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여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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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특별호(통권 58호)



[머리글]


책머리에



임동확



반성과 비판은 올바른 문학인에게 있어 양날의 칼날이다. 그것들이 내부로 향할 때 자신의 환부를 가차 없이 자르고 도려내는 것이 될 터이고, 외부로 향할 때 온당치 못한 타인과 세상의 잘못과 불의에 대한 용서 없는 칼날의 비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금의 문학인들은 과연 양날의 검을 잘 사용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이도저도 아닌 채 결국 자신도 죽이고, 세상도 죽이는 칼춤을 엉거주춤 추고 있는 것인가.

 

그에 대한 판단은 문학인들 각자의 몫이다. 다만 오늘의 한국문학계에 제대로 된 자기반성이나 비판이 실종했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하는 바이다. 그 어느 쪽으로 향하든 날카롭고 매서워야 할 칼날이 한없이 무디고 둔하기만 하다. 행여 소 잡은 데 필요한 칼이 무를 써는데 동원되는 가하면, 무를 다듬는데 쓰여야 할 칼로 소를 잡으려 덤비는 현상이 곧잘 목격된다. 특정 출판사나 문학권력에 자유롭지 못한 하급무사 ‘사무라이’의 칼과 같은 평문이 즐비하되,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일격필살의 검객다운 검객들이 쉬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문학지성의 유일한 무기라고 할 수 있을 반성과 비판의 상실은 곧 한국 문학 내부의 자정능력의 상실을 의미하고, 유감스럽게도 그 결과는 한국문학정신의 부패와 악취이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가치방임주의 또는 단지 자기 파괴적이고 타자 부정적인 회의주의는, 결국 한 개인의 문학과 ‘한국문학의 죽음’을 부른다. 날로 그 영향력을 잃어가는 한국문학의 위기와 문학인의 위상 추락은, 다름 아닌 내부로 향하든 외부로 향하든 제대로 된 반성과 비판정신의 실종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반성과 비판은 단지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고 세상의 잘못을 질타한 것만으로 그칠 수 없다. 그야말로 반성을 위한 반성, 비판을 위한 비판은 그 의도와 상관없이 그 주체나 대상 내지 한국문학의 공멸을 부를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엄정하고 진지한 성찰과 세상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전제되지 않는 지성은, 본의 아니게 문학적 존재의 연쇄망을 파괴하는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 자칫 그 뿌리와 줄기를 보지 못한 채 눈앞에 보이는 꽃의 진위(眞僞) 또는 미추(美醜)에만 집착하는 서투른 외과의(外科醫)로 전락할 수 있다. 결국 문학인들의 손에 쥐어진 검은 자신도 살리고, 세상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이지 모두 다 죽자고 냅다 휘두르는 ‘망나니 춤’의 칼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지금껏 ‘한국작가회의’ 회원 대상의 기관지인지, 아니면 하나의 독립된 계간지인지 다소 그 성격이 모호하게 발행돼온 ‘내일을 여는 작가’의 책임을 맡은 한 사람으로서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생명의 검이 되든, 아니면 이른바 흉기가 되든 각 회원들의 고른 작품 수록과 더불어 활발한 토론과 치열한 담론 생산의 장이 되어야할 터지만, ‘작가’지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와 딜레마 때문에 다소 어정쩡한 입장을 보여주었던 게 사실이다. 이전의 모든 편집진들이 공통적으로 느꼈던 난제이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담론이나 쟁점보다는 단순히 작품 발표지면에 그친 감이 없지 않다.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고난과 시련 속에서 단련되어온 ‘한국작가회의’의정신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고, 그 방수로(放水路)은 당연히 ‘내일을 여는 작가’여야 한다는 점이다. 설령 기관지라고 해도 여타의 다른 문학단체나 문학 그룹의 잡지처럼 친소(親疎)관계나 인정에 이끌리는 하나의 또 다른 매체가 아닌, 치열한 반성과 가차 없는 비판에 그 근거를 두되 서로에 대한 깊은 공감과 진정한 이해를 추구하는 문학적 소통로가 되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재정적으로 매우 열악한 상황인 문학지이나마, 그동안 ‘한국작가회의’의 회원들이 지켜온 소중한 정신적 자산과 불굴의 문학적 위의(威儀)를 지켜나갈 때, 그야말로 ‘내일을 여는 작가’는 단지 회원들만이 아닌 모두가 기꺼이 사랑하고 찾는 문학잡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10년 1월 20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보낸 이른바 ‘각서파동’으로 급기야 총회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발간을 중단했던 ‘내일을 여는 작가’를 무크지 형태로 내는 마음은 실로 착잡하기 그지없다. 최소한의 문학적 자존심마저 짓뭉개는 이명박 정권의 옹졸함과 과 그 절망적인 처사에 대한 밀려오는 분노와 서글픔을 말하기 앞서, 그동안 애써 가꾸고 지켜온 민주주의와 그 제도가 이렇게도 쉽사리 무너질 만큼 허약했던가 하는 생각이 더 많은 회의와 절망을 안겨주었던 까닭이다. 당분간 김병익 선생이 전적으로 출연한 기금에 의해 의지해가겠지만, 앞으로도 별다른 전망이나 자구책이 없다는 점에서 암담한 심경을 숨길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새롭게 구성된 편집진들은 활발한 토론과 다양한 의견 제시를 통해 ‘작가’지가 모두의 사랑을 받는 품격 있는 문학지로 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하자는데 합의하고, 새로이 ‘선택과 비판’, ‘변화의 길목’, ‘영향과 극복’ 등의 연재란을 신설하였다. 또한 이번 호의 발간을 계기로 게재된 모든 글과 작품을 대상으로 한 촌평 내지 단평을 달 수 있는 공간을 ‘한국작가회의’ 사이트에 개설, 활발한 토론과 기탄없는 비판을 이끌어내고 하며 향후 선별하여 작가지 반영할 예정이다. 특히 역시 그 사이트에 편집진들이 미처 헤아리지 못한 작가들이나 오래 작품 활동을 중단했던 작가들을 위한 기명․익명의 ‘작품투고란’을 마련, 다음 호에 일정 부분 반영하고자 하니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하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일을 여는 사색의 창’에서는 원로소설가이자 전 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했던 최일남 선생의 권두산문 ‘읽는 재미, 사는 재미’는 다양한 독서편력에 그치지 않는, 책과 인간, 그리고 문화 사랑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언론으로서도 소설가로서도 올곧게 살아온, 오랜 연륜의 사람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얘기들이 잔잔한 감동과 파문을 선물해주리라 생각한다.

 

이번 편집진들이 어느덧 실종된 비평정신의 회복을 찾고자 마련한 ‘선택과 비판’에서는, 최근에 간행된 황석영의 장편소설 『강남몽』과 신경숙의 장편소설『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대상으로 젊은 비평가 권채린, 조영일씨가 치밀한 논리와 물러서지 않는 비평정신을 보여주었다. 늘 화제의 중심에 있는 두 유명 작가의 작품을 대상으로 좌면우고하지 않는 비평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고, 또한 한국문학 풍토상 소모적이고 지엽적인 논쟁으로 비화되기 일쑤이지만, 그 평가과 비판의 온당함 여부를 떠나 오랜만에 비평정신의 진수를 보여주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고 할 것이다.

 

일종의 ‘선택과 옹호’에 해당하는 ‘변화의 길목’에서는 중진시인인 김정환․고형렬의 두 작품을 대상으로 기존의 리얼리즘 경향의 시들과 일정한 거리를 둔 시들을 선보이는 그들의 시적 변화의 양상과 그 의미에 대해 필자가 분석하고 있다. 또한 신예비평가 차성연씨가 전방위적인 글쓰기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 고종석의 『독고준』 소설집을 대상으로 소수자 옹호와 지난 시대에 대한 애도를 주축으로 하는 그의 문학사적 의미를 짚어보고 있다. 앞으로도 시인이나 기성 작가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작품 경향이나 문학적 변신의 기미를 예리하게 포착해 나갈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질책을 부탁드린다.

 

‘영향과 극복’에 박수연 문학평론가가 현대문학의 화두라고 할 수 있는 김수영 시인의 문학과 정신에 대한 영향과 극복이 어떻게 있는지 그의 후배작가들의 작품 분석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어 매우 흥미를 끌 것이라 생각된다. 또 ‘작가가 찾은 작가’란에서는 등단 십오 년이 되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민호 시인의 신작시를 보이고 있으며, 노지영 문학평론가가 깊이 있고 애정 어린 작품분석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의 특집 ‘국가와 예술 , 작가의 양심과 자유’에서는 ‘2010년 문예진흥기금 사업 특별지원조건 안내’라는 공문을 계기로 현정부의 문화예술 정책과 더불어 국가기구와 작가의 펴현 자유 사이의 관계를 오창은 문학평론가, 이영진 시인, 이선우 문학평론가, 그리고 장원재 문화평론가가 참여하여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이미 세미나를 통해서 발표되고 토의된 이 논문들을 역사적 퇴행적 따른 작가들의 표현자유 위축과 그에 다른 저항의 글쓰기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동거’ 사이일 수밖에 없는 권력과 예술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돌아보았다는 점은 매우 의의 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전호에 청탁되었다가 게재되지 못한 시들을 포함한 신작시에는 윤석위․김명수․고형렬․곽재구․양애경․백무산․박남준․박주택․강세환․석벽송․최서림․임성용․박정애․윤지영․이용한․김점용․조정인․고찬규․이장곤․조동범․김일영․이진희․김윤이․이현호․성향숙 시인 등 다양한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또 신작소설로는 이대환․이후경․한지혜, 신작 시조로는 임동윤․김삼환, 신작동시로는 안학수․김응, 그리고 신작동화로는 이가을․김성진 작가들의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꼼꼼하고 애정 있는 일독을 권한다.

 

문득 ‘위기에 있는 곳에 구원도 자라는 법’이라는 횔덜린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그렇듯 문학 안팎의 위기는 새로운 문학적 ‘구원’을 예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구원’은 문학인 고유의 특권이자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반성과 성찰, 그리고 비판정신에서 시작된다. 행여 타인과 세상을 향한 비판에는 능하면서도, 실상 문학 내부의 반성과 비판에는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닌지 겸허히 돌아볼 때라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힘들게 발행되는 ‘작가’지에 대한 전폭적인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린다. ‘작가’ 지는 단지 하나의 문학잡지가 아닌, ‘한국문학작가회의’의 자존심이자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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