설로 읽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88쪽)

별 무리가 없는 시작입니다만, 여기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떤 작품을 평가할 때 그 기준을 해당 작품의 완결성에 놓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해당 작가의 작품군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에 놓을 것인가 입니다.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인 것 아니냐고 힐문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둘의 차이는 하늘과 땅입니다. 예컨대 전자의 관점에서는 실패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일지라도 후자의 관점에서는 의미있는 작품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바로 후자의 관점이 기본적으로 역사주의적 입장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한 비평가가 일련의 작품군을 쓰고 통제하는 작가의 성숙(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논한다고 했을 때, 그는 개별 작품에 대한 평가보다는 작품들 간의 차이(변화)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데, 이때의 변화란 항상 앞 작품의 +(보충)로만 인식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개별 작품은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뒤로 갈수록(최근작일수록) 더 많은 의미를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심지어는 실패마저도 이전 작품의 +(보충)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화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 작품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원래의 목적이 작가론이 아닌 이상, 역으로 󰡔전화벨󰡕 자체만으로는 평가받기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전화벨󰡕을 평가하는데 있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신형철은 󰡔전화벨󰡕 분석을 시작한다고 말해 놓고도 다시 그녀의 단편 여럿을 들어 󰡔전화벨󰡕의 작업이 이전 작업과 많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같은 것을 계속 우려먹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에 대해 그는 이런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미리 “이것은 소재의 반복이 아니라 못다 한 애도의 지속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전화벨󰡕에 대한 많은 평자들의 반응(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은 하나같이 이전 소설과 유사한 소재와 주제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못다 한 애도의 지속’이고, 이런 지속인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면, 거기에는 분명 이전과 다른 무엇인가(신형철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의미있는 변화’)가 있을 것이고, 신형철의 마지막 베팅이 정확히 이곳을 향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겠습니다. 먼저 그는 이 소설이 이전 소설(｢밤길｣, ｢직녀들｣, ｢멀리, 끝없는 길 위에｣)을 들어, 이 작품들과 󰡔전화벨󰡕이 다른 점으로 이전 소설에서는 말하지 못한 것(왜 그녀가 자살을 했는가?)을 밝히고 있다는 점을 듭니다.

예컨대 󰡔전화벨󰡕의 미루(이전 소설에서 ‘이숙’이라는 인물에 해당하는)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언니 미래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미래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의 남자친구(운동권)의 실종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소설 속의 인물이 죽게 될 때, 작가가 그 원인을 서술하는 것은 서사진행상 매우 당연한 것이라 하겠는데, 그 ‘당연함’이 그에게 놀라움(새로운 발견)으로 다가온 것은 순전히 그 이전 소설에서는 그것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어쨌든 그는 그것(원인이 제시되어 있다는 것)을 ‘역사성의 도입’으로 파악합니다(기계적인 원인 배치들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갖는지 의심스럽지만, 일단 그렇다고 하지요).

이숙의 죽음이 이십 수년 만에 역사적 공간에 자신의 작은 자리를 얻었다. (…) 이번 소설을 보건대 이십여 년의 세월은 작가에게 미루의 죽음에 보편성의 맥락을 부여할 수 있을 만큼의 성숙한 거리를 선물한 것으로 보인다.(91쪽)

그런데 여기서 그는 다시 한 번 방향전환을 합니다. 즉 그런 ‘역사성’의 도입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작가의 의도는 여기에서 한 벌 더 나아간다고 주장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신경숙은 역사성이 가미된 이 소설을 ‘청춘소설’로 명명함으로써 보편성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증거로 생략된 역사적 지표들을 듭니다. 󰡔전화벨󰡕은 80년대의 혼란스러운 정국을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그것들이 희미한 풍경으로서만 존재하도록 했는데, 이는 (‘역사성의 결핍’이라기보다는) 의미있는 ‘거리두기’라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윤교수와 고양이를 중요하게 간주하는 것도 이들이 철저하게 사회적 배경과 무관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전화벨󰡕에서 이루어진 ‘역사성의 생략(또는 미비)’를 작가적 능력부족이 아닌 ‘거리두기’로 판별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뜻밖에도 그것이 “의도된 것이다”(92쪽)는 믿음에서입니다.

어떤 작품을 평가할 때,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작품의 의미’를 ‘작가의 의도’에서 파악하는 것입니다. 의도에 의해 의미를 추적한다는 것은 결국 ‘의도했다고 가정된 무엇’을 세우는(상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것이 작가의 의도와 일치한다고 보증해줄 있는 것이 어디에 없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작가 자신도 그것을 보증할 수 없습니다. 또 설사 작가의 의도가 명백히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작가와 의도와 텍스트의 의도는 항상 어긋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문학론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작가의 의도를 앞세워 작품을 ‘과잉’독해한 후, 여기서 또 다시 방향전환을 하여(이제는 약간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작가의 의도에 반(反)하여 역사적 지표들을 채워 읽는다고 흐뭇해합니다.

정리해 보도록 하지요. 신형철이 󰡔전화벨󰡕을 높이 평가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이전 작품들과 나란히 놓고 문제의 작품을 발전적인(역사주의적) 관점에서 본다.

→ 이때 발견되는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역사적 지표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2. 하지만 이 작품에는 역사적 지표들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배경 정도로 설정될 뿐이다. 하지만 이점이 중요하다.

→ 이는 역사성에 함몰되지 않고 보편성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이다.

3. 그럼에도 독자들은 희미한 역사적 지표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빈자리를 채우는 적극성을 발휘한다.

→ 그럼으로써 독자들은 결국 작가가 의도한 ‘청춘소설’이라는 보편성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논리의 왕복은 어쩌면 아주 명백한 사실 하나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요? 즉 그것은 󰡔전화벨󰡕이 역사성을 아주 어설프게 도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환영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만약 이런 저의 추측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면, 우리는 신형철의 논리가 현란해 보이는 이유를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혹시 결과를 원인으로 계속 바꿔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신형철의 논리적 전개는 위처럼 1 → 2 → 3 순으로 되어 있으나, 본래라면 그 역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이는 만약 󰡔전화벨󰡕이 독자의 외면을 받았다면(3항이 부정된다면), 위 논리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많이 팔렸기 때문에 어설픈 역사성의 도입(후일담)도 보편성(청춘소설)으로 둔갑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다수결에 근거한 비평이 부리는 갖은 곡예는 결국 스스로를 묶고 말 뿐입니다. 물론 그는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그럴 듯하게 󰡔전화벨󰡕 분석을 마치고 있지만, 경구취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것은 한 없이 공허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은, 쓰는 이에게는 청춘시절에 떠나보낸 이들에 대한 애도의 시간이고, 읽는 이에게는 지금 통과하고 있는 청춘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며, 그 책을 얻어 갖게 된 공동체에게는 잃어버린 가치들을 떠올리고 그것의 회복을 다짐하는 반성의 시간이 된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나는 󰡔전화벨󰡕의 의식적 의의(청춘소설)와 무의식적 의의(이숙에 대한 애도)와 집단-의식적 의의(이 사회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도)가 각각 따로 있다고까지 말하고 싶다.(93쪽)

소설가뿐만 아니라 비평가도 지금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잘 모르면 모를수록, 글은 점점 현학적이 되거나 경구로 정리되며, 운이 좋은 경우는 겨우 미문에서 자신의 둥지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모든 글쟁이들이 명심해야 하는 것은 그런 결과물에서 발견되는 깊이감(입체감)을 통찰의 한 종류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찰은 결코 그런 식으로 획득될 수 없습니다. 사실 이런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그 잘난 문학주의로부터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노련하게도 그는 󰡔전화벨󰡕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합니다(그러나 평론에서 종종 보는 이런 ‘서비스형 보류’는 자신이 나름대로 주관이 있는 비평가라는 것을 드러내는 일종의 보험 같은 것입니다). 󰡔전화벨󰡕이 ‘애도의 윤리학’(신형철의 표현)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애도의 윤리학’이란 애도작업은 주체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또 그 주체는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을 가리키는데, 󰡔전화벨󰡕이 거기까지 나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더 나아가는 대신에 방향을 약간 바꾸어, 신경숙 소설을 ‘가장 먼저’ 비판하는 것은 신경숙 소설이라면서 그녀의 다른 작품들이 이미 그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이 지적한 최소한의 단점마저도 훌륭히 덜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너무 많이’를 등장시켜 애도에 대한 철학적 사변으로 논의를 끝맺고 있습니다.

5. 비평가의 기침

원래는 󰡔전화벨󰡕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자리인데, 그만 󰡔전화벨󰡕보다는 그것을 호위하기 위해 만들어진 흑기사비평을 다루는 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한국평단은 저의 이런 방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이제 담론비판은 그만하고 비평의 본령인 정밀한 작품분석이나 해라!”입니다. 시간이 없는지라 정밀한 분석은 할 수 없지만(물론 우회적인 형태이지만, 지금까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지만), 신형철이 황정은 소설을 해설하면서 쓴 표현(이 표현은 책 표지 문구로도 사용되었습니다)을 빌려서 간단히 평가하자면, 이렇습니다.

이 소설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이렇다. 고만. 그동안 마이 써 묵었다 아이가.

오래 전 스타이너는 비평가라는 존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검열관이나 문학사가와는 달리 비평가는 걸작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비평가의 일차적인 기능은 양서와 악서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양서들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을 판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물론 한국에서 비평을 하는 이상 스타이너처럼 최고의 걸작만을 판별하는 호사를 누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명도 있는 작가의 많이 팔리는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흑기사를 자처하는 데에 자신의 비평력을 소비하지 않을 권리 정도는 있다고 봅니다. 명박산성의 건축술을 논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권리까지 포기하면서 애를 쓴 신형철을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렇습니다. “쓰느라, 욕보셨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분들에게는 듣기 싫을 것이 분명한 이야기를 제가 애써 되풀이하는 것은 소재의 반복이 아니라 (한국문학에 대한) 애도의 지속으로, 특정인의 실명(고유명)을 들어서 대놓고 비판하는 것은 역사성을 도입하려는 시도로, 그리고 순화시키지 않고 너무 직접적으로(또는 반항적으로) 쪼아대는 것은 비평의 청춘으로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이런 작업이 문학적 보편성에 이르렀는지 어떤지는 제 스스로 판단하기가 좀 멋쩍지만요. 아무튼 지각한 강사의 그다지 아름답지 않는 목소리를 꾹 참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전달하겠습니다. 하나는 윤교수님의 부탁이었는데, 출석은 불러야 한다고 합니다(갑자기 야유와 박수가 교차한다). 그리고 혹시 아직 이 책 안 읽은 학생 있나요? (아무도 손을 안 든다) 제가 산 이 순정소설을 그냥 드리려고요. (공짜라는 말에 수십 명이 한꺼번에 손을 든다). 제일 먼저 든 노란 옷을 입은 학생, 일부러 앞으로 나올 필요는 없습니다. (순간 코가 간지러워 겨우 한 문장을 마친다) 제.가.그.쪽.으.로.가.겠.습.니.다. 에취! (그 순간, 학과실에서 나를 찾는 핸드폰벨이 울린다. 아마 강의료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